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통한 내 자녀들인 여러분, 이제 정결레(淨潔禮)의 축일이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빛인 나는 여러분에게 이 축일을 잘 지내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준비를 시켜 축일을 지키라고 보냅니다. 이것은 축일을 위한 첫번째 빛인데, 여러분은 이 빛에서 다른 모든 축일을 위한 빛을 얻어내야 합니다. 첫번째 불을 켤 가능성을 가지지 못한 채 많은 불을 켜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대단히 어리석은 사람일 것입니다. 그리고 완전이라는 변함없는 건물의 기초가 되는 것, 즉 십계명을 소홀히 하면서 더 까다로운 것부터 자기의 성화를 시작하겠다고 고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한층 더 어리석을 것입니다.
마카베오서를 보면 유다가 하느님의 보호 덕택으로 동료들과 더불어 성전과 성도(聖都)를 도로 찾고 나서, 외국 잡신들의 제단과 그들의 성소(聖所)를 허물고 성전을 깨끗하게 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다음 다들 제단을 세우고, 부싯돌로 불을 장만해서 제물을 바치고, 향을 피우고, 촛불들과 제물의 빵들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모두 땅에 엎디어 그들로 하여금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게 해 주시고, 혹 약함으로 인해서 다시 죄에 떨어지게 되면 하느님의 자비로 다루어지게 해 주시기를 주께 간청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기슬레달 25일에 있은 일입니다.
이 이야기를 곰곰히 생각해보고 우리 자신에게 적용합시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역사, 그러니까 선민(選民)의 역사의 한마디 한마디가 모든 영적인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언제나 하나의 교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생활은 이 세상에서 사는 세월을 위해서뿐 아니라 영원한 세월을 쟁취하는 데 있어서도 교훈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이교도들의 제단과 성소를 허물었다.’
이것이 맨 먼저 할 일입니다. 즉 참 하느님의 대신이 되는 개인적인 잡신들의 이름을 일러 주면서 여러분에게 하라고 한 일입니다. 개인적인 잡신들이란 관능과 황금과 교만에 대한 맹목적이 숭배, 영혼과 육체의 남용과 죽음, 그리고 하느님의 벌로 이끌어가는 중대한 악습들입니다. 나는 지금 신자들을 압제하고 참 율법에 소위 성벽을 쌓아놓는다고 하는 수많은 경구(警句)로 여러분을 찍어누르지 않았습니다. 참 율법은 아주 외적인 수많은 금지사항으로 무거워지고 그 밑에 감추어졌습니다. 참 율법을 무겁게 함으로써 그들은 시자로 하여금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주님의 직선적이고 명백하고 거룩한 목소리를 잊어버리게 합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아라. 우상숭배를 하지 말아라. 안식일을 속화하지 말아라. 부모의 명예를 손상시키지 말아라. 사람을 죽이지 말아라. 음란한 죄를 짓지 말아라. 도둑질을 하지 말아라.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말아라.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아라. ‘하지 말아라’하는 것 열 가지입니다. 그 이상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영혼의 성전의 열 개의 기둥입니다. 그 위에서는 모든 계명 중에 가장 거룩한 계명인 ‘네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여라.’하는 계명의 황금이 빛납니다. 이것이 성전의 완성이고, 기초를 보호하는 것이고, 건축가의 영광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도 십계명을 지킬 수 없을 것이고, 기둥이 모두 또는 몇 개가 쓰러질 것이고, 성전이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무너질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든간에 성전은 폐허에 지나지 않아서 지극히 거룩하신 분을 더 이상 모실 수가 없을 것입니다. 세 가지 사욕(邪欲)을 쳐부수면서 내가 여러분에게 말한 대로 하시오.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이것과 저것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실 때 솔직하게 말씀하시는 것과 같이 당신들의 악습의 이름을 솔직하게 부르시오. 용어에 대하여 지나치게 신경쓰는 것은 무익합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사랑보다 더 강한 사랑을 가진 사람은, 그 사랑이 어떤 것이든간에 우상숭배자입니다. 하느님을 섬긴다고 공언하면서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고 나서 하느님께 불복종하는 사람은 반역자입니다. 탐욕으로 안식일에 일하는 사람은 안식을 모독하는 사람이고, 의심을 하고 전체하는 사람입니다. 여러가지 핑계를 대며 부모를 도와드리기를 거절하는 사람은, 비록 하느님께 드리는 돈이라고 단언하더라도,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 세상에 당신 모습으로 정해 놓으신 하느님께 미움을 받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사람은 언제나 살인자입니다. 음란한 죄를 짓는 사람은 언제나 호색한입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사람은 언제나 도둑입니다. 그리고 거짓말하는 사람은 항상 비열한 사람입니다. 자기의 것이 아닌 것을 원하는 사람은 언제나 가장 고약한 욕구를 가진 욕심장이입니다. 그리고 부부의 잠자리를 더럽히는 사람은 언제나 더러운 인간입니다.
