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들은 겉옷을 입으면서 여쭙는다. “주님, 저희들이 어디로 갑니까?”
  그들의 말투는 수난 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스스럼 없지가 않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다면, 그들은 영혼으로 무릎을 꿇고 말한다고 하겠다. 부활하신 주님 앞에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항상 약간 구부리고 있는 그들의 몸 자세보다도, 그들이 예수를 만질 때에 보이는 조심성보다도, 예수께서 그들을 만지시거나, 어루만지시거나, 껴안으시거나, 개별적으로 말씀을 하실 때 보이는 그들의 몸이 떨리는 기쁨보다도, 그들의 온 모습, 묘사할 수는 없지만 눈에 띄는 그 무엇이 그러하며, 그들의 인간성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정신이 전에 선생님과 가졌던 관계에서 그랬던 것같이 다시 될 수가 없다는 것을 드러내보이며, 그들의 모든 인간 행위를 새로운 감정으로 합치시킨다는 것을 한층 더 드러내 보인다.
  전에는 예수께서 “선생님”이셨다. 신앙으로는 하느님으로 믿지마는, 그들의 오관(五官)으로는 항상 “사람” 이신 선생님이셨다. 그런데 지금 “주님”이시고, 하느님이시다. 그것을 믿는 데는 신앙 고백이 필요없다. 명증(明證)이 이 필요를 없애버렸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시다. 주님께서 “내 오른편에 와서 앉으라”고 말씀하신 주님이시고, 당신의 말씀과 부활의 기적으로 그것을 선언 하셨다. 아버지와 같은 하느님이시다. 그리고 그들이 그분에게 아주 많은 것을 받고 겁이 나서 버렸던 하느님이시다.
  사도들은 항상 참으로 믿는 사람이 섬광 가운데에서 빛나는 빵 형상의 성체나 매일 미사 때에 신부가 들어올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쳐다보는 것과 같은 경건한 눈길로 예수를 쳐다 본다. 전보다도 한층 더 아름다운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자 하는 그들의 눈길에는 감히 보지 못하는, 사람의 표정, 감히 눈길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의 표정도 있다. …사랑은 그들이 사랑하는 분을 똑바로 쳐다보도록 부추기지만, 두려움은 마치 예수의 광채가 눈이 부신 것과 같이 이내 눈꺼풀을 내리고 고개를 숙이게 한다.
  과연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여전히 그분이시지만, 동시에 그분이 아니시기도 하다. 자세히 쳐다보면 달라지셨다. 얼굴모습, 눈과 머리빛깔, 키, 손, 발은 같지만, 역시 달라지셨다. 진짜 육체여서, 열린 창문으로 방으로 들어오는 지는 해의 마지막 빛도 받으신다. 예수의 뒤에는 그분의 큰 키의 그림자가 비낀다. 그런데도 달라지셨다. 예수께서는 거만해지지도 않으시고 냉담하지도 않으시다. 그런데도 달라지셨다.
  지칠 줄 모르시는 선생님의 겸손하고 조심성있는 모습, 때로는 하도 조심성있어서 무엇에 압도되신 것같이 보이기까지 하던 모습만이 계속되던 거기에 새로운 위엄이 끊임없이 퍼진다. 마지막 시기의 야윈 모습은 사라졌고, 그분을 나이들어 보이게 하던 육체적, 정신적 피로의 그 흔적도 없어졌고, 말은 하지 않으시면서도 “왜 나를 배척하느냐? 나를 받아들여다오…” 하고 청하던 그 괴로워하며 애원하던 눈길도 없어졌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더 크고 더 튼튼해 보이시며, 일체의 중압에서 벗어나고, 자신만만하고 의기양양하고 위엄있고 숭고하신 것 같다. 강력한 기적을 행하셔서 강력하게 되시거나, 당신의 권위를 발휘하시던 두드러진 순간에도 부활하셔서 영광스럽게 되신 지금과 같지는 않으셨다. 빛을 내뿜지는 않으신다. 그러지는 않으신다. (다볼산에서의)거룩한 변모 때나 부활하신 후 처음 여러 번 나타나실 때와 같이 빛을 내뿜지는 않으신다. 그런데도 빛을 발하는 것같이 보이신다. 그 육체는 참으로 영광스럽게 된 육체들의 아름다움을 가진 하느님의 육체이다. 그래서 끌어당기기도 하며 동시에 두려운 마음을 일으키기도 한다.
  아마 눈에 몹시 잘 띄는 손과 발의 그 상처들이 이 깊은 존경의 태도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기도 하다. 잘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은 비록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단히 상냥하게 대하시고 옛날 분위기를 다시 만들려고 애쓰시지만 사도들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전에는 그렇게도 끈질기고 떠들고 했었는데, 지금은 말을 별로 하지 않고, 예수께서 대답을 하지 않으시면 고집하지도 않는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미소를 보내시거나 그들 중의 어떤 사람에게 미소를 보내시면, 그들은 얼굴빛이 변하며, 그분의 미소에 감히 미소로 응하지 못한다. 예수께서 지금 하시는 것처럼 당신의 흰 옷을 –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뒤로는 항상 흰 사틴보다도 더 눈부시게 흰 옷을 입고 계시다 – 집으려고 손을 내미시는데도, 전에 하던 것 모양으로 예수를 도와드리는 영광과 기쁨을 누리려고 달려와서 서로 경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들이 예수의 옷과 몸에 손을 대는 것을 두려워한 것 같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지금 하시는 것처럼 “요한아, 와서 네 선생을 도와주려므나. 이 상처들은 진짜 상처들이다.…그래서 상처를 입은 내 손이 전처럼 날쌔지 못하다…”하고 말씀하셔야한다.
  요한은 순종하여 예수를 도와 넓은 겉옷을 입혀 드리는데, 상처 흔적이 빨갛게 나타나는 손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어떻게나 신중하고 주의깊은 몸짓으로  입혀드리는지 꼭 대사제에게 옷을 입혀 드리는 것과 같다. 그러나 더할 수 없이 조심을 했는데도 예수의 왼손에 부딪혔다. 그리고는 마치 자기 자신이 충격을 받은 것같이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그 손에서 또 피가 흐르지 않을까 걱정을 하면서 손등을 뚫어지게 들여다 본다. 그 끔찍한 상처는 몹시도 선명하다!
  예수께서는 요한의 머리에 한 손을 얹으시며 말씀하신다. “너는 십자가에서 내려진 나를 받았을 때는 용기가 더 많았었다. 그리고 그 때에는 아직도 피가 몹시 흐르고 있어서 새로운 애인의 머리를 적시는 새로운 밤이슬같이 네 머리를 붉게 물들일 정도였다. 너는 나를 포도그루에서 포도송이를 따듯이 거두었었다. …왜 우느냐? 나는 내 순교자의 이슬을 네게 주었다. 너는 내 머리 위에 네 동정의 이슬을 뿌렸다. 그러나 네가 그때는 울어도 되었지만… 지금은 안된다. 그리고 너 시몬 베드로는 왜 우느냐? 너는 내 손에 부딪히지 않았고, 죽은 나를 보지 못했다….”
  “아! 제 하느님! 저는 그 때문에 우는 것입니다! 제 죄 때문에요.”
  “요나의 아들 시몬아, 나는 너를 용서하였다.”
  “그렇지만 저는 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정말입니다. 아무 것도 제 눈물을 그치게는 못합니다. 주님의 용서도.”
  “그러나 내 영광은 그렇게 한다.”
  “주님은 영광스러우시며, 저는 죄인입니다.”
  “내 어부 노릇을 한 뒤에는 너도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베드로야, 너는 풍성하고 기적적인 위대한 고기잡이를 할 것이다. 그런 다음 내가 네게 ‘영원한 잔치에 오너라’라고 말하겠다. 그러면 너는 울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런데 너희들 모두가 눈에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구나. 그리고 저기 있는 내 형 야보고는 모든 재산을 잃은 것처럼 그 구석에 엎드려 있구나. 왜?”
  “제가 바라던 것은… 그러면 주님은 아직도 상처를 느끼십니까? 아직도 느끼세요? 저는 주님께는 모든 고통이 없어지고, 모든 자국이 지워지리라고 바랐었는데요. …저희들 죄인을 위해서도 그 상처들은!… 그것들을 보는 것이 정말 괴롭습니다!!”
