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래아의 농촌 전체가 포도 수확하는 즐거운 일에 종사하고 있다. 남자들은 높은 사다리에 올라가서 정자 모양으로 올린 포도나무와 그냥 올린 포도나무에서 포도를 딴다. 여자들은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붉고 금빛나는 포도송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압착공(壓搾工)들에게 가져간다. 노래와 웃음과 농담이 포도밭에서 포도밭으로, 정원에서 정원으로 옮아간다. 동시에 포도즙 냄새가 퍼지고, 굉장히 많은 벌들이 취한 듯이 윙윙거리며 아직 작은 포도송이가 많이 달려 있는 포도 햇가지 위에서 바구니까지, 또 포도알들이 뿌연 죽같이 된 포도즙에서 몰라보게 되어 사라지는 양조통에까지 빨리 날아 다니며 춤을 춘다. 짐승때 모양으로 포도즙으로 얼굴이 더러워진 어린이들은 풀밭으로, 마당으로, 길로 뛰어 다니며 제비 소리를 낸다.
예수께서는 호수에서 별로 떨어져 있지 않은 작은 마을로 향해 가신다. 그래도 북쪽으로 향한 두 산맥 사이에 일종의 함몰(陷沒)을 이루는 평야로 된 마을이다. 평야는 강(나는 요르단강으로 생각한다)이 건너질러 가기 때문에 관개가 잘 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큰길로 지나가시고 많은 사람이 “선생님! 선생님!” 하고 외치며 인사한다. 예수께서는 지나가시며 축복하신다.
마을에 도착하기 전에 호화로운 대저택이 있고, 그 입구에서 나이먹은 부부가 스승을 기다리고 있다. “들어오십시오. 일이 끝나게 되면 모두가 몰려 와서 선생님 말씀을 들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정말 큰 기쁨을 가져오십니다! 선생님에게서 오는 이 기쁨은 마치 수액처럼 포도나무 새 가지가 퍼져서 사람들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가 됩니다. 이분은 어머님이십니까?” 하고 집주인이 묻는다.
“내 어머니이십니다. 이제는 어머니도 내 제자의 무리에 들어 계시기 때문에 모시고 왔습니다. 받아들여진 순서로는 꼴찌이지만 충실한 순서로는 첫째이십니다. 어머니는 사도이십니다. 내가 나기 전부터 내게 설교를 하셨거든요. … 어머니, 오세요. 제가 전도를 처음 시작했을 때 어느 날 이 할머니가 어머니를 그리워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만큼 피로한 어머니의 아들에 대해서 친절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동정심 많은 할머니, 주님께서 당신 은총을 할머니께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메시아와 어머님을 모셨기 때문에 은총을 얻었습니다, 오십시오. 집안이 시원하고 햇빛이 부드러워졌습니다. 어머님은 쉬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피곤하시지요?”
“내게는 세상의 증오 외에는 다른 피로는 없어요. 그러나 그를 따르고 그의 말을 듣는 것이 내 아득한 어릴 때부터 내 소원이었어요.”
“메시아의 어머니가 되시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아! 아닙니다. 그러나 복음을 들은 사람 중 마지막으로라도 메시아의 말을 듣고 메시아를 섬길 수 있을 만큼 오래 살기를 바랐었지요. 꼴찌라도 충실하게, 그러믄요! 충실하게 말이지요!”
“어머님은 메시아의 말씀을 들으시고 그분의 시중을 들어 주십니다. 그러니 이 기쁨으로 어머님이 첫째이십니다. 저도 어미이고 얌전한 아들들을 두었습니다. 그애들이 말하는 것을 들을 때면 제 마음이 자랑스러워서 뜁니다. 그런데 어머님은 아드님의 말씀을 들으실 때 어떤 느낌을 가지십니까?”
“감미로운 황홀을 느낍니다. 저는 제 허무와 바로 아들 자신인 인자 안에 빠져 들어갔다가 역시 아들과 같이 몸을 일으킵니다. 그때에는 단순한 눈길로 영원한 진리를 봅니다. 그리고 그 영원한 진리가 제 영의 살과 피가 됩니다.”
