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차가운 기운으로 잠자던 사람들이 깬다. 그들은 마른 풀이 드문드문 있는 언덕 밑에서 잠을 잔 모래 침대에서 일어나 모래 언덕 꼭대기로 기어 올라간다. 그들 앞에는 깊숙한 모래가 섞인 해변이 전개하고, 아주 가까운 곳과 조금 떨어진 곳에는 훌륭한 직물들이 자라는 땅이 있다. 말라붙은 개울의 흰 돌들로 인하여 모래의 금빛이 더 선명하게 돋보인다. 말라붙은 개울은 마른 뼈와 같은 그 흰 빛을 지닌 채 바다에까지 이르는데, 저 멀리 있는 바다에는 아침의 밀물과 특히 큰 바다를 주름지게 하는 가벼운 북풍으로 부풀어오른 물결이 반짝인다.
그들은 모래언덕 가장자리를 따라 말라붙은 개울에까지 가서, 개울을 지나 모래언덕을 다시 비스듬히 지나간다. 모래언덕은 그들의 발 밑에서 무너지는데, 모래가 아주 기복이 심해서 마치 움직이는 파도 대신에 움직이지 않고 마른 파도로 큰 바다를 연장하는 것 같다. 그들은 물에 젖은 해변에 이르렀다. 그래서 더 편하게 걸어간다. 요한은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받은 끝없는 바다의 광경에 정신을 빼앗긴 것 같다. 그는 그 아름다움을 마시는 것 같고, 그로 인하여 눈이 더 파래진다. 더 실제적인 베드로는 샌들을 벗고 옷을 치켜 올리고 게나 빨아먹을 수 있는 조개를 잡을 수 있을까 하고 바닷가의 물구덩이 속을 철벅거리며 걸어간다. 2킬로미터 가량 되는 곳에는 바닷가에 반달 모양으로 늘어선 바위들 위에 세워진 아름다운 도시가 있는데, 그 바위들 너머로 바람과 폭풍우가 모래를 옮겨다 놓았다. 그런데 만조가 되었다가 물이 빠지는 지금은 이 바위의 방벽이 이곳에도 드러나서 현초(顯礁)에 맨발을 다치지 않으려면 마른 모래 있는 데로 다시 올 수밖에 없다.
“주님, 어디로 해서 들어갑니까? 여기서는 넓은 성곽밖에 보이지 않는데요. 바다 쪽으로 해서는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도시가 활등같이 생긴 것의 제일 깊은 쪽에 있으니까요.” 하고 필립보가 말한다.
“이리들 오너라. 어디로 들어가는지 나는 안다.” 하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이미 오신 적이 있습니까?”
“아주 어렸을 적에 한 번 왔었다. 그래서 기억은 잘 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로 해서 통과하는지는 안다.”
“이상합니다! 저는 이걸 아주 여러 번 알아차린 일인데요. … 선생님은 절대로 길을 잘못 드시는 일이 없습니다. 때로는 저희들이 선생님께 길을 잘못 드시게 하지만, 선생님은! 선생님이 여행하시는 곳은 항상 다니시던 곳 같습니다.” 하고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지적한다.
예수께서는 빙그레 웃으신다. 그러나 대답은 하지 않으신다. 예수께서는 야채 재배자들이 도시를 목표로 야채를 가꾸는 작은 변두리 마을까지 자신있게 가신다. 작은 밭들과 채소밭들이 반듯하고 잘 가꾸어져 있다. 남자 여자들이 그 밭들을 가꾸는데, 지금은 우물에서 손으로 물을 긷거나 눈이 가려진 채 우물 주위를 도는 나귀 새끼에 의하여 물통들이 들어 올려지는 삐걱거리는 옛날식 장치로 우물물을 퍼 올려서 밭고랑에 물을 주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당신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하신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적의는 품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적어도 무관심한 채로 있다.
“주님, 여기서는 굶어 죽을 위험을 무릅쓰게 되겠습니다. 저 사람들이 선생님의 인사를 이해하지 못하는군요. 이제는 제가 해보겠습니다.” 하고 토마가 말한다. 그러면서 그가 처음 만난 야채 재배인에게 다가가서 말한다. “댁의 야채는 비쌉니까?”
“다른 야채 재배자들 것보다 더 비싸진 않지요. 비싸다 싸다 하는 건 돈주머니가 얼마나 두둑하냐에 달렸지요.”
“말 잘했소. 그러나 당신도 보다시피 나는 배가 고파 죽어가진 않소. 나는 살이 쪘고 당신의 야채를 먹지 않고도 혈색이 좋소.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린 열 세 사람이고 물건을 살 수가 있소. 당신은 뭘 파오?”