  “그렇습니다. 왜 그 상처 흔적들을 없애지 않으셨습니까? 라자로에게는 자국이 남지 않았는데요. …그것은… 그 상처들은 꾸지람과 같습니다! 그 상처들은 무서운 소리로 외칩니다! 그 상처들은 시나이산의 벼락보다도 더 번쩍거리고 더 무섭습니다.” 하고 바르톨로메오가 말한다.
  “주님이 그 상처들을 받으실 때 저희들은 도망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상처들은 저희들의 비열한 행동을 꾸짖고 있습니다…”하고 필립보가 말한다.
  “그리고 그 상처들을 보면 볼수록 저희들의 양심이 저희들의 비열함과 어리석음과 의심많음을 더 꾸짖습니다.” 하고 토마가 말한다.
  “주님은 세상을 용서하시기 위해서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셨으니, 저희들의 평화와 죄인인 이 백성의 평화를 위해 세상에 대한 그 비난을 없애십시오. 주님!” 하고 안드레아가 빈다.
  “이 상처들은 세상의 구원이다. 여기에 구원이 있는 것이다. 미워하는 세상이 이 상처들을 냈지만, 사랑은 이것을 가지고 약과 빛을 만들었다. 이 상처들에 의해서 죄가 못박혔다. 이 상처들이 사람들의 모든 죄를 매달고 받쳐서 사랑의 불이 참다운 제단 위에서 그 죄들을 불사르게 하였다.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모세에게 계약의 궤와 향을 피우는 제단을 지시하실 때에, 그것들을 쳐들어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고리로 꿰뚫으라고 명령하지 않으셨느냐? 나도 꿰뚫렸다. 나는 계약의 궤와 제단보다 더 높은 존재이다. 계약의 궤와 제단보다 휠씬 더 높은 존재이다. 나는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내 사랑의 향을 피웠고, 세상의 모든 죄악의 무거운 짐을 짊어졌다. 그러므로 세상은 그 때문에 하느님께 얼마나 큰 고통을 드렸는지를 기억하기 위하여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느님이 어떻게 세상을 사랑하셨는지를 기억하기 위하여, 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기억하기 위하여 구원은 오직 한 분에게 있다는 것을, 즉 그들이 꿰뚫은 그분에게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하여, 만일 세상이 내 상처가 붉게 물드는 것을 보지 않으면, 정말이지, 그의 죄 때문에 하느님이 희생되셨다는 것을 이내 잊어 버릴 것이고, 내가 정말로 가장 잔인한 고문을 받으며 죽었다는 것을 잊을 것이며, 그들의 상처를 위한 방향제(芳香劑)가 어떤 것인지를 잊어 버릴 것이다. 여기에 그 방향제가 있다. 와서 입맞춤하여라. 입맞춤 하나하나가 너희들에게는 정화와 은총의 증거가 된다. 너희들에게 정말 분명히 말한다마는, 세상은 하늘이 그에게 쏟아주는 것을 다 써버리기 때문에 평화와 은총이 결코 충분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세상의 폐허를 하늘과 그 보물로 메워야 한다. 나는 하늘이다. 하늘 전체가 내 안에 있고, 하늘의 보물이 내 벌려진 상처에서 흘러나온다.
  예수께서는 사도들이 입맞춤하도록 양손을 내미신다. 그리고 예수를 더 아프게 해드릴까봐 겁이 나서 그 입술들을 그 상처에 갖다 대지를 못하기 때문에 당신이 그 상처입은 손을 갈망하면서도 겁이 많은 그들의 입에 갖다대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뻣뻣한 느낌은 주지만 고통은 주지 않는다. 고통은 다른 것이다!…”
  “어떤 것입니까, 주님?” 하고 알패오의 야보고가 묻는다.
  “너무나 많은 사람에게는 내 죽음이 무익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자. 오히려 먼저들 가거라. 우리는 게쎄마니로 간다. …뭐라구? 겁이나느냐?”
  “저희들 때문이 아닙니다. 주님. 예루살렘의 유력자들이 주님을 이전보다도 더 미워하기 때문에 그럽니다.”
  “염려 말아라. 하느님께서 너희들을 보호하시니까 너희들 때문에도 염려하지말고, 내게는 인간의 속박이 끝났으니까 나 때문에도 염려하지 말아라. 나는 어머니께 갔다가 너희들 있는 데로 가겠다. 우리는 최근에 있었던 죄와 과거의 미움의 소름끼치는 많은 것을 지워버려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죄가 한것과는 반대의 것으로, 사랑을 가지고 하자. …알겠느냐? 너희들이 입맞춤을 할 때마다 생살에 박히는 못으로 인한 고통과 그 결과가 없어지고 가라앉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제 할 일은 소름끼치는 흔적을 지워버리고, 죄가 더럽힌 곳을 거룩하게 할 것이니 그 때는 그것들을 보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지 않게 될 것이다….”
  “저희들이 성전에도 갑니까?” 염려와 더 나아가서는 심한 공포의 빛이 모든 얼굴에 역력히 드러난다.
  “아니다. 내가 가면 성전이 성화될 것이다. 그런데 성전은 성화가 될 수 없다. 그렇게 될 수가 있었는데,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않았다. 이제 성전을 위하여는 구속이 없어졌다. 그것은 빨리 썩어가는 시체와 같다. 그것을 죽은 자들에게 맡겨두자. 그자들이 그것을 파묻는 일마저 하라고 하자. 정말이지 사자들과 독수리들이 무덤과 시체를 산산조각내서, 생명을 원치 않고 죽은 거인의 뼈대조차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층계를 올라가셔서 나가신다. 다른 사람들도 말없이 예수께서 하신 대로 한다. 그러나 안마당 노릇을 하는 복도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에는 예수께서 그 곳에 계시지 않았다. 집은 조용하고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모든 문이 닫혀 있다.
  요한은 최후의 만찬실 앞쪽에 있는 문을 가리키며 말한다. “마리아 어머님이 저기 계셔. 늘 거기 계시는데 끊임없이 황홀한 상태에 계셔. 어머니의 얼굴은 말할 수 없는 빛으로 빛나고 있어. 그것은 그분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이야. 어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어. ‘요한아, 얼마나 큰 행복이 하느님의 모든 나라에 퍼졌는지 생각해 보아라.’ 나는 어머니께 이렇게 여쭈었지. ‘무슨 나라를 말입니까?’ 나는 어머니께서 죽음까지도 이기신 당신 아들의 나라에 대해서 어떤 굉장한 계시를 알고 계신 줄로 생각했어. 그랬더니 이렇게 대답하셨어. ‘천국과 연옥과 고성소(古聖所)에 말이다. 연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용서가 주어지고, 의인들과 용서를 받은 사람들이 하늘로 올라가고, 천국에는 지극히 행복한 사람들이 가득차고,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통해 찬미를 받으신다. 우리 조상들과 부모들이 천국에 환희 중에 있다. 그리고 또 세상이라는 이 나라에도 큰 행복이 있다. 세상에 지금은 표가 빛나고 있다. 사탄을 이기고 원죄와 본죄(本罪)를 없애는 샘이 파졌다. 착한 뜻을 가진 사람들에게 평화가 있을 뿐이라, 구속이 되어 하느님의 아들의 지위로 다시 선택된다. 나는 무리들이, 그렇지, 수많은 무리들이 그 샘으로 내려가, 새 사람이 되어 결혼식 예복과 왕의 옷을 입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오기 위해서 샘에 몸을 담그는 것을 본다. 영혼들이 은총과 더불어, 그리고 아버지의 아들과 예수의 형제가 되는 왕권과 더불어 하는 결혼이다’하고 말이야.”
  그들은 말을 하면서 거리로 나와 멀어져 가는데 저녁 어두움이 내리 깔리기 시작한다.
  거리에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다. 특히 이 시간에는 사람들이 저녁식사를 하려고 식탁 둘레에 모여 있으니 더 그렇다. 예루살렘은 과월절을 지내려는 사람들이 강물처럼 가득 찼다가, 올해에는 그렇게도 비극적이었던 그 명절이 지나자 모두 떠나버려서 여느 때보다 한층 더 빈 것 같다. 토마가 그것을 알아차리고 지적한다.
