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들판 쪽으로 다시 길을 간다.
이제는 사도들과 두 제자가 어머니와 라자로의 두 여동생과 같이 계신 예수에게서 몇 미터 떨어져서 클레오파의 마리아와 수산나와 같이 간다. 예수께서는 쉬지 않고 말씀하신다. 이와 반대로 사도들은 말이 없다. 그들은 피로하거나 낙담한 것 같다. 그들은 들판이 아름다움에도 마음이 끌리지 않는 것 같다. 가르멜 산맥과 사마리아 산맥의 전조로 여기저기 몇 미터 높이로 올라가 있는 야산들과 더불어 이 들판은 거대한 왕의 발아래 놓여 있는 푸른 방석처럼 평야에 가벼운 기복이 널려 있어 참으로 눈부시게 아름답다. 이 근방에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평야에도 작은 야산들과 땅의 기복에도 초목에 꽃이 만발하였고, 익어 가는 과일들의 향기가 가득 차 있다. 그 위치와 계절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관개가 잘 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다. 꽃이 너무 많은 것으로 보아 물이 많지 않을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나는 성경에서 왜 그렇게도 여러 번 사론 평야의 이름을 열광적으로 말하는지 이제야 이해하겠다. 그러나 사도들은 조금도 이 열광을 같이 하지 않는다. 그들은 조금 침울하게 걸어가고 있다. 이 맑은 날씨와 이 아름다운 지방에서 슬픈 모양을 하는 것은 오직 그들뿐이다.
상태가 매우 좋은 집정관 도로가 그 흰 리본으로 매우 기름진 이 평야를 갈라놓는데, 아직 이른 아침인 이 시간에 식료품을 잔뜩 지고 가는 농부들이나 가이사리아 쪽으로 가는 여행자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부대를 실은 나귀 여러 마리를 줄지어 데리고 가는 여행자 중의 한 사람이 사도들 있는 데로 와서 그의 나귀 떼에 자리를 내도록 비키라고 강요한다. 그리고 거만하게 “여기가 키손이오?” 하고 묻는다.
“더 뒷쪽이오” 하고 토마가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그리고 입속으로 투덜거린다. “버릇없는 곰 같으니라구!”
“저자는 사마리아인이야, 그러면 알만하지!” 하고 필립보가 대답한다.
그들은 다시 침묵에 잠긴다. 몇 미터쯤 더 가서 베드로가 마치 속으로 하 던 이야기를 끝내는 것처럼 말한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었어! 그렇게도 많 은 길을 갈 필요가 있었어?”
“그렇구말구! 그런 다음 선생님이 한마디 말씀도 안하셨으니 우리는 왜 가이사리아에 간 거야? 나는 선생님이 로마인들을 설득하시려고 깜짝 놀라 게 하는 어떤 기적을 행하실 줄 알았어. 그런데 그 반대였단 말이야….” 하고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말한다.
“선생님은 우릴 웃음거리가 되게 하셨어, 그뿐이었어” 하고 토마가 해석 을 붙인다. 그리고 가리옷 사람이 한술 더 뜬다.” 선생님은 우릴 괴롭히셨어. 그렇지만 선생님은 모욕을 좋아하셔, 그래서 우리도 모욕을 좋아하는 줄 아 신단 말이야.”
“사실 이번 기회에 고통을 당한 건 데오필로의 마리아야” 하고 열성당원 이 조용히 지적한다.
“마리아! 마리아! 마리아가 이 세상의 중심이 됐어? 고통을 당하는 건 마리아밖에 없고, 영웅적인 것도 자기를 형성하는 것도 마리아밖에 없어. 나중에 이후 아주 많은 존경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 도둑이 되고 살인자가 되기를 바라야 할 판이야” 하고 가리옷 사람이 성이 나서 말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지난번에 우리가 가이사리아에 와서 선생님이 기적을 행하시고 복음을 전하셨을 때 우리는 선생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 불평으로 선생님을 몹시 슬프게 해드렸어” 하고 주님의 사촌이 지적한다.
