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가르멜산 꼭대기의 평평한 곳을 떠나 수풀 사이로 이슬에 젖은 오솔길로 해서 내려오신다. 수풀은 산의 동쪽 비탈을 금빛으로 물들이는 첫번 햇살을 받으며 바르르 떨리는 새소리와 사람 목소리로 점점 더 활기를 띤다. 더위로 인하여 생겼던 가벼운 구름이 햇살을 받아 사라지니, 에스드렐론 평야가 집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과수원과 포도밭들과 더불어 나타난다. 에스드렐론 평야는 양탄자 같다. 이 양탄자는 대체로 푸른 빛깔이지만, 어쩌다가 누르스름한 오아시스가 있고, 거기에는 또 군데군데 빨간 판대기들이 있는데, 그것은 밀을 베어서 이제는 개양귀비들이 불같이 타오르듯하고 있는 밭들이다. 양탄자는 가르멜산, 다볼산, 헤르몬산(소헤르몬산)으로 이루어진 삼각형의 거미발과 더 멀리 있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산들에 둘러싸여있는데, 이 산들은 요르단강을 가리고 동남쪽으로 사마리아의 산들과 이어진다.
예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생각에 잠기신 채 팔레스타인의 이 모든 부분을 바라다보신다. 야고보는 예수를 쳐다보고 말한다. “이지방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시는 것입니까?”
“그렇다, 그것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장래의 긴 여행과 너희들을 보내야 할 필요성을 생각한다. 제자들을 즉시 보내되, 지금같이 제한된 일을 하라고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진짜 선교의 일을 하라고 보내야 할 필요성을 말이다. 아직도 나를 알지 못하는 지방이 대단히 많은데, 나는 나를 알지 못하는 곳을 남겨두고 싶지는 않다. 이것이내 끊임없는 관심사이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서 행동하고, 또 모든 것을 하는 것…”
“가끔 여러 가지 일이 주님의 일을 지연시킵니다.”
“내 일을 지연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내가 가야 하는 여행 경로를 변경하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가 하는 여행은 절대로 쓸데없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나 아직도 할 일이 산더미같이 많다. …그리고 또 다른 곳에 갔다가 돌아오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출발점으로 돌아와 있는 것을 만나게 되어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의 그 무감각, 그 변덕, 그리고 악을 더 좋아하는 그 마음은 견디기 어렵고 혐오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견디기 어렵기는 하다. 그러나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하느님의 일은 절대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불쌍한 영혼들은 우리에게 연민을 불러일으켜야지, 혐오를 불러일으켜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항상 아버지의 마음, 착한 아버지의 마음을 가져야한다. 착한 아버지는 자녀들의 병에 대해서 절대로 혐오를 느끼지 않는다. 우리는 누구에 대해서도 혐오를 느껴서는 안 된다.”
“예수님, 질문을 몇 가지해도 되겠습니까? 저는 지난 밤에도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자지 않고 주님이 주무시는 것을 보고 많이 생각했습니다. 사촌, 주님이 주무실 때는 몹시 어려보였습니다! 구부린 팔에 머리를 얹고 주님은 꼭 어린 아이처럼 미소 짓고 계셨습니다. 지난 밤의 몹시 밝은 달빛 아래서 주님을 잘 보았습니다. 저는 곰곰히 생각했고 마음속에는 여러 가지 질문이 생겼습니다….”
“말해 보아라.”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주님이 교회라고 부르신 그 조직체에 우리가 부족한 만큼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지 예수께 여쭈어 보아야겠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그 조직체에는 교계 제도가 있을 모양인데, 저희가 해야 할 일을 선생님이 모두 일러 주시겠습니까? 그렇잖으면 저희 자신이 생각해서 해야 하겠습니까?”
