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요르단 강물을, 아니 그보다도 요르단강이 티베리아 호수로 흘러들어가는 곳, 즉 북쪽을 바라다보는 사람이 볼 때에 강의 우안(右岸)에 베싸이다시가 차지하고 있는 곳을 내게 가리키면서 말씀하신다. “지금은 도시가 호숫가에 있는 것 같지 않고, 뭍쪽으로 좀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전문가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여기에 대한 설명은 호수의 이쪽이 20세기 동안 강물에 실려온 충적토(沖積土)와 베싸이다의 야산들에서 무너져 내려온 돌들로 메워졌다는 사실에서 찾아야 한다. 베싸이다시가 그때에는 정확히 강이 호수로 흘러들어가는 입구에 있었고, 가장 작은 배들까지도 강물의 수면이 더 높을 때에는 코라진이 있는 곳까지 꽤 먼 거리를 강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다. 또 강 자체는 호수에 돌풍이 부는 날에는 언제난 베싸이다의 배들의 포구와 피난처 노릇을 했었다. 이 말은 이 일이 별로 중요할 것이 없는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고, 까다로운 박사들을 위해 하는 말이다. 그럼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라.”

사도들의 배들은 가파르나움과 베싸이다 사이에 있는 호수의 꽤 짧은 거리를 저어 간 다음 베싸이다에 닻을 내린다. 그러나 다른 배들이 그들을 따라와서 거기서 많은 사람이 내려 선생님에게 인사를 드리려고 베싸이다에서 온 사람들과 합친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집으로 들어가시는데 거기에는 … 베드로의 아내가 다시 와 있다. 베드로의 아내는 남편에 대한 어머니의 끊임없는 불평을 듣기보다는 차라리 혼자서 사는 편을 택한 것이다.
사람들은 밖에서 큰 소리로 선생님을 요구한다. 베드로는 그것이 귀찮아서 옥상으로 올라가 동향인들에게 설교를 한다. 아니 그보다도 경의를 좀 표하고 예의를 지켜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자기 집에 선생님을 모신 지금 그는 선생님이 계신 것을 조용히 즐겼으면 한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그가 아내에게 가져오라고 말한 수많은 물건 중에서 꿀물 조금조차도 선생님에게 드릴 시간과 즐거움을 누릴 수가 없다. 그래서 조금 투덜거린다.
예수께서는 미소를 머금고 그를 바라보시면서 고개를 끄덕이시며 말씀하신다. “네가 나를 보는 때가 도무지 없고 같이 있는 것이 예외적인 일인 것 같구나!”
“아니, 사실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있을 때는 혹시 우리가 선생님과 저라는 사이입니까? 조금도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님과 저 사이에는 병자들과 비탄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온 세상 사람들과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과 구경꾼들, 중상자들, 원수들이 있지, 선생님과 저는 결코 아닙니다. 이와는 반대로 오늘은 선생님이 저와 함께 제 집에 와 계십니다. 그러니 저 사람들이 이것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는 정말 화가 나 있다.
“그러나 나는 차이를 모르겠구나, 시몬아. 내 사랑은 같다. 내 말도 같고. 그 말을 네게 개별적으로 하거나 모든 사람에게 하거나 마찬가지가 아니냐?”
그러자 베드로는 그의 큰 걱정을 털어놓는다. “그것은 제가 고집불통이고 쉽게 정신이 산만해지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광장에서, 산 위에서, 굉장히 많은 군중 가운데에서 말씀하실 때에는 웬지 모르지만 알아듣기는 다하는데도 아무것도 기억을 못합니다. 이 말을 동료들에도 했더니, 제 말이 옳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 즉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민중은 선생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도 합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일은 다시는 하지 않습니다.’ 하든가 ‘한 번은 선생님께서 제 정신에 감명을 준 이러저러한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왔습니다.’ 하는 말을 어떤 사람이 실토하는 것을 저희가 얼마나 많이 들었습니까! 이와 반대로 저희들은 … 흠! 멎지 않고 지나가는 물흐름과 같습니다. 강기슭에는 흘러간 이 물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또 다른 물이 오고, 여전히 오고, 항상 많이 옵니다. 그러나 그 물은 지나가고, 지나가고, 또 지나갑니다. … 그래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몹시 두려워합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선생님이 계시면서 강의 역할을 하시지 않게 되었을 때 … 저는 … 만일 선생님이 주신 것을 한 방울도 간직하고 있지 못하면, 목마른 사람들에게 무엇을 줄 것이 있겠습니까?”
