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루 종일 못박히신 예수와 십자가 아래 계신 마리아와 요한의 환상을 본다.
오늘 아침 성체를 모실 때, 나는 실제로 제대 앞에 있는 것 같았다. 그분들이 거기 계시면서 그분들의 초자연적인 사랑의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영성체가 어떤 것인지는 묘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뒤 저녁 때쯤에 내 안에서 이 말이 들리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제가 당신께 마련해 드릴 수 있기를 바라던 기름 바르기는 아니었습니다.”
여자의 목소리로, 옹골차고 열정적인 콘트랄토(최저 여성음)의 목소리로, 정열적인 목소리로 하는 말이었다. 이것은 마리아의 기운찬 깨끗하고 순결한 소프라노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아니다.
나는 이 말을 하는 사람이 새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환상이 나타나기까지는 이름이 무엇인지 어떤 얼굴인지 알 수가 없다.
마리아가 손님으로 들어 계신 집에서 울고 계시는 방이 다시 보인다. 쇠약해지고, 기진맥진하고, 끊임없이 흘리시는 눈물로 흉하게 된 얼굴로 아직 거기 당신 의자에 앉아 계시다.
여자들도 거기 있는데, 희미한 기름등잔 불빛에 여러 항아리에서 향료를 꺼내 약연에 넣고 섞어서 향유를 마련하고, 손가락을 넣어서 향유를 쉽게 꺼낼 수 있는 아가리가 넓은 그릇들에 다시 담는다.
여자들은 울면서 일한다. 눈물로 인하여 화상을 입은 것처럼 얼룩진 얼굴을 하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가 이 말을 하였고, 이 말을 듣고 여자들은 모두 크게 운다.
그런 다음 모든 마련을 다 끝내자 여자들은 어깨걸이 또는 망토를 걸친다. 마리아도 일어나신다. 그러나 여자들은 그분을 둘러싸고 오시지 말라고 설득한다. 하도 타박상을 많이 입으셨기 때문에 사흘째 되는날 새벽에는 틀림없이 부패하여 시꺼멓게 되셨을 그분의 아들을 다시 보여드리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일 것이다. 게다가 마리아는 너무 기진맥진해서 걸으실 수도 없다. 그저 울고 기도만 하셨고, 음식을 도무지 들지 않으시고, 도무지 쉬지도 않으셨다. 그러니 그대로 조용히 계시고 그 여자들에게 맡기시라는 것이다. 여자들은 매장의 마지막 준비로써 요구되는 모든 처치를 그 거룩한 시신에 함으로써, 제자로서의 그들의 사랑으로 어머니의 몫을 하겠다는 것이다.
마리아는 양보하신다. 막달라 마리아는 그가 늘 하는 자세로 마리아 앞에 발꿈치에 몸을 괴고 꿇어앉아서 그분의 무릎을 껴안고,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쳐다보며, 그가 시신에 다시 향유를 바르는 동안 예수께 어머니의 온 사랑을 말씀드리겠다고 약속한다. 막달라 마리아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안다. 막달라 마리아는 치사스러운 사랑에서, 사람들이 죽인 살아 계신 자비에 대한 사랑으로 옮겨 왔다. 그래서 사랑할 줄을 안다. 예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가 새 생명을 얻는 아침이었던 그날 저녁에 막달라 마리아가 많이 사랑할 줄 안다는 그 말씀을 그에게 하셨다. 어머니는 그를 믿으신다. 그때에 예수의 발을 어루만질 줄을 알았던 구제된 여자인 막달라 마리아는 이제 향유보다는 오히려 그의 사랑으로 상처를 너무나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향유를 바를 줄 알아서, 그렇게도 많은 사랑을 주시고 그렇게도 많은 사랑을 받으신 그 육체를 죽음이 손상시키지 못하게 할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의 목소리에는 정열이 가득 차 있다. 그 목소리는 마치 파이프 오르간을 둘러싼 벨벳 같다. 그만큼 그의 목소리는 열렬하고 정열적인 음색으로 부드러워진 오르간 소리와도 같다. 그 목소리에는 전율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몸을 떨 줄을 알았던 마음이, 전율하고 사랑해야 하였던 마음이, 그리고 예수께서 그를 구원해 주신 지금은 하느님의 사랑을 위하여 몸을 떨 줄 알고 사랑할 줄을 아는 마음이 느껴진다. 나는 이 여자의 영혼을 나타내는 이 여자의 목소리를 잊지 않겠다. 그 목소리를 나는 다시는 잊지 못할 것이다.
