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당신과 같이 있던 사람들, 즉 열성당원 시몬과 마륵지암과 함께 베다니아를 떠나셨다. 그러나 일행에 아나스타시카가 합류하였다. 아나스타시카는 베일을 푹 내려쓰고 마륵지암 옆에서 걸어가는데, 예수께서는 시몬과 함께 약간 뒤에 처져 계신다. 두 집단은 각기 따로따로, 가장 관심 있는 일에 대하여 말을 하며 걸어간다.
아나스타시카는 이미 시작된 회화를 계속하면서 마륵지암에게 말한다. “그 분을 빨리 만나고 싶어.” 아마 벳수르의 엘리사에 대하여 말하는 모양이다. “나는 결혼했을 때나 문둥병자라는 선고를 받았을 때에도 이처럼 가슴이 설레지 않았던 것 같아. 그분에게 어떻게 인사를 하지?”
그러니까 마륵지암은 다정스러우면서도 진지한 미소를 띠고 말한다. “오! 그분의 진짜 이름을 부르세요! 어머니! 하고.”
“그렇지만 나는 그분을 알지 못하는 걸! 너무 무람없는 말이 아닐까? 따지고 보면 내가 그분에게 뭐냔 말이야?”
“작년의 저와 같은 분이지요 뭐. 그리고 아주머니는 저보다 훨씬 더 나은 편이에요. 저는 더럽고, 겁을 집어먹고, 무례한 보잘 것 없는 고아였거든요. 그렇지만 그분은 처음 순간부터 저를 항상 아들이라고 불렀고, 또 항상 제 진짜 어머니가 되셨어요. 작년에는 제가 그분을 보려고 기다리면서 두려움 곁들인 불안을 느꼈어요. 그렇지만 곧이어 그분을 보는 것만으로 두려움이 없어지게 되었어요. 제가 어린 눈으로 어떤 일을 본 다음부터 제 피 안에 남아 있었던 그 모든 심한 공포가 사라졌어요. 저는 우선 우리 집과 우리 가족을 모두 부수어 버린 성난 자연을 보았었고,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어떻게 사람이 재칼과 흡혈귀보다도 더 잔인한 야수인지를 볼 수 있었고, 보아야 했어요. 늘 떨고…늘 울고…여기에 되게 죄는 매듭을, 공포와 고통과 증오와 모든 것의 매듭을 느꼈어요.…저는 몇 달 동안에 세상에 있는 모든 악과 모든 고통과 잔인성을 겪었어요.…그래서 저는 아직도 착함이 있고, 아직도 사랑이 있고, 아직도 보호가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어요….”
“아니 뭐라고? 선생님이 너를 데려오셨을 때도?!… 그리고 몹시 착한 제자들 가운데 있을 때에도!?”
“저는 아직도 떨고 있었어요. 누님.…그리고 미워했어요. 오! 무서워하지 않도록 믿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어요.…그리고 사람이 어떻게 될 수 있는지를, 즉 야수의 모습을 띠고 나타나는 마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내 영혼에 알게 해서 제 영혼을 괴롭힌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게 되기까지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어요. 고통을 당하면서 그 결과를 오랫동안 겪지 않을 수는 없어요. 특히 어린아이 일 때는요.…우리 마음은 아직 연하고, 어머니의 입맞춤의 따뜻한 기운이 아직 남아 있고, 빵보다는 입맞춤을 더 갈망하기 때문에 그 흔적이 오래 남아 있어요. 그런데, 입맞춤 대신에 제가 매를 맞는 것을 보게 된 단말이에요….”
“불쌍도 해라!”
“예, 불쌍했지요. 정말 아주 불쌍했어요! 저는 하느님께 대한 희망도 사람에 대한 존경도 가지지 않게 되었어요.…저는 사람이 무서웠어요. 예수님 곁에서도, 베드로의 품에 안겨서도 저는 무서웠어요.…저는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이럴 수가 있는 건가? 이게 오래 가진 못할 거야. 이 사람들도 친절한데 진저리를 내고 말 거야….’하고. 그리고 마리아 어머니를 그리워했어요. 어머니는 언제나 어머니거든요. 그렇지요? 또 사실 제가 마리아 어머니를 보았을 때, 그분의 품에 안겼을 때, 저는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어요. 저는 모든 과거가 정말 끝났고, 제가 지옥에서 천국으로 건너왔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마지막 고통은 사람들이 저를 무시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었어요.…저는 언제나 나쁜 것을 의심했어요. 그래서 많이 울었어요. 오! 그런데! 어머니가 저를 얼마나 큰 사랑으로 받아들이셨는지 몰라요! 정말, 저는 그때부터는 우리 어머니를 한탄하지 않게 되고, 떨지 않게 되었어요.…마리아 어머니는 불행한 사람들의 친절이고 평화예요….”
