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저녁에도 아직 올리브나무 재배지에 계시는데, 사도들과 같이 계신다. 그리고 다시 말씀하신다.
“또 하루가 지났구나. 이제 밤이 지나고 내일이 지나고, 그 다음 또 다른 내일이 지나고, 그리고 나면 과월절 만찬이 된다.”
“주님, 만찬을 어디에 차릴까요? 올해에는 여자들도 있습니다.” 하고 필립보가 여쭙는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마련을 못했는데, 시내는 만원, 초만원입니다. 올해에는 이스라엘 전체가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개종자들에 이르기까지 제식에 참례하려고 몰려온 것 같습니다” 하고 바르톨로메오가 말한다.
예수께서는 그를 바라보시고 성시(聖詩)라도 읊듯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바치는 내 희생제물을 향하여, 이스라엘의 산에서 바쳐지는 큰 희생제물을 향하여 모이고, 서둘러오고, 달려와서 내 몸을 먹고 내 피를 마셔라.”
“그렇지만 무슨 희생제물 말씁입니까? 무슨 희생 제물요? 선생님은 꼭 무슨 고정 정신착란이 들린 것 같으십니다. 선생님은 죽음 이야기만 하시니… 저희들은 슬퍼집니다” 하고 바르톨로메오가 격렬하게 말한다.
예수께서는 알패오의 야보고와 베드로에게로 몸을 숙이고 이들과 말을 하고 있는 시몬에게서 눈을 떼시고 다시 바르톨로메오를 보시고 말씀하신다.
“아니? 네가 그것을 내게 묻다니? 너는 일곱가지 빛(성신의 일곱 가지 은혜)을 받아 배울 수 있는 그 어린 아이들 중의 하나가 아니다. 너는 내가 그 따뜻한 봄날 아침에 필립보를 통해서 너를 부르기 전에 벌써 성서 공부를 했었다. 내 봄인 그날 아침에 말이다. 그런데 산에서 바쳐지는 희생제물, 모든 사람이 그것을 향해 와서 그것으로 영양을 취할 희생 제물이 어떤 것인지 묻는단 말이냐? 그리고 내가 죽음에 대해서 말하기 때문에 나를 고정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미치광이 같은 사람이라고 부른단 말이냐? 바르톨로메오야! 한번도 빛을 받아 본 적이 없는 너희 어둠 속에서 보초들의 외침같이 한 번, 두 번, 세 번 예고하는 외침을 보냈다.
그러나 너희들은 절대로 그것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어린 아이들처럼 너희는 죽음에 대한 말을 이미 잊어버리고, 자신 만만하고 또 내 말과 너희들의 말이 세상을 점점 더 설득시켜 그의 구속자를 따르게 되리라는 바라는 마음을 가득안고 기뻐하면서 너희 일을 다시 시작했다.
그렇지 않다. 이 세상이 내게 죄를 지은 다음에야 비로소, 그리고 이것은 주께서 당신 예언자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기억해라, 그 다음에야 비로소 백성이, 그리고 특히 이 백성이 아니라 아딤의 큰 백성이 ‘주께로 가자, 우리에게 상처를 주신 그분이 우리를 고쳐 주실 것이다’하고 한탄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속량된 사람들의 무리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틀 후, 주께서 우리가 거룩하신 분을 때리고 죽인 것과 같이 -그리고 우리가 그분을 때리고 죽이고 하는 것은 그들의 모독하는 말과 나쁜 행동으로 하느님의 아들, 구속자를 죽이되, 영광스럽게 된 영원한 그분에게가 아니라 그분에 의해서 속량된 자기들의 영혼을 죽이고, 따라서 그들의 영혼 안에서 그분을 죽이기 위하여 죽음을 가져오는 화살을 자기들의 영혼에게 쏨으로써 죽일 카인의 족속이 항상 있을 것이기 때문에다- 모든 무기를 가지고 우리를 때리고 죽였을 원수의 처분에 우리를 맡기셨을 영원의 두 때가 지난 후에, 그 두 때가 지난 후에야 비로소 세 째 날이 올 것이고, 우리가 이 세상의 그리스도 왕국에서 그분이 현존하시는 가운데 다시 살아나서 정신이 개선하는 가운데 그분의 현존 앞에서 살 것이다. 우리는 주님을 알 것이고, 영원히 완전한 수효의 수효에는 가장 어린아이도 가장 나이많은 노인도 결코 덧붙여질 수 없을 것이다- 하느님의 성인들의 지극히 복된 합창을 시작하게 할 일곱 번째 나팔을 가진 천사의 나팔 신호가 나기 전에 사탄이 사람과 벌일 싸움을 하느님께 대한 이 참된 지식 덕택으로 견딜 준비가 되어 있기 위하여 주님을 아는 일을 배우는 것이다.