“때가 오면 나는 교회의 우두머리를 너희에게 일러 주겠다. 그 이상의 일을 하지 않겠다. 내가 너희들과 같이 있는 동안에 사도와 제자, 남자와 여자 사이에 있는 구별과 더불어 여러 가지 유별(類別)을 이미 너희에게 일러 주었다. 사실 이런 구별은 필요하다. 그러나 나는 제자들이 사도들에 대한 존경과 순종이 있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도들이 제자들에 대해서 사랑과 참을성을 가지기를 원한다.”
“그리고 저희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항상 주님을 전하는 일만합니까?”
“그것이 기본적인 일이다. 그리고 내 이름으로 사죄(赦罪)하고, 강복하고, 은총으로 다시 데려오고, 내가 세울 성사들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초자연적이고 영적인 방법들이지만 물질적인 방법으로 실시되기도 하는 방법인데, 사제가 무엇인가 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믿게 하기 위해 사용될 것이다. 사람은 보지 않고는 믿지 않는다는 것을 너도 알지. 사람에게는 언제나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그에게 말해 어떤 것이 필요하다. 이 이유로 내가 기적을 행할 때에는 손을 머리에 얹거나 침으로 적시거나 물이나 술에 담근 빵 한 입거리를 주거나 한다. 내 생각만으로도 기적을 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기적을 행하셨다’ 고 말할 것 같으냐? 아니다. 그들은 ‘저 사람은 병이 나을 때가 돼서 나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래서 병이 나은 공을 의사나 약이나 병자의 생리적인 저항에 돌릴 것이다. 성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성사는 신자들에게 은총을 베풀거나 회복시키거나 그들에게 있는 은총을 강화하기 위한 종교의식의 형식이다. 예를 들어, 요한은 죄를 깨끗이 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물에 잠그는 형식을 썼다. 실제로는 몸을 씻는 물보다 자기가 범한 죄로 인하여 깨끗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모욕을 스스로 당하는 것이 더 유익하였다. 나도 세례를, 내 세례를 가질 것이다. 내 세례는 상징일 뿐 아니라 정말 영혼의 원죄를 깨끗이 씻어 주고,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기 전에 가졌던 영적인 상태를 영혼에 돌려줄 것이다. 여기서는 그 상태가 하느님인 사람의 공로 덕택으로 주어지겠기 때문에 더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물은 영혼에 내려가지 않습니다! 영혼은 신령하니까요. 갓난아기나 어른이나 노인에게 그렇게 된다는 것을 누가 알아듣겠습니까? 아무도 알아듣지 못할 것입니다.”
“보시다시피 너도 물은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효과가 없는 물질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그러므로 세례받는 사람의 원죄를 구속하는 기적을 행하는 것은 물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하여 봉헌된 그리스도의 교회의 일원인 사제나, 예외적인 경우에 그를 대신하는 참으로 믿는 다른 사람의 말일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 스스로도 죄인입니다…그러면 다른 죄들은 누가 없애 줍니까?”
“야고보야, 역시 사제이다. 세례받는 사람이 어른이면 원죄와 동시에 다른 죄들도 없어질 것이다. 사람이 이미 세례 받았는데 다시 죄를 지으면, 내가 죄인들에 대하여 하는 것과 같이 사제도 한분이시고 삼위이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사람이 된 말씀의 공로 덕택으로 그의 죄를 사해 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거룩하시지요! 그런데 저희는…”
“너희들은 거룩한 물건을 만지고 하느님께 딸린 것을 베풀기 때문에 거룩해야 한다.”
“그러면 그에게 갈 때마다 물에 잠그는 일을 해주는 요한이 하는 것과 같이 저희도 같은 사람에게 여러번 세례를 줍니까?”