이렇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여러분에게 환기시키고자 합니다. 금송아지를 세워놓은 다음 주의 분노가 갑자기 왔습니다. 솔로몬의 우상숭배가 있은 다음 이스라엘을 갈라놓고 약하게 만든 분열이 왔고, 그리이스 문화를 받아들이고,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치하에 있을 때 비열한 유다인들을 통하여 그것을 환영하기까지 한 다음에는 현대의 우리의 정신적×경제적×국민적 불행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느님의 거짓 종 나답과 아비우가 야훼께 벌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안식일에 내린 만나는 거룩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캄과 압살론을 기억하고, 우리아를 희생시킨 다윗의 죄와 암논을 희생시킨 압살론의 죄를 기억하시오. 압살론과 암논의 최후를 기억하고, 도둑 헬리오도르와 시몬과 에넬라우의 운명을 기억하시오. 수산나에 대하여 거짓 증언을 했던 두 중상하는 사람의 부끄러운 최후를 기억하시오. 이러한 예를 틀림없이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카베오 형제들 이야기를 다시 합시다.
‘그리고 그들은 성전을 깨끗하게 하였다.’
‘나는 부순다.’하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나는 깨끗하게 한다.’하고 말해야 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깨끗해지느냐 하는 데 대하여는 이미 말했습니다. 겸손하고 진실한 뉘우침으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죄인이 실제로 뉘우치면 하느님께서 용서하지 않으시는 죄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인자를 믿으시오. 그 인자가 어떤 것인지 여러분이 이해할 수 있게 되면, 비록 여러분이 세상의 모든 죄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하느님에게서 멀리 도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분의 발아래로 달려갈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용서하지 않는 것을 다만 지극히 인자하신 분만이 용서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제단을 세웠다.’
오! 주님을 속이려고 해보지 마시오. 여러분의 행동을 허위로 하지 마시오. 하느님과 맘몬을 섞지 마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한 제단은, 즉 하느님의 제단은 빈 것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만일 전에 있던 제단에 아직 남은 것이 있으면 새 제단을 세워도 소용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냐 우상이냐, 선택하시오.
‘그리고 돌과 부싯깃으로 불을 붙였다.’