다른 사도들도 베드로의 탄식을 뒷받침하며, 그들에게 질문하는 많은 사람에게 대답할 말을 생각해내려고 하면 그들이 들은 것이 아무것도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고 탄식한다.
예수께서 미소지으며 대답하신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사람들은 너희들에게도 매우 만족하고 있다 ….”
“아! 그렇지요! 저희들이 하는 것에 대해서는요! 선생님께 자리를 마련해 드리는 것, 그렇게 하느라고 팔꿈치로 인파를 헤치며 나아가는 것, 병자들을 나르는 것, 헌금을 거두는 것, 그리고 ‘예, 저 분이 선생님이십니다!’ 하고 말하는 것 따위에 대해서 말입니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됩니다!”
“시몬아, 너를 너무 낮추지 말아라.”
“저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저를 아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어려운 지혜이다. 그러나 네게서 그 큰 두려움을 없애 주고 싶다. 내가 말을 했는데, 너희가 모든 것을 알아듣지 못했거나 기억하지 못했을 때에는 성가시게 구는 사람으로 보인다든지 나를 낙담 시킨다든지 할까 봐 겁내지 말고 내게 물어보아라. 우리끼리만 있는 때가 언제든지 있다. 그런 때에 너희들의 마음을 털어 놓아라. 나는 많은 사람에게 아주 많은 것을 준다. 그러니 하느님께서도 그 이상 사랑하지 못하실 만큼 사랑하는 너희들에게 내가 무엇인들 주지 않겠느냐? 너는 강기슭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지나가는 흐르는 물 이야기를 했지. 물결 하나하나가 씨앗 하나를 놓고 갔고, 그 씨앗은 각기 네게 초목 한 포기를 주었다는 것을 네가 알아차리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너는 모든 경우에 꽃과 초목을 손 닿는 곳에 가지게 될 것이고, 그래서 너 자신에 대해 놀라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니, 주님이 내게 무슨 일을 해주신 건가?” 하고. 그것은 그 때에는 네가 죄의 속박에서 구속되었을 것이고, 지금의 네 덕행들이 더 높은 완전한 경지에 올라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 말씀을 믿겠습니다.”
“이제는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자. 따라오너라. 아주머니에게 평화가 있기를. 오늘 저녁에는 아주머니의 손님이 되겠습니다.”
그들은 나온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군중에게 떼밀리지 않으시려고 호수를 향해 가신다. 베드로는 모든 사람이 예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그러나 예수와 청중 사이에 약간의 공간이 있도록 하려고 배를 호숫가에서 몇 미터 가량 떨어뜨리게 마음을 쓴다.
“가파르나움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나는 여러분에게 말할 것을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있었던 사건들에서 어떤 지시들을 발견했습니다.
여러분은 세 사람이 내게로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 사람은 자발적으로 왔고, 또 한 사람은 내가 권했기 때문에 왔고, 또 한 사람은 갑작스런 흥분에 끌려 왔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세 사람 중에서 내가 두 사람만 받은 것도 보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내가 셋째 사람을 배신자로 본 것은 우연이었습니까? 정말이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려고 가던 내 곁에 있는 이 사람이 준비가 제일 덜 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준비가 제일 덜 된 사람은 셋째 사람이었습니다. 둘째 사람은 그가 모르는 사이에 준비가 아주 잘 되어서 참으로 영웅적인 희생을 치를 줄을 알았습니다. 하느님을 따르기 위해서 행하는 영웅적 행위는 항상 영웅적으로 준비가 단단히 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것이 내 주위에서 일어난 뜻밖의 어떤 일들을 설명해 줍니다. 그리스도를 받도록 가장 준비가 잘 된 사람들은 그들의 계급이 어떻든 그들의 교양이 어떻든 재빨리 그리고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내게로 옵니다. 가장 준비가 덜 된 사람들은 나를 비범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지켜보거나 경계심과 호기심을 가지고 조사하거나 또는 여러 가지 비난으로 나를 공격하고 비방합니다. 이 여러 가지 태도는 정신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정도에 따라 다릅니다.
