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신부님의 눈을 염려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몇 마디 단어를 다시 쓰기 위해 어제 쓴 것을 다시 읽습니다. 그것을 다시 읽으니 슬픕니다. … 그것은 제가 제 영혼의 상태를 묘사하는 동안 느끼던 것에는 까마득하게 미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그때에 주님이 제게 느끼게 하시던 것을 표현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또 설명을 잘못할까 봐 겁이 나고,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 그것도 고통이니까요, 아시겠어요? – 제 요한 성인을 불렀습니다. 요한 성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이것들을 잘 아시지요. 그것들을 겪으셨으니까요. 그러니 저를 도와주세요.” 하고. 그러니까 성인은 틀림없이 오셔서 그 변함없는 착한 어린이 같은 미소를 보여주시고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는 제 보잘 것 없는 말이 제가 느끼던 감정에는 멀리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 인간적인 것은 모두가 하찮은 것이고, 금처럼 값진 것은 초자연적인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것은 초자연적인 것을 묘사조차 할 수 없습니다.

가리옷의 회당 안이다. 바로 사울이 그리스도의 미래의 영광을 본 다음 죽어서 바닥에 누워 있던 그 곳이다. 빽빽이 들어찬 집단 가운데 예수와 유다가 우뚝 솟아 있고 – 두 사람이 제일 큰데, 두 사람이 다 얼굴이 환하다. 한 분은 당신의 사랑으로, 또 한 사람은 그의 고향도시가 선생님께 여전히 충실하고 성대하게 환영하는 것을 보고 기뻐서 – 우선 가리옷의 유력자들이 있고, 그리고는 예수에게서 좀 더 떨어져서, 그러나 자루 속에 들어있는 씨앗처럼 빽빽하게 주민들이 몰려 있고, 회당이 어떻게나 꽉 찼는지 문들을 열어놓았는데도 숨을 쉬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그리고 선생님을 환영하고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결국은 말할 수 없는 무질서와 소음을 만들어 놓아 말을 들을 수 없게 해놓는다.
예수께서는 조용히 모든 것을 견디신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화를 내고 손짓을 하면서 “조용해요!” 하고 외친다. 그러나 그 외침은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는 동안 해변에서 지르는 소리와 같이 소음 속으로 사라진다.
유다는 법석을 떨지 않고, 높은 의자에 올라가서 군중 가운데 무더기로 매달려 있는 등들의 한복판을 두드린다. 속이 빈 금속이 울리고, 쇠사슬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악기들처럼 소리를 낸다. 사람들은 조용해지고, 마침내 예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예수께서는 회당장에게 “그 선반에 있는 열 번째 두루마리를 주십시오.” 하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서 펴시어 회당장에게 내미시며 “마카베오 하권의 역사 제 4장을 읽으십시오.” 하고 말씀하신다.
그 말씀을 따라 회당장이 읽는다. 그러나 오니아스의 시련과 야손의 잘못과 메넬라오스의 배신과 도둑질이 청중의 생각 앞에 이렇게 쭉 전개되었다. 2장이 끝났다. 읽는 사람은 주의를 기울이고 들으신 예수를 쳐다본다.