돌은 하느님께 속해 있겠다는 굳은 뜻입니다. 부싯깃은 여러분이 이제부터 일생을 두고, 하느님의 마음 안에서 여러분의 죄의 기억까지도 없애겠다는 갈망입니다. 그렇게 되면 불이, 즉 사랑이 솟아납니다. 그가 마음을 상하게 해드린 아버지를 명예로운 일생으로 위로해 드리려고 애쓰는 아들이 하는 일은, 전에는 눈물의 근원이었었는데 지금은 기쁨의 근원이 된 그 아들이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기를 원해서 사랑하는 일 외에 또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제 이런 상태에 이른 여러분은 제물을 바치고, 향을 피우고, 촛불과 빵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제물이 하느님께 불쾌감을 드리는 것이 되지 않고, 오히려 기도가 하느님의 마음에 들게 될 것이고, 제단이 정말로 밝게 비추어지고, 여러분이 날마다 바치는 음식이 잔뜩 쌓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의 보호자가 되어 주십시오.’하고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벗이 되실 터이니까요. 그러나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기를 기다리지 않으시고, 여러분의 소원을 앞질러 자비의 화신(化身)을 보내셔서 이렇게 말하게 하셨습니다. ‘희망을 가지시오. 나 진정으로 말합니다만,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십니다. 주께로 오시오.’ 하고.
여러분 가운데에 벌써 제단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제단입니다. 이 새로운 제단에서 빛과 용서가 강물처럼 쏟아져 나옵니다. 이 강물은 기름처럼 퍼져서 병을 고쳐 주고 힘을 줍니다. 그 새로운 제단에서 나오는 말을 믿으시오. 나와 더불어 여러분의 죄를 슬퍼하시오. 레위파의 제관이 합창단을 지휘하는 것과 같이 나도 여러분의 목소리를 하느님께 올려보냅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탄식이 내 목소리에 합해져 있으면 그것을 물리치지 않으실 것입니다. 육체로는 사람들의 형제이고 영으로는 아버지의 아들인 내가 여러분과 더불어 나를 낮추고 여러분 대신 여러분과 함께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인 제가 떨어진 깊은 구렁에서 주님 당신께 부르짖습니다. 자기를 들여다보고 한숨짓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제 말에 귀를 막지 마십시오. 오 하느님, 저를 보시면 소름이 끼치지요. 제 눈으로 보아도 소름이 끼칩니다! 그러니 당신 눈으로 보면 어떠하겠습니까? 주님, 제 죄를 보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당신 앞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제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당신은 ‘내가 바로 자비이다.’하고 말씀하셨지요. 그래서 당신의 말씀을 믿습니다. 상처를 입고 낙담한 제 영혼이 당신께 기대고 당신의 약속을 믿습니다. 그리고 새벽에서 밤중까지,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당신께 바라겠습니다.’
살인과 간통의 죄를 짓고 하느님께 버림을 받은 다윗이었지만, 주께 다음과 같이 부르짖은 다음에는 용서를 받았습니다. ‘저를 존중해서가 아니라, 무한하신 당신 자비의 명예를 위하여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당신의 자비 때문에 제 죄를 없애 주십시오. 당신의 거룩한 인자의 깊은 샘에서 길어 온 물이 아니면 제 마음을 씻을 수 있는 물이 없습니다. 그 물로 제 죄를 씻어 주시고 제 더러움을 깨끗하게 해 주십시오. 제 죄를 부인하지 않고 제 잘못을 인정합니다. 제 죄는 항상 저를 고발하는 증인처럼 제 앞에 있습니다. 저는 이웃과 저 자신을 통하여 사람에게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당신께 죄지은 것을 후회합니다. 