“요한이 세례를 줄 때에는 오직 물에 잠기는 사람의 겸손으로만 깨끗하게 된다. 이 말은 내가 이미 네게 해주었다. 너희는 어떤 사람이 사도들에게서 전래하지 않거나 이교적(離敎的)인 양식으로 세례를 받은 경우를 빼놓고는 이미 세례받은 사람에게 다시 세례를 베풀지 말아라. 사도에게서 전래하지 않거나 이교적인 양식으로 세례를 받았을 경우에는, 만일 그 사람이 어른이면 세례를 받아야 하는 사람의 세례를 받기를 원한다는 분명한 요청이 있는 후, 그리고 참다운 교회의 일원이 되기를 원한다는 분명한 선언이 있은 후에 두 번째 세례를 베풀 수 있다. 다른 때에는 하느님의 우정을 돌려주고 하느님과 의좋게 지내게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공로에 연결된 용서의 말을 써라. 그러면 참된 뉘우침과 겸손한 고백으로 너희들에게 오는 사람의 죄가 사해질 것이다. “
“그러면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병이 중한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그러면 그 사람은 죄 중에 죽어야 합니까? 그 사람은 임종의 고통에 하느님의 심판을 두려워해야 하는 고통을 덧붙여야 합니까?”
“아니다 사제가 죽어가는 사람을 찾아가서 죄를 사해 줄 것이다. 사제는 그에게 더 넘은 형태도 줄 것인데, 총괄적인 형태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사람이 그것으로 죄를 짓게 되는 감각기관 하나하나에 대한 형식일 것이다.
이스라엘에는 지극히 높으신 분이 주신 규칙에 따라 합성된 성유(聖油)가 있어, 그것으로 제단을 축성하고 주교와 사제와 왕을 성성한다. 사람은 참으로 제단이고, 하늘의 자리에 선택됨으로써 왕이 된다. 그러므로 바르는 기름으로 축성될 수 있다. 성유는 이스라엘의 다른 예배 의식과 더불어 채택되어, 비록 다른 용도로 쓰이기는 하지만 내 교회에서 쓰일 것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에 있는 모든 것이 나쁘지는 않으므로 버려야할 것이 아니고, 오히려 내 교회에는 옛날 관습의 많은 추억이 있겠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중의 하나가 바르는 성유이니, 이 성유는 교회에서도 제단을 축성하는 데와 주교와 모든 성직 계급을 성성할 때에 쓰일 것이고, 왕을 축성하는 데와 신자들이 하늘 나라의 왕세자가 될 때나 일체의 허물이 없어져서 깨끗하게 된 지체와 오관(五官)을 가지고 하느님 앞에 나아가기위하여 매우 큰 도움이 필요할 때 그들을 축성하는데 쓰일 것이다. 하느님께서 병자의 이익을 위하여 원하시면 주님의 은총이 영혼은 물론 육체까지도 구제할 것이다.
육체는 그의 평화를 어지럽게 하는 가책과, 그 죽음으로 영혼 하나를 그의 나라로 끌어가기를 바라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실망케 하기까지를 희망하는 사탄의 작용 때문에 병 자체에 대하여 저항하지 않는 때가 많다. 그런데 그러던 병자가 사탄이 물러가는 것까지도 얻어내는 하느님의 용서에 대한 확신으로 사탄의 속박과 내적인 혼란에서 평화로 건너간다. 그리고 첫째 조상들에게 있어서 은총의 선물에 병과 갖가지 고통이 면제되는 선물이 곁들여졌던 것과 같이, 내 세례를 받은 갓난아기의 은총만큼이나 큰 은총을 돌려받은 병자도 믿음에 있어서의 형제들의 기도로도 도움을 받아 병에 대한 승리를 얻을 수도 있다. 믿음에 있어서의 형제들은 병자에 대한 연민을 가질 의무가 있는데, 그것은 육체적인 연민일 뿐 아니라, 형제의 육체적 영적 구원을 얻는 것을 목표로 하는 특히 영적인 연민이다. 야고보야, 기도는 벌써 기적의 한 형태이다. 너도 엘리야의 경우에 보았지만, 의인의 기도는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
“주님의 말씀을 별로 많이 이해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해한 것만으로도 저는 주님의 사제들의 사제로서의 성격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을 가득 가지게 됩니다. 제가 제대로 알아들었다면, 저희들은 주님과 여러 가지 공통점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전교와 사죄와 기적에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세 가지 성사에서.”
