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가운데 3월의 밝은 새벽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대단히 불운한 사람이다. 자연이 봄에 다시 잠을 깨어, 첫번 날에 그랬을 것과 같이 다시 동정녀가 되고 소녀가 될 때의 그 가장 아름다운 우아함 가운데 하나를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봄의 짧은 새벽에 보여 주는 모든 것이 순수한 우아함이다. 이슬이 반짝이는 새로 돋아난 풀에서 태어나는 어린아이들과 같이 피는 작은 꽃에 이르기까지, 떠오르는 해의 첫번 미소에 이르기까지, 날개를 가볍게 스치는 소리와 함께 깨어나서, 하루의 그들의 모든 선율적인 대화를 예고하는 첫번째 의문사인 “짹!”하는 소리를 내는 새들에 이르기까지, 이슬의 작용과 사람이 없음으로 인하여 먼지와 연기와 사람의 몸의 발산물의 모든 더러움을 밤사이에 잃은 공기의 냄새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우아한 가운데를 예수와 사도들과 제자들이 걸어간다. 그들과 함께 알패오의 시몬도 있다. 그들은 나자렛 주위를 빙 둘러싸고 있는 야산들을 넘어 남동쪽을 향하여 가며, 급류 하나를 건너, 나자렛의 야산들과 동쪽의 산들 사이에 있는 좁은 평야를 건너지른다. 이 산들 못미쳐 원뿔대 모양의 다볼산이 있는데, 그 꼭대기는 놀랍게도 옆으로 본 우리네 헌병들의 모자를 연상시킨다.
다볼산에 이르렀다.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시며 말씀하신다.
“베드로와 제베대오의 요한과 야고보는 나와 같이 산에 올라가자. 너희 다른 사람들은 산을 끼고도는 길에서 헤어져 산 밑에 흩어져 복음을 전파하여라. 저녁 때쯤에 나는 다시 나자렛에 가고자 한다. 그러니 멀리 가지는 말아라. 평화가 너희와 함께 있기를.”
그리고 당신이 부르신 세 사람에게 “가자”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뒤를 돌아다보지도 않으시고 어떻게나 빠른 걸음으로 올라가기 시작하시는지 베드로는 예수를 따라가기가 힘들다.
잠깐 쉬는 곳에서 얼굴이 벌겋고 땀을 뻘뻘 흘리는 베드로가 말한다. “아니 우리가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산 위에는 집이 없는데요. 꼭대기에는 저 옛날 요새가 있는데, 그곳에 가셔서 전도하려고 하십니까?”
“그러면 다른 쪽으로 해서 올라왔을 것이다. 그러나 네가 보다시피 나는 그쪽으로 등을 돌리고 있다. 우리는 요새에 가지 않을 것이고, 거기 있는 사람들은 우리를 보지도 못할 것이다. 나는 내 아버지와 결합하고자 한다. 그리고 너희를 사랑하기 때문에 데리고 오기를 원하였다. 빨리 가자!”
“아이고! 주님! 조금 천천히 걸으면서 저희가 어제 듣고 본 것, 또 밤을 새워 했던 그 이야기를 하면 안 되겠습니까?”
“하느님과의 약속장소에는 항상 빨리 가야 한다. 시몬 베드로야, 가자! 저 위에 가서 너희들을 쉬게 하마.” 그러면서 다시 올라가기 시작하신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여기에다 네가 1944년 8월 5일에 본 거룩한 변모를 합쳐라. 그러나 그때 불러 준 것은 합치지 말고. 지난해의 거룩한 변모를 다 베낀 다음에는 M 신부가 지금 내가 네게 보여 주는 것을 베낄 것이다.”)
나는 내 예수님과 함께 높은 산 위에 있다. 예수님과 같이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있다. 그들은 더 높이 올라간다. 그러니까 눈길은 확트인 지평선으로 향하는데, 아름답고 고요한 날씨이기 때문에 멀리까지 세세한 것들을 분명히 볼 수 있다.
산은 유다의 산들 같은 한 떼의 산의 일부를 이루지 않고, 외따로 떨어져 서 있고, 우리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해서 말하자면 앞은 동쪽, 왼편은 북쪽, 오른편은 남쪽이며, 뒷편에 있는 남쪽에는 수백 보쯤 더 높은 꼭대기가 있다.
