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이것은 과거의 십자가와 미래의 먹구름을 쳐다보며 울고 있는 영혼인 너를 위하여 특별히 하는 말이다.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네 손에 놓아 주실 빵과 울고 있는 당신의 멧비둘기를 거두어 줄 둥지를 가지고 계실 것이다.
내가 정의를 가진 ‘주님’일 줄을 안다는 것은 모든 사람을 위한 교훈이다. 그러나 거짓 존경으로 나를 속이지 못하고 나를 즐겁게 하지 못한다. 형제에게 마음의 문을 닫는 사람은 하느님께 마음의 문을 닫는 것이고, 하느님께서도 그에게 마음의 문을 닫으신다.
사람들아, 이것이 첫째 계명이다. 사랑과 사랑.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자기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내세우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사랑이 없으면 성사를 자주 받고 전례에 자주 참례하는 것이 무익하며, 기도도 소용없다. 그것은 틀에 박힌 말투가 되고, 독성(瀆聖)이 되기까지 한다. 너희들이 굶주린 사람에게 빵을 거절하고서 어떻게 영원한 빵을 찾아와서 배불리 먹을 수 있느냐? 너희 빵이 내 빵보다 더 귀중하냐? 더 거룩하냐? 위선자들아! 나는 너희 비참에 나를 줄 때에 한계를 두지 않는다. 그런데 하찮은 존재인 너희들은 다른 사람들의 비참에 대해서 동정을 가지지 않는다. 그 비참들은 불행이고, 너희들의 비참은 죄악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눈으로 볼 때에는 너희들의 비참같이 추악한 것이 아닌데 말이다. 너희들은 너희 이익에 대해서 내가 친절을 베풀게 하려고 ‘주님, 주님’ 하는 말을 너무 자주 한다. 그러나 너희들은 그 말을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하지 않고, 이웃을 위하여 주님의 이름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보아라, 집단에 있어서나 개인에 있어서나 너희의 거짓 신앙심과 너희의 사랑의 진짜 결핍이 너희에게 무엇을 주었느냐? 하느님의 저버림을 주었다. 그리고 내가 가르친 대로 너희가 사랑할 줄 알게 될 때에 주님은 다시 오실 것이다. 그러나 착하면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의 작은 양떼인 너희들에 대하여는 내가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결코 고아가 아니다. 너희는 절대로 버림받지 않는다. 하느님의 아들들에게 섭리의 돌보심이 없다면 하느님이존재하지 않으실 것이다. 손을 내밀어라. 아버지께서는 너희에게 모든 것을(아버지)로서, 즉 품위를 떨어뜨리지 않는 사랑으로 주신다. 너희 눈물을 닦아라. 나는 너희의 의기소침을 불쌍히 여기기 때문에 너희를 붙잡고 안아 준다’고. 피조물 중에서 가장 사랑받는 것이 사람이다. 너희들은 아버지께서 충실한 사람보다 새를 더 불쌍히 여기시리라고 의심하고자 하겠느냐? 죄인에 대해서까지도 참을성을 가지시고, 그에게 당신께로 올 시간과 가능성을 주시는 아버지께서 충실한 사람을 덜 불쌍히 여기시리라고 의심하고자 하느냐 말이다. 오! 세상이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이해하면 얼마나 좋겠느냐!
마리아야, 화평한 마음으로 있어라. 너는 네가 본 두 고아와 마찬가지로, 아니 한층 더 소중하다. 화평한 마음으로 있어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내 공생활의 알려지지 않은 삽화(揷話)들을 네게 알려 줄때에 나는 벌써 까다로운 박사들이 입을 모아 ‘그러나 이 사실은 복음서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 어떻게 저 여자가 (나는 이것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하고 말하는 것을 듣는 것 같다. 그들에게 나는 복음서의 말을 가지고 대답하겠다.
‘예수께서는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가시는 곳마다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그리고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고 마태오는 말한다.
또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 소경이 보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하여 진다’고.
