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필립보의 가이사리아가 그 산들과 더불어 벌써 멀리 떨어져있고, 메론 호수 쪽으로 가셨다가 겐네사렛 호수 쪽으로 가려고 하시는 예수를 평야가 에워싸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예수께서 첫 새벽에 가이사리아를 떠나신 것 같다. 예수께서는 모든 사도와 가이사리아에 있었던 제자들을 데리고 가신다. 그러나 길을 가는 이렇게 많은 여행자의 무리를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는 다른 여행자들의 무리들을 벌써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디아스포라지방의 모든 곳에서 오는 이스라엘 사람이나 개종자들인 여행자의 무리들로 성도(聖都)에서 얼마 동안 머무르면서 선생들의 말을 듣고, 성전의 공기를 오래 호흡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다.
예수의 일행은 벌써 지평선 위에 높이 올라가 있지만 봄철의 해이기 때문에 아직 방해가 되지 않는 햇볕을 받으며 빨리 걸어간다. 이 봄의 햇볕은 새로 나온 잎들과 꽃이 핀 나뭇가지들과 놀고, 사방에 꽃, 꽃, 꽃을 피어나게 한다. 호수 못 미쳐 있는 평야는 그저 꽃이 만발한 양탄자일 뿐이고, 평야를 둘러싸고 있는 야산들 쪽으로 눈을 돌리면 약간 장미빛이 도는 흰 꽃이나 완전히 장미빛 꽃이나 거의 붉은 빛깔인 장미빛의 꽃무더기와 여러 가지 과일나무가 뒤덮인 것을 보게 되고, 또는 길을 따라 드문드문 있는 집이나 여기저기에 있는 말편자 만드는 대장간 옆을 지나면서는 정원이나 울타리를 따라 또는 집의 벽에 기대있는 장미나무에 처음 피는 장미꽃들을 보고 즐기게 된다.
“요안나의 정원들에는 꽃이 만발하겠는데”하고 열성당원 시몬이 지적한다.
“나자렛의 정원도 꽃이 가득 찬 바구니 같을 거야. 아주머니는 이 장미나무에서 저 장미나무로, 그리고 장미나무들에서 오래지 않아 꽃이 필 쟈스민(jasmin) 나무도, 벌써 줄기에 꽃봉우리가 나타나는 백합으로 가는 다정스러운 벌과 같으셔, 그리고 늘 하시는 것처럼 편도나무 가지를 꺾으실 거고, 또 항아리에 꽂아서 당신 작은 방에 놓아두시려고 배나무나 석류나무 가지도 껶으실 거야.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해마다 이렇게 여쭈어 보곤 했지. ‘왜 꽃이 핀 나뭇가지는 항상 꽂아 두시면서, 반대로 처음 피는 장미꽃들은 안 꽃아 놓으세요?’ 하고, 그러면 아주머니도 이렇게 대답하시곤 했지. ‘그것은 이 꽃잎들에는 하느님에게서 내게 온 명령이 씌어 있기 때문이고 하늘의 산들바람 깨끗한 향기를 내가 맡기 때문이다’ 하고. 유다형, 생각나?” 하고 알패오의 야고보가 형에게 묻는다.
“그래, 생각난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는 아주머니가 당신 정원에서 꽃이 만발해 구름처럼 된 나무들 아래로, 또 첫번 장미꽃들이 울타리를 이룬 가운데로 왔다 갔다 하시는 것을 보기 위해 봄이 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것도 생각난다. 나는 비둘기들이 날아다니는 가운데 꽃들 사이로 미끄러지듯이 다니는 저 영원한 처녀의 광경보다 더 아름다운광경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오! 주님, 어머님을 빨리 뵈러 갑시다! 저도 그 모든 것을 보게요!”하고 토마가 애원한다.
“걸음을 빨리 걷고, 밤에 아주 조금만 쉬기만 하면 나자렛에 제때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하고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제게 그 기쁨을 주시겠습니까, 주님?”
“그러마, 토마야, 우리는 모두 베싸이다로 왔다가 가파르나움으로 가고, 거기서 헤어져서 우리는 배로 티베리아로 갔다가 나자렛으로 간다. 어쨌건 유다인들을 제외한 우리 모두가 더 가벼운 옷을 입을 것이다. 겨울이 끝났으니까.”
