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선생님! 아니 우리 앞에 누가 있는지 모르십니까? 가믈리엘 선생입니다! 바람이 막힌 나무 그늘 속에 포장을 둘러친 가운데 하인들과 같이 앉아 있습니다. 그들은 어린 양을 굽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사람들아, 그야 우리가 하려고 하던 것을 계속하는 것이지. 우리 길을 계속하는 것이다 ….”
“그러나 가믈리엘은 성전 사람인 걸요.”
“가믈리엘은 신의없는 사람이 아니다. 두려워 말아라.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겠다.”
“오! 저도 가겠습니다.” 하고 예수의 사촌들과 모든 갈릴래아 출신 제자와 시몬이 함께 말한다. 가리옷 사람만이, 그리고 그보다는 덜 하지만 토마도 별로 앞으로 갈 결심이 서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그들도 다른 사람들을 따라간다. 나무가 무성한 깎아지른 절벽 사이로 난 산길이 아직 몇 미터 계속된다. 그러다가 길이 구부러지면서 일종의 고원으로 들어섰다가 가지들이 새로 얽힌 나무들 밑으로 들어가며 다시 좁아지고 꼬불꼬불해진다. 양지바르면서도 동시에 새로 돋아나는 나무들의 잎으로 그늘이 진 숲속의 빈 터의 호화스런 천막 아래 많은 사람이 있고, 또 한구석에는 불꽃 위에 어린 양을 돌리는 일에 전념하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
말할 것도 없다! 가믈리엘은 건강에 몹시 유의하는 것이었다. 여행하는 한 사람을 위하여 수많은 하인을 움직였고 얼마나 많은 짐을 옮기게 했는지 모른다. 이제 그는 그의 천막 가운데에 앉아 있다. 금빛 나는 말뚝 네 개 위에 친 천으로, 일종의 닫집을 이루는 것인데, 그 아래에는 쿠션이 깔린 낮은 의자들이 있고 상감세공(象嵌細工)으로 장식한 세발받침이 달린 식탁이 있다. 식탁에는 대단히 고운 식탁보가 깔려 있는데, 하인들이 그 위에 값진 식기들을 늘어놓는다. 가믈리엘은 우상과 같다. 손을 펴서 무릎에 올려놓고 빳빳하고 엄숙하게 앉아 있는 것이 꼭 석상과도 같다. 그의 주위로는 하인들이 나비처럼 돌아다닌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상관하지 않는다. 그는 그의 엄한 눈에 눈꺼풀을 거의 내리덮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그리고 눈꺼풀을 올리면, 길고 날씬한 코 양쪽에 움푹 들어가고 생각에 많이 잠긴 대단히 짙은 빛깔의 눈이 아주 엄격하면서도 아름답게 드러난다. 그 위로는 나이많은 사람의 약간 벗어진 넓은 이마가 있는데, 주름 셋이 평행으로 파여져 있고, 오른쪽 관자놀이 한 가운데에는 굵고 파르께한 정맥이 V자 모양을 그려놓고 있다.
그리고 오는 사람들의 발소리에 하인들이 돌아다본다. 가믈리엘도 몸을 돌린다. 그는 앞장서서 오시는 예수를 보고 놀라는 몸짓을 한다. 그는 일어나서 천막가에까지만 나온다. 그러나 거기서 손을 가슴에 십자로 포개 얹고 몸을 깊이 구부린다. 예수께서는 같은 모양으로 답례를 하신다.
“선생께서 여기를?” 하고 가믈리엘이 묻는다.
“그렇습니다, 선생님.” 하고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어딜 가시느냐고 물어도 괜찮겠습니까?”
“선생님께 대답하는 것이 제게는 기분좋은 일입니다. 저는 네프탈리에서 오고 지스칼라로 가는 길입니다.”
“걸어서요? 그러나 길이 멀고 산길이 험합니다. 선생께서 너무 피로하시겠습니다.”
“진정으로 말합니다만, 누가 나를 받아들이고 내 말을 들으면 이것으로 일체의 피로가 내게서 없어집니다.”
“그러면 … 이번 한 번만이라도 내가 선생의 피로를 없애 드리는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어린 양이 다 익었습니다. 나는 나머지를 가져가는 습관이 없기 때문에 우리들은 나머지를 새들에게 남겨 주었을 것입니다. 선생을 청하고 선생과 더불어 선생의 제자들을 청하는 것이 내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시겠지요. 예수님, 나는 선생의 친구입니다. 나는 선생을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나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선생님의 초대를 받아들이겠습니다.”
가믈리엘은 주방장의 일을 하는 것 같은 하인에게 말한다. 이 하인이 명령을 전달하니, 천막을 늘이고 많은 노새에서 예수의 제자들을 위한 의자들과 식기들을 내린다.
손가락을 깨끗하게 할 컵들을 가져온다. 예수께서는 대단히 품위있게 이 의식을 행하시고, 그동안 유다의 세련된 예법에 능숙한 시몬과 가리옷의 유다와 바르톨로메오와 마태오를 제외한 다른 제자들은 가믈리엘이 주의깊게 곁눈질로 살펴보는 가운데 할 수 있는 대로 덜 서투르게 이 일을 한다.
