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같은 장소이고 같은 시간이다. 사람은 더 많이 모여들었다. 어떤 오솔길 근처 한 구석에는 군중의 적의를 자극하지 않고 들으려는 것처럼 로마인이 한 사람 있다. 짧은 옷을 입었고 겉옷도 다르기 때문에 알아볼 수 있다. 스테파노와 헤르마도 아직 거기 있다.
예수께서 천천히 당신 자리로 다시 가셔서 말씀을 하신다.
“내가 어제 여러분에게 말한 것을 가지고 여러분은 내가 율법을 폐기하려고 왔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내가 사람이고 사람의 약함을 이해하기 때문에, 여러분의 영적인 눈길로 어두운 구렁을 내려다보지 말고 빛나는 심연을 바라보라고 여러분을 격려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것은 벌에 대한 공포로 인해서는 열에서 세 번은 우리가 잘못하는 것을 안하게 될 수 있지만, 상을 받을 것이라는 확신은 여러분에게 열에 일곱 번은 충동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뢰는 공포보다 더 효과적입니다. 그런데 나는 이 신뢰를 전적으로 확실히 가져서 선을 열에 일곱 몫만 실현할 수 있지 않고 열에 열 몫을 실현해서 저 지극히 거룩한 하늘의 상급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율법의 점 하나도 바꾸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율법을 시나이산에서 벼락이 치는 가운데 누가 주었습니까? 지극히 높으신 분이십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은 누구이십니까? 한 분이시요 세 위이신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어디에서 끌어내셨습니까? 당신의 생각에서 끌어내셨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주셨습니까? 당신의 말씀으로 주셨습니다.
왜 그것을 주셨습니까? 당신의 사랑 때문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거기 계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말씀은 언제나 그런 것과 같이 생각과 사랑에 순종하셔서 생각의 이름과 사랑의 이름으로 말했습니다.
나 자신이 말한 것을 내가 거짓말이라고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기 때문에,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사람들이 한 것처럼 하지 않고, 율법을 보충해서 완전무결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율법을 완전하게 만들어놓지 않고, 그들의 이해관계와 일치하는 그들의의 생각에서 끝낸 법률과 규칙, 규칙과 법률을 쌓아놓아 난해하고 실행할 수 없는 것을 만들어 하느님께서 주신 지극히 거룩한 율법을 돌로 치고 숨막히게 하고 땅에 파묻어서 열매를 맺지 못하게 했습니다. 초목을 끊임없이 눈사태와 폐물들 밑에 깔리게 하고 불어난 물에 잠기게 하면 그 초목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죽습니다. 율법은 너무나 많은 상부구조(上部構造)라는 눈사태에 깔려 숨이 막혀 많은 사람의 마음에서 죽었습니다. 나는 이 상부구조들을 모두 치우려고 왔습니다. 그리고 율법이 다시 살아나서 무덤에서 나오면, 나는 그것을 가지고 하나의 율법을 만들지 않고 여왕을 만들 것입니다.