“아니다, 야고보야. 전교와 기적은 성사가 아니다. 그러나 성사는 더 있을 것이다. 성전의 성스러운 큰 촛대와 사랑의 성령의 선물과 같이 일곱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성사들은 사람이 주님 앞에서 영원 무궁세에 불타라고 주시는 선물이요 불꽃들이다. 사람들의 혼인을 위한 성사도 있을 것이다. 마귀에게서 구해진 라구엘의 딸 사라의 거룩한 혼인의 상징에 나타난 성사이다. 이 성사는 부부에게 하느님의 계율과 소원에 따른 거룩한 공동생활을 위한 모든 도움을 줄 것이다. 남편과 아내는 어떤 의식, 즉 생식이라는 의식을 행하는 사제도 된다. 남편과 아내는 가정이라는 작은 교회의 사제도 된다. 따라서 그들은 하느님의 강복을 받으며 자녀를 낳고 하느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이름을 찬미하는 후손을 기르기 위하여 축성되어야 한다.”
“그런데 저희 사제들은 누가 축성할 것입니까?”
“너희를 떠나기 전에 내가 축성하겠다. 그 다음에는 너희 후계자들과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파하라고 너희가 모을 사람들을 너희가 축성할 것이다.”
“주님이 저희들에게 가르쳐 주시겠지요?”
“나도 가르쳐 주겠고.내가 너희에게 보낼 분도 가르쳐 주실 것이다. 이분이 오시는 것도 하나의 성사일 것이다.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첫번째 공현(公現)을 통하여 자발적으로 주실 성사이고, 그 다음에는 완전한 사제직을 받았을 사람들이 줄 성사이다. 이 성사는 힘과 총명일 것이고, 믿음을 굳게 하는 것이고, 거룩한 경건심과 거룩한 두려움이고, 의견의 도움과 초자연적인 지혜이고, 그 성질과 힘으로 그 정의를 받는 사람을 어른이 되게 하는 정의를 차지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네가 이 성사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분께서 직접 너희들에게 그것을 이해하게 하실 것이다. 너희가 너희들 안에 그분을 받을 시간에 이르렀을 때 하느님의 성령이시고 영원한 사랑이신 그분이 이렇게 해서 너희가 지금 당장은 이해할 수 없는 또 다른 성사가 한 가지 있는 것이다.
이 성사는 하도 숭고해서 천사들도 거의 이해하지. 못할 정도이다. 그러나 순전히 사람인 너희들은 믿음과 사랑의 힘으로 이것을 이해할 것이다. 네게 분명히 말한다만, 이 성사를 사랑하고 그것으로 정신을 기르는 사람은 마귀를 짓밟으면서도 손상을 입지 않을 것이다. 그때에는 내가 그와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 사촌, 이것들을 기억하도록 힘써라. 이 말들은 네 동료들과 신자들에게 해주는 것이, 말해도 아주 여러 번 말해주는 것이 네 의무일 것이다. 그때에는 너희들이 벌써 하느님의 성직을 통하여 이 일들을 알 것이다. 그러나 너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은 어느날 가르멜산에서 내려오면서 이 말씀을 내게 하셨다. 내가 그때부터 이스라엘 교회의 우두머리가 되기로 결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내게 모든 것을 말씀해 주셨다’고”
“여기 또 한 가지 다른 질문이 있습니다. 지난밤에 저는 이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이곳의 우두머리가 될 것이다’ 하는 말을 동료들에게 제가해야 합니까? 이것은 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주님이 명령하시면 그렇게 하기는 하겠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염려 말아라. 성령께서 너희 모두에게 내려오셔서 거룩한 생각들을 주실 것이다. 너희들은 모두가 당신 교회 안에서의 하느님의 영광에 대하여 같은 생각들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지금 있는 것과 같은 몹시… 몹시 기분 나쁜 토론도 없어지겠습니까? 시몬의 유다까지도 불화의 원인이 되지 않겠습니까?”