“어머님의 마음을 찬미합니다! 어머님의 마음은 깨끗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이해하시는 것이지요. 저희들은 죄가 많기 때문에 더 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제 마음을 주고 싶습니다. 사랑이 그들에게 이해하게 하는 빛이 될 것이니까요. 정말이지 어떤 계획을 막론하고 쉽게 만드는 것은 사랑인데, 저는 어머니이고, 제게서는 사랑이 샘솟듯하니까요.”
두 여인은 아직 이야기를 계속한다. 할머니는 우리 주의 어머님 곁에 앉아 있는데, 주의 어머님은 아주 젊으시고, 여전히 매우 젊으시다. 그동안 예수께서는 주인 남자와 같이 양조통들 곁에서 말씀하시는데, 수많은 포도따기 일꾼들이 거기에 포도송이들을 붓고 또 붓고 한다. 사도들은 어떤 쟈스민 정자 그늘에 앉아서 포도와 빵을 맛있게 먹고 있다.
하루해가 황혼에 이르고 일이 천천히 끝난다. 농부들이 이제는 모두 으깨진 포도 냄새를 풍기는 시골식 큰 마당에 모여 있다. 이웃집 여기저기에서 다른 농부들이 온다.
예수께서는 밑에 농산물 부대들과 농기구들이 들어있는 홍예가 달린 건물측면(側面)으로 올라가는 층계를 올라가신다. 예수께서는 그 층계의 몇 단을 올라가시면서 환하게 웃으신다! 나는 그 미소를 저녁 미풍에 너울거리는 부드러운 머리카락 사이로 본다. 그리고 그렇게도 환한 이 미소의 이유를 알았으면 좋겠다. 오늘은 대단히 침울한 내 마음에 이 미소의 기쁨이 집주인이 말하던 포도주와 같이 들어와서 그 고통을 덜어준다.

오늘 예수님이 제 고통을 덜어주신 것이 이것이 첫번째가 아닙니다. 오늘 아침에 신부님은 제가 성체를 모실 때에 점점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정신적인 고통때문에 우는 것을 보셨지요. 예수님은 항상 그러시는 것처럼 신부님이 “보라. 천주의 어린 양” 하고 말씀하실 때에 제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나 신부님을 사랑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시고 제게 미소를 보이시는 데 그치지 않으시고, 침대 왼쪽에 계시던 자리를 떠나셔서 가볍게 굽이치는 것 같은 걸음으로 성큼성큼 앞으로 걸으셔서 제 오른쪽으로 오셔서 손을 뻗어 제가 느낄 수 있게 어루만져 주시면서 “울지 말아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러나 지금은 예수님의 미소가 제 마음에 평화가 넘치게 합니다.

예수께서는 돌아서시어 층계 꼭대기 맨 마지막 단에 앉으신다. 층계는 청중 중에서 가장 예우(禮遇)받은 사람들에게 특별석이 된다. 가장 예우받은 사람들이란 집주인 부부와 사도들과 마리아이다. 항상 겸손하신 마리아는 이 귀빈석에 올라가려고 하지 않으셨으나 주인 여자가 그리로 모셨던 것이다. 마리아는 바로 예수 아래 단에 앉으셨다. 그래서 금발 머리가 아들의 무릎 높이에 있고, 또 비스듬히 앉으시면 사랑하는 비둘기 같은 그 눈으로 아들의 얼굴을 쳐다볼 수 있다. 마리아의 부드러운 옆모습은 시골식 건물의 우중추한 벽 위에 마치 대리석 위에서처럼 환하게 두드러져 보인다.
좀 더 아래쪽에는 사도들과 집주인 부부가 있다. 마당에는 모든 농부가 모여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서 있고, 어떤 사람들은 땅바닥에 앉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양조통에 올라 앉아 있고, 어떤 사람들은 마당 네 귀퉁이에 있는 무화과나무에 올라가 있다.
예수께서는 한 손을 마리아 뒤에 있는 커다란 씨앗 부대에 넣으시면서 천천히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는 씨앗을 가지고 장난을 하시고 즐겁게 어루만져 주시는 것 같다. 그동안 오른 손으로는 조용한 손짓을 하신다.
