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호수가 황혼의 불로 온통 붉게 물들여진 바로 그 시간에 그들이 가파르나움으로 돌아온다. 그들은 만족하다. 서로 이야기들을 한다. 예수께서는 말씀을 별로 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미소를 지으신다. 그들은 만일 심부름꾼이 더 정확하였더라면 길을 덜 걷게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피로의 보상을 받기도 하였다고 말한다. 그것은 한떼의 어린아이를 둔 아버지가 죽음이 이미 가까웠었고 몸이 식기 시작하던 순간에 병이 고쳐졌기 때문이었고, 또 이제는 돈이 아주 없지도 않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마련해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했었지!”하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그런데 그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의 옛날 애인인가?” 하고 필립보가 묻는다.
“그런가 봐.…사람들이 우리에게 말한 것으로는….”하고 토마가 대답한다.
“주님께는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했습니까?”하고 알패오의 유다가 말한다.
예수께서는 회피하는 태도로 미소 지으신다.
“나는 친구들하고 티베리아에 갈 적에 그 사람이 마리아와 같이 있는 걸 여러 번 보았어”하고 마태오가 잘라 말한다.
“그래요, 선생님. 저희를 만족시켜 주세요.…그 사람이 병을 고쳐달라고만 청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용서해 달라고도 청했습니까?”하고 알패오의 야고보가 묻는다.
“무슨 쓸데없는 질문이야! 대관절 주님이 은총을 베푸시기 위해서 뉘우침을 요구하지 않으시는 때가 언제야?” 하고 가리옷 사람이 알패오의 야고보를 약간무시하며 말한다.
“내 동생이 어리석은 말을 하지는 않았어. 예수님은 병을 고쳐 주시거나 해방하시거나 한 다음 ‘가서 다시는 죄짓지 말라’고 말씀하신단말이야”하고 알패오의 타대오가 대답한다.
“그렇지만 그건 선생님이 벌써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뉘우침을 보시기 때문이야”하고 가리옷 사람이 대꾸한다.
“마귀들린 사람들에게는 뉘우침도 없고, 해방되고자 하는 의지도 없어. 그것을 우리에게 증명한 사람은 하나도 없어. 모든 경우를 다 생각해 보게. 그 사람들은 도망을 치든가 자기들이 원수인 것처럼 나타내든가 하고, 또는 그 두가지 중의 한가지를 해보려고 하다가 부모들이 막기 때문에만 그렇게 못했다는 걸 알게 될 걸세”하고 타대오가 대꾸한다.
“또 예수님의 능력이 막기도 하고”이렇게 열성당원이 덧붙인다. “그렇지만 그때에는 예수님이 마귀들린 사람의 뜻을 대리하는 부모들의 뜻을 참작하시는 거야. 마귀들린 사람은 마귀가 어떻게 하는 것을 막지만 않으면 해방되기를 원할 거야.”
“아이고! 꼬치꼬치 캐기도 하는구먼! 그럼 죄인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하겠어? 선생님은 그 사람들이 마귀 들리지 않았어도 같은 말투를 쓰시는 것 같은데”하고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말한다. “나한테는 선생님이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어. 그런데 나는 내 상태에 대해서 아직 한 마디도 말씀을 드리지 않았었단 말이야”하고 마태오가 지적한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자네 마음속을 보고 계셨어”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언제나 자기 말이 옳다고 내세우고자 하는 가리옷 사람이 말한다.
“그렇다고 해둬! 그렇지만 들리는 말로는 대단한 방탕자이고 또 큰 죄인이었다는 그 사람이 마귀들린 사람은 아니었어. 아니 그보다도 마귀들린 사람은 아니면서도 그의 모든 죄와 함께 마귀를 소유자로는 아니더라도 주인으로는 모시고 있었단 말이야. 그 사람이 죽어가고 있었어. 그렇지만 요컨대 그 사람이 무엇을 청했냐 말이야.…우리는 지금 구름 속을 헤매고 있는 것 같단 말이야.…우리는 결국 아직도 첫번째 문제에 그대로 매달려 있는 셈이야”하고 베드로가 말한다. 예수께서 그를 만족시켜 주신다. “그 사람은 아주 마음 놓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 나와 단둘이만 있고자 했다. 그 사람은 이내 그의 건강상태 이야기를 하지 않고.…그의 정신 상태를 털어 놓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죽어갑니다. 그러나 선생님을 더 빨리 모시기 위해서 믿게 한 것 같은 상태에는 아직 이르지 않았습니다. 제가 낫기 위해서는 선생님의 용서가 필요합니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만일 선생님께서 저를 고쳐 주지 않으시면, 저는 체념하겠습니다. 마땅히 그럴 만한 짓을 했으니까요. 그러나 제 영혼을 구해 주십시오.’그러면서 그의 수많은 죄를 내게 고백했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줄줄이 이어진 죄였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얼굴은 기쁨으로 빛난다. “그런데 거기 대해서 미소를 지으십니까. 선생님? 이상한데요!”하고 바르톨로메오가 지적한다.
“그렇다, 바르톨로메오야. 내가 거기에 대해서 미소를 짓는 것은 이제는 죄가 없어졌기 때문이고, 또 죄와 더불어 구속한 사람의 이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사도가 여자였다.”