“예, 그래서 저희들은 비둘기에게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오 사랑하는 내 비둘기, 빨리 일어나서 오너라. 겨울이 끝났고, 비가 그쳤고, 땅에는 꽃들이 있으니까.…벗아, 일어 나거라. 그리고 숨어 있는 비둘기야, 와서 네 얼굴을 보여 주고, 네 목소리를 들여 다오’ 하고.”
“잘했다, 요한! 자네는 애인에게 노래를 부르는 연인과 같구먼!”하고 베드로가 말한다.
“나는 사실 그래. 나는 어머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야. 나는 내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다른 여자를 보지 못해. 어머님밖엔 없어.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어머님밖에.”
“나도 한 달 전에 그런 말을 했어. 그렇지요, 주님?” 하고 토마가 말한다.
“나는 우리 모두가 어머님에 대한 사랑에 빠졌었다고 생각하네. 지극히 고상하고 지극히 천상적인 사랑!…저 여인밖에는 불러일으킬 수 없을 사랑. 그래서 영혼은 어머님의 영혼을 완전히 사랑하고, 정신은 어머님의 지능을 사랑하고 우러러보며, 눈은 어머님을 감탄하며 바라보고, 우리가 꽃을 들여다볼 때와 같이 혼미(昏迷)가 없는 애정을 주는 그분의 깨끗한 우아함에서 만족을 느끼네.… 마리아는 세상의 아름다움이시고, 또 하늘의 아름다움이시라고 생각하네….”하고 마태오가 말한다.
“맞아! 맞아! 우리는 모두 마리아 어머님에게서 여자에게 있는 다정스러운 것을 발견하네. 깨끗한 어린이임과 동시에 지극히 다정스러운 어머니이셔. 그리고 이 두 가지 우아함 중에서 어느 것 때문에 우리가 어머님을 더 사랑하는지 모르겠어….” 하고 필립보가 말한다.
“어머님은 ‘마리아’이시니까 사랑하는 거야. 그뿐이야!”하고 베드로가 점잔을 빼며 격언조로 말한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시고 말씀하신다. “너희가 모두 말을 잘했지만, 베드로는 썩 잘 말했다. 마리아는 ‘마리아’ 이시니까 사랑하는 것이다. 가이사리아로 가면서 너희에게 말했지, 완전한 믿음을 완전한 사랑에 결합시키는 사람들만이 ‘예수, 그리스도, 말씀, 하느님의아들, 그리고 사람의 아들’이란 말들을 알게 될 것이라고. 그러나 지금은 의미가 매우 큰 다른 이름이 하나 있다는 말도 하겠다. 그런데 그것은 내 어머니의 이름이다. 완전한 믿음을 완전한 사랑에 결합시킬 사람들만이 하느님의 아들의 어머니의 ‘마리아’라는 이름의 참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참 뜻은 격렬한 아픔을 당하는 무서운 시간에, 남은 어머니가 그에게서 난 아들과 함께 몹시 괴로움을 당할 때, 구속하는 여인이 구속주와 더불어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영원 무궁세에 구속을 할 때에 비로소 참으로 믿는 사람들과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에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언젭니까?” 그들이 큰 시냇가에서 걸음을 멈추고 많은 제자가 거기서 물을 마시고 있는데, 바르톨로메오가 묻는다.
“여기서 멎어서 빵을 나누어 먹자. 해가 중천에 와 있다. 오늘 저녁에는 메론 호수에 가서, 작은 배들을 라고 길을 질러 갈 수 있을 것이다”하고 예수께서는 회피하는 태도로 대답하신다.
모두가 연하고 햇볕을 받아 뜨뜻하게 된 시냇가의 풀에 앉는다. 그러니까 요한이 말한다. “이 작고 예뿐 꽃들을 상하게 하는 것은 아까운걸. 하늘 조각들이 여기 풀밭에 떨어진 것 같은데.”물망초가 수백 수천 개 피어 있다.
“내일이면 더 아름답게 다시 날 거다”하고 야고보가 아우를 위로하려고 말한다.“이 꽃들은 흙덩어리 위에 주님을 위해 연회장을 만들어놓으려고 된 거다.”
예수께서는 음식을 봉헌하시고 강복하신다. 그리고 모두가 즐겁게 먹기 시작한다. 제자들은 해바라기들처럼, 사도들이 줄지어 앉은 한가운데에 앉아 계신 예수를 쳐다본다. 청명한 하늘과 맑은 물로 양념을 한 식사는 이내 끝났다. 그러나 예수께서 앉아 계시므로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제자들도 사도들이 질문하는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려고 가까이 온다. 그리고 아까 당신 어머니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또 질문한다.