“그런데 나도 친절과 평화가 필요해….”하고 여인이 한숨짓는다.
“그런데 이내 어머니를 뵙게 될 거예요. 저기 나무 우거진 데가 보이지요? 어머니가 저 안에, 게쎄마니의 집에서 숨어 사셔요.”  “엘리사도 거기 계실까? 그런데 그분들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하지? 나보고 뭐라고들 하실까?”
“엘리사 아주머니가 거기 계신지는 모르겠어요. 아팠었거든요.”  “아이고! 돌아가시지는 않을까? 그땐 누가 나를 딸로 받아들이지
“염려 마세요. 선생님이 ‘당신은 어머니와 집을 얻게 될 거요’하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면 그렇게 될 거예요. 좀 빨리 가요. 저는 마리아 어머니 곁에 있을 때는 걸음을 느리게 걸을 수가 없어요.” 그들은 걸음을 빨리한다. 그래서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지 못하게 되었다.
열성당원은 그들이 사람 많이 다니는 길에서 거의 뛰다시피 하는 것을 보고 예수께 그것을 지적한다. “오누이 같습니다. 얼마나 친한지 보십시오.”
“마륵지암은 모든 사람에게 익숙해질 줄을 안다. 그것은 어려운 덕행이지만, 그의 미래의 임무에는 대단히 필요한 덕행이다. 나는 그의 안에 이 다행스러운 경향을 자라게 하려고 마음을 본다. 그것이 그에게 많은 도움이 될 터이니까.”
“선생님은 저 애를 선생님께서 좋아하시는 대로 도야(陶冶)시키시지요?”
“그렇다. 그의 나이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있다.”  
“그렇지만 나이 많은 요한 펠릭스도 도야시키실 수 있었지요….”  
“그렇다. 그것은 내가 그를 무너뜨리고 완전히 새로 만들게 가만 내버려두었기 때문이다.”
“맞습니다. 저는 가장 큰 죄인들이 회개할 때에는 그저 원만한 유죄성이 있는 저 희들보다 의덕으로 앞지른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에게 있어서는 통회가 그들의 죄와 비례해서 무한히 크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통회는 그들을 고통과 겸손의 무게로 부수어 놓는다.  ‘내 죄가 항상 나와 대립하여 있나이다’ 하고 시편 작가가 말한다. 이것이 정신을 겸손하게 지켜 준다. 죄가 자비에 대한 바람과 신뢰와 합쳐지면 좋은 추억이 된다. 중간치 완전이나, 중간치도 못되는 완전들은 자주 정지하게 된다. 그것은 중대한 죄를 지었다는 가책과 참된 완전을 향하여 전진하려면 속죄를 해야 한다는 자극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완전들은 괴어 있는 물과 같이 정지한다. 그런 완전은 자기들이 맑다는 것을 만족한 듯이 자기들을 바라다본다. 그러나 가장 맑은 물도, 만일 바람에 불려온 먼지와 쓰레기들을 움직임으로 깨끗이 없애지 않으면, 결국은 더러워지고 썩고 만다.”
“그러면 저희가 저희 안에 계속 있게 내버려두는 불완전이 먼지와 쓰레기입니까?”
“그렇다, 시몬아. 너희들은 너무 침체해 있다. 완전을 향한 너희들의 움직임은 거의 깨달을 수 없다. 너희들은 세월이 빨리 흘러간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들에게 남아 있는 짧은 기간에 너희들이 완전하게 되도록 힘써야 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느냐? 빨리 지나가는 이 시간 동안에 결단력 있는 의지로 얻은 완전의 힘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선생님과 그의 가르침에 대하여 사탄과 그의 자식들이 맹위를 떨치게 할 폭풍우에 너희가 어떻게 저항할 수 있겠느냐? 너희가 스스로에게 ‘아니, 우리가 선생님과 3년 동안을 같이 있었는데, 어떻게 뒤흔들릴 수가 있었는가?’하고 물을 날이 올 것이다. 오! 그 대답은 너희들 안에, 너희들의 행동방식에 있다! 어떤 사람이 남아 있는 이 시간 동안에 완전하게 되려고 힘쓰면 힘쓸수록 더 충실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3년이라니요.…아니, 그러면.…아이고! 주님!….그러면 오는 봄에 저희가 선생님을 잃게 된다는 말씀입니까?”
