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오의 성문 곁에는 농가가 하나 있다. 온 식구가 밭에 나가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집이 조용하다. 마당에는 지난 며칠 동안에 거두어들인 곡식 단들이 있고, 건초들은 벌써 투박한 건초 저장소에 쌓여있다. 대낮의 뜨거운 햇볕이 건초와 곡식 단에서 뜨거운 냄새를 발산시킨다. 항상 요란하고 싸움을 잘 하는 비둘기들의 구구거리는 소리와 참새들의 짹짹거리는 소리 외의 다른 소리는 없다. 비둘기와 참새들은 끊임없이 지붕이나 그 곁에 있는 나무들에서 곡식단과 건초단으로 와서, 그것들을 맛보는 놈들 중에서 첫째놈들은 꼿꼿하게 서 있는 이삭을 쪼고, 가책도 없이 탐욕스런 게 싸우면서, 할 수 있는 대로 낟알을 더 많이 먹고 가장 부드러운 건초 부스러기를 가지려고 다툰다. 이스라엘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도둑들이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사람들이 남의 물건을 매우 존중한다는 것에 주의하였다. 집의 문을 연채로 두고, 마당이나 포도밭을 지키지 않는다. 아주 드문 직업적인 도둑들과 산골짜기에서 사람들을 습격하는 산적들 말고는, 좀도둑이나 그저… 남의 과일나무나 새끼 비둘기에 손을 대는 탐식하는 사람들도 없다. 각기 제 갈 길을 가고, 이웃의 소유지를 건너질러가면서도 눈이나 손이 없는 것같이 행동한다. 하기는 어디를 가나 인심이 하도 후하기 때문에 먹기 위하여 도둑질을 할 필요가 없을 지경이기는 하다. 예수께 대하여만, 그리고 나그네에 대한 환대의 오랜 습관을 소홀히 할 정도로 큰 증오 때문에, 예수께 대하여만 재워 주는 것과 음식을 주는 것을 거절하는 집들이 있다는 사실이 확증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는 일반적으로 동정심이 있고, 특히 가장 비천한 사람들이 더 그러하다.
그래서 사도들은 닫혀 있는 집 문을 두드리고 나서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다음, 두려워하지 않고, 농기구와 빈항아리들이 놓여 있는 헛간으로 피해 들어갔다. 그들은 주인이나 되는 것처럼 건초단을 가져다가 깔고 앉고, 우물에서 물을 길으려고 나무들통을 가져오고, 물을 마시고 약간 굳어진 빵조각과 차게 된 어린 양고기 조각들을 담으려고 손잡이 달린 단지들을 가져와서, 그것들을 먹는다. 그런데 햇볕으로 하도 마비가 되고 정신이 멍해져서 거의 말이 없이 먹다시피 한다. 그리고 역시 마음대로 건초단과 그릇들을 사용하고 나서, 이내 좋은 냄새가 나는 건초 위에 누워서, 즉시 음조와 선율이 각각인 코골기 합주를 시작한다.
예수께서도 피로하시다. 피로하시기보다는 더 슬퍼하시는 모습이다. 한동안 잠자는 열두 제자를 바라보시고, 기도를 드리시고, 곰곰이 생각하신다. 예수께서는 눈으로는 참새들과 비둘기들이 싸우는 모습과 해가 내리쬐는 마당 위를 쏜살같이 날아다니는 제비들을 기계적으로 지켜보시면서 깊이 생각하신다. 공중을 지배하는 그 제비들의 날카로운 부르짖음이 예수께서 당신 자신에게 던지시는 고통스러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을 가져오는 것 같다. 그러다가 예수 자신도 건초 위에 누우셨고, 오래지 않아 슬픔에 잠긴 다정스러운 파란 눈이 눈꺼풀에 가려진다. 예수의 얼굴은 잠들어 움직이지 않는데, 아마 마음속에 슬픔을 간직하고 잠드시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예수의 얼굴은 돌아가실 때에 띠게 될 쇠약과 고통의 표정을 많이 띠고 있다….그런 다음 집주인 농부들이 돌아온다. 남자들과 여자들과 어린이들. 또 그들과 함께 아까 본 제자들도 온다. 그들은 건초 위에서 잠을 자는 예수와 제자들을 보고, 그들을 깨우지 않으려고 그들의 목소리가 속삭임으로 변한다. 어떤 어머니는 입을 다물고자 하지 않는 아이의 뺨을 때린다. 혹은 적어도 때리는 시늉을 한다. 꼬마 하나가 손가락 하나를 입에 물고 멧비둘기 새끼 같은 걸음으로 베개 노릇을 하는 구부린 팔에 머리를 얹고 주무시는 예수를 살펴보려고 가는데, 예수를 “제일 잘 생긴”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모두가 신발을 벗고, 발끝으로 걸어서 어린이가 하는 대로 따라 하는데, 누구보다도 먼저 마티아와 요한이 그렇게 하고, 예수께서 그렇게 건초 위에 누워서 주무시는 것을 보고 감동한다. 그리고 마티아가 이렇게 지적한다. “첫번째 잠이 드셨을 때와 같이 우리 선생님이 지금도 주무시는데, 그 때보다는 덜 행복하시네…. 지금은 어머니도 안 계시고….”