“선생님의 어머니!”하고 여럿이 말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쿠자의 요안나요! 그들이 자주 티베리아에 갔으면 어쩌면 그 사람이 요안나를 아는지도 모르지요”하고 말한다. 예수께서는 머리를 저으신다. 그러니까 그들은 “그럼 누굽니까?” 하고 묻는다.
“라자로의 마리아이다”하고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마리아가 여기 왔습니까? 그럼 왜 저희들 중의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았습니까?”
“오지는 않았다. 마리아는 이전 공범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나는 편지들을 읽었다. 편지는 모두가 같은 애원을 하는 것이었다. 자기의 말을 들어, 자기가 구속된 것과 같이 구속되라고. 죄를 짓는데 자기를 따랐던 것처럼 선을 행하는 데도 자기를 따르라고 애원하고, 그의 영혼을 유혹한 것으로 인한 가책을 마리아의 영혼에서 덜어 달라고 눈물 어린 말로 청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마리아는 그를 회개시켰다. 도시의 유혹을 피하기 위하여 별장으로 가서 은거할 정도로 말이다. 그의 육체적인 상태보다는 오히려 그의 가책에서 더 많이 오던 병이 그를 준비시켜 은총을 받게 했다. 자 이렇게 된 것이다, 이제는 만족하냐? 이제는 내가 왜 미소짓고 있었는지 알겠느냐?”
“예”하고 모두가 대답한다.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 혼자 떨어져 계시려는 것처럼 성큼성큼 걸으시는 것을 보고는 자기들끼리 떠들기 시작한다.…
그들이 벌써 가파르나움이 보이는 곳에 왔는데, 그때 그들이 가는 길과 막달라에서 호수를 끼고 오는 길이 만나는 네거리에서 티베리아서 복음을 전하면서 오는 제자들과 마주친다. 나자렛에서 여자들과 같이 예루살렘으로 간 마륵지암과 목자들과 마나헨을 뺀 모든 제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올 때에 그들과 합류하고, 게다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새로운 개종자들을 데리고 온 몇몇 구성원 때문에 더 많아지기까지 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다정스럽게 인사하신다. 그러나 곧 다시 떨어져 몇 걸음 앞서 가시며 명상과 깊은 묵상기도에 잠기신다. 한편 사도들은 제자들, 특히 가장 영향력 있는 제자들, 즉 스데파노, 헤르마, 사제 요한, 율법학자 요한, 디모네아, 엠마오의 요셉, 헤르마스테아(내가 이해하기로는 이 사람은 완덕의 길로 날아가는 모양이다), 갈릴래아 베들레헴의 아벨 등과 합류한다. 아벨의 어머니는 다른 여 제자들과 같이 군중에 끼어 있다. 제자들과 사도들은 헤어진 뒤로 일어난 일에 대하여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는다. 따라서 오늘 있은 병나음과 회개 이야기를 하고 물고기 아가리 속에 들어 있던 스타데르 이야기도 한다.…이 마지막 기적은 그것의 근원이 된 상황 때문에 큰 화제거리가 되어, 마른 풀에 붙는 불처럼 이 줄에서 저 줄로 퍼져 나간다.…
예수께서 사도들과 제자들에 둘러싸이셔서 시골길을 가시는 것이 보인다.
갈릴래아 호수는 별로 멀지 않은 곳에서 봄이나 가을의 아름다운 태양 아래서 고요하고 파랗게 빛나고 있다. 봄이나 가을의 태양이라고 한 것은 여름의 태양처럼 강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봄인 것 같다. 그것은 자연의 매우 신선하고, 가을에 볼 수 있는 것 같은 연한 금빛색조가 없기 때문이다.
저녁이 가까워지자 예수께서는 당신을 환대하는 집으로 물러가시는 것 같다. 따라서 벌써 나타나는 것이 보이는 도시를 향하여 가신다. 자주 그러는 것처럼 예수께서는 제자들보다 몇 걸음 앞서 가신다. 하루동안 전도를 하신 다음 조용한 것이 필요하여 두세 걸음만 앞서 가시고 그 이상은 아니지만, 외따로 당신 생각에 잠기시기에는 넉넉하다. 예수께서는 틀림없이 어떤 덤불에서 꺾으신 것 같은 푸른 나뭇가지 하나를 오른손에 드시고 당신 생각에 골똘히 잠기셔서 길을 가시며, 둑을 따라난 길에 있는 풀들을 후려치신다.
예수 뒤에서는 이와 반대로 제자들이 힘찬 어조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들은 그날 일어난 일들을 환기시키는데, 남의 결점과 악의를 평가하는 것을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성전을 위하여 조세를 받는 책임을 진 사람들이 예수께 돈을 받으려고 하였다는 사실을 모두가 다소간 비난한다.
언제나 과격한 베드로는 메시아는 조세를 바칠 의무가 없기 때문에 그것은 독성(瀆聖) 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당신이 당신 자신께 돈을 내시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야”하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옳지 않은 것이, 그런 다음 그들이 우리 선생님이 메시아가 아니시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독성이 된단 말이야.”예수께서 잠깐 돌아서시어 말씀하신다. “시몬아, 시몬아, 나를 의심하는 사람은 너무도 많을 것이다! 내게 대한 그들의 믿음이 확실하고 흔들린다고 믿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있을 것이다. 시몬아. 형제들을 판단하지 말고, 우선 너 자신을 판단하여라.”
