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성벽 근처에 있는 어떤 집에서 제자들과 같이 나오신다. 여기도 역시 베제타 동네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성에서 나오기 위하여는 성문 근처에 있는 요셉의 집 앞을 또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성문을 헤로데의 문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다. 시가에는 달이 밝게 비추는 조용한 저녁 시간인지라 거의 사람이 다니지 않는다. 나는 그들이 라자로의 집 중 어떤 집에서 과월절의 어린 양을 먹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최후 만찬의 집은 아니다. 최후의 만찬의 집은 반대쪽에 있다. 하나는 예루살렘 북쪽에, 또 하나는 남쪽에 있다.
집 문지방에서 예수께서는 여인들을 지키라고 남겨두는 엔도르의 요한에게 친절하고 우아하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작별 인사를 하신다. 또 역시 문지방에 나온 마륵지암에게도 입맞춤을 하신다. 그리고는 헤로데 문이라고 하는 성문으로 해서 멀어져가신다.
“주님,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나와 같이 가자. 너희들이 바라던 드문 진주를 가지고 과월절의 최후를 장식하려고 너희를 데리고 간다. 이 때문에 너희들하고만 있고자 한 것이다. 내 사도들! 벗들아. 너희가 내게 대해서 큰 사랑을 가지고 있는 것이 고맙다. 만일 너희가 그 사랑이 나를 얼마나 위로하는지 볼 수 있다면, 그 때문에 놀라마지 않을 것이다. 생각해 보아라. 나는 끊임없는 장애와 실망 속을 뚫고 걸어 오고 있다. 너희 쪽에서 볼 때에는 실망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실망이 없다는 것을 단단히 믿어라. 나는 무지(無知)라는 선물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 이 때문만에라도 내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오라고 권한다. 이것 혹은 저것을 내가 허락하면 그것을 방해하지 말아라. 만일 내가 어떤 일을 끝내게 하려고 개입하지 않으면, 너희들이 그렇게 하려고 생각하지 말아라. 매사는 제 때가 있는 법이다. 무엇보다도 나를 신뢰하여라.”
그들은 성곽의 동북쪽 모퉁이에 있다. 그들은 그 모퉁이를 돌아서 작은 다리로 키드론 개울을 건널 수 있는 곳까지 모리아산을 끼고 간다.
“게쎄마니로 갑니까?” 하고 알패오의 야고보가 묻는다.
“아니다, 더 높이 올라간다. 올리브산으로.”
“아이고! 아름답겠네요!” 하고 요한이 말한다.
“어린 것두 기뻐했을 텐데.” 하고 베드로가 중얼거린다.
“오! 그 애도 다른 때 여러 번 여기 올 것이다! 오늘은 피로해 있었다. 그리고 그 애는 어린 아이이다. 나는 너희들에게 중요한 것을 주고자 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이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들을 게쎄마니 동산을 오른쪽에 남겨두고 올리브나무들 사이로 올라간다. 그리고 올리브나무들이 살랑거리는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산을 계속 올라간다.
예수께서 발길을 멈추시고 말씀하신다. “좀 쉬자. … 사랑하는, 지극히 사랑하는 내 제자들이며 미래의 내 계승자들아, 내게 가까이 오너라. 어느 날, 너희는 그것도 한 번 뿐만이 아니고,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선생님이 기도하시는 것처럼 기도하는 법을 저희에게도 가르쳐 주십시오. 요한이 그의 제자들에게 한 것과 같이 저희들에게도 제자들인 저희가 선생님과 같은 말로 기도할 수 있게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항상 이렇게 대답했었다. ‘기도가 인간적인 내용없는 말의 표현이 아니라 아버지와의 참된 대화가 되기 위한 최소한도의 충분한 준비가 너희들에게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그렇게 해주마.’ 하고. 우리는 그런 경지에 이르렀다.
