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필립보의 소식을 물으려고 말을 걸었던 첫번째 사람을 보고 그들은 젊은 제자가 어떤 일을 하였는지 알아차리게 된다. 그들의 질문을 받은 주름투성이의 늙은 여자는 물이 가득 찬 물병을 아주 힘들게 가져가고 있었는데, 나이 먹어서 푹 꺼진 눈으로 요한의 아름다운 얼굴을 뚫어지게 들여다본다. 요한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물었는데, 그전에 먼저 “평화가 할머니와 함께 있기를”하는 말을 어떻게나 다정스럽게 하였던지 노파는 거기에 매료되어서 “젊은이가 메시아요?”하고 말한다.
“아닙니다. 저는 그분의 사도입니다. 메시아는 저기 오십니다.” 작은 노파는 물병을 땅에 내려놓고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서 예수 앞에 무릎을 꿇는다.
쓰러져서 안에 들어 있던 물이 반이나 엎질러진 물병 앞에 시몬과 둘이만 남아 있던 요한은 웃으면서 동료에게 말한다. “이 물을 집어 가지고 할머니한테로 가는 것이 좋겠구먼.” 그러면서 물병을 주워 가지고 길을 가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동료는 이렇게 덧붙인다. “그리구 우린 모두 목이 마르니까, 그걸 마시는데 소용이 될 거야.”
그들이 작은 노파있는 데로 갔더니, 노파는 꼭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지극히 거룩하신 어머니의 아름답고 거룩하신 아드님!” 하는 말만 계속되풀이 하고 있다. 노파는 무릎을 꿇은 채로 예수의 얼굴을 발려 들어가듯이 올려다본다. 예수께서는 노파에게 미소를 보내시며 말씀하신다. “할머니, 일어나세요. 일어나시라니까요!” 사도들이 노파있는 곳까지 가서 요한이 말한다. “어머니, 물병을 가져왔습니다, 그렇지만 쓰러져서 물이 조금밖에 안 남았어요. 하지만 할머니가 좋다고 하시면, 저희가 이 물을 마시고 나서 물병을 채워 오겠습니다.”
“그렇게 하우, 젊은이, 그렇게 해요. 그리구 당신들에게 물밖에 줄 게 없어서 안  됐수. 우리 유다를 기를 때처럼 이 세상에 있는 것 중에 제일 맛있는 것인 어미의 젖을 주었으면 좋겠는데, 당신들에게 기운을 나게 하도록 포도주를, 제일 맛있는 포도주를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만 엘리세오의 마리안나는 늙고 가난해서 …”
“할머니의 물은 사랑으로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제게는 포도주요 젖입니다” 하고 예수께서 요한이 드리는 물병에서 물을 제일 먼저 드시면서 대답하신다. 그런 다음 다른 사람들도 마신다.
마침내 일어선 작은 노파는 천국을 바라다보는 것처럼 그들을 쳐다본다. 노파는 그들 모두가 물을 마신 다음 남을 물을 쏟아 버리고 길 끝에 흐르고 있는 샘으로 가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러자 작은 노파는 앞으로 내달아 물병을 보호하며 말한다. “안돼요, 안돼. 깨끗이 하는 물보다도 메시아가 드신 이 물이 더 거룩해요. 내가 죽은 다음에 이 물로 나를 깨끗이 씻으라고 정성껏 보관하겠어요.” 그러면서 그의 물병을 빼앗으며 말한다. “이 물병을 집으로 가져가겠어요. 다른 물병들이 또 있으니까 그것들을 채우겠어요. 그렇지만 거룩하신 선생님, 우선 필립보의 집을 가리켜 드리겠어요.” 그러면서 기쁨으로 다시 활기를 띠게 된 주름진 얼굴과 눈에 미소를 띠고 몸을 잔뜩 구부리고 종종걸음을 친다. 노파는 예수께서 그에게서 빠져 나가실 수 있을까 봐 염려되는 듯이 손가락으로 예수의 겉옷 자락을 잡고 종종걸음을 치며, 그 무게를 노파에게서 덜어 주려고 하는 사도들의 간청에 대해서 그의 물병을 보호한다. 노파는 저녁 어두움이 내리덮이면서 사람의 왕래가 끊어진 아르벨라의 길과 문에 닫힌 집들을 바라다보면서 승리를 기뻐하는 정복자의 눈길 같은 눈길을 가지고 지극히 행복하게 종종걸음을 친다.