예수께서 식탁 한 쪽에 혼자 있는 가믈리엘의 옆에 계시다. 예수의 맞은 편에는 열성당원이 있다. 가믈리엘이 봉헌의 기도를 엄숙하게 천천히 하고 난 뒤에 하인들이 어린 양 고기를 잘라서 손님들에게 나누어 주고, 잔에 포도주를 따르고, 꿀물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꿀물을 따라 준다.
“선생, 우리가 우연히 만났군요. 선생이 지스칼라로 가시는 길에 이렇게 만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에게 갑니다.”
“그렇습니다. 선생은 지칠 줄 모르는 예언자십니다. 요한은 정착해 있고, 선생은 순회하시구요.”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저를 만나기가 더 쉽게 됩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옮겨다니시면 사람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됩니다.”
“저는 원수들에게만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사랑하기 때문에 저를 원하는 사람들은 저를 찾아냅니다. 모두가 선생에게 올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원하는 선생이 그들을 찾아갑니다. 저는 이렇게 해서 착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저를 미워하는 사람들의 책동을 피합니다.”
“내게 대해서 그 말을 하는 것입니까? 나는 선생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선생님께 대한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의로우시고 진실하시니, 제 말이 사실이라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 아시겠어요? … 우리 늙은이들은 선생을 이해하기가 힘들단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낡은 이스라엘은 불행하게도 저를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 그런데 그것은 그가 원해서 그런 것입니다.”
“아! 그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선생님 이스라엘은 선생을 이해하려고 그의 의지를 전적으로 기울이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그치는 사람은 잘못하는 것이지만, 그 잘못이 상대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와 반대로 제 말을 틀리게 알아듣고 하느님께 해를 끼치려고 내 말을 왜곡하는 데 그들의 의지를 전념케 합니다.”
“하느님께 해를 끼친다구요?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의 계략을 초월해 계신데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길을 잃거나 남이 길을 잃게 하는 영혼은 – 그런데 자기 자신을 위해서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제 말을 왜곡하는 것은 길을 잃는 것입니다. – 파멸로 빠지는 영혼을 통해 하느님께 해를 끼칩니다. 파멸로 가는 영혼은 하나같이 하느님께 드리는 상처입니다.”
가믈리엘은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고 곰곰히 생각한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마음의 고통을 나타내는 몸짓으로 길고 야윈 손가락으로 이마를 문지른다. 예수께서는 그를 유심히 살펴보신다. 가믈리엘은 머리를 들고 눈을 뜨고 예수를 쳐다보며 말한다. “그러나 선생은 내가 이런 사람들 축에 끼지 않는다는 것을 아시지요.”
“압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첫 번째 사람들 중에 드십니다.”
“오! 그건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선생을 이해하려고 전념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선생의 말이 내 지능에 와서 멎고 그 이상 들어오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 지능은 학자의 말처럼 그 말에 탄복합니다. 그러나 정신은 ….”
“가믈리엘 선생님, 그러나 정신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꽉 들어차 있기 때문에 제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물건들은 폐허입니다. 조금 전에 네프탈리에서 이쪽으로 오면서 산맥에서 외따로 떨어진 산으로 해서 지나왔습니다. 그리로 지나오면서 아름다운 겐네사렛 호수와 메론 호수를 마치 독수리들과 주님의 천사들이 내려다보듯이 보며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주시는 아름다움을 창조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 기뻤습니다. 풀밭과 과수원과 밭과 수풀 할 것 없이 산 전체가 꽃과 새로 돋아나는 덤불과 봄의 새 잎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벌써 눈같이 흰 수천 수만 개의 꽃을 준비하고 있는 올리브나무들 곁에서는 월계수들이 향기를 풍기고 있었고, 든든한 떡갈나무들까지도 참으아리속과 인동덩굴로 덮여 더 매력이 있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꽃이 도무지 없고 사람과 자연의 힘으로 기름지게 할 수 없는 사막 같은 곳이 나타났습니다. 그곳은 고대 핫조르족의 거대한 폐허가 모든 것을 뒤덮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어떤 노력도, 씨앗을 날라다주는 바람의 노력도 수포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그 돌밭에는 쐐기풀과 가시덤불밖에 자라지 못하고 뱀들밖에 살지 못합니다. 가믈리엘 선생님 ….”
“선생의 말을 알아듣겠습니다. 우리도 폐허란 말이지요. … 예수님, 비유를 알아듣겠습니다. 그러나 … 나는 할 수 없습니다. … 달리는 할 수가 없어요. 돌들이 너무 깊이 박혀 있거든요.”
“선생님이 믿으시는 어떤 이가 선생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마지막 말을 듣고 돌들이 떨 것이다.’ 하고. 그러나 뭣 때문에 메시아의 마지막 말을 기다려야 합니까? 선생님은 저를 전에 따르지 않은 것에 대해서 가책을 느끼지 않으시겠습니까? 마지막 말! … 죽어가는 친구의 마지막 말, 우리가 너무 늦게 들으러 간 친구의 마지막 말은 또한 슬픈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 말은 어떤 친구의 말보다 더한 것입니다.”
