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밝은 밤의 찬란한 별들이 동방의 하늘에서 몹시 뚜렷이 몹시 선명하게 반짝여서 마치 창공이 예수를 받아들인 집 옥상에 천개(天蓋)처럼 내려앉은 것 같다. 그 집은 높은 집인데다가 시내의 가장 높은곳 중의 하나에 자리잡고 있어서 앞쪽과 빙 둘러 사방으로 무한한 지평선이 펼쳐진다. 그리고 땅은 하현달이 아직 뜨지 않은 밤의 어두움 속에 사라져 있지만, 하늘은 수천 수만 개의 빛으로 반짝인다. 그것은 참으로 땅의 덧없는 식물들 앞에 그의 천체의 화단과 은하수의 풀밭과 거대한 행성(行星) 들과 수풀 같은 성좌들을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창공의 앙갚음이다. 땅의 식물들은 수백 년 된 것이라도, 창조주께서 하늘을 만드신 순간부터의 별들의 존재에 비하면 언제나 한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별들이 식물인 찬란한 길들 사이로 시선을 보내며 저 위를 바라다보는데 몰두하면, 저 찬란한 숲, 대성 당 중에서 가장 장엄한 대성당의 저 어마어마하게 큰 파이프 오르간의 목소리와 노래소리가 들릴 것 같다. 나는 이 파이프오르간의 송풍장치와 음역(音域)이 천체들의 운행에서 생기는 바람 같고, 목소리들은 그것들의 궤도에 올려진 별들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가다라의 밤의 고요가 절대적인 만큼 나는 더구나 이런 인상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노래하는 분수가 하나도 없고, 새 울음소리도 하나 없다. 세상은 잠들었고, 피조물들도 잠들었다. 사람들은 그들의 어두운 집에서 더 편안하거나 덜 편안한 잠을 다른 피조물들보다 덜 결백하게 자고 있다.
그러나 아래 옥상 쪽으로 난 문에서 -이보다 더 높은 땅 위에 더 높은 옥상이 또 하나 있기 때문이다 -커다란 그림자가 하나 빠져나온다. 밤중이라 잘 보이지는 않는 그림자이다. 그러나 어두운 옷 위에 두드러져 보이는 얼굴과 손의 흰 빛을 짐작할 수 있다. 그 그림자 뒤에는 더 작은 다른 그림자 하나가 따르고 있다. 그들은 아마 아렛층 방에서 자고 있는 사람들을 깨우지 않으려고 발끝으로 살금살금 걷는다. 그리고 여전히 발끝으로 위의 옥상으로 가는 바깥 층계를 올라간다. 그리고 그들은 손을 맞잡고,옥상에 둘러쳐져 있는 매우 높은 난간에 기대 있는 걸상에 가서 앉는다. 매우 낮은 걸상과 대단히 높은 난간 때문에 그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가장 아름다운 달빛이 내려와 세상을 비춘다 하더라도 그들에게는 그것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도시는 난간으로 완전히 가려져 있고, 밤의 어두움 속에 근처에 있는 산들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들도 도시와 더불어 가려져 있다. 다만 하늘만이 그들의 눈에 보이는데, 하늘에는 봄의 성좌들과 오리온좌의 리겔과 베텔규스, 황소좌의 알데바란, 페르세우스좌, 안드로메다좌, 카시오페아좌의 찬란한 별들과 자매들처럼 모여 있는 묘성(昴星)과 사파이어빛깔에 금강석같이 반짝이는 금성, 젊은 루비색의 화성, 황옥색의 목성들이 별나라백성들의 왕들로서 주님께 인사를 드리기 위하여 반짝거리고 또 반짝거리며, 세상의 빛에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그들의 반짝임을 더한다.
예수께서는 별들을 쳐다보시려고 머리를 드시고 높은 난간에 머리를 기대신다. 요한도 예수께서 하시는 대로 따라하며 시선을 저 위, 세상을 무시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낸다.…그리고 나서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자 이제는 우리가 별을 보는 것으로 우리를 매끈하게 했으니, 기도하자.” 예수께서 일어나시고, 요한도 따라 일어난다. 팔을 †자로 포개고, 얼굴을 들어 첫번째 달빛이 나타나려고 하는 동쪽으로 돌리고, 온 영혼을 기울여서 하는 조용하고 간절한 긴 기도이다. 그런 다음 “주의기도”를 같이 천천히 드린다. 한 번이 아니라 세 번, 그리고 그들의 청을 점점 더 간절하게 한다. 이것은 그들의 목소리로 분명히 나타난다. 영혼을 육체에서 갈라놓는 애원이며, 그들을 무한의 길에 남겨둘 정도로 열렬한 애원이다.