마침내 덜 중요한 길에서 좀 더 시내쪽으로 있는 다른 길로 들어서니, 거기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은 놀라서 노파를 살펴보고 손가락질을 하면서 부른다. 노파는 왜 많은 사람이 둘러싸기를 기다렸다가 외친다. “나는 필립보가 전한 메시아를 모시고 있어요. 뛰어 가서 사방에 이 소식을 전하고, 우선 야곱의 집에 알려요. 거룩하신 분께 경의를 표할 준비를 하라구.” 노파는 숨이 끓어질 정도로 외친다. 노파는 복종시킬 줄을 안다. 이것이 혼자 사는 무명의 보잘 것 없는 서민 노파에게 있어서 명령을 하는 그의 시간이다.
노파보다 키가 무척 크신 예수께서는 노파가 이따금씩 쳐다볼 때에 그에게 미소를 보내시고, 손을 노파의 늙은 머리에 얹으시고, 아들과 같이 쓰다듬으신다. 그러니까 노파는 너무 기뻐서 거의 정신을 잃을 지경이다.
야곱의 집은 시내 중심의 한 거리에 있다. 문을 활짝 열어 놓고 불을 밝힌 그 집에는 정문을 지난 다음 긴 통로가 있는데, 거기에 사람들이 등들을 들고 웅성거리고 있다가 예수께서 길에 나타나시자마자 기뻐하며 나온다. 젊은 제자 필립보, 그리고 어머니,아버지,친척들,하인들,친구들이다.예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야곱의 깊은 절에 장중하게 답례하시고 나서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필립보의 어머니에게로 몸을 숙이시고 일으키시고 강복하신 다음 말씀하신다. “당신의 믿음 때문에 항상 행복하시오.” 그런 다음 친구와 함께 달려온 제자에게 인사하시고, 친구에게도 인사하신다.
늙은 마리안나는 그래도 그들이 안마당에 발을 들여 놓을 때까지 예수의 겉옷 자락을 놓지 않고 예수의 옆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때에 노파는 한탄을 한다. “제가 행복하게 강복을 주세요! 이제는 선생님은 여기 머무르시고… 저는 제 보잘 것 없는 집으로 가고 그러면… 이 아름다운 모든 일이 끝이 나는군요!” 늙은이의 목소리에는 큰 슬픔이 깃들었다. 아내가 조용히 무슨 말을 하니까 야곱은 이렇게 말한다. “아닙니다, 엘리세오의 마리안나 아주머니, 아주머니도 제자같이 제 집에 남아 계셔요. 선생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동안은 우리와 함께 계셔요, 그리고 행복하세요.”
“하느님께서 당신께 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사랑을 이해하는군요.”
“선생님… 아주머니가 선생님을 제 집에 모시고 왔습니다. 선생님은 제게 은총과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저는 그저 갚을 뿐입니다. 그것도 선생님께 받은 많은 것을 항상 인색하게 갚을 뿐입니다. 들어오십시오, 다들 들어오십시오, 그리고 제 집이 환대하는 집이 되길 바랍니다.”
밖에 길에 있던 군중은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것을 보고 외친다. “그럼 우리는요? 우리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예수께서 몸을 돌리시고 말씀하신다. “밤이 되어가고, 여러분은 피로했습니다. 거룩한 휴식으로 여러분의 영혼을 준비하시오, 그러면 내일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평화와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집의 더없는 행복을 감싸고 정문이 닫힌다. 여행 뒤에 행하는 정결의식을 하는 동안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주님께 말씀드린다.” 아마 즉시 말씀하시고 새벽에 떠나는 것이 더 나았을 것 같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시내에 있습니다. 필립보가 그 말을 제게 했습니다. 그들이 선생님을 난처하게 하려 들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난처하게 할 수 있었을 사람들은 여기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 사람들이 내게 당하게 할 수도 있을 난처한 일들은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것들을 효력 없게 만드는 사랑이 여기 있다….”
