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마태아는 땅이 꽤 기복이 심한 곳이다. 웬지 모르지만, 나는 그곳이 평야에 있는 줄로 생각하였었다. 그렇지만 야산들이 점점 낮아지면서 평야 쪽으로 향하게 되는데, 어디쯤에서 길이 구부러지는 곳에서는 서쪽으로 기름진 평야가 나타난다. 그리고 11월의 이 아침에는 끝이 없는 물같이 보이는 안개 아래 지평선으로 사라진다.
예수께서는 시몬과 토마와 같이 계시다. 다른 제자들은 데리고 계시지 않다. 나는 예수께서 당신이 사귀셔야 하는 사람들의 여러 가지 감정과 성격을 슬기롭게 함락하셔서, 상황에 따라, 주인이 별로 감정을 상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제자들을 데리고 가신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이 유다인들은 낭만적인 소심한 여자들보다도 더 … 민감한 모양이다.
나는 그들이 아리마태아의 요셉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알아차리겠다. 그리고 아마 그를 썩 잘 알고 있는 것 같은 토마는 언덕 위에 있는 요셉의 넓고 훌륭한 소유지를 가리킨다. 그 소유지는 특히 예루살렘 쪽으로, 수도와 아리마태아를 연결하고, 그 다음에는 이곳과 요빠를 연결하는 길 옆에 있다. 내가 알아차린 것으로는 그들의 화제가 이런 것이다. 토마는 또 평야의 길 옆에 있는 요셉의 밭들에 대하여도 감탄조로 말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적어도 사람들이 짐승 취급은 당하고 있지 않네! 아이고! 그 도라!” 하고 시몬이 말한다. 그 말대로 여기서는 일꾼들이 잘 먹고 잘 입고, 훌륭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 같은 만족을 나타낸다. 그들은 아리마태아의 들판을 지나 그들의 주인 집을 향해 가고 있는 키 크고 품위있는 사람이 어떤 분인지를 틀림없이 벌써 알고 있기 때문에 공손히 인사를 하고 서로 작은 소리로 말을 하면서 그 분을 살펴본다.
벌써 요셉의 집이 나타났을 때 하인 한 사람이 깊은 절을 하면서 묻는다.
“선생님이 주인님이 기다리는 선생님이십니까?”
“나요.” 하고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그 사람은 몸을 깊이 굽혀 절을 하고 주인에게 알리려고 뛰어 간다.
이곳의 집은 라자로의 집의 높은 담대신 높은 상록수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고, 그 상록수 울타리는 나무가 울창한 정원으로 조화있게 이어지면서 집을 길에서 갈라놓는다. 정원의 나무들은 잎이 거의 완전히 떨어졌다. 예수께서 집에 이르시기 전에 가장자리 술장식이 달린 넓은 옷을 입은 아리마태아의 요셉이 마중을 나와서 팔을 십자로 가슴에 포개 얹고 몸을 깊이 숙여 인사를 한다. 그것은 예수를 사람이 되신 하느님으로 알아보고 자기를 낮추어 무릎을 꿇고 몸을 땅에까지 굽혀 예수의 발이나 옷자락에 입맞춤하는 사람이 하는 그런 겸손한 인사는 아니다. 그러나 역시 매우 공손한 인사이다. 예수께서도 몸을 굽히시고 평화의 인사를 하신다.
“들어오십시오, 선생님. 선생님께서 초청을 받아주셔서 기쁩니다. 선생님께서 이렇게까지 친절을 베풀어 주시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왜요? 나는 라자로의 집에도 가는데요. 그리고 ….”
“라자로는 선생님의 친구이지만, 저는 모르는 사람이니까요.”
“선생은 진리를 찾는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진리가 선생을 물리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진리이십니까?”
“나는 길이요 생명이요 진리입니다. 나를 사랑하고 따르는 사람은 그 자신 안에서 확실한 길과 지극히 복된 생명을 찾아내고 하느님을 알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정의이신 외에 또 진리이시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위대한 박사이십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모두가 지혜를 생생하게 나타냅니다.” 그리고 시몬에게로 몸을 돌리고 말한다. “자네도 그렇게 오랫동안 안 오다가 내 집엘 다시 오니 반갑네.”
“내가 오지 않은 것은 내 뜻이 아니었네. 내 운명이 어떠했는지, 자네 아버지가 대단히 사랑하시던 어린 시몬의 인생이 얼마나 큰 고통의 타격을 받았는지 자네도 알지.”