“그렇다. 육체적으로 내 어머니가 되는 것만도 벌써 대단한 일일 것이다. 사람들이 엘카나의 안나를 기억하는 것은 예언자 사무엘의 어머니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하여라. 그러나 사무엘은 예언자에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의 어머니가 그를 낳았기 때문에 그의 어머니를 기억한다. 따라서 마리아는 구세주 예수를 세상에 낳아 주셨기 때문에 마리아의 기억에는 가장 큰 찬사가 따를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구속을위하여 요구하는 정도를 채우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마리아에게 요구하시는 것과 비교하면 그것은 별것이 아닐 것이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소원을 저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마리아는 절대로 하느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셨다. 완전한 사랑의 요청에서 완전한 희생의 요청에 이르기까지 마리아는 자기를 바치셨고, 또 바치실 것이다. 그리고 나와함께, 나를 위하여, 또 세상을 위하여 가장 큰 희생을 완성하시면, 그때에는 참 신자들과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어머니의 이름의 참뜻을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영원토록 모든 참다운 신자와 모든 참다운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 뜻을 아는 것이 허락될 것이다. 위대한 어머니의 이름 그리스도의 자녀들을 하늘의 생명 속에서 자라게 하기 위하여 영원토록 당신 눈물로 젖 먹이실 거룩한 젖 어머니의 이름을 말이다.”
“주님, 우시다니요? 주님의 어머님이 우셔야 합니까?” 하고 가리옷 사람이 묻는다.
“어떤 어머니든지 다 운다. 그리고 내 어머니는 어떤 다른 어머니보다도 더 우실 것이다.”
“그렇지만 왜요? 저는 항상 착한 아들은 아니기 때문에 어떤 때 어머니를 우시게 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선생님은 절대로 어머니께 고통을 주지 않으실 텐데요.”
“그렇다 과연 나는 아들로서는 어머니께 고통을 드리지 않는다. 그러나 구속자로서는 고통을 드릴 것이다. 내 어머니께 끝없는 눈물을 홀리게 할 사람이 둘이 있을 것이다. 나와 인류인데, 나는 인류를 구하기 위하여 그럴 것이고, 인류는 끊임없는 그의 죄로 그럴 것이다. 전에 산 사람, 지금 사는 사람, 장차 살 사람은 누구나가 내 어머니께 눈물을 흘리게 할 것이다.”
“아니, 왜요?” 하고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놀라서 묻는다.
“그것은 사람은 누구나 그를 구속하기 위하여 내게 고통을 겪게 하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은 사람들이나 아직 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가 있습니까?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 율법학자들, 바리사이파와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그들의 비난과 질투와 악의로 선생님을 괴롭힐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습니다”하고 바르톨로메오가 자신만만하게 잘라 말한다.
“세례자 요한도 죽임을 당했다.…그런데 그가 하느님께 불복종하는 사람들에게 잘못 보였기 때문에 죽임을 당한 유일한 예언자도 아니고, 영원한 뜻의 유일한 사제도 아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예언자보다 더하신 분이고, 선생님의 예고자인 세례자 자신보다도 더한 분이십니다. 선생님은 하느님의 말씀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손이 선생님을 치려고 들리지는 않을 것입니다”하고 유다 타대오가 말한다.
“너는 그렇게 생각하느냐? 네 생각은 틀렸다”하고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안 됩니다. 그렇게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의 그리스도의 품격을 영원히 떨어 뜨리시는 것이 될 것입니다!”유다 타대오는 어떻게나 흥분하였는지 벌떡 일어선다.
예수께서도 따라 일어서시어 그의 창백한 얼굴과 그의 진심어린 눈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시며 천천히 말씀하신다. “그렇지만 그렇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맹세를 하기 위한 것처럼 올리고 계시던 오른 팔을 내리신다.
모두가 일어서서 선생님 둘레로 한층 더 바싹 다가선다. 몹시 슬퍼하는, 그러나 그보다도 한층 더 불신하는 얼굴이 빙 둘러 있고 그들 사이에는 속삭이는 말이 오간다. “물론이야.…그렇게 된다면…타대오의 말이 옳을 거야.”
