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 매우 야위고 창백하고 매우 침울하신 예수님, 어디가 아프신 것 같은 예수님이시다 -산꼭대기에, 작은 산 아주 꼭대기에 계신다. 그 산 위에는 마을도 하나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마을에 계시는 것은 아니다. 마을이 산꼭대기에 있기는 하다. 그러나 동남쪽 비탈 쪽으로 향해 있다. 예수께서는 반대로 서북쪽으로 향한, 사실 북쪽보다는 더 서쪽으로 향한 제일 높은 작은 돌출부에 계신다. 예수께서는 여러 방향을 바라다보고 계시기 때문에, 기복이 있는 한 산맥도 보신다. 그 산맥의 서북쪽 끝과 서남쪽 끝의 지맥은 바다에 잠기는데, 서남쪽에는 청명한 날씨에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가르멜산을 끼고 있고, 서북쪽으로는 첫 빛을 받아 희게 보이는 암맥(岩脈)이 있는 이탈리아의 마푸아노산과 매우 비슷한 배의 돌출부 같이 날카로운 갑(岬)이 있다. 기복이 많은 이 산맥에서 급류와 개울들이 흘러 내려오는데, 모두가 이 계절에 불은 물을 해안을 끼고 있는 평야를 지나 바다로 흘려 들여보낸다. 템은 시카미논만(?) 근처에는 그중에 제일 물이 많은 키손강이 하구 근처에서 다른 작은 개울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일종의 물거울이 되었다가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청명한 날씨의 한낮의 해가 그 개울물을 황옥이나 청옥빛으로 반짝이게 하는데, 바다는 가벼운 진주 목걸이의 맥이 있는 무한히 넓은 청옥과 같다. 남쪽나라의 봄은 벌써 터진 싹에서 나온 새잎으로 나타난다. 연하고, 반짝이고, 말하자면 순결한 잎들이다. 그만큼 그 잎들은 먼지와 폭풍우와 곤충이 무는 것과 사람의 접촉을 모르는 새로운 것들이다. 편도의 가지들은 벌써 너무도 부드럽고 가벼워서 금방이라도 그것들이 태어난 가지에서 떨어져 나와 작은 구름들처럼 청명한 공중으로 떠다닐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흰 거품송이와도 같다. 또 서북쪽의 갑에서 서남쪽의 갑에 이르기까지 펼쳐진 좁기는 하지만 기름진 평야의 밭들도 가볍게 푸르러 가는 밀의 모습을 보여, 얼마 전까지는 헐벗었던 밭에서 쓸쓸한 기운을 모두 없애버린다.
예수께서는 바라다보신다. 예수께서 계신 곳에서는 길이 세 가닥이 보인다. 마을에서 와서 이곳에서 끝나는 길, 이것은 사람만이 다닐 수 있는 오솔이다. 다른 두 길은 마을에서 내려가 반대되는 두 방향, 즉 서북쪽과 서남쪽으로 갈라진다.
예수께서 얼마나 고통을 당하셨을까! 광야에서 하신 단식 때보다도 훨씬 더 고행의 표가 드러난다. 그때에도 창백해진 사람이셨으나 아직 젊고 건강한 몸이었으나, 지금은 육체적인 힘과 정신적인 힘을 동시에 쇠약하게 하는 온갖 고통으로 기진맥진한 사람이시다. 예수의 눈은 매우 슬픈 눈이다. 다정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준엄한 슬픔을 풍기는 눈이다. 야윈 뺨은 옆얼굴과 넓은 이마와 길고 곧은 코와 관능성이 전혀 없는 입술의 영성(靈性)을 더 드러나게 한다. 어떻게나 물질성을 배제하는지 꼭 천사와 같은 얼굴이다. 수염은 보통 때보다 더 길다. 수염은 뺨에까지 나서, 귀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과 섞일 정도이다. 그래서 얼굴에서 보이는 것은 다만 이마, 눈, 코, 그리고 분홍빛은 자취도 없는 상아빛깔의 날씬한 광대뼈뿐이다. 머리는 대충 빗어서 먼지투성이이고, 당신이 계셨던 동굴의 기념으로 그 긴 머리에 달라붙은 마른 잎부스러기와 잔가지 조각들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구겨지고 먼지투성이인 옷과 겉옷도 황량한 곳에서 끊임없이 입어서 쓰였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예수께서는 바라다보신다.…한낮의 해가 예수를 따뜻하게 해 드리고, 그분은 이것이 기쁜 모양이어서 몇 그루의 떡갈나무의 그늘을 피해서 바로 햇볕으로 나오신다. 그러나 해가 쨍쨍 빛나는데도 먼지투성이의 머리와 피로한 눈을 빛나게 하지 못하고, 야윈 뺨에 화색이 돌게 하지는 못한다.