“선생의 말이 옳습니다. … 그러나 나는 할 수가 없어요. 나는 그 표를 보아야 믿을 것입니다.”
“땅이 황폐하게 된 다음에는 벼락 한 번 치는 것으로는 그것을 개간하는 데 충분치 못합니다. 땅이 벼락을 맞지 않고 땅을 뒤덮은 돌들이 맞습니다. 가믈리엘 선생님, 적어도 그 돌들을 치우도록 힘쓰십시오. 그렇지 않고 돌들이 선생님의 마음 속에 그렇게 깊이 박혀 있으면, 표가 와도 선생님을 믿음으로 인도하지 못할 것입니다.”
가믈리엘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입을 다물고 있다. 식사가 끝났다. 예수께서는 일어나셔서 말씀하신다. “하느님, 식사에 대해서, 또 현자에게 말을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가믈리엘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 그렇게 떠나지 마십시오. 선생이 내게 화를 내지 않으셨나 걱정이 됩니다.”
“아!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러면 가지 마세요. 나는 힐렐의 무덤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나하고 같이 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나는 모든 사람이 탈 만큼 노새와 나귀들이 있으니까 빨리 갈 것입니다. 노새와 나귀의 짐만 내려서 하인들이 지고 가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선생에게는 이번 길에서 제일 어려운 부분을 질러 가는 셈이 될 것입니다.”
“선생님과 같이 힐렐의 무덤에 가는 것을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제게는 영광이 되는 일입니다. 그러면 가십시다.”
가믈리엘이 명령을 내린다. 그리고 모두가 임시 식당을 분해하는 일을 하는 동안 예수와 가믈리엘 선생은 나란히 노새를 타고 조용한 오르막길로 나아간다. 그 조용한 길에 편자를 박은 굽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
가믈리엘은 말이 없다. 안장이 편하냐고 예수께 두 번 묻는 것 밖에 없었다. 예수께서도 대답을 하시고는 당신 생각에 잠기셔서 말씀을 안하신다. 어떻게나 생각에 골몰하시는지 가믈리엘이 당신의 일거일동을 살피기 위하여 그의 노새를 억제하여 예수를 목의 길이 하나쯤 앞서가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신다. 늙은 선생의 눈이 어떻게나 주의깊게 응시하는지 꼭 먹이를 노리는 매눈과 같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신다. 그저 노새의 건들거리는 걸음에 적응하시며 조용히 앞으로 나아가신다. 예수께서는 곰곰히 생각하신다. 그러나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의 모습을 살펴보신다. 손을 내밀어 황금빛 양골담초 무더기를 뜯으시니 그것이 땅으로 떨어진다. 잎이 우거진 노간주나무에 둥지를 틀고 있는 새 두 마리를 보고 미소지으시고, 머리가 검은 꾀꼬리의 노래를 들으려고 노새의 걸음을 멈추기도 하시고, 멧비둘기가 일을 하고 있는 동료를 격려하는 몹시 불안해 하는 부르짖음에 마치 축복을 하시듯 고개를 끄덕이신다.
“선생은 초목과 짐승들을 몹시 좋아하시지요?”
“대단히 좋아합니다. 이것은 살아 있는 제 책입니다. 사람은 그 앞에 항상 믿음의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창세기는 자연 속에 살아 있습니다. 이제는 볼 줄 아는 사람은 믿을 줄도 압니다. 그 향기와 늘어진 꽃부리의 질료(質料)가 저렇게도 부드러워서 저 찌르는 노간주나무와 저 찌르는 가시양골담초와 대조가 되는 저 꽃이 저절로 생겨날 수 있었습니까? 또 보십시오. 저 부드러운 가슴에 저 마른 피 한 줌을 가지고 있는 저 울새가 저렇게 저절로 생겨날 수 있었겠습니까? 또 저 두 마리의 멧비둘기는 그 회색 깃의 천에 어디서 어떻게 저 줄마노(瑪瑙) 빛깔 목걸이를 그려 가질 수 있었겠습니까? 또 저기 나비 두 마리를 보십시오. 한 마리는 검은 색에 금빛과 루비빛을 띤 큰 눈을 가졌고, 또 한 마리는 흰 색에 파란 줄무늬가 있는데, 저놈들이 어디서 그 날개에 달려고 보석과 리본을 찾아냈겠습니까? 또 저 개울은? 그것은 물입니다. 좋습니다. 그러나 저 물은 어디서 왔습니까? 원소인 물의 첫째 근원인 무엇입니까? 오! 제대로 볼 줄 알면, 바라보는 것은 믿는다는 뜻이 됩니다.
“바라다보는 것은 믿는다는 뜻이라, 우리는 우리 앞에 있는 살아 있는 창세기를 너무도 바라다보지를 않습니다.”
“가믈리엘 선생님, 지식은 너무 많고 사랑은 너무 적고 겸손도 너무 적습니다.
가믈리엘은 한숨을 쉬고 머리를 젓는다.
“자, 다 왔습니다. 예수님, 저기 힐렐이 묻혔습니다. 내려가서 노새들을 여기 둡시다. 하인이 이 놈들을 붙잡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