선택된 백성 가운데에는 성조들과 예언자들이 애타게 기다렸던 메시아를 재빨리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어디에서나 만나야 할 것입니다. 예언자들이 예고한 모든 표가 앞서고 따르는 가운데 마침내 온 그 메시아를, 사람들의 몸과 자연의 힘에 미치는 볼 수 있는 기적들을 통하여, 또한 회개라는 양심들과 참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이방인들에게 미치는 보이지 않는 기적을 통하여 그의 영적인 모습이 점점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그 메시아를 말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사정이 그렇지 않습니다. 메시아를 재빨리 따르려는 생각이 바로 어린이들에게 있어서도 매우 심하게 방해를 받고, 또 말하기 괴로운 일입니다만, 사회에서 지휘가 높아질수록 이 마음이 방해를 더 받습니다.
나는 여러분을 분개하게 하려고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으로 하여금 기도하고 곰곰히 생각하도록 하려고 이 말을 하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왜 이방인들과 죄인들이 내 길에서 더 많이 전진합니까? 왜 그들은 내가 말하는 것을 받아들이는데, 다른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마치 진주조개들이 그것들을 태어난 암초에 단단히 달라붙어 있는 것처럼, 아니 거기에 박혀 있는 것처럼 단단히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지혜가 포화(飽和)상태에 이르도록 꽉 차고 그것으로 인하여 부풀어올라서, 필요한 것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없어도 되는 것을 버려서 내 지혜가 들어갈 자리를 마련할 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속박을 받지 않습니다. 그들은 표류하는 배와 같이 아무 닻도 한 군데에 붙잡아 매두지 않는 불쌍한 이교도이거나 불쌍한 죄인들입니다. 그들은 제 것이 재물이 없고 다만 오류와 죄의 무거운 짐만을 가지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기쁜 소식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되자마자 오류와 죄의 무거운 짐을 기꺼이 벗어버리고, 그들의 죄의 메스꺼운 혼합물과는 아주 다른 이 기쁜 소식의 튼튼하게 하는 꿀을 맛봅니다.
내 말을 귀담아 들으시오. 그러면 같은 일의 결과가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더 잘 이해할 것입니다.
어떤 농부가 씨를 뿌리러 갔습니다. 그의 밭은 많았는데 가치가 서로 달랐습니다. 어떤 밭들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는데,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가시나무들이 번식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밭들은 그가 장만한 것이었는데, 태만한 사람에게서 사서 그 상태에 그대로 내버려두었었습니다. 또 어떤 밭들은 그 사람이 편한 것을 좋아해서 이 밭에서 저 밭으로 갈 때에 많이 걷기가 싫었기 때문에 가운데 길들이 나 있었습니다. 끝으로 그의 집 앞에 전망을 좋게 하려고 온갖 정성을 기울인 집에서 제일 가까운 밭도 몇 뙈기 있었습니다. 이 밭들에서는 조약돌과 가시나무와 개밀과 또 다른 잡풀들도 모두 치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종자 자루에 제일 좋은 씨를 넣어가지고 가서 씨를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씨는 부드럽게 하고 깊이 갈고 깨끗하고 거름을 잘 준 집에서 제일 가까운 밭들의 좋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길이 이리저리 나고 게다가 기름진 땅에 메마른 먼지가 켜켜이 앉은 밭들에도 떨어졌습니다. 또 일부분은 그 사람의 무능으로 인해서 가시나무들이 번식하게 되었던 밭에도 떨어졌습니다. 지금은 쟁기로 갈아엎었기 때문에 그 가시나무들이 없어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여전히 없어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불로 잡초들을 근본적으로 파괴해야만 다시 나오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씨는 최근에 사들인 밭들에 떨어졌는데, 그 밭들을 그 사람은 깊이 갈아엎지도 않고, 땅 속에 좍 깔려서 연한 뿌리가 뚫고 들어갈 수 없게 하는 돌들을 모두 치우지도 않고 그대로 두었었습니다. 그리고 씨를 다 뿌린 다음 집으로 돌아오면서 말했습니다. ‘오! 잘 됐다! 이제는 추수만 기다리면 된다.’ 하고. 그리고는 날이 지남에 따라서 집에 가까운 밭에 씨가 굵은 싹이 트고 자라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대단히 기뻤습니다. … 오! 부드러운 양탄자! 그리고는 이삭이 패고 … 오! 얼마나 아름다운 바다인가! 그리고 밀이삭이 누렇게 되어가며 이삭과 이삭이 부딪히면서 해를 보고 환희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밭들도 모두 이 밭들과 같을 테지! 낫과 곡식 창고를 준비하자. 빵은 얼마나 많이 나오고! 돈은 얼마나 많이 생길까!’ 그러면서 몹시 기뻐했습니다 ….