“아네, 그런데 자네가 알아야 할 것은 나로서는 자네에게 불리한 말을 한번도 한 적이 없다는 것일세.”
“나도 다 아네. 내 부동산이 고이 간직된 것을 보게 된 것이 자네 덕택이기도 하다는 말을 내 충실한 하인에게서 들었네. 하느님께서 거기에 대한 상급을 자네에게 주시기 바라네.”
“내가 최고법원에서 중요한 인물이었지, 그래서 그 처지를 이용해서 우리집안의 친구에게 정당한 도움을 주려고 했네.”
“내 집안의 친구도 많았고, 최고법원에서 중요한 인물인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 사람들은 자네처럼 의롭지 못했네 ….”
“그런데 이 분은 누구인가? 내게는 새로운 얼굴이 아닌데. … 그러나 어디에서 … 만났는지 모르겠는걸 ….”
“저는 디리모라고 별명을 가진 토마입니다 ….”
“아! 맞았어요! 연로하신 춘부장이 아직 살아 계십니까?”
“살아 계십니다. 아버지는 여전히 제 형제들과 같이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을 따르느라고 아버지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것을 기뻐하십니다.”
“그 분은 참된 이스라엘 사람이십니다. 그리고 나자렛의 예수가 메시아라고 믿게 되었으니, 아들이 예수님의 사람을 받는 사람 가운데 끼여 있는 것을 기뻐하실 수 밖에 없지요.”
그들은 이제 집 가까이에 정원에 있다.
“저는 라자로를 붙잡았습니다. 라자로는 서재에서 최고법원의 최근의 여러 회의 회의록 요약한 것을 읽고 있습니다. 그는 머물러 있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 지금은 저도 선생님이 알고 계시다는 것을 압니다. … 그것 때문에 그가 머물러 있으려고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가 부끄러워하는 것은 옳지 않아. 내 집에서는 아무도 자네에게 모욕을 주지 않을 걸세. 남아 있게. 고립하면 모든 사람과 대항해서 혼자 있게 되는데, 세상은 착하기보다는 오히려 악하니까, 혼자 있는 사람은 쓰러지고 밟히고 할걸세’ 하고. 제가 제대로 말했습니까?”
“제대로 말하고 행동도 잘 하셨습니다.” 하고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선생님, 오늘은 니고데모와 … 가믈리엘이 올 것입니다. 그것이 언짢으십니까?”
“내가 왜 그 때문에 괴롭겠습니까? 나는 그 사람의 지혜를 인정합니다.”
“그렇습니다. 그 사람은 선생님을 뵙고 싶어합니다. … 그러면서도 그의 생각을 변함없이 지키고 싶어합니다. 아시겠습니까? … 생각을 말입니다. 그 사람은 메시아를 벌써 보았다고 하면서 메시아가 나타나는 데 대해서 약속한 표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선생님이 ‘하느님의 사람’ 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는 ‘그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고, ‘하느님의 사람’ 이라고 말합니다. 율법박사의 번쇄(煩鎖)한 이론이지요? 그 때문에 기분이 상하지 않으십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번쇄(煩鎖)한 이론. 맞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들이 하는대로 내버려두어야 합니다. 가장 좋은 사람들은 가지만 생기게 하고 열매는 맺지 못하는 쓸 데 없는 가지들을 스스로 자기들에게 접목(接木)할 수가 있을 것이지만, 나중에는 내게로 올 것입니다.”
“그 사람이 틀림없이 직접 선생님께 그 말씀을 솔직하게 드리겠기에, 제가 그의 말을 선생님께 들려드리려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은 솔직하거든요.” 하고 요셉이 지적한다.
“그것은 흔치 않은 덕행이고, 내가 높이 평가하는 것입니다.” 하고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에게 이런 말도 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과 같이 베다니아의 라자로도 있습니다.’ 하고. 제가 이렇게 말한 것은 … 그렇지요. 라자로의 누이동생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믈리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여자도 옵니까? 안 와요? 그러면? 진흙은 그것과 접촉을 하지 않게 된 옷에서는 떨어집니다. 라자로는 그 진흙을 스스로 떨어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그의 옷으로 오염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하느님의 사람이 그 집에 드나든다면, 비록 내가 율법박사라 하더라도, 역시 그와 사귈 수가 있습니다.’ 하고요.”