또 이렇게도 말한다. ‘코라진아, 너는 화를 입으리라. 베싸이다야, 너도 화를 입으리라. 너희에게 베푼 기적들을 띠로와 시돈에서 보였더라면 그들은 벌써 베옷을 입고 재를 머리에 들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네 가파르나움아! 네가 하늘에 오를 성 싶으냐?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베푼 기적들을 소돔에서 보였더라면 그 도시는 오늘까지 남아 있었을 것이다’ 하고. 마르코는 이렇게 말한다. ‘… 갈릴래아에서 많은 사람들이 따라왔다. 또 유다와 예루살렘과 에돔과 요르단강 건너편에 사는 사람들이며 띠로와 시돈 근방에 사는 사람들까지도 예수께서 하시는 기적들을 전해 듣고 많이 몰려 왔다….’
또 루가는 이렇게 말한다. ‘예수께서는 여러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는데 열 두 제자도 같이 따라 다녔다. 또 악령이나 질병으로 시달리다가 나은 여자들도 따라 다녔다. ‘또 내 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그 후 예수께서는 갈릴래아 바다 저편으로 가셨는데, 많은 군중이 따라왔다. 그들이 예수께서 병약자들에게 행하신 기적들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요한은 내가 3년 동안에 행한 어떤 성질의 기적이든 모두 보았기 때문에 내 사랑하는 제자는 내게 대하여 한없는 증언을 해준다. ‘그 제자는 이일들을 중언하고 또 글로 기록한 사람이다.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예수께서는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일을 하셨다. 그 하신 일들을 낱낱이 다 기록하자면 기록한 책은 이 세상을 가득히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면? 트집을 잡는 박사들이 이제는 무슨 말을 하느냐? 만일 내 친절이 너희들 대신으로 내 십자가를 짊어진 내 사랑하는 사람 중의 하나의 짐을 덜어 주기 위하여 -그 사람은 내가 슬퍼하는 것을 보기보다는 차라리 자기가 죽기를 원할 정도로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 어깨에서 십자가를 내려서 자기가 짊어졌다 -만일 내 친절이 그 안에서 너희가 죽어가고 있는 혼수상태에서 너희들을 깨우기 위하여 내가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의 삽화들을 알려 준다면, 거기에 대하여 이 친절을 비난하고자 하겠느냐? 정말이지 너희들은 이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고, 너희를 질식시키는 가스에서 너희를 꺼내 주려고 너희 구세주가 하는 노력을 할 만한 가치가 없다. 그러나 내가 이 선물을 너희에게 주니, 그것을 받고 일어나라. 이것은 내 복음서들이 노래하는 합창에 들어갈 새 가락이다. 이 가락들이 복음서들의 알려진 삽화를 앞에 두고 이제는 기력이 없게 되었고, 또 기력이 없는 채로 있는 너희의 주의를 적어도 깨우는데 소용되었으면 한다. 게다가 너희들은 복음서들을 아주 잘못 읽고 또 방심한 채 읽는다.
그래도 너희들은 내가 3년 동안에 복음서에서 이야기하는 얼마 알 되는 기적만을 행했다고 생각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너희들은 복음서에서 말하는 얼마 안 되는 여자들만이 병이 고쳐졌다고 생각하거나 복음서에서 이야기하는 기적들만 행해졌다고 생각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베드로의 그림자가 병에 고치는데 소용되었는데, 내 그림자는 무엇을 하는 데 소용되었겠느냐? 또 내 호흡은? 내 눈길은? 출혈증에 걸린 여자의 이야기를 기억하여라. ‘저분의 옷자락만 만지게 되어도 내 병이 나을 것이다.’ 또 사실 그렇게 되었다. 기적의 힘이 내게서 끊임없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데려가고, 죄지은 날부터 막혔던 사랑의 둑을 터놓으려고 왔었다. 수백 수천 년 동안 쌓인 사랑이 팔레스티나라는 작은 세상에 쏟아져 들어왔다. 사람들을 피로 구속하기에 앞서 사랑으로 구속하기를 갈망했기 때문에 마침내 퍼질 수 있는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 전체가 말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지만 왜 아주 보잘 것 없는 저 여자에게?’ 하고. 너희들은 업신여기지만 나는 사랑하는 그 여자가 덜 기진맥진하게 되었을 때 너희들에게 대답하겠다. 너희들은 내가 헤로데 앞에서 지켰던 침묵을 지켜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희들을 구속하려고 애쓰고자한다. 교만으로 인해서 가장 설득하기 어렵게 된 너희들을 말이다.”