유다는 창피해서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는 베드로에게 빈정거리는 미소를 띠고 말한다.”그건 자네에 대한 말씀이야. 자넨 나이가 제일 많기 때문에 언제나 석학(碩學)인 체하려고 한단 말이야. 그러나 나이에 따라 공로를 판단해야 한다는 법은 없어. 우리 중에는 지식과 사회적 지위가 자네보다 나은 사람이 있단 말이야.”
각자의 공로에 대한 토론이 시작된다. 어떤 사람은 최초의 제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자랑하고, 어떤 사람은 예수를 따르기 위하여 버린 지위에 그의 공로의 근거를 두고, 어떤 사람은 자기처럼 세리의 지위에서 제지의 지위로 넘어와서 회개한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자기만큼 권리를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말한다. 토론은 계속된다. 그런데 내가 사도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염려가 없다면, 토론이 참다운 소송의 모양을 띠게 되었다고 말하겠다.
예수께서는 거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신다. 아무것도 이제는 들리지 않는 것 같다. 그동안 일행은 도시의 첫번째 집들이 있는 데에 왔는데, 이제 보니 가파르나움이다. 예수께서는 계속 가시고, 다른 사람들은 뒤에서 여전히 토론을 하고 있다.
일곱 여덟살 먹은 어린아이 하나가 깡총깡총 뛰면서 예수의 뒤로 달려간다. 그 아이는 몹시 흥분한 사도들의 무리를 지나쳐 예수 계신데로 간다. 그 아이는 짧고 아주 곱슬곱슬한 곁은 갈색 머리의 아름다운 소년이다. 그의 갈색 얼굴에는 영리한 까만 두 눈이 반짝인다. 그애는 예수를 잘 아는 것처럼 선생님을 친숙한 말투로 부른다. 그는 “예수아저씨, 아저씨 집까지 같이 가두 괜찮아”하고 말한다. “네 엄마가 그걸 아니?” 하고 예수께서 다정스럽게 미소를 띠고 아이를 보시며 말씀하신다.
‘엄마가 알아.”
“정말?” 예수께서는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들여보시며 미소를 띠고 물으신다.
“응, 예수 아저씨, 정말이야.”
“그럼, 오너라.”
어린아이는 좋아서 깡총 뛰어서 예수께서 내미시는 왼손을 잡는다. 그 아이는 사랑 가득한 신뢰로 그의 작은 갈색 손을 내 예수의 긴 손안에 놓는다. 나도 그렇게 했으면 참 좋겠다!
“예수 아저씨, 재미있는 비유 하나 얘기해 줘”하고 어린아이는 선생님 곁에서 깡총거리며, 기쁨으로 환해진 작은 얼굴로 아래에서 올려다보면서 말한다.
예수께서도 명랑한 미소를 지으시며 아이를 내려다보신다. 그 미소로 인하여 예수의 입이 벙싯 벌어지는데, 입은 햇빛에 금처럼 반짝이는 다갈색을 띤 금빛 콧수염과 수염에 가려져 있다. 예수께서 어린아이를 내려다보실 때에는 짙은 사파이어색의 눈이 기쁘게 웃는다. “비유를 가지고 뭘 하니? 그건 장난감이 아닌데.”
“그건 장난감보다 더 좋아. 내가 자러 갈 땐 그 생각을 해. 그리구 그 꿈을 꿔. 그리구 다음날 그걸 기억하구. 착하게 되려구 그걸 생각해. 비유는 나를 착하게 만들어.”
“그럼, 아저씨가 말해 준 비유를 전부 말해 볼까?”
“베냐민, 너는 어른들보다 더 착하다. 어른들은 잊어버리거든. 상으로 비유를 말해 주마.”
어린아이가 이제는 깡총거리지 않는다. 그는 어른처럼 주의를 기울이고 점잖게 걸어가며 한 마디도, 예수의 목소리의 억양까지도 놓치지 않고, 발이 어디를 디디는지도 상관하지 않고 예수를 주의 깊게 쳐다본다.
“매우 착한 어떤 목자가 이 세상 어떤 곳에 마음씨가 별로 착하지 않은 목자들이 버린 양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양들은 험한 길과 독이 있는 풀들이 있는 풀밭에서 위험한 지경에 있었고, 점점 더 어둡고 움푹 팬 땅 속으로 가고 있었다. 그 목자는 그곳으로 가서, 전 재산을 희생해서 그 양들과 어린 양들을 샀다.