“가믈리엘은 올바른 판단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골수까지 바리사이파이고 박사이지만 성실하고 올바른 사람입니다.”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니 기쁩니다. 선생님, 라자로가 여기 있습니다.”
라자로는 예수의 웃옷에 입맞춤하려고 몸을 구부린다. 그는 예수와 같이 있는 것이 기쁘다. 그러나 회식자들을 기다리면서 그가 흥분하여 있다는 것도 분명히 알 수 있다. 확실히 나는 가엾은 라자로가 이야기를 통하여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그의 고민에, 대부분의 사람이 모르고 별로 곰곰히 생각하지 않는 고민, 즉 ‘이 사람이 내게 무슨 말을 할까? 내게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업신여기는 말이나 눈길로 내게 모욕을 주려는가?’ 하고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저 무서운 가책이라는 정신적 고통을 덧붙이게 되리라는 것을 안다. 이것은 그들의 집안에 흠이 있는 사람 모두가 가지는 가책이다.
그들이 식탁들이 차려져 있는 호화로운 넓은 방에 들어와 있는 지금은 가믈리엘과 니고데모만을 기다린다. 다른 손님 네 사람은 벌써 왔기 때문이다. 그들을 펠릭스, 요한, 시몬, 고르넬리오라는 이름으로 소개하는 것이 들린다.
니고데모와 가믈리엘이 도착하자 하인들이 달려 가느라고 대단한 법석이 벌어진다. 가믈리엘은 눈같이 흰 모직으로 만든 호화로운 옷을 왕과 같은 위엄으로 입고 있어서 항상 위풍당당하다. 요셉은 급히 그를 맞으러 가는데, 그들 둘 사이에 오가는 인사에는 장엄한 경의가 표시된다. 예수께서도 인사를 하시고 위대한 율법박사 앞에 몸을 굽히시니, 그는 예수께 이런 인사말을 한다. “주께서 선생과 함께 계시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신다. “주의 평화가 항상 선생의 충실한 동반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라자로도 인사를 하고, 다른 사람들도 인사를 한다.
가믈리엘은 식탁 한 가운데에 예수와 요셉 사이에 자리잡는다. 예수 다음에는 라자로가 앉았고, 요셉 다음에는 니고데모가 자리하였다. 식사는 가믈리엘이 외는 관례의 기도와 더불어, 그리고 주요 인물인 예수와 가믈리엘과 요셉이 서로 인사를 나눈 다음에 시작되었다.
가믈리엘은 매우 진중하다. 그러나 잘난 체하지 않는다. 그는 말하는 것보다는 듣기를 더 많이 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가 예수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곰곰히 생각하고, 그의 검고 엄한 그윽한 눈으로 자주 예수를 바라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제가 다했지 때문에 입을 다무시면, 가믈리엘이 적당한 질문으로 이야기를 다시 활발하게 만든다.
라자로는 맨 처음에는 부끄러워하였으나, 나중에는 그도 대담해져서 말을 한다.
직접 예수를 빗대고 하는 말은 식사가 거의 끝나갈 때까지 나오지 않는다. 그 때에 펠릭스라는 사람과 라자로 사이에 토론이 시작되고, 그 다음에는 니고데모가 라자로를 거드느라고 토론에 끼어든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요한이라고 하는 사람이 기적에 관하여 어떤 개인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증거에 대하여 말하면서 토론에 가담한다. 예수께서는 말씀을 안하신다. 가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시지만 말씀은 안하신다. 가믈리엘도 말이 없다. 그는 와상(臥床) 위에 팔꿈치를 괴고 예수를 뚫어지게 응시한다. 그는 예수의 야윈 얼굴의 희고 반들반들한 피부에 새겨져 있는 초자연적인 말을 해독하고자 하는 것 같다. 그는 예수의 심금(心琴) 하나하나를 분석한 것 같다.
