도성에는 사람이 가득 찼다. 성전에도 사람이 꽉 찼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들어 오시자마자 성전으로 올라가신다. 그리고 제물의 못(역주: 하느님께 바칠 제물을 깨끗이 씻던 성전 근처의 못) 근처에 있는 문으로 들어가신다. 그러니까 거의 즉시, 즉 시내에 계시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차릴 수 있기 전에, 그리고 그들이 배낭을 내려놓고, 깨끗한 몸으로 성전에 들어가기 위하여 먼지와 땀을 씻은 집에서 소문이 퍼져 나가기 전에 성전으로 들어가신다. 물건 파는 사람들과 환전상들의 무례한 혼잡은 여전하다. 옷빛깔과 얼굴들의 만화경(萬華鏡)도 여전하다.
예수께서는 제물에 필요한 것을 사온 사도들을 데리시고 직접 기도하는 곳으로 가셔서, 오랫동안 머물러 계신다. 자연 좋은 사람 나쁜 사람 할 것 없이 여러 사람의 눈에 띄셨고, 사람들이 기도하기 위하여 걸음을 멈추는 바깥마당을 통하여 속삭임이 바람처럼, 나뭇가지로 지나가는 바람 소리와 더불어 번져 간다. 그래서 기도를 드리신 다음, 오셨던 길로 되돌아가시려고 몸을 돌리실 때에는 점점 더 많아진 사람의 한 떼가 안마당과 회당과 마당들로 예수를 따라 와서, 마침내 하나의 군중이 되어 에워싸고 말씀을 해 달라고 청한다.
“여러분, 다른 때에! 다른 장소에서!” 하고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그곳을 피하려고 하시며 강복하시려고 손을 드신다.
군중 가운데 섞여 있는 율법학자, 바리사이파 사람, 박사들과 그들의 제자들은 서로 몇 마디씩을 주고받으며 비웃는데, 그것은 “조심성이 있으니까 곰곰이 생각하게 되는 거로구먼” 또는 “어! 겁이 좀 나는 모양이야….” 또는 “철이 들었어.” 또는 “생각한 것보다는 덜 바보로구먼…” 하는 따위의 놀리는 말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혹은 예수를 알고 사랑하기 때문에, 혹은 진심으로 예수를 알기를 바라기 때문에 증오심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이렇게 말하며 조른다. “선생님은 명절 중의 이 즐거움을 저희들에게서 빼앗아 가시겠습니까? 착하신 선생님이 그렇게 하실 수는 없습니다! 저희들 중에는 선생님을 기다리려고 여기 남아 있기 위해서 제물을 바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조롱하는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하거나 빈정거리는 사람들에게 같은 말투로 대꾸를 한다.
대중은 얼마 안 되는 악의를 품은 사람들을 못살게 굴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꾀바르고 음험한 이 자들은 그것을 알아차리고, 입을 다물 뿐 아니라 그곳을 떠나려고 한다. 비록 이들이 성전구내에 있기는 하지만, 떠나가는 이들을 서슴지 않고 야유하고, 별로 기쁘게 하지 않는 말을 던지는 사람이 여럿 있다. 반면에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 따라서 생각이 더 깊은 사람들은 예수께 이렇게 질문한다. “아니 그런데, 주님의 목소리에 응하지 않는 이곳, 이 도시, 이스라엘 전체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선생님은 알고 계시지요?”
예수께서는 반백이거나 완전히 백발이 된 그 머리들을 동정심을 가지고 바라다보시며 대답하신다. “하느님의 불쌍히 여기심을 하느님 편의 약점의 증거로 생각해서 더욱 더 죄를 짓는 것으로, 하느님의 분노의 섬광에 대항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되겠느냐 하는 것을 예레미아가 여러분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여러분, 하느님을 무시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영원하신 분께서 예레미아의 입으로 말씀하시는 것과 같이, 여러분은 옹기쟁이 손에 들려 있는 질흙과 같습니다. 자기가 능력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질흙과 같고,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과 왕국에 있는 사람들도 질흙과 같습니다. 하느님께 대항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은 없습니다. 그리고 질흙이 옹기쟁이에게 저항하고, 이상하고 소름끼치는 형태를 취하려고 하면, 옹기쟁이는 시작품(試作品)을 뭉개서 다시 한 줌의 질흙이 되게 하고, 새로 그릇 모양을 만들어서 옹기쟁이가 더 강하다는 것을 그릇이 깨닫고 그릇이 그의 뜻에 복종하게 되도록 합니다. 또 그릇이 고집스럽게 옹기쟁이가 만드는 모양대로 있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옹기쟁이가 그릇에 금이 가지 않게 빚기 위하여 적시는 물을 그릇이 거부하기 때문에 산산 조각이 나는 일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 때에는 옹기쟁이가 말을 듣지 않는 질흙과 일에 반항하는 쓸데없는 조가비 모양의 그릇을 쓰레기 더미에 던져 버리고, 새 질흙을 가지고 가장 좋아 보이는 형태로 빚습니다.