이튿날 아침 … 필립보의 집안과 가까운 사람들과 사도들 사이에서 즐거운 외출이다. 작은 노파도 뒤에 있다.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아르벨라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주된 광장에 이르러서 예수께서는 말씀을 시작하신다. “에즈라 2서(느헤미야서를 말한다. 불가타판에는 느헤미야서라는 제목 아래 “에즈라 2서라고도 한다”는 부제(副題)가 달려 있다.) 8장에는 내가 여기서 되풀이 하는 이런 말들이 있습니다. ‘칠월이 되자…’ (예수께서 내게 말씀하신다. ‘다른 말은 아무것도 덧붙이지 말아라. 성경 말씀을 전부 되풀이 하겠다’ ),
한 민족이 언제 송환됩니까? 그들이 조상들의 땅으로 돌아올 때입니다. 나는 여러분을 여러분의 아버지의 땅에, 즉 아버지의 나라에 도로 데려가려고 왔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이를 위하여 보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여러분을 하느님의 나라에 데려가려고 왔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을 조로바벨과 같이 주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으로 송환된 사람들과 비교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고, 율법학자 에즈라가 다시 거룩한 성안에 모인 백성에 대해서 한 것과 같이 내가 여러분에 대해서 하는 것도 정당한 일입니다. 그것은 도성을 재건하여 주님께 바치면서, 모두가 하느님의 작은 도시들과 비슷한 영혼들을 재건하지 않는 것은 비길 데 없이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이유로 무너진 이 작은 영적 도시들을 어떻게 재건합니까? 그 도시들을 튼튼하고 아름답고 오래 가게 하려면 어떤 재료를 써야 합니까?
재료들은 주님의 계명 안에 들어 있습니다. 십계명인데, 이것을 여러분의 아들이고 내 제자인 필립보가 환기시켰기 때문에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그 거룩한 계명들 중에서도 거룩한 두가지 계명은 이렇습니다. ‘하느님을 네 온 힘을 다하여 사랑하여라.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이것이 율법을 요약한 것이고, 내가 권장하는 것이 이 계명들입니다. 그것이 있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확실히 얻기 때문입니다. 사랑 안에는 자기를 거룩하게 보존하거나 거룩하게 되는 힘이 들어 있고, 용서하는 힘, 덕행을 영웅적으로 닦는 힘이 들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사랑에 들어 있습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공포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심판에 대한 공포, 인간들의 처벌에 대한 공포, 병에 대한 공포 말입니다. 공포는 절대로 건설적인 것이 아닙니다. 공포는 붕괴와 풍화작용과 해체와 파괴를 유발합니다. 공포는 실망으로 이끌어가고, 나쁜 행실을 감추기 위한 간책으로 이끌어가며, 우리 안에 이미 악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이제는 두려워하는 것이 무익하게 되었을 때 두려워하도록 이끌어갑니다. 누가 건강한 동안에 자기 몸에 대한 동정으로 신중하게 행동할 생각을 합니까?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열의 첫번 오한이 핏줄을 타고 달리거나 어떤 반점이 더러운 병을 생각하게 하기가 무섭게, 병에 보태지는 고민이고, 벌써 병이 해체시키는 육체안에서 붕괴시키는 힘인 공포가 오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사랑은 건설적입니다. 사랑은 건설하고, 견고하게 하고, 단단하게 유지하고. 보호합니다. 사랑은 악을 도망하게 합니다. 사랑은 이기주의자들과 자기 자신을 거짓 사랑하는 사람들이 믿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믿게 하는 것처럼 우주의 중심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하여 신중하도록 이끌어갑니다. 이기주의자들과 자기 자신을 거짓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를 자신의 일부분만을, 즉 불멸이고 거룩한 부분을 희생으로 해서 가장 덜 고귀한 부분만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가장 덜 고귀한 부분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동안은 자기 자신과 부모와 자기 도시와 조국 전체에 유익한 것이 되도록 좋은 건강상태에 보존하기 위하여 항상 돌보는 것도 의무입니다. 