“세례자가 당한 일은 좋지 않았어. 그렇지만 그것은 끝까지 영웅적이었던 사람을 영광스럽게 했어.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그런 일을 당하시면, 그로 인해서 가치가 떨어질 거야.”
“그리스도는 박해는 당하실 수 있지만, 품위가 떨어질 수는 없어.”
“그리스도께는 하느님의 기름이 부어졌단 말이야.”
“선생님이 사람들의 뜻대로 되시는 걸 보면 누가 더 믿겠습니까?”
“저희는 그렇게 되도록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입을 다물고 있는 사람은 알패오의 야고보뿐이다. 그의 형이 그를 공격한다. “너는 말을 안 하니? 반응을 일으키지 않니? 넌 들리지 않니? 그리스도를 당신 자신에 대해서 보호해라.”
야고보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면서 조금 비켜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바보로구나!”하고 형이 말한다.
“어쩌면 형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는 덜 바보인지도 모릅니다”하고 헤르마스테아가 대답한다. 그러고 계속한다. “어제 예언을 설명하시면서 선생님은 썩어 가다가 다시 조직되는 한 육체와 자기 자신의 힘으로 부활하는 한 육체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어떤 사람이 우선 죽지 않으면 다시 살아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나이가 많아서 자연사로 돌아가실 수도 있어. 그리스도로서는 그것만도 대단한 거란 말이야!”하고 타대오가 대꾸한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그의 말을 옳다고 한다.
“그래. 그렇지만 그때에는 당신보다 훨씬 더 늙은 그 세대에 주시는 표가 아닐 거야”하고 열성당원 시몬이 지적한다.
“좋아! 그렇지만 당신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지도 몰라”하고 그의 사랑과 존경으로 고집이 세게 된 타대오가 대꾸한다.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시면 아무도 선생님이 태어나신 것과 같이 날 수가 없는 것과 같이,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시면 아무도 자기 스스로 다시 살아날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것을 확실히 말합니다. 선생님의 탄생의 영광을 본 제가 말하는 것입니다”하고 이사악이 그의 증언에 자신을 가지고 말한다.
예수께서는 팔짱을 끼신 채 제자들을 번갈아 바라다보시며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셨다. 이제는 당신이 말씀을 하시겠다는 손짓을 하시고 말씀하신다. “사람의 아들은 하느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러나 사람을 구속하는 사람이기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그런데 고통없이 구속은 없는 것이다. 내 고통은 살과 피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육체에, 즉 살과 피에 미칠 것이다. 내 고통은 영혼과 격정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정신적인 것이 될 것이다. 내 고통은 영의 잘못을 속죄하기 위하여 영적인 것이 될 것이다. 내 고통은 완전할 것이다. 그러므로 정해진 시간에 나는 예루살렘에서 붙잡혀서 원로들과 대사제, 율법학자,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서 많은 고통을 당한 후, 불명예스러운 죽음의 선고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 하겠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두실 것이다. 그것은 내가 온 세상의 죄를 속죄해야 하는 어린 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어머니와 몇몇 다른 사람이 같이할 말할 수 없이 큰 고민 속에서 나는 십자가에 달려죽을 것이다. 사흘 후에는 온전히 하느님인 내 뜻만으로 다시 살아나, 사람으로서는 영원하고 영광스러운 생명을 누릴 것이고, 다시 하늘에서 아버지와 성령으로 더불어 하느님일 것이다. 그러나 그전에 나는 가지가지 치욕을 당하고 거짓말과 증오로 마음이 꿰뚫려야 할 것이다.”
따뜻하고 향기로운 봄의 공기 속에 분개한 외침이 일제히 올라온다.
베드로는 겁에 질린 얼굴로, 그도 역시 분개하여 예수의 팔을 잡고 조금 그에게로 외따로 끌고 가서 귀에 대고 가만히 말한다. “아이고! 주님! 그런 말씀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좋지 않습니다. 아시겠어요? 저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립니다. 주님이 그들의 평가에서 깎이십니다. 선생님은 어떤 이유로도 그렇게 되기를 허락하셔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만 또한 그런 일을 선생님이 절대로 당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것을 진짜인 것처럼 예상하십니까? 선생님은 만일 자신을 주장하고자 하시면 사람들의 평가에서 점점 더 올라가셔야 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선생님의 적들을 잿더미로 만드시는 것과 같은 최후의 기적으로 마지막 손질을 하셔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절대로 선생님의 품위를 떨어뜨려서 벌을 받는 범죄자처럼 되셔서는 안 됩니다.”