  “그렇게 됐어” 하고 열성당원이 말한다. “외부사람들은 겁을 집어먹고 금요일이 지나자 부랴부랴 떠났고, 그날의 큰 공포를 그래도 견디어냈던 사람들도 두 번째 지진, 즉 틀림없이 주님이 무덤에서 나오실 때 일어난 지진에는 도망쳐 버렸어. 그리고 이방인이 아니던 사람들도 도망쳤대. 이건 확실한 출처에서 들어서 아는건데, 어린 양고기도 마저 먹지 못한 사람이 많아서, 그 사람들은 보충 과월절을 지내려 다시 와야 할 거라네. 그리고 이곳 주인들까지도 도망을 치거나 떠나거나 했는데, 어떤 사람은 안식일 전날의 지진 통에 죽은 그들의 가족을 치우느라고 그랬고, 다른 사람들은 하느님의 분노가 두려워서 그랬다는 거야. 가르침이 엄했던 거야.”
  “그건 잘된 일이야. 모든 죄인의 머리에 벼락과 돌이 떨어져야 해!” 하고 바르톨로메오가 투덜거린다.
  “그런 말하지 말아! 그런 말하지 말라구!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도 우리가 더 하늘의 벌을 받아 마땅해. 우리도 죄인이야.…이곳에서의 지난 일이 생각나나?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열흘? 열흘밤… 그렇잖고 10년, 아니면 열 시간? 내 죄가 먼 옛날 같기도 하고 엊그제 일인 것 같기도 하고, 그날 저녁, 그 시간들도 말이야. …도무지 모르겠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이었어! 우리는 그렇게도 자신만만하고 호전적이고 영웅적이었는데 말이야! 그 다음엔? 그 다음엔 어떻게 됐어? 아!…” 그러면서 베드로는 손으로 이마를 치며 작은 광장을 가리킨다. 그들은 벌써 그 곳에 가 있었던 것이다. “여기야. 난 여기서 벌써 겁이 났었어!”
  “그만해 둬! 시몬, 그만해 두라구! 주님은 자넬 용서해 주셨어. 그리고 주님보다 먼저 어머님이 용서해 주셨구. 그만해 둬! 자넨 자신을 괴롭히고 있어.” 하고 요한이 말한다.
  “아이고! 그랬으면 얼마나 좋아! 그리고 자넨 항상 내 힘을 돋우어 주게. 항상! 자넨 인도할 줄을 알기 때문에 주님이 당신 어머니를 자네에게 맡기신거야. 그건 옳은 일이야. 그렇지만 비겁하고 거짓말쟁이인 벌레 같은 나는 어머님보다도 더 인도를 받을 필요가 있어. 나는 눈에 꺼풀이 씌워져서 보질 못하니까 말이야….”
  “자네가 이렇게 하면 정말 눈꺼풀이 자네 눈에 씌워지고, 정말 자네 눈동자를 태우게 되고, 그러면 주님도 자네 눈을 고쳐 주러 오시지 않으실 거야…” 하고 요한은 베드로를 위로하려고 껴안으면서 또 말한다.
  “내게는 영혼으로 잘 보기만 하면 충분할 거야 그리고… 눈은 중요하지 않아!”
  “그렇지만 많은 사람에게는 눈이 중요해! 이젠 병자들을 어떻게 할 거야? 형도 어제 그 여자 봤지. 얼마나 낙망하고 있었어!” 하고 안드레아가 말한다.
  “그런데…” 그들은 서로 똑바로 바라본다. 그러다가 모두 함께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우리 중에는 그 여자에게 안수를 해줄 자격이 있다고 느낀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 그들의 행동으로 인해 생긴 겸손이 그들을 괴롭힌다.
  그러나 토마가 요한에게 말한다. “그렇지만 자넨 그렇게 할 수 있었어. 자넨 도망치지 않았고, 모른다고 하지 않았고, 의심많지도 않았으니까….”
  “나도 죄가 있어. 그리고 내 죄도 자네들 죄와 마찬가지로 사랑을 거스른 죄야. 나는 여호수아의 집 홍예 곁에서 엘키아가 어머니를 욕했기 때문에 그 사람의 멱살을 잡고 목을 조를 뻔했어. 그리고 가리옷의 유다를 미워하고 저주했어.” 하고 요한이 말한다.
  “입 닥쳐! 그 이름은 말하지 말아. 그건 마귀의 이름이야. 난 그 사람이 아직 지옥에 가지 않고, 여기 우리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우리를 또 죄짓게 하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야.” 하고 베드로가 정말 무서워하면서 말한다.
  “오! 그 사람은 분명히 지옥에 있어! 그렇지만 여기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힘은 이젠 끝났어. 그 사람은 천사가 될 수 있는 것을 모두 가지고 있었는데 마귀가 되었단 말이야. 그런데 예수님이 마귀를 이기셨거든.” 하고 안드레아가 말한다.
  “좋아… 하지만 그 사람 이름은 부르지 않는 것이 더 좋아. 난 겁이 나거든. 이젠 내가 얼마나 약한지 안단 말이야. 그리고 요한, 자네에 관해서는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지 말아. 모든 사람이 선생님을 배반한 사람을 저주할 거야!”
  “그렇게 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야” 하고 가리옷 사람에 대하여 항상 이 생각을 가졌던 타대오가 말한다.
  “아니야. 어머니는 그에게는 하느님의 심판으로 충분하다고, 그리고 우리에게는 배반자가 되지 않은 데 대한 감사의 생각만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 그리고 당신 아드님이 고문당하시는 것을 보신 어머님이 그 사람을 저주하지 않으시는데,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하겠어? 잊어버리세….”
  “그건 어리석은 짓이야!” 하고 그의 형 야보고가 외친다.
  “그렇지만 이것이 유다의 죄들에 대한 선생님의 말씀이야…” 이렇게 말하고 요한은 입을 다물고 한숨을 쉰다.
  “뭐라구? 다른 죄들이 또 있니? 넌 알지…말해라!”
  “난 잊어버리도록 힘쓰겠다고 약속했고, 그렇게 하려고 힘쓰고 있어. …엘키아에 대해서는… 내가 너무 지나쳤어. …그렇지만 그날은 우리 각자가 그 곁에 천사와 마귀를 가지고 있었는데, 우리는 늘 빛의 천사의 말만을 듣지는 않았어….”
  열성당원은 이렇게 말한다. “자넨 나훔이 불구가 됐고, 그의 아들이 벽인지 산의 한 면인지에 깔려 죽었다는 걸 아나? 그래 선생님이 돌아가시던 날이었어. 그 아들의 시체는 나중에야 발견됐지. 오! 휠씬 뒤에 벌써 썩은 냄새가 날 때에 발견됐어. 시장에 가던 어떤 사람에게 발견됐어 그리고 나훔은 저와 같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었는데, 그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영문을 모르겠어. 돌을 맞은 것인지 매를 맞은 것인지. 내가 아는 것은 그 사람이 부숴진 것 같고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거야. 그 사람은 짐승같이 침을 꽤 흘리고 신음을 해. 그리고 어제는 그의 집에 갔던 그의 선생의 멱살을 성한 한 손으로 잡고는 이렇게 소리소리 질렀어 ‘당신 때문이었소, 당신때문이었소!’ 하고 하인들이 달려 오지 않았더라면…”
  “그걸 어떻게 아나, 시몬?” 하고 동료들이 열성당원에게 묻는다.
  “어제 요셉을 보았어.” 하고 시몬은 간결하게 대답한다.
  “나는 선생님이 늦으시는 것 같은데. 불안한 걸”하고 알패오의 야보고가 말한다.
  “오던 길로 도로 가세…” 하고 마태오가 제안한다.
  “그러잖으면 여기 작은 다리에서 멈추세.” 하고 바르톨로메오가 말한다.
  그들은 걸음을 멈춘다. 그러나 제베대오의 야보고와 또 다른 야보고와 안드레아와 토마는 뒤돌아오면서 무슨 생각에 잠긴 듯이 땅을 내려다보고 집들을 바라다 본다. 안드레아는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흰 석회 위에 검붉은 반점이 분명히 나타나는 어떤 집의 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한다. “이건 피야! 선생님의 피인가 보지? 여기서 벌써 피를 흘리셨나? 아이고! 말들 좀 해줘!”
  “우리 중의 아무도 주님을 따라가지 않았는데 우리더러 무슨 말을 하라는거야?” 하고 알패오의 야보고가 낙담이 되어 말한다.
  “그렇지만 내 형하고 요한은 따라갔는데….”
  “즉시는 아니었어. 즉시는 아니었단 말이야. 요한은 그들이 말리키아의 집에서부터 선생님을 따라갔다고 내게 말했어. 여기에는 아무도 없었어. 우리 중의 아무도…” 하고 제베대오의 야보고가 말한다.
