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모두 헤브론 근처의 작은 숲 속에 빙 둘러 앉아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먹는다. 성모님이 그의 어머니를 보러 가시리라는 것을 확실히 아는 지금 유다는 더 나은 기분이 다시 되어서 그의 동료들과 여자들에게 보였던 그의 언짢았던 기분의 기억을 여러 가지 친절로 지워버리려고 애쓴다. 그는 물건을 사러 시내에 들어가야 하였는데, 이 도시가 작년보다는 많이 변한 것으로 생각하였다는 이야기를 한다. “예수님의 전도와 기적의 소식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은 것을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 이 근처에 도라의 소유지가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또 쿠자의 아내도 여기 이 산들 위에 땅과 성관(城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그 여자의 지참금의 일부분이라 그 여자의 개인 소유입니다. 조금은 쿠자의 아내가, 또 조금은 도라의 농부들이 분위기를 조성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스드렐론에서 온 농부가 몇 사람 여기 있을 터이니까요. 도라는 침묵을 지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 저는 그 사람들이 형벌을 당해도 잠자코 있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늙은 바리사이파 사람의 죽음으로 사람들은 어리둥절해졌습니다. 아시겠어요? 그리고 과월절 전에 이곳에 온 요안나의 훌륭한 건강두요. 아! 그리고 선생님께 도움이 된 것으로는 아글라에의 애인도 있었습니다. 아글라에는 우리가 여기로 지나간 뒤 얼마 안 되어서 도망쳤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리고 그 남자는 분풀이를 하느라고 죄없는 여러 사람에게 마귀같이 행동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은 결국 선생님을 압박 당하는 사람들의 원수를 갚아 주시는 분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선생님을 모시고 싶어합니다. 저는 그 중 나은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
“압박당하는 사람들의 원수를 갚아 주는 사람. 사실 그렇다, 그러나 초자연적으로 그렇다. 나를 이 세상의 정신을 따르는 왕과 재판관으로서 한 손에는 왕홀(王笏)을, 또 한 손에는 도끼를 들고 있는 사람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올바르게 보지 못하는 것이다.그러나 나는 분명히 여러 가지 억압에서 구해내러 왔다. 가장 중대한 죄의 억압, 병과 슬픔의 억압, 무지와 이기주의의 억압에서. 운명이 그들을 높은 지위에 올려놓았다고 해서 압제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오히려 그 지위를 이용해서 밑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깨달을 것이다.”
“라자로가 그렇게 하고 요안나도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수백 명 대 두 명입니다.” 하고 필립보가 딱하게 여기며 말한다.
“강은 발원지에서는 강어귀에서처럼 넓지 않다. 물 몇 방울, 가느다란 물줄기 그러나 나중에는 … 하구에서는 바다 같은 강들이 있다.”
“나일강, 오?!” 하고 알패오의 마리아가 말한다. “주님의 어머니는 세 분이 에집트에 가셨을 때 이야기를 했는데, 가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이지 바다 같았어요, 파랗고 푸른 바다. 강물이 제일 많이 불었을 때 그 강을 보면 꿈만 같았어요!’ 하고. 그리고 물에서 솟아나는 것 같은 나무들 이야기를 하고, 또 물이 빠질 때 물에서 나는 것 같은 저 모든 푸른 들 이야기도 해주었습니다 ….”
“자! 그런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마치 나일강이 발원지에서는 가느다란 물줄기에 지나지 않다가 나중에는 엄청나게 크게 되는 것과 같이, 가장 보잘 것 없는 약자들에 대해 사랑을 가지고, 사랑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숭고함의 가느다란 물줄기가 나중에는 많아질 것이다. 지금 당장은 요안나, 라자로, 마르타이지만, 나중에는 얼마나, 얼마나 많아질 것이냐!” 예수께서 형제들에게 자비를 베풀 사람들을 보시는 것같이, 당신의 심상(心象)에 잠기셔서 미소를 지으신다.
유다는 회당장이 그와 같이 오려고 하였으니 감히 개인적으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요한, 작년에 그 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쫓아냈는지 기억나지?”
“기억 나 … 아니, 그 말씀을 선생님께 드리세.”
예수께서 질문을 받으시고 헤브론 시내로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만일 주민들이 그들을 원하면 부를 것이고, 그러면 머무를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멎지 않고 지나갈 것이라고 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요한의 집도 볼 것이다. 지금은 누구의 집이 되었느냐?”
