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도시에서 말씀하신다. 적어도 내게 그렇게 보인다. 모든 도시가 거의 같은 양식이어서 얼핏 보아서는 구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도 큰 길이 호수를 끼고 나 있고 배들이 모두 기슭 가까이에 있다. 크고 작은 집들은 큰 길 건너편에 있다. 그러나 이곳에는 야산들이 훨씬 더 뒷쪽으로 있어서 이 작은 도시가 아름다운 평야 가운데 있게 된다. 이 평야는 호수의 동쪽 기슭을 따라 발달하였으며, 야산들이 바람을 막아 바람을 피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평야는 온화한 기후를 가지고 있어서, 이곳에서는 다른 시골에서보다도 나무의 꽃들이 훨씬 더 잘 핀다.
연설은 벌써 시작된 모양이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알 수 있다. “ … 그것은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우리는 선생님을 절대로 버리지 않겠습니다. 선생님을 버리는 것은 하느님을 버리는 것일 테이니까요.’ 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게르게사의 시민 여러분, 사람의 생각보다 더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여러분이 지금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내 말과 뜻밖에 일어나 기적이 여러분을 이런 방향으로 흥분시켰고, 여러분이 지금은 실제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삽화 하나를 여러분에게 상기시키겠습니다. 오래 전의 것이거나 근래의 것이거나 이런 삽화를 얼마든지 예로 들 수 있겠지만, 이것 하나만을 들겠습니다.
하느님의 종 여호수아가 죽기 전에 각 지파의 연장자들과 지도자들과 재판관들과 행정관들을 자기 주위에 불러 모아놓고, 주님 앞에서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는 주님이 자기를 통하여 베푸신 모든 은혜와 행하신 모든 놀라운 일들을 그들에게 상기시켰습니다. 이 모든 일을 열거한 다음에, 주님이 아닌 어떤 신도 물리치라고,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참 하느님을 진정으로 택하든가 메소포타미아의 신들과 아모리인들의 신들을 택하든가 함으로써 아브라함의 자손들과 이교에 집착하는 사람들 사이에 명백한 구별이 있게 하라고 권했습니다.
뚜렷한 오류는 항상 위선적인 신앙고백이나 믿음의 혼합보다는 더 나은 것입니다. 믿음의 혼합은 하느님께는 치욕이 되고 사람의 정신에는 죽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의 혼합보다 더 쉽고 더 흔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외양은 그럴 듯합니다. 그러나 그 아래 깔려있는 실제는 아무 가치도 없습니다. 여러분, 언제나 그렇습니다. 언제나. 율법을 지키는 것과 율법이 금하는 것과를 뒤섞는 신자들, 율법을 충실히 지키는 것과 율법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이익을 얻어내기를 바라서 그들과 거래를 하고 타협을 하는 데에서 오는 이익 사이에서 술취한 사람들처럼 망설이는 저 추한 사람들, 하느님을 섬기는 것을 그들의 생활의 목적으로 삼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제압하고 더 성실한 사람들에 대하여 전권을 가지기 위한 교활한 정략을 만드는 저 사제들이나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우리 하느님과 외국의 신들을 뒤섞어놓는 위선자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그들이 하느님의 종들이 아니라 그들이 추구하는 목적을 위하여 힘있고 귀중하다는 것을 아는 권력의 종들이기 때문입니다.
백성은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참 하느님을 버리고 외국의 신들을 섬기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하고.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내가 전에 여러분에게 말한 것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즉 아버지의 거룩한 질투와 우리에게서 우리 전체를 기울인 전적인 사랑을 받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뜻, 그리고 거짓말쟁이들을 벌하시는 것이 공평하다는 것에 대해서 말한 것입니다. 벌한다는 것! 하느님께서는 상을 주실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벌하실 수도 있습니다. 죽어야만 상을 받거나 벌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 히브리 백성들이여, 하느님께서 그대들을 에집트의 왕들에게서 구해내시고, 광야와 적들의 계략들 사이로 그대들을 무사히 인도하시고, 그대들로 하여금 위대하고 존경받고 영광을 많이 누리는 민족이 되도록 허락하심으로 그대들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시고 나서 그대들의 죄 때문에 한 번, 두 번, 열 번 그대들을 벌하지 않으셨는가! 지금 그대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라! 그리고 나는 그대들이 우상숭배 중에서도 가장 하느님을 모독하는 우상숭배에 빠져들어가는 것을 보며, 그대들이 늘 같은 죄에 다시 떨어지는 고집으로 인하여 어떤 구렁으로 떨어지려는지를 본다. 내가 구세주이고 또 내가 그대들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중으로 내 백성인 백성아, 이 때문에 내가 그대를 다시 일깨우는 것이다. 이것은 증오가 아니고, 원한도 아니며, 비타협성도 아니다. 내가 상기시키는 것은, 비록 그것이 엄하다 하더라도 역시 사랑이다.