“달걀, 야채, 햇편도(扁桃), 제철이 아니기 때문에 시든 사과, 올리브 … 뮛이든지 다 있소.”
“우리 모두가 먹게 달걀과 사과와 빵을 주시오.”
“나는 빵은 없소. 시내에 들어가야 살 수 있어요.”
“나는 지금 시장하지, 한 시간 후에 시장할 게 아니오. 당신이 빵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소.”
“난 없어요. 아내가 지금 빵을 만들고 있는 중이오. 그렇지만 저기 저 노인이 보이지요? 저 사람은 언제나 빵을 많이 가지고 있소. 그 사람은 길가에서 살기 때문에 나그네들이 빵을 구하는 일이 많아요. 아나니아를 찾아가서 빵을 달라고 하시오. 이젠 달걀을 가져오겠소. 그러나 두 개에 1데나리온이라는 걸 아시오.”
“사기꾼! 당신의 닭이 낳는 알은 아마 금으로 만든 알인 모양이지요?”
“아니오. 그렇지만 구린 내가 나는 닭들 가운데 있는 건 구미를 돋구는 일은 아니지요. 그래서 그만큼 값어치가 나가는 거요. 그리고 당신들은 유다인이 아니오? 그러니 돈을 좀 쓰시오.”
“그냥 두시오. 그러면 돈을 잘 받은 셈이오.” 그러면서 토마는 그 사람에 등을 돌린다.
“어! 여보시오! 이리 오시오. 더 싸게 드리지요. 1데나리온에 세 개요.”
“네 개라도 안 사겠소. 당신이나 그 달걀을 마시시오. 그래서 목구멍에 남아 있게 하시오.”
“이리 오시오. 자, 얼마 주겠소?” 그러면서 야채 재배자는 토마를 따라온다.
“아무것도 싫소. 이제 안 사겠어요. 나는 시내에 들어가기 전에 간식을 하려고 했었는데, 이대로가 더 낫겠소. 나는 여관에서 왕의 이야기를 노래하고 훌륭한 식사를 하게 목소리와 입맛을 잃지 않겠소.”
“한 드라크마에 두 개 주겠소.”
“야아! 당신은 등에보다도 더 지독한 사람이구려. 달걀을 주시오. 그리고 성한 달걀이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돌아와서 얼굴을 지금보다도 더 노랗게 만들어놓을 거요.” 그러면서 토마는 겉옷 접은 데에 적어도 두 다스는 담아 가지고 왔다갔다 한다. “선생님, 보셨습니까? 이 사기꾼들의 고장에서 물건 사는 건 이제부터 제가 하겠습니다. 이 사람들은 호주머니에 돈을 가득 넣어가지고 아내들을 위해 물건을 사려고 저희들에게 오는데, 팔찌가 그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 넉넉히 굵다는 법은 도무지 없습니다. 그리고 한없이 깎습니다. 그래서 제가 앙갚음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저 다른 엉큼한 사람을 보러 가십시다. 베드로, 자네 가세, 그리고 요한, 자네는 달걀들을 받게.”
그들은 큰 길 옆에 밭을 가지고 있는 노인을 만나러 간다. 큰 길을 변두리 마을의 집들 곁을 지나 북쪽으로 향하여 시내로 들어간다. 그것은 포장이 잘 된 훌륭한 길이다. 틀림없이 로마인들이 만든 길일 것이다. 동쪽에 있는 도시의 성문은 이제 가까이 보인다. 문 저쪽으로는 곧게 계속되는 길이 보이는데 예술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 길은 대리석 기둥으로 버티어진 이중(二重)의 그늘진 회랑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시원한 그늘로 걸어가고 길 한가운데는 나귀와 낙타와 개와 말들에게 내맡긴다.
“안녕하세요? 빵을 파시겠어요?” 하고 토마가 묻는다.
노인은 듣지를 못하는 것인지,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정말이지 물 푸는 수차(水車) 삐걱거리는 소리가 어떻게나 요란스러운지 서로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없을 지경이다.
베드로는 참을 수 없게 되어 소리를 지른다. “영감님 삼손을 멈추세요! 그 놈이 내 눈 앞에서 죽지 않게 숨이라도 좀 돌리게 내버려두세요. 그리고 우리 말을 들으세요!”