“그래, 선생님은 점점 더 가까워 오는 박해밖에 없어. 그렇지만 우리는 선생님을 항상 사랑할 것이고, 지금도 항상 그 때처럼 사랑하고 있어…” 하고 요한이 대답한다.
“그 때보다 더 사랑해, 마티아. 그 때보다 더. 그 때는 우리가 믿음으로만 사랑했고, 또 아기를 사랑하는 것은 기쁜 일이니까 사랑했어. 그렇지만 지금은 선생님을 알기 때문에 사랑하기도 한단 말이야….”
“요한, 선생님은 갓 났을 때에도 미움을 받으셨어. 아기를 죽이려고 해서 일어난 일을 생각해 보게!….” 그러면서 마티아는 그 일을 생각하고 얼굴빛이 변한다.
“맞아…. 그러나 그 고통은 축복받아야 해! 우리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선생님은 잃지 않았어. 그런데 이것만이 중요한 거야. 만일 선생님이 돌아가셨더라면, 우리가 아직 부모를 모시고, 집과 보잘것없는 우리 안락을 아직 가지고 있더라도 그게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었겠나?”
“사실이야, 마티아. 자네 말이 옳아. 선생님이 이 세상에 안 계시게 되면, 세상 전체를 가진다 해도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 말은 내게 하지도 말게…. 그 때는 우리가 정말 버림받은 사람이 될 거야… 당신들은 가보시오. 우리는 선생님 곁에 남아 있을 테니까”하고 요한이 이내 농부들을 보내면서 말한다.
“우리는 이분들에게 열쇠를 줄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합니다. 그랬으면 집안으로 들어가서 좀 더 편하셨을 텐데….”하고 집안에서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이 말한다.
“우리가 선생님께 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여러분의 사랑만으로도 행복하실 것입니다. 가십시오, 가세요.”
농부들은 집으로 가고, 조금 있다가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오는데, 그것은 그들이 음식을 준비하는 중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어린 아이들을 제지하고 소리를 별로 내지 않으면서 일을 한다…. 그런 다음 소리를 내지 않고 음식을 제자들에게 가져오면서 말한다. “저분들의 것은 따로 놓아두었습니다…. 잠을 깨시면 드리려고….”
그리고 집은 적막에 감싸인다. 아마 새벽부터 일을 한 농부들이 뜨거운 해가 내리쬐는 밭에서 일 할 수가 없을 이 시간에는 침대에 누웠나 보다. 제자들도 존다…. 비둘기와 참새들까지도 조용히 있다. 제비들만이 지치지 않고 쏜살같이 날아다니는데, 그 놈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은 공중에는 파란 말을 써 놓고, 흰 마당에는 그림자의 말을 써 놓는다…. 조금 전에 이야기가 나왔던 어린 아이, 몹시 더운 이 시간이라 옷이라고는 그저 짧은 샤쓰만 걸친 아주 예쁜 어린 아이가 작은 갈색 머리를 부엌문으로 내밀고 한번 훑어보더니, 그 가냘픈 발로 조심조심 나아온다. 그의 발은 햇볕으로 뜨거워진 땅바닥 때문에 고통을 느낀다. 깃이 많이 팬 샤쓰는 포동포동한 어깨 거의 아래까지 흘러 내려왔다. 그는 제자들 있는 데로 와서, 다시 예수를 보러 가려고 그 위를 지나가려고 해본다. 그러나 그의 작은 다리들은 너무 짧아서 어른들의 실팍한 몸을 뛰어넘을 수가 없다. 그래서 걸려서 마티아 위에 넘어졌다. 마티아는 잠이 깨어 울상이 된 슬픈 작은 얼굴을 본다. 그는 미소를 짓고, 어린 아이가 무슨 일을 꾸미는지를 알아차리고 말한다. “이리 오너라. 너를 예수와 나 사이에 놔 주마. 그렇지만 말없이 조용히 있어라. 예수님이 코오 하게 가만 놔둬라, 피곤하니까.” 그러니까 꼬마는 행복하게 앉아서, 예수의 아름다운 얼굴 앞에서 감탄에 잠긴 채로 있다. 어린 아이는 예수를 들여다보고 살펴본다. 그리고 예수를 쓰다듬고 예수의 금발을 만져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러나 마티아가 웃으면서 감시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니까 어린 아이는 가만히 묻는다.
“아저씨는 늘 이렇게 코오 하는 거야?”
“늘 이렇게 하신다” 하고 마티아가 대답한다.
“아저씨는 피곤해? 왜?”
“아주 많이 걸으시고, 아주 많이 말을 하시니까.”
“왜 말을 하고 걷고 해?”
“어린 아이들에게 선생님과 함께 하늘에 가게 착하게 굴고 주님을 사랑하도록 가르치시려고.”
“저기 말이야? 어떻게 해야 가? 먼데….”