“누구의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쉬암마이는 떠나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하인들을 데리고 갔고 가구들도 치웠습니다. 주민들은 그의 부당한 행위에 대해 복수하기 위해 둘러진 담장을 헐어버렸고, 집은 누구나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적어도 정원은 그렇습니다. 그들은 세례자를 공경하기 위하여 정원에 모입니다. 쉬암마이는 암살당했다고 합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 여자문제 때문인 것 같습니다 ….”
“틀림없이 궁중의 어떤 음모겠지! …” 하고 나타나엘이 수염 속에서 중얼거린다.
그들은 일어나서 헤브론을 향하여, 세례자의 집을 향하여 간다. 그들이 도착할때 거기에는 빽빽이 모여 선 주민의 일단이 있다. 그들은 망설이고 호기심을 가지고 어색하게 나아온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미소로 그들에게 인사하신다. 그들은 대담해져서 서로 떨어진다. 그리고 작년에 무례하였던 회당장이 집단에서 나온다.
“당신께 평화가 있기를!” 하고 예수께서 즉시 인사하신다. “우리가 당신네 도시에 머무르는 것을 허락하십니까? 나는 마음에 드는 내 모든 제자들과 제자들 중 몇 사람의 어머니들과 같이 왔습니다.”
“선생님,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저희들에 대해서, 아니 제게 대해서 원한을 안 가지고 계십니까?”
“원한이요? 나는 원한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왜 내가 원한을 가져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해에 저는 선생님께 모욕을 드렸습니다 ….”
“당신은 그렇게 할 권리가 있다고 믿고 알려지지 않은 사람에게 모욕을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당신이 깨달았고, 그렇게 한 것을 뉘우쳤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나간 일입니다. 그리고 후회가 잘못을 없애는 것과 같이 현재도 과거를 없앱니다. 지금은 내가 당신에게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면 당신은 내게 대해서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까?”
“주님, 존경의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갈망의 … 감정을 …”
“갈망이요? 내게서 무엇을 원하십니까?”
“선생님을 제가 아는 것보다 더 낫게 알기를 원합니다.”
“어떻게요? 어떤 방법으로요?”
“선생님의 말씀과 선생님의 행동으로요. 여기서도 선생님의 인격과 가르치심과 능력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은 선생님께서 세례자의 구출과 무관하지 않으시리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께서는 세례자를 미워하지 않으셨고, 요한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 세례자 자신도 선생님 덕택에 거룩한 요르단강의 계곡을 다시 보게 되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저희들이 선생님에 대해서 말하려고 요한을 찾아갔었는데 요한은 저희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어떤 분을 냉대했는지 모릅니다. 나는 당신들을 저주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이 용서하고 온유하라고 가르치셨기 때문에 당신들을 용서합니다. 그러나 당신들이 주님과 또 주님의 종인 내게서 저주를 받고 싶지 않거든 메시아를 사랑하시오. 그리고 의심하지 마시오. 당신들은 이런 표로 메시아를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즉 평화의 정신, 완전한 사랑, 다른 어떤 것보다도 뛰어난 지혜, 천상의 가르침, 절대적인 온유, 모든 것에 미치는 능력, 전적인 겸손, 천사와 같은 순결, 당신들은 잘못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들이 자기가 메시아라고 말하는 사람 곁에서 평화를 호흡하고, 그 분의 사랑을, 그 분에게서 발산하는 사랑을 마시고, 당신들의 어두움에서 빛으로 건너가고, 죄인들이 구원을 받고 육체가 고쳐지는 것을 보게 되거든 그때에는 이렇게 말하시오. <이 분은 정말 하느님의 어린 양이시다!> 하고.’ 저희는 선생님의 행동이 우리 요한이 말하는 그런 행동이라는 것을 압니다. 저희들을 용서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세상이 선생님께 기대하는 것을 저희들에게 주십시오.”
“그 때문에 내가 여기 왔습니다. 나는 나를 받아들이는 어떤 곳에든지 다 주는 것을 요한의 도시에도 주려고 아주 멀리에서 왔습니다.”