예수님의 원기를 회복시키고 화색이 돌게 하는 것은 해가 아니라, 당신의 사랑하는 사도들을 보시는 일이다. 그들은 제일 평평한 서북쪽에서 오는 길에서 손짓들을 하고 마을을 바라보면서 올라온다. 그때에는 변화가 일어난다. 예수의 눈은 다시 초롱초롱해지고, 얼굴은 뺨에 퍼지는 볼그레한 빛깔의 흔적과 얼굴을 환하게 하는 미소의 결과로 덜 야위어 보인다. 팔짱을 끼고 있던 팔을 풀으시고 “이 사람들아!”하고 소리치신다. 예수께서는 얼굴을 쳐들고 눈길을 물건들 쪽으로 돌리시면서 이렇게 외치신다. 마치 풀과 나무와 청명한 하늘과 벌써 봄기운이 감도는 공기에 당신의 기쁨을 전해주시려는 것 같다.
예수께서는 나무덤불에 걸리지 않도록 겉옷을 몸에 착 달라붙게 졸라매시고, 올라오면서 아직 당신을 보지 못한 제자들을 맞이하러 지름길로 빨리 내려가신다. 목소리가 들릴 만한 곳에 이르셨을 때 마을을 향하여 가는 그들의 걸음을 멈추게 하시려고 부르신다.
사도들은 멀리서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아마 그들이 있는 곳에서는 비탈에 빽빽히 나 있는 나무의 잎들과 혼동되는 짙은 빛깔 옷을 입고 계신 예수를 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들은 휘 둘러보고 손짓들을 한다.…예수께서는 그들을 다시 부르신다.…마침내 숲속의 어떤 빈 공간에 예수께서 첫 빛을 받으시며, 마치 벌써 그들을 껴안으시려는 듯이 팔을 약간 내미시고 그들의 눈앞에 나타나신다.
그러자 “선생님!” 하는 커다란 외침이 언덕에 울려 퍼진다. 그리고 길에서 벗어나 비탈로 빨리 달려오기 시작한다. 그들은 긁히고 걸려서 비틀거리고 숨이 차면서도.…선생님을 다시 뵙게 된 기쁨으로 흥분하여 배낭의 무게도 걸음의 피로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당연히 제일 먼저 도착하는 사람들은 가장 젊고 가장 날쌘 사람들, 즉 야산이 많은 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가지는 확실한 걸음을 가진 알패오의 두 아들, 그리고 요한과 안드레아이다. 그들은 몹시 기뻐서 웃으며 두 마리의 사슴새끼처럼 뛰어온다. 그리고 다정스럽고 경건하고 행복하고, 행복하고 또 행복하게 예수의 발 앞에 쓰러진다.…그리고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오고, 다음에는 달리기와 산에 단련이 가장 덜된 세 사람, 즉 마태오, 열성당원, 그리고 맨 마지막에 베드로가 온다. 그러나 베드로는, 제자들이 먼저 도착하여 무릎을 끊고 에워싸며 예수의 옷이나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맡기신 손에 입맞춤하는데 싫증을 내지 않는 그 선생님에게로 오기 위하여 길을 헤친다. 오! 길을 헤쳐도 이만저만 헤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굴이 바위에 달라붙어 있듯이 예수의 옷에 달라붙어 있는 요한과 안드레아를 힘차게 붙잡고 숨을 헐떡이며 밀어내고 예수의 발 앞에 쓰러지며 말한다. “오! 선생님! 저는 마침내 다시 살아났습니다! 저는 기진맥진했었습니다. 저는 늙었습니다. 그리고 중병을 않은 것처럼 야위었습니다. 선생님, 참말인지 아닌지 보십시오….” 그러면서 예수께서 보시라고 고개를 쳐든다. 그러나 그렇게 하다가 예수께서 얼마나 변하셨는지를 보고 벌떡 일어나며 부르짖는다. “선생님!? 아니, 선생님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바보들같이! 아니 선생님을 쳐다보라고! 자네들은 아무것도 안 보이나? 선생님이 병드셨어! …선생님, 우리 선생님, 무슨 일을 당하셨습니까? 선생님의 시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아무것도 아니다. 이 사람아.”