산은 매우 높아서 눈은 넓은 지평선을 바라볼 수 있다. 겟네사렛 호수는 하늘의 한 조각이 내려와 푸르름 속에 끼워져 있는 것 같고, 여러가지 색조(色調)의 에머랄드들 가운데 끼여 있는 달걀모양의 터키옥 같으며, 가벼운 바람에 떨고 주름이 잡히는 거울 같은데, 그 위로 팽팽하게 된 돛이 달린 배들이 연푸른 빛 물결 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채, 정말 먹이를 찾아 수면 위를 날아다니는 물총새가 나는 것 같은 우아함으로 갈매기들과 같이 재빨리 미끄러져 간다. 그리고 그 커다란 터키옥에서 핏줄이 하나 나오는데, 강변이 더 넓은 곳에는 더 젊은 파란색이고, 강기슭이 서로 다가서 있고, 물이 더 깊고 강의 시원한 물을 먹고 강가에서 힘차게 자라는 나무들이 드리우는 그늘 때문에 더 어두운 곳에는 더 짙은 파란색이다. 요르단강은 파란 들판에 그려놓은 거의 직선같이 보인다. 강 양쪽 평야에는 마을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어떤 것들은 집이 겨우 한 줌쯤 되고, 어떤 마을들은 더 넓어서 벌써 도시 냄새를 풍긴다. 큰길들은 푸르름 가운데 있는 누르스름한 줄들이다. 그러나 여기 산 쪽으로는 평야가 훨씬 더 잘 가꾸어지고 더 기름지며 매우 아름답다. 거기에는 밝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아름다운 햇빛을 받아 흥겨워하는 것 같은 여러 가지 빛깔의 농작물이 보인다.
팔레스티나의 위도를 고려하면 봄인 것 같고, 아마 3월인 것 같다. 많이 자랐지만 아직 푸른 밀이 청록색의 바다처럼 너울거리는 것을 볼 수 있고, 과일나무들 중에서 가장 철이 이른 나무들의 깃털장식 같은 가지들이 이 작은 식물의 바다 위로 희고 볼그레한 구름을 드리우고 있는 것이 보이며, 그리고 벌써 많이 자란 풀이 잘리고 꽃이 만발한 풀밭에서 양들이 풀을 를고 있는 것이 푸르름 가운데 사방에 싸여 있는 눈무더기 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바로 산 곁에 있어 산의 바탕을 이루는 야산들, 낮고 별로 넓지 않는 야산들 위에는 작은 도시 둘이 있는데, 하나는 남쪽에 있고, 또 하나는 북쪽에 있다. 매우 기름진 평야가 특히 그리고 더 넓게 남쪽으로 펼쳐진다.
예수께서는 작은 숲의 그늘에서 잠깐 멈추었다가 다시 올라가기 시작하신다. 잠깐 멈추신 것은 분명히 산을 오르는 것으로 눈에 띄게 피로한 베드로를 동정하셔서 허락하셨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거의 산꼭대기, 비탈 쪽에는 반원형으로 나 있는 나무들로 경계가 지어진 풀이 무성한 평평한 땅이 있는 곳으로 가신다.
“너희들은 쉬어라. 나는 저기 가서 기도하겠다.”
엄청나게 큰 바위를 가리키신다. 산에서 노출한 바위, 따라서 비탈 쪽이 아니라 안 쪽으로, 산꼭대기 쪽으로 있는 바위이다. 예수께서는 풀 위에 무릎을 끊으시고 머리와 손을 바위에 얹으시는데, 게쎄마니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가지실 그런 자세이다. 산꼭대기가 예수 위에 그늘을 드리우기 때문에 햇볕을 받지는 않으신다. 그러나 풀이 덮인 그곳의 나머지 부분은 그 아래 사도들이 앉아 있는 작은 수풀 그늘까지 햇빛이 환하게 내리비춘다. 베드로는 샌들을 벗어 먼지와 작은 조약돌을 털어내고, 이렇게 신발을 벗은 채로 피로한 발을 시원한 풀 속에 넣고, 비죽 튀어올라 그에게 베개 노릇을 하는 풀무더기에 머리를 얹고, 거의 누운 채로 있다. 야고보도 그가 하는 대로 따라 한다. 그러나 더 편안하게 있기 위하여 나무줄기를 하나 찾아, 겉옷을 걸친 등을 기댄다. 요한은 앉아 있으면서 선생님을 살펴본다. 그러나 그곳의 고요함과 살살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침묵과 피로에 그도 역시 못 견디어, 머리는 가슴으로 떨어지고, 눈꺼풀은 눈 위로 떨어진다. 세 사람 중 아무도 깊이 잠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을 취하게 하는 그 여름날의 졸음에 사로잡혀 있다.