“영혼, 너 영혼이 뭔지 아니?”
“아니!”
“그것은 네 안에 있는 제일 아름다운 것이야. 그리고….”
“눈보다 더 아름다운 거야? 엄마는 내 눈이 별 둘이라고 말하는데. 별들은 이뻐, 아저씨 알아?!”
제자는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한다.
“영혼은 네 눈의 작은 별들보다 더 아름답다. 착한 영혼은 해보다 더 아름답거든.”
“오! 그런데 영혼이 어디 있어? 내 머리에 있는 거야?”
“여기, 네 작은 마음속에. 그리고 영혼은 다 보고 듣고, 절대로 죽지 않는다. 그리고 누가 조금도 나쁘게 굴지 않고, 올바른 사람으로 죽으면, 그의 영혼은 주님과 함께 저 위로 날아 올라간다.”
“아저씨와 함께?”그러면서 꼬마는 예수를 가리킨다.
“선생님과 함께.”
“그렇지만 아저씨도 영혼이 있어?”
“선생님은 영혼과 천주성을 가지고 계신다. 네가 들여다보는 이 사람은 하느님이시니까.”
“아저씬 그건 어떻게 알아? 누가 말해 됐어?”
“천사들이.”
완전히 마티아의 무릎에 앉아 있던 어린 아이는 이 소식을 태연하게 받을 수가 없어 벌떡 일어나면서 말한다. “아저씨는 천사들을 봤어?” 그러면서 눈을 크게 뜨고 마티아를 본다. 그 소식이 하도 놀라워서 꼬마는 잠시 예수를 잊는다. 그래서 예수께서 어린 아이의 가벼운 외침으로 잠이 깨서 눈을 반쯤 뜨셨다가, 미소를 지으시고 머리를 돌리시면서 눈을 다시 감으시는 것을 보지 못한다.
“조용히 해라! 자 봐! 너 선생님을 깨웠다….너를 쫓아버리겠다.”
“가만히 있을께. 그런데 천사들이 어떻게 생겼어? 아저씨는 천사들을 언제 봤어?” 작은 목소리가 속삭임이 되었다. 그러니까 마티아는 다시 그의 품으로 돌아와 황홀해서 앉아 있는 어린 아이에게 참을성 있게 성탄의 밤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왜? 왜? 하는 어린 아이의 모든 물음에 참을성 있게 대답한다. “왜 아저씨가 외양간에서 났어? 집이 없었어? 집을 얻지 못할 만큼 가난했었나? 그리고 지금도 집이 없나? 엄마가 없나? 엄마가 어디 있어? 사람들이 벌써 아저씨를 죽이려고 한 걸 알면서, 엄마는 왜 아저씨를 혼자 내버려 둬? 엄마가 아저씨를 사랑하지 않는 거야?….”소나기처럼 퍼붓는 질문이고 소나기처럼 퍼붓는 대답이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에는 마티아가 “그 거룩하신 어머니는 하느님이신 당신 아들을 매우 사랑하신다. 그러나 사람들이 구원받도록 아들이 가게 내버려 두는 괴로움을 희생으로 바치신다. 위로를 받기 위해서 어머님은 아드님을 사랑할 수 있는 착한사람들이 아직 있다는 것을 생각하신다…”하고 대답하는데, 이것이 이런 대답을 유발한다. “그런데 그 엄마는 아저씨를 사랑하는 어린아이들이 있다는 걸 알지 못해? 그 엄마가 어디 있어? 말해 줘, 그럼 내가 가서 ‘울지 말아요. 나는 어머니 아들을 사랑해요’ 하고 말하겠어. 어떻게 생각해? 그 엄마가 좋아할까?”
“아주 많이 좋아하실 거다. 얘야”하고 마티아가 그를 껴안으며 말한다.
“그리고 아저씨도 좋아할까?”
“아주 많이, 많이. 선생님이 깨시거든 네가 말해라.”
“오! 그럼!… 그렇지만 아저씨가 언제 깰까?” 어린 아이는 걱정이 된다.
예수께서는 더 참으실 수가 없다. 그래서 돌아누으시며, 눈을 크게 뜨시고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신다. “너는 벌써 그 말을 내게 했다. 나는 다 들었으니까. 얘야, 이리 오너라.”
오! 어린 아이는 그 말을 듣기가 무섭게 예수에게로 가서 엎어지면서, 쓰다듬고, 입맞춤을 하고 손가락으로 이마와 눈썹과 속눈썹을 만지고, 예수의 파란 눈동자를 들여다보고, 수염과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어루만지고, 한 가지 한 가지를 발견할 때마다 “아저씬 정말 이뻐! 이뻐! 이뻐!”하고 말한다.