그런 다음에는 침묵이 흐른다. 그들은 처음에 앉았던 곳에 앉는다. 그러는 동안 달은 잠든 땅을 점점 더 밝힌다.
예수께서는 요한의 어깨에 한 팔을 감고 당신께로 끌어당기시며 말씀하신다. “그러면 네가 내게 말해야 하겠다고 느끼는 것들을 말해라. 내 요한이 빛의 도움을 받아 동료의 어두운 영혼에서 본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선생님 .…저는 선생님께 그 말씀을 드린 것을 뉘우쳤습니다. 저는 두 가지 죄를 지을 것입니다….”
“왜?”
“그것은 선생님이 알지 못하고 계신 것을 알려드려 선생님께 괴로움을 당하시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선생님, 다른 사람에게서 우리가 발견하는 잘못을 말하는 것은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제가 어떻게 애먹을 어기면서 그것을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요한은 고민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그의 마음을 밝혀 주신다. “요한아, 들어라 네게 있어서 무엇이 중요하냐. 선생님이냐 그렇지 않으면 동료이냐?”
“주님, 선생님이십니다. 선생님이 제일 중요하십니다.”
“그리고 네게는 내가 무엇이냐?”
“시작이고 끝이십니다. 선생님은 전부이십니다.”
“내가 전부인 만큼, 내가 존재하는 모든 것을 모두 알기도 한다고 믿느냐?”
“믿습니다, 주님. 또 그 때문에 저는 매우 난처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때로는 사람이시고, 사람뿐이시고, 따라서 아버지께서 사람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성을 따라 행동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선생님께 알게 하신다고 언젠가 말씀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선생님을 불쌍히 여기셔서 이 추한 것들을 선생님께 숨기실 수 있으리라고도 생각합니다….”
“그 생각을 그대로 가지고 말해라. 요한아, 신뢰를 가지고 네게 ‘전부’인 사람에게 네가 아는 것을 털어놓은 것은 죄가 아니다. ‘전부’는 눈살을 찌푸리지 않고, 험구를 하지 않고, 불행한 그 사람에 대해서 생각만으로 라도 사랑을 가지지 않는 일이 없겠기 때문이다. 만일 네가 아는 것을 온전히 사랑이 될 수 없는 어떤 사람에게, 예를 들어 험구를 하고 죄있는 사람을 무자비하게 공격까지 해서 죄있는 사람과 자기 자신들에게 해를 끼칠 네 동료들에게 말하면 죄가 될 것이다. 과연 자비를 가져야 한다. 모든 악으로 괴로움을 당하는 가엾은 영혼 앞에 우리가 있는 만큼 점점 더 큰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 의사나 동정하는 간호원이나 어머니는 저 몸이 불편한 것이라면 별로 겁내지 않고, 고쳐 주려고 골몰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나 어른이 병이 대단하고, 벌써 회저(?疽)에 걸리고 마비되어 죽을 위험에 처해 있으면, 불쾌감과 피로를 극복하면서 그를 고치려고 얼마나 싸우느냐! 그렇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선생님 ”하고 요한이 말한다. 그는 선생님의 목을 두팔로 껴안고 선생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는 늘 하는 자세를 취하였다. “그런데 병든 영혼들에 대해서 모든 사람이 자비로울 줄을 아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병을 알리는 데 신중해서 세상이 그들을 피하지 않게 하고, 그들의 업신여김으로 병자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해야 한다. 자기가 업신여김을 받는다는 것을 아는 병자는 우울해지고 병이 더해진다. 그러나 반대로 그를 기분 좋게 치료해 주면 병이 나을 수가 있다. 병자를 돌보는 사람의 신뢰하는 좋은 기분은 그를 깊이 감동시키고, 약의 효력을 보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는 내가 자비 자체이며 내가 유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러니까 거리낌 없이 말해라. 너는 첩자가 아니다. 너는 형제에게 있는 것을 알아낸 병을 애정어린 걱정으로 아버지께 알려 아버지가 형제를 치료하게 하는 아들이다. 자….”
