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안식일에 예수께서는 라자로의 소유지인 꽃이 만발한 아마(亞麻)밭 곁에서 쉬고 계시다. 아마밭 곁이라기보다는 키가 대단히 큰 아마 속에 파묻혀 계시다고 말하고 싶다. 예수께서는 밭고랑 가장자리에 앉아 생각에 잠겨 계시다. 예수 곁에는 어떤 조용한 나비 한 마리와 바스락 소리를 내며 와서 빛깔이 엷은 목을 파닥거리는 세모꼴의 머리를 들고, 새까만 눈으로 올려다보는 어떤 도마뱀 한 마리밖에 없다. 그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 늦은 오후 시간에 키큰 아마 줄기 사이에는 바람 한 점 없다.
멀리서 어떤 여자의 노래 소리와 어떤 사람과 놀고 있는 어린 아이의 즐거운 소리가 들려온다. 아마 라자로의 정원에서 들려오는 것일 게다. 그러다가 “선생님!”, “예수야!” 하고 부르는 소리가 하나, 둘, 셋 들려 온다.
예수께서는 몸을 흔드시고 일어나신다. 완전히 다 자란 아마가 아무리 키가 크다 하더라도 예수께서는 그 푸르고 파란 바다에 우뚝 솟아 오르신다.
“요한, 저기 계시네.” 하고 열성당원이 말한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요한이 소리친다. “어머니! 예수님이 저기 아마밭에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집으로 가는 오솔길로 가까이 오시는 동안 성모님이 오신다.
“무슨 일입니까, 어머니?”
“아들아, 이방인들이 여자들과 같이 왔다. 그 사람들은 네가 여기 있다는 말을 요안나에게서 들었다고 한다. 또 요며칠 동안 안토니아탑 근처에서 너를 기다렸다고 말한다 ….”
“아! 알았습니다! 곧 가겠습니다. 어디들 있습니까?”
“라자로의 집에 있다. 로마 사람들이 라자로를 무척 좋아하고, 라자로도 그들에게 대해서 우리가 가지는 것 같은 불쾌감은 가지지 않는다. 라자로는 아무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 않으려고 그들을 마차에 탄 채 큰 정원으로 들어가게 했다.”
“좋습니다, 어머니. 그 사람들은 병사들과 로마의 부인들입니다. 제가 압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네게서 무엇을 원하는 것이냐?”
많은 이스라엘 사람이 원하지 않는 것, 즉 빛을 원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너를 무엇이라고 믿고 있느냐? 아마 신이라고 믿는 거냐?”
“그 사람들의 말로는 그렇습니다. 그 사람들로서는 신이 인간의 육체로 화신(化身)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들 사이에서보다 쉽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네게 대한 믿음에 도달했다는 거로구나 ….”
“아직은 아닙니다, 어머니. 저는 우선 그들의 믿음을 부수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제가 그들에게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현자로, 철학가로 보입니다. 그러나 철학의 학리를 알고자 하는 욕망으로나 신의 인간으로의 화신이 가능하다고 믿는 그들의 경향으로나 그들을 참 믿음으로 데려오는 데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정말입니다. 그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보다 더 순박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이 성실하겠느냐? 사람들의 말로는 세례자가 …”
“아닙니다. 만일 그 일이 로마인들에게 달린 일이었더라면 요한은 자유로운 몸일 것이고 안전할 것입니다. 로마인들은 반역하지 않는 사람은 가만 놔둡니다. 그 뿐 아니라,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그들 사이에서는 예언자라는 것은 – 그들은 철학자라고 말합니다. 그들에게는 초자연적인 지혜의 고귀함은 언제나 철학이니까요. – 그들에게서 존경을 받는 보장이 됩니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셔요. 제게 재난이 오는 것은 저들에게서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 그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면 라자로에 대해서는 또 뭐라고 말하겠느냐? 너는 … 너니까 세상에 말씀을 전해야 한다. 그러나 라자로는! … 그 사람들이 벌써 라자로에게 모욕을 주었는데 ….”