그리고 이 말이 당신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제가 알아보고, 인간의 어떤 능력도 지배하시는 당신의 심판을 제가 두려워한다는 말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 영원하신 하느님, 그러나 제가 죄중에 태어났고, 저를 밴 여인도 죄녀였다는 것을 생각하시고, 당신의 지혜를 제게 드러내보이시게 될 만큼 저를 사랑하셨고, 당신의 가장 심오한 진리들의 신비를 이해하라고 당신의 지혜를 제게 주셨음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저를 위하여 이렇게도 많은 것을 주셨는데, 제가 당신을 두려워해야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저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고통의 쓰라린 물을 제게 뿌려 주십시오. 그러면 높은 산에 있는 눈처럼 희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제게 들려 주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창피당한 종이 기뻐서 어쩔 줄 모를 것입니다. 당신은 목소리는 비록 꾸지람일지라도 기쁨이요 즐거움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얼굴을 돌려 제 죄를 보십시오. 당신의 눈길이 제 죄를 없앨 것입니다. 당신께서 제게 주신 마음이 사탄과 제 인성의 약함으로 더럽혀졌습니다. 제 안에 깨끗한 새 마음을 만들어 주시고, 당신의 종의 오장육부에 있는 부패를 없이하시어, 당신의 종 안에 다만 올바른 정신만이 지배하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저를 당신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고 당신의 우정을 제게서 거두지 마십시오. 당신에게서 오는 구원만이 제 영혼에 기쁨이 되고, 지극히 높으신 당신의 영이 창피를 당한 자의 위안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람들 있는 데 가서 이렇게 말하게 해 주십시오.「주님이 얼마나 착하신지 보시오. 주님의 길로 걸어가시오. 그러면 당신들도 나와 같이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팔삭동이였었는데 내게 다시 살아난 은총으로 다시 하느님의 아들이 된 나와 같이 말입니다.」하고. 그러면 불경건한 사람들이 회개하여 당신께로 돌아올 것입니다. 피와 살이 제 안에서 반항하고 고함을 칩니다. 내 영혼의 구원이신 주님, 저를 구해내 주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찬미를 노래하겠습니다. 전에는 몰랐지만 이제는 깨달았습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것은 수양을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뉘우치는 마음의 번제라는 것을. 뉘우치고 자기를 낮추는 마음은 수양과 양들보다도 더 당신 마음에 듭니다. 그것은 당신이 당신을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가 그것을 기억하고 당신의 것을 당신께 돌려드리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크신 인자로 제게 친절을 베풀어 주시고, 당신의 것이기도 한 예루살렘을 재건해 주십시오. 그 위에 죄를 위한 제물과 봉납물과 번제물을 감사와 찬미의 표로 드릴 수 있을 깨끗한 영의 예루살렘을. 그리고 제 새로운 날 하나하나가 당신의 제단 위에서 다 타버리는 성덕의 제물이 되어 제 사랑의 향기와 더불어 당신께까지 올라가게 해 주십시오.’
오시오! 주님께로 갑시다! 내가 앞장설 터이니 따라오시오. 건강에 이로운 물로, 거룩한 목장으로, 하느님의 땅으로 갑시다. 과거를 잊고, 미래를 보고 미소지으시오. 진흙을 생각하지 말고 별들을 쳐다보시오. ‘나는 어두움이다.’하고 말하지 말고, ‘하느님은 빛이시다.’하고 말하시오. 나는 여러분에게 평화를 전하려 왔고, 평화스러운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러 왔고, 너무 많은 일로 몹시 피로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고쳐주고, 모든 노예에게, 그리고 제일 먼저 맘몬의 노예들에게 자유를 전하고, 그들의 욕망에 사로잡혀있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돌려 주려고 왔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은총의 해가 왔습니다. 여러분은 죄인이 느끼는 슬픔으로 울지 마시오. 하느님의 나라에서 쫓겨난 여러분은 울지 마시오. 