병이 불시에 오는 것은 피치 못할 일입니다. 어떤 병이든지 반드시 어떤 악습이나 벌의 결과는 아닙니다. 쾌락을 그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쾌락에 소용되게 하는 세상에 다른 사람들을 위한 전쟁의 볼모와 같은 성인들이 있도록 하기 위하여 주님이 당신의 의인들에게 보내시는 거룩한 병이 있습니다. 그 성인들은 세상이 날마다 거듭해서 마침내 인류 위에 무너져 내려 인류를 그 저주 속에 파묻고 말게 될 많은 죄가 그들의 고통으로 속죄되도록 그들의 몸으로 대가를 치릅니다. 나이가 많아서 여호수아가 주의 이름으로 싸우는 동안 기도를 드린 모세를 기억하십니까? 거룩하게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사람들과 민족들의 외양 속에 숨어 있는 세상에서 가장 사나운 전사(戰士)인 사탄, 고문하는 자, 모든 악의 근원과 가장 큰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고, 그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을 위하여 싸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보내시는 이 거룩한 병들과 관능적인 쾌락에 대한 죄 되는 사랑의 결과도 악습에서 오는 병들 사이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습니까! 전자는 하느님 유익한 뜻의 증거이고, 후자는 악마적인 타락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하게 되려면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창조하고, 보존하고, 거룩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나도 이 진리를 전하면서 느헤미야와 에즈라와 같이 말합니다. ‘이 날은 주 우리 하느님께 바친 날입니다. 그러므로 슬픔도 눈물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날을 보게 되면 어떤 슬픔도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쓰라림을 잃습니다. 그것은 아들이나 남편이나 아버지나 어머니나 형제를 잃는 것이 잠시 동안의 한정된 이별이기 때문입니다. 잠시 동안이라고 한 것은 그 이별이 우리 자신의 죽음과 더불어 끝나기 때문입니다. 또 한정된 것이라고 말한 이유는 그 이별이 육체와 오관(五官)에만 한정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혼은 사라진 부모친척의 죽음으로 아무것도 잃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유는 한쪽에서만 제한을 받습니다. 영혼이 아직 육체에 둘러싸여있는 살아남은 사람 쪽입니다. 반면 다른 편으로 내세로 건너간 사람은 자유를 누리고, 우리를 지켜 주고, 우리에게 많은 것을 얻어 줄 수 있는, 그가 육체의 감옥에 갇혀서 우리를 사랑할 때보다도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어 줄 가능성을 가지게 됩니다.
나도 느헤미야와 에즈라와 같이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가서 기름진 고기를 먹고 맛있는 포도주를 드시오. 그리고 그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 한몫을 보내시오. 오늘은 주님을 위하여 거룩한 날이니 이날에는 아무도 고통을 당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있는 주님의 기쁨은 자기집안에, 자기 마음속에 지극히 높으신 주님의 은총을 받는 사람의 힘이 되니까 슬퍼들 하지 마시오.’
여러분은 이제 장막들을 세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장막 만드는 시기가 지나갔으니까요. 그러나 여러분의 마음속에 영적인 장막들을 세우시오. 산을 올라가시오, 즉 완전을 향하여 올라가시오. 올리브나무, 미르타나무, 종려나무, 떡갈나무, 히솝 가지들을, 가장 아름다운 모든 나무들의 가지를 꺾어오시오. 평화와 순결, 용맹, 극기, 힘, 바람, 정의의 덕행, 그밖의 모든, 모든 덕행의 가지를 꺾어 오시오. 그래서 주님의 명절을 지내며 여러분의 영을 꾸미시오. 주님의 장막이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주님의 장막이. 그런데 주님의 장막은 아름답고, 거룩하고, 영원하고, 주님 안에서 사는 모든 사람에게 활짝 열려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오늘 나와 함께 과거에 대해서 속죄하고 새 생활을 시작하겠다는 목표를 정하시오.