“나는 ‘예수님, 오셔서 사람들이 일하는 것에 축복해 주십시오.’ 하는 말을 듣고서 왔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의 일에 축복합니다. 그것은 어떤 일이든지 성실하면 영원하신 주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했습니다. 즉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 데 필요한 첫째 조건은 모든 행동을 성실하게 하는 것이라고.
이제는 행동이 언제, 어떤 조건에서 성실한지를 함께 생각해봅시다. 정신에 영원하신 하느님을 모시고 행동을 할 때에 그 행동이 성실합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보고 계시다. 하느님께서 나를 지켜보고 계셔서 내 행동의 아주 작은 부분 하나도 하느님의 눈을 피하지 못한다.’ 하고 말하는 사람이 언젠가 죄를 지을 수 있습니까? 아니지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생각은 유익한 생각이고 어떤 인간적인 위협보다도 사람을 죄에서 멀어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원하신 하느님을 두려워만 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잘 들으시오. 여러분은 ‘네 주 하느님을 두려워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얼굴이나 또는 주의 천사가 의인인 그들의 영에 나타났을 때 성조들이 몸을 떨었고 예언자들이 몸을 떨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하느님의 분노의 때에는 초자연적인 존재의 발현은 사람들의 마음을 떨게 해야 했습니다. 비록 어린아이와 같이 깨끗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누가 능하신 분 앞에서 떨지 않겠습니까? 그 영원한 광채 앞에서 천사들이 천상의 알렐루야를 열심히 거듭 노래하며 흠숭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그 능하신 분 앞에서 말입니다. 바로 볼 수 없는 천사의 광채를 사람의 눈이 쳐다보면서도 눈동자와 정신이 타지 않도록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자비의 베일로 완화하십시다. 그러니 하느님을 뵙는 것은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하느님의 분노가 계속 되는 동안 그런 것입니다. 하느님의 분노 대신에 평화가 오고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내가 그것을 맹세하였으니, 내 약속을 지키겠다. 여기 내가 보내는 분이 있다. 그런데 그 분은 내가 아니면서도 나이다. 구원이 되기 위하여 육체를 취한 내 말씀이다.’하고 말씀하실 때에는 두려움에 뒤이어 사랑이 와야 합니다. 그리고 평화의 시대가 이 세상에 그리고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 왔으므로 하느님께 사랑만을 기쁘게 드려야 합니다. 봄바람이 포도나무 꽃가루를 퍼뜨릴 때에는 농부는 아직 염려를 해야 합니다. 일기불순과 벌레들을 통하여 실과에 대한 수많은 계략이 세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즐거운 포도 수확 때가 오면 염려는 일체 없어지고 수확의 확실성으로 몹시 기뻐합니다.
미리 예언자들에 의해 예고된 옛세 가문의 후예가 왔습니다. 그가 지금 여러분 가운데 있습니다. 그는 여러분에게 영원한 지혜의 포도즙을 가져다 주고 또 사람들을 위한 포도주가 되기 위하여는 따서 짜주기만을 요구하는 신기한 포도송이입니다. 그것을 마시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끝없는 기쁨을 주는 포도주입니다. 그러나 이 포도주가 그들의 손이 미치는 곳에 있는데도 그것을 물리치는 사람들은 불행합니다. 그리고 그 포도주를 마셔서 영양을 취한 다음에 그것을 물리치거나 그들 안에서 맘몬의 음식과 섞어 놓는 사람들은 훨씬 더 불행합니다.
이제는 내가 처음에 말했던 의견에 대한 말을 다시 하겠습니다. 영적인 일에나 인간적인 일에나 하느님의 축복을 받게 하는 첫째 힘은 올바른 의향입니다.