예수께서는 미소 지으시고, 마티아도 빙그레 웃는다. 그리고 이제는 어린 아이가 그다지 조심을 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깨는데 따라, 제자들과 사도들도 그 주의 깊은 검사를 보고 빙그레 웃는다. 반쯤 벗은 포동포동한 자그마하고 귀여운 사람은 그 검사를 되풀이 하며, 예수를 머리에서 발끝까지 살펴보려고 그 몸 위를 왔다 갔다 하는데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말한다. “몸을 돌려봐!” 그리고 나서 설명한다. “날개를 보려고 그래.” 그리고는 실망하여 묻는다. “왜 날개가 없어?”
“얘야, 나는 천사가 아니란다.”
“그렇지만 아저씨는 하느님이지! 아저씨가 날개가 없으면, 어떻게 하느님이 될 수 있어? 하늘엘 어떻게 갈 거야?”
“나는 하느님이다. 그리고 바로 내가 하느님이기 때문에 날개가 필요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또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그럼, 내게도 아저씨 눈같이 이뿐 눈을 만들어 줘. 아저씨 눈은 이쁘거든.”
“아니다. 네가 가진 눈은 내가 준 거다. 그리고 그대로 있어도 내 마음에 든다. 차라리 네가 나를 점점 더 사랑하도록 올바른 사람의 영혼을 달라고 청해라.”
“내 영혼도 아저씨가 내게 줬어. 그러니까 그대로 있어도 아저씨 마음에 들 거야”하고 꼬마가 어린이다운 논리로 말한다. “그렇다. 지금은 네 영혼이 죄가 없으니까 내 마음에 든다. 그렇지만 네 눈은 언제나 익은 올리브 빛깔 그대로이겠지만, 네 영혼은 하얗던 것이 만일 네가 나쁜 사람이 되면 까맣게 된다.”
“나쁜 사람은 안 될 거야. 난 아저씨를 많이 좋아해. 그리고 아저씨가 났을 때 천사들이 말한 것처럼 나도 할래. ‘하늘에서는 하느님께 평화, 땅에서는 마음이 착한 사람들에게 영광’하고.” 꼬마는 틀리게 말한다. 그래서 어른들이 깔깔거리고 웃게 되었고, 꼬마는 그 때문에 자존심이 상하여 입을 다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바로잡아 주시면서 그를 위로하신다. “하느님은 언제나 평화이시다. 얘야, 하느님은 평화야. 그러나 천사들은 구세주가 난 것 때문에 하느님께 영광을 드렸고, 사람들에게는 내 탄생에서 올 평화를 얻기 위한 첫째 규칙, 즉 ‘착한 뜻을 가지라’는 규칙을 주었다. 네가 원하는 착한 뜻 말이다.”
“응, 그럼 그걸 내게 줘, 이 아저씨가 내가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자리에 넣어 줘”하고 두 검지로 자기의 작은 가슴을 여러 번 두드린다.
“그래, 작은 친구야. 이름이 뭐니?”
“미카엘.”
“능력 있는 대천사의 이름이로구나. 그러면 미카엘아, 네게 착한 뜻을 준다. 그리고 너는 천사인 네 수호자가 말한 것처럼 박해자들에게 ‘누가 하느님과 같으냐?’하고 말하면서 참 하느님의 증거자가 되어라. 이제와 항상 강복을 받아라.” 그러시면서 그에게 두 손을 얹으신다.
그러나 꼬마는 확신을 가지지 못해서 이렇게 말한다. “아니야, 여기 영혼에 입맞춤 해 줘. 그러면 아저씨의 강복이 안으로 들어가서 꼭 갇혀 있을 거야.” 그러면서 그의 작은 육체와 숭고한 입술 사이에 아무런 장애물도 가로 놓이지 않은 채 예수께서 입맞춤 하시도록 작은 가슴을 드러낸다.
거기 있는 사람들은 빙그레 웃는다. 그리고 동시에 감동한다. 그럴 만도 하다! 어떤 사람들은 본능으로 그랬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영의 자극으로 예수께로 갔다고 생각하는 무죄한 어린 아이의 놀라운 믿음은 참으로 감동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것을 지적하시며 말씀하신다. “아! 모든 사람이 어린이의 마음을 가졌으면!….”
그러는 동안 시간이 흘렀다. 집이 활기를 띤다. 여자들과 어린이들과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한 어머니가 외친다. “미카엘아! 미카엘아! 어디 있니?” 그리고 겁을 집어먹고, 마음에는 끔찍한 생각을 품고 깊은 우물을 들여다보는 것이 보인다.
“아주머니, 염려 마시오. 아들이 나와 같이 있어요.”
“아이고! 저는 겁이 났었습니다…. 이 애가 하도 물을 좋아해서요….”
“또 사실 이 아이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맑은 물에게로 왔소.”
“이 애가 선생님을 방해했군요…. 이 애가 하도 살그머니 빠져나오는 바람에 저는 알아차리지를 못했습니다…”하고 여인은 변명하느라고 말한다.
“오! 아니오! 나를 방해하지 않았소. 나를 위로했어요! 어린이들은 절대로 예수에게 고통을 주지 않아요.”
남자들이 다가오고, 다른 여자들도 가까이 온다. 가장이 말한다.