여호수아는 그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택한다고 한 그 말의 증인은 여러분이오.’ 하고. 그리고 모든 사람은 ‘우리가 증인입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용맹하지만 않고 지혜롭기도 하던 여호수아는 사람의 의지가 얼마나 약한지를 알기 때문에 율법과 계약의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여 성소에 두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때 장막이 있던 세겜에 있는 성소에 큰 돌 하나를 증거로 가져다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주님께 드린 말들은 이 돌이 여기 증거로 있어 여러분이 말한 것을 부인하고 여러분의 주 하느님께 거짓말을 할 수 없게 할 것이오.’ 하고.
돌은 아무리 크고 단단하더라도 사람이나 벼락에 의해서 또는 물과 세월로 인한 마멸로 언제나 먼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모퉁이돌인 나는 파괴될 수가 없습니다. 이 살아 있는 돌에게 거짓말을 하지 마시오. 이 돌이 기적을 행한다고 해서만 그를 사랑하지 마시오. 여러분이 이 돌을 통하여 하늘에 닿겠기 때문에 이 돌을 사랑하시오. 나는 여러분이 더 영적인 사람들이 되고 주님께 더 충실한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게 충실하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내가 존재하는 것은 다만 아버지의 목소리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짓밟으면 여러분은 나를 보내신 분을 모욕하는 것이 됩니다. 나는 중개인입니다. 하느님께서 전부이십니다. 여러분은 이 하느님께 이르기 위하여 거룩한 것을 내게서 거두어서 여러분 안에 보존하시오. 나를 사람으로 사랑하지 말고 주님의 메시아로 사랑하시오. 또 메시아가 행하는 기적 때문에 그를 사랑하지 말고, 그가 여러분 안에 여러분의 성화라는 내적이고 숭고한 기적을 행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사랑하시오.”
예수께서는 강복을 주시고 어떤 집을 향하여 가신다. 거의 그 집 문지방에 오셨는데, 나이많은 사람 한 떼가 걸음을 멈추시게 하고 공손히 인사를 하며 말한다. “주님, 말씀을 여쭈어보아도 되겠습니까? 저희들은 요한의 제자들입니다. 그런데 요한이 항상 주님 말씀을 하고, 또 주님의 경탄할 만한 일들의 소문이 저희들에게까지 왔기 때문에 주님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질문 한 가지가 머리에 떠오릅니다.”
“말하시오. 당신들이 요한의 제자이면 벌써 올바른 길에 들어서 있는 것입니다.”
“신자들에게 흔히 있는 우상숭배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선생님은 저희들 가운데 율법과 율법 밖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교제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선생님도 그 사람들의 친구이십니다. 선생님께서 로마인들을 경멸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저희들도 압니다. 그러면?”
“나는 그 말을 부인하지는 않소. 그러나 내가 거기에서 어떤 이익을 얻으려고 그렇게 한다고 말할 수 있겠소? 내가 그들의 보호만이라도 얻기 위해서 그들에게 아부한다고 말할 수 있겠소?”
“아닙니다, 선생님, 그리고 이 점에 대해서 더 없이 확신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저희가 보는 악만을 믿고, 누가 저희들에게 와서 말하는 악은 믿기를 원치 않는 저희들 같은 사람만 있지 않습니다. 이제는 저희들 앞에서 누가 선생님을 중상하면 그런 경우에 어떻게 행동할지를 알고 선생님을 변호할 수 있게 이방인들과의 교제를 수긍할 수 있는 것이 되게 하는 이유들을 말씀해 주십시오.”
“인간적인 목적으로만 할 때에는 접촉을 하는 것이 나쁘오. 그러나 그들을 우리 주 하느님께로 데려오기 위하여 그들과 교제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오. 내가 하는 것은 이것이오. 만일 당신들이 이방인들이라면, 어떻게 모든 사람이 오직 한 분뿐이신 하느님에게서 오는지를 설명하느라고 시간을 끌 수 있을 것이오. 그러나 당신들이 히브리인이고 요한의 제자들이오. 그러므로 당신은 히브리인 중의 정수(精粹)요, 그래서 이것을 당신들에게 설명할 필요는 없소. 그러므로 당신들은 내가 하느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만인의 아버지의 자식들인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내 의무라는 것을 이해하고 믿을 수 있소.”
“그러나 그들은 이교도들이기 때문에 아들들이 아닙니다 ….”
“은총이라는 면으로 말하면 그들은 아들들이 아니오. 그릇된 그들의 믿음으로는 아들들이 아니오. 그것은 사실이오. 그러나 내가 사람을 구속할 때까지는 히브리인까지도 은총을 잃은 상태일 것이오. 사람이 은총을 못 받게 되는 것은 원죄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은총의 빛을 가려서 마음 속에까지 내려오지 못하게 막기 때문이오. 그러나 사람은 창조에 의해서 항상 하느님의 아들이오. 히브리인도 로마인도 다 인류의 시조 아담에게서 오는데, 아담은 그에게 영적인 유사성을 주신 아버지의 아들이오.”