주님에게서는 아무것도 두려워 마시오. 주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여러분도 이스라엘의 자녀들과 같이 주님의 자녀가 되시오. 주님이 우주만물과 하늘을 만드시고, 아브라함과 모세를 일으키시고, 바다를 갈라놓으시고, 길을 인도하는 구름을 만드시고, 율법을 주시기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시고, 만나를 내려 보내시기 위하여 구름을 갈라놓으시고, 여러분에게 물을 주시려고 바위를 기름지게 하신 것, 이 모든 것이 여러분을 위해서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오! 지금은 여러분을 위해서도 여러분의 굶주림을 달래시려고 하늘에서 살아 있는 빵을 내려 보내시고, 여러분의 목마름을 풀기 위하여 참 포도나무와 영원한 생명의 샘을 보내십니다. 그리고 내 입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들어와서 내가 너희에게 주기 위하여 그 위에 손을 든 땅을 차지하여라’ 하고. 내 영적인 땅, 즉 하늘나라를 말입니다.”
군중은 열광적인 말들을 주고받는다.…그리고 병자들이 온다. 대단히 많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두 줄로 정렬시키신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동안 아르벨라의 필립보에게 물으신다.” 왜 저 사람들을 고쳐 주지 않았느냐?”
“그 사람들도 제가 받은 것을 받게 하려구요. 선생님의 손으로 낫는 것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병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강복하시며 지나가신다. 그러니까 늘 일어나는 기적이 되풀이 된다. 소경들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들이 듣고, 벙어리들이 말을 하고, 꼽추들이 꼿꼿해 지고, 열이 떨어지고, 무력증이 사라진다.
병고침이 끝났다. 그리고 마지막 병자 다음에는, 보즈라에 갔던 바리사이파 사람 둘과 다른 두 사람이 있다. “선생님께 평화. 그런데 우리에게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십니까?”
“나는 모든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성자이니까요.”
“선생들인 당신들에게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당신들끼리 다음 장, 즉 에즈라 2서의 제9장을 해석하면서, 하느님께서 당신들에게 대해서 이제까지 얼마나 여러 번 자비를 베푸셨는지를 기억하고, 가슴을 치면서 마치 그것이기도인 듯 그 장의 결론을 말하시오.”
“선생님, 잘 말씀하셨습니다. 잘 말씀하셨어요! 그래 선생님의 제자들은 그렇게 합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이 내가 제일 먼저 요구하는 것입니다.”
“모두요? 선생님의 한 패 속에 있는 살인자들까지 두요?”
“당신들은 피냄새를 맡습니까?”
“그것은 하늘을 향해 지르는 부르짖음입니다.”
“그러면 피를 흘리게 하는 사람들을 본받지 않도록 힘쓰시오.”
예수께서는 당신의 눈길로 그들을 꿰뚫어보시며 똑바로 바라다보신다. 그들은 얼마 동안 감히 한 마디도 말을 더 하지 못한다. 그러나 필립보의 집으로 돌아오는 집단을 따라온다. 필립보가 그들을 잔치에 참석하라고 초청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아주 기꺼이 가겠네! 그래야 선생님과 더 오랫동안 같이 있을 터이니까.” 그들은 크게 경례를 하며 말한다.
그러나 집에 도착하자 그들은 경찰의 정보원 같다.…사방으로 훔쳐보는 듯한 시선을 던져 바라다보고, 하인들에게 간사한 질문을 하고, 자석에 끌리는 쇠처럼 예수께 끌리는 것 같은 작은 노파에게까지도 간사한 질문을 한다. 그러나 노파는 격렬하게 대답한다. “난 어제 이분들밖에 못 봤수. 당신들 꿈을 꾸는군요. 내가 이분들을 이리 데리구 왔는데, 요한이라구는 이 천사같이 착한 금발의 젊은이밖에 없었수.”