요한은 한숨을 푹 쉰다. 그리고 머리를 한층 더 떨어뜨려 예수의 가슴으로 미끄러져 내리게 하고 말한다. “타락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정말 괴롭습니다!…주님…유다는 음란합니다.…그리고 저를 음란으로 이끌어가려고 애씁니다. 그가 저를 업신여기는 것은 아무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의 사랑으로 더러워진 몸으로 선생님께로 오는 것이 저는 괴롭습니다. 그가 돌아온 뒤로 저를 여러 번 유혹했습니다. 우연히 저희 둘이만 있게 되면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지 그렇게 되도록 애를 씁니다 – 여자들 이야기밖에 하지 않습니다.…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제 입에다 집어넣으려고 하는 썩은 물건 속에 집어넣으면 느끼게 될 그런 불쾌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서 네 마음 속 깊이 자극을 느끼느냐?”
“자극을 느끼다니요? 제 마음은 전율합니다. 제 이성은 그 유혹을 꾸짖습니다.…저는 타락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네 육체는 무엇을 느끼느냐?”
“제 육체는 혐오로 전율합니다.”
“그뿐이냐?”
“그렇습니다, 선생님. 그러면 저는 자기를 하느님께 바친 사람에게 유다가 그보다 더 큰 모욕을 줄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웁니다. 이것이 제 봉헌을 해치겠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아니다. 금강석판에 던진 진흙 한 줌보다 더 해치지는 못한다. 그 진흙은 금강석판에 흠집을 내지 못하고, 속으로 뚫고 들어가지도 못한다. 깨끗한 물 한 컵만 부으면 금강석판은 다시 깨끗해진다. 그리고 전보다도 더 아름다워진다.”
“그럼 저를 깨끗하게 해 주십시오.”
“네 사랑이 너를 깨끗하게 하고, 네 천사도 깨끗하게 해 준다. 네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너는 하느님께서 그 위에 내려오시는 깨끗하게 된 제단이다. 그리고 유다가 또 무슨 다른 일을 하느냐?”
“주님, 그 사람은.…아이고! 주님!”요한의 머리는 더욱 더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온다.
“무엇이냐?”
“그 사람은.…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선생님께 드리는 그의 돈이라는 것은 참말이 아닙니다. 참 된 것이 아닌 그의 너그러움을 사람들이 칭찬하라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돈을 제 몫으로 훔치는 것입니다. 다볼산에서 돌아오셔서 선생님이 그에게서 돈을 모두 빼앗으셨기 때문에 선생님은 그를 몹시 화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게 ‘우리들 가운데 몰래 염탐하는 사람들이 있어’하고 말했습니다. ‘뭘 염탐하려고? 혹 자네가 도둑질을 하는 게 아닌가?’ 그랬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야. 그렇지만 나는 용의주도해서 돈주머니 둘을 가지고 있어. 그런데 그걸 누가 선생님께 일러 바쳐서, 선생님은 나더러 모두 내놓으라고 강요하셨어. 선생님이 하도 심하게 강요하셔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단 말이야’ 하고. 그러나 주님, 그가 용의주도해서 그렇게 한다는 것은 참말이 아닙니다. 그는 돈을 가지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저는 진실을 말한다는 확신을 가지다시피하고 이것을 단언할 수 있겠습니다.”
“확신을 가지타시피 하고! 그래, 의심은 가벼운 잘못이다. 만일 그가 도둑질을 한다는 것을 마주 확실히 알지 못하면, 너는 그를 도둑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들의 행동은 착한 것이면서도 때로는 유감스러운 것으로 보이는 수가 있을 것이다.”
“맞습니다, 선생님. 이제는 그를 생각만으로 라도 비난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 사람이 돈주머니 두 개를 가지고 있고, 제 것이라고 말하는 돈주머니도 역시 선생님의 것인데, 칭찬을 받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을 느낍니다.”