  그들은 최면술에 걸린 듯이 땅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흰 벽 위의 거무스름한 넓은 반점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토마가 지적을 한다. “비가 왔는데도 지워지지 않았고, 요새 우박이 그렇게 세게 왔는데도 이 반점이 벗어지지 않았어. …이것이 선생님의 피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이 벽에서 이걸 벗겨버리겠어….”
  “이 집 사람들에게 물어보세. 아마 그 사람들은 알겠지…” 하고 그들에게로 온 마태오가 권한다.
  “안 돼. 그들이 우리를 선생님의 사도로 알아 볼 지도 몰라. 그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원수일 수도 있어. 그리고…” 하고 토마가 대답한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도 용기없는 사람들이란 말이야…” 하고 알패오의 야보고가 깊은 한 숨을 지으며 말한다.
  모두가 가만히 그 담에 가까이 들여다본다. …한 여자가 지나간다. 신선한 물이 넘치는 물병들을 가지고 샘에서 늦게 돌아오는 여자이다. 그 여자는 사도들을 눈 여겨 보더니 물병들을 내려놓고 그들에게 말을 건다.
  “당신들은 이 얼룩을 들여다보는 거지요? 당신들은 선생님의 제자들이지요? 당신들은 얼굴이 야위었어도 그리고… 주님이 붙잡혀서 죽음을 당하려고 끌려 가실 때 당신들이 주님을 따라가는 것을 보지는 못했어도 당신들의 주님의 제자들인 것 같군요. 하긴 내게 자신을 못 가지게 하는 점이 있기는 해요. 유리한 때에 선생님을 따라다니고, 선생님의 제자로 있기를 열망하고, 자기들처럼 선생님을 따르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릴 각오를 하지 않는 사람들을 엄한 눈으로 보는 제자라면, 좋지 못한 시간에도 선생님을 따라야 하니까 말입니다. 적어도 제자라면 그렇게 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당신들을 보지 못했어요. 그래요. 당신들을 보지 못했어요. 그리고 내가 당신을 보지 못했다는 것은, 시돈의 아내인 나는 이스라엘 사람들인 그분의 제자들이 따라가지 않은 그분을 따라갔다는 표가 됩니다.
  나는 선생님에게서 은혜를 받았어요. 당신들은… 아마 그분에게서 은혜를 받은 일이 없었던 모양이지요? 그건 참 이상하군요. 그분은 이방인들과 사마리아인들과 죄인들과 도둑들에게까지도 은혜를 널리 베푸셨고, 그들에게 육체의 생명을 주실 수 없을 때에는 영원한 생명을 주셨거든요. 선생님이 아마 당신들을 사랑하지 않으셨나보지요? 그렇다면 당신들은 독사나 더러운 하이에나보다도 더 나빴다는 표입니다. 사실은 그분이 독사와 재칼까지도 사랑하셨는데, 그것들이 독사나 재칼이래서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것들이기 때문에 사랑하셨다고 생각하지만 말입니다. 이것은 피입니다. 예, 피예요. 큰 바닷가에 살던 여자의 피입니다. 그 곳은 전에 펠레시테 사람들이 살던 곳이고, 그 주민들은 아직도 히브리 사람들에게서 좀 업신여김을 당하고 있지요. 그런데도 그 여자는 남편에게 맞아 죽을 때까지 선생님을 옹호할 줄을 알았습니다. 남편이 그 여자를 어떻게나 무지막지하게 때렸는지 머리가 깨져서 뇌와 피가 그의 집 벽에 튀었어요. 집에서는 지금 고아들이 울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은혜를 입었었어요. 선생님이 부끄러운 병에 걸린 그 여자의 남편을 고쳐 주셨거든요. 그리고 그 여자는 이 때문에 선생님을 사랑했습니다. 그 여자는 선생님을 위해 죽기까지 선생님을 사랑했어요. 그 여자는 당신들이 말하는 것처럼 선생님보다 먼저 아브라함의 품으로 갔습니다. 안나리야도 선생님보다 먼저 갔습니다. 그런데 안나리야도 죽지 않았으면 아마 그렇게 죽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어머니도 좀 더 윗쪽에서 그의 피로 길을 씻었습니다. 선생님을 변호하려고 난폭한 그의 아들에게 갈라진 배의 피로 말입니다. 어떤 늙은 부인은 자기 아들의 눈을 다시 보게 하셨던 선생님이 상처를 입고 매를 맞으시는 것을 보고 괴로워서 죽었습니다. 어떤 노인 거지는 선생님을 옹호하려고 몸을 일으켰기 때문에 당신들의 주님의 머리를 때리려고 던진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당신들은 그 분이 주님이라고 믿었으니까 말입니다. 그렇지요?  왕의 기사들은 왕 주위에서 죽습니다. 그런데도 당신들 중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았어요. 당신들은 선생님을 때리는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어요. 아! 아니지요! 한 사람은 죽었어요. 자살했지요. 그렇지만 선생님을 옹호하기 위해서, 고통으로 죽은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은 우선 선생님을 배반했고, 그 다음에는 입맞춤으로 일러 주었고, 그 다음에는 자살했어요. 그 사람은 달리 할 일이 없었지요. 그 사람은 그 이상 더 타락할 수 없었어요. 베엘제불처럼 그의 악이 완전했으니까요. 세상 사람들이 그를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하려고 돌로 쳐죽였을 것입니다. 오! 나는 고통 받으시는 선생님을 사람들이 때리는 것을 막으려다가 죽은 동정심 많은 그 여자와 선생님이 그런 상태에 계신 것을 보고 고통으로 죽은 늙은 안나와 늙은 거지와 사무엘의 어머니도, 죽은 동정녀도, 그리고 어린 양들과 멧비둘기들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보는 것이 괴롭기 때문에 성전에 올라가지 못하는 나도 그 사람을 돌로 쳐 죽이는 용기를 가졌을 것이라고, 또 그 사람이 우리 돌을 맞고 죽은 것을 보아도 몸을 떨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도 그걸 알고서 세상 사람들에게 그를 죽이는 수고를 덜어 주었고, 죄없는 분의 원수를 갚기 위해 우리가 살인자가 되는 것을 면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 여자는 사도들을 업신여기는 눈초리로 바라본다. 그의 업신여김은 그 여자가 말하는 데 따라서 점점 더 분명해졌다. 그 여자의 크고 검은 눈은 사도들의 무리를 바라다 보는 동안 맹금류의 눈같이 냉혹하게 되고, 사도들은 반항할 줄도 모르고 반항할 수도 없다. …그 여자는 입 안에서 “서자들 같으니라구!” 하는 마지막 말을 조롱조로 한다. 그리고는 스승을 버린 제자들에게 자기의 멸시를 쏟아놓은 것을 만족하게 생각하며 물병을 다시 들고 간다.
  사도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들은 기진맥진하여 고개를 숙이고 팔을 힘없이 내리뜨리고 서 있다. …그들은 진실에 압도된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비겁의 결과를 곰곰히 생각하고… 입을 다물고 있다. …감히 서로 바라보지를 못한다. 요한과 열성당원조차도, 이 죄를 짓지 않은 무죄한 두 사람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다. 아마 그들이 이렇게 자존심이 헤쳐진 것을 보는 것이 괴로워서 그렇기도 하고, 또 여자의 솔직한 말로 생긴 상처를 처매 줄 수가 없기 때문에도 그럴 것이다. …길이 이제는 어둑어둑하다. 달은 그믐날이 가까워오기 때문에 늦게 뜬다. 그래서 황혼이 빨리 다가와 어두워진다. 완전히 고요하다. 소리도 없고, 사람의 목소리도 없고, 적요한 가운데서 키드론 개울의 물흐르는 소리만이 퍼진다. 그래서 예수의 목소리가 울릴 때, 그들은 마치 그 목소리가 무서운 소리이기나 한 것처럼 펄쩍 뛰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곳에서 무엇을 하느냐? 나는 올리브나무 사이에서 너희들을 기다렸는데… 생명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는데, 너희들은 왜 죽은 것들을 보고 서 있느냐? 나하고 같이 가자.” 하고 말씀하실 때 그분의 목소리는 지극히 상냥하시다. 예수께서는 게쎄마니에서 그들에게로 오시는 것 같다. 예수께서는 그들 곁에 발을 멈추신다.