‘나는 율법을 지키지마는 사람들에게서 칭찬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 충실하기 위해서이다.’ 하고 말하는 사람은 성실한 사람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따르는데, 그것은 그분이 행하는 기적 때문이 아니고, 그분이 주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권고 때문이다.’하고 말하는 사람도 성실한 사람입니다. 또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성실한 사람입니다. ‘내가 일하는 것은 이익을 탐해서가 아니라, 노동을 하느님께서 성화의 방법으로 제정하셨기 때문이다. 노동은 도야(陶冶)하고 극기를 시키고 보호하고 향상시키는 힘이 있으니까 나는 이웃을 도울 수 있기 위하여 일한다. 나는 하느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을 빛내기 위하여 일한다. 아주 작은 낟알에서 이삭 뭉치를 나게 하시고, 포도씨에서 커다란 포도나무를 나게 하시고, 씨 하나에서 나무를 나게 하시며, 당신의 의지로써 없는 가운데에서 끌어내린 보잘 것 없고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인 나를 가지고 밀과 포도나무와 실과들을 영속시키고 땅에 사람을 번식시키는 데에 당신을 도와드리는 사람이 되게 하시는 하느님의 놀라운 일들을 말이다.’ 하고.
짐을 실어 나르는 가축들같이 일하면서 그들의 재산을 불린다는 신앙 외에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 곁에서 더 가진 것 없는 동료가 궁핍과 쇠약으로 죽어간들, 이 불쌍한 사람의 아들들이 굶어 죽어간들, 자기 재산을 늘리는 일만 생각하는 사람에게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이런 사람들보다 한층 더 무자비해서 자기들은 일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땀을 이용해서 재산을 모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탐욕으로 남의 고달픈 일에서 끌어낸 것을 낭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참말이지 이런 사람들에게는 성실한 노동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래도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보호하신다’고 말하지 마시오.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보호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에게 오늘은 승리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의 엄한 매를 맞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나 영원에서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나는 네 주 하느님이다. 나를 모든 것 위에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는 계명을 환기시키실 것입니다. 오! 그때에 이 말이 영원 안에 울려 퍼지면, 그 말들이 시나이산의 벼락보다도 더 무서울 것입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하는 말이 많습니다. 너무 많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이 말만을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시오.’ 이 말은 봄에 포도나무 그루에 그것을 비옥하게 하느라고 하는 일과 같은 것입니다.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이기주의와 나쁜 열정의 해로운 풀들을 땅에서 뽑아내는 제초기(除草機)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포도나무를 기생초(寄生草)와 분리시키고 신선한 물로 영양을 주기 위하여 포도나무 그루 둘레에 동그라미를 파는 괭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수액을 압축시켜 열매가 형성되기로 된 곳으로 보내기 위하여 쓸 데 없는 순을 쳐주는 작은 낫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초목을 받쳐주는 튼튼한 버팀막대에 초목을 꼭 잡아매는 끈과 같은 것이고, 끝으로 착한 뜻의 열매들을 익게 하여 그것을 영원한 생명의 열매가 되게 하는 태양과 같은 것입니다.
이제는 올 농사가 잘 되어 곡식도 많이 거두었고 포도 수확도 풍부하기 때문에 여러분은 기뻐합니다. 그러나 정말 잘 들어두시오. 여러분이 지금 느끼는 이 기쁨은 영원하신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실 때에 여러분이 느끼게 될 한없는 기쁨과 비교하면 모래 한 알 만도 못한 것입니다. 영원하신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 말입니다. ‘참포도나무에 접붙여진 열매를 많이 맺은 내 포도나무 가지들아 오너라. 너희들은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 모든 작업을 그것이 힘들 때에도 받아들였다. 그러니 이제는 나와 이웃에 대한 사랑의 단 즙을 많이 가진 너희들은 내게로 와서, 내 정원에서 영원히 활짝 피어나라.’
이 영원한 기쁨을 향하여 몸을 돌리시오. 이 선을 추구하도록 충실히 전념하시오. 이 선에 이르도록 여러분을 도와주시는 영원하신 분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미하시오. 당신의 말씀의 은총을 주신 데 대하여 그분을 찬미하고, 풍부한 수확의 은혜를 주신 데 대하여 그분을 찬미하시오. 그분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주를 사랑하시오. 그리고 두려워 마시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나 대신 백을 갚아 주십니다.’
예수께서는 말씀을 끝내셨을 터인데, 모두가 “축복해 주십시오. 축복해 주세요! 선생님의 축복을 우리에게 주십시오!”하고 외친다.