“들어오셔서 요기를 하십시오. 그리고 선생님을 뵌 때부터 저희들이 집 주인으로 모시지 못한 것을 용서하십시오….”
“용서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나는 여기 편하게 있습니다. 당신의 경의가 내게 모든 영광을 줍니다. 우리는 음식을 가지고 있었고, 당신의 우물물은 시원하고 건초는 부드럽습니다. 사람의 아들에게는 이것이면 넉넉하고도 남습니다. 나는 시리아의 태수(太守)가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음식을 드시려고 제자들이 뒤따르는 가운데 넓은 부엌으로 들어가신다. 그동안 마당에서는 남자들이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벌써 사방에서 오는 사람들을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고 다른 남자들은 서둘러 음료와 식량을 준비하고 복음전파자들에게 여행용 비축물을 드리기 위해 어린 양의 가죽을 벗기며, 여자들은 달걀과 버터를 가져온다. 버터는 베드로의 항의를 유발한다. 베드로는 이 더위에 그렇게도 잘 녹는 식량을 배낭에 넣어서 가져갈 수는 없다고 말하는데, 옳은 말이기는 하다. 그러나 단지들은 공연히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단지 하나에 버터를 채우고, 뚜껑을 닫고, 할 수 있는 대로 시원하게 하려고 우물 속으로 내려 보낸다.
예수께서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시고, 그 선물들을 제한하려고 하신다. 암 그렇고 말고! 그것은 헛수고이다. 다른 선물들이 사방에서 오고, 모두가 별로 드리는 것이 없다고 변명한다….
베드로가 중얼거린다. “여기에는 목자들이 있다는 걸 잘 알겠군. 여긴 기름지게 한 땅… 좋은 땅이야.”
마당에는 사람들이 가득 찼는데, 아직 시원한 기운이 오지 않고, 마지막 햇살이 마당을 아직 스치고 있는 데도 태연하다. 예수께서 말씀을 시작하신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나는 이스라엘의 선생의 가르침이 훌륭한 제자들의 보살핌으로 이곳에 벌써 알려졌다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되풀이 해 말하려고 온 것은 아닙니다. 나는 여러분을 가르친 영광과 책임을 훌륭한 제자들에게 남겨두고, 또한 점점 더 그렇게 해서 내가 하느님께서 언약하신 사람이고, 내 말은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완전한 확신을 여러분에게 주기까지 하라는 소임을 그들에게 남겨 줍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기적들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복되신 선생님!” 하고 군중 가운데에서 한 여자의 목소리가 외친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이 그쪽을 보려고 몸을 돌린다. 여자는 건강해 보이는 얼굴로 웃는 어린 아이를 공중에 쳐들고 외친다. “선생님, 이 애가‘고운 내’에서 고쳐 주신 어린 요한입니다. 허리가 부러져서 아무 의사도 고칠 수가 없던 어린 아이를 믿음을 가지고 선생님께 데리고 갔었는데, 선생님이 품에 안고 앉히셔서 고쳐 주셨습니다.”
“아주머니, 기억납니다. 당신의 믿음은 기적을 얻을 만 했습니다.”
“선생님, 그 믿음이 더 커졌습니다. 제 친척 모두가 선생님을 믿습니다. 얘야, 가서 구세주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려라. 얘가 선생님께 가도록 놔두세요…” 하고 여자가 부탁한다. 그러니까 군중은 갈라져서 어린 아이가 지나가게 한다. 어린 아이는 예수를 껴안을 수 있도록 팔을 내밀고 예수를 향하여 급히 간다. 이 광경은 그 도시와 근방의 사람들의 호산나 소리와 이러니저러니 하는 말들이 일어나는 가운데 벌어진다. 이 시골 사람들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어서 놀라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어린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을 다시 시작하신다.
“자, 이제 감사하는 한 어머니로 인해서 내 본성이 확인되었고. 하느님의 마음에 대한 믿음의 힘도 확인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자녀들의 신뢰하는 정당한 청을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유다 마카베오가 고르지아의 어마어마한 야영부대를 탐색하려고 이 평야에 왔을 때를 기억하라고 권합니다. 고르지아의 야영부대는 갑옷과 무기와 공성루(攻城樓)를 갖추고 전투훈련이 잘 되어 있는 보병 5천명과 기병 천명의 병력을 가진 강한 군대였습니다. 유다는 방패도 없고 검도 없는 그의 보병 3천명을 데리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의 병사들의 마음에 공포가 스며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때에 유다는 그가 불의를 목표로 하지 않고 침략당하고 더렵혀진 조국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인정하시는 정당한 권리로 힘을 얻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효로 인해서 겁을 집어먹지 말고, 저들의 공격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우리의 조상들이 파라오가 그의 대군을 거느리고 쫓아올 때에 홍해에서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 기억하여라’하고. 그리고 항상 의인들과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되살린 다음, 도움을 얻는 방법을 그의 병사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목소리를 하늘 높이 올려 보내자. 그러면 주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실 것이고, 우리 조상들과 맺으신 계약을 기억하시고, 오늘 우리 앞에 있는 저 군대를 때려 부수실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구세주께서 계시다는 것을 모든 민족이 알게 될 것이다.’