“이 나무들에 작은 열매들이 맺혀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익은 다음에 내가 맛볼 것이다. 그러나 올해의 과일 다음에는 새로 거두어들인 것을 결코 맛보지 못할 것이다.…시몬아, 슬퍼하지 말아라. 슬픔은 비생산적이다. 무서운 순간에 충실할 수 있기 위하여 네 의덕을 강화하고, 의덕에 대한 관심을 가질 줄을 알아라.”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 온 힘을 다해서요. 다른 사람들도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그들에게도 이 말을 해도 됩니까?”
“해도 된다. 그러나 굳은 의지를 가진 사람은 견디어 낼 것이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요? 파멸하겠습니까?”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행동으로 몹시 시련을 당할 것이다. 그들은 자기가 강한 줄로 믿고 있다가 때려눕혀 지고, 지게 되는 사람 같을 것이다. 놀라고, 창피를 당하리라는 말이다. 그늘이다가 마침내 겸손하게 될 것이다! 겸손이 없으면, 전진하지 못한다는 것을 믿어라. 시몬아, 교만은 사탄에게 발판 노릇을 하는 돌이다. 그런데 왜 그 돌을 마음속에 간직한다는 것이냐? 저 소름끼치는 존재가 기분 좋은 주인이란 말이냐?”
“아닙니다, 선생님.”
“그런데도 너희들 마음속에는 사탄의 거점과 그의 가르침의 강좌를 보존하고 있다. 너희들은 교만으로 빚어졌다. 너희들은 모든 것에, 모든 동기에 대해서 교만을 가지고 있다. ‘내 제자’라는 것까지도 너희들에게는 자랑거리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너희들은 너희를 뽑은 사람에 대해서 너희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과 비교해서 고쳐지지 않았단 말이냐? 내가 너희들을 불렀기 때문에 너희들이 거룩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내게 부름을 받은 다음에 너희들이 거룩하게 되겠기 때문이다. 거룩함은 각자가 스스로 세우는 건축물과 같다. 지혜는 그 건축물의 방법과 설계를 알려줄 수는 있다. 그러나 물질적인 일은 너희들에게 달린 것이다.”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때에 저희들이 파멸하지 않을 것입니까? 시련 후에는 저희들이 겸손하겠기 때문에 더 거룩하게 되었습니까?
“그렇다.”그렇다는 말씀은 무뚝뚝하고 엄하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대로입니까?”
“그렇다.”
“선생님은 시련 전에 저희가 성덕을 가지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리고 모두의 경우에.”
“모두의 경우에라니요? 시련 중에 저희가 똑같지 않으리란 말씀입니까?”
“시련 전에도, 시련 중에도, 시련 후에도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모두에게 같은 말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같은 사랑을 주셨습니다, 선생님. 저희들은 선생님께 대해 크게 죄를 짓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한숨을 쉬신다.
꽤 긴 침묵이 흐른 다음 열성당원이 말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게쎄마니의 첫 번째 언덕에서 마륵지암을 만난 사도들과 제자들이 거의 뛰다시피 마중을 나온다. 시몬은 입을 다무는데, 예수께서는 모든 인사에 대답하신 다음 베드로 곁에서 올리브 밭과 집을 향하여 가신다. 베드로는 새벽부터 그들이 경계를 하고 있었고, 엘리사는 아직 요안나의 집에서 앓고 있고, 전날 저녁에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왔었고, 그리고…그리고…그리고…얽히고 섞인 소식을 한 무더기 전해 드리고 끝에 가서 이런 질문이 나온다. “그런데 라자로는요?”그 질문에 예수께서는 자세히 대답하신다.
대단히 호기심이 많은 베드로는 이렇게 묻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주님, 아무것도 없습니까? 아무…소식도…”
“있다. 적당한 때에 네가 그 소식을 듣게 될 것이다. 여자하고 마륵지암은 어디 있느냐? 벌써 집안에?”
“아이고? 아닙니다? 여인은 감히 더 나아가질 못했습니다. 비탈에 앉아서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륵지암은…마륵지암은…없어졌습니다. 아마 집으로 뛰어간 모양입니다.”
그러나 서둘렀는데도 그들이 집에 이르기 전에 성모님과 동서, 살로메, 폴피레아, 바르톨로메오와 필립보의 아내들이 예수께 경의를 표하려고 집에서 나왔다. 예수께서는 멀리 그들에게 인사하시고, 아나스타시카가 겸손되이 서 있는 곳으로 가셔서, 그의 손을 잡고 어머니와 여인들에게 인도하신다.
“어머니, 옜습니다. 이번 과월절의 꽃입니다. 올해에는 한 송이뿐입니다. 그러나 제가 어머니께 가져오는 꽃이니, 어머니께 기분 좋은 꽃이 되기 바랍니다.”