법률을 공포하는 것은 여왕들입니다. 법률은 여왕들이 만드는 것이지만, 여왕들보다 더 높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와 반대로 율법을 가지고 여왕을 만듭니다. 나는 율법을 보충하고, 그 꼭대기에 복음의 권고의 왕관을 얹어 율법을 보충합니다. 처음에는 명령이 있었는데, 지금은 피요불가결한 것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완전합니다. 내가 주는 뜻대로 율법을 쓰는 사람은 당장 왕이 됩니다. 그것은 그가 복종만 한 것이 아니라 영웅적이기도 해서, 즉 거룩하게 되어서 ‘완전한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성덕이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정상에까지 이끌어간 덕행, 즉 영웅적으로 사랑하고, 어떤 것에 대해서건 일체의 욕망이나 인간적인 생각에서 초월하면서 닦은 덕행의 총체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성인을 그의 사랑과 욕망이 하느님이 아닌 어떠한 것도 보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등의 것을 보는 데 정신이 팔리지 않고 하느님이신 지극히 거룩한 광휘에 마음의 눈을 고정시키고, 또 모든 것이 하느님 안에 있기 때문에 그 광휘 안에서 불안해 하며 애원하는 손을 내미는 형제들을 보고, 성인은 하느님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애원하는 형제들에 대하여 감정을 토로합니다. 육체와 재산과 안락에 대하여 성인은 그의 이상을 대립시키는데, 그 이상은 봉사하는 것입니다. 성인은 가난한 사람입니까? 약하게 된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그는 참 지혜와 참 재산을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피로를 느끼지 않습니다. 그가 끊임없이 생산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끊임없이 양분을 섭취하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세상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하늘의 기쁨으로 양분을 취하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양분은 하느님에게서 오고, 그의 기쁨은 하느님께 있습니다. 그는 인생의 의미를 깨들은 인간입니다.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나는 율법을 바꾸지도 않고, 삭제하지도 않으며, 항상 술렁이고 있는 인간적인 이론을 그 위에 쌓아서 약화시키지도 않습니다. 그러지 않고 나는 율법을 보충합니다. 율법은 그대로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까지 그대로 남아 있어, 율법의 단어 하나도 바꾸지 않고, 계명 하나도 없애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완성되어 완전하게 될 것입니다. 구원을 얻기 위하여는 그것을 주어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즉시 하느님과 결합하기 위하여는 내가 하라고 권고하는 것과 같이 이 율법을 생활해야 합니다. 그러나 영웅은 예외적인 존재이므로, 완전을 원해도 내가 거기에 필요한 것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는 말을 하지 않게 하려고 나는 보통 사람들을 위해서, 일반 대중을 위해서 말하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는 것에서 이것을 잘 기억해두시오. 즉 이 계명의 가장 작은 것 중에서 하나라도 감히 어기는 사람은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 중의 하나로 여겨질 것이고, 다른 사람들을 이끌어 계명을 어기게 한 사람은 그 자신을 위해서도, 그가 계명을 어기게 이끌어간 사람을 위해서도 지극히 작은 사람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그의 생활로, 또 말보다는 훨씬 더 그의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을 권유해서 계명을 지키게 한 사람은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이 될 것이고, 그의 위대함은 그가 권고해서 계명을 지키게 하고, 이렇게 해서 자기를 거룩하게 하도록 이끌어간 사람들 하나하나를 위해서도 더 커질 것입니다. 나는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이 많은 사람의 비위를 거스르리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내가 말할 진리 때문에 내게 원수들이 생긴다 하더라도 나는 거짓말은 할 수 없습니다.
정말 잘 들어두시오. 만일 여러분의 올바름이 부당하게 올바름이라고 불린 저 보잘 것 없는 것, 즉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올바름을 완전히 떠나서 새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만일 그들의 정신을 깊이 바꾸지 않고 여러가지 말투만 쌓아놓으면서도 자기들이 올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보다 훨씬 더, 그리고 참으로 올바른 사람이 되지 않으면, 여러분은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거짓 예언자들과 오류를 가르치는 사람들을 경계하시오. 그들이 어린 양인 것처럼 여러분에게 오지만 실상은 욕심많은 이리들입니다. 그들은 성덕의 가면을 쓰고 여러분을 찾아오지만, 하느님을 조롱합니다. 그들은 진리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거짓말을 먹고 삽니다. 그들을 따르기 전에 그들을 조사하시오.