“그러나 라자로는 건드릴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라자로가 로마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아들아, 나는 간다. 너를 이방인들에게 데려다 줄 막시민이 저기 온다.” 그러시면서 이제까지 줄곧 예수 곁에서 걸으시던 성모님이 빨리 물러나서 열성당원의 집 쪽으로 가신다. 그러는 동안 예수께서는 정원 울타리에 나 있는 쇠로 만든 쪽문으로 해서 정원에서 떨어진 부분, 나중에 라자로의 무덤이 있을 곳 가까이, 정원이 과수원으로 바뀌는 곳으로 가신다.
그곳에는 라자로가 있고,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선생님, 저는 감히 저들을 받아들였습니다 ….”
“잘하셨소. 어디 있소?”
“저기 회양목과 월계수 그늘에 있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그들은 집에서 적어도 500보 가량은 떨어져 있습니다.”
“좋습니다, 좋아요. … 빛이 여러분 모두에게 오기를 바랍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하고 평복 차림을 한 귄띨리아누스가 말한다.
부인들은 인사하기 위하여 일어선다. 쁠라우띠나와 발레리아와 리디아가 있고, 나이먹은 부인이 또 한 사람 있는데,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어떤 사람인지, 다른 부인들과 같은 신분인지 그보다 낮은 신분이지도 모르겠다. 여자들은 모두 대단히 수수한 옷차림을 하였고, 그들을 구별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저희들은 선생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안 오셨습니다. 선생님이 오실 때 저는 … 당번이었는데, 선생님을 뵙지 못했습니다.”
“나도 못 보았소. 물고기 성문에서 내 친구인 병사도 보지 못했소. 이름이 알렉산드르라고 했는데 …”
“알렉산드르요? 정확히 그 사람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얼마 전에 유다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선생님과 말을 한 … 죄가 있는 병사를 다른 곳으로 보내야 했던 일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 안티오키아에 있습니다만 아마 돌아올 것입니다. 에이그! 지배를 받는 지금도 명령하기를 원하는 그 사람들은 정말 성가신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사건에 이르지 않기 위해서는 수를 써야 합니다. … 그 사람들은 정말이지 저희들의 생활을 고달프게 만듭니다. … 그러나 선생님은 착하시고 지혜로우십니다. 저희들에게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어쩌면 제가 멀지 않아 팔레스티나를 떠나게 될지로 모릅니다. 선생님의 어떤 것을 기념으로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예, 여러분에게 말을 하지요. 나는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무엇을 알고 싶으십니까?”
귄띨리아누스가 부인들을 질문하는 듯한 태도로 바라다본다 ….
“선생님께서 원하시는 걸요.” 하고 발레리아가 말한다.
쁠라우띠나가 다시 일어나서 말한다. “저는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제가 배울 것이 대단히 많을 것 같습니다. … 다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질문해도 된다면, 참 믿음이 없다고 말씀하신 터전에 가령 선생님께 대한 믿음이 어떻게 세워지는지 알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들의 믿음이 헛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무것도 없이 있는 셈입니다. 어떻게 무엇을 가지게 되겠습니까?”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 즉 신전을 예로 듣겠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여러분의 신성한 건물들은 무(無)에 바쳐졌다는 것이 유일한 불완전이지만, 어떻게 믿음에 도달할 수 있으며 그 믿음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여러분에게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관찰하시오. 신전들이 어디에 세워졌습니까? 신전을 짓기 위해 할 수 있으면 어떤 장소를 선택합니까? 신전들이 어떻게 지어졌습니까? 장소는 일반적으로 넓고 탁 트이고 높습니다. 그리고 그 장소가 넓고 환히 트이지 않았으면, 터전을 혼잡하게 하고 제한하는 모든 것을 부수어서 넓고 확 트이게 만듭니다. 터가 높지 않으면, 세단의 토대보다 더 높은 토대를 만들어 더 높입니다. 이 토대는 그렇지 않아도 자연히 높은 장소에 있는 신전들을 더 높게 하는 데 쓰이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주랑(柱廊)과 회랑(回廊)으로 된 신성한 울타리 안에 들어 있고, 그 안에는 신들에게 바쳐진 나무들과 분수들과 제단들과 조각들과 기념 돌기둥들이 들어 있는 이 신전들은 그 앞에 정문이 있고, 그 안쪽으로는 신들에게 기도를 드리는 제단이 있습니다. 정면에는 제물을 놓을 장소가 있습니다. 기도를 바치기 전에 제물을 바치니까요. 흔히, 특히 가장 큰 신전들에는 값진 대리석으로 꽃줄 장식처럼 된 주랑이 둘러쳐져 있습니다. 그 안에는 주랑 밖에나 주랑 안에 앞현관이 있고, 다음에는 신의 방이 있고, 뒷현관이 있습니다. 대리석, 석상, 합각(合閣)머리, 아크로테리언(박공 양단 또는 윗쪽에 조각 따위를 얹어놓은 대좌(臺座)), 합각머리의 삼각면(三角面) 따위는 모두 윤이 나고 값지고 잘 꾸며져서 아무리 세련되지 않은 눈으로 본다 하더라도 신전을 매우 고귀한 건축물로 보이게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선생님, 그렇습니다. 선생님은 신전들을 보시고 썩 잘 조사하셨군요.” 하고 쁠라우띠나가 예수를 칭찬하면서 확인한다.