여자는 무릎을 끊었다.
성모님은 몸을 구부려 그 여인을 일으키시며 말씀하신다. “딸들은 어머니의 가슴에 있지 발 앞에 있지 않다. 딸아, 오너라. 우리 영들이 이미 서로 아는 것과 같이 우리 얼굴들도 알자. 이들이 여기 있는 자매들이다. 그리고 다른 자매들도 올 것이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가족들 사이에 사랑뿐이고 거룩함뿐인 다정스러운 가정이 되기 바란다.” 여자 제자들 사이에 다정스러운 입맞춤이 교환되고, 서로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여자들은 집안으로 들어가 수백 그루의 올리브나무의 푸른빛으로 둘러싸여 있는 옥상으로 올라간다. 두 집단이 갈라진다. 예수께서는 남자들과 같이 계시고, 여자들은 따로 떨어져 새로 온 여자를 둘러싸고 있다. 남편과 같이 시내에 갔던 수산나가 돌아온다. 요안나가 아이들을 데리고 온다. 천사 같은 얼굴을 가진 안나리아가 나타난다. 예수께로 뛰어 가는 제자들 가운데 쉬이었던 야이로가 딸을 데리고 오는데, 딸은 성모님 곁에 있는 여자들의 집단 속으로 간다. 성모님은 야이로의 딸을 쓰다듬어 주신다.
사람들을 맞아들이는데 평화와 사랑이 있다. 그리고 해가 내려온다. 그들의 집으로나 자기들을 재워 주는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떠나보내시기 전에 예수께서는 그들을 모두 기도를 하자고 모으시고, 그들에게 강복하신다. 그런 다음 모두를 떠나  보내신다. 예수께서는 게쎄마니의 집에서 끼여서 자거나, 그곳에서 멀리 떨어져 가기보다는 차라리 올리브나무 밑에서 밤을 지내는 편을 택하는 사람들과 남아계신다. 이렇게 해서 여자들로서는 성모님과 알패오의 마리아, 살로메, 아나스타시카, 폴피레아가 남아 있고, 남자들로서는 예수님과 베드로, 안드레아, 알패오의 야고보와 유다, 제베대오의 야고보와 요한, 열성당원 시몬, 마태오, 마륵지암이 남아 있다.
저녁식사는 빨리 끝났다. 그런 다음 예수께서는 어머니와 알패오의 마리아와 제자들을 조용한 올리브 밭으로 부르신다. 아마 다른 여자들도 기꺼이 갈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을 부르지 않으시고, 살로메와 폴피레아에게 이렇게 말씀하기까지 하신다. “새 자매와 거룩한 대화를 나누고, 우리를 기다리지 말고 잠자리에 들도록. 평화가 그대들과 함께 있기를.” 그러니까 세 여자는 그들의 운명을 감수한다. 모두가 말을 하고, 떼를 지어 바로 장차 임종의 고통의 바위가 될 바위 쪽으로 가는데, 베드로는 약간 시무룩하다. 그들은 비탈에 앉아, 낮 동안의 불분명한 소음이 들린 다음 천천히 가라앉는 예루살렘 쪽을 향하고 있다.
“나뭇가지에 불을 붙여라, 베드로야”하고 예수께서 명령하신다.
“왜요?”
“요한과 신디카가 써 보낸 편지를 너희들에게 읽어 주고자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세 여자는 오게 하지 않았다는 것을 불만인 너는 알아라.”
“그러나 오늘 저녁에는 제 처도 있었는데요!….”
“그러나 이런 여자 제자들 중에서 살로메만 빼놓는 것은 그리 적절하지가 않았다.…게다가 이렇게 하면, 네가 이제 들을 것은 조심성 있는 네 아내에게 이야기하면서 그와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베드로는 폴피레아에 대하여 예수께서 하신 찬사와 그에게 비밀을 이야기해도 된다는 허락이 아주 자랑스러워서 대번에 시무룩한 기분이 싹 가시고, 즐거운 횃불을 붙이기 시작한다. 횃불에서는 불꽃이 움직이지 않고 곧장 고요한 대기 속으로 올라간다.
예수께서는 허리띠에서 그 편지 두 장을 꺼내서, 펴서 주의를 기울이는 열 한 얼굴이 빙 둘러 있는 가운데에서 읽는다.