그들은 작은 노파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무섭게 노려본다. 그리고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러나 한 하인이 그들에게 직접 대답하지 않고, 앉으셔서 집주인과 말씀을 하시는 예수께로 몸을 구부리고 묻는다. “엔도르의 요한은 어디 있습니까? 저 어른이 그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 바리사이파 사람은 하인을 무섭게 노려보며 그를 바보 취급을 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의향을 잘 알고 계셔서 할 수 있는 대로 거기에 대한 대책을 세우셔야 한다. 바리사이파 사람은 그러니까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의 가르치심의 그 기적을 기뻐하고, 또 그 회개에 대해서 선생님께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요한은 영원히 멀리 가 있고, 또 점점 더 멀리 갈 것입니다.”
“그 사람이 자기 죄에 다시 떨어졌습니까?”
“아닙니다. 하늘을 향해 올라갑니다. 그 사람을 본받으시오, 그러면 내세에서 그를 만날 것입니다.”
네 사람은 더 이상 무슨 말을 할지 몰라서 조심스럽게 다른 이야기를 한다. 하인들이 식사가 준비되었다고 알린다, 그러니까 모두가 연회장으로 건너간다.

참말이다. 희망은 더 환하게 빛난다.…그런데 나는 누구에게 거두어질것인가? 이렇게도 몸이 불편하고, 쏠아먹는 벌레에게 쏠리듯이 사탄의 고문으로 쏠아지는 내가 말이다. 사탄은 내게 휴식을 주지 않는다. 달리는 나를 붙잡을 수 없으므로,이렇게 붙잡고 늘어진다. 즉 내가 쓰는 것이지 예수님이 보여 주고 불러 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암시를 주는 것이다. 사탄은 만일 그가 나를 설득할 수 있으면 내가 비탄에 잠기고 죄를 지었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내성적인 사람이 되고, 죽음과 심판을 두려워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이고! 사탄이 나를 얼마나 괴롭히는지! 사탄이 그의 끊임없는 말로 어떻게나 내 정신을 멍하게 만들어 놓는지, 나는 예수님이 환시와 말씀을 끝내시면, 내 생활을 이루는 것, 즉 나를 감싸고 나로 하여금 “대변자”가 되게 하는 그 초자연적인 것을 즐길 기능성을 전혀 잃게 된다.
내 글을 읽는 당신들에게는 이 삽화들이 그렇게도 아름다워 보이는가? 전에는 나도 그런 느낌을 가졌었다. 그런데 지금은 예술적인 면을 빼놓고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내가 그 말들을 듣는 순간에는 나를 무상의 기쁨으로 들어올리던 말들을 찾고 또 찾지만 소용이 없다. 내가 그것을 볼 때에는 그 다정스러움에 그렇게도 강한 인상을 받았던 태도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하지만 소용이 없다.…모든 것이 꺼졌고, 모든 것이 재가 되어버렸다. 천국이 -사실 그것은 천국이니까 -그 광채를 잃었다. 아니, 그보다도 대변자로서의 내 일상의 업무가 계속되는 동안은 천국이 열려 그 온갖 빛과 노래와 다정스러움과 기쁨을 내게 넘쳐흐르게 한다. 그러다가 일이 끝나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단단히 그리고, 나는 의심과 부정(否定)의 목소리 말고 다른 목소리는 듣지도 못한 채 안개와 어두움에 휩싸이고 잠기는 것이다. 이것이 큰마음 고통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실망해서 “이것은 내 일이니까 집어 치우겠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아니다. 이것은 내 일이 아니다! 특히 지금 많은 일 때문에 기진맥진하고 짓눌리며 그밖에 다른 많은 것을 모르는 내가 이렇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내가 지금 처해 있는 육체적인 허약의 상태와 정신적인 우울의 상태에서 여기에 대하여 심한 불쾌감을 느낄 수밖에 없어 아무것도 쓰지 자게 될 것이다. 육체적으로 생각을 못하게 되고, 정신적으로는 생각하는 것이 지긋지긋해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