너희는 하느님께 드려 마땅한 말을 알 수 있기 위하여 가려야 할 것을 넉넉히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오늘 저녁, 우리 사이에 있는 평화와 사랑 속에서, 하느님의 평화와 사랑, 하느님과의 평화와 사랑 속에서 그 말을 너희에게 가르치고자 한다. 과연 우리는 참다운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과월절의 계율과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에 관한 하느님의 계명을 지켰다. 너희들 중의 한 사람은 요사이 고통을 많이 겪었다. 부당한 행위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였고, 이 행위가 유발했던 그 분개를 억제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에 대해 한 노력 때문에 고통을 겪었다. 그렇다, 요나의 시몬아, 이리 오너라. 네 성실한 마음 때문에 갖게 된 전율이 내게 알려지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었고, 내가 너와 함께 나누지 않은 마음의 고통도 하나도 없었다. 네 동료들과 네가 …”
“그러나, 주님, 주님이 저보다 훨씬 더 모욕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제게는 더 … 더 큰 고통이었습니다. 아니, 더 가슴 아픈 고통이었습니다. … 그러면서도 … 더 … 더. 이러했습니다. 유다가 제 축제에 참여하는 것을 지긋지긋하게 여겼다는 사실로 인해서 저는 인간으로서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몹시 슬퍼하시고 감정이 상하신 것을 뵈니, 다른 모양으로 고통을 느꼈고, 그로 인해서 이중으로 괴로웠습니다. … 저는 제 자랑을 하고 싶지 않고, 또 선생님의 말씀을 써서 저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 그러나 너는 제 영혼으로 고통을 겪었고 … 이것이 더 고통스럽다고 말해야 하겠습니다. 만일 이것이 교만이라면, 그렇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시몬아, 그것은 교만이 아니다. 너는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었다. 그것은 갈릴래아의 어부 요나의 시몬이 정신의 스승 예수의 베드로로 변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 정신의 스승 덕택으로 그의 제자들도 정신적으로 활발하고 지혜롭게 되고 있다. 그래서 너를 정신의 길로 나아가게 하기 위하여, 너희들이 나아가게 하기 위하여, 오늘 저녁 너희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자 하는 것이다. 혼자서 한 피정 이후로 너희들은 정말 많이 변했다!”
“주님, 모두가 변했습니까?” 하고 바르톨로메오가 약간 의심쩍어하며 묻는다.
“네 말뜻을 알겠다. … 그러나 나는 너희 열 한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
“그런데 시몬의 유다는 어찌된 일입니까, 선생님? 저희는 이제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 그 사람이 대단히 변한 것처럼 보였었는데, 지금, 호수를 떠난 뒤로 …” 하고 안드레아가 딱하게 여기며 말한다.
“입닥쳐라, 아우야.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는 내가 가지고 있다! 그 사람은 벨제붓(사탄의 다른 이름)에게 좀 달라붙었다. 그 사람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려고 그놈을 엔도르의 굴로 찾아갔는데 … 대접을 받았다! 선생님의 그날 그 사람에게 그 말씀을 하셨어 … 가말라에서는 마귀들이 돼지들에게로 들어갔다. 엔도르에서는 마귀들이 저 불쌍한 요한에게서 나와서 그 사람에게로 들어간 거다. … 그래서 우리는 알게 됐단 말이야. … 알게 됐어. … 선생님, 제가 이 말을 하게 내버려두십시오! 제가 이 말을 여기 이 목 안에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말하지 않으면 여기 남아서 저를 해칩니다 ….”
“시몬아, 착한 마음씨를 가져라!”
“예, 선생님 … 그리고 선생님께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그 사람에게 무례한 짓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고 또 생각하는 것은 유다가 타락했기 때문에 – 이것은 저희 모두가 깨달은 것입니다. – 그 사람이 약간 돼지와 동류라는 것입니다. … 그래서 마귀들이 거처를 옮길 때 … 즐겨 돼지들을 택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자, 이상과 같습니다.”
“자넨 그렇다고 말하는 거야?” 하고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묻는다.
“그럼 이것말고 다른 것이 무엇이 또 있겠어? 그 사람이 그렇게까지 다루기 어렵게 될 이유가 없었단 말이야. ‘고운 내’에서보다도 더 나빠졌단 말이야! 거기서는 그가 신경질을 부리는 것이 장소와 계절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었어. 그렇지만 지금은 …”
“다른 이유가 하나 있다, 시몬아 …”
“선생님, 그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제 동료에 대해서 생각을 바꾸는 것이 저는 기쁩니다.”
“유다는 질투한다. 그리고 그의 질투 때문에 불안해지는 것이다.”