“나자렛의 예수님께 존경과 축복을. 나자렛의 마리아 어머님께 축복과 평화를, 거룩한 형제들에게 평화와 인사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마륵지암에게 평화와 애무를,
여러분에게 이 편지를 쓰려고 앉으니 제 마음에는 눈물과 미소가 갈마듭니다. 향수에 젖은 추억을, 이행한 의무에서 오는 바람과 평화, 이 모든 것이 저를 가득 채웁니다. 제게 있어서 가치가 있는 모든 과거, 즉 12개월 전에 시작된 과거가 제 앞에 있고, 죄지은 사람에 대하여 너무나 연민을 가져 주신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시편이 제 마음에서 우러나옵니다. 선생님께서는 찬미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선생님과 더불어 선생님을 세상에 주신 거룩하신 어머니도 축복받으시기 바라며, 제가 구현된 동정으로 생각하는 또 다른 어머니도 축복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선생님과 더불어 축복받은 베드로, 요한, 시몬, 야고보와 유다, 그리고 다른 야고보, 안드레아와 마태오, 그리고 끝으로 내 지극히 사랑하는 마륵지암을 축복하기 위하여 품에 안으면서, 제가 여러분을 안 순간부터 여러분을 떠난 순간까지 제게 해주신 모든 것을 위하여 여러분에게 축복합니다! 오! 제가 여러분을 떠난 것은 제 뜻으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저를 여러분에게서 억지로 떼어 놓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용서해 주시고, 저 자신으로서도 그렇게 할 능력을 제게 더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하느님과 함께 그렇게 할 수 가있습니다. 그러나 저 혼자의 힘으로 아직 그렇게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제 참된 생명이신 지극히 거룩하신 선생님에게서 저를 억지로 떼어놓음으로 제게 입힌 상처가 너무나 생생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선생님의 위안이 제 위에 내리는 계속적이고 마음을 진정시키는 비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상처가 너무나 생생합니다….”
예수께서는 여러 줄을 읽지 않고 훑어보기만 하시고는 다시 계속하신다. “‘제 생활은….” 그러나 선생님이 잘 보실 수 있도록 하려고 불붙은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서 높이 들고 선생님 곁에 있으면서 씌어 있는 것을 보려고 목을 길게 늘이고 있던 베드로가 말한다. “아닙니다. 그게 아닙니다! 선생님, 왜 읽지 않으십니까? 가운데 다른 말이 있습니다! 저는 멍청합니다만, 글을 도무지 읽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저는 이렇게 읽겠습니다. ‘선생님의 약속은 제가 바라던 것보다도 더한 일을 했습니다….’ 하고.”
“아니 너 참 성가신 존재로구나! 어린아이보다 더 고약해!”하고 예수께서 미소 지으시며 말씀하신다.
“물론입니다! 저는 거의 노인이 다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아이보다 꾀가 더 많습니다.”
“너는 조심성도 더 있어야 할 거다.”
“그건 원수들을 대할 때는 좋습니다. 그러나 여기는 친구들끼리 입니다. 여기에 요한이 선생님께 대해서 아름다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저를 무슨 상품처럼 다른 곳으로 보내실 때 올바르게 처신하기 위해서 그것을 알고 싶습니다. 자, 전부 읽으세요! 어머니, 마치 작은 물고기를 추리듯이 소식을 추려 가면서 저희에게 들려주시는 것은 옮지 않다고 선생님께 말씀하십시오. 밖으로! 밖으로! 말이고, 잔챙이고, 훌륭한 물고기고 간에, 모두요! 자네들도 나를 도와주게. 자네들은 장승들 같구먼. 자네들은 나를 화나게 하네! 그런데 저 웃는 것 좀 봐!”
흥분한 망아지처럼 이리저리 껑충껑충 뛰어 다니며, 머리 위에 불똥이 비오듯 떨어지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불타는 나뭇가지를 흔들어대는 베드로의 흥분한 모습을 보고 웃지 않기가 어렵다. 예수께서는 그를 진정시키기 위하여 양보하시고, 읽어 나가실 수밖에 없다.
“선생님의 약속은 제가 선생님의 약속에서 바라던 것을 지나쳤습니다. 오! 거룩하신 선생님! 저 비참한 겨울 아침 선생님께서 이 비참한 제자를 위로하러 오시겠다고 약속하실 때, 저는 선생님의 약속의 참다운 효력을 깨닫지 못했었습니다. 인간의 고통과 한계가 정신의 기능을 짓눌렀고, 그래서 선생님의 약속의 효력을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제 밤에 영적으로 찾아 주시는 선생님, 찬미 받으십시오. 제 밤들은 제가 예측했던 것과 같은 슬픔과 고통이 아니고, 선생님에 대한 기다림이나 선생님과의 기쁜 만남입니다. 병자들과 귀양살이하는 사람들과 고독한 사람들과 죄지은 사람들의 공포인 밤이, 선생님의 뜻을 행하고 선생님께 봉사하는 기쁨을 가진 저 펠릭스에게는 (신랑이 오는 것을 기다리는 슬기로운 처녀들의 기다림)이 되었습니다. 제 가엾은 영혼은 훨씬 그 이상의 것까지도 누립니다. 제 영혼은 그의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신부가 되는 지복(至福)을 누립니다. 사랑하는 이는 신방에 들어와서 매번 첫 번 만남의 기쁨과 힘을 주는 결합의 황홀감을 영혼에게 줍니다.