베드로의 속삭임을 듣기 위하여 몸을 약간 굽히셨던 예수께서는 눈을 반짝이시며, 그러나 분노의 반짝임을 띤 눈으로 엄하게 몸을 일으키시며, 모두가 듣도록, 그래서 모두에게 교훈이 되도록 큰 소리로 외치신다. “이 시간에는 아버지께 대한 순종을 어기라고 내게 권하는 사탄인 너는 내게서 멀리 물러가라! 나는 그 때문에 온 것이지! 명예를 위해온 것이 아니다! 너는 내게 오만과 불복종과 사랑없는 냉혹을 권함으로써 나를 악으로 이끌어 가려고 유혹하고 있다. 저리 가라! 너는 내게있어서 죄를 짓게 하는 기회이다! 위대함은 명예에 있지 않고 희생에 있다는 것과, 하느님께서 우리를 천사로 보시면, 사람들의 눈에 벌레처럼 보이더라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을 너는 깨닫지 못하느냐? 어리석은 사람인 너는 하느님께는 어떤 것이 위대함이고 어떤 것이 하느님의 이치인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사람에게 달린 것만을 가지고 보고, 판단하고, 듣고, 말한다.”
가엾은 베드로는 이 엄한 꾸지람을 들으며 어리둥절해 있다가 자존심이 상하여 물러가서 운다.…그런데 그것은 며칠 전에 있었던 기쁨의 눈물이 아니라, 자기가 죄를 지었다는 것과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이 흘리는 슬픔의 눈물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가 울게 내버려두신다. 예수께서는 신발을 벗고 옷을 걷어 올리고 개울을 건너신다. 다른 사람들도 말없이 그렇게 한다. 아무도 감히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한다. 모든 사람의 뒤에 가엾은 베드로가 처져 있는데, 이사악과 열성당원이 위로하려고 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안드레아가 베드로를 보려고 여러 번 돌아본다. 그리고는 몹시 슬퍼하고 있는 요한에게 무엇인지 속삭인다. 그러나 요한은 거절하는 표로 머리를 흔든다.
그러니까 안드레아가 결심한다. 그는 앞으로 뛰어가 예수 계신데 까지 가서 분명히 겁을 내면서 “선생님! 선생님!”하고 가만히 부른다. 예수께서는 그가 여러 번 부르도록 내버려둔다. 마침내 뒤돌아보시며 엄한 태도로 물으신다. “무슨 일이냐?”
“선생님, 제 형이 몹시 괴로워하며.…울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어 마땅하다.”
“맞습니다, 주님, 그렇지만 형은 여전히 사람입니다.…언제나 잘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오늘은 말을 아주 잘못 했다”하고 예수께서는 대답하신다. 그러나 벌써 덜 엄하시고, 미소를 머금은 반짝임이 예수의 숭고한 눈을 부드럽게 한다.
안드레아는 대답하게 되어 형을 위한 변호를 계속한다. “그러나 선생님은 정의로우시니, 선생님께 대한 사랑으로 제 형이 잘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아십니다….”
“사랑은 빛이 되어야지 어두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베드로는 사랑을 어두움으로 만들고 그것으로 그의 정신을 둘러쌌다.”
“맞습니다, 주님, 그러나 처맨 헝겊은 떼어버리고 싶으면 떼어버릴 수 있습니다. 어두운 정신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지는 않습니다. 처맨 헝겊은 외부적인 것입니다. 정신은 내부적인 것이고 살아 있는 핵 입니다.…제 형의 내심은 착합니다.”
“그러면 그가 처맨 헝겊을 떼어버리라고 해라.”
“주님, 형은 분명히 그렇게 할 것입니다! 벌써 그 일을 시작했습니다. 몸을 들리셔서, 주님이 위로해 주지 않으셔서 흘리는 눈물로 얼마나 얼굴이 흉하게 되었는지 보십시오. 왜 형을 그리 엄하게 다루십니까?”
“그것은 내게 그에게 ‘첫째’가 되는 영광을 준 것처럼 ‘첫째’가 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많이 받는 사람은 많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오! 주님! 예,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라자로의 마리아, 엔도르의 요한, 아글라에, 코라진의 미녀, 레위를 기억하지 않으십니까? 그들에게는 주님이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그런데 그 사람들은 구속을 받겠다는 의향만을 주님께 드렸습니다.…주님!… 주님은 코라진의 미녀와 아글라에를 위한 제 청을 들어주셨습니다.…그런데 주님께 대한 사랑으로 죄를 지은 주님과 제 시몬을 위한 제 청을 안 들어주시겠습니까?”