“하지만 선생님이 팔레스티나를 떠나신 일이 절대로 없다는 것이 아주 확실하다면!” 하고 귄띨리아누스가 외친다.
“나는 로마나 아테네에 가려고 팔레스티나에서 나간 일이 결코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이스와 로마의 건축을 모르지 않습니다. 나는 생명과 생명의 발로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있기 때문에 파르테논 신전을 꾸민 사람의 천재적인 재능에 들어 있었습니다. 현자가 생각하는 곳, 조각가가 조각을 하고, 시인이 시를 짓고, 어머니가 요람을 내려다보고 노래하는 곳, 남자가 밭고랑에서 애쓰고, 의사가 병과 싸우고, 산 사람이 숨쉬는 곳, 짐승이 사는 곳, 나무가 자라는 곳에 나는 내가 떠나온 그분과 같이 있습니다. 우르릉거리는 지진이나 요란스러운 벼락 속에, 별빛과 조수의 움직임 속에, 독수리의 날개짓과 모기의 윙윙거림 속에, 나는 지극히 높으신 조물주와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 선생님은 … 선생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신단 말씀입니까?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실도?” 하고 귄띨리아누스가 또 묻는다.
“압니다.”
로마인들은 놀라서 서로 바라다본다. 오랜 침묵이 흐른다. 그런 다음 발레리아가 머뭇거리며 묻는다. “선생님,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선생님의 생각을 상세히 이야기해 주십시오.”
“그러겠습니다. 믿음은 여러분이 그렇게도 자랑하는 신전들을 건설하는 것과 같이 건설됩니다. 신전을 짓기 위하여는 터를 만들고, 주변을 정리하고 터를 높입니다.”
“그러나 저 진짜 신인 믿음을 넣어둘 신전은 어디 있습니까?” 하고 쁠라우띠나가 묻는다.
“쁠라우띠나, 믿음은 신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덕행입니다. 참된 믿음 안에는 신들은 없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분 뿐이고 참된 하느님이 계십니다.”
“그러면 … 그 하느님은 저 위 올림푸스에 혼자 계십니까? 그리고 혼자 계시면 무엇을 하십니까?”
“하느님께서는 자족(自足)하시고 우주 만물을 보살피십니다. 아까 말했지요. 모기의 윙윙거림 속에도 하느님은 계시다고. 하느님께서는 심심하지 않으십니다. 정말입니다. 하느님은 광대한 제국을 가진 주인으로 거기서 미움을 받는다고 느껴서 공포 속에서 살고 있는 불쌍한 사람과 같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사랑하시면서 사십니다. 그 분의 생활은 끊임없는 사랑입니다. 하느님은 무한하시고 지극히 능하시기 때문에 자족하십니다. 하느님은 완전이십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계속적인 의지로 살아가는 피조물이 하도 많아서 그 분은 심심하실 시간이 없습니다. 권태는 한가함과 악습의 결과입니다. 참 하느님의 하늘에는 한가함이 없고 악습도 없습니다. 그러나 멀지 않아 하느님께서는 지금 당신을 섬기는 천사들 외에 당신 안에서 몹시 기뻐할 수많은 의인들을 가지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수많은 의인의 수효는 장차 참 하느님을 믿을 사람들로 인해서 점점 더 늘어갈 것입니다.”
“천사들은 정령(精靈)들입니까?” 하고 리디아가 묻는다.
“아닙니다. 천사들은 그들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그러신 것과 같이 신령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면 정령들은 무엇입니까?”