내가 재 대신 황금을 줄 것이고, 눈물 대신 기름을 주겠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명절빔을 입혀 주께 데리고 가서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여기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시고 찾아오라고 하신 양들을 데려왔습니다. 저는 이 양들을 찾아가 모아서 세었습니다. 그리고 흩어져 있는 양들을 찾아서 구름과 안개에서 빼앗아 내서 데리고 왔습니다. 저는 이들을 모든 백성들 가운데에서 데려오고 모든 이방에서 모아서, 이제는 예전땅이 아니라, 거룩하신 아버지이신 당신이 이들을 위하여 준비하신 땅으로 데려왔고, 당신께 사랑을 받는 영들이 당신을 실컷 누리는 천상복락의 강들을 끼고 있는, 모든 것이 빛과 아름다움으로 이루어진 기름진 땅 낙원의 산꼭대기로 데려왔습니다. 상처 입은 양들을 찾아가서 골절상을 고쳐 주고, 약한 양들의 기운을 돋구어 주었으며, 다만 한 마리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관능의 늑대가 가장 손해를 입혔던 양은 마치 사랑의 멍에처럼 어깨에 메고 와 너그러우시고 거룩하신 아버지의 발 앞에 내려놓습니다. 이 양은 이제는 걸을 수가 없기 때문이고, 당신의 말씀을 알고 가책과 사람들에게 쫓기는 양이기 때문이며, 후회하고 떠드는 영이고, 파도에 밀리고 또 밀려 바닷가로 나오는 물과 같이 때문입니다. 이 양은 몹시 갈망은 하지마는 자기 자신을 알기 때문에 조심성 있게 옵니다. … 온전히 사랑이신 아버지, 당신의 품을 열으시어 이 길 잃은 양이 당신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해 주십시오. 이 양에게 ‘오너라’하고 말씀하십시오. ‘너는 내 것이다.’ 하고 말씀하십시오. 이 양은 모든 사람에게 속했었는데 지금은 거기에 싫증이 나 있습니다. 이 양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주인이나 모두 몹시 불쾌한 자객입니다.’하고 이 양으로 하여금 ‘나의 이 임금님이 당신께 안기는 기쁨을 내게 주셨습니다!’ 하고 말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 양은 사랑이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이 받아주시면, 이 천상의 사랑, 하느님과 사람의 영이 결합하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잔인한 사람들의 새장에서 풀려난 새와 같이 기쁨과 영광 속에서 점점 더 높이 하늘에 계신 당신에게까지 올라가며 이렇게 노래할 것입니다. ‘내가 찾던 분을 만났습니다. 내 마음은 다른 소원이 없습니다. 영원하신 주님, 나는 당신께 의지하고 몹시 기뻐합니다. 저는 영원히 행복합니다!’ 하고.
가시오. 그리고 새로운 정신으로 정결례 축일을 지내시오. 또한 하느님의 빛이 여러분 안에 켜지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 설교를 마치실 무렵에는 매력이 넘쳐흘렀다. 반짝이는 눈과 빛나는 얼굴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상냥한 미소를 머금고 어조는 말할 수 없이 매력적이었다.
사람들이 매혹된 것같이, 예수께서 ‘가시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하고 다시 말씀하실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다. 그 때에야 비로소 순례자들이 떠들며 떠나가기 시작한다.
베일을 쓴 여자도 언제난 그런 것같이 빠르고 건들거리는 걸음걸이로 떠나간다. 바람으로 인하여 어깨가 부풀어 오른 겉옷을 입은 그 여자는 날개가 돋힌 것 같다.
“이제는 저 여자가 이스라엘 여자인지를 알게 되겠습니다.” 하고 베드로가 말한다.
“왜?”
“그것은 저 여자가 여기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 ….”
“… 자기 집이 없는 가엾은 여자라는 표지, 그 이상 아무 것도 아니다. 베드로야, 이것을 기억하여라.”
“예, 선생님, 기억하겠습니다. … 그런데 이제는 모든 사람이 명절을 지내기 위해서 집에 남아 있을테니 우리들은 뭘 합니까?”
“우리 여자들이 우리 대신 등불을 켤 것이다.”
“섭섭합니다. … 내 집안에 등불이 켜지는 것을 보지 못하거나 제가 그 등불들을 켜지 않는 것이 이번이 첫해가 됩니다. …”
“너는 커다란 어린애로구나! 우리도 등불을 켤 것이다. 그렇게 하면 네가 생기없는 얼굴을 하지 않겠지, 그리고 네가 등불을 켜라.”
“제가요? 주님, 제가 아닙니다. 선생님이 가장이시니 선생님이 그 일을 하셔야 합니다.”