그 사람은 집에서 가장 가까운 밭들에서 곡식을 베고 나서 아버지에게서 유산으로 받은 것이지만 가꾸지 않은 채로 두었던 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밭이 좋았고 또 아버지가 비옥하게 한 땅은 기름지고 비옥했기 때문에 씨가 싹이 많이 났었습니다. 그러나 그 비옥함은 뒤엎지기는 했어도 여전히 생명력이 강한 가시나무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었습니다. 가시나무들은 다시 돋아나서 가시돋힌 잔가지로 진짜 천장을 만들어 놓아서 씨앗 그것을 뚫고 이삭 몇 개만 드문드문 내밀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는 거의 온전히 말라 죽고 말았었습니다.
그 사람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 곳에서는 소홀했다. 그러나 다른 곳에는 가시나무가 없으니까 낫겠지.’ 그러면서 최근에 사들인 밭으로 갔습니다. 그의 깜짝 놀람은 그의 고통을 더 크게 했습니다. 야윈 밀대의 잎이 이제는 마르기까지 해서 마치 사방에 흩어져 있는 건초 모양으로 널려 있었습니다. 건초였습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아니, 어떻게 된 일이야?’ 하고 그 사람은 탄식하며 말했습니다. ‘하지만 여기는 가시나무도 없는데! 하지만 씨는 똑같은 것이었는데! 하지만 밀이삭이 빽빽하게 보기 좋게 돋아났었는데! 그건 잎이 굉장히 많이 잘 생겼던 걸로 알 수가 있어. 그런데 왜 이삭이 생기지 않고 다 죽어버렸지?’ 그리고 괴로워하면서 혹 두더지 굴이나 다른 재앙의 씨를 얻어 만날지 보려고 땅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곤충과 설치류(齧齒類)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돌이 얼마나 많은지! 자갈 더미였습니다. 밭들에는 자갈이 문자 그대로 쫙 깔려 있었고, 그 위에 흙이 조금 덮여 있는 것은 눈가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오! 아직 시간이 있을 때에 그가 땅을 파보았더라면! 오! 만일 그가 이 밭들에 대한 흥정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좋은 땅으로 알고 사기 전에 파보았더라면! 오! 그 밭의 질을 확인하지 않고 달라는 값에 그것을 사는 잘못을 저지른 다음에야 적어도 애를 써서 그 땅을 개량했더라면! 그러나 이제는 때가 너무 늦었고, 후회해야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 사람은 창피스럽게 몸을 일으키고, 그의 편의를 위해서 작은 길을 여러 갈래 만들어 놓았던 밭으로 갔습니다. … 그리고 가슴이 아파서 제 옷을 찢었습니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 밭의 짙은 빛깔의 땅에는 엷은 흰 먼지가 한 켜 앉아 있었습니다. … 그 사람은 탄식을 하면서 땅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아니, 여기는 왜 이래? 여기는 가시덤불도 돌도 없는데, 여긴. 우리들 밭이니까. 할아버지, 아버지, 나 이렇게 항상 이 밭들을 소유했고, 길고 긴 세월 동안 우리가 기름지게 한 땅인데, 이 밭들에 길을 내고 여기서 흙을 파 가기는 했지만, 그 때문에 밭들이 이렇게까지 불모(不毛)가 될 수는 없단 말이야 ….’ 그가 아직 울고 있는데 수많은 새 한 떼가 비통한 탄식에 대한 해답을 주었습니다. 새들은 오솔길에서 밭으로 밭에서 오솔길로 달려들어 낟알, 낟알, 낟알을 찾고, 찾고, 또 찾고 있었습니다. … 길바닥이 된 밭에는 그 길 가장자리에 씨가 떨어져서 수많은 새떼를 끌어들였습니다. 그놈들이 처음에는 길에 떨어진 씨를 먹었고, 그 다음에는 밭의 씨도 하나 남기지 않고 다 먹었습니다.