너무나 강한 빛이, 햇빛까지도 사라지게 하고 퍼져서, 그들이 자리잡고 있는 푸른 덤불과 나무들 밑에까지 뚫고 들어와서 잠이 깨었다.
그들은 놀란 눈을 뜨고 변모하신 예수를 본다. 예수께서는 지금 내가 천국의 환시에서 뵐 때와 같으시다. 물론 거룩한 상처들이 없고 십자가의 깃발은 없다. 그러나 얼굴과 몸의 위엄은 같고, 얼굴과 몸의 빛남도 같으며, 짙은 붉은 빛깔에서 금강석과 진주로 된 비물질적인 천으로 변한 옷도 같은데 이 옷은 하늘에서 입으시는 예수의 옷이다. 예수의 얼굴은 별빛을 발하는, 그러나 매우 강한 별빛을 발하는 태양과 같고, 그분의 파란 눈이 거기서 빛을 발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영광이 키를 더 크게 한 것처럼 더 커 보이신다. 나는 이 높고 평평한 땅까지도 인광을 띠게 하는 빛 전체가 예수에게서 오는 것인지, 또는 예수 자신의 빛에 우주와 하늘에 있는 모든 빛이 그 주님께로 집중시킨 모든 밝음이 섞여 있는지는 말 못하겠다. 내가 아는 것은 그저 이것은 형언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뿐이다.
예수께서 지금은 서 계시다. 땅 위에 떠 계신 것 같기까지 하다. 예수와 푸른 풀밭 사이에는 일종의 빛나는 증기가 있고, 순전히 빛으로만 된 공간이 있고, 그 위에 예수께서 서 계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빛이 너무나 강해서 내가 잘 못 볼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예수의 발 아래에서 풀의 푸른 빛깔을 볼 수 없는 것이 어떤 때 화재에서 보는 것과 같이 흔들려서 파동을 일으키는 그 강한 빛에서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백열하는 흰 색깔의 파동이다. 예수께서는 얼굴을 하늘 쪽으로 들고 당신을 감격시키는 어떤 환영에 미소를 보내신다. 사도들은 예수께 대하여 거의 공포를 느끼고 예수를 부른다. 그들의 선생님이 어떻게나 변모하셨는지 이제는 선생님같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선생님! 선생님!”하고 가만히, 그러나 몹시 불안한 목소리로 부른다.
예수께서는 듣지 못하신다.
“선생님은 탈혼 중에 계시다”하고 베드로가 벌벌 떨면서 말한다. “대관절 뭘 보시는 걸까?”
세 사람은 일어났다. 그들은 예수께 가까이 가고 싶지만,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한다.
하늘에서 내려와 예수 곁에 자리 잡는 불꽃 두 개로 빛은 한층 더 밝아진다. 그 불꽃들이 높고 평평한 땅에 멎었을 때 그들의 베일이 벗겨지면서 거기에서 위엄있고, 빛나는 두 인물이 나온다. 한 사람은 나이가 더 많고, 날카롭고 엄한 눈길에 두 갈래가 진 긴 수염이 있다. 그의 이마에서는 빛으로 된 뿔 둘이 나와서, 그가 모세라는 것을 내게 일러준다. 또 한 사람은 더 젊고 마르고 수염이 나고 털이 많아 거의 세례자 같은데, 키와 야윈 것과 몸의 형태와 엄격이라는 면으로 세례자와 비슷하다고 하겠다. 모세의 빛은 예수의 빛과 같이 눈부시게 희고, 특히 이마의 빛살이 그런데, 엘리야에서 나오는 빛은 태양의 강한 불꽃과 비슷하다.