합창단은 이렇게 노래할 것이다. <초라한 지상의 왕국은 끝났다. 세상은 그 모든 주민과 더불어 승리자이신 심판관 앞에서 사열을 받았다. 그리고 선택된 사람들은 이제 우리 주와 그분의 그리스도의 손안에 있고 그분은 영원히 우리의 왕이시다. 계시고, 계셨고, 계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께 찬미가 있으라, 그분이 당신의 큰 권능을 잡으셨고 당신 나라를 차지 하셨기 때문이다.>‘
오! 너희들 중에서 누가 벌써 다니엘의 말에 은은한 소리로 울려퍼지는 저 예언의 말, 지금은 지혜로운 이의 목소리로 노란 세상 사람들과 세상사람들보다도 더 놀란 너희들 앞에 울러퍼지는 그 예언의 말을 상기시킬수 있겠느냐?
대왕의 내림 – 비록 잘못 살아 잘못 죽은 다음 그의 상처들을 갖고 일곱 곱절의 악덕 때문에, 끝없는 이단(異端)들 때문에 무덤 속에 갇혀서 신음하는 이 세상은 여전히 계속되겠지만 그의 마지막 사도들과 더불어 제 모든 오류들로 인하여 문둥이처럼 추악하게 죽는 그의 기관 내부에서 단말마(斷末魔)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이 정신은 여전히 게속되겠지만 – 대왕이 내림(大王의來臨)은 여명이 돌아오는 것처럼 준비를 갖추고 봄비와 가을비인 듯 우리에게 오고야 말리라.‘
새벽은 밤이 앞서가면서 준비한다. 그것은 밤이다. 지금의 밤이다. 그런데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무슨 말을 해야 하느냐? 그리고 유다야, 네게 무슨 말을 해야 하겠느냐?… 시몬, 바르톨로메오, 유다, 내 사촌들, 성서를 배운 너희들은 이 말을 분간하겠느냐? 이것은 미친 정신을 가진 사람의 말이 아니라 지혜와 지식을 가진 어떤 사람에게서 오는 것이다. 어떤 왕이 자기 손으로 안에 넣어 둔 다음이라 그가 찾는 주어진 보석이 어디 있는지 알기 때문에 자신있게 그의 금고를 여는 것과 같이 내가 예언자들을 인용하는 것이다. 나는 말씀이다. 여러 세기에 걸쳐 나는 인간의 입술을 통해 말했고, 여러 세기에 걸쳐 사람의 입술을 통해 말하겠다. 그러나 말해진 것으로 초자연적인 것은 모두 내 말이다. 사람은 아무리 유식하고 아무리 거룩하더라도 수리와 같은 영혼을 가지고 눈먼 세상의 한계 밖으로 올라가서 영원한 신비를 파악하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미래는 하느님의 생각안에서만 ‘현재’ 이다. ‘우리의 뜻’으로 들어올려지지 않은 사람으로서 예언과 계시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말이 거짓이라고 논박하시고 그들을 치신다. 그것은 오직 한 분만이 ‘나는 있다’고 말씀하실 수 있고, ‘나는 본다’고 말씀하실 수 있으며, ‘나는 안다’고 말씀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헤아리지 못하고 판단하지 못하고, 따지지 않고 머리를 숙이며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면서 받아들여야 하는 ‘뜻’이 ‘오너라, 그리고 올라와서 듣고 보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여라’ 하고 말하면, 그 때에는 영혼이 그의 하느님의 영원한 현재에 잠기고, 영혼은 ‘목소리’가 되라고 주께로부터 부름을 받고서 보고는 떨고, 보고는 울고, 보고는 몹시 기뻐한다. 그때에는 영혼이 ‘말’이 되라고 주께로부터 부름을 받아 듣고 탈혼이나 임종의 고통의 땀이 흐르며 영원하신 하느님의 몹시 무서운 말씀을 말한다. 하느님의 말씀은 어느 것이든 무섭기 때문이다. 그것은 움직일 수 없는 판결을 내리시고 준엄한 정의를 가지신 분에게서 오는 말씀이기 때문이며 격노와 유죄판결이 아닌 사랑과 축복을 받을 만한 사람이 별로 없는 인간들에게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주어졌는데도 업신여김 당하는 이 말이 그것을 듣고서 물리치는 자들에게는 몹시 무서운 죄와 벌의 원인이 되지 않겠느냐? 분명히 죄와 벌의 원인이 된다.