  예수께서는 사도들이 이직 겁에 질린 눈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얼룩을 들여다보시며 말씀하신다. “그 여자는 벌써 평화 중에 있으며 고통을 잊었다. 그의 아들들에 대해서 활동을 하지 않고 있겠느냐? 아니다 이중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하느님께 자기 아들들을 거룩하게 해 주시기만을 청하고 있으므로 그들을 거룩하게 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길을 떠나신다. 사도들은 예수를 말없이 따라 간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돌아서시며 말씀하신다. “왜 너희들 마음속으로 ‘그런데 그 여자는 왜 남편의 회개는 청하지 않을까? 만일 그 여자가 남편을 미워하면 성녀가 아닌데…’ 하고 생각하느냐? 그 여자는 남편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 여자는 남편이 자기를 죽일 때 벌써 용서했다. 그러나 빛의 나라에 들어간 영혼인 그 여자는 지혜와 정의를 가지고 본다. 그래서 그 남편에게는 회개와 용서가 없다는 것을 본다. 그래서 그 여자는 그의 기도를 그 이익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로 돌린다. 이것은 내 피가 아니다. 내 피가 아니야. 그렇지만 나는 이 길에서도 피를 굉장히 많이 흘렸다! …그러나 원수들의 발자국이 그 피를 흩뜨려서 먼지와 오물과 섞어 놓았고, 비가와서 그 피가 엷게 되고 먼지 쌓인 곳으로 떠내려갔다. 그러나 보이는 피가 아직 많이 있다. … 하도 피가 많이 흘러서 발자국과 물이 쉽게 지울 수 없겠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이 가자. 그러면 너희들을 위하여 흘린 내 피를 보게 될 것이다.
  “어디로? 어디로 가시려는 건가? 선생님이 우신 곳으로 가시려는 것인가? 총독관저로 가시려는 것인가?” 하고 그들은 서로 묻는다.
  그런데 요한이 이렇게 말한다. “글라우디아가 분개하고, 남편 곁에 남아 있는 것이 겁이 나기도 해서 안식일이 지난 지 이틀 후에 다시 떠났다는군. 글라우디아는 자기의 책임을 남편의 책임과 떼어놓은 거야. 그 여자는 선생님을 메시아로 보내신 지극히 높으신 분께 박해를 당하는 것보다 사람들에게 박해를 당하는 것이 더 나으니까 의인을 괴롭히지 말라고 남편에게 말했기 때문이야. 또 쁠라우띠나도 없고 리디아도 없어. 이 여자들은 글라우디아를 따라 가이사리아로 갔고, 또 발레리아는 요안나와 같이 베테르로 갔어. 그 여자들이 있었으면 우리가 들어 갈 수 있었을 건데. 그러나 지금은… 모르겠어. …론지노도 없어. 글라우디아가 론지노에게 자기를 수행하라고 했으니까….”
  “풀이 피에 젖어 있는 걸 자네가 봤다는 곳으로 가시려는 것일 거야….”
  앞서 가시던 예수께서 돌아서시며 말씀하신다. “골고타에 간다. 거기에는 내 피가 하도 많아서 먼지가 철광석같이 보일 지경이다. 그리고 너희들보다 먼저 그곳에 간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 곳은 부정한 데요!” 하고 바르톨로메오가 외친다.
예수께서는 동정의 미소를 띠시며 대답하신다. “그 끔찍한 죄를 지은 뒤에는 예루살렘의 어떤 장소나 다 부정하다. 그런데도 너희들은 이 곳에 남아 있으면서도 군중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불편 말고 다른 불편은 느끼지 않고 있다….”
  “도둑들이 여전히 그 곳에 죽은 채로 있는데요….”
  “내가 그 곳에서 죽었다. 그래서 그 곳을 영원히 거룩하게 했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그 곳보다 더 거룩한 장소가 없을 것이고, 그 장소는 온 세상의 그리고 모든 시대의 무리들을 끌어들여 그 먼지에 입맞춤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조소와 복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부정을 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너희들보다 먼저 그 곳에 간 사람이 있다. 그렇지만 너희들보다 먼저 간 사람은 그것을 두려워할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주님, 그게누굽니까?”하고 요한이 묻는다. 여쭈어보라고 베드로가 팔꿈치로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던 것이다.
  “라자로의 마리아다! 마리아는 내가 과월절 전에 그의 집에 들아갈 때에 내 발에 밟힌 꽃들을 주워서 그의 기쁨의 기념품으로  친구들에게 준 것과 같이, 이제는 갈바리아산에 올라가서, 내 피로 굳어진 땅을 손으로 파서, 그 판 흙을 가지고 내려와서 내 어머니 무릎에 갖다놓을 줄을 안 것이다. 마리아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리아는 ‘죄녀’ 로 또 ‘제자’로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해골산의 그 부식토(腐植土)를 무릎에 받아들이신 그 분도 부정을 탄다고 생각하지 않으셨다. 내 피가 모든 것을 해제했고, 내 피가 떨어진 땅은 거룩하다. 내일 오정 전에 골고타에 올라가거라. 내가 너희들과 합류하마. …그러나 누가 내 피를 보고싶으면 여기 있다.” 예수께서는 작은 다리의 나간을 가리키신다. “여기서 사람들이 내 입을 때려서 입에서 피가 났다. …내 입은 거룩한 말과 사랑의 말밖에 하지 않았었다. 그러면 사람들이 왜 내 입을 때렸고, 입맞춤으로 내 입을 치료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느냐?…”
  그들은 게쎄마니로 들어간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우선 올리브 동산 출입구를 막는 자물쇠를 열으셔야 한다. 새 자물쇠이다. 끝이 뾰족한 말뚝으로 된 높고 튼튼한 울타리인데, 아주 든든한 새 자물쇠로 잠겨 있다. 예수께서는 열쇠를 가지고 계신데, 열쇠가 하도 새 것이라 강철처럼 반짝인다. 지금은 밤으로 완전히 어두웠기 때문에 볼 수 있게 하느라고 필립보가 불을 붙인 나뭇가지의 빛으로 예수께서 자물쇠로 여신다.
  “전에는 없었는데… 왜 만들었지?…” 그들은 지금은 게쎄마니를 격리시키는 울타리를 보면서 서로 수근 거린다. “분명히 라자로는 여기 아무도 오는 것을 원치 않은 거야. 저기 봐, 돌들하고 벽돌들하고 피가 있어 이제는 재목도 없는 걸 보니, 다음에는 담을 쌓을 모양이지….”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이리들 오너라. 죽은 물건은 상관하지 말라는데도 그러는구나. …자, 너희들은 여기에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내가 에워싸여서 붙잡혔고, 너희 둘은 이쪽으로 해서 도망쳤다. …그 때에 이 울타리가 있었더라면 … 그 때문에 너희들은 빨리 도망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따라오기를 열망하던 라자로가 어떻게 너희들을 도망치리라고 생각할 수 있었겠느냐? 내가 너희들을 괴롭히느냐? 나는 먼저 고통을 당했다. 그리고 나는 이 고통을 없애버리고자 한다. 베드로야, 내게 입맞춤해라….”
  “안 됩니다. 주님! 안 돼요! 여기서 같은 시간에 유다가 한 몸짓을 하다니, 그건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안 돼요!”
  “내게 입맞춤해라. 나는 유다가 진실성을 가지지 않고 한 몸짓을 너희들이 진실성을 가지고 해 주기를 요구한다. 그 다음에는 너희들이 행복할 것이다. 우리가 더 행복할 것이다. 너희들과 내가. 베드로야, 와서 내게 입맞춤해라.”
  베드로는 예수께 입맞춤하는 데 그치지 않고, 눈물로 주님의 뺨을 적시고 얼굴을 감싸 쥐고 물러나 땅바닥에 주저앉아 운다. 다른 사도들도 한 사람씩 같은 자리에 입맞춤한다. 더하고 덜한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얼굴이 눈물로 젖어 있다….
  “그럼 이제는 모두 함께 가자. 나는 그날 저녁 너희들을 내 몸으로, 그것도 몇 시간 동안 든든하게 내놓고 너희를 내게서 떼어놓았다. 그러나 너희들은 이내 넘어졌다. 너희들이 얼마나  약했는지를 기억하고, 하느님의 도움이 없이는 한 시간도 정의에 머무를 수 없으리라는 것을 기억하여라. 보아라. 여기서 나는 자기들이 가장 굳세다고 믿던 사람들, 내 술잔으로 포도주를 마시기를 청하고, 죽는 한이 있어도 나를 버리지 않겠다고 공언할 정도로 굳세다고 믿던 사람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기도하고 있으라고 이르고 그들을 떠나갔다. …그들을 떠났는데, 그들은 잠을 잤다. 이것을 기억해 두어라. 그리고 예수가 남겨놓고 떠난 사람은 기도로써 예수와 접촉을 유지하고 있지 않으면 잠들고 붙잡힐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라.