“사실은 말이야” 하고 요한이 정색을 하고 말한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단 말이야.…선생님이 이렇게 하시면, 우린 투덜거려. 선생님이 그와 반대되는 일을 하시면 우린 또 투덜거린단 말이야. 우린 결점투성이야.”
“오! 또 다른 현자가 말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오래 전부터 좋은 일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건 확실해.”
“아무것도 없다구, 유다? 그럼 저 그리이스 여자는 어때? 그리고 헤르마스테아는 어떻구 아벨은 어떻구, 마리아는 어떻구, 또….”
“선생님은 그런 무가치한 사람들을 가지고 나라를 세우지는 못하실 거야” 하고 현세적인 승리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유다가 대꾸한다.
“유다, 제발 내 사촌이 하는 일을 비판하지 말게. 그건 우스광스러운 주장 이야. 모든 것을 지배하려고 하는 무가치한 사람이라고는 안하더라도 선생을 비관하자고 하는 어린 아이와 같아” 하고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자기와 같은 이름을 가진 그 사람에 대하여 어찌할 수 없는 무관심을 느끼는 타대오가 말한다.
“나를 어린 아이라고 부르는 데 그친 거 고맙네. 정말이지 나는 성전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살고 난 뒤에 적어도 사람들이 나를 어른 대접은 해줄 줄 알았는데” 하고 가리옷 사람이 빈정대며 대답한다.
“아이고! 그 말다툼, 기분 나쁘기도 하구먼!” 하고 안드레아가 탄식한다. “정말이야!” 하고 마태오가 지적한다. “우리가 서로 융합하기는 고사하고. 함께 살면 살수록 점점 더 갈라진단 말이야. 그런데 시카미논에서 선생님이 우리가 양떼와 일치해야 된다고 말씀하신 것을 생각하란 말이야. 우리가 목자들끼리 일치해 있지 못하면 어떻게 양떼와 일치할 수 있겠어?”
“그런 말을 해선 안 된단 말이야. 제 생각을 절대로 말하지 말아야 한단 말이야? 우린 노예가 아니라고 생각해.”
“그야 아니지, 유다” 하고 열성당원이 침착하게 말한다. “우리는 노예는 아니야. 그렇지만 우리는 선생님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선생님을 따를 자격이 없어.”
“난 선생님을 색잘 이해해.”
“아니야, 자넨 이해 못하는 거야. 그리고 자네와 같이 선생님을 비판하는 사람은 많게도 적게도 선생님을 이해하지 못한단 말이야. 이해한다는 것은 인도하시는 분의 거룩하심을 확신하기 때문에 따지지 않고 순종하는 거야” 하고 열성당원이 또 말한다.
“아! 그렇지만 자네는 선생님의 성덕에 대한 이해를 빗대서 말하는구먼. 나는 선생님의 말씀에 대해서 말하던 건데. 선생님의 성덕은 이론의 여지가 없고 또 따질 것도 없어” 하고 가리옷 사람이 서둘러 말한다.
“그래 자넨 그 두 가지를 서로 떼어놓을 수 있다는 건가? 성인은 항상 지혜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의 말은 항상 지혜로울 거야.”
“그건 사실이야. 그렇지만 선생님은 해로운 일을 하셔. 분명히 지나친 성덕으로 그러신다는 것은 나도 인정해. 그렇지만 세상은 거룩하지 않아, 그래서 선생님은 귀찮은 일들을 스스로 만드신단 말이야. 가령 저 펠리시데 사람, 저 그리이스 여자가 우리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하나?”
“그렇지만 만일 내가 해롭다면 물러가겠어요. 저는 선생님을 공경하고 무슨 의로운 일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왔었어요” 하고 혜르마스테아가 기분이 상해서 말한다.