그 목자는 그 양들을 그의 나라로 데려오려고 했다. 그 목자는 이스라엘의 많은 왕이 그랬던 것처럼 왕이었었다. 그의 나라에서는 그 양들과 어린 양들이 건강에 좋은 풀밭을 많이 가지고, 시원하고 깨끗한 물을 얼마든지 가지고, 안전한 길과 도둑과 사나운 늑대에서 보호하는 튼튼한 보호처가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그 목자는 그의 양들과 어린 양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나는 너희들을 구원하고, 너희들이 다시는 괴로워하지 않고, 함정과 고통을 다시는 겪지 않을 곳으로 데려가려고 왔다. 내가 너희를 무척 사랑하고, 또 너희를 얻기 위해서 가지가지로 희생을 했으니까 나를 사랑하고 나를 따라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희생이 괴롭게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나를 따라 오너라, 가자. ‘그리고 목자는 앞에 서고 양들은 뒤에 따라가며 기쁨의 나라로 가는 길을 떠났다. 목자는 양들이 그를 따라오는지 보고, 피로한 양들을 격려하고, 신뢰를 잃는 양들에게 용기를 주고, 병든 양들을 구원하고, 어린 양들을 쓰다듬어 주려고 줄곧 돌아다보았다. 목자는 양들을 몹시 사랑했다. 양들에게 빵과 소금을 주었다. 목자는 샘물이 건강에 좋은 것인지 알렸고 우선 맛을 보고, 그것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서 강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양들은 – 베냐민아, 이걸 믿겠니? – 양들은 말이다. 얼마 후에 싫증이 났다. 처음에는 한 마리가, 다음에는 두 마리, 또 그 다음에는 열 마리, 또 그 다음에는 백 마리가 뒤에 처져서 풀을 뜯어먹어, 피곤하고 배가 불러서 움직이지를 못하고 먼지와 진음 속에 누울 정도로 뚱뚱해지게 까지 되었다. 또 어떤 양들은 목자가 ‘그러지 말아라’하고 말하는데도 낭떠러지 위에서 몸을 구부렸다. 더 큰 위험이 있는 곳에서 양들이 그리로 가는 것을 막으려고 목자가 거기 가서 서 있으면, 어떤 양들은 그 건방진 머리로 목자를 떼밀고, 밑으로 떨어뜨리려고 한 것이 여러 번 있었다. 이렇게 하다가 많은 양이 움푹 파진 곳으로 떨어져서 불쌍하게 죽었다. 또 어떤 놈들은 뿔과 머리로 싸워서 서로 죽였다. 어떤 양 한마리만이 한 번도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 어린 양은 매애매애 하고 울며 뛰어 다녔고, 그렇게 우는 것으로 목자에게 ‘난 아저씨를 좋아해’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어린 양은 착한 목자 뒤를 따라 뛰어 갔다. 그리고 그들의 목자의 나라에 이르렀을 때에는 목자와 충실한 어린 양, 이렇게 둘밖에 없었다. 그때에 목자는 ‘들어가라’ 하고 말하지 않고, ‘이리 오너라’하고 말하면서 두 팔로 가슴에 꼭 껴안고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면서 모든 신하들과 백성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자, 이 어린 양은 나를 사랑한다. 나는 이 어린 양이 영원히 나와 함께 있기를 원한다. 이 어린 양은 내 마음에 드는 양이니, 너희도 사랑하여라’ 하고.
베냐민아, 비유는 끝났다. 이제는 이 착한 목자가 누군지 말할 수 있겠니?”
“그건 예수 아저씨야.”
“그리고 그 어린 양은 누구냐?”
“예수 아저씨, 그건 나야.”
“그렇지만 이젠 내가 떠날 테니까 네가 나를 잊어버릴 거다.”
“예수 아저씨, 아니야. 나는 아저씨를 좋아하니까 잊어버리지 않을 거야.”
“네가 나를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되면 네 사랑이 없어질 거다.”
“나는 아저씨가 내게 말해 준 걸 내게 말할 거야. 그러면 아저씨가 여기 있는 것 같을 거야. 나는 이렇게 아저씨를 사랑하고, 아저씨 말을 들을 거야. 그리고 예수 아저씨, 말해 봐. 아저씨는 베냐민을 기억할거야?”
“언제나.”
“어떻게 해서 기억할 거야?”
“나는 네가 나를 사랑하고 내 말을 듣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나한테 말할 거다. 이렇게 해서 너를 기억할 거다.”
“그러면 아저씨 나라를 나한테 줄 거야?”
“네가 착하게 살면 주마.”
“나는 착한 사람이 될 거야.”
“어떻게 하겠니? 인생은 긴데.”
“그렇지만 아저씨 말은 참 좋아. 내가 그 말을 나한테 하고, 그 말이 하라는 대로 하면, 내가 사는 동안 늘 착하게 살 거야. 그런데 나는 아저씨를 사랑하니까 그렇게 할 거야. 사람하면 착하게 되는 거가 힘들지 않아. 나는 엄마를 많이 사랑하니까 엄마의 말을 듣는 거가 힘들지 않아. 나는 아저씨를 많이 사랑하니까 아저씨를 위해서 말을 잘 듣는 것이 나한테 힘들지 않을 거야.”
예수께서는 태양에보다도 사랑에 더 불타는 작은 얼굴을 들여다 보시려고 걸음을 멈추셨다. 예수의 기쁨이 어떻게나 강렬한지, 그분의 마음속에 또 하나의 다른 태양이 켜져서 눈동자를 통하여 사방으로 퍼지는 것 같다. 예수께서는 몸을 굽혀 아이의 이마에 입맞춤을 하신다.