“유다도 그런 원인이 되지 않게 될 것이니, 안심하여라. 그러나 의견의 대립은 아직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너더러 네 의무를 끝까지 다하면서 결코 싫증내지 말고 신경을 쓰고 살피라고 말한 것이다.”
“또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주님. 박해 때에는 제가 어떻게 처신해야합니까? 주님의 말씀에 따르면 열 두 사람 중에 저 혼자만 남아 있어야 되는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박해를 피해서 떠날 것이로군요. 그러면 저는요?”
“너는 네 임지에 남아 있어야 한다. 과연 교회가 튼튼하게 세워지기까지는 너희가 몰살당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리고 많은 제자들과 거의 모든 사도가 흩어지는 것이 이것으로 정당화되지만, 네가 임지를 이탈하는 것과 예루살렘 교회의 네 몫을 버리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반대로 예루살렘 교회가 위험에 처해 있으면 그럴수록 너는 마치 그 교회가 가장 사랑하는 네 아이인데 죽을 위험에 처해있는 것처럼 보살펴야 할 것이다. 네 본보기가 신자들의 정신을 강화할 것이다. 그들이 시련을 극복하는 데에는 그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들이 약한 것을 네가 보게 되면 그럴수록 동정과 지혜로 더욱 더 그들의 힘을 돋우어 주어야 할 것이다. 네가 강하다고 약한 사람들에 대하여 무자비하게 굴지 말고, ‘나는 모든 것을 하느님에게서 받아서 내가 가진 이 힘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겸손하게 이 말을 해야 하고,하느님의 은혜라는 면에서 나보다 축복을 덜 받은 사람들에 대해서 자비롭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그들의 힘을 돋우어 주고, 말과 도움과 침착과 모범으로 네 힘을 주고 또 주어야 한다.”
“그런데 만일 신자들 가운데 다른 사람들에게 스캔들과 위험의 원인이 되는 나쁜 사람들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그들을 받아들이는 데 신중해야 한다. 수가 많으면서 좋지 못한 것보다는 수가 적으면서 좋은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성한 사과와 상한 사과에 대한 옛날 우화를 알지. 이 우화가 네 교회에 적용되지 않도록 하여라. 그러나 너도 너를 배반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거든, 모든 방법을 써서 그들을 도로 데려오려고 애쓰고, 엄격은 마지막 수단으로 남겨두어라. 그렇지만 잘못이 작고 개인적인 것인 때에는 무섭게 하는 엄격을 쓰지 말고, 용서하고 또 용서하여라.…사람의 마음을 바로잡아 주는 데에는 눈물과 사랑의 말과 합쳐진 용서가 저주보다 더 효과적이다. 만일 잘못이 중한데 그것이 사탄의 예기치 않은 습격의 결과이면, 그리고 잘못이 너무 커서 죄지은 사람이 네 앞을 피할 필요를 느낄 정도이면, 그 사람은 길잃은 어린 양이고 너는 목자이니까 죄지은 사람을 찾아 나서라. 영혼들을 찾아 더러운 길로 내려가고 늪과 낭떠러지를 헤매서 네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을 두려워 말아라. 그때에는 네 이마에 사랑의 순교의 관이 씌워질 것인데, 그것이 세 가지 관의 첫째 것이 될 것이다.…그리고 너 자신 세례자와 수많은 다른 사람과 같이 배반을 당하거든 – 어떤 성인이나 배반자를 가졌으니까-용서하여라.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그 사람을 더 용서하여라.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용서하셨고, 장차도 용서하실 것과 같이 용서하여라. 네게 고통을 주는 사람을 아직도 ‘아들’이라고 불러라. 아버지께서 내입을 통하여 너희를 이렇게 부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이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고통을 드리지 않은 사람은 없다….” 양들이 여기저기서 풀을 뜯고 있는 방목지들을 지나가는 동안 오랜 침묵이 흐른다.