“저희들도 병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은 무식합니다. 특히 사랑과 착함에 대해서 무식합니다. 요한은 하느님에 대한 그의 전적인 사랑으로 강철과 같은 손과 불 같은 말을 가지고 있고, 저희 모두를 마치 거인이 풀잎을 구부리듯이 휘어잡으려고 합니다. 사람은 성인이기보다는 오히려 죄인이니까 많은 사람이 낙담하고 맙니다. 성인이 되기는 어려운 일이지요! …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 구부리지 않으시고 일으키시며, 소작법(燒灼法)을 쓰지 않으시고 방향제를 발라 주시며, 으스러뜨리지 않으시고 어루만져 주신다고 말들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죄인들에 대해 온정이 넘치고 어떤 병에 대해서든지, 특히 마음의 병에 대해서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압니다. 저희들의 교사들은 이제는 이렇게 할 줄을 모릅니다.”
“병자들을 데려오시오. 그리고 전에는 거기서 살던 은총의 성전이 되었다가 이제는 버려지고 죄로 인하여 더럽혀진 저 정원에 모이시오.”
헤브론 사람들은 제비들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가고 회당장만이 남았다. 그는 예수와 제자들과 함께 정원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장미나무와 포도나무가 제멋대로 자라서 얽힌 정자 그늘로 들어간다. 헤브론 사람들은 이내 돌아왔는데 들것에 실린 중풍 환자와 어린 소경 계집애와 어린 벙어리와 사람들이 부축해서 같이 오는 무슨 병을 앓는지 알 수 없는 두 사람을 데리고 온다.
“그대에게 평화.” 하고 병자가 올 때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그런 다음 “당신들은 내가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시오?” 하고 부드럽게 물으신다. 그런 다음에는 그 불행한 사람들이 일제히 푸념을 하며 제각기 자기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앉아 계시던 예수께서 일어나시고 어린 벙어리에게로 가셔서 당신 침을 그의 입술에 바르시며 “열려라!” 하는 굉장한 말을 하신다. 또 침이 축축한 당신 손가락으로 소경의 감긴 눈꺼풀을 적시면서 같은 말을 하신다. 그런 다음 중풍 환자에게 손을 주시며 “일어나시오!” 하고 말씀하신다. 끝으로 두 병자에게 손을 얹으시며 말씀하신다. “주님의 이름으로 병이 물러가라!” 하고. 전에는 끙끙거리기만 하던 어린 벙어리가 분명히 “엄마!” 하고 말하고, 소녀는 빛을 향하여 떠진 눈꺼풀을 움직이고, 그에게는 모르는 존재였던 햇빛을 손가락으로 가려 눈을 보호하고 동시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아직 빛에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눈을 반쯤 감으면서 또 바라다본다. 소녀는 나뭇잎들과 땅과 사람들을 바라다보고, 특히 예수를 쳐다본다. 중풍환자는 자신있게 들것에서 내려오고, 인정 많은 들것 메는 사람들은 빈 들것을 쳐들어 은총이 내려졌다는 것을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 알게 한다. 그 동안 두 병자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구세주를 공경하기 위하여 무릎을 꿇는다.
군중은 열광적인 호산나를 외친다. 유다 곁에 있던 토마는 그를 아주 강렬하게 뚫어지게, 그리고 아주 분명한 표정으로 들여다본다. 그래서 유다는 “내가 바보였네, 용서하게.” 하고 대답하게 되었다.
환호 소리가 끝나자 예수께서는 말씀을 시작하신다.
“주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내가 모세를 시켜 말한 대로 도피성을 지정하여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실수하여 살인한 사람이 피신할 성들을 지정하여라. 그 성읍들을 살인자가 피살자의 앙갚음을 할 근친에게서 벗어나 피할 곳으로 삼아라.’ 그런데 헤브론은 그런 도시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성읍의 장로들은 무죄한 사람을 그를 죽이려고 찾는 사람에게 내주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를 받아들여 그 성읍에서 살게 허락해야 한다. 그 살인자는 심판이 있기까지, 그리고 현직 대사제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자기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이 법에서는 이웃에 대한 자비로운 사랑이 지켜지고 마련되어 있습니다. 피고의 말을 들어보지 않고 그를 단죄하는 것과 분노의 폭발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허락되지 않으므로 하느님께서 이 법을 정하신 것입니다.