예수께서는 앞에 우물이 있는 수수한 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셨다. 그런 다음 우물 옆에 가 앉으신다. 그리고 이리로 제자들이 와서 합류한다. 그들은 아직도 각자의 특권을 따지고 있는 중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바라다보시고 나서 부르신다. “내 둘레로 오너라. 그리고 너희들의 공로를 끊임없이 찬양하고, 그 공로에 어울리는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생각하는 너희들, 오늘의 마지막 교훈을 들어라. 이 어린아이를 보느냐? 이 어린아이는 너희들보다 더 진리를 가지고 있다. 그의 순진함은 그에게 내 나라의 문을 여는 열쇠를 준다. 이 어린아이는 그의 아주 어린아이다운 순진함으로 사랑 안에 야말로 위대하게 되는 힘이 있고, 사랑으로 순종하는 데에 내 나라에 들어가는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일 너희가 이 죄없는 어린아이들이 들어가는 곳에 이르기를 원하면, 순박하고 겸손하여라. 그리고 내게만 주지 않고 너희들끼리도 서로 나누던 사랑으로 사랑하며, 내 모든 말에 이 말에까지도 순종하여라. 어린아이들에게 배워라. 아버지께서 현자들에게 드러내 보이시는 것보다도 더 어린아이들에게 진리를 드러내 보이신다.”
예수께서는 베냐민을 당신 무릎 앞에 세우시고, 그의 손을 당신 어깨에 얹게 하시고 말씀하신다. 이 순간에는 예수의 얼굴이 대단히 위엄이 있다. 예수께서는 정색을 하고 계신다. 노기를 띠지 않으셨지만 정색을 하고 계신다. 정말 선생님이시다. 마지막 햇살이 예수의 금발을 후광으로 둘러싼다.
환영이 내 눈에는 여기서 그치고, 내 고통 중에 즐거움을 가득 안겨주었다.

그러니까 제자들은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들의 수로 보아서도 그렇고, 경의로도 그렇고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집단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선생님이 그렇게 하라고 권하지 않으시면 결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나는 선생님이 상냥하고 친밀하게 대하시는데도 그들이 항상 큰 존경과 큰 조심성을 가지는 것을 알아본다. 제자들 가운데 자기가 첫째라고 말할 수 있을 이 사악까지도 어떤 미소가, 적어도 선생님의 어떤 미소가 선생님 가까이 오라고 그를 부르기 전에는 멋대로 예수께로 가는 일이 절대로 없다.

이것은 많은 사람이 초자연적인 것을 다루는 버릇없고 거의 익살스러운 태도와는 좀 다르지 않느냐?…이것은 내가 하는 논평 중의 하나인데, 이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우리와 동등한 존재인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들이 우리를 조금이라도 초월하면 가지지 않는 태도를 우리를 초월하는 것들에 대해서 가진다는 것은 내가 좋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계속하기로 하자….

그러니까 제자들은 저녁식사에 볼 생선과 또 빵과 그밖의 필요한 것을 사기 위하여 호숫가에 흩어졌다. 제베대오의 야고보도 돌아와서, 옥상에 앉으셔서 발 앞에 쪼그리고 앉아 즐겁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계신 선생님을 부른다.…예수께서 일어나셔서 난간 위로 몸을 구부리신다.
야고보가 말한다. “선생님, 물고기가 참 많습니다! 제 아버지는 선생님이 오신 것이 그물에 강복이 되었다고 하십니다. 보세요, 이건 우리 몫입니다.” 그러면서 은빛나는 물고기 바구니를 보인다.
“그의 너그러움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분께 은총을 주시기를. 그것을 조리하여라. 그리고 저녁식사가 끝난 다음에는 제자들과 같이 호숫가에 가자.”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한다. 늦게 뜨는 달이 뜰 때까지는 호수가 검다. 호수가 보이지는 않고, 그 속삭임만이, 즉 호숫가의 바위들에 부딪는 물의 찰랑거리는 소리만이 들린다. 동방(東方)의 밤의 터무니없이 많은 별들만이 고요한 수면에 비친다. 그들은 예수께서 앉아 계신 엎어놓은 작은 배 둘레에 둥그렇게 앉는다. 여기 원 한가운데에 갖다놓은 배의 현등(舷燈)들이 제일 가까운 얼굴들을 겨우 비춘다. 예수의 얼굴은 예수의 발 앞에 놓인 현등으로 밑에서 환히 비추어진다. 이렇게 하여 예수께서 이 사람이나 저 사람에게 말씀하실 때 모두가 볼 수 있다. 처음에는 격식을 차리지 않은 친밀한 회화이다. 그러나 이내 지시의 어조를 떤다. 예수께서 솔직하게 그 말씀을 하기까지 하신다.  “와서 들어라. 얼마 안 있으면 우리가 헤어진다. 그래서 너희를 도야(陶冷)하기 위하여 교훈을 주고자 한다.