마침내 예수께서 물으신다. “다른 질문할 것이 없느냐?”
“없습니다, 예수님.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제 무서운 임무를 더 잘 이해했습니다….”
“그것은 네가 어제보다 마음이 덜 어지럽기 때문이다. 네 때가 이르면, 너는 한층 더 마음이 평화로울 것이고, 한층 더 이해를 잘 할 것이다.”
“저는 모든 것을 기억하겠습니다.…모든 것을… 다만…”
“무엇 말이냐, 야고보야?”
“지난밤에 울지 않고는 주님을 쳐다보지 못하게 하던 것만은 빼놓고 말입니다. 주님이 제게 말씀해 주셨는지 정확히는 알지 못하는 그것 말입니다. 만일 주님이 그 말씀을 하셨다면 믿어야 할 것입니다. 혹은 그것이 저를 무섭게 하고자 하는 마귀에게서 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나게 되어 있다면… 주님이 어떻게 그다지도 침착하실 수가 있습니까?”
“그러면 만일 내가 ‘불구가 되었기 때문에 고생스럽게 다리를 질질 끌고 다니는 목자가 있으니,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 사람을 고쳐 주도록 힘써라’ 하고 말하면 침착해지겠느냐?”
“주님, 아닙니다. 저는 주님의 자리를 빼앗을 유혹을 당하는 것으로 생각 해서 몹시 흥분한 것같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면 어떻겠느냐?” “저는 순종으로 그렇게 하고 더 이상불안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제가 알 것이고, 어떻게 할지를 모를까 봐 염려를 하지 않을 터이니까요. 그것은 주님이 저를 보내시면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할 힘을 제게 주실 것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네가 그렇게 말하는데, 제대로 말하였다. 그러므로 너는 내가 아버지께 순종해서 항상 마음이 화평하다는 것을 너는 알게 되었다.” 야고보는 고개를 숙이고 운다.
“너는 정말 잊기를 원하느냐?”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요….”
“너는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를 골라잡을 수 있다. 잊어버리는 것과 기억하는 것. 잊어버리면 고통과 네 동료들 곁에서 절대적인 비밀을 지키는 데에서 풀려날 것이다. 그러나 너는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있을 것이다. 기억을 하면 네가 네 사명에 대한 준비가 될 것이다. 그것은 절대로 불평을 하지 않고, 가장 찬란한 빛으로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봄으로써 영적으로 씩씩하게 되기 위하여는 사람의 아들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겪는 것을 기억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골라잡아라.”
“믿고 기억하고 사랑하는 것. 제가 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대로 일찍 죽는 것입니다. 주님….” 그리고 야고보는 여전히 소리없이 운다. 그의 밤색 수염에서 반짝이는 눈물이 아니면 그가 운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가 우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신다.…마침내 야고보가 말한다.
“그런데 주님이 장차 주님의…수난에 대해 새로운 암시를 하시면, 제가 안다고 말해야 합니까?”
“아니다. 입을 다물고 있어라. 요셉은 배반을 당한 줄로 믿는 남편으로서의 고통과 내가 동정녀 몸에 잉태됨과 내 천주성의 신비에 대해서 침묵을 지킬 줄 알았다. 요셉을 본받아라. 그것 또한 몹시 무서운 비밀이었다. 그런데도 그 비밀은 지켜져야 하였다. 교만이나 경솔로 그것을 지키지 않는 것은 구속사업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탄은 끊임없이 깨어서 행동하고 있다. 이것을 기억하여라. 만일 네가 지금 말하면 너무나 많은 사람에게 너무나 많은 이유로 손해가 될 것이다. 입을 다물어라.”