그 사람은 그의 암당나귀를 멈추고 말을 거는 사람을 반감을 가지고 바라다본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렇게 말해서 그의 감정을 누그러뜨린다. “여보세요! 삼손이라는 이름이 암당나귀에게 어울리는 이름이 아닙니까? 할아버지가 펠레시데 사람이면 이것이 마음에 들텐데요. 이것은 삼손에게는 모욕이 되는 것이니까요. 할아버지가 이스라엘 사람이면 이것이 펠레시데 사람들의 패배를 연상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에 들 거구요. 그러니 …”
“나는 펠리시데 사람이오. 그리고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하오.”
“잘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들에게 빵을 주시면 저도 할아버지를 찬양하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유다인이 아니오?”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는 어디 있소?”
“그리스도는 장소가 아닙니다. 사람입니다. 저는 그 분에게 속해 있습니다.”
“당신은 그 사람의 노예요?”
“저는 그 누구보다도 더 자유롭습니다. 그 분에게 속해 있는 사람은 하느님께만 속해 있으니까요.”
“참말이오? 카이사르에게도 속하지 않는단 말이오?”
“체! 제가 따르고 제가 속해 있고, 또 그 분의 이름으로 제가 빵을 청하는 그 분에 비하면 카이사르가 뭡니까?”
“하지만, 세력있는 그 사람이 어디 있소?”
“저기를. 우리를 보고 웃는 저 분이십니다. 저 분은 그리스도이시고 메시아이십니다. 그 말을 들은 일이 없습니까?”
“들은 적이 있지요. 이스라엘의 왕이지요. 그 분이 로마를 이길 겁니까?”
“로마요? 아니 온 세상을, 아니 지옥까지도 이기십니다.”
“그럼 당신들은 그 분의 장군들이오? 옷을 그렇게 입었는데? 아마 배신하는 유다인들의 박해를 피하려고 그러는 모양이지요?”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나 빵이나 주십시오. 그러면 먹는 동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빵이요? 아니, 물도 주고 포도주도 주고 그늘에 의자도 주지요. 당신과 당신 친구와 당신의 메시아에게도. 그 분을 부르시오.”
그러니까 베드로는 예수께로 급히 달려간다. “오십시오. 오세요. 저 늙은 펠리시데 사람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준답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선생님께 많은 질문을 해서 성가시게 할 것을 생각합니다. … 저는 선생님이 누구시라는 것을 말해 주었습니다. … 대강 말해 주었어요. 그러나 호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가 정원으로 간다. 거기에는 그 사람이 포도덩굴이 잔뜩 뒤덮인 정자 아래 있는 탁자 둘레에 걸상들을 갖다 놓았다.
“아나니아 할아버지에게 평화가 있기를. 할아버지의 자선 덕택으로 할아버지의 땅이 기름지게 돼서 훌륭한 소출을 내게 되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께도 평화. 앉으십시오. 다들 앉으십시오. 아니베! 누비! 빵과 포도주와 물을 가져오너라. 즉시.” 노인이 두 여자에게 명령한다. 한 여자는 아주 새까맣고 입술이 두껍고 머리가 짧고 곱슬곱슬하며, 또 한 여자는 좀 더 유럽형으로 생겼지만 얼굴빛이 매우 짙은 것으로 보아 아프리카 여자들일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노인이 설명한다. “제 아내의 노예들의 딸들입니다. 아내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같이 왔던 여자들도 죽었습니다. 그러나 딸들은 남아 있습니다. 나일강 상류지방과 하류지방 사람들이었지요. 제 아내가 그 쪽 사람이었습니다. 그건 금지된 일이지요, 네? 그러나 저는 거기에 개의치 않습니다. 저는 잉스라엘 사람이 아니고, 하층 종족의 여자들은 온순하거든요.”
“할아버지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십니까?”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을 멍에처럼 목에 메고 있으니까요. … 그렇지만 … 선생님은 이스라엘 분이시니 제가 말하는 것이 기분 나쁘십니까? …”
“아니오, 그 때문에 기분이 상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다만 할아버지가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으시기만 바랍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는 말씀을 안하십니다.”
“그것은 할아버지의 말입니다. 나는 지금 할아버지에게 말을 하는데, 이것이 하느님의 목소리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유다의 왕이신데요.”
빵과 물과 포도주를 가지고 오던 여자들이 “왕”이라는 말을 듣고는, 그들의 주인이 “왕”이라고 부르는 의젓하고 미소를 머금고 있는 금발의 청년을 쳐다보면서 매우 놀라 걸음을 멈춘다. 그러다가 경의를 표하느라 몸을 거의 땅에까지 구부리면서 물러선다.