“나는 항상 켜진 등불이다. … 그리고 너희들도 켜진 등불이 되기를 바란다. 베드로야, 나는 영원한 엔세니아*이다. 너는 내가 바로 기슬레달 25일에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을 아느냐?”
“아! 얼마나 많은 불이 켜졌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하고 베드로가 놀라서 묻는다.
“이루 헤어릴 수가 없었다. … 하늘의 별들이 모두 등불이었다 ….”
“아닙니다! 나자렛에서는 사람들이 선생님을 환영하지 않았었지요?”
“나는 나자렛에서 나지 않고, 베들레헴의 폐허에서 났다. 요한이 침묵을 지킬 줄 알았구나. 요한은 순종을 잘 한다.”
“그리고 호기심도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 저는 호기심이 대단히 많습니다! 그 얘기를 해 주시겠습니까? 선생님의 가엾은 시몬에게요. 그렇지 않으면, 선생님에 대한 말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떤 때는 사람들이 제게 묻는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모릅니다. … 다른 사람들은 할 줄은 아는데요. 선생님의 형제들과 시몬과 바르톨로메오와 시몬의 유다말입니다. 그리고 … 그렇지요, 토마도 말할 줄 압니다. 그 사람은 자기 물건을 팔려고 … 시장에서 선전 광고를 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나 어떻든 말은 하게 됩니다. … 마태오는 … 아! 그 사람도 잘 해나갑니다. 징세(徵稅) 계산대에서 사람들을 등쳐먹는 데 쓰던 옛날 솜씨, 다른 사람들이 ‘당신 말이 옳소.’ 하고 말하게 강요하는 데 쓰던 옛날 솜씨를 발휘합니다.
그러나 저는! … 가엾은 요나의 아들 시몬은! 그렇지만 물고기들이 제게 무엇을 가르쳐 주었습니까? 두 가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 그러나 소용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물고기들은 입을 다무는 것과 꾸준함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놈들로는 그물에서 빠져나가려는 꾸준함, 그리고 저로서는 그놈들을 그물 속으로 몰아넣으려는 꾸준함을 말입니다. 호수는 용감한 것과 모든 것을 잘 살펴보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배는요? 제 근육을 아끼지 않고 노력하는 것과 물이 흔들려 빠질 위험이 있어도 서 있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북극성을 쳐다보는 눈, 키의 손잡이를 단단히 잡은 손, 힘, 용기, 꾸준함, 주의, 이것이 제 가엾은 인생에서 배운 것입니다 ….”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어깨에 한 손을 얹으시고 다정스럽게 몹시 감탄하시는 눈길로, 그 순진을 정말 감탄하시는 눈길로 그를 바라보시며 흔드신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시몬 베드로야, 그런데 그것이 네게는 별것이 아닌 것으로 생각되느냐? 너는 내 ‘반석’이 되기에 필요한 것을 다 가지고 있다. 보탤 것과 떼어낼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시몬아, 너는 영원한 지도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네 뒤를 이을 사람에게 이렇게 일러라. ‘눈으로는 북극성, 즉 예수를 쳐다보고, 손으로는 키 손잡이를 단단히 잡고, 힘과 용기, 꾸준함, 주의를 가지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모든 것을 살펴보고, 물이 마구 출렁거려도 서 있을 줄을 알라 …’고. 침묵에 관하여는 … 자 … 물고기들이 그것을 가르쳐 주지 않았느냐?”
“그러나 제가 말할 줄 알아야 할 것에 대해서 저는 물고기보다도 더 벙어리입니다. 다른 말은 또 어떻습니까? … 암탉들까지도 제가 하는 것만큼은 꼬꼬댁거릴 줄을 압니다. … 그런데 선생님, 말씀해 주십시오. 제게도 아들을 하나 주시겠습니까? 저희들은 나이가 많습니다. … 그렇지만 세례자도 나이많은 여인에게서 태어났다고 말씀하셨지요. … 그리고 방금 ‘네 뒤를 이을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 하고 말씀하셨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없으면 뒤를 이을 사람이 누구입니까?” 베드로는 희망에 가득 찬 애걸하는 얼굴을 하고 있다.