“질투한다구요? 누구를요? 그 사람은 아내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가 있는데 여자들을 사귄다 하더라도, 저희들 중의 아무도 저희들의 동료인 그에 대해서 경멸을 보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
“그 사람은 내게 대해서 질투하고 있다. 곰곰히 생각해 보아라. 유다는 엔도르와 에스드렐론을 다녀온 후에 변했다. 즉 내가 요한과 야베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았을 때 그랬단 말이다. 그러나 요한이, 특히 요한이 나를 떠나 내게서 이사악에게로 옮겨가게 된 지금은 그가 다시 쾌활해지고 착해지는 것을 네가 보게 될 것이다.”
“글…쎄요! 그 사람이 조그만 마귀가 들리지 않았다고는 말씀하지 마십시오. 또 무엇보다도… 아니, 이 말씀은 드리겠습니다! 그 사람이 지난 몇 달 동안에 더 나아졌다고는 말씀하지 마십시오. 저도 작년에는 질투가 있었습니다. … 저는 저희 여섯 사람, 맨 처음의 여섯 사람 외에 어떤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선생님도 기억하시지요? 그러나 지금은, 지금은 … 이번만은 하느님을 제 생각에 대한 증인으로 모시게 내버려두십시오. 지금은 선생님 주위에 제자들의 수가 늘어나는 것을 보는 것이 기쁘단 말입니다. 아이고! 저는 모든 사람을 다 붙잡아서 선생님께로 데려오고 싶고, 가난에 쪼들리는 사람들을 원조할 수 있는 모든 재산을 가지고 있어서 아무에게도 선생님께로 오는 데 가난이 방해가 되지 않게 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정말입니다. 그렇지만 왜 제가 이렇게 변했습니까? 그것은 선생님이 저를 변화시키시도록 맡겨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 자 이렇습니다, 선생님 … 그 사람은 조그만 마귀가 들린 것입니다 ….”
“그런 말하지 말고, 그런 생각을 하지 말아라. 그가 고쳐지도록 기도하여라. 질투는 하나의 병이다 ….”
“선생님 곁에 있는 사람은 병을 고치고자 하면 고쳐집니다. 아! 저는 선생님 때문에 그를 참아 견디겠습니다. … 그렇지만 그것은 정말 고역입니다!”
“이 때문에 네게 상으로 아이를 주었다. 그러면 이제는 기도하는 법을 네게 가르쳐 주마 ….”
“아! 그러세요, 선생님” 하고 유다 타대오가 말한다. “거기에 대해서 말합시다. 그리고 저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는 그에게 필요한 것에 대해서만 기억하도록 합시다. 그러나 제 생각으로는 그가 벌써 벌을 받은 것 같습니다. 이 시간에 저희들과 같이 있지 않으니까요!”
“잘 들어라. 너희들이 기도할 때에는 이렇게 말하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하늘에 임하시는 것과 같이 땅에도 임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에게 빚진 사람들에게 우리가 빚을 탕감해 주듯이 우리 빚을 탕감해 주시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악마에게서 구해 주소서.*”
예수께서는 기도를 말씀하시려고 일어나셨고, 사도들도 모두 주의를 기울이고 감격하며 예수께서 하시는 대로 따라 한다.