  사실, 내가 만일 깨우지 않았더라면 너희들은 자는 동안에 맞아 죽어서 인성의 둔한 몸으로 하느님의 심판 대전에 출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리 오너라. …자! 필립보야, 나뭇가지를 내려라. 보아라! 내 피를 보고자 하는 사람은 들여다 보아라. 나는 여기서 극도의 불안 속에서, 죽어가는 사람과 같이 피땀을 흘렸다. …들여다 보아라. …피땀을 얼마나 흘렸던지 그로 인해 흙이 단단해질 정도였고, 풀줄기와 꽃부리 가운데에 엉기어서 말라진 핏덩이를 빗물도 녹이지 못했기 때문에 풀이 아직도 피로 빨갛게 되어 있다. 그렇다! 그리고 여기에 내가 기댔었고, 여기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내 뜻을 굳세게 하기 위하여 주의 천사가 떠돌던 곳이다. 너희들이 항상 하느님의 뜻을 행하기를 원하면, 사람이 지탱할 수 없는 곳에는  하느님께서 당신 천사와 함께 오셔서 기진맥진한 용사를 부축해 주신다는 것을 기억해 두어라. 너희가 몹시 불안한 때에도, 너희들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끈질기게 원하기만 하면 비겁함이나 신앙포기에 빠질까봐 걱정하지 말아라. 나희들이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면 하느님께서 너희들을 용맹한 거인으로 만드실 것이다. 이것을 기억해 두어라! 단단히 기억해 두어라! 전에도 너희들에게 말했지만, 광야에서 유혹을 당한 다음 천사들의 부축을 받았다. 이제는 여기서도 극도의 유혹을 당한 후 한 천사의 부축을 받았다는 것을 알아라.
  그리고 너희들에 대해서도, 또 내게 충실한 모든 사람에게도 그렇게 될 것이다. 진정으로 너희들에게 말한다마는, 내가 받은 도움을 너희들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벌써 사랑 가득한 정의로 너희들에게 그 도움을 주시려고 하지 않으신다면, 나 자신이  그 도움을 너희들에게 얻어 줄 것이다. 다만 고통은 아무래도 내 고통만은 못할 것이다. …앉아라. 달이 동쪽에서 떠오르고 있다. 곧 환해 질 것이다. 너희들이 이직도 지극히 또 순전히 인간들이기는 하지만, 오늘밤에도 너희들이 자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 너희들 안에 전에는 너희들이 갖지 않았던 활동하는 요소가 들어갔기 때문에 자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가책이다. 그것이 하나의 고통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선으로나 악으로나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는 데 소용된다. 가리옷의 유다에게는, 그가 하느님에게서 멀리 떠났었기 때문에 그 가책이 실망과 영벌의 판결을 초래 하였다. 하느님 곁을 결코 떠나지 않은 너희들에게는 – 너희들에게 그렇게 할 뜻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또 너희들이 하는 일이 완전히 정신을 차리고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단언하는 것인데 – 그 가책은 너희들을 지혜와 정의로 인도해 줄 뉘우침을 갖게 할 것이다. 너희들은 그대로 있어라. 나는 활 한 바탕 거리가 되는 저기 물러가서 새벽을 기다리겠다.”
  “아이고! 주님! 저희들을 떠나지 마십시오. 주님을 멀리 떠나 있으면 저희들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주님이 말씀하셨지요!” 안드레아가 마치 동냥 한 푼을 청하는 것처럼 무릎을 꿇고 손을 내밀면서 애원한다.
  “너희들은 가책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착한 사람들에게는 좋은 친구이다.”
  “주님, 멀리 가지 마십시오! 주님은 저희들과 함께 기도하실 것이라 말씀하셨지요…” 하고 타대오가 애원한다. 그는 부활하신 주님께 대하여 감히 친척으로서의 몸짓을 하지 못하고, 주님을 숭배하기 위하여 그 큰 키를 약간 앞으로 구부리고 있다.
  “그런데 묵상은 가장 활동적인 기도가 아니냐? 그리고 내가 너희들을 길에서 다시 만난 때부터 참된 거룩한 감정의 행위를 가지고 너희들의 마음을 움직임으로써 묵상 거리를 보고 묵상하게 하려고 주지 않았더냐? 이 사람들아! 묵상기도란 이런 것이다. 즉 영원하신 분과 또 정신을 이 세상 저 너머로 데려가는 데 소용되는 것들과 접촉하는 것이고, 하느님의 완전과 인간의, 나 자신의 비참에 대한 묵상으로 사랑하거나 보속하는, 그러나 항상 흠숭하는 의지의 행위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것이 죄와 벌에 대한 묵상에서 생겨나는 의지라도 말이다. 선과 악은 그것을 쓸 줄 알면 최종 목적에 소용된다. 이 말은 여러 번했다. 죄는 뉘우침과 보속이 뒤따르지 않는 때에만 회복 할 수 없는 파멸이 되는 것이다. 이와 반대의 경우에는, 마음의 뉘우침을 가지고 좋은 결심이라는 돌로 성덕의 기초를 단단하게 다지기 위한 회반죽을 만드는 것이다. 회반죽 없이 돌들을 서로 붙어 있게 할 수 있느냐? 겉으로 보기에 천한 원료 그대로의 물질이지만, 그것이 없으면 반들반들한 돌들과 반짝이는 대리석들이 결합해서 건물을 이루지 못하게 될 그 물질이 없으면 말이다.”
  예수께서 가려고 하신다.
  형과 다른 야보고와 동시에 베드로와 바르톨로메오가 작은 목소리로 무엇이라고 말하니, 요한이 일어나서 예수를 따라가며 말씀드린다. “제 하느님, 예수님, 저희들은 주님과 함께 주님의 아버지께 기도드리기를 바랐습니다. 주님의 기도를요. 저희들에게 그 기도를 주님과 같이 드리도록 해주지 않으시면, 저희들은 용서를 별로 받지 못한 것으로 느끼게 됩니다. 저희들은 그렇게 할 필요를 몹시 느끼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모여서 기도하는 곳에는, 내가 그들 가운데 있다. 그러니 너희들끼리 기도를 드려라. 그러면 내가 너희들 가운데 있을 것이다.”
  “아! 주님은 이제 저희들이 주님과 기도할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시는군요!” 하고 베드로가 하느님의 피가 온전히 없어지지 않은 풀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면서 외친다.
  알패오의 야보고는 이렇게 외친다. “저희들은 불행합니다. 아우… 주님.” 그는 아우님이라는 말 대신에 “주님” 이라는 말을 써서 이내 고쳐 말한다.
  예수께서는 그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신다. “왜 나를 아우라고 부르지 않느냐, 내 혈족인 네가? 나는 모든 사람의 형제이지만, 네게는 아람의 후손으로, 다윗의 자손으로, 하느님의 아들로, 이렇게 이중, 삼중으로 형제이다. 말을 마쳐라.”
  “아우님, 주님, 저희들은 불행하고 어리석습니다. 주님이 아시다시피. 그리고 저희들이 느끼고 있는 창피 때문에 더 어리석게 됩니다. 주님의 기도의 뜻을 알지 못하면, 어떻게 저희들이 그 기도를 감정을 가지고 드릴 수 있겠습니까?”
  “미성년 자녀에게처럼 몇 번이나 그것을 설명해 주었느냐? 그러나 너희들은 어떤 교사의 생도들 중에서 제일 방심한 생도보다도 머리가 둔해서 내 말을 기억해 두지 못했다!”