예수께서는 아글라에와 코라진의 미녀를 위하여 말없이 대담하고 끈질기게 되었던 것과 같이 자기 형을 위하여 대담하고 끈질기게 된 온순한 제자를 내려다보시며, 얼굴이 빛난다. “네 형을 불러서 이리 데려 오너라”하고 말씀하신다.
… 아이고! 고맙습니다. 주님! 가겠습니다….” 그러면서 제비처럼 빠르게 뛰어서 떠나간다.
“형, 이리 와. 선생님이 이젠 형에게 화를 내고 있지 않으셔. 이리와, 선생님이 형에게 그 말을 하려고 하셔,”
“아니다, 아니야. 나는 부끄럽다.…나를 꾸짖으신 것이 바로 조금 전이다.…또 꾸짖으시려고 하시는 거다….”
“형은 정말 선생님을 잘 알지 못하는구먼. 자, 가자구! 형은 내가 형을 더 괴롭히려고 데려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기쁨이 형을 기다린다는 걸 내가 확실히 알지 않으면 간청하진 않을 거야. 가자구!”
“그렇지만 내가 무슨 말씀을 드리니?” 베드로는 인간적인 감정으로 억제되고, 한편으로는 예수의 친절과 사랑 없이는 견딜 수 없는 그의 정신에 자극되어 마지못해 걸음을 옮기면서 말한다. 그리고 “내가 무슨 말씀을 드리니?” 하고 계속 묻는다.
“아니, 아무 말도 할 필요 없어! 형의 얼굴만 보여 드려. 그러기만하면 될 거야”하고 안드레아가 형에게 용기를 주려고 말한다. 모든 제자들은 두 사람이 그들을 지나쳐 가는데 따라 두 형제를 바라다보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아차리고 빙그레 웃는다. 그들은 예수 계신 데까지 왔다. 그러나 베드로는 최후 순간에 걸음을 멈춘다. 안드레아는 여러 말을 하지 않고, 마치 배를 바다 쪽으로 밀기위하여 하는 것처럼 형을 힘차게 앞으로 떼민다. 예수께서는 걸음을 멈추신다.…베드로는 얼굴을 쳐든다.…예수께서는 얼굴을 숙이신다.…두 사람은 서로 바라다본다.…굵은 눈물 두 방울이 새빨개진 베드로의 뺨으로 흘러내린다.…
“이리 오너라. 지각없는 큰 아이, 내가 그 눈물을 닦게 해서 훔쳐서 네 아버지 노릇을 하게 해라”하고 예수께서 말씀하시며, 지스칼카에서 돌에 맞은 상처자국이 아직 있는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눈물 두 줄기를 닦아 주신다.
“오! 주님! 저를 용서해 주셨습니까?” 하고 베드로는 예수의 손을 두 손으로 잡고, 화가 난 주인의 용서를 받기를 바라는 충직한 개의 눈과 같은 두 눈으로 예수를 쳐다보면서 몸을 떨며 묻는다.
“내가 너를 단죄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렇지만 전에…”
“나는 너를 사랑했다. 감정과 지혜의 빚나감이 네 안에 뿌리 내리는 것을 허락지 않는 것은 사랑이다. 시몬 베드로야, 너는 모든 것에 첫째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그러면 주님이 아직도 저를 사랑하십니까? 아직도 저를 원하십니까? 제가 첫째 자리를 원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아시겠습니까? 저는 마지막 자리에 있어도, 주님을 모시고, 주님께 봉사만 하면 족합니다.…그리고 주님께 봉사하다가 죽기만 하면요. 주, 내 하느님!”
예수께서는 그의 어깨를 한 팔로 감싸시고 당신께 바짝 잡아당기신다. 그러니까 예수의 다른 손을 놓지 않은 시몬은.…행복하게 그 손에 여러 번 입맞춤한다. 그러면서 속삭인다. “얼마나 괴로웠는지요!…. 고맙습니다. 예수님!”
“오히려 네 아우에게 감사해라. 그리고 이제부터는 네 짐을 정의와 용맹으로 질 줄을 알아라.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자.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느냐?”