펠릭스는 요한의 성덕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하고, 만인이 인정하고 이론의 여지가 없는 이 성덕에서 잘 알려진 수 많은 기적을 행하신 나자렛의 예수께 유리하지 않은 결론을 끌어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예언과 요한의 생애에 기적이 없는 것을 보면, 기적이 성덕의 증거는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서 그의 생활과 같은 생활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에게는 연회도 없고, 우정의 표시도 없고, 개인적인 이해관계도 없습니다. 그에게는 율법의 존중을 위한 고통과 투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고독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제자들을 두기는 했어도 공동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가장 성실한 사람들에게서까지도 잘못을 찾아내고 모든 사람에게 공격을 퍼붓습니다. 그런데 … 어 그런데 말이지요. 여기 계신 나자렛의 선생님은 기적들을 행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인생이 제공하는 것을 좋아하신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우정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최고법원의 장로 중의 한 사람이 청하면 용서하고, 일반이 잘 알고 또 파문을 당해 절망에 빠진 죄인들에게까지도 하느님의 이름으로 너무 쉽게 용서와 사랑을 주십니다. 예수님, 그렇게 하시면 안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을 안하신다. “우리의 능하신 주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또 원하시는 곳으로 보내십니다. 모세에게는 기적을 주셨지만, 당신의 첫번째 대사제인 아론에게는 안주셨습니다. 그러면 이것으로 어떤 결론을 내리십니까? 모세가 아론보다 더 거룩합니까?”
“물론이지요.” 하고 펠릭스가 대답한다.
“그러면 더 거룩하신 분은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펠릭스는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그러나 그는 어떤 논거(論據)에 매달린다. “아론은 이미 대사제직을 받았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던 것입니다.”
“여보시오, 그렇지 않습니다.” 하고 니고데모가 대답한다. “대사제직은 하나의 임무였습니다. 거룩하기는 하지만, 임무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이스라엘의 대사제들이 항상 거룩하지도 않았고, 모든 대사제들이 거룩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거룩하지 않으면서도 역시 대사제이기는 했어요.”
“형장은 대사제가 은총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 하고 펠릭스가 소리를 지른다.
“펠릭스 … 그 도가니 속으로 들어가지 맙시다. 나나 당신이나, 가믈리엘, 요셉, 니고데모, 우리 모두가 많은 사실을 알고 있어요 …” 하고 요한이라고 하는 사람이 말한다.
“아니 뭐라구요! 아니 뭐라구요! 가믈리엘, 말 좀 하시오! …” 하고 펠릭스가 그 말에 분개한다.
“가믈리엘이 만일 올바른 사람이면, 당신이 듣고 싶어하지 않는 진실을 말할 것입니다.” 하고 펠릭스에 대하여 흥분한 세 사람이 말한다.
요셉은 냉정을 회복시키려고 애쓴다. 예수께서는 침묵을 지키시고, 토마와 열성당원과 요셉의 친구인 다른 시몬도 말이 없다. 가믈리엘은 그의 옷의 술 장식을 가지고 장난하는 체한다. 그러나 몰래 예수를 쳐다본다.
“가믈리엘, 말 좀 하세요.” 하고 펠릭스가 외친다.
“나는 이렇게 말하겠어요. 집안의 약점은 숨겨져야 한다고.” 하고 가믈리엘이 말한다.
“그건 대답이 아니예요.” 하고 펠릭스가 소리를 지른다. “선생은 대사제의 집에 흠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같군요!”
“그것은 진실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고 세 사람이 말한다.
가믈리엘이 몸을 일으켜 세우고 예수께로 향하며 말한다. “여기 가장 유식한 학자들을 능가하는 선생님이 계십니다. 그분이 이 문제에 대해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선생께서 하라고 하시니 복종하겠습니다. 내 말은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임무는 사람을 능가합니다. 그러나 어떤 임무를 부여받은 사람이 거룩한 생활로 하느님을 친구로 모시면 초인(超人)으로 그 임무를 다 할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너는 내가 준 명령에 의한 사제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제장의 흉패(胸牌)에 무엇이라고 씌어 있습니까? ‘교리와 진리’라고 씌어 있습니다. 교리에는 지혜를 알기 위한 끊임없는 묵상으로 도달하게 되고, 진리에는 선에 대한 절대적인 충실로 도달하게 됩니다. 악에 가담하는 사람은 거짓말에 떨어지고 진리를 잃습니다.”
“좋습니다! 선생은 위대한 율법박사 같은 대답을 하셨습니다. 나 가믈리엘이 하는 말입니다. 선생은 나를 능가하십니다.”
“그러면 왜 아론은 기적을 행하지 못하고 모세는 행했는지 이분이 설명해 주기 바랍니다.” 하고 펠릭스가 큰 소리로 외친다.