  “맞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저희들의 정신이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데 대한 가책에 고정돼 있습니다. …오! 저희들은 아무 것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제가 모두를 대신해서 인정합니다! 주님, 저희들은 아직도 주님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발 저희들의 악에 대한 관용을 저희들을 둔하게 만드는 악 자체에서 끌어내십시오. 주님이 숨을 거두셨었는데, 위대한 선생이 그곳 주님 십자가 아래에서 이스라엘이 진실로 우둔하게 부르짖었습니다. 그래서 어디에나 계시는 하느님이시고, 육체의 감옥에서 해방되신 하느님의 영이신 주님은 이 말을 들으셨습니다. ‘정신적인 맹목(盲目)’의 길고도 긴 세월이 내적인 눈위에 씌워진 채로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삶은 주님께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공식집(公式集)에 갇혀 있는 이 생각에 해방자이신 선생님이 뚫고 들어가십시오’하고. 저희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주님의 완전한 사랑의 뜨거운 불로 태워 없애서 저희들을 원죄에서 구해 주신 예수님, 제가 흠숭하는 예수님, 흠숭받으셔야 할 예수님, 완고한 이스라엘 사람으로서의 저희들의 지능도 태워 없애십시오. 어머니의 배에서 나오는 어린아이의 정신과 같이 새롭고 순결한 정신을 저희들에게 주십시오. 그리고 저희들에게 주님의 지혜만을 가득 채워 주십시오. 그 소름끼치는 날에 과거의 수많은 일들이 죽었습니다. 주님과 같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부활하신 지금, 저희들 안에 새 생각이 나게 해 주십시오. 주님, 저희 안에 새로운 마음과 정신을 만들어 주십시오. 그러면 주님을 이해할 것입니다.” 이렇게 요한이 청한다.
  “이 임무는 내게 있지 않고, 내가 최후의 만찬에서 너희들에게 말한 그분께 있다. 내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전체로나 부분적으로 너희들의 생각의 심연 속에 들어가 사라지거나 그 정신 속에 그대로 갇히고 봉해져 있다. 파라클레트(Paraclet) 성령께서 그분만이 너희들의 마음의 심연에서 내 말을 꺼내고 그것들을 열어, 너희들에게 그 정신을 깨닫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성령을 저희들에게 불어 넣어 두셨는데요.” 하고 열성당원이 이의를 제기 한다.
  “그렇지만 주님이 아버지께로 가시면, 진리의 성령께서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지요.” 하고 마태오가 열성당원과 동시에 이의를 제기한다.
  “말해 봐라, 어린아이가 날 때에, 그 어린아이에게는 영혼이 주입되어 있느냐?”
  “물론 주입 되어 있습니다.” 하고 모두가 대답한다.
  “그러나 그 영혼이 하느님의 은총이냐?”
  “아닙니다. 원죄가 그 영혼 위에 있어서 은총을 빼앗아 갑니다.”
  “그러면 영혼과 은총은 어디서 오느냐?”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하느님께서는 왜 사람에게 은총 지위에 있는 영혼을 그저 단순히 주시지 않으냐?”
  “그것은 아담이 벌을 받았고, 저희들도 아담을 통해서 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주님이 구속을 하셨으니까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니다.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영혼이 더러워진 채로 태어날 것인데, 그것은 아담으로부터 유전적으로 더러워진 것이다. 그러나 사람안에 주입된 영혼이 어떤 의식에 의하여 은총으로써 되살아나야 되고 주님의 성령께서 그 영혼을 차지하실 것이다. 그 의식은 다음 번에 설명해 주마. 그러나 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받은 너희들은 하느님의 능력의 불로 세례를 받을 것이고, 그 때에는 하느님의 성령께서 정말 너희들 안에 계실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은 사람들이 박해할 수도 없고 내 쫓을 수도 없는 선생님이시고, 너희들의 마음 속에서 내 말의 정신과 그밖에 많은 가르침을 너희들에게 말씀해 주실 것이다. 내가 성령을 너희에게 불어 넣어 준 것은 내 공로에 의해서만 무엇이든지 얻어질 수 있고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하느님을 차지할 것이고, 하느님의 대리자의 말이 유효할 것이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께서 아직 선생님으로 너희 안에 계시지 않는다.”
  “그러면 그렇게 되게 해 주세요. 성령께서는 때가 되면 오시겠지요. 그렇지만 우선 저희들에게 주님의 용서를 느끼게 해 주세요. 오! 주님, 저희들에게 선생님으로 계셔 주십시오. 주님이 일곱 번씩 일흔 번을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으니, 아직도 계속해서요.” 하고 요한이 조른다. 그리고 – 요한이 여전히 가장 신뢰되고 가장 애정이 넘치는 사도이다 – 감히 두 손으로 예수의 늘어드린 왼손을 잡으면서 말을 끝맺는데, 그 손에는 못으로 뚫려 찢어진 자국이 달빛으로 더 크게 보인다. “영원한 빛이신 주님은 당신 종들이 그대로 어둠 속에 남아 있는 것을 허락하지 마십시오.” 그러면서 손가락 끝에 가볍게 입맞춤을 한다. 손에 상처를 입었다가 낫기는 했지만, 여전히 힘줄이 약간 오그라든 사람의 손가락과 똑같이 약간 구부러져 있다.
  “오너라. 좀 더 올라가서 함께 기도를 드리자.” 하고 예수께서 동의하시고, 손을 요한의 양손에 잡히신 채 게쎄마니의 제일 높은 경계 쪽으로, 갈릴래아 사람들의 야영지를 지나 베다니아로 가는 높은 길이 있는 쪽으로 걸어 가신다.
  여기서도 라자로가 시킨 경계 확장공사가 진행 중임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올리브밭 지키는 사람의 집 저쪽으로, 전에 게쎄마니의 경계를 이루던 울타리와 꼬불꼬불한 오솔길을 따라 벌써 매끈매끈하고 높은 담이 세워져 있다.
  저 밑에는 예루살렘이 천천히 어두움 속에서 나오는데, 지금은 달이 중천에 떠서 그 가는 낫과 같은 형태로 모든 물건을 흰 빛으로 감싸기 때문에 서쪽에 있는 부분까지도 보인다. 달은 어두운 하늘에 놓인 금강석 광채같이 빛나는데, 그 하늘에는 수없이 많은 별들의, 동방의 하늘의 저 거짓말같이 많은 별들의 빛나는 꽃부리가 깜박이고 있다.
  예수께서는 기도하실 때 늘 하시는 자세로 양팔을 올리시고 읊기 시작하신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예수께서는 중단하시고 설명 하신다. “하느님께서 아버지이시라는 것에 대하여는 너희들을 용서하심으로 보여 주셨다. 모든 사람보다 더 완전하게 되어야 하는 너희들을, 그렇게도 많은 은혜를 받은 너희들을, 너희들이 말하듯이 너희들의 임무에 그렇게도 어울리지 않는 너희들을, 아버지가 아닌 어떤 지배자인들 벌하지 않겠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들을 벌하지 않았고, 아버지도 너희들을 벌하지 않으셨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은 아들도 하고, 아들이 하는 것은 아버지께서도 하시기 때문이며, 우리는 사랑 안에서 오직 하나인 천주성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나와 함께 계신다. 말씀은 시작이 없는 하느님 곁에 항상 있다. 그리고 말씀은 만물보다 앞서, 오래 전부터, 항상이라는 이름을 가진 영원으로부터, 하느님 곁에 영원한 현존자(現存者)로 있으며, 하느님의 생각의 말씀이기 때문에 하느님과 같이 하느님이다.
  그러므로 내가 가고 난 다음에는, 우리 아버지께 이렇게 기도할 때에, 즉 그분을 통해서 우리가 형제가 되어, 나는 맏아들이고, 너희들은 둘째와 그 이하의 아들들이 되는 내 아버지와 너희들의 아버지께 이렇게 기도 드릴 때에, 나와 너희들의 아버지 안에서 항상 나를 보도록 하여라. 너희에게는 ‘선생’이 되었었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또 죽음을 넘어서까지 너희들을 사랑해서 자기 자신을 너희들에게 음식으로 남겨 주어서, 귀양살이가 계속되는 동안에는 너희들이 내 안에, 또 내가 너희들 안에 있게 하고, 또 그 다음에는 너희들과 내가 하느님 나라에 있게 하려고 한 말씀을 보도록 하여라. 그 나라를 위하여, 이 세상과 하늘에서 주님께 영광을 드림으로써 너희들의 행동이 주님의 이름을 거룩히 빛나게 하도록 간청한 다음 ‘그 나라가 임하시며’ 하고 기도하라고 가르쳤다. 그렇다. 만일 너희가 하느님의 율법과 내 말을 실제로 지킴으로써 먼저 너희들 안에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원치 않으면, 너희들을 위한 나라가 하늘에 없을 것이고, 너희들과 같이 믿을 사람들에게도 나라가 없을 것이다. 내 말은 율법의 완성으로서 은총의 시대에 선택된 사람들의 율법을 주었다. 선택된 사람들의 율법이란 모세시대의 세속적, 윤리적, 종교적법들을 초월하여 벌써 그리스도 시대의 영적인 율법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의 율법을 말하는 것이다.