그들은 베드로가 예수 계신 곳에 갔을 때, 예수께서 괴로워하는 당신사도에게 자유롭게 말씀하시게 하려고 있던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앞으로 나아오라는 손짓을 하신다. 그런데 그들과 함께 농부가 몇 사람 있다. 그들은 밭일을 버리고 와서 제자들에게 말을 물었었다.
예수께서는 여전히 손을 베드로의 어깨에 얹으신 채 말씀하신다. “지금 일어난 일로 너희들은 내게 봉사하는 것이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깨달았다. 꾸지람은 베드로에게 했다마는, 같은 생각이 너희들 대부분의 마음에 혹은 형성되었거나 혹은 싹의 상태로 들어있었기 때문에 너희 모두에게 대한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그 생각들을 고쳐주었다. 그리고 그 생각들을 아직 키우고 있는 사람은 내 가르침과 내 사명과 내 인격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나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기 위해서 왔다. 나는 내가 가르치는 것으로 너희들에게 진리를 준다. 나는 내 희생으로 너희들에게 길을 평탄하게 하고, 길을 닦아 주고 가리켜 준다. 그러나 생명은 내 죽음으로 너희에게 준다. 그리고 누구든지 내 부름에 응해서 세상의 구속에 협력하려고 내 편에 드는 사람은 생명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기 위하여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여라. 따라서 누구든지 나를 따르고자하는 사람은 자기를 끊어버리고, 자기의 격정과 경향과 습관과 관습과 생각과 더불어 묵은 자기 자신을 버릴 각오를 하구 새로운 자기 자신을 가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내 십자가를 질 것처럼 각자가 자기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 그 십자가가 그에게 너무나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생각되더라도 져야 한다. 자기의 영적인 자아를 해방하기 위하여 자기의 십자가의 무게가 자기의 인간적인 자아를 찍어누르게 내버려두어야 한다. 영적인 자아에게는 십자가가 혐오감을 일으키지 않고, 오히려 받침점과 존경의 대상이 된다. 영은 알고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불명예스러운 죽음이 내 경우처럼 그를 기다릴 것이냐? 상관없다. 슬퍼하지 말고 오히려 기뻐해야한다. 세상의 불명예가 하늘에서는 큰 영광으로 바뀔 것이고, 영적인 영웅적 행위 앞에서 용기가 없는것은 불명예가 되겠기 때문이다. 너희는 죽을 때까지 나를 따르고자 한다고 끊임없이 말한다. 그러면 나를 따라라. 그러면 험하기는 하지만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길로 해서 너희를 나라로 인도하겠다. 그 길을 다가면 곧 너희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생명을 얻을 것이다. 그것이 ‘사는 것’ 일 것이다. 반대로 세상과 육체의 길을 따라가는 것은 ‘죽는 것’이다. 이와 같이 누가 이 세상에서 그의 생명을 구하고자 하면 그것을 잃을 것이다. 반면에 나 때문에 그리고 내 복음에 대한 사랑으로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잃으면, 그것을 구할 것이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아라.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그리고 나서 자기의 영혼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또 현재에도 미래에도 내 말과 내 행동을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것도 또한 ‘죽는 것’일 것이다. 과연 내가 말한 어리석고 하느님을 배반하고 죄를 짓는 이 세대 앞에서 나를 부끄러워하고, 그렇게 하는 데에서 보호와 이익을 얻어내기를 바라면서 나와 내 가르침을 버리고 이 세대에 아부하며, 그가 받은 말을 돼지와 개들의 더러운 아가리에 던지면서 그 대신 보수로 오물들이나 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사람의 아들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하여 그의 아버지의 영광 속에 천사들과 성인들을 데리고 올 때에 사람의 아들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사람의 아들이 그때에는 이 모든 하느님에 대한 배반과 우상숭배와, 이 비겁한자들과 이 고리대금업자들에 대한 분노로 얼굴을 붉히며 그들을 그의 나라에서 내쫓을 것이다. 천상 예루살렘에는 하느님을 배반하는 자들, 비겁한 자들, 우상숭배자들, 하느님을 모독하는 자들, 그리고 도둑들을 위한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내 제자들인 남녀중에서 여기 있는 어떤 사람들은 왕관과 기름 부음을 받은 그의 왕과 더불어 하느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을 보기 전에는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
해가 천천히 하늘에서 내려오는 동안 그들은 활기있게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길을 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