에브라임아, 유다야, 세상아, 내가 해 주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으며 무엇을 또 너희들에게 해 주어야 한단 말이냐? 내 땅아, 나는 너를 사랑하기 위해 내 땅에 왔다. 그런데 내 말은 네가 그것을 몹시 싫어했기 때문에 네게는 죽이는 칼이 되었다.
오! 옳은 일을 한다고 믿으면서 네 구세주를 죽이는 세상아, 너는 하도 악마화돼서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제물이 어떤 것인지, 더러워진 영혼으로 바치고 먹은 짐승의 제물이 아니라 개인적인 죄의 희생이 어떤 것인지조차 깨닫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3년 동안에 내가 네게 무슨 말을 했느냐? 내가 무엇을 설교했느냐?
나는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을 그분의 법과 자연을 통하여 알아라’ 하고.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율법과 하느님에 대한 생사가 걸린 지식을 펴면서 햇볕에 내놓은 초벌구이 질그릇같이 바싹 말랐다. 그런데 너는 오직 한 가지 필요한 일인 참 하느님께 네 나쁜 뜻을 제물로 바리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은 채 제물을 바치는 일만 계속했다!
죄짓는 도성아, 맹세를 어기는 백성아! 이제는 영원하신 하느님께서 네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 그리고 심판때에 너에게는 로마와 아테네에 대해서는 쓰지 않을 채찍을 쓸 것이다. 로마와 아테네는 얼이 빠져서 말과 지식을 모른다. 그러나 기르는 사람이 잘 돌보지 않아 영원한 어린 아이로 능력만 가진 짐승들처럼 되어 온 그들은 그리스도에 어울리는 수많은 아이를 내게 낳아 줄 나의 오직 하나인 숭고한 정배인 내 교회의 거룩한 품으로 건너와서 어른이 되고 능력있는 사람이 되어 내게 궁궐들과 무리들을, 성전들과 성인들을 내게 바쳐 별들로 채우듯이 하늘을 가득 채우게 될 것이다 – 영원하신 하느님은 네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이제 내 마음에 들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너희의 손으로 바치는 선물은 이제 받아들이지 않겠다. 그 선물이 내게는 배설물과 똑같으니 그것을 너희 얼굴에 도로 던질 것이며 거기에 달라붙어 있을 것이다.
순전히 외부적인 너희들의 성전(盛典)이 싫증난다. 나는 아론의 겨레와 맺은 언약을 폐지하고 레위의 자손들에게 그것을 넘겨 준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나의 레위이고 그와 더불어 영원히 생명과 평화의 언약을 맺었으며, 그는 희생에까지 영원히 내게 충실하겠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을 가졌고 그분의 모욕당한 이로서의 분노 때문에, 모욕을 당한 내 이름의 소리만 들어도 떨었다. 진리의 율법이 그의 입에 있었고, 그의 입술에는 죄악이 없었으며, 나와 함께 평화와 공평무사(公平無私) 속에서 걸었고 그것으로써 많은 사람을 죄악에서 건졌다. 이제는 오직 하나인 시온의 제단에서가 아니라, 왜냐하면 너희는 시온의 제단에서 제물을 바칠 자격이 없으니까, 어디에서나 깨끗하고 때묻지 않고 주의 마음에 드는 희생이 내 이름으로 제헌되고 바쳐질 때가 되었다.”
“이 영원한 말씀을 너희는 분간할 수 있느냐?”
“주님, 그것들을 분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매를 맞은 것처럼 기가 죽었다는 것을 믿어 주십시오. 운명을 딴데로 향하게 할 수는 없습니까?”
“바르톨로메오야, 너느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르느냐?”
“다른 이름은 모르겠습니다….”
“속죄, 이것이 이름이다. 주께 죄를 지었으면 반드시 그것을 속죄해야 한다. 그런데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창조된 첫째 사람에게서 모욕을 당하셨다. 그때부터 죄는 점점 커지기만 했다. 그리고 대홍수의 범람도 소돔과 고모라에 내린 불비도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데 소용되지 못했다. 물도 불도 말이다. 세상은 사탄이 왕처럼 자유롭게 돌아 다니는 끝없는 소돔이다. 그래서 땅을 씻기 위하여는 어떤 삼위일체가 와야 한다. 사랑의 불, 고통의 물, 희생의 피가 그것이다. 땅아, 이것이 나의 선물이다. 나는 이것을 네게 주려고 왔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것의 성취를 피하겠느냐? 이제 과월절이니, 피할 수가 없다.”
“왜 라자로의 집으로 가지 않으십니까? 그것은 피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집에 계시면 사람들이 선생님께 손을 대지 못할 것입니다.”
“시몬이 말을 잘 합니다. 주님, 제발 그렇게 하십시오!” 하고 가리옷의 유다가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며 부르짖는다.