이와 같이 씨 뿌리기는 모든 밭이 똑같았지마는, 여기서는 백배가 나오고, 저기서는 60배, 또 저기서는 30배, 또 다른 곳에서는 아무것도 안 나왔습니다.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진 사람은 들으시오. 씨는 말씀입니다.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습니다. 그것을 적용하고 이해하는 것은 각자가 할 일입니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돌아보시며 말씀하신다. “할 수 있는 대로 윗쪽으로 올라가서 건너편에 배를 대라.”
두 배가 강으로 조금 올라가서 강가 근처에 멎는 동안 예수께서는 앉으셔서 새 제자에게 물으신다. “네 집에는 누가 남아 있느냐?”
“제 어머니와 5년 전에 결혼한 형이 있습니다. 누님들은 이 지방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습니다. 제 아버지는 대단히 좋은 분이었습니다. 그래 어머니는 슬피 울고 있습니다. 젊은이는 가슴에서 흐느낌이 북받쳐 오르기 때문에 갑자기 말을 중단한다.
예수께서는 그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신다. “나도 그런 고통을 겪었다. 그리고 내 어머니가 우시는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너를 잘 이해한다 ….”
배가 자갈에 닿아서 비벼지는 바람에 대화가 중단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배에서 내린다. 여기는 말하자면 호수에 코를 잠그고 있는 베싸이다의 낮은 야산들이 아니고, 풍부한 곡식들이 자라고 있는 평야가 베싸이다의 맞은편이 강언덕에서 북쪽으로 뻗어 있다.
“메론으로 갑니까?” 하고 베드로가 묻는다.
“아니다. 밭 가운데에 나 있는 저 길로 간다.”
아름답고 잘 가꾸어진 밭들에는 밀이삭들이 보이는데, 아직 연하기는 하지만 알이 벌써 생겼다. 밀이삭들은 높이가 모두 같아서 북쪽에서 불어 오는 서늘한 바람에 불려 가볍게 물결치기 때문에 다른 작은 호수를 하나 만들어 놓는 것 같다. 그리고 거기에서는 여기저기 우뚝 솟아 있고 새들의 지저귐이 요란한 나무들이 돛단배 노릇을 한다.
“이 밭들은 비유에 나오는 밭들과 같지 않군요.” 하고 사촌 야고보가 지적한다.
“확실히 그렇지 않다! 새들이 유린하지도 않았고, 가시나무도 조약돌들도 없네. 훌륭한 낟알이야! 이제 한 달만 있으면 벌써 누렇게 될 것이고 … 두 달만 있으면 베어서 곡식 창고에 넣기 알맞게 될 걸세.” 하고 가리옷의 유다가 말한다.
“선생님 … 제 집에서 말씀하신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선생님은 참 말씀을 잘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산에서처럼 머리 속에 의혹이 잔뜩 들어 있습니다 ….” 하고 베드로가 말한다.
“오늘 저녁 설명해 주마. 지금 우리는 코라진이 보이는 데에 와 있다.” 예수께서는 새 제자를 똑바로 들여다보시며 말씀하신다. “주는 사람에게는 우리도 주는 법이며, 가졌다고 해서 선물의 공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너희 무덤과 네 어머니한테로 나를 인도해라.”
젊은이는 무릎을 꿇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예수의 손에 입맞춤한다.
“일어나거라, 자. 내 영이 네 슬픔을 느꼈다. 내 사랑으로 네 영웅적 행위를 강화하고자 한다.
“이사악 어른이 선생님이 얼마나 착하신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사악 아시지요? 딸을 고쳐 주신 그 사람 말씀입니다. 그 이가 제게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 이가 말한 것보다도 훨씬 더 착하시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네 어른께도 내게 제자 한 사람을 준 데 대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가자.”
코라진에 도착하였는데, 마침 제일 처음 만난 집이 이사악의 집이다. 집으로 돌아가던 노인이 제자들과 같이 오시는 예수의 일행과 제자들 사이에 코라진의 젊은이를 보고, 손에 막대기를 든 채 팔을 들고 너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한 채로 있다. 예수께서 미소지으시니, 이 미소를 보고 비로소 노인이 말을 한다.
“선생님, 하느님의 축복을 받으십시오! 아니, 어떻게 이런 영광이 제게 옵니까?”