예수께서는 그만하면 되었다는 손짓을 하시고 나서 대중에게로 몸을 돌리신다. “지극히 사랑하는 내 제자의 도시에서 나는 내가 가르칠 때에 흔히 하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며칠 동안 머무를 터인데, 이 사람이 그 말들을 여러분에게 하기를 원합니다. 나는 사도들과 대중 사이의 직접적이고 계속적인 접촉이 여기서부터 시작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 접촉은 상부 갈릴래아에서 결정되었고, 그 곳에서는 첫번째 희미한 빛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내 제자들의 겸손으로 인해서 그들은 그 후 그늘 속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어떻게 할지를 모를까 봐 염려했고, 또 내 자리를 빼앗는 것이 될까 봐 걱정을 했던 까닭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해야 하고, 또 잘 해서 그들의 선생을 도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갈릴래아 – 페니카 경계와 유다의 땅을 오직 하나인 사랑으로 결합시키면서, 그리고 가장 남쪽으로 팔레스타인 국경에서 태양과 모래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여기서 참다운 사도의 전도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선생이 이제는 군중들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게 되었고, 또 태양이 아직 그들과 같이 있어서 그 튼튼한 날개로 그들을 인도하는 동안에 새끼 수리들이 둥지를 떠나 처음 나는 것을 해보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요 며칠 동안, 그러니까 나는 여러분의 친구가 되고 위안이 될 것이고, 내 제자들은 말이 되어 내가 그들에게 준 씨를 뿌리러 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일반을 위한 가르침은 주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특전이 있는 것을 하나 주겠습니다. 그것은 예언입니다. 장차 인류 역사의 가장 소름끼치는 사건이 해를 가리고, 그래서 어두움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이 그릇된 판단으로 이끌려 갈지도 모를 때를 위하여 이 예언을 기억해 두기를 부탁합니다. 나는 처음 순간부터 내게 친절을 베풀어 준 여러분이 잘못된 생각에 끌려 들어가기를 원치 않습니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가리옷은 그리스도의 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기를 원치 않습니다. 나는 공정합니다. 나는 내게 원한을 품었거나 나를 사랑하는 비판이 그 감정에 자극되어 여러분이 내게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비난하는 것을 허용할 수가 없습니다. 식구가 많은 집안에서 모든 자식에게서 똑같은 성덕을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구가 많은 도시에서 그것을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쁜 아들 하나 때문에 또는 좋지 않은 시민 한 사람 때문에 ‘온 집안이 또는 온 도시가 저주받아라.’ 하고 말하는 것은 사랑에 매우 어긋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 듣고 기억하고 항상 충실하시오. 그리고 내가 부당한 비난에 대하여 여러분을 변호하려고 할 정도로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여러분도 죄가 없는 사람들을 사랑할 줄을 아시오. 항상, 그들이 어떤 사람이든지. 죄인들과 그들이 어떤 친척 관계가 있든지. 이제는 들으시오. 이스라엘에 보물을 약탈하고 조국을 배반할 사람들이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들은 외국인들의 우정을 얻을 희망을 가지고 참다운 대사제에 대하여 나쁘게 말하면서 그가 이스라엘의 적과 동맹을 맺고 하느님의 아들들에게도 못되게 군다고 비난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죄를 법할 수도 있을 것인데, 그 죄에 대한 책임을 죄없는 사람에게 돌릴 것입니다. 그리고 역시 이스라엘에서 오니아스 때보다도 한층 더 비열한 사람이 자기가 대사제인 양 음모를 꾸미면서 이스라엘의 유력자들을 찾아가 금전으로 그들을 매수하고, 그보다 한층 더 비열하게 거짓말을 하여 그들을 타락시키는 때가 올 것입니다. 동시에 사실을 왜곡하여 잘못을 말하지 않고, 오히려 그의 파렴치한 목적을 추구하면서 하느님의 우정을 잃은 영혼들에 대해 더 쉽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풍습을 바꾸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공할 것입니다. 오! 물론 성공하고말고요! 왜냐하며 모리아산 위에 있는 주거 자체에는 불경건한 야손의 경기장 같은 경기장이 없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그 경기장들이 그 산의 주인들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들은 땅보다도 훨씬 더한 것, 즉 그들의 양심 자체를 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의 잘못의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어서,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사람은 사랑과 순결과 정의와 친절과 거룩하고 깊은 종교심이 있어야 할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봅니다. 그러나 벌써 사람을 떨게 하는 결과들이 있지만, 그들이 뿌린 씨에서 나온 열매들은 다만 두려움의 대상이 될 뿐 아니라, 하느님의 저주의 대상도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예언 자체를 눈 앞에 보고 있습니다. 나 분명히 여러분께 말합니다만, 오랜 시간에 걸친 간사한 연기 덕택으로 자리와 신뢰를 빼앗아간 그 사람이 최고의 사제, 참된 사제를 돈 때문에 원수들에게 넘겨줄 것입니다. 애정을 맹세하는 데에 속고 사랑의 행위로 사형집행인들에게 가리켜져서 일체의 정의가 무시된 채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나는 지금 나 자신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만, 그들은 그리스도를 죽일 권리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어떤 비난을 내놓을 것입니까?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운명이 마련될까요? 무서운 정의라는 즉각적인 운명이 마련될 것입니다. 개인적인 운명이 아니라 배반자의 공범자들에 대한 집단적인 운명일 것입니다. 가책으로 인하여 자기 자신에 대한 마지막 죄로 마귀와 같은 그의 일생을 끝마치게 될 그 사람의 운명보다도 더 길고 더 무서운 운명일 것입니다. 사실 이 마지막 죄는 일순간밖에 걸리지 않겠지만, 다른 벌은 길고 무서울 것입니다. 그 벌을 이 말에서 찾아내시오. ‘그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 안드로쿠스의 진홍색 옷을 벗겨 버린 다음 바로 그가 오니아스에게 불의를 저지른 그 곳에서 죽이라고 명하였다.’ 그렇습니다. 사제들의 특권계급은 살인을 행한 자들을 통해서보다도 그들의 자식들을 통해서 더 타격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공범인 일반대중의 운명은 ‘그 치의 목소리가 땅에서 나를 향하여 부르짖으니, 너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 하는 말에서 읽으시오. 그러니까 하늘의 선물을 보호할 줄을 모른 백성 전체에 대해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구속하러 온 것은 사실이지만 첫번째 구속으로 내 말을 들은 이 백성 중에서 살인자가 되어 구속을 받지 못할 사람들은 불행하겠기 때문입니다.