“네 말이 옳다. 또 무슨 말을 해야 할 것이 있느냐?” 요한은 공포에 사로잡힌 얼굴을 들고 말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내 입을 다물고 미끄러져 내려 얼굴을 예수의 옷에 파묻는다. 예수께서는 한 손을 그의 머리에 얹으신다.
“자, 자! 네가 잘못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네가 잘 보도록 도와주마. 너는 유다의 죄의 그럼직한 원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내게 말해야 한다.”
“주님, 유다는 기적들을 행하기 위해서 가지기를 바라는 힘을 자기가 가지지 못하는 것을 느낍니다.…선생님은 그가 늘 그걸 갈망했다는 것을 아시지요.…엔도르를 기억하십니까? 그런데 반대로…그가 기적을 제일 못합니다. 그가 돌아온 뒤로는 아무 일도 성공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그리고 밤에는 악몽을 꾸는 것처럼 꿈에 거기 대해 한탄합니다. 그리고…선생님, 선생님!”
“자, 말해라. 끝까지 다 말해라.”
“그리고 주술을 쓰고…마술을 합니다, 이것은 거짓말도 아니고, 의심도 아닙니다. 저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제가 잠을 깊이 자기 때문에, 아니 그보다도 전에는 깊은 잠을 잤기 때문에 저를 동숙자(同宿者)로 택했습니다. 지금은 솔직히 말씀드려서 그를 감시하고, 잠이 덜 깊게 듭니다. 그가 움직이기만 하면 들리니까요.…제가 잘못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가 무엇을 하는지 보려고 자는 체했습니다. 그리고 적합하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을 두 번이나 보고 들었습니다. 저는 마술은 잘 알지 못합니다만, 그것은 분명히 마술입니다.”
“혼자서?”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티베리아에서 그의 뒤를 밟았습니다. 그는 어떤 집에 갔습니다. 나중에 그 집에 누가 사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강신술을 하는 어떤 사람이 산답니다. 그리고 거의 아침이 다 돼서 유다가 나왔을 때, 서로 주고받는 말을 듣고 그들이 서로 아는 사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대단히 많은데…전부가 외국인이 아닙니다. 그는 선생님이 그에게 주지 않으시는 힘을 마귀에게 청합니다. 이 때문에 저는 제 힘을 아버지께 희 생으로 바쳐서, 그가 더 이상 죄인이 되지 않도록 그에게 건네주십사고 청했습니다.”
“너는 그에게 네 영혼을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버지도 나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긴 침묵이 흐른다. 그런 다음 예수께서 피로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가자. 요한아, 내려가서 새벽까지 쉬자,”
“주님은 전보다도 더 침울하시군요! 제가 말씀드린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아니다. 나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너는 적어도 짐을 덜었다.…그리고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주님, 그를 피해야 합니까?”
“아니다. 염려 말아라. 사탄이 요한 같은 사람들에게는 해를 끼치지 못한다. 그들에게 공포를 준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은총을 빼앗아 가지는 못한다. 오너라. 아침에는 내가 말을 하겠다. 그런 다음 우리는 펠라로 간다. 녹아내린 눈과 요사이 온 비로 강물이 벌써 늘었으니까 서둘러야 한다. 달무리가 많이 져서 비가 오리라고 예고하고 있는 만큼 강물은 멀지 않아 불을 것이다….” 그들은 내려와서 옥상 밑에 있는 방으로 사라진다.

아침이다. 3월의 아침이다. 그래서 하늘에는 갠 부분과 구름이 갈마든다. 그러나 갠 부분보다는 구름이 더 많고, 구름이 하늘을 덮는 경향이 있다. 더운 바람이 간헐적으로 불어서 아마 고원 지방에서 오는 것 같은 먼지로 대기를 가려 무섭게 한다.
“바람이 바뀌지 않으면 물이 쏟아지겠는 걸”하고 베드로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집에서 나오면서 점잔을 빼며 말한다.
마지막으로 집 주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신 예수께서 나오시는데, 집주인도 예수와 같이 나온다. 일행은 어떤 광장 쪽으로 향한다. 몇 걸음가고 나서 그들은 병사들을 데리고 온 로마인 장교에 의하여 정지 당한다.
“나자렛의 예수가 당신이오?”
“그렇소.”
“뭘 하오?”
“군중들에게 말을 하오.”
“어디서?”
“광장에서.”
“반란을 선동하는 말이오?”