“할아버지께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려고 왔습니다.”
“아이고, 무엇이 고맙습니까? 그 말씀은 제가 선생님께 드려야 할 것입니다. 들어오십시오,들어오세요. 아이고! 제 딸이 시어머니를 도와드리느라고 멀리 가 있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픈지 모르겠습니다! 그 애는 결혼했거든요, 아시겠습니까? 선생님을 만난 이후로는 모든 축복이 내렸습니다. 제 딸의 병이 고쳐졌고, 곧 이어서 어머니가 필요한 어린 것들을 데리고 홀아비가 된 저 부자 친척이 먼 데서 돌아왔구요. … 아이고! 이 말씀을 벌써 드렸지요! 제 머리가 늙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할아버지의 머리는 지혜로워서 그의 선생에게 한 좋은 일을 자랑으로 삼는 것을 잊었습니다. 누가 행한 선행을 잊어버리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 지혜는 겸손과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나타냅니다.”
“그렇지만 저는 … 모르겠는데요 ….”
“그럼 이 제자는 할아버지를 통해서 내가 얻게 된 것이 아닙니까?”
“아이고! … 하지만 저는 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시겠어요? 저는 그저 진실을 말한 것뿐입니다. … 그리고 엘리야가 선생님을 모시고 있는 것이 기쁩니다.” 그리고 엘리야에게로 몸을 돌리고 말한다. “자네 어머니는 처음에는 얼마 동안 넋을 잃고 있다가 자네가 선생님 곁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눈물을 닦았네. 자네 아버지는 그런데도 아주 의젓한 장례로 모셔졌네. 무덤에 묻힌지가 얼마 안 되네.”
“그럼 제 형님은요?”
“그 사람은 말을 안하네. … 알겠나 … 자네가 거기 없는 것을 보는 것이 자네 형에게는 좀 곤란한 일이었지. … 마을 사람들 때문에 …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네 ….”
젊은이는 예수께로 몸을 돌리고 말한다. “선생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형이 죽기를 원치 않습니다. … 형이 저처럼 사는 사람이 되고 선생님을 섬기게 해주십시오.”
다른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그래서 의아스럽다는 태도로 쳐다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실망하지 말고 끝까지 꾸준하여라.” 하고 말씀하신다. 그런 다음 이사악에게 강복하시고, 이사악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떠나신다.
그들은 우선 봉해진 무덤 곁에 머물러서 기도를 한다. 그리고 아직 잎이 덜 난 포도밭으로 해서 엘리야의 집을 향하여 간다.
두 형제의 만남은 꽤 냉랭하다. 형은 모욕을 당한 것으로 생각하여 그것을 눈에 보이게 하려고 한다. 아우는 인간적으로 잘못하였다는 것을 느끼고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머니가 와서 한 마디 말도 없이 땅에 엎디어 예수의 옷자락에 입맞춤한다. 어머니가 오니 분위기와 사람들의 마음이 명랑해져서 선생님을 대접하려고까지 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으시고 이렇게만 말씀하신다. “당신들이 슬퍼하는 분이 의로웠던 것처럼 당신들도 서로 올바른 마음을 가지시오. 초인간적인 것에, 즉 죽음과 어떤 사명에 부르심에 인간적인 의미를 붙이지 마시오. 의인의 영혼은 아들이 자기 시체를 매장하는 데 있지 않은 것을 보고 마음이 어지러워지지 않았소. 오히려 그의 엘리야의 장래가 완전한 것을 생각하고 마음이 가라앉았소. 세상 사람들의 생각으로 부르심의 은총이 방해를 받게 되지 않기를 바라오. 세상 사람들이 아들이 아버지의 관 옆에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이상히 여겼지만, 천사들은 그가 메시아 곁에 있는 것을 보고 몹시 기뻐했소. 올바른 사람들이 되시오. 그리고 어머니는 아들에게서 위로를 받으세요. 당신은 아들을 지혜롭게 길렀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아들은 지혜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평화가 지금과 항상 당신들과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길로 돌아와서 강으로 또 거기에서 베싸이다로 가려고 그 길로 다시 들어선다. 그 사람 엘리야는 아버지의 집 문지방에서 잠시도 지체하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작별의 입맞춤을 한 다음 아버지를 따라 가는 어린이와 같은 순진함으로 선생님을 따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