“네가 이런 동기로 가면 선생님께 고통을 드릴 거다” 하고 알패오의 야고보가 대답한다.
“저는 선생님께서 내가 생각이 변한 줄로 생각하시게 하겠어요. 그리고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가겠어요.”
“정말이지 안 된다! 넌 가선 안 돼. 남의 신경과민 때문에 선생님께서 좋은 제자 하나를 잃으시는 것은 옳지 않아” 하고 베드로가 화를 낸다.
“그렇지만 그가 이 같은 일쯤으로 가려고 한다면, 자기의 뜻을 확실히 모른다는 표야. 그러니까 가게 내버려둬” 하고 가리옷 사람이 대답한다.
베드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게 된다. “나는 선생님이 마륵지암을 내게 주셨을 때 모든 사람에게 온정이 넘치는 사람이 되겠다는 약속을 드렸는데, 그 약속을 어기는 것이 마음에 들진 않아. 하지만 자네가 그렇게 하도록 강요하네. 혜르마스테아는 여기 있고, 또 여기 그대로 있어야 하네. 네가 자네한데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아나? 다른 사람들의 뜻을 동요시켜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자네란 말이야. 자네는 분리와 무질서의 원인이야. 자넨 그런 사람이란 말이야. 그걸 부끄럽게 생각하라구.”
“자넨 뭐야? 그들의 … 보호자”
“아무렴! 자네가 제대로 말했네. 자네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네. 베일쓴 여자의 보호자, 엔도르의 요한의 보호자, 혜르마스테아의 보호자, 저 여자노예의 보호자, 그리고 예수께서 얻으신 다른 모든 사람들의 보호자란 말이지. 이런 사람들은 성전의 공작들, 성전의 거룩한 회반죽과 거미줄과 등잔의 고약한 냄새가 나는 심지로 이루어진 사람들, 요컨대 비유를 더 분명하게 하려면 자네 같은 사람들의 훌륭한 표본이 되진 못하는데 그렇단 이 말이지.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성전도 중요하지만, 내가 바보가 되지 않은 한 선생님은 성전보다 더 중요하신데, 자네는 선생님께 모욕을 드리기 때문이야…” 베드로가 어떻게나 크게 소리를 치는지 선생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몸을 돌리시고 여자들 곁을 떠나 뒤로 돌아오시려고 한다.
“선생님이 들으셨어! 이젠 선생님이 몹시 슬퍼하시게 됐어” 하고 사도 요한이 말한다.
“아닙니다. 선생님, 오지 마십시오. 저희들은 길가는 데 지루한 걸 달래려고 토론을 하던 중입니다” 하고 이내 토마가 말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서 계시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와, 합치게 되었다.
“무슨 토론을 하고 있었느냐? 여자들이 너희들보다 낫다는 말을 또 한 번해야 하겠느냐?” 부드러운 나무람에 모두 감동한다.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다.
“이 사람들아! 지금 막 빛에 태어나는 사람들에게 빈축의 대상이 되지 말아라! 너희들에게 있는 결점이 이교에 있는 오류들보다도 더 이교도나 죄인의 구속에 해가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것은 변명을 하거나 누구를 비난하지 않으려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이 마른 개울 위에 놓인 다리 근처에서 라자로의 동생들의 마차가 멎어있다. 말 두 마리는 개울가에 있는 무성한 풀을 뜯어먹고 있다. 개울물은 마른 지가 얼마 안 되는 모양이어서, 개울가에는 우거진 풀이 확 깔려 있다. 마르타의 하인과 아마 마차를 모는 사람인 또 한 사람은 개울가에 있는데, 여자들은 마차 안에 그대로 들어 있다. 마차에는 두꺼운 커어튼처럼 바닥에까지 내려오는 이긴 가죽으로 만든 두꺼운 포장이 둘러쳐져 있다. 여자 제자들이 마차를 향하여 걸음을 재촉하는데, 그들을 제일 먼저 본 하인이 유모에게 알리고, 그 동안 다른 하인은 서둘러 말들에 마차를 메운다.