“아무것도 아니라구요? 그 얼굴로요? 그럼 사람들이 선생님을 해쳤습니까?”
“아니다. 시몬아.”
“그럴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은 아프셨거나 박해를 당하셨습니다! 저는 보는 눈이 있습니다….”
“나도 그렇다. 그리고 과연 네가 야위고 늙은 것을 알겠다. 그러면 너는 왜 그러냐?” 하고 주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베드로에게 말씀하신다. 베드로는 예수의 머리카락과 살갗과 수염에서 진실을 읽고자 하는 것처럼 예수를 자세히 살펴본다.
“그야, 저는 괴로웠습니다. 그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렇게도 많은 고통을 보는 것이 제게 기분 좋은 일이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네가 제대로 말했다! 나도 같은 동기로 괴로웠다….”
“그것 때문에만 그렇습니까, 예수님?” 하고 유다 타대오가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다정스럽게 묻는다.
“고통에 있어서는 그렇다. 사촌, 내보내야 하는 필요로 생긴 고통에 있어서 그렇다….”
“그리고 어떤…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게 된 고통에 있어서 말이지요….”
“제발!…입 다물어라! 내 상처에는‘저는 선생님이 왜 괴로워하셨는지 압니다’하고 말하면서 나를 위로하려고 하는 어떤 말보다도 침묵이 더 소중하다. 그뿐 아니라, 너희 모두가 알아야 할 것은 그 일 때문에 뿐만 아니라 많은 일 때문에 괴로웠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만일 유다가 내 말을 중단시키지 않았더라면, 그 말을 너희에게 했을 것이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엄숙하시다. 모두가 그 때문에 어리둥절해있다.
그러나 베드로가 제일 먼저 침착해져서 묻는다. “그런데, 선생님, 어디 계셨습니까? 뭘 하셨습니까?”
“동굴에 있으면서…기도하고…묵상하고…내 정신을 튼튼하게 하였다. 너희들에게 힘을 얻어주기 위해서, 너희에게 너희의 사명 중에, 요한과 신디카에게는 그들의 고통 중에 힘을 얻어 주기 위해서.”
“그렇지만 어디에서요! 어디에서? 옷도 없고 돈도 없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베드로는 불안스럽다.
“동굴에서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
“그러나 음식은요? 불은요? 침대는요? 아니.…요컨대 모두요! 저는 지프타엘이나 다른 곳에서, 요컨대 어떤 집에서 적어도 길 잃은 나그네에게 하듯이 선생님을 환대했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요. 그래서 마음이 조금 놓였었는데요. 그런데, 응? 자네들 말 좀 해보게 . 선생님이 옷도 없고, 음식도 없고, 그런 것을 쉽게 장만할 수 있는 재간도 없이, 무엇보다도 그런 걸 장만할 의욕이 없이 계신 것을 생각하는 것이 내게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는지 말이야. 아! 예수님! 다시는 이렇게 하셔서는 안됩니다! 또 절대로 이렇게 못하실 것입니다! 저는 선생님을 한 시간도 떠나지 않겠습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하는 것을 원하시건 말건 선생님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기 위해 저를 선생님의 옷에 꿰매 놓겠습니다. 다만 제가 죽으면 선생님과 헤어질 것입니다.”
“혹은 내가 죽으면.”
“아이고! 선생님, 안 됩니다. 선생님이 저보다 먼저 돌아가셔서는 안 됩니다. 그런 말씀하지 마십시오. 저를 완전히 슬프게 하려고하십니까?”
“아니다. 오히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중한 내 친구들을 도로 내게 데려다준 이 시간에 너와 함께 모두와 함께 즐기고 싶다. 보아라! 너희의 진실한 사랑이 나를 먹여주고 따뜻하게 해주고 모든 것을 위로해주니까 내가 벌써 나아졌다.” 그러면서 그들을 하나씩 쓰다듬어 주신다. 그러니까 이 말을 들으면서 그들의 얼굴이 지극히 행복한 미소로 빛나고, 눈이 반짝이며, 입술이 감격으로 떨린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주님, 참말입니까?”
“선생님, 정말 그렇습니까?”
