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혼자서 큰 길을 성큼성큼 걸어가신다. 예수께서는 큰 길 옆에 솟아 있는 산을 향하여 가시는데, 그 산은 호수에서 시작하여 서쪽으로 뻗어 간다. 얼마 후에는 꽤 넓은 공간에 펼쳐진 완만한 경사가 진 땅이 시작되어 고원을 이루고 있는데, 그 곳에서는 호수 전체와 남쪽에 있는 티베리아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산재한 덜 아름다운 다른 도시들도 보인다. 그러다가 산은 더 빨리 가파르게 되면서 한 봉우리까지 올라갔다가 낮아지고, 그 다음에는 다시 오르막이 되어 첫 번 봉우리와 비슷한 둘째 봉우리를 이루는데, 두 봉우리가 합해서 일종의 안장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예수께서는 아직 꽤 아름다운 좁고 가파른 길로 고원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하셔서, 주민들이 높은 고대를 경작하는 작은 마을에 이르신다. 그 곳의 밀은 이삭이 패기 시작한다. 예수께서는 마을을 건너질러 밭과 여기저기 꽃이 피어있는 풀밭 사이로, 또는 밀포기가 살랑거리는 사이로 나아가신다.
날씨가 맑아서 주위에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한다. 예수께서 가시는 외따로 떨어진 작은 산 너머로는 북쪽으로 헤르몬산의 위풍당당한 봉우리가 보이는데, 그 꼭대기는 마치 에머랄드 바탕에 놓여 있는 엄청나게 큰 진주와도 같다. 그만큼 온통 눈이 덮인 꼭대기가 수풀을 뒤덮인 비탈들의 초록빛과 대조가 된다. 호수 너머로, 그러나 호수와 헤르몬산 사이에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 메론 호수가 있는 파란 평야가 있고, 그 다음에는 서북쪽으로 티베리아 호수를 향해 가는 다른 산들이 있고, 또 호수 건너편으로는 멀어서 완만하게 보이는 또 다른 산들이 있고 또 다른 평야들이 있다. 남쪽으로는 큰 길, 너머로 야산들이 있는데, 나는 그 야산들이 나자렛을 가리는 것으로 생각한다. 올라갈수록 지평선이 넓어진다. 서쪽은 산이 시야를 가리고 있기 때문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맨 먼저 사도 필립보를 만나신다. 필립보는 거기서 망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어떻게 선생님께서 여기에? 저희들은 행길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저는 산꼭대기에서 양떼에게 풀을 뜯어먹게 하고 있는 목자들에게 양젖을 구하러 간 동료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 아래 행길에는 시몬과 시몬의 유다가 있고, 그들과 같이 이사악도 있습니다. 그리고 … 아! 저기 오는군요. 이리 오게! 이리들 와! 선생님이 여기 계시네!”
수통을 가지고 내려오는 사도들은 뛰기 시작하는데, 자연 더 젊은 사람들이 제일 먼저 도착한다. 그들은 선생님을 환영한다. 그 광경은 감격적이다. 마침내 그들이 모였다. 그리고 예수께서 빙그레 웃으시는 동안 모두가 말을 하고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
“아니, 저희들은 큰 길에서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저희들은 선생님이 오늘도 안 오실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아이고! 저희들은 난처했었습니다. 율법교사들이 있었고, 가믈리엘의 제자들까지도 있었으니까요 ….”
“주님, 그렇구말구요! 선생님은 정말 마침 좋은 때에 떠나셨어요! 저는 그 때 만큼 겁이 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다시는 이번처럼 저를 골탕먹이지 마십시오!”
베드로는 한탄을 하고 예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물으신다. “아니 너희들에게 무슨 불행한 일이라도 일어났느냐?”
“아! 아닙니다! 그 반댑니다. … 아이고! 선생님! 그렇지만 선생님은 요한이 말한 것을 모르시지요? … 그의 안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 저희들은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 일년 전에는 그물이나 겨우 칠 줄 알던 이 젊은이가 … 아이고!” 베드로는 아직도 감탄해 마지 않으며, 말없이 활짝 웃고 있는 요한을 흔든다. “이 아이가 그의 웃는 입으로 그 말을 할 수 있었는지 보십시오! 솔로몬 같았습니다.”