그동안 하인은 여주인들에게로 뛰어 와서 땅에 닿도록 몸을 숙여 인사한다. 올리브색이 돌지만 기분 좋은 빛깔의 얼굴빛을 한 아름다운 여인인 나이든 유모가 재빠르게 내려와서 여주인들 쪽으로 간다. 그러나 막달라의 마리아가 무슨 말인지 하니까 유모는 이내 성모님께로 가서 말한다. “용서하십시오. …그러나 마리아를 보는 기쁨이 너무도 커서 마리아밖에는 보이지가않습니다. 복되신 어머니, 이리 오십시오, 해가 너무 뜨겁습니다. 마차 안에는 그늘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모두 마차로 올라가서 매우 뒤에 쳐져 있는 남자들을 기다린다. 여자들이 기다리고, 전날 막달라 마리아가 입었던 옷을 입은 신디카가 여주인들의 -마르타와 마리아는 신디카가 그들에게는 하인도 아니고 노예도 아니고, 예수의 이름으로 받아들인 손님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신디카는 끝끝내 그렇게 부른다 – 발에 입맞춤하는 동안 성모님은 귀중한 자주 조개 꾸러미를 보이시며 습기도 받지 않고 꼴 수도 없는 그 섬유 뭉치를 어떻게 길쌈하는 것인지 물으신다.
“어머님, 그것은 그렇게 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가루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는 다른 어떤 물감과도 같이 쓰는 것입니다. 이것은 조개의 침이지 머리카락도 아니고 털도 아닙니다. 이것이 마른 지금 얼마나 잘 부서지기 쉬운지 아시겠지요? 이것을 곱게 빻아서 체에 쳐서 실이나 옷감을 얼룩지게 할 긴 섬유가 남아 있지 않게 합니다. 실은 타래로 되어 있으면 물이 더 잘 듭니다. 양홍(洋紅)이나 사프란이나 양람(洋藍) 가루나 다른 나무껍질이나 뿌리나 열매를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것처럼 모두 가루를 만든 것이 확실할 때에는 그것을 씁니다. 맨 마지막 헹굴 때에는 진한 식초로 물감을 빠지지 않게 합니다.”
“고마워요. 노에미. 자네가 일러 주는 대로 하겠어요. 자주빛 실로 수를 놓은 일은 있지만 벌써 다 쓸 수 있게 준비된 것을 받았었어요.… 자 예수가 온다. 딸들아, 이제 작별인사를 할 시간이다. 너희 모두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평화와 기쁨을 라자로에게 전해주어라. 마리아야, 잘 가거라. 네가 내 가슴에서 행복의 첫번 눈물을 흘렸다는 것을 기억해라. 이렇게 해서 나는 네게 어머니가 되었다. 어린 아이는 엄마의 가슴에서 첫번 눈물을 흘리기 때문이다. 나는 네게 어머니가 되었고, 언제까지나 어머니로 있을 것이다. 언니 중에서 제일 다정스러운 언니에게, 유모중에서 가장 많이 사랑하는 유모에게 말하는 것이 네게 고통을 줄 수 있을 때에는 내게 와서 말해라, 나는 너를 항상 이해할 것이다. 내 예수는 인간성이 너무 가득 차 있는 것은 네게 원치 않기 때문에 그런 말을 예수에게 감히 못하겠으면 내게 와서 말해라. 나는 언제나 네게 관대하게 굴겠다. 또 이다음에 네 숭리도 내게 말하고 싶으면 -그러나 네 승리들은 향기로운 꽃처럼 예수에게 바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네 구세주는 예수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도 너와 함께 기뻐하겠다.