“벗들아, 다른 것이 필요없다. 이 말들에는 마치 금으로 만든 통에 들어있듯이 사람에게 정신과 살과 피를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이것을 가지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유익한 것을 청하여라. 그리고 너희가 청하는 것을 행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이 기도는 하도 완전한 것이라 이단의 물결도 세월의 흐름도 손상시키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사탄이 물어뜯음으로 인해서 분단될 것이고 내 신비체의 많은 부분이 떨어져나가고 분리되어 그리스도의 신비체가 그럴 것과 같이 완전한 몸을 만들어 가지겠다는 헛된 욕망으로 헤포들을 형성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비체란 이 세상이 존재하는 한 유일한 참다운 교회가 될 사도로부터 내려오는 교회 안에 결합한 모든 신자로 이루어진 교회를 말한다. 그러나 분리된 그 집단들, 따라서 내 자녀들을 기르기 위하여 어머니인 교회에 남겨 줄 선물을 잃은 그 집단들도 그들이 그리스도를 숭배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교라는 칭호를 계속 보존할 것이고, 그들의 오류 가운데에서도 그들은 그리스도에게서 왔다는 것을 항상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그 교회들도 이 보편적인 기도를 가지고 기도할 것이다. 이 기도를 기억하고 끊임없이 묵상하여라. 이 기도를 너희 행동에 적용하여라. 자기를 성화하는 데 다른 것이 필요없다. 어떤 사람이 성당도 없고 책도 없는 이교도 사회에 홀로 있다 하더라도 이 기도를 묵상하면 알 수 있는 것은 벌써 전부 가지고 있는 셈일 것이고, 그의 마음 속에는 이 기도를 바치기 위하여 개설된 교회가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은 생활 규범과 확실한 성화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 아버지. ’
나는 그 분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 분은 말씀의 아버지이시고, 육체를 취한 말씀의 아버지이시다. 나는 너희들도 그 분을 이렇게 부르기를 원한다. 그것은 너희가 내 안에 머물러 있으면 나와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땅에 엎드려 소름끼치는 공포 속에서 ‘하느님!’ 하고 탄식해야 하는 때가 있었다. 나도 믿지 않고 내 말도 믿지 않는 사람은 아직도 이 마비시키는 공포 속에 있다. 성전 내부를 살펴보아라. 하느님뿐 아니라, 하느님의 기억마저도 삼중의 휘장으로 신자들의 눈에 가려져 있다. 거리에 의한 분리, 휘장들에 의한 분리, 이 모든 것을 쓰고 적용한 것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너는 비천한 존재이고, 저 분은 빛이시다. 너는 비열한 인간이고, 저 분은 거룩하시다. 너는 노예이고, 저 분은 왕이시다.’ 하고 말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지금은 ! … 몸을 일으켜라! 이리 가까이 오너라! 나는 영원한 사제이다. 나는 너희들의 손을 잡고 ‘오너라’ 하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천막의 휘장을 잡고 그것을 열며, 지금까지 닫혀 있어서 가까이 할 수 없던 곳을 활짝 열어놓을 수 있다. 닫혀 있었다고? 왜? 원죄 때문에 닫혀 있었다. 그렇다. 그러나 사람들의 타락한 생각으로 인하여 한 층 더 단단히 닫혀 있었다. 하느님께서 사랑이시면, 하느님께서 아버지이시면, 왜 닫혀 있겠느냐? 나는 너희를 먼지 속으로 말고 창공으로 인도할 수 있고, 인도해야 하고, 인도하기를 원한다. 먼 곳으로 인도하지 않고 아주 가까이로, 노예로서가 아니라 아들로서 하느님의 품으로 말이다. ‘아버지! 아버지!’ 이 말을 하고, 또 싫증내지 말고 자꾸 하여라. 너희가 이 말을 할 때마다 하늘이 하느님의 기쁨으로 빛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가 참다운 사랑을 가지고 이 말만을 한다 하더라도 벌써 주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 될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그들의 아버지에게 ‘아빠! 우리 아빠!” 하고 말한다. ‘엄마, 아빠’하는 말이 어린 아이들이 맨 먼저 하는 말이다. 너희는 하느님의 어린 자식들이다. 나는 헌 사람이던 너희를 새로 낳아 주었다. 나는 내 사랑으로 이 낡은 사람을 부수고 새 사람, 즉 그리스도인을 나게 하였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지극히 거룩하신 아버지를 어린 아이들이 제일 먼저 아는 이름으로 불러라.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오! 어떤 이름보다도 더 거룩하고 사랑스러운 이름. 사람의 공포로 인하여 너희에게 다른 이름으로 가리도록 가르쳐 준 이름. 아니다, 이제는 아도나이가 아니시다, 하느님이시다. 그 분은 지나친 사랑으로 인류를 창조하신 하느님이시다. 미래의 인류는 내가 준비하는 목욕으로 깨끗하게 된 입술로 하느님을 그 분의 이름으로 부르면서, 인류가 그의 가장 훌륭한 자녀들을 데리고 하느님과 융합하여, 내가 세우러 온 나라에까지 올려지게 되었을 때 비로소 이 이해할 수 없는 이름의 뜻을 충만한 지혜로 알아듣기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아버지의 나라가 하늘에 임하시는 것과 같이 땅에도 임하게 하시며’