도덕적인 차원의 죄악과 비난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알지 못하면서 비난하고 피고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판결을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흔히 있는 잘못이나 죄라고 일컬어지는 것에 대한 비난과 단죄에 새로운 일련의 비난과 단죄가 덧붙여집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오는 사람들에 대하여 사람들이 행하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여러 세기 동안 이런 일이 예언자들에 대하여 일어났고, 지금은 그리스도의 선구자와 그리스도에 대하여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일을 보고 있습니다. 세례자는 속임수로 세겜 지역 밖으로 유인되어 나가서 헤로데의 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례자가 거짓말과 타협에 절대로 동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목숨을 끊고 머리를 자를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성실을 꺾지 못할 것이고 그가 신성하거나 초자연적이거나 도덕적인 모든 형태로 충실히 섬겨온 진리에서 그의 영혼을 떼어놓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곱절, 아니 열곱절이나 더 맹렬히 박해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헤로데에게만 ‘이것은 당신에게 허용되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죄를 발견하는 곳에 들어가거나 죄가 있다는 것을 아는 곳에 들어가면 어디에서나, 어떤 부류도 빼놓지 않고, ‘이것은 당신에게 허용되지 않소.’ 하는 이 말을 벼락 같은 소리로 공언하고, 또 그것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 것입니까? 이제는 이스라엘에 하느님의 종이 없어진 것입니까? 아니,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상’입니다.
귀양간 사람들에게 보낸 예레미야의 편지에 다른 많은 말이 있는 가운데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여러분의 주의를 끕니다. 그것은 성경에 있는 말씀은 어는 것이든지 성령께서 그 당시의 사건에 대하여 쓰게 하신 그 순간에 벌써 미래에 있을 어떤 사실과도 관계가 있는 가르침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 당신들이 바빌론에 들어가면 금, 은, 돌, 나무로 만든 신들을 볼 것입니다. … 외국인들이 하는 방식을 본받지 말고, 그것들을 무서워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마시오. … 그리고 마음 속으로 이렇게 말하시오. <주님, 당신만을 흠숭해야 합니다.> 하고.’ 그리고 편지에는 장색이 만든 혀를 가지고 있는 그 우상들에 대한 특별한 지시가 있는데, 그 우상들은 창녀들을 꾸미기 위하여 우상들의 금을 벗겨 가면서 나중에 매음의 땀으로 더럽혀진 금을 빼앗아 우상을 꾸밀 생각을 하는 거짓 사제들을 나무라는 데 그 혀를 쓰지 않는 그런 우상입니다. 녹이 슬고 좀이 쏠 수 있으며, 사람이 얼굴을 씻어 주고 옷을 입혀주어야만 때를 벗고 옷을 잘 입으며, 비록 왕홀과 도끼를 들고 있지만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그 우상들을 말입니다.
그리고 예언자는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그리고 또 이렇게 계속합니다. ‘그 신들은 깨어진 그릇처럼 쓸 데 없습니다. 그것들의 눈에는 신전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발이 일으키는 먼지가 가득 차 있고, 사람들은 그것들을 잘 가두어 둡니다. 마치 무덤에 가두는 것처럼 또는 왕을 모욕한 사람처럼 말입니다. 그것은 아무라도 그것들으니 값진 옷을 빼앗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신전에 마치 장작 모양으로 놓여 있기 때문에 등잔의 빛을 보지 못하고, 그래서 등잔들을 그것들을 그을려 검게 하는 데나 소용됩니다. 그러는 동안 올빼미와 제비와 다른 새들이 그것들의 머리 위로 날아다니면서 똥으로 더럽히고, 고양이들은 그 옷 속에 잠자리를 만들고 옷을 찢습니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들은 죽은 물건들이니까요. 금도 그것들에게는 소용이 없고 과시하기 위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닦지 않으면 반짝이지 않으며, 그것들을 만들 때에도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불에 집어넣어도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엄청난 돈을 주고 샀습니다. 그것들은 창피하게도 힘이 없기 때문에 사람이 마음대로 데리고 다닐 수 있습니다. … 그러면 왜 그것들을 신이라고 부릅니까? 그것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그것을 하는 사람들도 이해하지 못하고 보는 사람들도 믿지 않는 헛된 의식의 과장된 태도로 그것들을 숭배하니까 말입니다. 그것들에게 해로운 일을 하건 좋은 일을 하건 그것들은 거기에 무관심하고, 왕을 택하거나 물러나게 할 능력이 없고, 재물을 주거나 해를 끼칠 수도 없으며, 사람을 죽음에서 구해내지도 못하고 그를 지배하는 사람에게서 약한 사람을 구해내지도 못합니다. 그것들은 과부와 고아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못합니다. 그것들은 산에 있는 돌과 같습니다.’ … 그 편지는 대강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자, 보시오. 우리도 주님의 종들 가운데에 이제는 성인들을 가지지 못하고 우상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악이 선과 맞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거룩하지 않고, 또 거짓 착한 외양 속에 그들의 소굴을 만드는 사람들의 지능과 마음을 지저분한 것으로 더럽히는 악이 말입니다.