“아니오. 덕행에 대한 계명에 대해서 말하오.”
“조심하시오! 거짓말하지 마시오. 로마에는 거짓 신들로 이제는 진저리가 나오.”
“당신도 오시오. 그러면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거요.”
예수께 숙소를 제공한 사람이 개입해야 할 것이라고 느낀다. “아니, 언제부터 선생님께 이렇게 많은 질문을 하게 되었소?”
“이 사람은 모반자로 고발되었소.”
“모반자로? 선생님께서? 하지만 마리우스 세베루스, 당신 생각은 틀렸소! 이분은 세상에서 가장 온화하신 분이시오. 내가 보증하오.” 장교는 어깨를 들썩 하고 대답한다. “이 사람에게는 그게 낫소. 그러나 사람들이 백부장에게 그렇게 고발했소. 그럼 가시오. 이 사람은 통고를 받았소.” 그리고는 부하들과 같이 가려고 뒤돌아선다. “그렇지만 누가 그랬을까? 나는 이해할 수가 없는데!”하고 여러 사람이 말한다.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아라”하고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쓸데없는 일이다. 사람이 많이 있는 동안에 광장으로 가자. 그리고는 이곳에서도 떠나자.”
그곳은 장사를 하는 광장인 모양이다. 광장 둘레에는 가지가지 상품이 보관되어 있는 상점들이 있으므로, 장마당은 아니지만 거의 그렇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상점에 온다. 그러므로 광장에는 사람이 많은데, 어떤 사람이 저 분이 예수라는 신호를 하니, “나자렛 선생님”은 군중에 둘러싸이신다. 모든 계급과 모든 국적의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존경하는 마음으로 왔고, 어떤 사람들은 호기심으로 왔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겠다는 손짓을 하신다.
“저 사람 말을 듣세!”하고 어떤 상점에서 나오는 로마인이 말한다.
“징 징 우는 소릴 들으려고 가는 거야?” 하고 동료가 대답한다. “콘스탄시우스, 그렇게 생각하지 말게. 저 사람은 우리가 늘 듣는 연설가들 중의 한 사람보다는 이해하기가 더 쉬워.”
“내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평화! 에즈라서에 있는 에즈라 기도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오, 우리 하느님, 이런 일이 일어난 후에 이제 저희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당신의 계명들을 당신의 종들을 통해서 저희에게 알리신 그 계명들을 저희가 버렸으니….”
“말씀하시는 분, 멈추십시오. 연설 주제는 우리가 드리겠습니다”하고 군중 가운데로 길을 헤치고 오는 바리사이파 사람 몇이 소리를 지른다. 거의 동시에 무장을 한 호위가 다시 나타나서 가장 가까운 한구석에 가서 발을 멈춘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이제는 예수 앞에 와 있다. “선생님이 갈릴래아 선생님이십니까? 나자렛의 예수?”
“그럼 습니다!”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으니 하느님을 찬미합니다!”정말이지 그들은 너무도 증오에 넘치는 얼굴을 하고 있어 만난 것을 기뻐하는 것 같지 않다.…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이 말한다.”우리는 여러 날 전부터 선생 뒤를 쫓았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선생이 떠난 다음에야 도착하곤 했습니다.”
“왜 나를 따라 다니십니까?”
“그것은 선생이 선생님이시니까. 그리고 율법의 모호한 어떤 점에 대해서 선생의 설명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의 율법에는 모호한 점이 없습니다.”
“율법에는 없지요. 그러나 음!…그러나 율법에는 선생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덧붙임들’이 생겼습니다. 흠!…그래서 그것들이 모호함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기껏해야 그늘이지요. 그리고 그 그늘을 없애는 데는 이해력을 하느님께로 돌리기만 하면 됩니다.”
“아무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그늘 속에 남아 있습니다. 선생은 선생님이시지요. 흠! 그러니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무엇을 알고 싶습니까?”
“우리는 남자가 어떤 동기로 자기의 본 아내를 버려도 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이것은 자주 일어나는 일이고, 그때마다 그 일이 일어나는 곳에서는 시끄러워집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해도 되는 것인지 우리에게 문의하고, 우리는 경우에 따라서 대답합니다.”
