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야는 메론 호수로 흘러 들어가기 전에 요르단강을 끼고 펼쳐진다. 날이 갈수록 곡식이 무성하게 자라고 과수들이 꽃피는 아름다운 평야이다. 그 너머에 케데스가 있는 야산들이 이제는 여행자들 뒷쪽에 있다. 이들은 추위에 얼어서 밝아오는 빛 속에서 급히 걸어가며, 떠오르는 해에 부러운 눈을 던지고 햇살이 풀밭을 비추고 나뭇잎을 어루만지기가 무섭게 해를 찾는다. 그들은 한데에서나 기껏해야 짚을 쌓아두는 헛간에서 잔 모양이어서 옷들이 구겨져 있고, 지푸라기나 마른 나뭇잎들이 그대로 붙어 있다. 그들은 더 환한 빛으로 그것들을 발견하는 대로 떼어낸다. 강이 있다는 것은 들판의 아침의 고요 속에서 세찬 것 같이 생각되는 희미한 흐름 소리와 새 잎이 돋아난 나무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는 것으로 알수있다. 새 잎들은 아침의 미풍에 한들거린다. 그러나 강은 평평한 평야에 파묻혀있기 때문에 아직 보이지 않는다. 서쪽에 있는 야산들에서 내려오는 수많은 작은 급류들로 불은 파란 물이 강가에 새로 돋아나는 푸르름 가운데에서 반짝이는 것이 보일 때에는 거의 강가에 와 있었다.
“강가를 따라 다리 있는데까지 갑니까. 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강을 건너 갑니까?” 하고 그들이 예수께 묻는다. 예수께서는 생각에 잠긴 채 혼자서 가시다가 그들을 기다리느라고 걸음을 멈추셨다.
“나룻배가 있는지 보아라. 이리로 해서 가는 것이 낫다….”
“그렇습니다. 바로 필립보의 가이사리아로 가는 길에 있는 다리에서는 우리 뒤를 밟으라고 보낸 어떤 사람을 또 만날지도 모릅니다”하고 바르톨로메오가 이맛살을 찌푸리고 유다를 바라다보면서 지적한다. “아니야, 나를 의심적게 보지 말아. 나는 우리가 이리 오기로 된 것을 몰라서 아무 말도 안 했어. 세펫에서 예수님이 선생님들의 무덤과 케데스에 가시리라는 것은 짐작하기가 쉬웠어. 그러나 선생님이 필립보의수도에까지 가시고자 하시리라고는 결코 생각지 못했어.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고, 그래서 내 탓으로도 그들의 뜻으로도 우리가 그들을 만나게 되지 않을 거야. 베엘제불이 그들을 인도하면 몰라도”하고 가리옷 사람이 침착하게 겸손하게 말한다.
“좋아, 왜 그러냐 하면 어떤 사람들과는.…모든 일에 신경을 써야하고, 말을 조심하고, 우리 계획의 흔적을 남기지 말아야 하고, 모든 것에 주의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복음 전파가 끊임없는 도망으로 변하고 말 거야”하고 바르톨로메오가 대꾸한다. 요한과 안드레아가 돌아온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배 두 척을 만났습니다. 배 하나는 한 드라크마면 건넙니다. 강가로 내려갑시다.” 그래서 작은 배 두 척으로 두 번에 건너편 강 언덕으로 건너간다. 이곳에서도 평평하고 기름진 평야가 그들을 맞이한다. 기름진 평야이지만 사람은 많지 않은 평야이다. 그 평야를 경작하는 농부들만이 그곳에 집을 가지고 있다.
“흠! 빵을 어떻게 구하지? 난 배가 고픈데, 그런데 여기는.…펠리시데 사람들의 밀이삭도 없단 말이야.…있는 거라곤 풀과 나뭇잎, 나뭇잎과 꽃들뿐이야. 나는 양도 아니고 벌도 아니거든”하고 베드로가 동료들에게 중얼거린다. 그들은 베드로의 지적을 듣고 빙그레 웃는다. 유다 타대오가 돌아보며 -그는 조금 앞에 있었다 -말한다. “첫 번 만나는 마을에서 빵을 사지.”
“그 사람들이 우리를 도망치게 하지 않으면 말이야”하고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말을 마친다.