자, 보시오. 나는 여러분에게 의로운 일에 우리를 도와주시도록 하느님을 모시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를 일러주겠습니다. 첫째 요소는 계약을 차지하기 위하여는 우리 조상들의 의로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조들은 요구된 일이 별로 중요하지 않건 대단히 중요하건 간에 거룩하고 재빠르게 주님께 순종하였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그분들이 주님께 얼마나 큰 충성을 지켰는지를 상기하시오. 이스라엘에서 예전처럼 관대하신 주님을 모시지 못하게 되었다고 탄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아직 조상들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누가 아버지와의 계약을 깨뜨렸고, 지금도 끊임없이 깨뜨리고 있습니까?
하느님을 모시고 있기 위해 가장 중요한 두번째 것은 겸손입니다. 유다 마카베오는 위대한 이스라엘 사람이었고, 위대한 군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늘 나는 저 군대를 때려 부술 것이다. 그러면 내가 이스라엘의 구원자 되는 것을 모든 민족이 알 것이다’하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고 ‘우리는 약해서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 앞에서 저 군대를 때려 부수실 것이다’하고 말합니다. 하느님은 아버지이셔서 당신의 자녀들을 보살피시고, 그들이 멸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당신의 강력한 군대를 보내시어 당신 자녀들의 적들을 초자연적인 무기로 공격하게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누가 우리를 이길 수 있습니까? 이것을 지금도 끊임없이 생각하고 장래에는 더 많이 생각하시오. 장래에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이기려고 할 것이지만, 나라를 위한 싸움과 같은 상대적인 중요성을 가진 일 때문에가 아니라, 여러분의 영혼에 관한 일이기 때문에 현세에 있어서나 그 결과에 있어서나 훨씬 더 큰 중요성을 가진 일 때문일 것입니다. 공포나 교만에 지배되지 않도록 하시오. 두 가지가 다 손해를 입히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내 이름 때문에 박해를 당하면,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이고, 박해 중에 여러분에게 힘을 주실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겸손하면, 만일 여러분이 여러분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힘이 없지만 아버지와 결합해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유다는 자기가 이스라엘의 구제자라고 자칭해서 자신을 돋보이게 하지 않고, 영원하신 하느님께 그 칭호를 드렸습니다. 과연 만일 사람들의 노력을 하느님께서 보살펴주지 않으시면 그들이 활동을 해도 소용없습니다. 이와 반대로 주님께 의지하는 사람은 활동을 하지 않고서도 승리를 거둡니다. 주님은 언제 승리로 상을 주시는 것이 옳고, 언제 패배로 벌하시는 것이 옳은지를 아십니다. 하느님을 판단하거나 하느님께 충고를 하거나 하느님을 비판하고자 하는 사람은 매우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조각가의 일을 지켜보던 개미가 ‘당신은 빈틈없이 일할 줄을 모르는군요. 내가 당신보다 더 빠르게 더 잘 하겠소’하고 말한다고 상상해 보시오. 사람이 하느님께 교훈을 드리고자하면 이 개미와 꼭 같습니다. 그리고 우스꽝스러운 그의 모습에다가 자기는 피조물이고, 하느님은 조물주이시라는 것을 잊어버리는 배은망덕하고 건방진 사람의 모습을 합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하느님 자신에게 충고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잘 창조된 존재를 만드셨으니, 모든 피조물을 만드신 분의 완전은 어떠하겠습니까? 이 생각 하나만으로도 넉넉히 교만을 꺾을 수 있고, 악마적인 저 나쁜 풀을 얼마든지 아주 없애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정신 속에 슬그머니 뚫고 들어와서, 속속들이 침범하고, 그 자리에 대신 들어앉고, 질식시키고, 좋은 나무는 무엇이든지 죽이고, 세상에서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 재산이나 명예가 아니라, 초자연적인 정의와 지혜로 정말 위대하게 만들고, 하늘에서는 영원히 복되게 만드는 모든 덕행을 죽이는 기생목(寄生木)을 아주 없애버리기에는 이 생각 하나만으로 충분하다는 말입니다. 또 위대한 유다 마카베오와 그날 이 평야에서 있은 일들이 우리에게 주는 다른 권고를 생각해봅시다.