“입을 다물고 있겠습니다.…그런데 그렇게 하면 이중으로 고통스럽겠습니다.” 예수께서는 대답하지 않으신다. 그리고 야고보가 아마포로 만든 두건으로 가리고 실컷 울게 내버려두신다.
두 분은 불행한 어린 아이를 어깨에 올려놓고 오는 사람을 만난다.
“당신 아들이요?” 하고 예수께서 물으신다.
“그렇습니다. 이 아이는 제 어미를 죽이고 이 상태로 났습니다. 이제는 제 어머니도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 애를 보살피려고 일하러 가면서 데리고 갑니다. 저는 나무 베는 일꾼입니다. 저는 풀 위에 겉옷을 깔고 이 애를 뉘어 놓습니다. 그러면 제가 나무를 톱으로 자르는 동안 이 불쌍한 어린것은 꽃을 가지고 놉니다!”
“당신에게는 큰 불행이로군요.”
“그야 ! 그렇지요. 그러나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니 평온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지요.”
“안녕히 가시오. 평화가 당신과 함께 있기를 바라오.”
“안녕히 가십시오. 선생님께도 평화.”
그 사람은 산으로 올라가고 예수와 야고보는 더 내려오신다.
“참 불행한 일입니다! 저는 주님께서 그애를 고쳐 주시기를 바랐습니다” 하고 야고보가 한숨을 쉬며 말한다.
예수께서는 못 들은 체하신다.
“선생님, 만일 저 사람이 선생님이 메시아시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아마 선생님께 기적을 청했을지도 모릅니다 ….”
예수께서는 대답을 하지 않으신다.
“예수님, 제가 뒤로 돌아가서 저 사람에게 그 말을 해줘도 되겠습니까? 그 아이가 불쌍합니다. 제 마음에는 벌써 고통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어린 아이가 병이 나은 것을 보는 기쁨만이라도 주십시오.”
“그러면 가거라.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마.”
야고보는 뛰어 간다. 그는 그 남자를 따라 가서 그를 부른다. “여보시오. 걸음을 멈추고 내 말을 들으시오! 나와 같이 있던 분은 메시아요. 당신 아이를 그분께 데려가게 내게 주시오. 오고 싶으면 당신도 오시오. 그래서 메시아가 이 아이를 고쳐 주실지 보시오.”
“당신이나 가시오. 나는 이 나무를 전부 잘라야 합니다. 나는 아이 때문에 벌써 일이 늦어졌어요. 나는 일을 하지 않으면 먹을 수가 없어요. 나는 가난하고 이 애는 비용이 대단히 많이 듭니다. 나는 메시아를 믿어요. 그렇지만 당신이 내 대신 말씀드리는 것이 더 낫습니다.”
야고보는 풀 위에 누워 있는 어린 아이를 안으려고 몸을 구부린다.
“가만히요” 하고 나무꾼이 주의를 준다. “그애는 사방이 아프니까요.”
과연 야고보가 그 아이를 쳐들려고 하자 어린아이는 애처롭게 운다.
“오! 정말 괴로운 일이로군요!” 하고 야고보가 한숨을 쉰다.
“대단히 괴로운 일입니다” 하고 나무꾼이 매우 단단한 나무줄기를 톱으로 자르면서 말한다. “당신은 그애를 고쳐 줄 수 없습니까?”
“나는 메시아가 아니오. 나는 제자에 지나지 않아요….”
“그래서요? 의사들은 다른 의사들에게서 배우고 제자들은 선생에게서 배웁니다. 자 선심을 쓰시오. 그애를 고통스럽게 하지 마시오. 당신이 해보세요. 만일 선생님이 여기 오고고자 하셨으면, 그렇게 하셨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당신을 보내신 것은 그애를 고쳐 주기를 원치 않으셔서 그랬든가 당신이 고치기를 원해서 그랬을 것입니다.”