이 나라가 임하시기를 온 힘을 기울여 갈망하여라. 이 나라가 임하시면 세상에는 기쁨이 올 것이다. 마음 속과 가정들과 시민들 사이와 나라들 사이에 있을 하느님의 나라. 이 나라를 위하여 고통을 당하고, 고생을 하고, 너희들을 희생하여라. 땅은 각 사람 안에 하늘의 생명을 반영하는 거울이 되어야 한다. 그 나라가 올 것이다. 언젠가 이 모든 것이 올 것입니다. 눈물과 피와 오류와 박해로 점철되고 안개가 자욱하게 낀 수백, 수천 년의 세월, 이것을 내 교회의 신비적인 등대가 발산할 섬광이 뚫고 나갈 것이다. – 내 교회는 가라앉을 배이기도 하지만, 파도를 잘 견디어내는 바위이기도 하여, 빛을, 내 빛을, 하느님의 빛을 높이 쳐들고 있을 것이다. – 땅이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할 순간보다 이 모든 것이 먼저 올 것이다. 그때가 오면 한 천체가 그 완전한 존재에 도달한 후 하늘의 정원에 있는 엄청나게 큰 꽃과 같이 타오르는 불꽃처럼 해체되어, 그 창조주의 발 앞에서 그 존재와 사랑을 번쩍거리는 고동으로 발산할 것이다. 이런 일이 분명히 일어날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하늘의 완전하고 지극히 행복한 나라가 될 것이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다른 사람의 뜻을 위하여 자기 자신의 뜻을 꺾는 사람은 그 사람에 대한 완전한 사랑에 도달했을 적에야 비로소 될 수 있다. 하느님의 뜻을 위하여 자신의 뜻을 꺾는 것은 대신덕(對神德)의 완전의 영웅적인 단계로까지 도달하여야 비로소 될 수 있다. 모든 것이 완전한 하늘에서는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진다. 하늘의 아들들인 너희는 하늘에서 하는 것을 할 줄을 알아라.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너희가 하늘에 가 있을 때에는 하느님만으로만 살아갈 것이다. 지복이 너희들의 양식일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너희들이 아직 양식이 필요하다. 그런데 너희들은 하느님의 어린 자녀들이다. 그러므로 ‘아버지, 빵을 주셔요.’ 하고 말하는 것이 당연하다. 아버지께서 너희 청을 들어주지 않으실까 봐 겁이 나느냐? 오! 그렇지 않다! 잘 생각해 보아라. 너희들 중의 한 사람이 친구를 두었는데, 그 친구가 이경(二更)이 끝날 무렵에 그의 집에 도착한 다른 친구나 친척을 배불리 먹일 만한 빵이 없는 것을 알게 된다고 가정하여라. 그 사람은 이웃에 사는 친구를 찾아가서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주게. 손님이 왔는데 먹을 것을 내놓을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그러네.’ 하고 말할 것이다. 그 사람이 집안에서 나오는 다음과 같은 대답을 들을 수 있겠느냐? ‘대문을 잠그고 문에 빗장을 질렀고, 아이들이 벌써 내 곁에서 자고 있으니 귀찮게 굴지 말게. 나는 일어나서 자네가 원하는 것을 줄 수가 없네.’ 하고. 그렇지 않다. 그가 참다운 친구에게 호소했고 또 간청을 하면 그가 청하는 것을 얻게 될 것이다. 그가 썩 착하지 않은 친구에게 호소했더라도 얻었을 것이다. 간청하기 때문에 그것을 얻을 것이니, 그가 그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더 이상 귀찮게 구는 것을 막기 위해 청하는 만큼을 서둘러 주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들이 아버지께 기도 드릴 때에는 세상의 친구에게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신 완전한 친구에게 호소하는 것이다. 그래서 ‘청해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찾아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하고 너희에게 말하는 것이다. 과연 청하는 사람은 받게 되고, 찾는 사람은 결국 찾아내게 되며, 두드리는 사람에게는 문을 열어 줄 것이다. 사람들의 자식들 중에서 친아버지에게 빵을 달라고 청하는데 돌을 내미는 아버지가 어디에 있겠느냐? 구운 생선 대신 뱀을 주는 것을 보게 될 아이가 어디 있겠느냐? 자기 자녀들에 대하여 이렇게 행동하는 아버지는 죄인일 것이다. 이 말은 전에 벌써 한 것이지만, 친절과 신뢰의 감정을 가지도록 너희를 격려하려고 되풀이해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건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달걀 대신에 전갈을 주지 않을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얼마나 더 큰 인자로 너희가 청하는 것을 주시겠느냐! 너희들은 다소간 좋지 못한 점이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인자하시니 말이다. 그러므로 자식으로서의 겸손한 사랑을 가지고 너희들의 빵을 아버지께 청하여라.