예수께서는 당장 대답하신다. “그것은 모세가 둔하고 별로 계발되지 않고 게다가 반대까지 하는 이스라엘 대중에게 자신을 인정하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뜻을 따르게 하도록 그들에 대하여 영향력을 가질 수 있게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영원한 미개인이고 영원한 어린아이입니다. 사람은 비범한 모든 것에 충격을 받습니다. 기적이 그런 것입니다. 기적은 잘 보이지 않게 된 눈동자 앞에 흔드는 빛과 같은 것이고, 막힌 귀 옆에서 울리는 소리와 같은 것입니다. 기적은 자는 사람을 깨우고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기적은 ‘하느님이 여기 계시다.’하고 말하게 합니다.”
“선생은 선생에게 유리하도록 하는 말이로군요.” 하고 펠릭스가 대꾸한다.
“내게 유리하게요? 그래 내가 기적을 행할 때에 내게 보탬이 될 것이 무엇입니까? 발 밑에 풀잎 하나를 넣는다고 해서 내가 더 커보일 수가 있습니까? 기적과 성덕의 관계도 이와 같습니다. 기적을 한번도 행하지 않은 성인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암흑의 능력을 써서 기적을 행하는 마술사들과 강신술사들도 있습니다. 즉 성인이 아니면서 초인적인 일들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악마 같은 사람입니다. 내가 다시는 기적을 행하지 않는다 해도 나 자신 그런 사람이 될 것입니다.”
“대단히 잘 하셨습니다! 예수님, 선생은 위대하십니다!” 하고 가믈리엘이 찬성한다.
“그럼 선생님 생각에는 그 ‘위대한 사람’이 누구란 말씀입니까?” 하고 펠릭스는 가믈리엘 쪽을 보며 계속한다.
“그 행동에 있어서나 말에 있어서나 내가 아는 한 가장 위대한 예언자란 말이요.” 하고 가믈리엘이 대답한다.
“가믈리엘, 이분이 메시아시라니까요. 지혜롭고 의로운 선생이 이분을 믿으세요.” 하고 요셉이 말한다.
“아니! 유다인을 지도하는 선생도, 우리의 영광이고 장로인 당신도 한 사람에 대한 우상숭배에 빠진단 말입니까? 그렇지만 누가 이분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명합니까? 나는 이분이 기적을 행하는 것을 보더라도 이분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왜 우리 앞에서 기적을 행하지 않는 것입니까? 이분을 칭찬하는 당신이 이분에게 말하시오. 이분을 옹호하는 선생님이 이분에게 말해보세요.” 하고 펠릭스가 가믈리엘과 요셉에게 말한다.
“나는 친구들을 재미나게 해 주십사고 선생님을 청하지는 않았소. 그리고 선생님은 내 손님이시라는 것을 기억하시오.” 하고 요셉이 무뚝뚝하게 대답한다.
펠릭스는 일어나서 화를 내며 예의에 어긋나게 가버린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예수께서 가믈리엘에게로 몸을 돌리시고 말씀하신다.
“그럼 선생님은 믿기 위하여 기적을 요구하지 않으십니까?”
“하느님의 사람의 기적으로도 내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해답이 없는 채로 남아 있는 이 세 가지 질문의 자극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무슨 질문들입니까?”
“메시아가 살아 계신가? 저 사람이었나? 이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가믈리엘, 이분이시라니까요!” 하고 요셉이 외친다. “선생은 이분이 성인이시라는 것,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시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십니까?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그렇다구요? 그러면 믿기 위해 무엇을 기다리십니까?”
가믈리엘은 요셉에게 대답하지 않고 예수께로 몸을 돌리고 말한다. “한번은 … 예수님, 내가 내 생각을 고집한다고 해도 기분 나빠하지 마십시오. … 위대한 현인 힐렐이 아직 살아 있을 때였는데, 한번은 메시아가 이스라엘에 오셨다고 내가 믿었고, 힐렐도 나와 마찬가지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끝날 줄을 모르던 겨울의 그 추운 날 나타난 하느님이신 태양의 큰 빛이었습니다. 과월절이었습니다. … 사람들은 얼어죽은 수확물들 때문에 떨고 있었습니다. … 나는 그 말을 들은 다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늘부터는 밭에 풍요함이 있을 것이다! 기다리던 분이 그의 첫번째 빛으로 나타나셨다.’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당신들 모두가 올해와 같이 열 석달 있었던 그 해에 얼마나 풍년이 들었는지 기억하지요. 그리고 그것이 아직도 계속 됩니다 ….”
“무슨 말을 들으셨습니까? 누가 그 말을 했습니까?”