그들은 이제 하느님의 말씀을 말할 줄을 모릅니다. 그것은 당연합니다. 그들은 사람이 만든 혀를 가지고 있어서 사탄의 말을 하지 않으면 사람의 말을 합니다. 그리고 죄없는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알맞지 않은 꾸지람밖에 할 줄 모르면서 유력자들의 타락을 보고는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모두가 타락했기 때문에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그들이 서로 비난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위해 탐욕스럽지 않고 맘몬을 위해 탐욕스러워서, 일체의 한도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나치는 열광에 사로잡혀 음란과 범죄의 황금을 받고, 그것을 교환하고 훔치면서 일합니다. 먼지가 그들 위에 쌓여 부글부글 괴고 있으며, 그들이 잘 씻은 얼굴을 내보인다 해도 하느님의 눈은 그들의 더럽혀진 마음을 보십니다. 증오의 녹과 죄의 벌레가 그들을 쏠아먹는데, 그들은 자기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거기에 대항하지를 못합니다. 그들은 저주를 왕홀과 도끼 모양으로 내두르지만, 그들이 저주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무덤에 들어 있는 시체들이나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들과 같이 그들의 생각과 증오 속에 갇혀 있으면서, 어떤 손이 그들을 거기서 끌어낼까 봐 겁이 나서 창살을 움켜 쥐고 거기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이 죽은 자들이 그곳에서는 그래도 어떤 물건, 즉 미이라인데, 사람 같지 않고 나무처럼 말라빠진 시체들이지만 그래도 미이라는 미이라인데, 밖에 나오면 세상이 본체만체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물건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생명을 찾고, 어머니의 젖가슴이 필요한 어린 아이와 같이 생명이 필요하며, 그래서 죽음의 역한 냄새를 찾자 않고 생명을 주는 사람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삽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등잔, 즉 명예의 연기가 그들을 그을려 검게 하지만, 빛은 그들 안에 내려오지 않습니다. 모든 격정이 새와 고양이들처럼 그들 안에 도사리고 있고, 사명에 대한 열정은 그들에게 하느님의 불로 타겠다는 신비적인 고민을 주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랑에 반항합니다. 사랑이 그들을 찬란한 금으로 꾸미지 않는 것과 같이 사랑의 불이 그들을 타오르게 하지도 않습니다. 두 가지 표현과 근원을 가진 사랑이 말입니다. 그 표현에 있어서는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고, 그 근원에 있어서는 하느님께 있는 사랑과 사람에게 있는 사랑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서는 떠나시고, 그래서 그 첫째 샘이 마르고, 또 사람은 악의가 있는 사람을 떠나고, 그래서 그 둘째 샘이 마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에게서는 애덕이 모든 것을 빼앗아갑니다. 그 사람들은 저주받은 돈에 매수되고, 이익과 권력이 요구하는 곳으로 끌려갑니다.
안 됩니다. 이것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양심들을 사는 돈은 없습니다. 특히 사제들과 선생들의 양심을 사는 돈은 없습니다. 세상의 권력이 하느님께서 명하시는 행동과 반대되는 행동으로 이끌어가려고 할 때에 그 권력에 동의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정신적인 불능입니다. 그런데 ‘고자는 주님의 모임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면 육체적으로 불능인 사람이 하느님의 백성의 일원이 될 수가 없는데, 정신적으로 불능인 사람이 하느님의 사제가 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나 진정으로 여러분에게 말하지만 지금 많은 사제와 선생이 영적인 남자다움을 잃었기 때문에 비난받아 마땅한 거세(去勢)에 휩쓸려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너무나 많은 사제와 선생이!