“90 퍼센트는 기정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10 퍼센트는 인정을 하지 않는데,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인 경우나 당신들의 적인 경우이지요.”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모든 인간사에 그렇게 되니까요. 그리고 나는 셋째 등급을 하나 덧붙이겠습니다. 만일 이혼이 허락된다면, 그것이 더 잘 정당화될 등급입니다. 고칠 수 없는 문둥병이라든지, 종신징역의 선고를 받았다든지, 부끄러운 병이 걸렸다든지…하는 따위의 곤란한 경우의 등급입니다.”
“그러면 선생으로서는 그것이 절대로 허락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까
“나로서도, 지극히 높으신 분으로서도, 올바른 어떤 사람으로서도 그렇습니다. 당신들은 창조주께서 세상 시초에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다는 말을 읽지 못했습니까?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는 말을? 창조주께서는 그렇게 하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만일 원하셨더라면, 당신의 모습을 닮게 만드신 만물의 왕을 위해서 다른 생식 방식을 만드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다른 어떤 자연적인 방법과 다르면서도 역시 좋은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창조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부모를 떠나 제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루리라’ 그러니까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하나로 합쳐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두’몸이 아니라, 오직 ‘한’몸입니다. 하느님께서 ‘좋은 일’이라고 보셨기 때문에 합쳐 놓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됩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그것은 좋은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왜 모세가 이렇게 말했습니까? ‘어떤 남자가 아내를 얻었는데, 그 여자가 어떤 부끄러운 일로 인해서 남편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남자는 이혼장을 써서 아내의 손에 직접 건네주고 집에서 내보낼 것이다’ 하고?”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당신들의 마음이 냉혹하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명령으로 너무 중대한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때문에 모세는 당신들에게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여자는 짐승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짐승은 주인의 일시적 기분에 따라서, 또는 자유스러운 자연의 상황에 따라서 이러저러한 수컷에 맡겨지게 되어, 번식을 위하여 한 쌍이 되는 영혼 없는 몸이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의 아내들은 당신들과 같이 영혼이 있으며, 그 영혼을 당신들이 동정심 없이 짓밟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여자에 대한 단죄에서 ‘너는 남편의 권력에 복종할 것이고, 그가 너를 지배할 것이다’ 하는 말이 있지만, 이것은 정의에 따라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 자유롭게 존경할 만한 가치가 있는 영혼의 권리를 침해하는 압제에 의해서 이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허락되지 않는데 당신들이 아내를 버리면, 당신들은 아내의 영혼을 모욕하고, 당신들의 육체와 결합한 쌍둥이 육체를 모욕하고, 당신들이 정숙을 요구하면서 결혼한 아내라는 전체를 모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당신들은 맹세를 저버리고, 불명예스럽게 되고, 가치가 떨어지고, 때로는 타락해 가지고 아내에게로 가며, 어떤 기회든지 다 이용해서 아내의 감정을 상해 주고, 탐욕스러운 당신들의 격정을 마음대로 날뛰게 함으로써 당신들의 맹세를 계속 저 버립니다. 당신들은 아내를 매춘부를 만듭니다! 어떠한 동기로든지 당신들은 율법과 축복에 의해서 당신들과 결합한 아내와 헤어질 수 없습니다. 여자는 누가 소유하는 물건이 아니라, 하나의 영혼이며, 따라서 남자의 쾌락의 도구로서가 아니라 그의 필요불가결한 일부를 이루는 존재로서 인정받을, 당신들의 권리와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당신들이 이해할 때에 은총이 당신들에게 충격을 주는 경우에 한해서, 그리고 당신들의 마음이 너무 냉혹해서, 매춘부 모양으로 즐긴 후에 여자와 결혼하기를 원치 않는 경우에 한해서, 그들의 결합에 하느님의 축복 없이 같이 사는 두 사람의 스캔들을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만 당신들은 여자를 버릴 수 있습니다. 그때에는 결혼이 아니라 간음이기 때문인데, 그런 결합은 자연을 거슬러 없애거나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물리치기 때문에 흔히 자식이 오는 것으로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다른 경우에는, 어떤 경우에도 안 됩니다. 그것은 만일 당신들이 첩에게서 사생아들을 낳았으면 당신들이 자유로운 몸이면 그 여자와 결혼함으로써 스캔들에 종지부를 찍을 의무가 있습니다. 알지 못하는 아내의 불이익을 돌보지 않고 행한 간통은 오랫동안 다루지 않겠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돌로 쳐 죽이는 돌들이 있고, 지옥의 불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본처에 싫증이 나서 그를 내보내고 다른 여자를 얻는 사람에게는 한가지 판결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간통입니다. 또 이혼당한 여자를 얻는 남자도 간통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결합하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는 권리를 가로챘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눈으로 볼 때에는 결혼관계가 계속되고, 홀아비가 되지 않고 둘째 아내에게로 건너가는 사람은 저주를 받기 때문입니다. 또 자기 아내를 버린 다음, 그러니까 생활의 불안을 당하게 내버려서 빵을 얻기 위하여 새 결혼에 동의하게 만든 다음, 그 여자가 둘째 남편을 잃어 과부가 된 것을 다시 얻는 사람도 저주를 받습니다. 비록 그 여자가 과부라 하더라도, 당신들의 탓으로 간통을 했고, 그래서 당신들은 그의 간통을 배가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시험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 알아들었습니까?”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어쩔 줄 몰라하며 대답을 하지 못하고 간다.