내 말을 끝났습니다. 내 말을 잘 기억해 두시오. 그리고 내가 범죄자라는 말을 듣거든 이렇게 말하시오. ‘아니오, 선생님이 그 말을 하셨소. 그것은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진 것이고, 선생님은 세상의 죄를 위해 죽음을 당하신 희생이시오.’ 하고.” …
회당에서는 사람들이 빠져나가는데, 모두가 예언과 예수께서 유다에 대하여 보이시는 존중에 대해 말하며 손짓을 한다. 가리옷 사람들은 메시아가 한 제자의 도시, 바로 가리옷의 사도의 도시를 택하여 사도의 성직을 시작하심으로 그들에게 베푸신 영광으로, 그리고 또 예언의 선물 때문에도 흥분해 있다. 그 예언이 아무리 마음아픈 것일지라도 그것을 들었다는 것, 그리고 그에 앞서 사랑의 말씀을 들었다는 것은 큰 영광이기 때문이다.
회당 안에는 예수와 사도들의 무리가 남아 있다. 아니 그보다도 그들은 회당과 회당장의 집 사이에 있는 작은 정원으로 나온다. 유다는 앉았다. 그리고 운다.
“왜 우나? 그 이유를 알 수 없구먼 ….” 하고 다른 유다가 그에게 말한다.
“하지만 이거 봐, 나도 이 사람처럼 해야 할 거야. 자네들 들었지? 이젠 우리가 말을 해야 한단 말이야 ….” 하고 베드로가 말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벌써 산에서 그렇게 했단 말이야. 우린 점점 더 잘 하게 될 거야. 자네와 요한은 이내 할 수가 있었단 말이야.” 하고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그들을 격려하려고 말한다.
“제일 나쁜 건 내 경우야. … 그렇지만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실 거야. 그렇지요, 선생님?” 하고 안드레아가 말한다.
가지고 나오신 두루마리를 훑어보시던 예수께서 얼굴을 돌리시며 “뭐라고 말했느냐?” 하고 말씀하신다.
“제가 말을 해야 할 때에는 하느님께서 저를 도와주실 거라구요. 저는 할 수 있는 대로 선생님의 말씀을 잘 되풀이하도록 힘쓰겠습니다. 그렇지만 제 형은 무서워하고 있고 유다는 울고 있습니다.”
“너 우느냐? 왜?” 하고 예수께서 물으신다.
“제가 정말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안드레아와 토마가 그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선생님에 대해서 험담을 했는데, 선생님은 저를 ‘지극히 사랑하는 제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그리고 여기서 가르치게 하시는 것으로 제게 상을 주십니다. … 얼마나 큰 사랑입니까!”
“아니,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단 말이냐?”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 선생님, 고맙습니다. 다시는 험담을 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암흑이고 선생님으 참으로 빛이시니까요.”
회당장이 돌아와서 일행을 그의 집으로 청한다. 그리고 걸어가면서 예수께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의 말씀을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제가 제대로 알아들었다면, 가리옷에서 선생님께서 마음에 드는 제자, 우리 시몬의 유다를 얻으신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서 비열한 자도 얻어 만나신다고 예언하시는 것이지요. 이 때문에 저는 매우 슬픕니다. 다행히도 유다가 그 비열한 자의 벌충을 하겠지요 ….”
“제가 거기에 대해 온갖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하고 다시 침착해진 유다가 말한다.
예수께서는 말씀을 안하신다. 그러나 대화자들을 바라다보시면서 팔을 버려 “그렇게 될 거요.” 하시는 것 같은 몸짓을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