“고맙소, 당신들에게도 평화가 있기를.” 그리고 노인에게로 몸을 돌리시고 말씀하신다. “저 여자들은 어리군요. … 할아버지도 일을 하실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땅에 물을 주었으니까 기다리면 되는 것입니다. 말씀 좀 해주십시오. 아니베야, 너는 나귀를 끌러서 들여가라. 그리고 누비 너는 마지막 물통들을 비워라. 그리고 … 주님, 여기 머무르시는 거지요?”
“그냥 일을 계속하세요. 나는 음식이나 좀 들면 되니까요. 그리고 아스칼론에 들어갑니다.”
“아닙니다, 제겐 조금도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십시오. 시내에 들어가십시오. 그러나 저녁에는 오십시오. 같이 식사를 하십시다. 서둘러라들! 너는 빵을 만들고 너는 제데오를 불러서 새끼 염소를 한 마리 잡아 달라고 해서, 오늘 저녁에 먹게 마련해라. 가라.” 두 여자는 말없이 간다.
“그러면 선생님은 왕이십니까? 그러나 선생님의 무기는요? 헤로데는 어떻든 잔인합니다. 그는 우리들에게 아스칼론을 재건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 그렇지만 이스라엘의 불명예는 저보다 선생님이 더 잘 아시지요.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나는 하느님에게서 내게 오는 무기 외에 다른 무기는 없습니다.”
“다윗의 검이요?”
“내 말의 검입니다.”
“아이고! 가엾은 몽상가! 그 칼은 무정한 사람들의 마음으로 끝이 부러지고 날이 무디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세요” 나는 이 땅의 나라를 목표로 삼지 않습니다. 당신들 모두를 위해서 하늘 나라를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라니요? 페레시데 사람인 저두요? 제 노예들두요?”
“모두요. 할아버지와 저 여자들과 아프리카 삼림 가운데 있는 가장 미개한 사람까지두요.”
“그렇게 큰 나라를 만들려고 하세요? 왜 하늘의 나라라고 부르십니까? 땅의 나라라고 부르실 수도 있을 텐데요.”
“아닙니다. 잘못 생각하지 마세요. 내 나라는 참 하느님의 나라, 하늘에 계신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따라서 하늘 나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육체라는 옷을 입고 있는 영혼인데, 영혼은 하늘에서나 살 수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영혼을 고쳐 주고, 거기에서 그릇된 생각과 원한들을 없애고, 인자와 사랑으로 하느님께로 데려가기를 원합니다.”
“그 말씀은 대단히 제 마음에 듭니다.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은, 저는 예루살렘에 가지 않지만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저희들을 미워하지 않으십니까?”
“나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습니다.”
노인은 곰곰히 생각한다. … 그러다가 묻는다. “그럼 저 두 노예도 선생님네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영혼이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저 여자들은 붙잡힌 짐승들이 아닙니다. 저 여자들은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불행한 여자들입니다. 저 여자들을 사랑하세요?”
“저는 저 여자들을 학대하지 않습니다. 저는 저 여자들이 복종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채찍을 쓰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잘 먹입니다. 잘 먹이지 않는 짐승은 일을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도 잘 먹지 못하면 좋은 일꾼이 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저 여자들은 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저 여자들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보았습니다. 이제는 제가 대단히 늙었기 때문에 저 여자들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아시겠어요? 저는 80이 다 돼갑니다. 제 옛날 집에서 남은 것이라고는 저 여자들과 제대오밖엔 없습니다. 제 가구와 마찬가지로 저들에게 애착을 느낍니다. 저 여자들이 내 눈을 감겨 줄 것입니다 ….”
“그 다음에는요?”
“그 다음에는 … 그건! 모르겠습니다. 저 여자들은 어딘가 고용살이를 들어갈 것이고, 제 집은 무너질 것입니다. 이것이 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제 집은 제가 일한 덕택으로 부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땅이 다시 모래밭이 되고 불모의 땅이 될 것입니다. … 이 포도나무를 제 아내와 제가 심었습니다. 또 이 장미나무 … 주님, 에집트의 장미나무입니다. 저는 이 장미나무에서 제 아내의 체취를 맡습니다. … 제게는 이 장미나무가 아들같이 생각됩니다. … 여기 이 밑에 묻혀서 이제는 먼지가 된 외아들 … 괴로운 일입니다. … 젊어서 죽어서 이런 꼴도 안 보고 죽음이 다가오는 것도 보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
“할아버지의 아들은 죽지 않았고, 할머니도 죽지 않았습니다. 영은 살아 남았습니다. 육체는 죽었습니다. 죽음을 무서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 바라고 외롭게 사는 사람에게는 죽음도 생명입니다. 그것을 생각하세요. … 나는 시내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오겠습니다. 제자들과 같이 자게 이 회랑을 빌려 주세요.”