두 예언자는 사람이 되신 그들의 하느님 앞에서 공손한 태도를 취하고, 비록 예수께서 그들에게 허물없는 말투로 말씀하시지만, 그들은 공손한 태도를 버리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하겠다.
세 사도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떨면서 무릎을 끊는다. 그들은 쳐다보고 싶지만, 겁이 난다. 마침내 베드로가 말한다.
“선생님, 선생님! 제 말씀을 들으십시오.”
예수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베드로에게로 눈을 돌리시니, 베드로는 대담해져서 말한다.
“여기서 선생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모시고 있는 것이 기분 좋습니다. 좋다고 하시면, 선생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 초막 세 개를 만들겠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은 여기 있으면서 세 분의 시중을 들겠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를 또 바라다보시며 더 환히 웃으신다. 야고보와 요한도 사랑으로 얼싸안는 것 같은 눈길로 바라다보신다. 모세와 엘리야도 세 사람을 뚫어지게 본다. 그들의 눈은 반짝인다. 아마 마음을 꿰뚫는 빛살인 것 같다.
사도들은 감히 다른 말을 하지 못한다. 겁이 나서 입을 다물고 있다. 그들은 약간 취한 것 같고, 매우 놀란 것 같다. 그러나 구름도 아니고 안개도 아니고 빛살도 아닌 한 휘장이 영광스러운 세 분을 감싸고, 이미 세 분을 감싸고 있던 광막(光幕)보다도 한층 더 빛나는 광막 뒤로 갈라놓아 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되고, 힘차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울려퍼져 온 공간을 채우자, 세 사람은 얼굴을 풀에 대고 엎드린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베드로는 넓적 엎드려 부르짖는다.
“죄인인 제게 자비를 베푸십시오! 이것은 땅에 내려오는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야고보는 한 마디도 말을 못한다. 요한은 기절하려는 듯이 한숨을 지으며 중얼거린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다시 아주 잠잠해진 때에는 아무도 감히 머리를 다시 들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빛이 태양빛의 자연 상태로 돌아가 예수 혼자 남으신 것을, 붉은 옷을 입으신 여느 때의 예수님이 다시 되신 예수를 보여주는 것도 보지 못한다. 예수께서 미소지으시며 그들에게도 걸어가시어 그들을 흔드시고 만지시며 이름을 부르신다. “일어들 나거라! 나다. 두려워 말아라”하고 말씀하신다. 세 사람은 하느님의 천사가 그들을 지극히 높으신 분께 보여 드리려고 하나보다고 겁을 집어먹고 감히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죄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를 빌고 있기 때문이다.
“일어나라니까. 명령이다”
예수께서 위엄있게 되풀이하신다. 그들은 얼굴을 들고 미소지으시는 예수를 본다.“오! 선생님, 내 하느님!” 하고 베드로가 부르짖는다.
“선생님의 영광을 본 지금 저희가 어떻게 해야 살 수 있겠습니까? 저희가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은 지금 어떻게 해야 저희 죄인들이 사람들 가운데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
“너희는 내 곁에서 살면서 내 영광을 끝까지 보아야 할 것이다. 때가 가까웠으니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여라. 내 아버지이시고 너희 아버지이기도 하신 아버지께 순종하여라. 나는 사람들 가운데 있으면서 그들을 하느님께로 데려가기 위하여 왔으니까 이제는 사람들 가운데로 돌아가자. 가자. 이 시간을 기억해서 거룩하여라. 그리고 굳세고 충실하여라. 너희는 내 가장 완전한 영광에 한 몫 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너희가 본 것을 아무에게도, 너희 동료들에게도 말하지 말아라. 사람의 아들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 아버지의 영광으로 돌아가고 나면, 그때에는 말하여라. 그때에는 내 나라에 한 몫을 차지하기 위하여는 믿어야 하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엘리야가 선생님의 나라에 대한 준비를 시키기 위해서 오기로 되어 있지 않습니까? 선생들이 그렇게 말하는데요.”