“모든 일에 주의하라고 말하는 너희들은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사두가이파 사람들의 누룩을 사지 않도록 조심해라, 너희들은 무슨 나쁜 일을 하는지 곰곰히 생각하지 않고 지금 그렇게 하는 것 같다. 조심하고, 경계하여라!”하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사도들은 서로 바라다보며 속삭인다. “아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걸까? 빵을 우리에게 준 건 귀먹은 벙어리의 그 여인과 케데스의 집주인인데, 그리고 그 빵이 아직 여기 있는데, 우리가 가진 빵은 이것뿐인데, 그리고 우리 시장기를 가라앉힐 빵을 구할 수 있을지 알지 못하는데 말이야. 대관절 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사두가이파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누룩을 쓴 빵을 산다고 말씀하시는 건가? 아마 저 마을들에서는빵을 사지 말라고 그러시는 거 아냐?…”
다시 혼자서 앞장 서 가시던 예수께서 다시 돌아보시며 말씀하신다. “왜 너희들이 시장한데 먹을 빵이 없을까 봐 걱정하느냐?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사두가이파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내 충고 때문에 빵없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빵 속에 들어있는 누룩이 아니다. 따라서 너희 배를 채울 빵을 너희가 사고 싶은 곳 아무데서 사도된다. 또 아무도 너희에게 빵을 팔려고 하지 않더라도 너희가 빵없이 있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5천 명이 배불리 먹은 방 다섯개가 생각나지 않느냐? 나머지를 열두 광주리나 가득하게 거두어 온 것이 생각나지 않느냐? 내가 빵 다섯 개를 가지고 5천 명을 위해서한 일을, 방 한 개를 가지고 있는 열명인 너희를 위해서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어떤 누룩을 암시하는지 알아듣지 못하느냐? 나를 반대해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사두가이파 사람들과 학자들의 마음에 괴고 있는 누룩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미움이고 이단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마치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누룩의 일부분이 너희 안에 들어간 것처럼 미움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의 원수인 사람까지도 미워해서는 안 된다. 하느님이 아닌 것에 대하여는 채광 환기창까지도 열어주지 말아라. 첫 번째 요소 뒤에는 하느님께 반대되는 다른 요소들이 들어갈 것이다. 때로는 같은 무기를 가지고 적과 싸우려고 하다가 멸망하거나 지고 만다. 그런데 지고 나면, 너희들은 적과의 접촉에서 그들의 주장을 흡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사랑과 조심성을 가져라. 너희들은 그 주장에 감염하지 않고 그것들과 싸울 수 있을 만큼 사랑과 조심성을 넉넉히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들의 주장들이 가지고 있는 요소들을 너희들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에 대한 원한도 그런 요소 중의 하나이다. 또한 저들이 너희들을 꾀어서 내게서 떨어져 나가게 하려고, 수많은 친절을 쓰고, 자기들이 뉘우친 것 같은 태도를 보이고, 화해를 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으리란 말을 하겠다. 너희는 저들을 피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들이 너희에게 그들의 주의와 생각을 주려고 할 때에는 그것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줄을 알아라. 내가 말하는 누룩은 이런 것이다. 사랑에 반대되는 원한과 거짓주의들이다. 너희에게 단단히 말하지만, 신중하여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어제 요구하던 그 표가 ‘누룩’입니까, 선생님?” 하고 토마가 묻는다.
“누룩이고 독이다.”
“그 표를 주지 않으시기를 잘 하셨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 표를 그들에게 줄 것이다.”
“언제요? 언제요?” 하고 그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묻는다.
“언젠가….”
“그런데 그것은 어떤 표입니까? 선생님의 사도인 저희들에게까지도 그걸 말씀 안 하십니까? 그것을 이내 알아볼 수 있게 말입니다”하고 베드로가 알고 싶어 묻는다.
‘너희들에게는 표가 필요치 않을 것이다.”
“오! 선생님을 믿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는 많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저희는 오직 한 가지 생각, 선생님을 사랑한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있습니다”하고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열렬히 말한다.
“그러나 너희들은 나보다 훨씬 더 친숙하게, 그리고 내가 그들에게 일으킬 수 있는 두려움없이 사람들을 가까이 하는데, 그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말하느냐?”