“당신들이 상상하는 것 같은 정령은 거짓말입니다.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 같은 정령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진리를 찾으려는 사람의 본능적인 필요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교도들에게도 있는 살아 있는 영혼의 자극에서 오는 것입니다. 영혼은 그들 안에서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그의 갈망이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고, 그가 살고 있지만 이교정신으로 지배되는 그 육체 안에서 그가 기억하고 있는 참 하느님을 갈망하며 향수를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사람은 육체만이 아니라, 덧없는 이 육체에 어떤 불멸하는 것이 결합해 있다는 것을 의식하십니다. 이런 뜻에서 도시와 나라들이 정령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들은 ‘정령’을 믿을 필요를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들은 개인의 정령, 가족의 정령, 도시의 정령, 국가의 정령을 만들어 가지는 것입니다. 당신들은 ‘로마의 정령’, ‘황제의 정령’을 가지고 있고 그것들을 작은 신들로 숭배합니다. 참된 믿음으로 들어오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천사를 알고 그들의 우정을 얻게 될 것인데, 여러분은 그 천사를 존경해야 할 것이지만 숭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만 하느님만을 숭배해야 합니다.”
뿌블리우스 귄띨리아누스가 묻는다. “선생님은 ‘이교도들 안에도 있고 살아 있지만 기대가 어긋났기 때문에 괴로워하는 영혼의 자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영혼은 누구에게서 옵니까?”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하느님께서 영혼의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남자와의 결합으로 여자에게서 나지 않습니까? 우리 신들도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당신들의 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믿을 필요를 느끼는 당신들의 상상력의 소산입니다. 이 믿을 필요는 숨쉴 필요보다도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사람도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람도 무엇인가를 믿습니다. ‘나는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 고 말하는 그 사실만이라도 어떤 다른 믿음을 미리 가정합니다. 요컨대 아마 교만한 정신을 믿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믿는다는 것으로 말하면 역시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생각과 같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나는 생각하고자 하지 않는다.’, 또는 ‘나는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 고 말하면, 여러분이 말하는 이 두 말만으로도 여러분이 생각한다는 것과 여러분이 그 존재를 알면서도 하느님을 생각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과 믿고 싶지 않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사람에 관해서 생각을 정확히 표현하려면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사람은 모든 동물과 마찬가지로 암수의 결합으로 태어난다. 그러나 영혼은, 즉 인간인 동물과 짐승인 동물을 구별짓는 그것은 하느님에게서 온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날 때마다, 아니 그보다도 사람이 어머니 태중에 잉태될 때마다 영혼을 창조하시고 그 육체에 결합시키신다. 그렇지 않으면 그 육체는 다만 동물일 뿐일 것이다.’ 하고.”
“그러면 우리도 영혼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 이교도들도? 선생님의 동포들의 말을 들으면 그런 것 같지 않은데요 ….” 하고 귄띨리아누스가 비꼬는 투로 말한다.
“여인에게서 나는 모든 인간은 영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래도 영혼이 죄로 인해서 죽는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러면 우리 죄인들 안에서 어떻게 영혼이 살아 있습니까?” 하고 쁠라우띠나가 묻는다.
“당신들은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믿음의 문제에 있어서는 죄를 짓지 않습니다. 당신들이 진리를 알게 되었을 때 고집해서 오류 속에 머물러 있으면, 그때에는 죄를 짓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죄가 되는 많은 것들이 당신들에게는 죄가 안 됩니다. 그것은 어떠한 하느님의 법률도 당신들에게 그것을 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느님이 주신 명령에 알면서 거역하고 ‘나는 이것이 나쁜 일인 줄 안다. 그래도 하련다.’ 하고 말할 때에 죄가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공평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선을 행하는 줄로 알고 악을 행하는 사람을 벌하실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선과 악을 알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으면서 악을 택하고 고집스럽게 행하는 사람을 벌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들 안에 영혼이 살아서 현존해 있단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괴로워한단 말씀입니까? 선생님은 영혼이 하느님을 기억한다고 정말 믿으십니까? 우리는 우리를 가졌던 어머니의 태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태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 제가 제대로 알아들었다면, 영혼은 하느님이 영적으로 낳으셨습니다. 그런데 육체가 태중에 오래 머물러 있었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영혼이 하느님을 기억할 수 있습니까?”