오! 제 선생님이시며 주님, 제게 주시는 이다지도 큰 선물에 대하여 주님을 찬미하는 한편, 제게 해 주신 다른 약속 두 가지도 기억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너무나 약한 인간인 제게 가장 중요한 약속은 선생님의 고통의 시간에 제가 살아 있게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제 약함을 아십니다! 선생님께 대한 사랑을 위하여 증오를 벗어버린 사람이 선생님을 죽이는 사람들에 대한 증오 때문에 까다롭고 다루기 어려운 증오의 제복을 다시 입어야 하는 일이 없게 해 주십시오. 둘째약속은 아직도 너무 약하고 완전을 아직 이룩하지 못한 선생님의 불쌍한 제자를 위한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제게 말씀하신 대로 제가 죽을 때에 제 곁에 계셔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어떻게 거리(距離)와 바다와 산과 강이 존재하지 않고, 선생님께서 선생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느낄 수 있는 현존(現存)의 위안을 주시는 것을 사람들의 응흉한 꾀가 어떻게 막지 못하는지를 제가 아는 지금, 저는 마지막 숨을 넘길 때 선생님을 모실 수 있으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주 예수님, 오십시오! 그리고 오셔서 저를 평화 속으로 들여보내주십시오.
그럼 제 영에 대한 말씀을 드렸으니, 이제는 제 일에 대한 소식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여러 민족과 여러 나라에서 온 생도를 많이 두었습니다. 이 아이들이나 저 아이들의 감정을 해치지 않기 위하여 날짜를 배분해서, 하루는 이교도들에게, 또 하루는 신자들에게 번갈아가며 할애합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선생이 없기 때문에 이득이 많습니다. 이익을 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줍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을 주님께로 끌어들입니다. 제 이전 이름을 다시 씁니다만, 그 이름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신중을 기해서입니다. 제가 세상에 속해 있는 시간에는 (펄릭스) 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속해 있는 시간에는 오직 요한, 즉 하느님의 은총일 뿐입니다. 저는 제 진짜 이름은 펠릭스였는데 요한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제자들 사이에서 저를 구별하기 위한 것뿐이라고 필립보에게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은 이름을 쉽게 바꾸거나 서로 별명으로 부르기도 잘하기 때문에 이 일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기서 거룩한 형제들에게 길을 닦아 주기 위하여 많은 일을 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기운이 더 있으면, 이곳 농촌들에서 폭넓게 활동해서 선생님의 이름을 알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초여름이나 서늘한 가을날에나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하여 제가 그렇게 할 수 있기만 하면 될 것입니다. 안티고니아의 밝은공기, 몹시 조용하고 몹시 아름다운 이 정원들, 꽃, 어린이들, 병아리들, 정원사들의 애정, 그리고 특히 이 크고 현명하고 딸과 같은 정성을 기울여 주는 신디카는 제게 많은 기쁨을 줍니다. 제 건강이 좀 나아진 것 같습니다. 비록 신디카의 생각은 제 음식과 제 휴식에 대하여, 그리고 감기 들지 않게 하려고 제게 끊임없이 열심으로 기울이는 보살핌으로나 나타나지만, 그의 생각은 이와는 다릅니다.…그러나 저는 기분이 더 좋습니다. 이것이 어쩌면 용맹하게 의무를 수행한 데서 오는 느낌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디카는 그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신디카의 생각이 옳은지 알고 싶습니다. 그것은 의무는 정신적인 것이고, 병은 육체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실제로 오시는 것인지, 또는 선생님께서 영적인 감각에만 나타나시지만 너무도 완전하게 나타나셔서 선생님의 현존의 물질적인 실제가 어디에서 끝나는지 제가 알 수 없게 될 정도인지도 알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복되신 선생님, 선생님의 요한이 무릎을 끊고 선생님의 강복을 청합니다.
어머님과 마리아와 거룩한 형제들께 평화와 축복을, 마륵지암에게는 주님의 포도밭에서 일하는 귀양살이하는 사람들의 양식의 거룩한 말씀들을 제게 보내는 것을 기억하도록 입맞춤을 보냅니다.