“엘리야는 벌써 와서 주님께로 가는 길을 닦았다. 모든 것이 계시된 대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계시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그것을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때의 징조들과 하느님의 사자들을 보지 못하고, 알아보지도 못한다. 엘리야는 첫번째로 한 번 왔다. 그는 최후의 때가 가까웠을 때에 마지막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가도록 준비시키기 위해 두 번째로 한 번 또 올 것이다. 지금은 첫번째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오도록 준비시키려고 왔는데, 사람들이 그를 인정하려고하지 않고, 괴롭히고 죽였다. 사람들은 그들의 이익이 무엇인지 알아보고자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의 아들에게도 같은 일을 할 것이다.”
세 사람은 생각에 잠기고 슬퍼하며 고개를 떨어뜨린다. 그리고 예수와 함께 올라갔던 길로 해서 내려온다.
…그리고 중간에서 잠깐 쉬는 동안에 역시 베드로가 말한다. “아! 주님! 저도 어제 선생님의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왜 저희에게 이렇게 하셨습니까?’하고 말씀드리고, 또 ‘왜 저희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하고도 말씀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의 마지막 말씀이 영광을 본 기쁨을 저희 마음에서 지워버렸습니다! 오늘은 큰 두려움의 날입니다! 처음에 저희를 놀라게 한 것은 저희를 깨운 큰 빛이었습니다. 바로 저희 눈앞에서 산에 불이 붙었거나 달이 내려와서 고원에서 빛난 것보다도 더 강한 큰 빛이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선생님의 모습과, 날아올라 가시려는 것처럼 땅에서 떨어지신 선생님의 방식이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이스라엘의 죄들이 진저리가 나서, 아마 지극히 높으신 분의 명령으로 하늘로 돌아가시는 것이 아닌가 하고 겁이 났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모세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무서웠습니다. 그의 얼굴에 하느님의 빛이 어떻게나 강하게 반영되는지 그 시대의 사람들은 베로 얼굴을 가리지 않고는 쳐다볼 수가 없었는데, 그때에는 오직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지극히 행복하고 하느님으로 불타고 있는 영이지요. 그리고 엘리야는.…아이고 맙소사! 저는 제 최후의 순간이 온 줄로 생각했습니다. 제 일생의 모든 죄가, 아주 어려서 이웃집 식료품 저장실에서 과일을 훔치던 때에서부터, 최근에 선생님께 나쁜 조언을 한 마지막 순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죄가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얼마나 벌벌 떨면서 그 죄들을 뉘우쳤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그 두 의인이 저를 사랑하는 것같이 생각되었습니다.…그래서 감히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영들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에 그 분들의 사랑까지도 무서웠습니다. 그런 다음… 또 그런 다음… 두려움 중에 두려움! 하느님의 목소리! …야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저희들에게! 야훼께서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그리고 야훼께서는 선생님을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야훼께서! …저희들에게! …분명히 선생님의 힘으로만 저희 목숨이 남아 있습니다! …선생님이 저희를 만지시고, 선생님의 손가락이 쇠꼬챙이처럼 뜨거울 때 저는 최후의 공포를 느꼈습니다. 심판의 때가 와서 천사가 제 영혼을 빼앗아서 지극히 높으신 분께로 데려가려고 저를 건드리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어머니께서 선생님이 어제 말씀하신 그 시간을 보시고… 들으시고.…요컨대 그 시간을 사시면서 어떻게 돌아가지 않으셨습니까? 젊은 분이 혼자서, 저희 세 사람에게 이 모든 것을? 선생님의 영광을 보는 그 혜택을 모두에게 주시는 것이 좋지 않았습니까?”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죽음에 대해서, 그것도 사형을 받아서 죽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듣고 기절하기 때문에, 바로 그 때문에, 사람인 하느님이 내가 죽은 다음에 어떻게 되겠는지를 미리 알게 함으로써 그 시간을 위해서, 그리고 영원히 너희를 강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기억해서 때가 되면 말하도록 하여라.…알아들었느냐?”
“오! 예, 주님, 잊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또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무익할 것입니다. 그들은 저희를 취했다고 할 테니까요.”
다시 계곡을 향하여 걷기 시작한다. 그러나 어떤 곳에 이르자, 예수께서는 엔도르 방향으로 가는, 즉 제자들과 헤어지신 방향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는 가파른 오솔길로 방향을 바꾸신다.
“그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겠는데요”하고 야고보가 말한다. “해가 기울기 시작합니다. 그 사람들은 선생님이 그들과 헤어지신 곳에서 선생님을 기다리려고 모이고 있는 중일 겁니다.”