“겨우 어린아이를 면한 사람이었습니다. … 그러나 그의 죄없고 매력있는 얼굴에는 하느님께서 빛나고 계셨습니다. … 내가 그것을 생각하고 그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지가 19년이 됩니다. … 그리고 지금도 지혜의 말을 하던 … 그 목소리를 다시 들으려고 애씁니다. … 그 사람이 지금 세상의 어느 부분에 가 있는지요? 나는 그이가 하느님이었다고 … 생각합니다. 사람을 놀라게 하지 않으시려고 어린이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하느님이라고. 하늘을 빨리 누비며 동서남북에 나타나는 번개불과 같이 그 사람, 하느님다운 그 사람이 자비로운 인자의 모습으로, 어린이의 목소리와 얼굴, 그리고 하느님의 생각을 가지고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사람들에게 ‘나요’ 하고 말할 것입니다. 내 생각은 이러합니다. … 그가 언제 이스라엘에 돌아올까요? … 언제? 그리고 나는 이스라엘이 그의 하느님다운 발을 위하여 제단이 될 때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내 마음은 이스라엘의 비열함을 보고 절대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고 탄식합니다. 오! 무자비한 대답입니다! 그러나 옳은 대답입니다! 반종교적인 가증스런 짓이 우리들에게 있는 한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어떻게 당신의 메시아의 몸을 통해 내려오실 수 있습니까?”
“거룩하신 하느님께서는 자비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실 수 있고 또 실제로 그렇게 하십니다.” 하고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가믈리엘은 생각에 잠긴 채 예수를 쳐다보더니 이렇게 묻는다. “선생의 정말 이름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는 위엄있게 일어나셔서 말씀하신다. “나는 존재하는 분입니다. 아버지의 생각과 말씀. 주의 메시아입니다.”
“선생이? … 나는 믿지 못하겠습니다. 선생의 성덕은 대단합니다. 그러나 내가 믿는 그 어린이는 그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표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 제 때가 오면 이 돌들이 떨 것입니다.’ 하고 말입니다. 나는 믿기 위해서 이 표를 기다립니다. 선생은 선생이 우리가 기다리는 그 분이라는 것을 내게 믿게 하기 위해 그 표를 내게 주실 수 있습니까?”
키가 큰 두 사람은 이제 엄숙하게 일어서 있는데, 한 사람은 아마포로 지은 넓은 옷을 입고, 또 한 사람은 수수한 짙은 붉은 색 모직 옷을 입고 있으며, 한 사람은 나이들었고 또 한 사람은 젊지만, 둘이 다 위압적이고 그윽한 눈으로 서로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가 예수께서는 구부려서 가슴에 얹고 계시던 팔을 내리시고 마치 맹세를 하시듯이 외치신다. “선생이 그 표를 보고자 하시는데, 그 표를 보시게 될 것입니다! 나는 오래 된 말을 되풀이하겠습니다. ‘주의 성전의 돌들이 내 마지막 말에 떨 것이다.’ 이스라엘의 박사이시며 의로운 사람이신 선생은 이 표를 기다리십시오. 그리고 용서와 구원을 얻기를 원하시면 믿으십시오. 이제부터 믿으실 수 있으면 지금부터 당장 지극히 행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은 그렇게 못하십니다. 올바른 약속에 대한 여러 세기에 걸친 잘못된 믿음과 커다란 자존심의 뭉치가 장벽 모양으로 선생 앞에서 진리와 믿음의 길을 막아 놓고 있습니다.”
“말씀 잘 하셨습니다. 그 표를 기다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주께서 선생과 함께 계시기를 바랍니다.”
“가믈리엘 선생, 안녕히 가십시오. 영원하신 성령께서 선생을 비추시고 인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두가 최고법원의 니고데모와 요한과 시몬과 같이 떠나는 가믈리엘에게 인사한다. 남아 있는 사람은 예수와 요셉, 라자로, 토마, 열성당원 시몬 그리고 고르넬리오이다.
“그 사람은 굴복하지 않는군요! … 그 사람이 선생님의 제자 중에 끼였으면 좋겠는데요. 선생님께 유리한 결정적인 힘이 될 터인데 … 저는 그것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하고 요셉이 말한다.
“그 때문에 슬퍼하지 마시오. 어떤 영향력도 벌써 준비되고 있는 심한 비바람에서 나를 구해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믈리엘은 내게 유리하게 의사를 표시하지는 않겠지만, 그리스도를 반대해서 의사를 표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모든 것이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