“저 사람은 엄격하군. 저 사람이 로마에 가면, 그보다도 훨씬 더 냄새가 역한 진흙탕이 부글부글 괴고 있는 것을 볼 거야”하고 어떤 로마인이 말한다.
어떤 가다라 사람들도 중얼거린다. “그렇게까지 순결해야 한다면, 남자로 있는 것이 어려운 일인데!….”
또 어떤 사람들은 더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아내에 대한 남편의 처지가 그렇다면, 결혼하지 않는 것이 낫겠어.”
그리고 그들이 가다라의 사람들을 떠나 들판을 향하여 길을 다시 가기 시작할 때에 사도들도 같은 논리를 편다. 유다는 그에 대하여 경멸하는 태도로 말하고, 야고보는 경의를 가지고 숙고하면서 말한다. 예수께서는 두 사람에게 이렇게 대답하신다. “모두가 이것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또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다. 과연 어떤 사람들은 악습을 자유롭게 만족시키기 위해서 독신생활을 택한다. 어떤 사람들은 좋은 남편이 되지 못해서 죄를 지을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서 독신생활을 택한다. 그러나 관능성과 여자에 대한 올바른 욕망에까지도 사로잡히지 않는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것은 다만 몇몇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하고, 가장 자유롭고, 가장 천사 같은 사람들이다. 나는 하느님의 나라를 위하여 스스로 고자가 되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남자들 가운데에는 그런 상태로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고, 사람들이 그렇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나면서 그런 사람들은 동정을 자아내야 하는 불구이고, 사람들에 의해서 그렇게 되는 사람은 비난할 만한 폐습이다. 그러나 끝으로 셋째 부류가 있다. 자기 자신에게 폭력을 쓰지 않고, 따라서 이중의 공로로 하느님의 요청에 동의할 줄 알고, 천사들같이 살아서 이 세상의 버려진 제단위에 주님을 위한 꽃과 향이 있게 하는 자발적인 고자들의 부류이다. 이런 사람들은 그들의 고등 부분을 자라게 하려고 그들의 존재의 하등부분을 만족시키기를 거부하는데, 상등 부분으로 그들은 하늘에서 왕의 옥좌에 가장 가까운 화단에서 꽃피는 것이다. 그리고 내 너희들에게 분명히 말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지체가 잘린 사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어리석은 경멸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큰 존경의 대상이다. 이것을 알아 들어야할 사람은 알아듣고, 또 할 수 있으면 이것을 존중해라.” 사도들 중에 결혼한 사람들은 서로 수군거린다.
“무슨 일이냐!”하고 예수께서 물으신다.
“그러면 저희들은요?” 하고 바르톨로메오가 모두를 대신하여 말한다. “저희들은 이것을 몰라서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희들도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부터 너희들이 그렇게 되는 것이 금지된 것은 아니다. 너희 아내를 누이처럼 생각하면서 금욕을 하면서 살아라. 그러면 너희들은 하느님의 눈에 큰 공로를 세울 것이다. 그러나 비가오기 전에 펠라에 가도록 걸음을 재촉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