“이리 오너라. 그리고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말아라.”과연 관목지대가 지나고 가파르지 않은 비탈을 이루며 큰 길로 내려가는 목장이 나타났을 때, 그들은 제자들의 무리에 호기심 많은 여행자들과 어디서 왔는지 모를 율법교사들이 합쳐져서 산 밑에서 심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본다.
“아이고! 율법교사들! …게다가 벌써 말다툼을 하고 있구먼!”
베드로가 그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마지막 몇 미터를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내려온다.
아래에 있던 사람들은 그들을 보고 서로 그들을 가리킨다. 그러더니 예수께로 달려오기 시작하면서 외친다. “선생님, 대관절 어떻게 이쪽으로 오십니까? 저희들은 약속장소로 가려고 했었지만 율법학자들은 논쟁을 걸어서 저희를 붙들었고, 고민하는 아이 아버지는 애원으로 저희를 붙잡았습니다.”
“무슨 일로 논쟁을 하고 있었느냐?”
“마귀들린 사람 때문입니다. 저희가 그를 구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율법학자들이 저희를 비웃었습니다. 가리옷의 유다가 또 한번 해보았습니다. 유다에게는 그것이 명예를 거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그들에게 ‘당신들이 하시오’ 하고 말했더니, 그들은 ‘우리는 마귀를 쫓는 사람이 아니오’ 하고 대답했습니다. 우연히 가슬로- 다볼에서 오는 사람들이 지나갔는데, 그 사람들 중에는 마귀를 쫓는 사람이 두 사람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 효과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여기 그의 아버지가 선생님께 청하러 옵니다. 이 사람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과연 한 남자가 애원하면서 나아와 예수 앞에 무릎을 꿇는다. 예수께서는 비탈진 풀밭에 멈추어 서 계신다. 그래서 적어도 3미터 가량 길 윗편에 계시고, 따라서 모든 사람이 잘 볼 수 있다. 그 사람은 예수께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 저는 아들을 데리고 선생님을 찾으려고 가파르나움에 갔습니다. 제가 제 불행한 아들을 데리고 온 것은, 마귀들을 쫓아내시고 갖가지 병을 고치시는 선생님이 제 아들을 구해 주십사고 그런 것입니다. 그 애는 자주 벙어리 마귀에게 붙들립니다. 그 마귀가 그 애를 붙들면, 그 애는 목이 졸리는 짐승처럼 쉰소리 밖에 지르지 못합니다. 마귀는 그 애를 땅에 내동댕이칩니다. 그러면 그 애는 이를 갈고, 재갈을 씹는 말처럼 거품을 내면서 뒹굴고, 상처를 입거나 물에 빠지거나 불에 데거나 으스러져서 죽을 위험을 당합니다. 마귀가 그 애를 물 속이나 불 속에 집어던지거나 층계 아래로 굴러 떨어뜨린 것이 여러 번이었으니까요. 선생님의 제자들이 해보았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오! 지극히 인자하신 주님! 저와 제 아이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예수께서 “타락한 세대, 악마 같은 무리, 반역하는 무리, 믿지 않고 포악한 지옥의 백성, 내가 언제까지 너와 접촉하고 있어야 하겠느냐? 언제까지 너를 견디어야 하겠느냐”하고 외치실 때, 능력이 불같이 빛난다. 예수께서는 위엄이 있다. 그래서 아주 잠잠해지고, 율법학자들의 조롱도 그친다.
예수께서는 아이 아버지에게 말씀하신다. “일어나서 아들을 데려오시오.”
그 사랑은 갔다가 다른 사람들과 같이 돌아오는데, 그들 가운데 12~14세쯤 된 소년이 있다. 아름다운 소년이다. 그러나 멍한 사람처럼 좀 얼빠진 듯한 눈을 하고 있다. 이마에는 붉은 긴 상처가 있고, 더 아래에는 이전 상처가 아문 흰 자국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끄는 눈으로 뚫어지게 들여다보시는 예수를 보자마자. 소년은 쉰목소리로 부르짖고 전신이 뒤틀리기 시작하며, 거품을 물고 흰자위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을 치뜨면서 땅에 쓰러져, 간질병자 특유의 경련을 일으키며 땅바닥에 뒹군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가까이 가시려고 몇 걸음을 앞으로 나아가져서 말씀하신다.“언제부터 이런 일이 일어나오? 모든 사람이 듣게 크게 말하시오.”