“안 됩니다, 주님. 빈 방이 여러 개 있습니다. 그 방들을 드리겠습니다.”
유다가 돈을 탁자 위에 내놓는다.
“아닙니다. 돈은 안 받겠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불쾌감을 주는 이 땅에서 태어났지만, 어쩌면 우리를 지배하는 사람들보다 더 나은지 모릅니다. 주님, 안녕히 다녀오십시오.”
“아나니아 할아버지에게 평화.”
두 여자 노예는 예수께서 떠나시는 것을 보려고 전에 농부였던 건강한 남자인 제데오와 함께 달려왔다. “당신들에게도 평화. 착하게 사시오. 안녕.” 그러시면서 예수께서는 누비의 곱슬곱슬한 머리와 아니베의 반들반들하고 빳빳한 머리를 살짝 스치시고 남자에게 미소를 보내시고 떠나신다.
조금 후에 그들은 양쪽 회랑이 있는 시내 중심으로 들어가는 곧바른 길로 해서 아스칼론으로 들어간다. 그 도시는 로마를 흉내내서 수반과 분수들이 있고, 집회에 쓰이는 광장들이 있고, 성곽을 따라서 탑들이 있으며, 가는 곳마다 헤로데의 이름이 붙어 있는데, 그것은 아스칼론 사람들이 그에게 박수갈채를 보내지 않기 때문에 헤로데 자신이 자화자찬하기 위하여 붙인 것이다. 사람의 내왕이 많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또 시의 중심지에 가까워질수록 더 많아진다. 도시는 개방적이고 통풍이 잘 되며 바다 쪽으로 환히 뚫려 있다. 바다는 잔뜩 휜 활 모양으로 된 해안을 따라 흩어져 있는 집들로 인하여 마치 장미빛 산호로 된 노루발에 물린 터키옥(玉)처럼 갇혀 있는 것 같아서 만 같지가 않고, 진짜 활 같고, 햇빛으로 온통 엷은 장미빛깔이 들여진 원의 일부분 같다.
“우리 일행을 네 그룹으로 가르자. 나 혼자 갈 터이다, 아니 그보다도 너희들을 떠나보내겠다. 그런 다음 내가 택하겠다. 가라, 세시 후에는 우리가 들어온 성문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다. 신중하게 행동하고 참을성을 가져라.” 그리고 예수께서는 가리옷의 유다와 혼자 남으셔서 그들이 떠나가는 것을 보신다. 유다는 이곳 사람들이 이교도들보다도 더 나쁘기 때문에 그들에게 말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여기저기로 다니고자 하신다는 것을 깨닫고는 마음이 변하여 말한다. “선생님 혼자 계셔도 기분 나쁘지 않으십니까? 저는 마태오와 야고보와 안드레아와 같이 갔으면 하는데요. 그 사람들이 제일 능력이 없거든요 ….”
“가거라, 잘 다녀오너라.”
그래서 예수께서는 혼자서 시내를 일주하시며, 바삐 돌아가는 사람들 가운데를 알려지지 않은 채 이리저리 다니신다. 사람들은 예수를 눈여겨보지도 않는다. 두세 명의 호기심 많은 어린이만이 예수를 아래 위로 훑어보고, 선정적인 옷차림을 한 여자 한 사람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용감하게 마주 온다. 그러나 예수께서 아주 엄하게 바라보시기 때문에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개져서 눈을 내리깔고 가버린다. 길 모퉁이에서 그 여자는 또 한 번 돌아다본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본 서민 한 사람이 그 실패에 대하여 신랄하고 경멸적인 말로 놀리자 그 여자는 겉옷으로 몸을 감싸고 도망친다.
이와 반대로 어린이들은 예수의 주위를 돌며 쳐다보고, 예수께서 미소지으시는 것을 보고는 그들도 웃음을 짓는다. 그 중에서 더 용감한 어린이가 예수께 묻는다. “아저씨는 누구세요?”
“예수다.” 하고 대답하시면 예수께서 그를 쓰다듬으신다.
“아저씬 뭐 하세요?”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다.”
“아스칼론 사람들이예요?”
“아니다, 내 고장과 유다 사람들이다.”
“아저씬 돈 많아요? 나는 돈이 많아요. 우리 아버지는 훌륭한 집이 있고, 그 안에서 양탄자를 만들어요. 와 보세요. 여기서 아주 가까워요.”