“쁠라우띠나, 영혼은 짐승이 아닙니다. 배(胚)는 그렇지요. 그래서 영혼은 태아가 이미 형성되었을 적에야 비로소 주어집니다. 영혼은 하느님을 닮아서 영원하고 신령합니다. 영혼이 창조된 때부터 영원하지요. 그러나 하느님은 지극히 완전하시고 영원한 분이어서, 이 때문에 시작도 없었고 마침도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작품인 명석하고, 총명하고, 신령한 영혼은 하느님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그의 기원이신 하느님을 바라고 하느님을 갈망하기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이 둔해진 육체를 자극해서 하느님께 가까이 가도록 힘쓰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도 선생님의 나라 사람들이 ‘의인’이라고 부른 그 사람들과 같이 영혼을 가지고 있습니까? 정말 같은 영혼을?”
“쁠라우띠나, 아닙니다. 그것은 부인이 무슨 뜻으로 말하는지에 따라 다릅니다. 만일 영혼의 기원과 성질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라면 당신들의 영혼도 모든 점에서 우리 성인들의 영혼과 똑같습니다. 그러나 교육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라면, 벌써 다르다고 말하겠습니다. 또 죽기 전에 도달하는 완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라면 그 차이가 절대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당신들 이교도에 관한 것만은 아닙니다. 이 백성의 아들이라도 내세에서는 성인과 절대적으로 다를 수 있습니다. 영혼은 세 단계를 거칩니다. 첫째 단계는 창조입니다. 둘째 단계는 새로운 창조입니다. 그리고 셋째 단계는 완전입니다. 첫째 단계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의 것입니다. 둘째 단계는 의인들 특유의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착한 행동을 하느님의 훌륭한 일에 결합시킴으로써 그들의 의지로 영혼을 더 완전한 창조로 이끌어가며, 따라서 첫번 단계의 영혼보다 벌써 더 완전한 영혼을 만들어 가집니다. 이것은 첫째 단계와 셋째 단계 사이의 연결선입니다. 셋째 단계는 복된 사람들, 당신들이 그렇게 부르고 싶다면 성인들에게 특유의 것입니다. 그들은 출발점에서 가졌던 영혼, 그저 인간적이기만 한 영혼을 수많은 단계로 키워서 하느님 안에서 쉴 능력이 있는 영혼으로 만든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가 영혼에게 공간과 자유와 고결함을 줄 수 있습니까?”
“당신들의 안에 가지고 있는 쓸 데 없는 것들을 부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영혼을 모든 거짓 사상에서 해방해서 최고의 신전을 짓기 위해 그 부순 파편들과 더불어 영혼을 들어올려야 합니다. 영혼은 세 단 위에 점점 더 높이 올라가야 합니다.
오! 당신들 로마인은 상징을 좋아하지요. 이 세 단을 상징을 통해 고찰해 보시오. 이 세 단은 속죄, 인내, 꾸준함을 가리킬 수 있고, 또는 겸손과 순결과 정의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또는 지혜, 너그러움, 자비를 가리킬 수도 있으며 끝으로 빛나는 3항식(項式)인 믿음, 바람, 사랑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신전의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또 잘 꾸며지고 튼튼한 담의 상징도 생각해 보시오. 영원하신 영의 신전인 육체의 여왕 영혼을 그를 보호하는 방벽으로 둘러싸되, 영혼에게 들어오는 빛을 막지도 않고, 추한 것들을 보임으로써 영혼을 괴롭히지 않을 줄을 알아야 합니다. 더 높은 것인 정신을 향하여 올라가기 위해 살과 피 같은 더 낮은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의 욕망에서 풀려난 안전한 방벽으로 말입니다. 의지의 힘으로 영혼을 해방하고, 우리의 라는 대리석의 모와 터진 부분과 반점과 불완전한 결을 없애서 영혼에게 완전한 주위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신전을 보호하기 위하여 세운 방벽을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가장 불행한 사람들을 위한 자비로운 피난처로 만들어야 합니다.