여자들은 등불 하나를 가지고 나간다. 집은 어둠 속에 묻혀 있고, 길도 어둡다. 동쪽 저 끝에 겨우 빛의 흔적이 보일 뿐이다. 4월의 신선하고 깨끗한 아침빛이다. 길은 조용하고 쓸쓸하다. 여자들은 겉옷을 꼭 여민 채 말없이 예수의 무덤을 향하여 간다.
나는 그 여자들과 같이 가지 않고, 마라아께로 돌아온다. 예수께서 나를 마리아께로 돌아오게 하신다.
혼자 계신 지금, 마리아는 베로니카의 수건을 마주 보고 무릎을 꿇고 다시 기도하기 시작하셨다. 베로니카의 수건은 겹친 선반 옆쪽에 관포(棺布)와 못으로 고정되어 있다. 마리아는 아들에게 기도하시고 말씀하신다. 마리아는 여전히 불안스럽게 하는 희망에 섞여 있는 같은 고통을 당하고 계시다.
“예수야, 예수야! 아직 돌아오지 않느냐? 네가 죽은 채로 저기 있다는 것을 아는 네 가엾은 어미는 이제 더 지탱할 수는 없구나. 너는 그 말을 했지만 아무도 네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네 말을 알아들었다. ‘이 하느님의 성전을 허무시오, 내가 그것을 사흘 동안에 다시 지어놓겠소.’
오늘이 사흘째 되는 날 새벽이다. 오! 내 예수야! 이 날이 다 가기를 기다리지 말고 생명으로 돌아오너라. 죽은 너를 다시 보는 것으로 해서 죽지 않으려면, 살아 있는 너를 볼 필요가 있는 어미에게로 돌아오너라. 너를 남겨놓고 온 그 때를 회상하는 것으로 죽지 않기 위해서는, 아름답고 건강하게 개선하는 너를 볼 필요가 있는 네 어미에게로 돌아오너라!
오! 아버지! 아버지! 제 아들을 돌려 주십시오! 이제는 시체가 아니고 다시 사람이 된 아들을, 사형선고를 받은 아들이 아니라 왕이 된 아들을 보게 해 주십시오. 그 다음에는 제 아들이 하늘에 계신 당신께 돌아가리라는 것을 저도 압니다.
그러나 그전에 그렇게도 많은 아픔을 떨쳐버린 아들을 볼 것이고, 그렇게도 무기력하던 아들이 강하게 된 것을 볼 것이고, 그렇게도 많은 싸움을 한 다음에 개선하는 아들을 볼 것이며, 사람들을 위하여 그렇게도 많은 고통을 당한 인간성을 겪은 후에 하느님으로서의 그를 볼 것입니다.
그러면 그를 가까이에 두는 기쁨을 잃으면서도 저는 행복을 느낄 것입니다. 저는 제 아들이 거룩하신 아버지이신 당신과 같이 있는 것을 알 것이고, 영원히 고통을 당하지 않게 되었음을 알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반대로 제 아들이 무덤에 있다는 것을, 그 사람들이 그에게 가한 그 많은 고통으로 거기 죽어 있다는 것을, 제 아들이요 하느님이신 그가, 당신의 살아 있는 아들인 그가 어두운 무덤 속에서 사람들과 운명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정말 잊지 못하겠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당신의 여종의 청을 들어 주십시오. “예”… 하고 대답한 그 말 때문에… 저는 당신 뜻에 순종했다고 해서 아무 것도 결코 청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뜻이었고, 당신의 뜻은 제 뜻이었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이신 당신께 제 뜻을 희생으로 바쳤다고 해서 저는 당신께 아무 것도 요구해선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나 이제는, 당신의 사자(使者)인 천사에게 말한 ‘예’라는 그 말 때문에, 아버지, 제 청을 들어주십시오!