오늘 너희들이 토론하는 것을 들었는데, 항상 사랑을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니었다. 너희들 중의 첫번 사람들에게는 내가 벌써 지시를 주었다. 그러나 그것을 너희들에게도 주고자 한다. 이 지시는 첫번에 들은 사람들이 또 들어도 해롭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은 어린 베냐민이 내 무릎 앞에 있지 않고, 제 침대에서 자면서 죄없는 꿈을 꾸고 있다. 그러나 그의 천진난만한 영혼은 그대로 우리 가운데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베냐민이나 다른 어떤 어린이가 너희들에게 본보기 노릇을 하려고 여기 있다고 가정하여라. 너희들은 모두 마음속에 고정관념을 하나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하늘나라에서 첫째가 된다는 것이다. 또 호기심 하나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누가 첫째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끝으로 위험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네가 하늘나라에서 첫째이다’ 하는 말을 호의가 넘치는 동료들이나 선생님에게서 듣고자 하는 아직 인간적인 소원이다. 특히 선생님에게서 그런 말을 듣고자 하는 것은 너희가 그의 진실성과 미래에 대한 지식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냐? 질문이 너희 입술에서 떨고 있고, 너희 마음 속 깊은 곳에 살아 있다. 선생님은 비록 인간적인 호기심을 들어주는 것을 몹시 싫어하지만, 너희들의 이익을 위해서 이 호기심을 받아들인다. 너희들의 선생님은 소란한 장마당에서 사람들이 동전 두닢을 내고 물어보는 협잡꾼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자기 자신을 지도하는지’알기 위하여 미래를 알고자 하는 편협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 대답하기 위하여 점쟁이 노릇을 해서 돈을 버는 피톤( Python. 신탁(神託)을 말하던 괴사(怪蛇)로 아폴로에게 죽음을 당했다. 그리이스 신화)의 귀신이 들린 사람도 아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인도하지 못하고, 사람이 하느님께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하느님께서 인도해 주신다! 또 예언된 미래를 변경할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미래를 아는 것이나, 안다고 믿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즉 그분의 자비가 우리를 도와주시도록 아버지이시고 주님이신 분께 기도하는 것이다. 나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마는, 신뢰하는 기도는 벌을 강복으로 바꿀 수가 있다. 그러나 사람으로서, 또 인간적 인 방법으로 미래를 바꿀 수 있기 위하여 사람들의 도움을 청하는 사람은 도무지 기도를 할 줄 모르거나 기도할 줄을 아주 잘 모른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 호기심이 너희에게 좋은 교훈을 줄 수가 있기 때문에, 비록 내가 호기심 있고, 불손한 질문은 몹시 싫어하지만, 그 물음에 대답하겠다. 너희들은 ‘우리 중에서 누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한가?’ 하고 서로 물었다.
나는 ‘우리 중에서’라는 한계를 없애고, 질문을 현재와 미래의 전세계의 한계로 확대해서 이렇게 대답한다.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작은 사람, 즉 사람들이 ‘가장 작은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순박하고, 겸손하고, 신뢰하고, 무식한 사람, 따라서 어린아이나 어린아이의 마음을 다시 만들어 가질 줄을 아는 사람이다. 지식이나 권력이나 재산이나 또 비록 좋은 것이라도 활동까지도 지극히 복된 나라에서 너희를 ‘가장 위대한 사람’이 되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사랑과 겸손과 순박과 믿음으로 아주 작은 사람들같이 되는 것이 그렇게 할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 살펴보고, 그들을 본받아라. 그들이 얼마나 나를 믿는지 살펴보고, 그들을 본받아라. 그들이 내가 말하는 것을 얼마나 기억하는지 살펴보고, 그들을 본받아라. 그들이 내가 가르치는 것을 얼마나 잘하는지 살펴보고, 그들을 본받아라. 그들이 하는 일을 얼마나 자랑하지 않는지 살펴보고, 그들을 본받아라. 그들이 내게 대해서도 저희들의 동무들에 대해서 얼마나 질투를 하지 않는지 살펴보고, 그들을 본받아라. 나 분명히 너희에게 말 한다마는, 만일 너희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사랑하는 너희 방식을 바꾸어서, 아주 작은 어린이들의 본보기에 따라서 너희 자신을 개조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너희들이 아는 것을 알고, 내 가르침에서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한지를 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가르치는 것을 얼마나 다르게 실천하느냐! 너희들은 너희가 하는 어떤 좋은 행동에 대해서도 ‘제가 했습니다’하고 말한다. 어린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예수님, 나는 오늘 예수님을 기억했어요. 그리고 예수님 때문에 순종하고 사랑했고, 싸우고 싶은 마음을 억제했어요.…그리고 예수님이 내가 착하다는 것을 알고 또 그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내가 알기 때문에 나는 좋아요’ 하고. 그리고 또 어린아이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아라. ‘오늘 나는 고약하게 굴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해서 예수님에게 고통을 주었기 때문에 마음이 언짢아요’ 하고 . 얼마나 겸손하게 내게 고백하느냐! 그들은 핑계를 찾지 않는다. 그들은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믿고, 내 고통을 괴로워한다. 오! 교만과 위선과 음란이 없는 어린아이들은 정말 내 마음에 소중하다! 나 분명히 너희에게 말한다. 만일 내 나라에 들어오고 싶거든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어라. 어린아이들을 너희가 아직 가질 수 있는 천사적인 본보기로 사랑하여라. 너희들은 천사들과 같아야 할 것이다. 너희들은 변명하려고 ‘저희들은 천사들을 보지 못합니다’ 하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어린이들을 본보기로 주시고, 어린이들은 너희들 가운데 있다. 또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버림받거나, 죽을지도 모르는 어린아이를 보거든 하느님의 이름으로 거두어 주어라. 