‘우리에게 빚진 사람들의 빚을 우리가 탕감해 주듯이 우리 빚을 탕감해 주시고.’
물질적인 빚과 영적인 빚이 있다. 또 도덕적인 빚도 있다. 누가 너희들에게 빌려 주었거나 너희에게 갚아야 하는 돈이나 물건은 물질적인 빚이다. 누가 상호성없이 요구하는 존경과 받기를 원하는데 주지 않는 사랑은 도덕적인 빚이다. 우리는 하느님께 아주 조금만 드릴 생각을 하면서 많이 주십사고 청하는데, 하느님께 대한 순종과 하느님께 대해서 우리가 가져야 하는 사랑은 영적인 빚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아주 많은 것을 요구하는 어머니나 아내나 아들을 사랑하듯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그렇게 사랑받으셔야 한다. 이기주의자는 받기는 원하면서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기주의자는 하늘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빚을 지고 있다. 하느님에서 친척에 이르기까지, 친척에게서 친구에, 친구에게서 이웃에, 이웃에서 하인이나 노예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불행하다! 그는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다. 만일 사람이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지극히 거룩하신 당신께 빚진 것을 정의상 탕감해 주실 수가 없다.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악마에게서 구해 주소서.’
우리와 같이 과월절 저녁식사를 나눌 필요를 느끼지 않는 그 사람이 ‘아니! 선생님이 유혹을 당하지 않게, 또 유혹을 당할 때에 유혹에 대항해서 도와주십사고 청하셨습니까?’ 하고 내게 물은 것이 1년이 채 되지 않는다. 우리 둘만이 있는 때였다. … 그래서 나는 대답하였다. 또 한 번은 우리 넷이 외딴 곳에 있었는데, 다시 대답해 주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만족하지 않았었다. 그것은 복잡한 정신을 가진 사람에 있어서는 우선 자기 도취라는 사악한 요새를 부수어서 틈을 만들어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이유로 모든 것이 완전히 이루어질 때까지 다시 한 번, 아니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이 말을 다시 하겠다.
그러나 불행한 주장과 한층 더 불행한 편견으로 무감각하게 되지 않은 너희들은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느님께서 유혹을 막아 주시도록 겸손되이 기도하여라. 아! 겸손! 자기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기의 품위를 떨어뜨리지는 말아야 하지만 자신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말해야 한다. ‘저 자신에 대해서는 불완전한 심판자이기 때문에, 제가 그렇게 할 수 없을 것같이 생각되더라도 질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될 수 있으면 악마에게 저를 해치는 것을 허락치 않기 위하여 저를 아버지 아주 가까이에 두심으로써 유혹에서 구해 주십시오.’ 하고. 하느님께서 악으로 가도록 유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악이 유혹하기 때문이다. 이 점을 기억하여라, 너희가 약함으로 인해서 악마에 의해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너희 약함을 붙들어 주십사고 아버지께 청하여라.
지극히 사랑하는 내 사람들아, 이제 다 말했다. 이것이 너희 가운데에서 지내는 내 두 번째 과월절이다. 지난 해에는 우리가 그저 빵과 어린 양고기를 함께 나누기만 하였다. 올해에는 기도를 가르쳐 주었다. 너희들과 같이 지낼 내 다른 과월절들에도 너희들에게 줄 다른 선물들이 있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곳에 간 다음에 너희들이 모세의 어린 양의 축제 때마다 어린 양인 나를 기억하라고 그러는 것이다.
일어들 서라, 가자. 새벽에 시내로 다시 들어가자. 아니 그보다도, 내일 너 시몬과 내 사촌 너는(유다를 가리키신다.) 여자들과 아이를 데리고 가거라. 요나의 시몬 너와 다른 사람들은 이들이 돌아올 때까지 나와 같이 있어라. 그런 다음 우리 함께 베다니아로 가자.”
그들은 게쎄마니까지 내려와 쉬기 위하여 집으로 들어간다.
*: 여기에 있는 주의 기도는 우리가 하는 공식적인 주의 기도와 내용은 같으나 형식이 꼭같지는 않다는 것을 밝혀둔다.(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