“시몬도 말을 잘 했습니다, 주님. 시몬은 정말 ‘우두머리’였습니다.” 하고 요한이 말한다.
“저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이 저를 진퇴유곡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러나 … 이 사람들은 제가 말을 잘했다고 그럽니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 요한의 말로 인해서 제가 어리둥절해 있었고, 또 그 많은 사람 앞에서 말을 한다는 두려움과 선생님을 초라하게 보이게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저는 정신이 혼란해 있었으니까요 ….”
“나를 초라하게 보이게 하다니? 나를? 그러나 말하는 것은 너였으니까 초라하게 보이는 것도 너였을 텐데, 시몬아” 하고 예수께서 놀리느라고 말씀하신다.
“아이고! 저야 …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바보를 사도로 택하셨다고 비웃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겸손과 사랑 때문에 기쁨에 빛나신다. 그러나 “그럼 다른 사람들은?” 하고만 물으신다.
“열성당원도 말을 잘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 우리가 알고 있는 터입니다. 그렇지만 이 사람은 뜻밖이었습니다! 하긴 저희들이 묵상기도를 하기 시작한 때부터 이 젊은이는 영혼이 항상 하늘에 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맞습니다! 맞아요!” 하고 모두가 베드로의 말을 확인한다. 그런 다음 말들을 계속한다.
“그리고 아시겠어요? 제자들 중에는 지금 유다의 말로는 대단히 중요한 사람이라고 하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유다는 교양이 많은 그 사람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 그리고 그들에게 말을 할 줄 압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좋아하고 … 말을 잘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시몬과 선생님의 사촌들의 말을 듣기를 더 좋아하고, 특히 이 젊은이의 말을 듣기를 더 좋아합니다. 어제 어떤 사람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젊은이는 말을 잘 합니다. – 유다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 하지만 나는 그 사람보다 당신을 더 낫게 생각합니다.’ 라고 말입니다. 아이고! 불쌍한 사람! 몇 마디 말밖에 할 줄 모르는 나를 낫게 생각하다니! … 그런데 선생님은 왜 이리로 오셨습니까? 약속 장소는 큰 길이었고, 그래서 저희들은 거기에 있었는데요.”
“여기 오면 너희를 만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내 말을 들어라. 내려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오라고 말하여라. 그리고 잘 아는 제자들에게도 일러라. 사람들은 오늘은 오지 못하게 하여라. 너희들에게만 말하고자 한다.”
“그러면 저녁을 기다리는 것이 더 낫습니다. 해가 지면 사람들은 이웃 마을들로 흩어졌다가 아침에 다시 와서 선생님을 기다립니다. 그렇지 않으면 … 누가 그들을 말릴 수 있겠습니까?”
“좋다. 그렇게 하여라. 나는 저 위 산꼭대기에서 기다리고 있겠다. 지금은 밤이 훈훈하니까, 바깥에서 잘 수도 있다.”
“아무 데라도 좋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저희들과 같이 계시기만 하면 그만입니다.”
제자들은 가고 예수께서는 다시 올라가기 시작하셔 산꼭대기까지 가신다.
그 산꼭대기는 산상 설교의 끝과 막달라의 마리아와의 첫 번 만남에 대한 지난 해의 환상에서 벌써 본 일이 있는 산꼭대기이다. 해가 질 때에 비추어지는 파노라마는 한층 더 넓어 보인다. 예수께서는 바위 위에 앉으셔서 묵상을 하시려고 정신을 가다듬으신다. 그리고 오솔길에 발소리가 나서 사도들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실 때까지 그대로 계신다. 저녁이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높은 곳에서는 해가 계속해서 초목과 꽃에서 향기를 풍기게 한다. 야생 은방울꽃들은 강한 향기를 내뿜고, 수선화의 큰 줄기들은 이슬을 부르는 듯이 별 같은 꽃들과 봉오리들을 흔든다.
예수께서 일어나셔서 인사를 하신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있기를.”
사도들과 같이 올라오는 제자들의 수가 많다. 이사악이 그의 홀쭉한 얼굴에 고행자다운 미소를 머금고 그들을 인도한다. 모두가 예수를 둘러싸고 모이니, 예수께서는 특별히 가리옷의 유다와 열성당원 시몬에게 인사를 하신다.