그의 행동에 요한의 눈물의 바다가 뒤따르고, 비록 그들의 고통을 더 낫게 이겨내게는 하지만 사촌들과 야보고와 안드레아도 운다.
“네가 나를 ‘주님’으로 믿느냐? 나를 보아라!” 그러시면서 예수께서는 가리옷 사람의 고민하는 얼굴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신다. 왜냐하면 그는 실제로 고민하고 있으며 가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어쩌면 그의 영혼이 사탄과 벌이는 마지막 싸움이겠는데, 그는 승리를 거둘 줄 모른다.
예수께서는 그를 관찰하시며 과학자가 어떤 병자의 병세의 급변을 관찰 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싸움을 지켜 보신다. 그러다가 갑자기 일어나시는데, 어떻게나 세차게 일어 나셨던지 그분의 무릎에 의지하고 있던 유다가 떼밀려서 방바닥에 주저 앉게 되었다. 예수께서도 깜짝놀란 얼굴로 뒤로 물러나시며 말씀하신다.
“라자로도 잡히게 하려고? 그러면 두 배의 먹이가 되고 따라서 두 배의 기쁨이 되리라, 안된다. 라자로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위해, 개선하시는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을 지켜야 한다. 한 사람만이 생명 밖으로 던져지고 되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나는 돌아 올 것이다. 그러나 그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라자로는 남아 있다. 많은 것을 아는 너는 이것도 안다. 그러나 독수리와 독수리 새끼를 그들의 둥지에서 어렵지 않게 잡음으로써 곱절의 이득을 얻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독수리가 모든 사람을 살펴보며, 새끼에 대한 사랑으로 둥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 혼자 붙잡혀 새끼를 구할 것임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나는 증오로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기를 계속한다. 가라, 나는 혼자 남아 기도하겠다. 그 어느때에도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간처럼 내 영혼을 하늘로 들어올릴 필요를 느낀 적이 결코 없었다.“
“제가 선생님과 같이 남아 있게 가만 두세요” 하고 요한이 애원한다.
“안된다. 너희들은 모두 휴식이 필요하다. 가거라.”
“혼자 남아 계시겠습니까? 혹 그들이 선생님을 해하면 어떡하게요? 또 선생님이 몸도 편치 않으신 것 같은데요… 저는 남아 있겠습니다” 하고 베드로가 말한다.
“너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가거라. 내가 한 시간 동안 사람들을 잊게 해다오! 내가 내 아버지의 천사들과 연락을 유지하게 가만두어 다오! 어머니께서 눈물과 기도로 지쳐계시는데, 나의 절망적인 고통을 지워 드릴 수 없으니 천사들이 대신 할 것이다. 가거라.”
“저희에게 평화를 주지 않으십니까?” 하고 사촌인 유다가 말한다.
“네 말이 맞았다. 주의 평화가 그분의 눈에 치욕이 아닌 사람들 위에 내리기를 바란다. 잘들 가거라.” 그러시면서 예수께서는 비탈을 올라가시며 올리브나무들 가운데로 들어가신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정말 성서에 있어! 그리고 선생님이 당신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면 그 말이 왜 있는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아듣게 돼” 하고 바르톨로메오가 중얼거린다.
“나는 첫해 가을에 그 말을 베드로에게 했네…” 하고 시몬이 말한다.
“맞아… 하지만… 안돼! 내가 살아 있는 한 나는 선생님이 잡히시게 버려두지는 않겠어 내일…” 하고 베드로가 말한다.
“내일 어떻게 할텐가?” 하고 가리옷 사람이 묻는다.
“어떻게 하겠느냐구? 나 혼자 말하고 있는거야. 지금은 음모의 때야. 내 생각을 공기한테조차도 털어놓지 않겠네. 그런데 자네가 그렇게도 여러 번 말한 것처럼 힘있는 자네가 왜 예수님을 위한 보호책을 찾지 않나?”
“그렇게 할걸세, 베드로. 그렇게 할거야. 내가 때로 자리를 뜨는걸 이상히 여기지들 말게. 나는 선생님을 위해 일하고 있는거야. 그렇지만 선생님께 이 말씀을 드리지는 말아.”
“염려말게, 그리고 축복을 받게. 가끔 자네를 의심했지만, 용서해 주게. 꼭 그래야 할 때에는 자네가 우리보다 낫다는 것을 알겠네. 자네는 행동을 하는데… 나는 빈 말밖에 할 줄 모르거든” 하고 베드로가 진정으로 겸손 하게 말한다.
유다는 칭찬이 마음에 드는 것처럼 웃는다. 그들은 게쎄마니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는 행길 쪽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