‘이것이 요한의 편지이다.…어떻게들 생각하느냐?”
느낌들이 서로 엇갈린다. 그러나 지배적인 느낌은 예수의 현존에 관한 느낌이다. 그들은 그것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에 대하여, 신디카의 협력 등에 대하여…예수께 여러 가지 질문을 퍼붓는다.
예수께서는 입을 다물라는 표를 하시고 신디카의 두루마리를 펴신다. 그리고 읽으신다. “‘신디카가 할 수 있는 모든 사랑을 가지고 주 예수님께 문안드립니다. 복되신 어머님께 존경과 찬미를. 주님 안에서의 형제들께 감사와 축복을. 마륵지암에게는 멀리 있는 누나의 포옹을 보냈니다.
선생님, 요한이 저희 생활을 말씀드렸습니다. 요한은 자기가 하는 것과 제가 여자로서 하는 일을 간략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계집애들이 꽉 채우는 제 작은 학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 일 자체를 하는 기회에 참 하느님에 대해서 말을 해서 그 계집아이들을 주님께로 데려오기 때문에 저는 영적으로 많은 이익을 얻습니다. 많은 인종이 섞여서 사는 지방인 이곳에는 종교들이 읽힌 실타래와 같습니다. 하도 얽혀서…그것들은 이제 실행할 수 없는 종교가 되었고, 아무 짝에도 소용없는 실 부스러기 같은 종교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가운데에 엄격하고, 융통성이 없는 유다교가 있는데, 그렇지 않아도 낡아빠진 다른 종교들의 실들을 그 무게로 또 끊어 놓으면서 아무것도 얻어내지를 못합니다.
생도들을 가지고 있는 요한은 조심성 있게 처신해야 합니다. 저는 계집아이들과 더 자유롭게 행동합니다. 여자인 것은 언제나 열등(劣等) 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종교를 가진 가정들이 볼 때에 계집아이들이 하나밖에 없는 학교에 섞이는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그 계집아이들이 유익한 자수 기술만 배우면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저희 여자들에 대해서 가지는 멸시하는 사상은 고마운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제 영향의 범위를 점점 더 넓힐 수 있게 되니까요. 자수제품은 무척 잘 팝니다. 그 평판이 널리 퍼져서 먼 곳에서도 사러 오는 여자들이 있습니다. 모든 여자들에게 저는 하느님에 대해 말할 수가 있습니다.…오! 수틀 위에서나 천위에서 꽃이나 짐승이나 별이 되는 실까지도,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얼마나 영혼들을 진리로 인도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모릅니다. 저는 여러 나라 말을 알기 때문에, 그리이스 사람들과는 그리이스 말을 쓰고, 로마인들과는 라틴어를 쓰고, 히브리인들과는 히브리말을 씁니다. 히브리말은 요한의 도움 덕택으로 점점 더 완전하게 되기까지 합니다.
또 한 가지 침투 방법은 마리아 어머님의 연고입니다. 저는 여기 있는 향유들을 가지고 새로 많은 연고를 만들고, 그것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 거기에 본래의 연고 조금을 섞었습니다. 궤양과 통증과 상처와 가슴결리는 것이 사라집니다. 사실은 연고를 발라 치료하면서 저는 두 거룩한 이름 예수-마리아를 끊임없이 되풀이합니다. 또 그리스도라는 말의 그리이스 명사를 따서 이 연고를 (미르라(몰약-役藥) 기름 고약)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저희를 왕이 되게 하시는 귀중한 기름이시여, 이 연고 안에는 선생님을 낳으신 하느님의 몰약의 유익한 정유(精油)가 들어 있지 않습니까? 저는 연고를 새로 만들 수 있기 위해 매우 자주 일어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거룩하신 어머님께 청합니다. 연고를 더 만들어서 장막절을 기해 보내 주셔서, 아주 작은 하느님의 종이 만든 다른 연고에 섞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이렇게 하는 것이 잘못하는 일이면, 주님,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면 다시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친애하는 요한은 제 칭찬을 많이 합니다. 그러면 저는 요한에 대해서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까요? 요한은 격심한 고통을 참고 견딥니다. 그러나 그는 놀라운 용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제가 요한의 비밀을 알지 못하면 그것을 놀랍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병자를 돌보고 돌아와서 그가 황홀경에 빠지고 얼굴이 빛나는 것을 보고, 또 그의 말을 듣고, 엎드려서 선생님께서 선생님의 봉사자 곁에 와 계시다는 것을 알아차린 그날 밤부터는 더 이상 놀랍게 생각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와 반대로 어쩌면 어떤 형제가 제가 선생님을 뵙지 못한 것을 섭섭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이상히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왜 그것을 섭섭하게 생각해야 하겠습니까? 선생님께서 주시는 것은 모두가 좋고, 모두가 넉넉합니다. 각자는 그가 받을 자격이 있고 그에게 필요한 것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이 눈에 보이게 선생님을 차지하는 것도 좋고, 제가 정신으로만 선생님을 차지하는 것도 좋습니다.