“나는 몇 시간 동안 너희들하고만 있으면서 너희들에게만 말하기 위해서 너희 모두를 나와 같이 있게 하기를 원하였다. 너희들의 사명을 점점 더 준비시키기 위해서 너희들에게 할 말이 있다. 음식을 먹자. 그런 다음 말을 하자. 그러면 자는 동안에도 영혼이 계속 가르침을 음미할 것이다.”
그들은 간소한 식사를 하고 나서, 바위에 앉으신 예수의 둘레로 빽빽이 둘러싼다. 제자들과 사도들을 합해서 백 명쯤 되는데, 혹 더 되는지도 모르겠다. 횃불 두 자루의 불꽃이 이상하게 비추는 주의깊은 얼굴들로 이루어진 화관이다. 예수께서는 조용한 손짓을 하시며 천천히 말씀하신다. 짙은 청색 옷에 부각되는 예수의 얼굴은 마침 예수의 정면에 내려오는 초생달빛에 비추어져서 더 희게 보인다. 하늘에 있는 구두점(,) 같은 그 초생달은 하늘과 땅의 주재자를 어루만지는 빛나는 물결과도 같다.
“너희들을 특별히 여기 오게 한 것은 너희들이 내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열 두 사람이 겪은 첫 번째 시험이 끝난 다음에 너희들을 부른 것은, 일을 하는 내 제자들의 범위를 넓히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너희들을 지도하고 또 내가 내 후계자로 너희들에게 주는 사람들에 대한 너희들의 첫 번 반응이 어떠했는지 듣기 위해서이다. 모든 것이 잘 되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나는 묵상기도에서 정신과 마음에 새로운 힘을 가지고 나온 사도들의 영혼을 내 기도로 지원하였다. 그 힘은 공부에서 오는 힘이 아니라, 하느님께 온전히 맡겨 드리는 데에서 오는 힘이다.
가장 많이 준 사람은 자기 자신을 가장 많이 잊은 사람들이다. 자기 자신을 잊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람은 추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목소리를 제일 높이 내는 추억은 나 자신에 대한 추억이다. 나와 나를 구별해야 한다. 하느님과 하느님에게서 오는 자기의 기원을 기억하는 영혼에서 오는 영적인 나가 있다. 자기의 수많은 요구와 열정에 집념하는 육체의 열등(劣等)한 나가 있다. 이 요구와 열정에서는 합창을 이루는 많은 목소리가 나와서, 만일 영이 매우 튼튼하지 못하면,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그의 고귀함을 기억하는 영의 외로운 목소리를 제압한다. 그러므로 – 항상 더 불러일으키고 되살아 나게 하고 강화해야 할 이 거룩한 추억을 제외하고는 – 제자로서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는 인간적인 나에 대한 모든 추억과 요구와 염려하는 생각에 관한 한 자기 자신을 잊어야 할 것이다.
내 열 두 제자에 대한 첫 번 시험에서 가장 많이 준 사람들은 자기를 가장 많이 잊은 사람들이다. 그들의 과거뿐 아니라, 그들의 한정된 개성까지도 잊은 사람들 말이다. 이들이야말로 그들이 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기억하지 않고 온전히 하느님 안에 혼합되어 이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왜 그렇게 조심성이 많으냐? 그것은 그들이 늘 가졌던 소심함과 그들이 항상 고려하던 것과 그들이 언제나 가졌던 편견들을 기억하였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왜 그렇게 간결한 표현을 썼느냐? 그것은 그들이 교리에 대한 그들의 무능을 기억하였기 때문이고, 자기가 초라하게 보이거나 나를 초라하게 보이게 할까 봐 겁을 냈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은 왜 그렇게 눈에 띄게 과시하였느냐? 이 사람들은 그들의 일상적인 교만과 각광을 받고, 갈채를 받고, 남보다 뛰어나고, ‘중요한 인물’이 되기를 바란 그들의 욕망을 기억하였기 때문이다. 마침내, 어떤 사람들은 왜 자신만만하고 설득력이 있고 화려하고 당당한 연설로 뜻밖의 진리를 가르쳐 주었느냐? 그것은 그들이, 또 그들만이 하느님을 기억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또 겸손하여 눈에 띄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가, 그들이 받았으면서도 잘난 체하는 사람이 될 까봐 겁이 나서 쓰려고 하지 않던 수위권을 알맞은 때에 갑자기 맡을 줄 안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처음 세 부류의 사람들은 열등한 나를 기억하였다. 넷째 부류의 사람들은 고등의 나를 기억하였고, 겁을 내지 않았다. 오! 하느님과의 결합에서 오는 거룩한 대담성!