“어떤 사람들은 선생님이 예수, 즉 그리스도라고 말하는데, 이 사람들이 가장 착한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언자라고 부르고, 또 어떤 사람들은 선생님이라고만 부르고, 또 어떤 사람들은 아시는 것과 같이 미치광이와 마귀들린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은 선생님이 선생님 자신에게 붙이시는 이름을 써서 ‘사람의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사람의 아들이란 아주 다른 것이니까 그럴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언제나 부정은 아닙니다. 사실은 그 사람들이 선생님이 사람의 아들 이상의 분이라는 것을,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인정하니까요. 또 어떤 사람들은 반대로 선생님이 사람의 아들도 못 되고, 사탄이 흥분시키고, 광증이 뒤흔들어 놓은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하고 바르톨로메오가 말한다.
그러나 사람들 생각에는 사람의 아들이란 대관절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모든 덕행이 있는 사람, 아담에게 있었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지능과 지혜와 은총의 모든 장점을 자기 안에 갖추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이 장점들에 죽지 않는 장점을 덧붙입니다. 벌써 세례자 요한이 죽지 않고, 천사들에 의해서 다른 곳으로 옮겨지기만 했다는 소문이 돌아다니고, 헤로데는, 그리고 헤로디아는 더욱 하느님에게 졌다고 말하지 않으려고 하인 한 사람을 죽이고, 그 사람의 목을 벤 다음, 목이 잘린 시체를 세례자의 시체처럼 제시했다는 것을 아시지요. 사람들은 별별 이야기를 다 합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사람의 아들은 예레미야나 엘리야, 또는 예언자들 중의 한 사람이라고, 또는 은총과 지혜를 갖추고 있었고, 자기를 그리스도의 예고자라고 말하던 세례자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인 그리스도 사람의 아들, 사람에게서 난 위대한 사람. 하느님께서 당신 아들을 세상에 보내실 수 있었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인정하지 못하거나 인정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선생님이 어제 말씀하셨지요. ‘하느님의 무한하신 인자를 확신하는 사람들만이 믿을 것이라’고.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인자보다는 그분의 준엄하심을 더 믿습니다….”하고 역시 바르톨로메오가 말한다.
“그렇습니다. 과연 그들은 자기들이 너무도 부정하다고 느껴서, 하느님께서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당신의 말씀을 보내실 만큼 그렇게 인자하실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믿음을 방해하는 것은 그들의 영혼의 타락입니다”하고 열성당원이 확인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선생님은 선생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요 사람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시지요. 과연 선생님께는 사람으로서의 모든 은총과 모든 지혜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은총 지위에서 아담에게서 났을 사람은 아름다움과 지능과 그밖의 모든 장점으로 선생님을 합했으리라고 정말로 믿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능력면에서 하느님께서 빛나십니다. 그러나 터무니없는 그들의 교만으로 자기들을 신이라고 믿고, 하느님을 자기들에 맞추어서 헤아려 보는 사람들 중에 누가 그것을 믿을 수 있습니까? 잔인하고, 증오를 품고, 탐욕스럽고 부정한 그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그들을 구속하시기 위해 당신 자신을 내주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기위해서 당신 사랑을 주시고, 당신을 사람에게 넘겨주시기 위해 당신의 너그러움을 주시고, 우리 가운데에서 당신을 희생하기 위해 당신의 순결을 주기까지 하실 정도로 친절하실 수 있다고는 분명히 생각할 수 없습니다. 몹시 무자비하고, 잘못을 찾아내서 벌하려고 몹시 까다롭게 구는 그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말하느냐? 내 말과 다른 사람들의 말은 참작하지 말고, 너희 판단에 따라서 솔직히 말하여라. 만일 나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면, 나를 누구라고 말하겠느냐?”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그리스도이십니다.”베드로가 무릎을 꿇고, 예수께로 팔을 들어 올리며 외친다. 예수께서는 그를 아주 환한 얼굴로 보시고, 몸을 구부려 그를 일으키시고, 껴안으시며 말씀하신다.