“아니다, 베드로야, 슬퍼하지 말아라. 너는 구름이 해를 가릴 때 네가 살던 호수를 영락없이 닮았다. 대단히 명랑하면서도 어두워진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베드로야, 그러나 너는 아들 하나를 두지 않고, 아들 수천 수만명을, 그것도 세상의 모든 나라에 두게 될 것이다. … 내가 네게 ‘너는 사람들을 낚는 어부가 될 것이다.’하고 말한 날이 생각나지 않느냐?”
“아! … 예… 그렇지만 저보고 ‘아버지’하고 부르는 아이가 하나 있으면 정말 기분좋을텐데요!”
“너는 자녀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을 것이고,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것이다. 너는 그들을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날 것이고, 또 내게로 데리로 와서 ‘이들이 선생님의 베도르의 자녀들입니다. 저는 이들이 제가 있는 곳에 있기를 원합니다.’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네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오냐, 베드로야, 네가 원하는 대로 되라고 하겠다. 너는 모든 것을 나를 위해서 했으니, 나도 너를 위해서 모든 것을 하겠다.’” 하고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 약속들을 말할 수 없이 다정스럽게 하신다.
베드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되는 희망이 사라진 데 대한 슬픔과 벌써 예고되는 황홀한 기쁨의 눈물을 동시에 느끼며 침을 꿀꺽 삼킨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고! 주님! 그러나 영원한 생명을 주려면 사람들에게 선행을 하도록 결심을 시켜야 할 터인데… 저희는 여전히 같은 지경에 있습니다. 즉 너는 말을 할 줄 모릅니다.”
“때가 오면 네가 말을 할 줄 알 것이다. 그리고 가믈리엘보다도 말을 더 잘하게 될 것이다 ….”
“그렇게 되리라고 믿고 싶습니다. … 그러나 선생님이 이 기적을 행하십시오. 제가 제 힘으로 그 지경에 이르러야 한다면 ….”
예수께서 늘 하시는 것처럼 조용히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오늘은 내가 온전히 네 것이다. 마을에 그 과부를 보러 가자. 내게는 비밀히 들어온 기부가 하나 있다. 팔아야 할 가락지이다. 내가 이 가락지를 어떻게 얻었는지 아느냐? 내가 이 버드나무 아래서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돌 한 개가 내 발 아래로 굴러왔다. 그 돌에는 작은 꾸러미가 양피지 조각과 같이 매여 있었다. 꾸러미 속에는 가락지가 들어 있고, 양피지에는 ‘자선’이라고 씌어 있었다.”
“보여 주시겠습니까? 아이고! 굉장히 아름답군요! 이건 여자의 것이로군요. 손가락이 가늘기도 하군요! 그렇지만 금은 얼마나 많구요! …”
“이제는 네가 이것을 팔아 오너라. 나는 그런 일을 할 줄 모른다. 여관 주인이 금을 산다는 것을 나도 안다. 화덕 곁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겠다. 가거라, 베드로야.”
“그렇지만 … 제가 솜씨있게 해치우지를 못하면 어떡합니까? 저는 금 같은 건 … 금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이것은 배가 고픈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여라. 자 갔다 오너라.”
그러니까 베드로는 오른쪽으로 가고, 예수께서는 더 천천히 왼쪽에 있는 마을 쪽으로 가신다. 마을은 관리인의 집 너머에 있는 작은 수풀 뒤로 꽤 멀리 바라다보인다.

*역주: 서기전 164년에 유다 마카베오가 더럽혀진 예루살렘 성전을 깨끗하게 한 것을 기념하는 명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