사람은 말을 하라고 혀가 있고, 보라고 눈이 있고, 동작을 하라고 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 어떤 것인지를 더 진실하게 증언하는 어떤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행위입니다. 기도를 하느라고 합장을 하고 있는 두 손이, 만일 그리고 나서 그 사람이 도둑질을 하거나 간통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또 영감을 받은 사람인 체하느라고 사방으로 핑핑 도는 두 눈이, 연극하는 시간이 끝나자 여자나 원수에 대해 음란한 욕심을 가지거나 죽이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탐욕스럽게 바라보기를 좋아하면, 어떻게 되겟습니까? 또 거짓 찬미의 노래를 휘파람불 줄 알고 달콤한 말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줄 아는 혀가, 그리고나서는 당신들을 등 뒤에서 중상하고, 여러분을 비열한 사람으로 통하게 하려고 위증을 할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위선적인 기도를 길게 하고 나서 즉시 이웃의 평판을 떨어뜨리거나 고지식한 그 사람을 꾀러 간다면 그 혀는 어떤 것입니까? 그 혀는 혐오감을 줍니다! 또 거짓말을 하는 눈과 손도 혐오감을 줍니다. 그러나 사람의 행위, 진짜 행위, 즉 그가 가정과 상점에서, 이웃과 하인들에 대해서 처신하는 방식, 이것이야말로 ‘이 사람은 주님의 종이다.’ 하고 증언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행동은 참된 종교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나무에는 나쁜 열매가 맺지 않고, 나쁜 나무에는 좋은 실과가 열지 않습니다. 이 찌르는 가시덤불에 맛있는 포도가 열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훨씬 더 찌르는 이 엉겅퀴에서 맛있는 무화과가 익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이지 여러분은 가시덤불에서는 별로 기분좋지 않은 오디 같은 열매나 몇 개 딸 수 있을 것이고, 또 꽃은 꽃이면서도 찌르는 이 꽃에는 먹지 못하는 열매밖에 열지 않을 것입니다. 올바르지 않은 사람은 그의 외관으로 존경의 마음을 일으킬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저 외양으로 그럴 것입니다. 깃털같은 이 엉겅퀴도 이슬이 맺혀 금강석처럼 반짝이는 아주 가는 거미줄 뭉치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부주의로 그것을 만지면, 이 뭉치가 여러분을 괴롭히고 양들에게 해를 끼치는 가시 뭉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목자들은 그들의 목장에서 엉겅퀴들을 뽑아서 씨가 살아남지 못하도록 밤에 불을 피워 그 속에 집어던집니다. 정당한 예방조치입니다. 나는 ‘거짓 예언자들과 위선적인 신자들을 죽이시오.’ 하고 여러분에게 말하지 않고, 오히려 ‘그 일은 하느님께 맡겨 드리시오.’ 하고 말하겠습니다. 그러나 ‘조심하시오, 그들의 즙으로 중독되지 않도록 그들을 멀리하시오.’ 하고 말하겠습니다.
하느님이 어떻게 사랑받으셔야 하는지는 어제 말했습니다. 이제는 이웃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강조하겠습니다.
예전에는 ‘네 친구는 사랑하고 네 원수는 미워하여라.’ 하고 말했습니다. 아니,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사람이 하느님의 미소의 위로를 받지 못하던 시절에는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새로운 시대가 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너무 사랑하셔서 사람을 구제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말씀을 보내기까지 하시는 시대입니다. 지금은 말씀이 말합니다. 그리고 벌써 은총이 퍼집니다. 그리고 말씀은 평화와 구속의 제사를 완성할 것이고, 은총은 퍼지기만 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이웃에 대한 사랑을 친구와 원수를 구별하지 않는 완전한 경지에까지 끌어올려야 합니다.