예언자가 옹기쟁이와 오지그릇의 상징을 이야기 하면서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되풀이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질흙이 옹기쟁이의 손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이스라엘아, 너도 이와 같이 하느님의 손 안에 있다.’ 그리고 반항하는 사람들에게 경고를 주시기 위하여, 오직 속죄와 하느님의 나무람을 받아들임만이 반항하는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벌의 명령을 변경시킬 수 있다고 주님께서 덧붙이십니다.
이스라엘은 뉘우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위협은 한번, 열번 이스라엘을 악착스럽게 따라 다녔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도 뉘우치지 않습니다. 예언자가 아니라, 예언자보다 더한 사람이 이스라엘에게 말하는 지금도 뉘우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더없는 자비를 베푸셨고, 나를 보내신 하느님께서는 이제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니, 나는 너희들에게 베풀어준 행복을 후회하고, 너희들에 대하여 불행을 준비 하겠다’. 그리고 자비 자체인 나는 내 목소리를 울려 퍼지게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지만, 이스라엘에게 외칩니다. ‘각자는 그의 나쁜 길에서 돌아오시오. 각자는 그의 행실과 그의 성벽(性癖)을 고쳐서, 죄지은 나라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이 이루어질 때에, 그 시민들 중의 가장 좋은 사람들만이라도, 재산과 자유와 통일을 전적으로 잃는 가운데에서, 죄에서 해방되고 하느님과 일치한 정신을 보존하고, 그들이 세상의 재물을 잃었을 것처럼 영원한 재물을 잃지 않게 하시오.’
예언자들 환시(幻視)는 목적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목적은 사람들에게 장차 올 수 있는 것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백성 앞에서 깨진 질그릇의 상징으로 주님께 복종하지 않는 도시와 나라들을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까 물러갔던 노인들과 율법학자들과 박사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성전의 자경단(自警團)과 질서 담당 행정관들에게 가서 알렸다. 행정관 하나가 재생지로 만든 것 같은 우스꽝스러운 병정 몇 사람을 거느리고 예수께로 온다. 그 우스꽝스러운 병정들은 어리석음과 약간의 악의의 혼합물이고, 거기에다 난폭함이라 까지는 말하지 않더라도 냉혹이 꽤 많이 섞인 얼굴만 빼놓고는 싸움꾼이라는 인상이 없다. 선생님은 이교도들의 회랑의 한 기둥에 기대서서 말씀하시고, 선생님 둘레로 빽빽이 에워싼 군중 가운데 계신다. 행정관이 예수께 소리를 지른다. “가시오! 그렇잖으면 내 병사들을 시켜서 내쫓겠소….”
“우! 우! 초록색 왕파리들! 용사들이 어린 양들을 덮치는구먼! 그러면서 당신들은 예루살렘을 창가(娼家)로 만들고, 성전을 시장을 만드는 자들은 가둘 줄을 모르오? 토끼 낯짝을 한 사람, 여기서 나가시오. 족제비들이나 찾아가시오…. 우! 우!” 사람들은 무장을 한 그 꼭두각시들에게 반항하고, 선생님께 모욕을 가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보인다.
“나는 받은 명령에 복종하는 거요…”하고 이 경비병의 우두머리가 변명하느라고 말한다.