그들은 하느님께 매우 사랑을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든지 어린아이를 내 이름으로 거두어 주면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은 어린이들의 죄없는 영혼 안에 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 즉 지극히 높으신 주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을 보는 눈을 가진 그 어린아이들 중의 하나에게 죄를 범하게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아무에게도 절대로 죄를 짓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의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의 신선미를 없애는 사람은 화를 입을 것이고, 입어도 세번 입을 것이다! 너희들은 할 수 있는 대로 어린이들을 천사로 그대로 있게 놔두어라. 하늘에서 온 영혼에게는 세상과 육신은 너무나 혐오감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어린아이는 그의 무죄함으로 아직 순전히 영혼이다. 어린아이의 영혼과 그의 육체까지도 너희가 신성한 장소를 존중하는 것과 같이 존중하여라. 어린아이가 신성한 것은 또한 하느님께서 그의 안에 계시기 때문이기도 한다. 어떤 육체에도 성령의 성 전이 있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성전은 가장 신성하고 가장 심오하며, 이중의 장막 저쪽에 있다. 사욕(邪慾)에 대한 숭고한 무지의 장막을 너희 격정의 바람으로 움직이지도 말아라. 나는 어떤 가정에도, 사람들의 어떤 모임에도 어린이가 있어 사람들의 격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어린이는 그의 악의없는 눈의 빛남만으로도 거룩하게 하고, 복구하고, 새롭게 한다. 죄에 빠뜨리는 그들의 행동 방식으로 어린아이에게서 거룩함을 빼앗는 사람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그들의 방탕한 행동으로 어린이들에게 악의를 옮겨 주는 사람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그들의 말과 빈정거림으로 어린이들이 내게 가지는 믿음에 상처를 입히는 사람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모두 방앗간의 맷돌을 목에 달고 바다 속에 집어던져 그들의 죄짓게 하는 기회와 더불어 빠져 죽게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세상은 죄없는 어린아이들에게 죄지을 기회를 주는 것 때문에 화를 입을 것이다! 죄지을 기회가 오는 것은 피치 못할 일이지만, 자기의 잘못으로 죄지을 기회를 만드는 사람은 화를 입겠기 때문이다!
아무도 자기의 몸과 목숨에 폭력을 쓸 권리는 없다. 목숨과 몸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어서, 하느님만이 그 일부분이나 전체를 가져갈 권리를 가지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에게 분명히 말하지만, 만일 너희 손이 너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거든, 그 손을 잘라 버리는 것이 더 낫다. 또 너희 발이 너희로 하여금 죄지을 기회를 주게 이끌거든, 그 발을 잘라 버리는 것이 좋다. 손이 없이 또는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더 낫다. 또 한 발이나 한 손을 자르는 것이 부족하면, 다른 손이나 다른 발도 자르게 해서, 죄짓는 기회를 주지 말고, 불이 영원히 꺼지지 않고, 벌레처럼 괴롭히는 곳에 던져지기 전에 뉘우칠 시간을 가지도록 하여라. 그리고 너희 눈이 너희에게 죄짓는 기회가 되거든, 그 눈을 뽑아 버려라. 애꾸눈이 되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떨어지는 것보다 낮다. 한 눈만 가지고 또는 눈 하나도 없이 너희가 하늘에 가면 빛을 볼 것이다. 그러나 죄지을 기회를 주는 두 손을 가지고는 너희 긴 지옥에서는 어두움과 추악한 것만을 볼 것이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지 못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기적하여라. 어린이들을 업신여기지 말고, 그들에게 죄지을 기회를 주지 말고, 그들을 조롱하지 말아라. 어린이들은 너희들보다 낫다. 어린이들의 천사들은 끊임없이 하느님을 뵙고 있는데, 하느님께서는 그 천사들이 어린이들과 어린이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 진리들을 그들에게 말씀해 주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희들은 어린이들처럼 다투지 말고 교만하지 말고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들은 서로 화목하여라. 모든 사람에 대하여 화합의 정신을 가져라. 너희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형제이지, 원수들이 아니다. 예수의 제자들에게는 원수가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유일한 원수는 사탄이다. 사탄에 대하여는 너희가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가 되어, 그에 대하여, 또한 마음속에 사탄을 데려오는 죄들에 대하여 싸움을 시작하여라. 악이 어떤 형태를 가지고 있던지, 악과 끈기있게 싸워라. 그리고 참을성 있어라. 악의 일은 한계를 모르니까, 사도의 일에도 한계가 없다. 마귀는 ‘이만하면 됐다. 이제는 피곤하니 쉬겠다’고는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마귀는 지칠 줄을 모른다. 생각처럼 재빨리, 아니 그보다도 한층 더 재빨리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옮겨간다. 그는 시도하고, 공격하고, 유혹하고, 괴롭히고, 도무지 숨돌릴 들을 주지 않는다. 마귀는 음흉스럽게 습격해서, 우리가 조심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하지 않으면 쓰러뜨린다. 때로는 습격을 당하는 사람이 약하기 때문에 정복자로 자리 잡기도 한다. 어떤 때는 마귀가 노리는 희생물의 생활 방식이 벌써 원수와의 동맹과 같은 정도가 되기 때문에 친구로 들어가기도 한다. 또 어떤 때는 어떤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하느님이나 하느님의 봉사자가 그에게 당하게 한 실패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하여 더 쉬운 먹이를 찾아서 덮친다. 그러나 너희들도 마귀가 말하는 것과 같이 ‘내게는 휴식이 없다’고 말해야 한다. 마귀는 지옥에 사람을 가득 채우기 위하여 쉬지 않는다. 너희는 천국에 사람을 가득 채우기 위하여 쉬지 말아야 한다. 마귀에게 숨을 돌릴 틈을 주지 말아라. 너희에게 미리 말해 두지만, 너희가 마귀와 싸우면 싸울수록 마귀가 너희들을 더 괴롭힐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을 상관해서는 안 된다. 마귀는 세상을 두루 다닐 수는 있지만 하늘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하늘에서는 마귀가 너희들을 귀찮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는 마귀와 싸운 모든 사람이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 갑자기 말씀을 중단하시고 물으신다. “아니, 대관절 왜 요한을 늘 귀찮게 하느냐? 너더러 어떻게 하라고 그러는 거냐?”요한은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지고, 바르톨로메오와 토마와 가리웃 사람은 들킨 것을 알고 고개를 속인다.