누가 여러분을 중상합니까? 사랑하고 용서하시오. 누가 여러분을 때립니까? 사랑하시오, 그리고 뺨을 때리는 사람에게 다른 뺨을 내밀면서, 분노가 그것을 참아받을 줄 아는 여러분에게 공격을 가하는 것이 모욕에 대해서 복수를 할 사람에게 공격을 가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시오. 누가 여러분의 것을 훔쳐 갔습니까? 그러면 ‘내 이웃이 욕심사납구나.’ 하고 생각하지 말고, ‘내 불행한 형제가 곤궁에 처지에 있구나.’하고 생각하시오. 그리고 만일 그 사람이 벌써 여러분의 겉옷을 빼앗아갔으면 속옷까지도 내주시오. 그러면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서 속옷을 훔칠 필요가 없을 테니까 그 사람이 두 번 도둑질을 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마 이렇게 말하겠지요. ‘그것은 필요에서 오지 않고 악습에서 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고. 그래도 역시 주시오.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그것을 갚아 주실 것이고, 옳지 못한 사람은 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흔히, 또 이것은 온유에 대해서 어제 말한 것을 환기시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기가 이렇게 대우받는 것을 보고는 죄인이 진심으로 자기의 악습을 버리고 훔친 것을 반환함으로써 자신의 죄를 갚을 것입니다.
더 정직해서 여러분의 것을 훔치지 않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청하는 사람들에게 아량을 베푸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어제 가르친 것과 같이 만일 부자들이 정말 마음으로 가난하면, 인간적인 또 인간 이상의 많은 불행의 원인인 저 고통스러운 불평등이 없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항상 이렇게 생각하시오. ‘그렇지만, 만일 내가 곤궁한 처지에 있는데 도움을 거절당하면, 내게는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까?’ 하고. 그리고 대답에 따라서 행동하시오. 다른 사람이 여러분에게 이렇게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그대로 여러분도 다른 사람들에게 하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당하기를 원치 않는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하지 마시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옛날 말은 십계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은총을 잃은 사람은 하도 사나워져서 복수밖에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덧붙인 말입니다. 이 말은 무효가 되었습니다. 물론 다음과 같은 새 말로 취소된 것입니다. ‘너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너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고, 너를 중상하는 사람을 변명하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 축복하며, 네게 해를 입히는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고,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고, 네게 귀찮게 구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굴고, 네게 청하는 사람을 기꺼이 구제하여라. 고리대금을 하지 말고, 비판하지 말고, 판단하지 말아라.’ 여러분은 사람들의 행동의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갖가지 도움을 베풀 때에 아량을 베풀고 자비를 베푸시오. 여러분이 많이 주면 많이 줄수록 많이 받을 것이고, 하느님께서는 너그러운 사람의 가슴에 말을 가득 채우고 꾹꾹 눌러서 부어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준 것만큼만 주시지 않고, 더 많이, 훨씬 더 많이 주실 것입니다. 소송은 타협보다 비용이 더 들고, 호의는 혀에 맛이 오래 남아 있는 꿀과 같은 것입니다.
사랑하시오, 사랑하시오! 친구와 원수를 다 사랑해서, 선인과 악인에게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시고, 의인들과 불의한 사람들을 똑같이 태양을 비추어 주시는 여러분의 아버지와 같이 되도록 하시오. 아버지께서는 추수한 곡식단에서 골라 놓은 밀이삭들같이 착한 사람들을 가려내신 다음 영원한 태양과 이슬, 지옥의 불과 우박을 주시는 권리를 유보하실 뿐입니다. 여러분을 사랑하고, 여러분이 갚음을 받기를 바라는 사람들만을 사랑하는 것은 넉넉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하는 데에는 공로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기쁨이고, 자연적으로 올바른 사람들도 그렇게 할 줄 압니다. 세리들까지도 이방인들까지도 그렇게 할 줄 압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하느님과 같이, 여러분에게는 원수이거나 별로 친절하지 않은 사람들도 창조하신 하느님을 존경하는 뜻으로 사랑하시오. 나는 여러분이 완전한 사랑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이 때문에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과 같이 완전하시오.’ 하고.