둘러싼 군중이 다시 죄어들고, 율법학자들은 광경을 내려다보려고 예수보다 더 높이 올라가는데, 그 사람은 큰 소리로 말한다. “어려서부터 그렇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자주 불 속으로 넘어지고, 물에 빠지고, 층계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나무에서 떨어집니다. 마귀가 갑작스레 습격해서 이 애를 끝장을 내려고 그렇게 내던지기 때문입니다. 이 애는 흉터와 화상 자국투성이입니다. 아궁이의 불꽃으로 소경이 되지 않은 것만도 다행입니다. 어떤 의사도, 마귀 쫓는 사람도 이 애를 고치지 못했고, 선생님의 제자들도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굳게 믿는 것처럼 선생님이 어떻게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불쌍히 여겨 구원해 주십시오.”
“믿는 사람에게는 무엇이든지 허락되니까, 만일 당신이 그렇게 믿으면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소.”
“아이고! 주님, 믿고말고요! 그러나 만일 제 믿음이 아직도 부족하면, 그것이 완전해져서 기적을 얻도록 주님이 제 믿음을 더해 주십시오”
그 사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심한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아들 옆에 무릎을 꿇고 울면서 말한다.
예수께서는 몸을 일으키시고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신다. 군중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죄어드는 동안 큰 소리로 외치신다. “어린아이를 귀가 먹고 벙어리가 되게 하고 그를 괴롭히는 저주받은 마귀야, 내가 네게 명령한다. 이 아이에게서 나가서 다시는 들어가지 말아라!”
어린아이는 땅바닥에 누운 채 무섭게 뛰어오르고, 몸을 두 팔과 두 다리로 버티고 활처럼 휘며 비인간적인 고함을 지른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한 번 뛰어 올랐다가 몸을 돌려 배를 깔고 엎어지며, 풀에서 비죽 내민 돌에 이마와 입을 부딪혀 돌을 피로 붉게 물들이고는 꼼짝하지 않은 채로 있다.
“죽었다!”하고 여러 사람이 외친다.
“불쌍한 아이!” “불쌍한 아버지!”하고 가장 마음착한 사람들은 그들을 동정하며 말한다.
율법학자들은 냉소하며 말한다. “나자렛 선생이 당신을 잘 도와주었구려!” 또는 “선생님,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번에는 베엘제불이 선생을 초라하게 보이게 하는군요….” 하고 말하며 증오심을 품고 비웃는다.
예수께서는 아무에게도 대답하지 않으시고, 탄식하고 예수를 부르면서 아들을 뒤집어놓고 상처입은 이마와 입의 피를 닦아 주는 아버지에게도 대답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선생님은 몸을 숙여 어린아이의 손을 잡으신다. 그러니까 아이는 꿈에서 깨는 것처럼 한숨을 쉬며 눈을 뜨고, 일어나 앉아 미소를 짓는다. 예수께서는 그를 당신께로 끌어당기시고 일어서게 하시고 아버지에게 맡기신다. 그동안 군중은 열광하며 외치고, 율법학자들은 군중의 야유를 받으며 도망친다….
“그럼, 이제는 가자” 하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그리고 군중을 떠나보내신 다음 산을 돌아 이미 아침에 오셨던 길을 향하여 가신다.
예수께서 내게 말씀하신다.
“나는 내 영광을 묵상하도록 너를 준비 시킨다. 내일(예수의 거룩한 변모축일) 이 영광을 찬양한다. 그러나 나는 내 작은 요한이 그 영광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그것을 사실로 보기를 원한다. 나는 네 선생님의 슬픔과 그의 고통만을 알라고 너를 택하지는 않는다. 고통 중에 나와 함께 남아 있을 줄을 아는 사람은 내 기쁨에도 나와 함께 참여해야 한다.
나는 네게 자기를 나타내는 네 예수 앞에서 네가 내 사도들과 같은 감정을 가지기를 원한다.
절대로 교만하지 말아라. 교만하면 나를 잃는 것으로 벌을 받을 것이다.