“당신은 사탄에게 복종하면서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는 거요. 자, 이제는 감히 선생님을 모욕하고 위협한데 대해서 불쌍히 여겨 달라고 청하러 가시오. 선생님께는 손을 대지 못하오! 알아들었소? 당신들은 우리의 압제자들이고, 선생님은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시고, 당신들은 타락시키는 사람들이고, 선생님은 우리의 거룩하신 선생님이시오. 당신들은 우리의 파멸이고, 선생님은 우리의 구원이시오. 당신들은 배신이 가득 차 있고, 선생님은 친절이 가득 차 계시오. 여기서 나가시오. 그렇지 않으면, 마타티아가 모던에서 한 것처럼 하겠소. 우리는 우상의 제단처럼 당신들을 모리아산 비탈 아래로 내던지고, 더렵혀진 곳을 당신들의 피로 씻어서 청소를 하겠소. 이스라엘의 유일한 성인의 발이 그 피 위로 걸어서 지성소로 가셔서 거기서 왕노릇을 하실 거요. 그럴 자격이 있는 선생님이! 썩 꺼지시오! 당신들과 당신들의 주인들! 깡패를 섬기는 깡패들, 썩 꺼지시오….”
겁을 집어먹은 소란이 벌어졌다…. 안토니아에서 로마 수비대가 나이 먹고 엄하고 일을 재빨리 해치우는 장교와 같이 달려온다. “비키시오, 건달들! 무슨 일이오? 당신들은 옴 오른 당신들의 어린양 한 마리 때문에 서로 잡아먹는 거요?”
“이 사람들이 자경대에 반항을 하오…”하고 행정관이 설명하려고 한다.
“아이고 맙소사! 이자들이… 자경대라고? 아! 아! 주보(酒保)의 병사, 바퀴하고나 전쟁을 하러 가시오. 당신들이 말하시오…”하고 장교는 군중에게 명령한다.
“이 사람들은 갈릴레아 선생님께 말을 못하게 하려고 했소. 선생님을 내쫓으려고 했소. 어쩌면 붙잡으려고 했는지도 모르오….”
“갈릴레아 사람에게? 논 리쳇. (Non licet “불가(不可)하오”라는 라틴어) 나는 목 잘린 사람의 말을 로마 말로 하는 거요. 아! 아! 당신과 당신의 발바리들은 개집으로 가시오. 잡종 개들도 개집에 남아 있어야 하는 거요. 그 놈들도 암늑대*가 갈기갈기 찢어놓을 수 있으니까…. 알았소? 로마만이 판단할 권리가 있는 거요. 그리고 당신 갈릴레아 양반은 당신 이야기를 계속하시오…. 아! 아!” 그리고 그는 홱 돌아서더니, 갑옷을 해에 번쩍이며 간다.
“꼭 예레미아에게 한 것 같구먼….”
“모든 예언자들에게 한 것같이… 라고 말해야지….”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래도 이기신단 말이야.”
“선생님, 더 말씀하십시오. 독사들은 갔으니까요.”
“아니야, 선생님은 가시게 해. 새 파수꾼들이 무력을 가지고 다시 와서 선생님을 묶을지도 모르니까….”
“위험할 거 없어…. 사자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계속되는 동안은 하이에나들이 나오지 못하는 법이야….”
사람들은 몹시 혼란한 가운데 말을 하고 이러쿵저러쿵 비판을 한다.
“당신들 생각은 잘못이오”하고 겉옷을 입고 동료 몇 사람과 율법박사 몇 사람을 데리고 있는 한 바리사이파 사람이 아주 달콤한 어조로 말한다. “당신들 생각은 틀렸소. 한 계급 전체가 거기에 속하는 몇몇 사람과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오. 허! 허! 좋고 나쁜 것은 어떤 생물에나 다 있는 거요.”
“그렇지요. 과연 무화과는 보통 달지만, 아직 덜 익었거나 너무 무르익으면 떫거나 시어진단 말이오. 그런데 당신들은 예레미아의 나쁜 바구니의 무화과들처럼 시단 말이오”하고 군중 가운데에 어떤 사람이 말하는데, 나는 알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여러 사람이 잘 아는 모양이고, 또 바리사이파 사람이 타격을 반항하지 않고 참고 견디는 것으로 보아 유력하기도 한 모양이다.
반항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한층 더 부드러운 태도로 선생님께로 몸을 돌리고 말한다. “선생님의 지혜로 볼 때에는 훌륭한 주제입니다. 선생님, 이 주제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선생님의 설명은 대단히… 새롭고 대단히 유식합니다…. 우리들은 굶주린 사람들처럼 그것을 탐욕스럽게 맛봅니다.”