“저희가 선생님께 그렇게 소중합니까?”
“그렇다. 대단히 소중하다. 음식을 가지고 있느냐?”
“예. 저는 선생님이 기진맥진해 계실 거라는 느낌이 들어서 오는 도중에 장만했습니다. 빵과 구운 고기가 있고, 양젖과 치즈와 사과가 있습니다. 게다가 좋은 포도주 한 수통과 선생님을 위한 달걀들이 있습니다. 깨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자, 그럼 여기 따뜻한 양지에 앉아서 먹자. 그리고 먹으면서 이야기 하여라….”
그들은 해가 잘 드는 비탈에 앉는다. 베드로는 그의 배낭을 열고 그의 보물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모두가 완전하구나!”하고 외친다. “안티고니아의 끌까지도 무사해, 그럴 리가 없지! 내가 뭐했어! 돌아올 때에 우리를 통에다 넣어서 미치광이가 굴린다든지, 폭풍우가 몰아칠 때에 노가 없고 게다가 구멍이 둘린 작은 배에 우리를 태운다 하더라도 우리가 무사히 도착할 거라고 했지.…그러나 갈 적에는! 나는 우선 우리를 방해하는 것이 마귀라는 것을 점점 확신하게 돼. 우리가 저 불행한 사람들과 같이 가지 못하게 하려고 말이야….”
“물론이지! 지금은 그놈이 목적이 없어졌거든…”하고 열성당원이 동의한다.
“선생님, 저희를 위해 고행을 하셨지요?” 하고 예수를 쳐다보느라고 먹는 것을 잊고 있던 요한이 묻는다.
“그렇다, 요한아. 나는 생각으로 너희를 따라갔다. 나는 너희의 위험과 고생을 의식하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너희를 도왔다….”
“오! 나는 그걸 느꼈어! 그 말을 자네들에게 하기까지 했어. 생각나나?”
“그래, 맞아”하고 모두 동의한다.
“자, 이제는 내가 너희에게 준 것을 너희가 돌려주는구나.”
“주님, 단식을 하셨습니까?” 하고 안드레아가 묻는다.
“그럴 수밖에! 음식을 드시고자 하셨더라도 돈도 없이 동굴에서 어떻게 잡수셨겠니?” 하고 베드로가 그에게 대답한다. “저희 때문에 그렇게 하셨군요! 저는 정말 마음이 괴롭습니다!”하고 알패오의 야고보가 말한다.
“오! 아니다! 그 때문에 괴로워하지들 말아라! 너희들만을 위해서한 것이 아니고, 온 세상을 위해서 했다. 내가 전도를 시작할 때에 그렇게 한 것처럼 지금도 그렇게 했다. 그때에는 끝에 가서 천사들이 나를 도와주었는데, 지금은 너희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이것은 정말이지 이중으로 기쁜 일이다. 그것은 천사들에게는 사랑이 필연적인 것이지만, 사람들에게서는 사랑을 발견하기가 덜 쉽기 때문이다. 너희는 사랑을 베푼다. 그래서 사람이던 너희들이 내게 대한 사랑으로 모든 것을 무릅쓰고 성덕을 택했기 때문에 천사가 되었다. 이 때문에 너희는 나를 하느님으로서 또 하느님인 사람으로서 행복하게 한다. 그것은 너희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 즉 사랑을 내게 주고, 또 구세주에게서 오는 것, 즉 완전으로의 너희들의 향상을 내게 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너희들에게서 온다. 그리고 이것은 어떤 양식보다도 더 영양분이 많은 것이다. 그때 광야에서도 단식을 한 후에 사랑에 의해서 영양을 취했고, 그것으로 기운을 차렸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지금도 그때와 같다! 너희도 나도 모두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고통이 무익하지 않았다. 나는 이 고통이 1년 내내 너희를 가르친 것보다도 너희에게 더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고통, 사람이 자기와 같은 사람에게 끼칠 수 있는 악에 대한 묵상, 동정, 믿음, 바람, 너희들이 직접 베풀은 사랑이 너희를 어른이 되는 어린이들처럼 성숙하게 했다….”
“아이고! 그렇습니다! 저는 늙었습니다. 저는 이제 결코 떠날 때의 요나의 시몬이 아닐 것입니다. 저는 우리의 사명이 아름다운 가운데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깨달았습니다…”하고 베드로가 한숨짓는다.