싸움이 시작되자,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던 유다의 군대는 적을 이기고 패주시키고, 그들을 예제론, 아존 이두메아, 얌니아까지 쫓아갔다고 역사는 말합니다. 그리고 적의 일부분을 죽여서, 들판에는 3천이상의 시체를 남겨 놓았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승리에 취한 그의 병사들에게 말했습니다. ‘전리품을 탐내어 여기 머물러 있지 말아라.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고르지아는 군대를 거느리고 우리 가까이 산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아직 적을 공격하여 그들을 완전히 무찌를 일이 남아 있다. 그런 다음에는 마음 놓고 전리품을 차지하여라.’ 그래서 그들은 그대로 해서 확실한 승리를 거두고 전리품을 많이 얻고 해방되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면서 하느님의 찬미를 노래했습니다. ‘하느님은 착하시고 그분의 자비는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어떤 사람도 유다인들의 거룩한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밭들과 같습니다. 외부와 내부의 적들에 에워싸여 있는데, 이 적들은 모두가 잔인하고 모두가 각 사람의 거룩한 도시, 즉 그의 영을 공격할 희망을 가지고 있고, 또 그 도시를 가지가지 계략으로 교묘하게 속여서 점령하기 위하여 뜻밖에 공격해서 그것을 파괴할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탄이 길러 주고 자극하고, 사람은 그것을 억제하기위하여 온 의지를 다해서 감시하지 않는 격정들은, 사람이 그것들을 억제하지 못하면 위험하지만, 사슬에 묶인 도둑처럼 감시하면 해가 없으며, 또 세상은 그것들을 가지고 육체와 돈과 교만의 모든 유혹을 써서 음모를 꾸미는데, 그것들은 갑옷을 입고 공성루와 활잡이들과 훌륭한 사수(射手)들과 빠른 기병들을 갖추고, 악의 명령만 내리면 언제든지 공격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는 고르지아의 군대와 같습니다.
그러나 만일 하느님께서 의인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과 함께 계시면 악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사람은 고통을 당하고 상처를 입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자유와 생명을 구할 것이고, 유리한 싸움을 한 뒤에 승리를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싸움은 한번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계속되는 동안, 또는 사람이 그의 인간성을 넉넉히 버리고, 육체보다는 오히려 영이 되지 않는 동안은 언제나 다시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하나가 된 영에는 상처와 심한 공격과 전화(戰火)가 깊은 상처를 입히지 못하고, 단단하고 반짝거리는 벽옥 위에 떨어지는 물 한 방울이 할 수 있는 것과 같이 피상적으로만 때리고 나서 쓰러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명의 문턱에 있지 않은 한, 이 세상의 생명 말고 하늘나라의 참 생명의 문턱에 가 있지 않은 한, 전리품을 얻느라고 지체하지 말고, 정신을 딴 데로 팔지 마시오. 하늘나라의 생명의 문턱에 이르거든, 승리자로서 여러분의 전리품을 모아 가지고 왕 중의 왕의 앞으로 영광스럽게 나아가 말하시오. ‘저는 이겼습니다. 여기 제 전리품이 있습니다. 저는 이 일을 주님의 도우심과 제 착한 뜻으로 해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찬미합니다. 주님은 착하시고, 주님의 자비는 영원하십니다’ 하고.
이것은 일반적으로 생명에 대해서, 모든 사람에 대해서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나를 믿는 여러분에게는 여러분을 노리는 다른 싸움이 한 가지 있습니다. 아니 여러 가지 싸움이 있습니다. 의심에 대한 싸움,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할 말에 대한 싸움, 박해에 대한 싸움입니다.
나는 그것을 위해서 하늘에서 온 그곳에서 높이 쳐들릴 것입니다. 그 장소가 여러분을 무섭게 할 것이고, 내 말에 대한 부인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사건을 정신의 눈으로 바라보시오. 그러면 일어나는 일이 내 실제의 정체에 대한 확인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즉 보잘것없는 나라의 보잘것없는 왕이 아니라, 예언자들이 예고한 왕이고, 그의 유일한 불멸의 옥좌 아래로는, 강들이 큰 바다로 흘러가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민족이 와서 ‘왕 중의 왕이시며 심판자여, 당신을 흠숭하나이다. 당신의 거룩한 희생으로 세상을 구속하셨기 때문입니다’하고 말하리라는 것입니다.
의심을 물리치시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나는 예언자들이 말한 그 사람입니다. 조금 전에 요한의 어머니가 한 것처럼, 내가 여러분에게 한 것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이렇게 말하시오. ‘하느님의 행적은 이런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이것들을 믿기 위한, 바로 이 시간에 믿기 위한 기억으로, 확인으로, 도움으로 남겨 주셨다’고. 싸우시오, 그러면 영혼의 호흡을 조이는 의심을 이길 것입니다. 여러분이 들을 말에 대항해 싸우시오. 예언자들과 내 행적을 기억하시오. 그리고 적의를 품은 말에는 예언자들과 내가 하는 것을 여러분이 본 기적으로 대답하시오. 겁내지 마시오. 그리고 공포로 인해서 내가 여러분을 위해서 행한 기적을 말하지 않음으로 배은망덕 하는 사람이 되지 마시오. 박해에 대항해서 싸우시오. 그러나 여러분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박해하는 것으로 싸우지 말고, 죽인다는 위협으로 여러분을 설득해서 나를 버리게 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영웅적인 신앙 고백을 하는 것으로 싸우시오. 원수들과 끊임없이 싸우시오. 모든 원수와 여러분의 인간성에 대항해서, 여러분의 공포. 비열한 타협, 이해관계가 얽힌 관계맺음, 압력, 위협, 고문, 죽음에 대항해서 싸우시오. 죽음!