예수께서 이 바리사이파 투사를 뚫어지게 바라보시고 나서 대답하신다. “엘키아, 당신은 은밀한 다른 갈망도 가지고 있고, 당신 친구들도 그렇소. 그러나 당신에게도 이 양식이 주어질 거요…. 무화과보다도 더 신 이 음식이. 그리고 그 음식이 마치 시어진 무화과가 내장을 손상시키는 것과 같이 당신들의 마음속을 손상시킬 거요.”
“선생님, 아닙니다. 살아 계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맹세합니다! 제 친구들과 저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자 하는 것 외에 다른 갈망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보고 계십니다….”
“그만 해 두시오. 정직한 사람은 맹세를 할 필요가 없소. 그의 행동이 맹세이고 증언이오. 그러나 나는 훌륭한 무화과와 상한 무화과에 대해서 말하지는 않겠소….”
“왜요? 선생님은 사실이 선생님의 설명과 일치하지 않을까봐 염려하시는 겁니까?”
“오! 아니오! 오히려 그 반대요….”
“그러면 우리에게 대해서 고통과 치욕과 검과 흑사병과 굶주림을 예견하시는 겁니까?”
“그것과 그 이상의 것이오.”
“그 이상이라구요? 그래 그것이 무엇입니까? 도대체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게 되었다는 말입니까?”
“하느님께서는 당신들을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당신의 언약을 지키셨소.”
“선생님이요? 선생님이 언약이시니까요?”
“내가 언약이오.”
“그러면 언제 선생님의 나라를 세우십니까?”
“그 기초는 벌써 있소.”
“어디에요? 어디에?”
“착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러나 그것은 나라가 아닙니다. 그것은 가르치기입니다.”
“내 나라는 영적인 것이기 때문에 영들을 신민으로 가지고 있소. 그리고 영들은 궁궐과 집과 자경대와 성벽이 필요하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을 알고 그것을 실천에 옮길 필요가 있소. 이런 일이 착한 사람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중이오.”
“그러나 선생님이 그 말을 할 수가 있습니까? 누가 선생님에게 그런 허가를 줍니까?”
“소유요.”
“무슨 소유입니까?”
“말씀에 대한 소유요. 나는 나 자신을 주오. 생명을 가진 사람은 생명을 줄 수 있소. 돈을 가진 사람은 돈을 줄 수 있소. 나는 영원한 본성으로서 하느님의 생각을 나타내는 말씀을 가지고 있고, 그 말씀을 주오. 내 아버지이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생각을 알게 하는 이 선물을 주라고 사랑이 나를 충동하기 때문이오.”
“선생님 말씀하시는 것을 주의하십시오! 그것은 대담한 말투입니다! 그것이 선생님께 해를 끼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거짓말 하는 것은 내게 더 해가 될 거요. 그것은 이 본성을 변질시키는 것이 될 것이고, 내가 그분에게서 나오는 그분을 부인하는 것이 되겠기 때문이오.”
“선생님은 그럼 하느님이고. 하느님의 말씀이란 말입니까?”
“그렇소.”
“선생이 그렇게 말하는 겁니까? 이 일을 고발할 수도 있을, 이렇게 많은 증인 앞에서?”
“진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진리는 계산을 하지 않고, 진리는 용맹하오.”
“그런데 이것이 진리란 말입니까?”
“진리는 당신들에게 말하는 사람이오.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생각을 나타내기 때문이고, 또 하느님은 진리이시기 때문이오.” 사람들은 토론을 듣기 위하여 온 정신을 귀에 모으고, 조용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토론은 격렬하지 않게 진행된다. 다른 사람들이 다른 여러 곳에서 모여들어서 마당이 가득 차고, 사람들이 우글거린다. 수백개의 얼굴이 다만 한군데로 향하였고, 다른 여러 마당에서 이 마당으로 통하는 출입구로는 보고 들으려고 고개를 내민 얼굴의 무리가 보인다.
최고회의 위원 엘키아와 그의 친구들은 서로 쳐다본다…. 진짜 눈길의 대화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제한다. 그리고 한 나이 많은 박사는 아주 예의바르게 이렇게 묻기까지 한다. “그러면 선생님이 예견하시는 벌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나를 따르고, 특히 나를 믿어야 하고 그리고 한층 더 나아가 나를 사랑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행복을 가져다주시는 분이십니까?”