그래서 예수께서 그 어린이와 둘이서만 가신다. 예수께서는 지붕을 덮은 길같은 매우 긴 현관으로 들어가신다. 저 안쪽에는 현관의 희미한 빛 때문에 더 선명해진 바다 한 구석이 햇빛을 쨍쨍 받아 반짝이고 있다. 그들은 울고 있는 허약한 계집아이를 하나 만난다.
“얘는 디나예요. 얘는 가난해요, 아세요? 우리 엄마가 얘한테 먹을 걸 줘요. 얘 엄마는 돈 벌이를 하지 못하게 됐어요. 얘 아빠는 바다에서 죽었어요. 물건을 가져가고 가져오려고 가자에서 큰 강의 항구로 가는 중에 폭풍우를 만났어요. 그 물건들이 우리 아버지 것이었고, 또 디나의 아버지가 우리 배를 몰고 갔기 때문에 엄마는 지금 이 사람들을 생각해요. 그렇지만 아버지 없는 아이들이 아주 많아요. … 아저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고아이고 가난하게 사는 건 힘들 것 같아요. 우리 집에 다 왔어요. 내가 거리에 있었다고 말하지 마세요. 나는 학교에 있어야 했어요. 그렇지만 내가 이걸 가지고 동무들을 웃겼기 때문에 쫓겨났어요 ….” 그러면서 나무를 깎아 만든 꼭두각시를 옷에서 꺼낸다. 연한 나무 조각을 깎아 만든 것인데, 매우 희화적(戱畵的)인 주걱턱과 코가 달려있는 것이 정말 대단히 우스꽝스럽다.
예수께서는 입술 위에서 감도는 미소를 막연히 지으신다. 그러나 그 미소를 억제하시고 말씀하신다. “그건 선생님이 아니시지? 친척도 아니고? 그건 좋지 않아.”
“아니예요. 이건 유다인들의 회당장이야요. 그 사람은 늙고 못 생겼어요. 그래서 우리가 늘 놀려먹어요.”
“그것도 좋지 않다. 그 분은 분명히 너보다 나이가 많지, 그리고 …”
“아이구, 반쯤 등이 구부러지고 거의 눈이 멀고 아주 보기 싫게 생긴 늙은이야요! … 그 사람이 그렇게 생긴 것이 내 잘못은 아니야요!”
“맞았다. 그러나 노인을 놀리는 것은 잘못이다. 너도 늙으면 등이 굽고, 머리가 빠져서 숱이 많지 않고, 반소경이 돼서 지팡이를 짚고 다닐 테니까 보기가 흉하게 될 거다. 네 얼굴도 그렇게 될 거야. 그러면? 그 때 버릇없는 아이가 너를 놀리면 너는 좋겠니? 그리고 또 선생님을 화나게 하고 동무들을 방해하는 것은? 그것도 좋지 않은 일이다. 네 아버지가 그걸 아시면, 네게 벌을 주실 것이다. 그리고 네 어머니는 그 때문에 괴로워하실 것이다. 나는 그분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 그러나 너는 내게 즉시 두 가지를 다오. 다시는 그런 과실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약속과 그 꼭두각시를 다오. 누가 만들었니?”
“주님, 내가 만들었어요 ….” 하고 어린이가 이제는 그의 나쁜 짓이 중대하다는 것을 의식하고 풀이 죽어서 말한다. …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나는 나무를 가공하는 것이 아주 좋아요! 어떤 때는 양탄자에 있는 꽃이나 짐승들을 흉내내기도 해요. 정말이예요. … 용이나 스핑크스, 그리고 다른 짐승들두요 ….”
“그런 건 해도 된다. 이 세상에는 아름다운 물건이 아주 많다! 그럼 약속을 하는 거지. 그리고 꼭두각시는 내게 주고? 그렇지 않으면 이젠 우리가 친구가 아니다. 나는 그 꼭두각시를 네 기념품으로 둬두고 너를 위해 기도하겠다. 이름이 뭐냐?”
“알렉산드르요. 그럼 아저씨는 나한테 뭘 줄래요?”
예수께서는 어쩔 줄을 모르신다. 언제나 가지신 것이 별로 없으니까! 그러나 곧 어떤 옷깃에 달린 매우 아름다운 고리쇠를 가지고 계신 것이 생각나서 배낭을 뒤져 그것을 찾아내시어 떼어서 어린이에게 주신다. “그럼 이제는 가자. 그러나 내가 떠나더라도 조심해라. 나는 떠나도 무엇이든지 다 안다. 그러니까 네가 고약하게 군다는 것을 알게 되면 돌아와서 네 엄마한테 모두 일러바칠 거다.” 그렇게 합의가 되었다.
그들은 집안으로 들어간다. 현관을 지나니 큰 안마당이 나오는데, 삼면에는 편물기계들이 있는 큰 방들이 있다.