이웃에 대한 사랑의 계명, 이웃에 대한 사랑의 계명의 완성은 하도 중대한 것이어서 나는 여러분에게 지금까지 들어온 것과 같이 ‘사람을 죽이지 마시오.’ 하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사람은 사람들에 의해서 단죄될 것이니까요. 그러지 않고 나는 여러분에게 ‘성내지 마시오.’ 하고 말하겠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더 높은 심판, 무형의 행동까지도 참작하는 심판을 받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형제를 욕한 사람은 중앙법정에 의하여 단죄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형제를 바보로 취급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은 하느님께 단죄될 것입니다.
만일 제단에 예물을 바치기 전에 마음 속으로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위하여 자기 자신의 원한을 제물로 바치지 않고, 용서할 줄 아는 지극히 거룩한 의식을 행하지 않았으면, 예물을 바치는 것이 무익합니다. 따라서 하느님께 예물을 드리려고 하는 순간에 그대의 형제에게 나쁘게 행동했거나 그대의 마음 속에 그의 잘못 중의 하나에 대하여 원한을 가지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그대의 예물을 제단 앞에 내려놓고, 먼저 그대의 형제와 화해하여 그대 자신의 사랑을 제물로 바치고 나서 제단으로 돌아오시오. 그러면, 그때에야 비로소 그대의 제사가 거룩할 것입니다. 잘 화해하는 것은 흥정 중에서 항상 제일 좋은 흥정입니다. 사람의 판단은 불안정한 것이고, 끈덕지게 거기에 도전하는 사람은 패소를 해서 가진 것을 모두 상대방에게 내주거나 감옥에서 괴로워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무슨 일에든지 여러분의 시선을 들어 하느님을 쳐다보시오. 스스로 이렇게 물어보시오. ‘하느님께서 내게 하시지 않는 것을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할 권리가 있는가?’ 하고. 하느님께서는 여러분들처럼 냉혹하고 고집세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런 분이시면 여러분은 불행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도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이 생각을 하고 여러분이 친절하고 겸손하고 동정심 가득한 감정을 가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와 나중에 하느님에게서 상급을 받을 것입니다.
여기 내 앞에는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의 생각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제 병을 고쳐 주세요.’ 하는 말을 감히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바라는 대로 되기를 명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눈에서 백태가 벗겨지듯이 마음에서도 원한과 어둠이 떨어져 나가기 바랍니다.’
모두들 내 평화를 가지고 가시오. 내일 또 여러분에게 말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천천히 떠나간다. 아마 기적이 일어났다고 알리기를 기다리는 모양인데,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산 위에 남아 있는 사도들과 가장 오래된 제자들까지도 이렇게 묻는다. “그런데 그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아마 병이 낫지 않은 모양이지요?” 그러면서 팔짱을 끼고 서서 사람들이 내려가는 것을 보고 계신 선생님께 계속 묻는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처음에는 대답을 하지 않으시다가 말씀하신다. “눈은 고쳐졌다. 그러나 마음은 고쳐지지 않았다. 마음에는 증오가 가득 들어 있기 때문에 고쳐질 수가 없다.”
“그렇지만 그게 누굽니까? 혹시 저 로마인입니까?”
“아니다, 불쌍한 사람이다.”
“그러면 왜 고쳐 주셨습니까?” 하고 베드로가 묻는다.
“그 사람과 같은 사람들을 내가 모두 벌벌 떨게 해야 하겠느냐?”
“주님 … 저는 주님이 제가 ‘그렇습니다.’ 하고 말씀드리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는 것을 압니다. 따라서 그렇게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 그렇지만 그렇게 생각은 합니다. … 그런데 이건 결국 마찬가지입니다 ….”
“그것은 마찬가지다. 요나의 시몬아. 그러나 너도 알다시피 … 오! 증오의 비늘이 덮인 마음을 가진 사람이 내 주위에 얼마나 많이 있느냐! 오너라. 바로 산꼭대기에 올라가 그 위에서 우리의 아름다운 갈릴래아 호수를 내려다보자. 나와 너 둘이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