그런데 너희 사도들, 너희 제자들, 잘 들어라. 너희 사도들은 이 말들을 벌써 들은 일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너희 제자들은 이 말을 듣지 못하였거나 단편적으로 들었다. 이 말들을 너희들 마음 속에 잘 새겨두어야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양떼가 끊임없이 불어나므로 내가 너희들을 점점 더 많이 쓰겠기 때문이고, 목자인 나와 내 양떼를 해치려는 늑대의 수가 점점 늘어남으로 세상이 너희들을 점점 더 공격하겠기 때문이다. 나는 교리와 내 양떼를 지키는 데 필요한 무기를 너희들의 손에 들려 주고자 한다. 양떼에게는 충분한 것이 어린 목자들인 너희들에게는 충분하지 않다. 양들은 피를 쓰게 하고 욕정을 자극하는 풀을 뜯어먹어 잘못을 저지를 수 있지만, 너희들에게는 같은 잘못을 저질러 많은 양떼를 파멸로 이끌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우상숭배자인 목자가 있는 곳에서는 양들이 독초에 중독되거나 늑대의 습격을 받아 죽는다는 것을 곰곰히 생각하여라.
너희들은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다. 그러나 만일 너희가 너희 사명을 소홀히 하면, 너희들은 싱거워서 쓸 데 없는 소금이 될 것이다. 만일 하느님께서 너희들에게 맛을 주실 수가 없었으면, 그리고 너희들이 맛의 선물을 받은 다음 그것을 인간성의 싱겁고 더럽혀진 물로 희석하고, 관능의 타락한 단 맛으로 달게 하고, 하느님의 순수한 소금에 찌꺼기를, 즉 교만과 갈망과 탐욕과 음란과 분노와 게으름의 찌꺼기를 섞음으로써 각 죄종(罪宗)의 일곱번씩 일곱번의 알맹이에 대하여 소금 한 알맹이가 들어가게 하여 소금의 맛을 잃게 하였으면, 아무것도 너희들에게 소금맛을 돌려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희들의 소금은 보잘 것 없는 소금 알맹이가 어디 들어 있는지도 모르는 돌부스러기의 혼합물에 지나지 않아서 이에 씹혀 갈리는 소리가 나고, 입 안에 흙냄새가 남게 되고 음식이 메스껍고, 기분 나쁘게 된다. 그런 소금은 하등의 용도에도 쓰이지 못하게 된다.
칠죄종(七罪宗)으로 반죽이 된 지식은 인간적인 사명에까지도 해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에는 소금이 버려져서 사람들의 무관심한 발에 짓밟히는 소용밖에는 닿지 않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렇게 하느님의 사람들을 짓밟을 수 있겠느냐?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무관심한 백성에게 그들을 짓밟을 수 있게 하겠기 때문이고, 그들이 이제는 고상한 천상의 것의 맛을 얻기 위하여 사람들이 그리로 향하여 달려오는 양식이 아니고, 다만 찌꺼기뿐일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세상의 빛이다. 너희들은 햇빛을 맨 마지막으로 잃고 은빛 같은 달빛을 제일 먼저 받은 이 산꼭대기와 같다. 높은 데에 있는 사람은 빛나서 사람들이 보게 된다. 아무리 방심한 눈이라도 어쩌다 높은 곳을 바라다보기 때문이다. 영혼의 거울이라고들 말하는 물질적인 눈이 영혼의 갈망을 반영한다고 나는 말하겠다. 흔히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이 마귀가 아닌 한 항상 살아 있는 갈망, 높은 곳에 대한 갈망, 이성이 본능적으로 지극히 높으신 분을 그곳에 모셔 두는 높은 곳에 대한 갈망을 말이다. 그리고 하늘을 찾으면서 사람은 일생 동안에 적어도 몇 번은 눈을 들어 높은 곳을 쳐다본다.