“아니오. 나는 구세주요.”
“그러나 선생님은 군대를 안 가지고 계신데요….”
“나는 나 자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들의 이익과 당신들의 영혼에 대한 연민으로 선생도 그렇고 당신들도 그렇고, 모세와 아론이 에집트에 있을 때에 그들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시오. ‘하느님의 백성들은 누구나 티가 없는 한 살짜리 새끼양 수컷 한 마리씩을 마련하여라. 한 집에 한 마리씩. 그 집안 식구의 수가 새끼양을 다 먹을 만큼 넉넉히 많지 않으면, 이웃 사람들을 불러오도록 하여라. 그리고 너희들은 그 새끼양을 아빗달 -지금은 니산달이라고 부르는- 열나흘 날에 잡아서 바쳐라. 그리고 잡은 어린 양의 피를 좌우 문설주와 문 상인방(引上枋)에 발라라. 그리고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서 누룩 없는 빵과 쓴 나물을 곁들여 먹어라. 먹고 남는 것이 있으면 불에 살라 버려라. 그것을 먹을 때는 허리에 띠를 매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잡고, 서둘러서 먹어라. 그것은 주님의 지나가심이기 때문이다. 그날 밤 나는 지나가면서 어린 양의 피로 표하지 않은 집에 있는 사람이나 짐승들의 맏아들을 모조리 죽이겠다.’ 지금은 하느님께서 새로 지나가실 때, 하느님께서 눈에 보이게, 그분의 표로 알아볼 수 있게 실제로 지나가시기 때문에 가장 참된 통과 때엔, 어린 양의 피로 유익한 표가 찍혀진 사람들 위에 구원이 내려올 것입니다. 참말이지, 모두가 어린 양의 피로 표가 찍혀지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린 양을 사랑하고, 그의 표를 사랑할 사람들만이 그 피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카인의 표일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들이 알다시피 카인은 주님의 얼굴을 뵐 자격을 잃었고, 그를 따라 다니는 가책과 벌과 그의 잔인한 주인인 사탄으로 타격을 받아 영영 휴식을 얻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세상으로 헤매며 도망했습니다. 새 아벨을 칠 민족의 진짜, 진짜 상징입니다….”
“에제키엘도 타우(T)에 대해서 말합니다…. 선생님은 에제키엘의 타우자가 선생님의 표라고 생각하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예루살렘에 우상숭배가 있다고 우리를 비난하십니까?”
“그렇게 할 수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러면 타우(T)자 표시가 된 사람들 가운데에는 죄인이 없습니까? 그것을 맹세하실 수 있습니까?”
“나는 아무 것도 맹세는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표가 된 사람들 가운데 죄인들이 있으면, 그들의 벌은 더 무서울 것이라고 말하겠습니다. 그것은 정신적인 간통자, 즉 하느님을 버리고 죽이는 자, 하느님의 제자가 되었다가 그렇게 되는 자들은 지옥에서 가장 큰 죄인이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하느님이라고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은 죄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의인으로 인정 되겠군요….”
“아닙니다. 만일 당신들이 나를 알지 못하고, 내 행동을 확인할 수 없었더라면, 내 말을 확인할 수 없었더라면, 당신들에게는 잘못이 없을 것입니다. 만일 당신들이 이스라엘의 박사가 아니었더라면, 당신들에게 잘못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성서를 알고, 내 행동을 봅니다. 당신들은 비교검토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성실하게 하면, 성경의 말씀에서 나를 보게 되고, 행위로 나타난 성경의 말씀을 내게서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나를 인정하지 않고, 나를 미워하는 것이 정당화되지 못할 것입니다. 하느님만이 계셔야 할 곳에 너무나 많은 반종교적인 가증스러운 짓과 너무나 많은 우상과 너무나 많은 우상숭배가 있습니다. 당신들이 있는 어느 곳이나 그렇습니다. 구원은 그런 것들을 버리고 당신들에게 말하는 진리를 받아들이는데 있습니다. 따라서 당신들이 죽이거나 죽이려고 해보는 곳에서 당신들이 죽음을 당할 것입니다. 또 이런 이유로 당신들의 이스라엘의 경계에서, 즉 인간의 어떤 권력도 소멸하는 곳, 오직 영원한 분께서 당신이 창조하신 자들을 심판하시는 곳에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주님, 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선생님은 준엄하십니다.”