문을 열어 준 하녀는 아이가 모르는 사람과 같이 오는 것을 보고 놀라서 주인 여자에게 알린다. 주인 여자는 대단히 온화한 모습을 한 키가 큰 여자인데, 달려와서 “아니 아이가 혹 기분이 언짢았습니까?” 하고 묻는다.
“아닙니다, 부인. 부인의 양탄자를 보라고 나를 데려온 것입니다. 나는 외지 사람입니다.”
“물건을 사시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나는 돈이 없어요. 그러나 아름다운 물건들을 좋아하고 부자인 친구들이 있습니다.”
여인은 쓸 데 없는 말을 늘어놓지 않고 이렇게 자기가 가난하다고 말하는 이 사람을 신기한 듯이 쳐다보며 말한다.
“저는 선생님이 양반이신 줄 알았습니다. 선생님의 태도와 용모는 큰 양반의 태도와 용모입니다.”
“천만에요. 나는 그저 갈릴래아의 선생인 나자렛 사람 예수입니다.”
“우리는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와서 보십시오.”
여인은 예수를 데리고 가서 선생의 지도를 받으며 처녀들이 힘을 기울여 만들고 있는 양탄자들을 보여준다. 양탄자들은 그림과 빛깔이 정말 매우 값지다. 크고 보드라운 것은 꽃이 만발한 화단이나 보석을 집어 넣은 만화경(萬華鏡)과 같다. 다른 것들에는 꽃들에 섞여서 말의 몸에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를 가진 괴물들이나 인어나 용 같은 우의적(寓意的)인 모습들이나 우리네의 것과 비슷한 문장(紋章)에 있는 흰깃 독수리의 그림이 있다.
예수께서는 감탄하신다. “부인은 매우 솜씨가 좋군요. 이 모든 것을 본 것이 기쁩니다. 그리고 부인이 착한 것이 기쁩니다.”
“어떻게 그것을 아십니까?”
“그것은 부인의 얼굴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부인의 아들이 디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 거기에 대한 상을 부인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부인은 자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진리에 아주 가까이 와 있습니다.”
“어떤 진리 말씀입니까?”
“지극히 높으신 주님의 진리 말입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자기 집에서나 직공들에게 자선을 베풀고 불행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행하는 사람은 그의 마음 속에 진정한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소녀가 디나지요?”
“그렇습니다. 이 애 어머니가 죽어갑니다. 후에는 제가 이 애를 맡을 것입니다. 그러나 양탄자 일을 시키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이 애는 너무 어리고 너무 약합니다. 디나야, 이 양반 곁으로 오너라.”
불행한 아이들의 얼굴인 침울한 얼굴을 한 계집아이가 머뭇거리며 가까이 온다. 예수께서는 그 아이를 쓰다듬으시며 말씀하신다. “나를 엄마한테 데려다 주겠니? 엄마가 병이 나았으면 좋겠지? 그러면 나를 엄마에게 데려다 다오. 부인 안녕히 계십시오. 알렉산드르 잘 있어라. 그리고 착한 어린이가 되어라.”
예수께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나오시며 “너 혼자냐?” 하고 물으신다.
“남동생 셋이 있어요. 막내는 아빠를 보지 못했어요.”
“울지 말아라. 너는 하느님께서 네 엄마의 병을 낫게 하실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니? 너는 당신이 만드신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또 특히 착한 어린이들을 사랑하시는 오직 한 분 뿐이신 하느님이 계시다는 걸 알지? 그리고 하느님은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 있다는 것도?”
“주님, 저는 그걸 알아요. 전에 내 남동생 똘메가 학교에 다녔는데, 학교에서는 유다인 아이들과 같이 있어요. 똘메를 통해서 우린 아주 많은 걸 알아요. 나는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 하느님의 이름이 야훼라는 것, 펠리시데 사람들이 하느님께 나쁜 짓을 했기 때문에 하느님이 우리를 벌하셨다는 것을 알아요. 히브리 아이들은 늘 그걸 가지고 우리를 나무라요. 그 때에는 나도 없었구, 엄마 아빠도 없었어요. 그런데 왜 …” 소녀는 눈물에 말이 막힌다.
“울지 말아라. 하느님께서는 너도 사랑하신다. 그래서 너와 네 엄마를 위해 나를 이리로 데려오셨다. 너는 하늘 나라를 세우러 오기로 된 메시아를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다린다는 것을 아니? 세상을 구속하고 구원할 예수의 나라를 말이다?”