우리 모두가 아주 어릴 때부터 예루살렘에 들어가면서 어떻게 하였는지를 회상하기 바란다. 눈길이 제일 먼저 가는 곳이 어디냐? 성전의 대리석과 금의 대표작이 우뚝 솟아 있는 모리아산이 아니냐? 그리고 우리가 성전 경내에 들어갔을 때에는? 우리는 햇빛에 반짝이는 값진 둥근 지붕을 쳐다본다. 거룩한 경내에는 안뜰과 회랑과 안마당들에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것이 산재해 있느냐! 그러나 눈은 높은 곳을 올려다본다. 우리들의 여행도 회상하기를 부탁한다. 먼 길이나 단조로움이나 피로와 더위나 진흙탕을 잊으려는 듯이 우리의 눈이 가는 곳이 어디냐? 산꼭대기를 향한다. 별로 높지 않고 멀리 있는 것이라도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한결같이 평평한 평야에 있을 때 산꼭대기가 나타나는 것을 보면 얼마나 우리의 피로가 풀리느냐! 아래에 진흙탕이 있지만, 위에는 깨끗함이 있다. 아래에는 숨막히는 더위가 있지만, 저 위에는 시원함이 있다. 아래에는 지평선이 한정되어 있지만, 저 위에는 지평선이 한없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것들을 쳐다보기만 해도 날씨가 덜 더울 것 같고, 진흙이 덜 끈적거리는 것 같고, 걸음이 덜 을씨년스러워 보인다. 그리고 어떤 도시가 산꼭대기에서 빛나고 있으면 그것을 감탄하며 바라보지 않는 눈이 없다. 중요하지 않은 마을도 그것을 거의 공중에 매달리다시피하게 어떤 산꼭대기에 갖다 놓으면 아름답게 된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참 종교와 거짓 종교들에서 할 수 있을 때마다 신전을 높은 곳에 세웠고, 언덕이나 산이 없을 때에는 많은 노동력을 들여 그 위에 신전을 지을 평평한 곳을 만들고 그 위에 돌을 쌓아 받침을 만들었다. 왜 그렇게 하느냐? 사람들이 신전을 보고, 신전을 봄으로써 하느님께 대한 생각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또한 너희들이 빛이라고도 말하였다. 저녁에 집안에 등잔에 불을 켜는 사람은 그것을 어디에 놓느냐? 구멍 속이나 화덕 밑에 놓느냐? 지하 저장고로 쓰이는 굴 속에 놓느냐? 혹은 궤 속에 넣어 두느냐? 그러지 않고 등잔을 까치발 달린 탁자 위에나 벽에 붙은 등잔걸이에 걸어, 높이 놓여 있기 때문에 방 전체와 그 방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추게 한다. 그러나 높은 곳에 놓는 것은 하느님을 상기시키고 빛을 줄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자기의 의무를 다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참 하느님을 상기시켜야 하는 너희들은 그러기에 너희들 안에 일곱 가지 요소가 있는 이교를 가지지 말도록 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은 이러저러한 신에게 바쳐진 신성한 숲을 가진 세속적인 높은 곳이 되어, 너희들을 하느님의 성전처럼 쳐다보는 사람들을 너희들의 이교로 끌어들일 것이다. 너희들은 하느님의 빛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더러운 등잔, 기름이 없는 등잔은 연기가 나고 빛을 내지 못하며, 역한 냄새가 나고 밝히지는 못한다. 더러운 석영(石英)관 뒤에 감추어진 등불은 우아한 광채를 내지 못하고, 깨끗한 광물판 위에빛나는 빛의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고, 오히려 금강석 같은 등피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검은 연기의 막 뒤에서 활기를 잃어간다.