“나는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고, 빛입니다. 어두움을 비추라고 빛이 보내졌습니다. 그러나 빛은 자유롭게 빛나야 합니다. 만일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빛을 보내시고 나서 그것을 모말로 씌우시면, 빛을 보내신 것이 쓸데없는 일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불을 켜고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불을 켠 것이 쓸데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불을 켜는 것은 불이 비추어서 들어오는 사람이 잘 볼 수 있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어둡게 된 내 아버지의 지상의 집에 빛을 밝혀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잘 보도록 하려고 왔습니다. 그리고 빛을 비춥니다. 그러니까 빛이 그 지극히 깨끗한 빗살로 당신들에게 뱀과 전갈과 함정과 거미와 벽의 금을 보게 하거든 그 빛을 찬미하시오. 빛이 그렇게 하는 것은 여러분에 대한 사랑으로 하는 것이고, 당신들이 자신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 당신들이 다시 깨끗해지도록 하기 위해서, 격정과 죄 따위의 해로운 짐승들을 내쫓기 위해서, 너무 늦기 전에 당신들이 다시 일어나라고, 당신들이 그리로 곤두박질하기 전에 당신들이 어디에 발을 들여 놓는지, 즉 사탄의 함정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것을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기 위하여는 선명한 빛 외에 깨끗한 눈이 필요합니다. 빛은 불순물이 덮여 있는 눈으로는 통과하지 못합니다. 빛이 당신들 안으로 내려갈 수 있도록 당신들의 눈을 깨끗하게 하고 당신들의 정신을 깨끗하게 하시오. 지극히 인자하신 분께서 당신들에게 빛을 보내시고, 병을 고치라고 약을 보내시는데, 왜 어두움 속에서 죽겠습니까? 아직도 늦지는 않습니다. 당신들에게 남아 있는 시간에 오시오. 빛과 진리와 생명으로 오시오. 당신들에게 팔을 벌리고, 마음을 열고 당신들의 영원한 행복을 위해 그를 받아 달라고 애원하는 당신들의 구세주에게로 오시오.”
예수께서는 정말 애원하신다. 사랑이 아닌 것은 무엇이나 모두 떨쳐버리시고, 사랑을 가지고 애원하신다…. 가장 냉혹하고 증오로 가장 열광하는 맹수들까지도 그것을 느끼고, 그들의 무기는 패배를 스스로 인정하고 그들의 독은 그 산(酸)을 솟아오르게 할 힘을 잃었다.
그들은 서로 쳐다본다. 그리고 엘키아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말한다. “선생님, 말씀 잘 하셨습니다! 선생님께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드리는 향연을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당신들의 영혼을 안는 영예 말고 다른 영예를 원하지 않습니다. 나를 내 가난에 남겨 두시오….”
“선생님은 제게 거절하는 모욕을 주고자 하지는 않으시겠지요?”
“모욕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 친구들과 같이 있게 놔두기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 사람들도 청한다는 걸 누가 의심하겠습니까? 저 사람들도 선생님과 같이 청합니다. 제 집으로. 큰 영광일 것입니다!…. 큰영광!…. 선생님은 다른 실력자들의 집에도 가시면서요! 왜 엘키아의 집에는 안 오시겠습니까?”
“그러면… 가겠습니다. 그러나 당신 집의 은밀한 곳에서도 여기 대중 앞에서 당신에게 한 말과 다른 말은 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분명히 아시오.”
“저도 그렇지 않고, 제 친구들도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을 혹 의심하시겠습니까?….”
예수께서는, 그를 뚫어지게 똑바로 들여다보신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나는 모르는 것에 대해서만 의심합니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의 생각을 모르지 않아요. 댁으로 갑시다…. 내 말을 들은 사람들에게 평화.”
그리고 엘키아의 곁에서 성전 밖으로 나가신다. 사도의 무리는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엘키아의 친구들과 섞여서 따라간다.
* 역주 :로마의 개조(開祖) 로물루스를 젖 먹여 살렸다고 하는 전설이 있는 암늑대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