  너희들은 하느님을 곁에 모시고 있지만, 하느님을 너희들 안에 모시지 않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하느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지만 그 말씀을 실제로 지키지 않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겠지. 하느님을 이렇게 가까이 모시고 있지만, 마음 속에는 하느님을 모시지 않고 있는데에서 모든 죄가 저질러졌고, 말씀을 알고는 있지만, 그 말씀을 따르지 않은 데에서 저질러지는 것이다. 모든 것이! 모든 것이 그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우둔함과 범죄행위, 배반, 고문, 죄 없는 이와 그를 죽인 카인의 죽음 따위 모두가 이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그렇지만 유다만큼 내게서 사랑을 받은 자가 누가 있느냐? 그러나 그는 하느님인 나를 그의 마음 속에 두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의 칠죄종(七罪宗)과 그의 다른 모든 죄 때문에 단죄된 것 외에,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제자로서, 자살한 사람과 하느님을 죽인 사람으로서 무한히 죄 있는 사람으로 단죄된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가 이제는 너희들 안에 더 쉽게 얻어 질 것이다. 그것은 내가 죽음으로 그것을 너희들에게 얻어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고통으로 너희들을 구속하였다. 이것을 기억해 두어라. 그리고 은총은 하느님의 생명과 피의 값으로 얻어진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을 짓밟아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나라가 사람들인 너희들에게는 은총으로 와야 하고, 이 세상에는 교회를 통해서 와야 하며, 하늘에는 마음속에 하느님을 모시고 살았던 지극한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을 위해 와야 하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에 결합하고, 그리스도인은 누구나가 가지가 되는 포도나무에 결합하여 모든 것이 그를 위하여 만들어진 분의 나라에서 쉴 자격을 얻는 것인데, 모든 것이 그를 위하여 만들어진 분이란 너희들에게 말을 하고 있는 나 이며,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나 자신을 아버지의 뜻에 바친 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고 말해야 한다고 위선 없이 너희에게 가르칠 수 있다. 내가 팔레스티나의 흙덩어리와 초목과 꽃과 돌과 상처입은 내 육체에 이르기까지 아버지의 뜻을 행했기 때문에 온 백성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너희들도 내가 한 것과 같이 끝까지, 만일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하여라. 너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내가 그렇게 했고, 또 나보다 더 자비를 받을 자격이 있는 자격이 있는 제자는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는 가장 큰 고통을 끝까지 당했고, 끊임없는 포기로 순종하기가지 하였다. 너희들도 그것을 알고 있다. 장차 너희가 내 고난의 잔에서 한 모금씩 마심으로써 나를 닮게 되면 휠씬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너희들은 ‘선생님이 아버지께 순종하심으로 우리를 구해 주셨다’는 이 생각을 끊임없이 하고 있어라.
  그리고 구조자가 되려거든 내가 한 대로 하여라. 십자가까지 체험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폭군들의 고문을 당하는 사람들이나 하늘나라에 올라가기 전에 대단히 늙은 나이에 이르기 까지 그곳을 지향함으로 인해 천국에 대한 사랑과 귀양살이의 고문을 당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어떻든 모든 일에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한다. 죽음의 형벌이나 또는 너희들이 내가 있는 곳에  오려고 죽기를 원하는데 살게 되는 형벌이나 모두 기쁜 순종으로 당하면, 하느님의 눈에는 똑같은 것이다. 그것들은 하느님의 뜻이며, 이 때문에 거룩한 것이다. ‘저희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 그날 그날, 그시간 그시간, 하루의 양식을 청하고, 주시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믿음이고, 사랑이고, 순종이고, 겸손이며, 희망이다. 오늘은 달고 내일은 쓸 수도 있고, 많을 수도, 얼마 안 될 수도 있고, 양념이 되어 있거나 재가 섞여 있을 수도 있다. 그런대로 언제나 옳은 것이다.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그것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좋은 것이다.
  다음 번에는 다른 빵에 대해서 말하겠는데, 그것은 날마다 먹기를 원하는 것이 유익하고, 아버지께 그것을 보존해 주기를 청하는 것이 유익한 빵이다. 그것은 사람들의 뜻으로 인하여 그 빵을 갖지 못하게 될 그날들과 그 장소들은 불행하겠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그들의 어두움의 일을 하는 데 능력이 많은지를 스스로 알고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 그 빵을 지켜 주시고 너희들에게 주시기를 청하여라. 어두움이 안식일 전날 한 것과 같이 빛과 생명을 질식시키기를 원할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더 아버지께 그 빵을 주시기를 청해야 한다. 두 번째 안식일 전날에는 부활이 없을 것이다. 이것을 기억해 두어라. 말씀은 이제 다시 죽임을 당할 수 없겠지만, 그의 가르침은 아직도 죽임을 당할 수 있을 것이고, 너무나 많은 사람에게서 그를 사랑할 자유와 뜻이 없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에는 생명과 빛도 사람들에게는 끝장일 것이다. 그리고 그날은 불행할 것이다! 성전이 너희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성전은 커다란 시체이다’ 하고 내가 말한 것을 기억하여라.
  ‘저희들에게 잘못한 이들을 저희가 용서하듯이 저희들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너희는 모두 죄인이니, 죄인들에게 친절하여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치우지 않으면, 형제의 티를 들여다 보아서 무엇하겠느냐?’고 한 내 말을 기억하여라. 내가 너희들에게 불어 넣은 준 성령과 너희에게 준 그 명령은 너희들에게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웃의 죄를 사해 줄 권한을 준 것이다. 그러나 만일 하느님께서 너희들에게 죄를 사해 주지 않으시면 너희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번에 말하마. 지금 당장은 너희들에게 이렇게 말하겠다. 너희들이 용서를 받기 위하여, 그리고 사죄하거나 단죄(斷罪)할 권한을 가지기 위하여 용서하여라. 죄가 없는 사람은 그것을 완전한 정의를 가지고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용서를 하지 않고 죄를 짓고 있으면서 분노하는 체하는 사람은 위선자이고, 지옥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후견인의 보호를 받는 피후견인(被後見人)에게는 그대로 자비가 있지만, 그들을 도와 주시는 성령을 충만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같은 죄나 더 큰 죄를 짓는 후견인들에게는 준엄한 심판이 내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저희들을 유혹에 빠지게 말게 하시고, 악에서 구해 주십시오.’ 이것이 완덕의 주춧돌인 겸손이다. 진정으로 말하지만, 너희들에게 모욕을 주는 사람들에게 축복하여라. 너희들의 천상 왕권에 필요한 것을 그들이 너희에게 주기 때문이다.
  만일 사람이 아버지 곁에 다소곳이 있으면서 사탄과 세속과 육신이 그를 이기도록 허락하지 마시기를 청하면, 유혹은 파멸이 아니다. 아니고 말고 지극한 복을 누리는 사람들의 월계관은 그들이 이긴 유혹들의 보석으로 꾸며져 있다. 유혹을 찾지는 말아라. 그러나 유혹이 올 때에는 비겁하게 굴지 말아라. 겸손하게 따라서 굳세게 나와 너희들의 아버지께 부르짖어라. ‘저희들을 악에서 구해 주십시오’ 하고 그러면 너희가 악을 이기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내가 처음에 말 한 것과 같이 너희들의 행동으로 하느님의 이름을 거룩히 빛나게 할 것이다. 그것은 누구나가 너희들을 보고 ‘저 사람들은 신들같이 생활을 하니, 그들의 행동이 저렇게까지 완전한 것을 보면 하느님이 계시다’라고 말할 것이고, 하느님께로 와서 하느님 나라의 주민의 수를 늘리겠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들에게 강복해서 내 강복이 너희들의 정신을 활짝 열어 묵상을 하게 할 터이니 무릎을 꿇어라.”
  그들은 땅에 엎드리고,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강복하시고, 달빛에 빨려 들어가시듯이 사라지신다.
조금 후에 사도들은 다른 말이 들리지 않은 것이 이상해서 머리를 쳐들고 나서야 예수께서 사라지신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하늘에 계시는데, 그분과 접촉하였다는 것을 깨닫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아주 오래 전부터 가지는 공포에 사로잡혀 다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