하느님의 빛은 피할 수 없는 접촉과 반응과 실망을 동반하는 일 자체에서 생기는 찌꺼기를날마다 없애기 위하여 부지런히 일하는 의지가 있는 곳에서 빛난다. 하느님의 빛은 등잔에 기도와 사랑의 풍부한 기름이 들어 있을 때에 찬란히 빛난다. 하느님의 빛은 하느님의 완전들이 거기에 있을 때 무한한 광채로 불어난다. 하느님의 완전은 각각 성인 안에 덕행 하나를 일으키는데, 이 덕행은 하느님의 종이 그의 영혼의 수정(水晶)을 몽롱한 모든 나쁜 열정의 검은 연기를 막아서 공략될 수 없게 지키면 영웅적으로 단련된다. 공략될 수 없는 수정. 공략될 수 없는!(예수께서는 이 결론을 내리실 때 우뢰 같은 목소리로말씀하셔서, 그 목소리가 원형 경기장 같은 자연 안에 울려퍼진다.) 하느님만이 이 수정에 금을 긋고, 당신의 의지라는 금강석으로 당신의 지극히 거룩하신 이름을 거기에 써놓을 권리와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 그 때에는 이 이름이 대단히 깨끗한 수정 위에 초자연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결정면(結晶面)을 증가시키는 장식이 된다.
그러나 주님의 어리석은 종이 자기 자신에 대한 통제를 잃고, 또 전적으로 그리고 순전히 초자연적인 그의 임무를 보지 못하게 되어 이 수정에 거짓 장식의 흔적이 남게 하거나, 조각이 아닌 스친 자국에 남게 하거나, 사탄의 불발톱으로 그린 알 없는 사탄의 숫자(數字)의 흔적이 남게 하면, 그 때에는 그 훌륭한 등불이 그찬란하고 항상 손상되지 않는 아름다움을 잃게 되고, 금이 가고 못 쓰게 되어 부숴진 수정 조각으로 불꽃을 꺼지게 하거나, 균열이 생기지 않더라도, 분명한 성질의 여러가지 표가 생기고, 그 위에 그을음이 앉고 스며들어서 불꽃을 약화시킨다.
불행하다! 사랑을 잃고, 그도 날마다 더 높이 올라가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그들의 고행을 기다려서 올라가려고 하는 양떼를 올라가지 못하게 하는 목자들은 세 번 불행하다. 나는 그들을 그들의 자리에서 떨어지게 하고 그들의 모든 연기를 끔으로써 그들을 벌하겠다.
불행하다! 참 지혜를 배척하고 흔히는 지혜와 반대되고, 또 항상 교만하고, 또 때로는 그들을 그들의 인간성으로만 몰아넣기 때문에 악마적이기도 한 지식을 가득 쌓는 선생들은 세 번 불행하다. 왜냐하면 – 잘 듣고 잘 기억해 두어라 – 어떤 사람이든 모두 사람을 하느님의 아들을 만드는 성화(聖化)로 하느님과 비슷하게 되어야 하지만, 선생, 즉 사제는 이 세상에서부터 그 모습을, 즉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유일한 모습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선생, 즉 사제는 순전히 영혼이고 순전히 완전인 인간의 모습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의 제자들은 하느님께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초인간적인 가르침을 베풀 책임이 있는 선생들이 인간적인 지식의 우상이 되면 저주를 받을 것이다.
불행하다! 내 사제들 중에서 정신이 죽고, 싱겁게 된 사람들, 그들의 육체가 병적인 미온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 그들의 잠에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만 빼놓고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환각을 일으키는 유령이 가득한 사람들, 마음과 하느님의 부(富)를 늘리겠다는 초자연적인 욕망만 빼놓고는 모든 종류의 계산이 가득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일곱 번 불행하다. 그들은 그들의 인간성에 파묻혀 비속하고 둔하게 살면서, 그들이 ‘생명’인 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그들의 썩은 물 속으로 끌어들인다. 내 작은 양떼, 사랑하는 내 양떼를 타락시키는 자들에게는 하느님의 저주가 내릴 것이다. 주님의 약해진 종들아, 나는 너희들의 게으름으로 인하여 멸망하는 사람들에게 해명을 요구하지 않고 너희들에게 설명을 요구하겠으며 허비한 모든 시간, 모든 세월에 대하여, 그로 인하여 뜻밖에 올 수 있었거나 그 결과로 일어난 모든 악에 대하여 너희들을 벌할 것이다.
이 말들을 잘 기억하여라. 나는 산꼭대기로 올라갈 터이니 너희들은 자거라. 내일은 목자가 양떼에게 진리의 목장 문을 열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