“주님, 나도 알아요. 그리구 이스라엘 아이들은 ‘그 땐 너희는 불행할 거다!’ 하고 협박해요.”
“그런데 너는 메시아가 어떻게 할 건지 아니?”
“메시아는 이스라엘을 위대한 민족을 만들고 우리는 아주 학대할 거야요.”
“아니다, 메시아는 세상을 구하고 죄를 없애고 죄짓지 않도록 가르칠 것이다. 메시아는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몹시 슬퍼하는 사람들을 사랑할 거다. 메시아는 부자와 건강한 사람과 행복한 사람들에게 그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가르칠 거다. 메시아는 하늘에서 영원하고 지극히 행복한 생명을 얻기 위해 착하게 살라고 권고할 거다. 메시아는 이렇게 하고, 아무도 학대하지 않을 거다.”
”그런데 그 분이 메시아인 줄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메시아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자기를 믿는 병자들을 고쳐주고, 죄인들을 구해서 사랑을 가르쳐 줄 것이니까.”
“아이고! 엄마가 죽기 전에 메시아가 여기 왔으면! 난 단단히 믿겠어요! 메시아에게 많이 빌겠어요! 나는 메시아를 만날 때까지 찾아나서겠어요, 그리구 이렇게 말하겠어요. ‘나는 아빠가 없는 불쌍한 아인데, 엄마가 죽어가요. 나는 주님께 바래요.’ 하고. 그러면 내가 펠리시데 아이지만 메시아가 내 청을 받아 주리라고 확실히 믿어요.”
소박하고 강한 믿음이 온통 소녀의 목소리에서 진동한다. 예수께서는 당신 곁에서 걸어가는 가엾은 소녀를 내려다보시며 미소를 지으신다. 소녀는 이제는 가까워진 집 쪽을 바라다보고 있기 때문에 환한 이 미소를 보지 못한다.
그들은 막다른 골목 안에 있는 아주 초라한 오두막집에 이른다. “주님, 여깁니다. 들어가세요 ….” 작은 방 하나에 짚을 넣은 매트가 하나, 그리고 그 위에는 기진맥진한 육체가 누워 있다. 열 살에서 세 살까지의 어린 아이 셋이 짚매트 곁에 앉아 있다. 어디를 보나 비참과 굶주림의 광경이다.
“부인에게 평화. 불안해 하지 말고, 일어나지도 마시오. 나는 당신 딸을 만나서 당신이 병들었다는 것을 알고 왔소. 병이 나았으면 좋겠소?”
여인은 실낱 같은 목소리로 겨우 대답한다. “아이고! 주님! … 그렇지만 저는 이제 끝장입니다! …” 그러면서 운다.
“당신의 딸은 메시아가 당신을 낫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소. 그럼 당신은?”
“아이고! 저도 믿겠습니다. 그러나 메시아가 어디 계십니까?”
“당신에게 말하고 있는 내가 메시아요.” 그러면서 병자의 곁에서 말씀을 속삭이시며 짚으로 된 매트 위로 몸을 구부리고 계시던 예수께서 몸을 다시 일으키시며 외치신다. “내가 명하오. 병이 나으시오.”
어린 아이들은 예수의 위엄있는 태도에 거의 겁을 집어먹고, 어머니의 병상 둘레에 놀란 얼굴을 하고 있다. 디나는 두 손으로 그의 작은 가슴을 꼭 껴안는다. 희망과 지극한 행복의 희미한 빛이 그의 작은 얼굴에서 반짝인다. 디나는 숨을 헐떡이다시피 한다. 그만큼 감동이 심하다. 디나는 벌써 그의 마음이 속삭이고 있는 말을 하려고 입을 벌린다. 그리고 전에는 창백한 얼굴로 축 늘어져 있던 어머니가 지금은 마치 어떤 힘이 끌어당기고 깊이 스며들어가는 것처럼 일어나 앉고, 그 다음에는 구세주의 눈을 계속 똑바로 쳐다보면서 일어서는 것을 보고 디나는 “엄마!” 하고 기쁨의 함성을 지른다. 가슴을 부풀어오르게 하던 말을 한 것이다! … 그리고는 또 한 마디 “예수님!” 하고 부른다. 그러면서 어머니를 껴안고 무릎을 꿇게 하면서 말한다. “경배하세요! 경배하세요! 똘메의 선생님이 예언자들이 예언한 메시아라고 말한 사람이 바로 이 분이세요.”
“참 하느님을 흠숭하고 착하게 사시오. 그리고 나를 기억하시오. 안녕.” 그러면서 예수께서는 급히 나가신다. 그동안 두 여자는 행복해서 땅에 엎드린 채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