마르타야, 잘 가거라. 이제는 네가 행복하게 가는데, 언제나 그 초자연적인 행복에 남아 있어라. 그러니까 네게 필요한 것은 이제는 네 안에서 아무것도 어지럽게 하지 못하는 평화 가운데에서 의덕의 길에 전진하는 것뿐이다. 너를 너무 사랑해서 네가 완전히 사랑하는 네 동생을 사랑하게 된 예수에게 대한 사랑으로 그렇게 해라.
노에미, 잘 가요. 유모가 다시 찾은 보물을 가지고 가시오. 유모가 마리아를 유모의 젖으로 기른 것과 같이 이제는 마리아와 마르타가 하는 말을 마음의 양식을 삼으시오. 그리고 내 아들을 사람들의 마음을, 악에서 구해내는 마귀 쫓는 사람보다 훨씬 더한 사람으로 보게 되도록 하시오.
신디카, 잘 가거라, 너 혼자서 육체보다 더한 무엇이 있다는 것을 볼 줄 안 그리이스의 딸. 이제는 하느님 안에서 꽃펴서 그리이스의 새로운 꽃들중에서 첫째 꽃이 되어라.
나는 너희들이 이렇게 결합해 있는 것을 남겨두는 것이 매우 기쁘다. 너희들에게 사랑으로 축복한다.”
이제는 발소리가 아주 가까워졌다. 여자들은 포장을 들고 예수께서 마차에서 2미터쯤 떨어진 곳에 계신 것을 본다. 여자들은 길에 내리쬐는 뙤약볕을 무릅쓰고 내려온다.
막달라의 마리아는 예수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말한다. “주님, 모든 것을 감사합니다. 또 이 여행을 하게 하신데 대해서도 감사합니다. 주님만이 지혜를 가지고 계십니다. 이제는 옛날 마리아의 흔적을 떨어버리고 떠납니다. 주님 제가 점점 더 굳세어지게 강복을 주십시오.”
“그래, 네게 강복한다. 형제들이 있는 것을 즐겨라. 그리고 형제들과 더불어 점점 더 나를 통하여 너를 형성하여라. 마리아야, 잘가거라. 마르타야, 잘 가거라. 라자로에게 내가 축복을 보낸다고 말하여라. 너희에게 이 여자를 맡긴다. 너희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이 여자는 네 제자이다. 그러나 그에게 내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가능성을 너희가 주기를 바란다. 그런 다음 내가 가마. 노에미, 아주머니에게도 축복을 합니다. 그리고 너희 두 사사람에게도.”
마르타와 마리아는 눈에 눈물이 글썽거린다. 열성당원은 그들에게 특별히 인사를 하며, 그의 하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준다. 다른 사람들은 함께 인사한다. 그리고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럼 이제는 그늘을 찾아가자. 하느님께서 저들과 함께 계시기를 바란다.… 아주머니는 저들이 간 것이 매우 섭섭하시지요?” 하고 조용히 울고 있는 알패오의 마리아에게 말씀하신다.
“그래요. 그 사람들은 매우 착했거든…
“곧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것도 더 많이 말입니다. 아주머니는 많은 자매들을… 또는 더 좋으시다면 많은 딸을 가지시게 될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이건 형제의 사랑이건 모두가 사랑입니다” 하고 예수께서 그를 위로하려고 말씀하신다.
“그에게 난처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좋겠는데…” 하고 가리옷 사람이 말한다.
“서로 사랑하는데, 난처한 일이라고?”
“아닙니다. 다른 민족과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데리고 있는 것으로 인한 난처한 일들 말입니다.”
“신디카를 두고 하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선생님. 따지고 보면 그 여자는 한 로마인의 물건인데, 그것을 가로채는 것은 좋지 않은 일입니다. 이것으로 인해서 그 사람이 우리에게 대해 악의를 가지게 될 것이고, 우리는 배후에 준엄한 수단을 가진 본시오 빌라도를 적으로 가지게 될 것입니다.”