예수께서는 일어서시어 팔을 벌리고 우뢰 같은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주께서 여러분에게 강복하시고 여러분을 지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당신 얼굴을 여러분에게 보여주시고, 여러분을 불쌍히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얼굴이 여러분을 굽어보시고 당신의 평화를 여러분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의 이름이 여러분의 마음과 여러분의 집과 여러분의 밭에 있기를 바랍니다.”
군중이, 거기 모였던 작은 군중이 기쁨의 환성을 올리고 메시아를 환호한다. 그러나 그 후 열 살쯤 된 마비환자 소년을 안은 어머니를 지나가게 하느라고 길을 터준다. 층계 아래서 그 여자는 마치 그 소년을 예수께 바치려는 것처럼 내민다.
“제 하녀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하고 집주인이 설명한다. “그의 아들이 작년에 옥상정원에서 떨어져서 허리를 다쳤습니다. 저 애는 일생동안 누워 있어야 할 것입니다.”
“지난 몇 달 동안 저 어머니는 선생님께 희망을 걸었습니다.” 하고 주인여자가 덧붙인다.
“내게로 오라고 하세요.”
그러나 가엾은 그 여자는 어떻게나 흥분했는지 그 자신이 마비환자가 된 것 같다. 그 여자는 온 몸을 떨고 아들을 안고 높은 계단을 올라가면서 옷에 걸려 허우적거린다.
마리아가 동정하여 일어나셔서 그 여자를 맞으러 내려오시며 말씀하신다.
“두려워 말고 오세요. 내 아들이 당신을 사랑합니다. 아들을 내게 주세요. 그러면 올라가기가 더 쉬울 것입니다. 내 딸이여 오시오. 나도 어머니입니다.” 그러면서 그 여자에게서 아이를 받아 가지고, 그 불쌍한 짐을 팔에 안고 올라오시면서 소년에게 다정스럽게 미소를 지으신다.
마리아가 이제는 예수 앞에 계시다. 마리아는 무릎을 꿇고 말씀하신다. “아들아! 이 어미를 위해서!” 아무 다른 말씀도 없다.
예수께서도 “어떻게 해 주기를 바랍니까?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까?” 하는 늘 하시는 질문을 안하신다. 그렇게 안하시고 미소를 지으시고 “부인, 이리 오시오.” 하고 말씀하신다.
여인은 마리아 곁에까지 간다. 예수께서는 그의 머리에 한 손을 얹으시고 이렇게만 말씀하신다. “기뻐하시오.” 이 말씀을 채 끝내지도 않으셨는데,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늘어뜨리고 마리아의 팔에 무겁게 누워 있던 소년이 갑자기 일어나 앉더니, “엄마!” 하고 기쁘게 외치면서 뛰어가 엄마의 품에 파고든다.
기쁨의 함성이 황혼이 붉게 물들인 하늘을 꿰뚫으려는 것 같다. 아들을 가슴에 꼭 껴안은 여인은 무슨 말을 할지 몰라서 예수께 묻는다. “제가 행복하다는 걸 말씀드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예수께서는 그 여인을 또 어루만져 주시며 말씀하신다. “착하게 살고,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아들에게 이 사랑을 가르치면서 기르시오.”
그러나 여인은 아직 만족하지 않다. 그 여인의 소원은… 그의 소원은… 그러다가 마침내 이렇게 청한다. “제 어린 것에게 주님의 입맞춤과 어머니의 입맞춤을 주십시오.”
예수께서는 몸을 숙여 어린이에게 입맞춤하시고 마리아도 입맞춤하신다. 그리고 그 여인이 환호하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환성 가운데로 만족해하며 멀어져가는 동안 예수께서 주인여자에게 이렇게 설명하신다. “그 이상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어린이가 제 어머니 팔에 안겨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말씀을 하지 않으셨어도 어린이를 고쳐 주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비탄을 위로하실 수 있으면 기뻐하시는데, 저는 또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기를 원합니다.”
그러면서 예수와 마리아 사이에는 그것을 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눈길의 하나가 오간다. 그분들의 눈길은 그만큼 뜻이 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