“오!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너는 참으로 행복하다! 살과 피가 이것을 내게 알려주지 않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네게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네가 내게로 온 첫 날부터 너는 너 자신에게 이 질문을 했었다. 그리고 너는 순박하고 정직하기 때문에, 하늘에게서 네게 오는 대답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줄을 알았다. 너는 네 아우와 요한과 야고보처럼 초자연적인 표시를 보지 못했었다. 너는 내 사촌 형제들인 유다와 야고보처럼 아들과 일꾼과 시민으로서의 내 성덕을 알지 못했었다. 너는 기적을 이용하지 못했고, 내가 기적을 행하는 것도 보지 못했으며, 내가 필립보와 나타나엘과 카나니아 사람 시몬과 토마와 유다에게 하고 또 그들이 본 것과 같은 내 능력의 표를 네게는 주지 않았다. 너는 세리 마태오와 같이 내 의지에 굴복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너는 ‘저분은 그리스도이시다!’ 하고 외쳤다. 네가 나를 본 처음 순간부터 나를 믿었고 네 믿음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너를 게파(‘바위‘라는 뜻)라고 불렀고 이 때문에 베드로(Cephas. 아랍어로 ‘바위‘라는 뜻(요한 1;42및 가톨릭 대사전 베드로 조항참조) 네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니, 지옥의 능력이 이 교회를 능가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줄 것이니, 네가 세상에서 맨 것은 하늘에서도 매여 있을 것이고, 무엇이든지 네가 세상에서 푼 것은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오 내가 그 마음을 시험할 수 있는 충실하고 신중한 사람아. 그리고 여기서 이 순간부터 너는 나 자신에게와 마찬가지로 순종과 존경을 바쳐야 할 우두머리이다. 그리고 너희 모두의 앞에서 베드로가 우두머리라는 것을 선포한다.”
예수께서 빗발치는 나무람으로 베드로를 짓누르셨더라도, 베드로가 이렇게 심하게 울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얼굴을 예수의 가슴에 파묻고 울고 흐느낀다. 예수를 모른다고 한 것으로 인한 그의 고통에서 온 억제할 수 없는 울음하고나 비길 수 있는 울음이다. 지금은 겸손하고 착한 천만 가지 감정으로 이루어진 울음이다.…옛날 시몬도 조금 -그의 아우가 처음 알렸을 때, “메시아가 네게 나타났구나!…정말이지!”하고 불신하고 농담조로 하는 말을 웃으면서 하였던 베싸이다의 어부 – 옛날 시몬도 조금 이 눈물 속에서 작아지면서, 그의 인간성의 엷은 층 밑에서 그리스도의 교회의 대사제 베드로를 점점 더 분명히 나타나게 한다.
그가 수줍어하고 송구스러워하는 얼굴을 들었을 때 그는 모든 것을 말하고 모든 것을 약속하고, 그의 새로운 임무에 자기 전체를 바치기 위한 것으로 오직 한 가지 몸짓밖에 할 줄을 모른다. 그것은 짧고 튼튼한 팔로 예수의 목을 껴안아 자기에게 입맞춤을 하기 위하여 몸을 구부리시게 하고, 좀 뻣뻣한 머리카락과 수염을 예수의 부드럽고 금빛나는 머리카락과 수염에 섞는 몸짓이다. 그리고는 그가 흘린 눈물로 인하여 반짝이고 붉어진 약간 소 눈 같은 눈의 흠숭하고 애정이 넘치고 애원하는 눈길로 예수를 쳐다보며, 못이 생기고 넓고 두꺼운 그의 손으로 자기 얼굴 위에 숙여진 선생님의 근엄한 얼굴을 붙잡고, 마치 그 얼굴이 생명을 주는 액체가 흘러나오는 항아리인 것처럼.…그 얼굴에서, 그 눈에서, 그 미소에서 친절과 은총, 안전과 힘을 마시고, 또 마신다….
두 사람은 마침내 떨어지고, 필립보의 가이사리아로 가는 길을 다시가는데, 예수께서 모두에게 말씀하신다. “베드로는 사실을 말했다. 많은 사람이 거기 대한 직관을 가지고 있고, 너희는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너희들은 우선은 너희에게 알려진 완전한 사실로서의 그리스도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라. 하느님께서 너희 마음에 말씀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도 말씀하시도록 맡겨 드려라.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내 확언과 너희 확언을 완전히 믿고 거기에 완전한 사랑을 가져오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말씀, 사람의 아들,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단어들의 참뜻을 알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