회당들은 고아의 요람을 가려주기 위해서 뻗는 사랑으로 팔과 같이, 사랑과 연민과 다른 사람들이 하느님께로 오기를 바라는 욕망의 발로를 상징합니다. 방벽 너머에는 조물주를 찬미하기 위하여 가장 아름답고 가장 향기로운 초목들을 심습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던 땅에 씨를 뿌리고 가꾼 초목으로 모든 이름의 덕행을 상징하는 것으로 성소(聖所) 둘레에 제 2의 방책을 만들어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초목들, 덕행들 사이에는 성소에 가까이 있는 입구에 접근하기 전에 다른 사랑이고 다른 정화인 분수들이 있으며, 제단에 올라가기 전에는 육체에 대한 애착을 희생해야 하고 음란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 다음 더 멀리 제단에까지 가서 거기서 제물을 바친 다음 현관을 지나 하느님이 계신 방으로 더 가까이 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방은 어떠해야 합니까? 영적인 재산의 보고(寶庫)이어야 합니다. 하느님을 둘러싸는 데는 지나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알아들었습니까? 여러분은 믿음이 어떻게 건설되느냐고 물었고, 나는 ‘신전을 세우는 데 쓰는 방법을 따름으로’라고 대답했습니다. 당신들은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은 알겠지요. 다른 말할 것이 또 있습니까?”
“아닙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플라비아가 쓴 것으로 생각합니다. 글라우디아가 그것을 알기를 원하니까요. 썼나?”
“정확히 썼습니다.” 하고 여인이 대답하면서 밀랍을 입힌 서판(書板)들을 건네준다.
“이것은 다시 읽을 수 있게 남아 있을 것입니다.” 하고 쁠라우띠나가 말한다.
“그것은 밀랍이라 지워집니다. 내 말들을 여러분의 마음 속에 써 주시오. 그러면 그 말이 다시는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선생님, 저들은 허망한 신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그 신전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선생님의 말씀을 거기다 대고 던지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걸리는 일입니다.” 하고 쁠라우띠나가 한숨을 지으며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면서 말을 마친다. “선생님의 하늘 곁에서 저희들을 기억해 주십시오 ….”
“내가 그렇게 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떠나시오. 여러분 나는 갑니다. 여러분이 오신 것이 내게 대단히 값진 것이었다는 것을 아시오. 뿌블리우스 귄띨리아누스, 잘 가시오. 나자렛의 예수를 기억하시오.”
여자들이 인사를 하고 먼저 간다. 그리고 귄띨리아누스가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간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그들을 마차로 다시 인도하는 막시민과 같이 떠나는 것을 보신다.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선생님?” 하고 라자로가 묻는다.
“세상에는 불행한 사람이 많다는 생각을 하오.”
“저도 그 중의 한 사람입니다.”
“왜요?”
“모든 사람이 선생님께 오지만 마리아는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애의 파멸은 그러면 더 크단 말씀입니까?”
예수께서는 그를 바라다보시며 미소지으신다.
“선생님은 미소지으십니까? 그러나 마리아가 회개의 가망이 없다는 것이 괴롭지 않으십니까? 마르타는 월요일 저녁부터 울기만 합니다. 그 여자는 누구였습니까? 저희가 그 여자가 마리아이기를 하루 종일 바랐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내가 웃는 것은 당신이 참을성없는 어린 아이와 같기 때문이오. … 그리고 또 당신들이 정력과 눈물을 낭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웃는 거요. 만일 그 여자가 마리아였더라면 당신들에게 달려와서 말했을 거요.”
“그러면 정말 그 애가 아니었습니까?”
“오! 라자로! …”
“선생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인내! 또 인내를 가져야지요! … 선생님, 여기 선생님이 팔라고 주신 보석들이 있습니다. 보석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돈으로 변했습니다. 보석들이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여자의 보석들이.”
“그 ‘여자’의 보석이었소.”
“저도 그 생각을 했습니다. 아! 그것이 마리아의 것이었더라면 … 그러나 그 애는, 그러나 그 애는! … 주님, 저는 희망을 잃어갑니다! …”
예수께서는 그를 껴안으시고 잠시 말없이 계시다. 그리고 나서 말씀하신다. “제발 그 보석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하지 마시오. 그 여자는 파란 하늘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바람에 불려 다른 곳으로 가는 작은 구름과 같이 사람들의 감탄과 욕망에서 벗어나야 하오.”
“선생님, 안심하십시오. … 그 대신 마리아를, 우리 불행한 마리아를 데려다 주십시오 ….”
“라자로, 평화가 당신과 함께 있기를. 내가 약속한 것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