내가 무엇이고, 또 네가 무엇인지들 끊임없이 기억하여라.
통회로 씻은 마음을 가지기 위하여 네 과오가 내 완전에 대한 끊임없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내게 아주 큰 신뢰도 가져야 한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두려워 말고 일어나라, 가자. 나는 사람들과 같이 있기 위하여 왔으니까 사람들 가운데로 가자. 이 시간을 기억해서 거룩하고 굳세고 충실하여라’하고. 나는 이 말을 너와 사람들 중에 내가 특히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나를 특별하게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한다.
나의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나를 드러내는 것은 너희를 들어올리기 위해서이지 너희를 잿더미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일어나라. 선물을 받은 기쁨이 너희에게 활기를 주어야지, 내가 너희에게 하늘을 보여 주었기 때문에 벌써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함으로써 정적주의(靜寂主義 quietismus, 몰리스노스와 페네롤 등이 주장한 이단설(異端說)(가톨릭대사전 참조).)의 즐거움속에서 너희를 무기력하게 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 가운데로 함께 가자. 나는 너희들이 나를 더 많이 도울 수 있도록 초인간적인 환영과 가르침으로 너희에게 초인간적인 사업을 하라고 권고하였다. 나는 너희를 내 사업에 참여시킨다. 그러나 나는 휴식을 알지 못하였고, 지금 알지 못한다. 악은 절대로 쉬지 않으므로 선도 원수의 일을 할 수 있는 대로 무효하게 만들기 위하여 항상 활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때가 완전히 이루어지면 우리도 쉴 것이다. 지금은 꾸준히 걸어야 하고, 하느님의 추수를 위하여 끊임없이 일하고 지치지 않고 소모되어야 한다. 끊임없는 나와의 접촉이 너희를 거룩하게 하고, 계속적인 내 가르침이 너희를 굳세게 하며, 내 특별한 사랑이 어떤 계략에 대해서도 너희를 충실하게 하기를 바란다. 계시를 가르치고 나서 그것을 믿지 않아서 때의 징조와 하느님의 사자들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가 되었던 옛날 유다교 교사들과 같이 되지 말아라. 거짓 그리스도의 세력이 전진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두 번째 내림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의 예고자들을 알아보아라. 그리고 너희들이 어떤 진리들을 초자연적인 정신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인간적인 이상 야릇함에 대한 갈망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내가 알기 때문에, 나 자신에게 스스로 의무로 부과했던 절도(節度)를 예외적으로 깨뜨리면서 너희에게 분명히 말 한다마는, 많은 사람이 거짓 그리스도에 대한 승리라고 생각하고, 이제는 평화가 가까웠다고 생각할 그것이 사실은 그리스도의 원수에게 다시 기운을 얻고, 그의 상처를 치료하고, 더 잔인한 투쟁을 위하여 그의 군대를 소집할 시간을 주는 일시적인 휴식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왕중의 왕이고, 정의로 심판하고 싸우고, 성실하고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며, 짐승과 그의 종들과 예언자들을 이기는 사람일 너희 예수의 ‘목소리들’인 너희들은 너희의 선을 알아보고 항상 그것을 따라라.
어떤 기만적인 외관에도 매혹되지 말고, 어떤 박해에도 용기가 꺾이지 말아라. 너희 ‘목소리’는 내 말을 말해야 한다. 너희의 삶은 이 사업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만일 너희가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예고자와 엘리야와 같은 운명, 피를 흘리는 운명이나 정신적인 고문으로 고통을 당하는 운명을 가지게 되거든, 그리스도와 그의 예고자와 그의 예언자의 운명과 공통적인 것이 될 장차 올 확실한 너희 운명에 미소를 보내라.
일과 고통과 영광에 있어서 동등한 운명이다. 이 세상에는 선생이요 모범 인내가 있고, 천국에는 상급이요 왕인 내가 있다. 나를 차지하는 것이 너희의 지복(至福)일 것이다. 그것은 고통을 잊는 일일 것이다. 그것은 어떤 계시도 너희로 하여금 이해하게 하기에 아직 불충분한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은 내세생활의 기쁨은 아직 육체와 결합하여 있는 인간의 상상적인 가능성을 초월하는 것이 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