제가 행복합니까? 여자로서는 제가 선생님과 어머님을 모시고 있던 때가 그리웠습니다. 그러나 영혼으로서는 매우 행복합니다. 주님, 그것은 지금에야 비로소 주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순종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입국권을 사는 돈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을 도와드린다는 것은 보잘것없는 종이 극도로 흥분하는 시간에도 꿈꿀 수 없었던 은총인데, 주님께서는 제게 주님을 도와 드리도록 허락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은 떨어져 있지만, 마침내 영원히 주님을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봄에 그리이스의 황금 들판에서 종달새가 하는 것과 같이 요한(여기 말하는 요한은 요한사도를 말하는 것이다. 안티오키아로 가는 배에서 요한이 부른 노래를 말한다.)의 노래를 부릅니다. 제가 가르치는 계집아이들도 그 노래를 아름답다고 말하기 때문에 그것을 부릅니다. 저는 오래 전 그날에 들리던 노젓는 소리와 몹시 비슷한 베틀의 리듬에 맞추어서 계집아이들이 그 노래를 부르게 놔둡니다. 어머님, 어머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은총을 얻을 준비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그가 니콜라이라는 이름을 가진 안티오키아의 품위 있는 시민을 주님께 보내 드린다는 소식을 덧붙이라고 부탁합니다. 그 사람이 주님의 양떼를 위한 요한의 첫 번째 획득입니다. 저희들은 니콜라이가 그에 대해서 저희 마음속에 품고 있는 존경을 저 버러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 당신의 여종에게 강복을 주십시오. 어머님, 제게 축복해 주십시오. 거룩하신 여러분 모두 제게 축복해 주시고, 주님 곁에서 지혜가 점점 자라는 축복받은 어린이인 너도 내게 축복해 다오.’
신디카가 써 보낸 것은 이런 것이다. 그리고 신디카는 요한 몰래 잘막한 글을 덧붙였다. 거기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요한이 좋아지는 것은 그의 영뿐입니다. 그 나머지는 모든 정성을 들이는데도 불구하고 쇠약해집니다. 요한은 초여름에 기대를 많이 걸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그가 말하는 것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겨울이 그에게 남아있는 생명을 질식시킬 것으로 생각합니다.…그러나 요한은 평화 중에 있습니다. 일과 고통으로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오 주님, 주님의 현존으로 그에게 힘을 보존해 주십시오! 제게 갖가지의 고통을 겪게 하시고, 그 대신 주님의 제자에게는 이 선물을 주시기를 청합니다. 이 편지들을 프톨레마이를 통해 나자로에게 보냅니다. 그리고 라자로와 그의 누이동생들에게 그분들이 저희에게 베풀어 주신 친절을 기억하고 그 분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고 주님께서 말씀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모두가 새로 느낌들을 서로 주고받는다.
안드레아가 성모님께 무슨 말씀을 여쭈어 보려고 몸을 굽힌다. 그러다 성모님의 얼굴에서 눈물을 보고 놀란다. “어머님, 우십니까?” 하고 안드레아가 묻는다.
“왜 우십니까? 아니 왜요? 어머님!”하고 여러 사람이 말한다.
“나는 어머님이 왜 우시는지 알아요”하고 마륵지암이 말한다.
“그럼, 왜 우시느냐?”
“요한 아저씨가 주님의 죽음을 환기시켰기 때문이에요.”
“아! 참말입니까? 그런데 선생님이 그것을 예고하셨을 때에는 그 사람이 여기를 떠난 뒤였었는데, 어떻게 그걸 압니까?”
“그의 위안을 위해서 내게서 들었기 때문이다.”
“흠! 위안이라구요!…”
“그렇다, 그의 위안이다. 나라를 얻기 위해서 그가 오래 기다리지 않으리라는 약속 말이다. 그는 의지와 순종으로 너희 모두보다 앞섰기 때문에 그런 위안을 받을 자격이 있다. 집으로 돌아가서, 프톨레마이에게 줄 회답을 준비하자. 그리고 마륵지암, 너는 네 책들을 함께 보내라.”
“아!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마륵지암이 글을 쓴 건 그들을 위해서였군요!….”
“그렇다. 가자. 내일은 성전에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