야고보는 어쩔 줄을 모른다. 그러다가 결심한다. 그는 몸을 일으키고, 그의 예수께서 하시는 것을 본대로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나서 명령한다. “이스라엘의 메시아이시고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이 나아라.” 그리고는 즉시 무릎을 꿇고 말한다. “오! 주님, 용서하십시오! 저는 주님의 허락없이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이스라엘의 어린이가 불쌍했습니다. 하느님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이 어린 아이와 죄인인 저를!” 그러면서 누워 있는 어린 아이 위로 몸을 구부리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운다. 눈물이 뒤틀려서 꼼짝하지 않는 작은 다리에 떨어진다.
예수께서 갑자기 오솔길에서 나오신다. 그러나 아무도 예수를 보지 못한다. 나무꾼은 일을 하고 있고, 야고보는 울고 있고, 어린 아이는 신기한 듯이 야고보를 쳐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린 아이는 다정스럽게 묻는다. “아저씨, 왜 울어?” 그리고 그를 쓰다듬으려고 귀여운 손을 내민다. 그리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혼자 일어나 앉고 일어서서 야고보를 위로하려고 껴안는다. 야고보가 외치는 소리에 나무꾼이 뒤돌아서서 그의 아이가 이제는 죽지도 않았고 뒤틀리지도 않은 두 다리로 서 있는 것을 본다. 그리고 뒤돌아서면서 예수를 본다.
“저기 오십니다! 저기 오십니다!” 하고 나무꾼은 야고보의 뒤를 가리키며 외친다. 야고보가 몸을 돌리니, 기쁨으로 환해진 얼굴로 그를 바라다보시는 예수께서 보이신다.
“선생님! 선생님! 저는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동정 이 사람…이 어린 아이…용서하십시오!”
“일어나거라. 제자들이 선생보다 더 낫지는 못하다. 그러나 그들이 거룩한 동기로 어떤 일을 할 때에는 선생이 하는 것을 할 수가 있다. 일어나거라. 그리고 나하고 같이 가자. 당신 두 사람은 축복을 받으시오. 그리고 하느님의 봉사자들까지도 하느님의 아들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그러시면서 야고보를 당신께로 끌어당기면서 가신다. 야고보는 이렇게 말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제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무엇을 가지고 선생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했습니까?”
“야고보야, 네 동정으로 그렇게 하였다. 내가 그 죄 없는 어린 아이와 믿기도 하고 동시에 의심도 하는 그 사람에게 사랑을 받게 하려는 네 소원으로 그렇게 하였다. 요한은 얌니아 근처에서 죽어가는 사람에게 기름을 바르고 기도를 하는 것으로 병을 낫게 함으로써 사랑으로 기적을 행하였다. 여기서는 네가 네 눈물과 네 동정으로, 그리고 내 이름에 대한 신뢰로 병을 고쳤다. 제자가 올바른 의향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주님을 섬기는것이 얼마나 화평스러운 일인지 너는 알게 되었다. 저 사람이 우리를 따라오고 있으니까 이제는 빨리 걷자. 네 동료들이 이 일을 알게 되는 것이 아직은 좋지 않다. 멀지 않아 너희들을 내 이름으로 보내겠다.…(예수께서는 크게 한숨을 쉬신다) 시몬의 유다가 그렇게 하기를 갈망하는 것과 같이(예수께서 다시 한숨을 쉬신다). 그리고 너희도 그렇게 할 것이다.…그러나 그것이 모두에게 유익한 일은 아닐 것이다. 빨리 가자, 야고보야! 시몬 베드로와 네 형과 다른 사람들도 이것을 알면 불공평한 것으로 생각해서 괴로워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불공평이 아니다. 너희 열 두명 가운데에서 다른 사람들을 인도할 줄 아는 어떤 사람을 준비하는 것이다. 나뭇잎이 덮인 저 급류의 하상으로 내려가자. 우리는 우리의 흔적을 잃게 할 것이다.…어린 아이 때문에 마음이 내키지 않느냐? 오! 그 어린 아이를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