“그것은 사실입니다. 선생님, 또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왜 요한의 제자들은 엄격한 단식을 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선생님이 식사를 하셔서는 안 된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다니엘 예언자도 바빌론의 조정의 고관으로 있으면서도 하느님이 보시기에는 성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다니엘보다도 더 위대하십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제자들은 ….”
“엄격주의도 얻지 못하는 것을 온정으로 얻는 일이 흔히 있소. 선생에게로 결코 오지 않을 사람들이 있소. 그러면 선생이 그들에게로 가야 하오. 어떤 사람들은 선생에게 오고 싶기는 하지만 군중이 있는 데에서는 부끄러워서 오지 못하오. 그 사람들에게도 선생이 가야 하오. 그리고 그들이 ‘선생님을 알 수 있게 제 손님이 되어 주십시오.’ 하고 말하기 때문에 그들의 집에 가오. 호사스러운 식탁의 즐거움이나 내게는 몹시 괴로운 회화를 고려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역시 언제나 하느님의 이익을 고려해서 가오. 이것은 내게 관한 것이오. 그런데 흔히 내가 이렇게 접근하는 영혼들 중에서 적어도 한 영혼이 회개하고, 어떤 회개를 막론하고 내 영혼에는 하나의 혼인 잔칫날이고, 이 큰 잔치에는 하늘의 천사들도 한 몫 끼고 영원하신 하느님께서도 그것에 강복하시기 때문에 신랑인 나의 친구들인 내 제자들은 그들의 친구인 신랑과 더불어 몹시 기뻐하오. 당신들은 내가 몹시 기뻐하는 동안에 친구들이 고통 중에 있기를 바라겠소? 내가 그들과 같이 있는 동안에? 그러나 그들이 나 없이 있을 때가 올 것이오. 그러면 그 때에는 그들이 엄격한 단식을 할 것이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방법이 있는 법이오. 어제까지는 세례자 곁에 회개의 재가 있었소.
그러나 오늘은 나의 오늘에는 구속과 자비와 사랑의 맛있는 만나가 있소. 이런 방법들은 내 행동에 접붙여질 수가 없을 것이오. 그것은 어제만 하더라도 자비가 아직 세상에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 때에는 내 방법을 적용할 수가 없었던 것이오. 그러나 지금은 자비가 땅에 내려와 있소. 이제는 예언자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넘겨 주신 메시아가 땅에 내려와 있소. 각 시대에는 그 시대에 유익한 것들이 있소. 아무도 헌 옷에 새 천조각을 대어 깁지는 않소. 그렇게 하지 않으면 특히 빨래를 할 때에 새 천이 오그라들어 헌 천이 찢어지고 또 찢어진 것이 훨씬 더 넓어지기 때문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새 술을 헌 부대에 넣는 사람은 아무도 없소. 그렇게 하지 않으면 헌 부대가 새 술이 부걱부걱 괴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서, 새 술이 터진 부대 밖으로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오. 그러나 벌써 발효작용이 끝난 묵은 술은 헌 부대에 넣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소. 그것은 어떤 힘이 그것과 동등한 다른 힘과 균형이 잡혀야 하기 때문이오. 지금이 그렇소. 새 교리의 힘은 그것이 전파되는 데 새로운 방법을 강요하오. 그래서 그것을 아는 나는 이 새로운 방법을 쓰는 것이오.”
“주님, 고맙습니다. 저희들이 이제는 만족합니다. 저희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저희들은 헌 부대들입니다. 선생님의 힘에 견뎌낼 수 있겠습니까?”
“그렇소. 그것은 세례자가 당신들을 단련했고, 내 기도와 합한 세례자의 기도가 이 가능성을 당신들에게 주겠기 때문이오. 내 평화를 가지고 가시오. 그리고 요한에게 내가 축복한다고 말하시오.”
“그러나… 선생님 생각에는 저희들이 그대로 세례자와 같이 있는 것이 낫습니까, 선생님과 같이 있는 것이 낫습니까?”
“묵은 술이 있는 동안은 그것이 입에 더 즐겁기 때문에 그것을 마시는 것이 더 기분이 좋소. 이 다음에는 … 어디에나 있는 건강에 해로운 물에 당신들이 싫증이 날 것이니까, 새 술을 좋아하게 될 것이오.”
“세례자가 다시 잡히리라고 생각하십니까?”
“틀림없소. 나는 벌써 그에게 사람을 보내 경계를 하라고 일렀소. 자 가시오. 당신들이 할 수 있는 한 당신들의 요한을 즐기시오. 그리고 그를 기쁘게 하시오. 그 다음에는 나를 사랑하시오. 그런데 이것이 당신들에게는 힘드는 일이기도 할 것이오. … 묵은 술을 맛보고 나서 곧 새 술을 원하는 사람은 ‘묵은 술이 더 좋았어.’ 하고 말하오.또 사실 나는 특별한 맛을 가지고 있을 것인데, 그것이 당신들에게는 시다고 생각될 것이오. 그러나 결국 당신들도 이 생명을 주는 맛에 익숙해질 것이오. 친구들, 잘 가시오. 하느님께서 당신들과 함께 계시기를 바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