1944년 8월 21일.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사도 바울로의 말로 너희들에게 대답하겠다. ‘가장 약한 것으로 보이는 지체들이 가장 필요합니다. 우리 몸에서 가장 덜 고상하다고 생각하는 지체를 가장 많은 장식으로 꾸밉니다. 그리고 가장 점잖지 못한 지체를 가장 정중하게 다룹니다. 반면에 점잖은 부분은 주의가 필요치 않습니다. 이제 하느님께서는 명예롭지 못하던 지체에 더 큰 명예를 주시도록 몸을 정리하셨습니다.’
너희들은 흑 이 ‘작은 목소리’가 자기를 어떤 위대한 물건인 것처럼 생각한다고 믿느냐? 너희들이 그에게 물으면 그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의 몸에서 가장 약하고 가장 덜 고상한 지체입니다’ 하고 그는 너희들에게 진정으로 솔직하게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각자가 자기의 척도(尺度)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용하니까. 그리고 겸손하지 않고 솔직하지 못하여 ‘나는 나쁜 사람입니다’ 하고 말하지만 ‘원 별말씀을, 선생은 착하십니다’ 하는 말을 듣기 위해서 그렇게 말하는 너희들은 너희들에 대하여 최고도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만일 솔직해서 너희를 별로 착하지 않다고 여기거나 조금도 착하지 않다고 여겨서 사랑으로 말을 하지 않지만 솔직하기 때문에 너희를 칭찬하지 자으면, 너희들은 그가 너희를 칭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게 성을 내고 그를 미워한다. 그러나 너희들은 그 ‘작은 목소리’가 솔직하다고 믿을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그의 생각을 읽고, 그의 마음속을 보는 나는 그 여자가 자기에게 대하여 그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가지고 있지 않은지를 안다. 이 영혼과 하느님의 대화중에 그 여자가 ‘그렇지만 주님은 아무 가치도 없는 저를, 주님께 그렇게도 많이 결례를 했고, 아직도 많이 결례를 하는 저를 택하실 수 있었습니까?’ 하고 말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안심시키는 말씀이 몇 번이나 울려 퍼졌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여자는 내가 이 임무를 위하여 그를 선택했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로 생각되기 때문에 나를 의심하는 것 같다.
그 여자는 자기가 약하다고, 매우 약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만일 그 여자를 완전과 비교하면 갓난아기의 머리카락 한 올보다도 더 약하다. 그 여자는 자기를 천하다고 생각한다. 또 그를 하느님과 비교하면 땅에서 나는 벌레보다도 못하다. 그러나 그 여자는 오직 하나인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전적인 사랑이다. 그 여자가 무엇을 바치거나 자신을 바치거나 할 때에는 절대로 자기 자신을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서 그에게 올 수 있는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내 마음에 들고 오직 내게 유익할 것만을 생각한다. 이 이유로 세상의 미움을 사게 되더라도. 그 여자는 육체로서의 자기를 미워하기에 이르렀다. ‘자기 생명 (이 세상의 )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것을(영원한 생명까지도)잃을 것이고, 내게 대한 사랑으로 자기의 생명을 잃는 사람은 그것을 얻을 것이다’ 하고 말하면서 내가 가르친 그 거룩한 미움으로 말이다. 말씀을 알아들은 사람의 거룩한 미움!
약함을 이겨내는 이 사랑 때문에 나는 그 여자를 택하였다. 어느 날 나는 한 어린아이를 데려다가 내 사도들 가운데 세워놓고 그들에게 본보기로 주었다. 어린아이는 온 힘을 다하여 사랑하고 교만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작은 어린아이를, 아주 작은 어린아이를 본보기로 준 것은 사탄의 씨앗은 맨 처음 나는 이삭으로 교만을 내기 때문인데, 이 이삭은 씨가 줄기를 모태에서 내밀기가 무섭게 패고, 다음에는 관능성의 둘째 이삭이 패고, 권력이나 돈의 이삭, 즉 힘의 이삭인 셋째 이삭이 팬다. 그러나 첫번째 이삭은 언제나 교만인데, 이것은 엄마의 젖의 단 맛을 잊자마자 입술에서 나오는 것이다.