나는 자기 백성에게 ‘나는 즐기는데, 너희들은 고통을 당하여라’하고 말하는 우두머리가 아닙니다. 그렇지 않고, 여러분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하여 내가 먼저 고통을 당합니다. 나는 자기 군대에게 ‘나를 보호하기 위하여 싸우고, 내 목숨을 건지기 위해 너희들이 죽어라’하고 말하는 군의 지휘자가 아닙니다. 그렇지 않고, 내가 제일 먼저 싸웁니다. 여러분에게 죽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내가 제일 먼저 죽겠습니다. 이와 같이, 가난을 권장하면서 내가 가난한대로 있었고, 금욕을 권장하면서 내가 순결을 지켰고, 절제를 권하면서 내가 절제하였고, 정의를 권장하면서 정의로웠고, 용서를 권장하면서 내가 용서했고 또 용서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한 것과 같이 마지막 일도 또 하겠습니다. 어떻게 구속하는지를 여러분에게 가르쳐 두겠습니다. 그것을 말로 가르치지 않고 사실로 가르치겠습니다. 가장 힘드는 순종, 즉 죽는 순종을 함으로써 순종하는 것을 여러분에게 가르치겠습니다.
나는 나를 하늘에서 빼앗아 온 인류를 내 요람의 짚 위에 누워 있으면서 용서한 것과 같이, 내 최후의 고통 중에서 용서함으로써 여러분에게 용서하는 것을 가르치겠습니다. 나는 이제까지 항상 용서한 것과 같이 미래에도 용서하겠습니다. 모두를. 내게 관한 한, 모두를. 내 작은 원수를, 즉 소극적이고, 무관심하고 잘 변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내 능력과 그들을 구원하고자하는 내 갈망에 대하여 무감각하다는 고통을 내게 줄 뿐 아니라, 하느님을 죽이는 사람들이라는 고통을 내게 주고, 미래에도 줄 큰 원수들도 용서하겠습니다. 나는 용서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죽이는 사람으로 뉘우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죄(赦罪)를 줄 수 없겠으므로, 그들을 위하여 아버지께… 그들을 용서해 주십사고 마지막 고통으로 또 청하겠습니다…. 그들은 사탄의 술로 취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용서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내 이름으로 용서하시오. 그리고 사랑하시오. 내가 사랑하는 것과 같이 내가 여러분을 사랑하고 또 영원히 사랑할 것과 같이 사랑하시오.
안녕히들 계십시오. 저녁 빛이 내려 깔립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그리고 각기 마음속에 주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집으로 돌아가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친구요 선생인 여러분의 구제주의 말을 더 듣기를 갈망할 때에, 여러분의 정신을 하늘로 올려 보내서, 여러분을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한 그분을 찾아낼 수만 있게 될 때에, 그 말씀이 여러분의 장래의 굶주림을 달래는 낟알이 많은 이삭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리고 예수께서는 북향한 면의 우중충한 벽에 기대 세워진 높고 흰 십자가 모양으로 팔을 벌리시고 주의 기도를 천천히 외신다.
그런 다음 모세의 축복으로 강복하시고, 어린이들을 껴안으시고, 또 강복하신다. 예수께서는 작별 인사를 하시고, 엠마오에 들어가시지 않고, 엠마오를 끼고 북쪽을 향하여 가신다.
황혼의 보라빛이 점점 더 당신의 운명을 향하여 가시고 또 가시는 선생님의 다정스러운 환영을 천천히 삼켜버린다. 어둡기 시작하는 마당에는 조용한 고통의 적막이 흐른다…. 일종의 기다림이…. 그러다가 어린 미카엘의 울음이, 혼자 있게 된 어린 새끼양의 울음이 매혹된 것 같은 분위기를 깨뜨리니, 많은 눈이 눈물에 젖고, 많은 입술이 어린 아이의 순진한 말을 되풀이 한다. “아이고! 왜 갔어? 돌아와요, 돌아와!… 주님! 예수를 돌아오게 해요.” 그리고 예수께서 정말 사라지시자, 기정사실을 슬프게 확인한다. “예수가 없어졌어!” 하고 어린 미카엘의 어머니가 그를 위로하려고 애쓰지만 소용없다. 미카엘은 엄마보다 더한 것을 잃은 것처럼 울고, 엄마의 품에서도 예수께서 사라지신 지점만을 바라다보며 팔을 내밀면서 “예수! 예수!”하고 부른다…. 예수께서는 좀 더 멀리 가기를 기다리셨다가 말씀하신다. “우리는 요빠로 간다. 제자들이 그곳에서 일을 많이 했고, 그곳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을 기다린다.”
길을 더 많이 걷는다는 계획에 대하여는 별로 열광하지들 않는다. 그러나 열성당원 시몬은 요빠에서는 니고데모와 요셉의 소유지에 빨리 갈 수 있고, 그것도 훌륭한 길로 간다는 것을 지적한다. 요한은 바다로 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도 이러한 고찰에 끌려서 결국은 바다 쪽으로 가는 길로 더 기꺼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