“자, 이제 여기 함께 모였으니, 이야기를 해라….”
“시몬, 자네가 말하게. 자넨 나보다 더 잘 말할 줄 알 거야”하고 베드로가 열성당원에게 말한다.
“아니야. 자네가 충실한 우두머리로서 우리 모두를 대신해 보고를 드리게”하고 열성당원이 대답한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시작하는데, 시작하면서 “그렇지만 자네들이 나를 도와주게”하고 말한다.
그는 안티오키아에서 떠날 때까지의 사실들을 질서있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돌아온데 대한 이야기를 한다. “저희는 모두가 괴로웠습니다. 아시겠지요? 저는 그 두 사람의 마지막 말을 절대로 잊지 못하겠습니다….” 베드로는 갑작스레 흘러내리는 굵은 눈물 두 줄기를 손 등으로 닦는다. “제게는 그것이 물에 빠진 사람의 마지막 부르짖음같이 들렸습니다.…그러나! 요컨대, 자네들이 얘기 하게 .… 난 못하겠네….” 그러면서 그의 감정을 억제하려고 약간 비켜나면서 일어선다.
열성당원 시몬이 말을 한다. “저희는 길을 상당히 많이 오는 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눈물로 인해서 목이 붓고 아팠습니다.…그런데 저희는 울지 않으려고 했습니다.…만일 한 사람이라도 울기 시작했더라면 저희는 영 그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요나의 시몬이 괴로워한다는 것을 보이지 않으려고 마차 뒷쪽으로 가서 배낭들을 뒤적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고삐를 잡았습니다. 저희는 안티오키아와 셀레우치아 중간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마차를 멈추었습니다. 밤이 깊어 가는데 따라서 달빛이 더 환해졌지만, 그래도 그곳을 썩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곳에서 마차를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소지품 가운데에서 선잠을 잤습니다. 저희는 아무도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먹을 수가 없었으니까요. 저희는 그 두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날이 밝아오자 이내 다리를 건너서 아침 아홉시 전에 셀레우치아에 도착했습니다. 저희는 마차와 말을 여관주인에게 돌려주고 또 그 사람은 친절한 사람이었습니다 ―배를 타는데 그 사람의 조언을 이용했습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항구에 가겠습니다. 내가 사람들을 알고, 사람들도 나를 알거든요.’ 그리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 사람은 이 항구들로 떠나는 배 세척을 찾아냈습니다. 그러나 한 배에는 저희가 이웃하고 싶지 않은 어떤.…작자들이 있었습니다. 배 주인에게서 그 말을 들어서 알았던 여관주인이 저희에게 그 말을 해주었습니다. 다른 배는 아스칼론 배였지만 저희가 낼 수 없을 많은 금액을 내지 않는 한 저희를 위해 띠로에 기항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셋째 배는 원목(原木)을 실은 작은 배였습니다. 선원도 몇 명 안 되고 또 빈약하다고 생각되는 초라한 배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가이사이로 가는 배였지만 선원 전체의 하루치 식비조 급료를 물어 준다면 띠로에 정선하겠다고 동의했습니다. 그 조건은 저희에게 적당한 것이었습니다. 정말 저는, 그리고 저와 함께 마태오도 좀 겁이 났습니다. 지금은 폭풍우의 계절인데.…저희가 갈때에 어떠했는지 아시지요. 그러나 시몬 베드로가 ‘아무 일도 없을 거야’하고 말해서 저희는 배에 올랐습니다. 어떻게나 배가 규칙적으로 그리고 빨리 가는지 배의 돛들이 천사들인 것 같았습니다. 띠로에 도착하는데 갈 때보다 시간 반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선원 두목이 몹시 친절해서 프톨레마이스 근방까지 그 배에 끌려가도록 작은 배를 뒤에 다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아가 요한과 함께 작은 배로 내려가서 배를 조종했습니다만, 매우 간단했습니다.…갈 때 같지 않구요.…프톨레마이스에서 저희들은 헤어졌습니다. 저희가 너무도 만족해서, 저희 짐이 벌써 모두 옮겨져 있던 작은 배로 모두 내려가기 전에 그에게 합의했던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주었습니다. 프톨레마이스에서 하루를 머무르고 나서 여기 왔습니다.…그러나 저희는 저희가 당한 고통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요나의 시몬의 말이 맞습니다.”