나는 내 제자들에게 생명의 말을 주기 위하여 그들이 아주 작은 자들, 아주 작은 어린아이가 되기를 원한다. 어린이들이 그 작은 손에 꽃을 잔뜩 들고 내게 와서 ‘자요’ 하고 말하고는 웃으면서 빠져나갔다가 다른 작은 꽃들을 가지고 사랑의 장난을 하면서, 믿고, 솔직하고, 다정스럽게 다시 오곤 하는 것을 보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이었느냐.…아주 작은 어린아이들을, 나는 세상을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그들을 원한다. 그런데 너희들 가운데로 지나가고 너희들 가운데에서 사는 죄없는 어린이들이 너희들을 더 낫게 할 능력이 없으므로 -사실은 죄없는 어린이들이 너희를 더 좋은 사람이 되게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죄없는 어린아이는 하늘에 있는 존재이구 순결과 평화를 발산하는 존재이고, 말하지 않으면서도 자기를 만드신 하느님에 대하여 말하는 존재이며, 말하지 않으면서도 하느님께 딸린 것에 대한 존경을 하도록 명령하는 존재이며, 오염해서는 안 되는 그치 어림과 사랑해야 하는 그의 약함에 대하여 동정과 사랑을 애원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죄없는 어린이는 병자와 고통 받는 사람이 꽃인 것과 같이 너희 이웃의 꽃인데, 어린이는 순박한 꽃이고, 병자와 고통 받는 사람은 붉은 꽃과 자주 꽃이다. 이 꽃들을 너희는 우리의 사랑을 받을 권리가 있는 모든 이웃 가운데에서 더 특별한 사랑으로 사랑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나이가 어려서 죄없는 어린이의 순진함이 넉넉하지 못하므로 나는 영적인 어린이들을 만든다. 이 영적인 어린이들은 너희가 가지지 못한 하느님에게서 받은 지식을 가지고 있고, 웃으면서 첫 발걸음을 내디디는 어린이들과 같이 겸손하고, 순진하고, 신뢰하고, 솔직하다. 첫 걸음마를 메어놓는 어린이들은 엄마가 없으면 넘어지리라는 것을 알고 -이것은 그들이 잘 안다 -엄마를 결코 놓지 않는다.
그래서 영적인 어린이들과 그 여자도 결코 나를 놓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약한 지체이고 -너희들에게는 그렇게 보인다 -비천한 지체인 -너희들에게는 그렇게 보인다 -그 여자와 그 여자와 같은 사람들에게 너희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이 주어진 것이다.
신비체에서는 교만한 사람들의 사회가 업신여기는 바로 그 지체들이 가장 활동을 많이 한다. 손가락은 뇌가 아니다. 그러나 손가락이 없으면 너희가 무엇을 하겠느냐? 가장 평범하고 가장 보잘 것 없는 행위도 할 수 없고, 엄마가 입술에 물려주지 않으면 젖꼭지조차도 찾아 물고 거기서 영양을 취할 수 없는 배내옷에 싸인 갓난아기 같은 것이다. 너희가 매우 유식하고 매우 총명하더라도 너희 뇌의 생각을 종이에 적어두지 못할 것이다. 그 여자도 마찬가지이다. 그 여자는 손가락이다.…그러나 이 작은 지체에 나는 너희들에게 빛을 보여 주고 너희들을 빛에 다시 불러들일 임무를 주었다. 합리주의의 김으로 인하여 연기가 나거나 사랑의 결핍에서 돈으로, 돈에서 관능성으로, 관능성에서 사랑의 결핍으로 가는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하여 불이 꺼진 등불들아, 너희들에게 다시 불을 켜기를 원하는 빛 말이다. 자, 무릎을 꿇어라. ‘작은 목소리’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 아니라, 말을 하는 말씀 앞에 무릎을 꿇어라. ‘작은 목소리’는 말씀의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의 하느님의 연장이다. 말씀하시는 주님을 흠숭하여라. 주님을. ‘작은 목소리’는 익명(匿名)이다. 나는 그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있기를 원한다. 이다음에는 알려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의 ‘목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내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목소리이다. 그의 영광은 그의 고통이다. 하느님께서 선택하시는 것은 어느 것이나 사람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들에게 그 여자를 사랑하라고 부탁하지는 않는다. 이것에는 나로서 충분하고, 또 그 여자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청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너희들이 그 여자를 귀찮게 하지 않고 조용히 내버려두기를 바란다. 너희들이하느님께서 쓰시는 물건에 대하여 가져야 하는 존경심을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