“그래서!”하고 예수께서는 명령조로 물으신다. “선생님, 동료들이 저더러 선생님께 한 가지 말씀을 드리라고 합니다.”
“그럼 말해 보아라.”
“오늘 선생님이 그 병자의 집에 계시고, 저희들은 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그 도시를 지나서 오는데, 선생님의 제자도 아니고, 또 선생님의 가르침을 듣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저희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자들의 한 집단에서 선생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그 사람은 잘 해내서 몸이 떨려 일을 도무지 할 수 없는 어떤 사람을 고쳐 주고, 또 숲 속에서 개 형상을 한 마귀의 습격을 받아 혀가 꽁꽁 묶여서 말을 못하던 어떤 계집아이에게 말을 다시 하게 해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못된 마귀야. 이스라엘의 왕이시고, 다윗 가문의 왕이시며, 그리스도이신 주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니, 나가라. 이분은 구세주이시고 승리자이시다’ 하고. 그러니까 마귀가 실제로 도망쳤습니다. 저희들은 성을 내고, 그 사람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금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무슨 나쁜 짓을 했습니까? 나는 그리스도를 볼 자격이 없는 마귀들을 길에서 치우는 것으로 그리스도를 공경합니다’ 하고요. 저희들은 그 사람에게 ‘당신은 이스라엘에서 마귀를 몰아내는 사람도 아니고, 그리스도의 제자도 아니오. 그러니 당신은 그렇게 해서는 안되오’하고 대답했습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제든지 선을 행하는 것은 허락됩니다.’ 그리고 ‘그러니까 내가 하는 일을 계속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면서 저희들의 명령에 거역했습니다. 이렇습니다. 이 사람들은 특히 하늘에는 사탄과 싸운 모든 사람이 있을 것이라 말씀하신 지금 저더러 선생님께 이 말씀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좋다. 그 사람은 이들 축에 낄 것이다. 그 사람은 이런 사람이다. 그 사람의 말이 옳았고, 너희들 말이 틀렸었다. 주님의 길은 무한하다. 그러므로 곧은길로 가는 사람만이 하늘에 이르게 된다는 법은 없다. 어떤 곳에서나 어떤 시대에나, 또 수많은 방법으로 내게로 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며, 어쩌면 처음에는 나쁘던 길로 해서 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의향이 올바름을 보시고, 그들을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 가지 정욕에 열중해서 좋은 길에서 나가, 그들을 멀어지게 하거나 완전히 길을 잘못 들게 하는 길로 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너희와 비길 만한 사람들을 절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너희들은 너희 뜻보다는 오히려 하느님의 뜻으로 들어온 좋은 길에서 나가지 않도록 하여라. 그리고 내 이름을 믿고, 내 이름으로 이루는 사람을 보거든, 그 사람을 외부 사람이니, 원수니, 독성(瀆聖)하는 사람이니 하고 부르지 말아라. 그 사람은 자발적으로, 그리고 너희들 중의 여러 사람보다도 낫게 나를 믿기 때문에 친하고 충실한 내 신민 중의 한 사람이다. 그 때문에 그의 입술로 말하는 내 이름이 너희가 행하는 것과 같은 기적을 행하고, 또 어쩌면 더 많이 행하기도 한다. 그가 나를 사람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도 그를 사랑하시고, 결국은 그를 하늘로 데려가실 것이다.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는 사람은 아무도 내게 적이 될 수가 없고, 내게 대해서 나쁘게 말할 수도 없다. 오히려 그는 그의 활동으로 그리스도에게 영광과 믿음의 증언을 가져다준다. 나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하지만, 내 이름을 믿는 것이 벌써 자기 자신의 영혼을 구하는데 충분하다. 내 이름이 구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에게 하는 말인데, 그 사람을 또 만나거든 그에게 금지를 하지 말고, 오히려 반대로 ‘형제’라고 불러라. 그 사람이 내 양의 우리의 울타리 밖에 있어도 실제로 너희들의 형제이기 때문이다. 나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나와 같이 있는 사람이고,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너희 편이다.”
“주님, 저희가 죄를 지었습니까?”
요한이 뉘우치며 묻는다.
“아니다. 너희들은 몰라서 그렇게 했지, 악의로 그러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잘못은 없다. 그러나 지금은 너희들이 알았으니까 다음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잘못일 것이다. 그럼 이제는 우리 집으로들 가자. 평화가 너희와 함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