곰곰히 생각하고, 관찰하고, 비교하시오. 여러분은 우리가 많은 우상을 가지고 있고 하느님이신 선의 사제는 별로 가지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피성이 이제는 도피성이 아닐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이제 아무것도 존중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거룩하지 않은 사람들이 거룩한 사람들을 미워하기 때문에 성인들이 죽어갑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을 ‘오시오!’ 하고 청합니다. 나는 여러분을 요한의 이름으로 부릅니다. 요한은 거룩했기 때문에 고통을 당했고, 내 앞장을 서 가면서 어린 양이 갈 길에서 더러운 것들을 치우려고 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그를 해쳤습니다. 와서 하느님을 섬기시오. 때가 가까웠습니다. 구속을 준비없이 맞지 마시오. 씨를 뿌린 땅에서 비가 오게 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비가 와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헤브론의 여러분이 앞장을 서야 합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즈가리야와 엘리사벳과 같이 살았는데, 그분들은 하느님에게서 요한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성인들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요한이 그의 참다운 어린 아이의 순진함으로 은총의 향기를 풍겼고, 그의 광야에서는 타락을 막는 경탄할 만한 그의 은총의 향을 여러분에게 보냈습니다. 여러분의 요한을 실망시키지 마시오. 요한은 이웃 사랑을 말하자면 하느님다운 단계에까지 이끌어가서 광야의 가장 하찮은 주민을 동향인인 여러분을 사랑하듯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틀림없이 여러분에게 구원을 얻어 줄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은 주님의 목소리를 따르는 것이고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이 사제의 도시에서 떼지어 하느님을 섬기러 오시오. 나는 지나가면서 여러분을 부릅니다. 여러분은 자비의 말씀을 한 마디만 듣고도 그들이 가던 길을 버리고 선행의 길로 오는 창녀들보다 못한 사람이 되지 마시오.
내가 이곳에 도착할 때에 ‘아니, 선생님께서는 원한을 품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원한이요? 원! 천만에요! 내가 여러분에 대해 품고 있는 것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내 백성 가운데 있는 것을 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모든 종류의 예속에서 벗어나게 하여 관능과 죄의 광야인 홍해 저편에 있는 하느님의 나라라는 참된 약속의 땅을 향한, 즉 큰 기쁨이 많고 평화가 가득 찬 영원한 땅을 향한 새로운 집단이동으로 내가 하느님께로 인도해 가는 백성 말입니다. … 오시오! 사랑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사랑에 받아 들여지기 위하여는 착한 뜻만 있으면 되는 것이니까 그 사랑을 따르기를 원하는 사람을 따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놀랄 만큼 조용한 가운데 말씀을 끝마치셨다. 많은 사람이 그들이 들은 말을 숙고하고, 검토하고, 음미하고, 비교하는 것 같다.
이런 반응이 일어나는 동안 예수께서는 피로하시고 땀을 흘리시며 앉으셔서 요한과 유다와 말씀을 하신다. 그런데 정원 밖에서 큰 소리가 들려온다. 그 큰 소리는 분명치 않다가 나중에는 분명해진다. “저 분이 메시아십니까? 저 분이 메시아세요?” 그리고 그렇다고 대답하니까 불구자 한 사람을 앞으로 나아오게 하는데, 어떻게나 기형으로 생겼는지 몸이 S자와 같다.
“아이고! 마살라로구먼!”
“아니 저 사람은 너무나 보기 흉하게 생겼는데! 뭘 바라는 건가?”
“저 여자가 어머니야! 불쌍도 하지!”
“선생님, 남편은 그의 아들인 저 조생아 때문에 저 여자를 내쫓았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구걸을 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지금은 늙어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
조생아는 –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 이제 예수 앞에 와 있다. 그 사람은 어떻게나 몸이 굽었고 기형인지 예수께서는 그의 얼굴을 보실 수도 없을 지경이다. 그는 인간 – 침팬지 또는 인간 – 낙타의 희화(戱華) 같다. 나이먹고 불쌍한 어머니는 말도 못하고 그저 신음만 한다. “주님, 주님 … 믿습니다 ….”
예수께서는 겨우 당신 허리에까지 오는 그 사람의 보기 흉하게 된 어깨에 두 손을 얹으시고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천둥 같은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일어나서 주님의 길로 걸으시오.” 그러자 그 사람은 경련을 느끼더니 지극히 완전한 사람처럼 일어나 껑충껑충 뛴다. 변화가 어떻게나 급격했던지 그 사람은 지금까지 그 비정상적인 자세에 고정시켜 놓았던 용수철을 제거한 것 같다. 이제는 그 사람이 예수의 어깨에까지 닿는다. 그 사람은 예수를 쳐다보더니 어머니와 함께 무릎을 꿇고 그의 구조자의 발에 입맞춤한다.
그런 다음 군중 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이루 말할 수 없다. … 그래서 예수께서는 본의 아니게 헤브론에서 묵으실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예수를 떠나지 못하시게 하려고 나가는 길을 빨리 막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예수께서 지난 해 이래로 몹시 변한 늙은 회당장의 집으로 들어가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