“마귀가 갈 때에만 저희를 귀찮게 했다고 하는 저희 말도 옳지 않습니까?” 하고 여럿이 묻는다.
“너희 말이 옳다. 이제는 내 말을 들어라. 너희 임무는 끝났다. 이제 우리는 지프타엘로 돌아가서 필립보와 나타나엘을 기다리기로 한다. 빨리 해야 한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들도 올 것이다.…그동안 우리는 이곳 페니키아의 경계와 페니키아에서도 복음을 전하자. 그러나 이제까지 일어난 일에 대하여는 영원히 우리 마음속에 묻어 두어야 한다. 아무 질문에도 대답해서는 안 된다.”
“필립보와 나타나엘에게두요? 그 사람들은 저희가 선생님과 함께 온 것을 알고 있는데요….”
“내가 말하겠다. 이 사람들아, 나는 많은 고통을 당했다. 내 고통으로 요한과 신디카의 평화의 값을 치렀다. 내 고통이 무익한 것이 되지 않게 하여라. 내 어깨에 무거운 짐을 하나 더 올려놓지 말아라. 나는 벌써 짐을 너무 많이 지고 있다.…그리고 그 무게가 날마다 시시각각으로 더해진다.…나타나엘에게는 내가 많이 아팠다고 말해라. 핍립보에게도 그렇게 말해라. 그리고 그들이 친절하기를 바란다. 다른 두 사람에게도 그렇게 말하여라. 그러나 그 이상은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내가 아팠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았다고, 또 내가 그 일을 확인했다고 말하는 것은 진실이다. 거기에 대해서 그 이상 말해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는 매우 고통스럽게 말씀하신다.…여덟 사도는 서글프게 예수를 쳐다보고, 베드로는 예수 뒤에 있으면서 감히 예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예수께서는 고개를 들어 다정스럽고 서글픈 미소를 지으시며 당신의 성실한 시몬을 바라보신다.
“아이고! 저는 선생님이 그러시는 걸 볼 수가 없습니다! 제게는 우리가 모인 것으로 생긴 기쁨이 사라지고, 그것의 거룩함만이, 그것만이 남아있는 것같이 생각됩니다. 그런 느낌이 듭니다! 지금 당장은…악집으로 가십시다. 선생님은 옷을 갈아  입으시고, 뺨에 면도를 하시고, 머리를 빗으세요. 그렇게 말구요, 그렇게는 안 됩니다! 저는 선생님이 그러신 걸 보지 못하겠습니다.…선생님은…꼭 사람들에게 쫓기다가 잔인한 손에서 벗어나 기진맥진한 사람 같아 보이십니다.…선생님은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내진 갈릴래아의 베들레헴의 아벨을 연상시키십니다….”
“그러자. 베드로야, 그러나 네 선생의 마음을 사람들이 해친 것이다…그리고 이 마음은 영영 낫지 않을 것이다.…낫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점점 더 상처를 입을 것이다. 가자….”
요한이 한숨을 쉰다. “저는 이것이 마음에 언짢습니다.…저는 선생님의 어머니를 몹시 사랑하는 토마에게 노래와 연고의 기적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는데요….”
“언젠가 말하려므나.…지금은 말고. 언젠가 모두 다 말해라. 그때는 너희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자신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아는 것을 무엇이든지 다 말하여라’ 하고 말하겠다. 그러나 우선은 기적에서 진리를 볼 줄 알아라. 그 진리란 믿음의 힘, 이것이다. 요한도 신디카도 말로나 연고로 바다를 가라앉히고 그 사람을 낫게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믿음을 가지고 마리아의 이름과 어머님이 만드신 연고를 썼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또 이것도 있다. 그렇게 된 것은 그들의 믿음 주위에 너희 모두의 믿음과 너희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처입은 사람에 대한 사랑, 크레타인에 대한 사랑. 너희가 한 사람에게는 생명을 보존하기를 원했고, 또 한사람에게는 믿음을 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육체를 낫게 하는 것은 그래도 쉽지만, 영혼을 남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정신의 병보다 이기기가 더 어려운 병은 없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한숨을 푹 쉬신다.
그들은 악집이 보이는 데에 와 있다. 베드로는 숙소를 구하기 위하여 마태오와 함께 먼저 간다. 다른 사람들은 예수 둘레에 바싹 붙어서 그들을 따라간다. 그들이 마을에 들어갈 때는 해가 빨리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