“아니, 그에게 딸린 사람이 여자노예를 잃었다고 해서 그게 빌라도에게 어떻다는 거야? 그것이 얼마나한 값어치가 있는지나 알겠지! 그리고 또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좀 집안에서만이라도 기품있는 사람이면, 그 여자가 도망치길 잘했다고 말할 거야. 그리고 만일 점잖지 못한 사람이면 ‘거 잘 됐다! 이렇게 되면 어쩌면 내가 그 여자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거든’ 하고. 불성실한 사람들은 남의 고통에는 민감하지 않거든. 그리고! 아이고! 불쌍한 본시오! 우리가 그에게 주는 모든 걱정거리를 하고, 여자노예를 도망치게 한 사람의 불평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는 다른 할 일이 많단 말이야!” 하고 베드로가 말한다. 그러니까 여러 사람이 음란한 로마 사람을 비웃으면서 그의 말이 옳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문제를 더 높은 차원으로 가져가신다. “유다야, 신명기(申命記)를 아느냐?”
“알구말구요, 선생님. 그리고 저만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거라고 서슴지 않고 말하겠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느님의 대변자로 생각합니다.”
“대변자. 그러니까 하느님의 말씀을 되풀이하는 대변자란 말이지?”
“정확히 그렇습니다.”
“잘 생각하였다. 그러면 왜 신명기가 명하는 것을 하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느냐?”
“저는 그런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우리가 새로운 율법을 따르느라고 신명기를 너무 소홀히 한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율법은 이전 율법의 결과이다. 아니 오히려 믿음의 나무가 도달한 완전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우리 중의 아무도 이전 율법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제일 먼 이전 율법을 존중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소홀히 하지 못하게 막기 때문이다. “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매우 단호하시다. 예수께서는 다시 말씀을 이으신다. “신명기는 건드릴 수 없는 것이다. 내 나라가 숭리하고, 내 나라와 더불어 새 법전과 새 조항들을 가진 새 율법이 숭리할 때에도 신명기는 여전히 새 계명에 적용될 것이다. 마치 옛날 건축에 쓰였던 큰 돌들이 새 건축에 쓰이는 것과 같다. 그 돌들이야 말로 튼튼한 벽을 만드는 완전한 돌들이니까. 그러나 지금은 아직 내 나라가 아니다. 그리고 나는 충실한 이스라엘 사람으로 모세의 책을 모욕하지도 않고 소홀히 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내 행동방식과 내 가르침의 기초이다. 사람과 선생의 기초 위에 아버지의 아들은 그의 본질과 그의 지혜의 천상 건축을 세우는 것이다.
신명기에 이런 말이 있다. ‘네게 피신해 온 노예를 그 주인에게 돌려주지 말아라. 그는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너와 같이 살아야 하고, 그는 네 읍내들에서 안심하고 있어야 하고, 너는 그를 괴롭히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어떤 사람이 비인간적인 노예상태를 피할 수밖에 없게 된 경우에 적용되는 것이다. 내 경우와 신디카의 경우에 있어서는 제한된 자유를 향한 도망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의 한없는 자유를 향한 도망이다. 그런데 너는 사냥꾼의 그물에서 빠져나온 저 종달새를 다시 그물로 덮쳐서 도로 그의 감옥에 집어넣어서 자유에 대한 바람까지도 빼앗아버리란 말이냐? 그것은 절대로 안 된다! 나는 엔도르 여행이 저 아들을 아버지께 데려오고, 가이사리아 여행이 이 딸을 내게 데려와서 아버지께로 데려가게 해주신 데 대해서 하느님을 찬미한다. 시카미논에서는 내가 믿음의 힘에 대해서 너희들에게 말해 주었다. 그런데 오늘은 바람(소망)의 빛에 대해 말해 주겠다. 그러나 이제는 마치 지옥이 활짝 열린 것같이 해가 몹시 뜨거우니, 저 우거진 과수원에 들러서 음식도 먹고 쉬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