제 아들은 아침나절에 학대를 당한 후에 세 시간 동안의 임종의 고통으로 모든 것을 완수했으니까 이제는 고통을 당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흘째 이 고뇌를 겪고 있습니다. 제 심장을 보시고, 그 심장의 고동을 들으십시요. 우리 예수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새 한마리도 당신이 보지 못하시는 사이에 깃을 하나라도 잃지 않고, 들에 있는 꽃 한 송이도 당신이 그 죽음의 고통을 해와 이슬로 위로해 주시지 않은 채 죽지는 않는다구요.
오! 아버지, 저는 이 고통으로 죽습니다. 당신이 새로운 깃을 나게 하시는 저 참새와 같이, 당신의 연민으로 따뜻하게 해 주시고 목을 축여 주시는 저 꽃과 같이 저를 다루어 주십시오. 저는 고통으로 얼어 죽습니다. 제 핏줄에는 피가 말랐습니다. 옛날에는 피가 모두 젖이 되어 당신의 아들이요 제 아들인 예수를 키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제가 아들을 잃었기 때문에 피가 모두 눈물이 되었습니다. 아버지, 그 사람들은 제 아들을 죽였습니다. 죽였어요. 얼마나 참혹하게 죽였는지 아시지요!
제게는 이제 피가 없습니다. 목요일 밤과 비통한 금요일에 제 피를 아들과 함께 흘렸습니다. 저는 피가 전부 빠져나간 사람처럼 춥습니다. 제 거룩한 태양, 제 축복받은 태양, 엄마의 기쁨과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제 몸에서 나온 태양인 제 아들이 죽었기 때문에 제게는 이제 태양도 없어졌습니다. 제게는 이제 시원하게 해 주는 물도 없습니다. 그의 말을 마시고, 그의 존재로 목을 축이다시피 한 어미에게는 샘물 중에서 가장 맛있는 샘물이던 아들이 이제는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메마른 모래에 꽂혀 있는 꽃과 같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저는 죽습니다, 죽어요. 제 아들도 죽었기 때문에 저는 죽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 어린 것들, 몹시 약하고, 몹시 겁많고, 마음이 대단히 잘 변하는 제 아들의 저 작은 양떼가 그들을 부축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버지, 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제 아들의 희망을 위하여는 한떼의 무장한 장정과도 같습니다. 저는 어미늑대가 새끼늑대들을 보호하듯이, 제 아들의 가르침과 그의 유산을 지키고 앞으로도 지키겠습니다. 어린 양과 같은 제가 제 아들의 것, 곧 당신의 것을 지키기 위하여는 어미늑대같이 되겠습니다.
아버지, 보셨지요. 일주일 전에 이 도시에서는 올리브나무 가지들을 꺾고, 집안과 정원에 있는 것을 전부 걷고, 사람들의 옷을 벗겼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받으소서’ 하고 하도 소리를 질러서 목이 쉬었었습니다. 그리고 제 아들이 나뭇가지와 옷과 옷감과 꽃이 깔린 길로 지나갈 때에 주민들은 서로 그를 가르키며 ‘저분이 갈릴래아 나자렛의 예언자 예수야. 저분이 이스라엘의 왕이야’하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나뭇가지들이 아직 마르지 않고, 호산나를 너무 외쳐서 목소리가 아직 쉰 채로 있는데, 그들은 그들의 외침을 비난과 저주와 사형 청원으로 바꾸었고, 개선을 축하하려고 꺾었던 나뭇가지를 가지고 곤봉을 만들어 죽이려고 데리고 가던 당신의 어린 양을 때렸습니다.
제 아들이 그들 가운데 있으면서 그들에게 말을 하고 미소를 보내고,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돌까지도 바라다보면 떨게 하는 그런 눈으로 그들을 보고,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들을 가르치고 하는 동안에도 그렇게도 심하게 굴었으니, 그가 당신께로 돌아간 다음에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의 제자들을 보셨지요. 한 사람은 배반하고, 다른 사람들은 도망했습니다. 그가 타격을 입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마치 비열한 무리처럼 달아났고, 그가 죽는 동안 돌보아줄 줄을 몰랐습니다. 오직 한 사람, 제일 어린 한 사람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제는 제일 나이많은 사람이 왔습니다만, 그 사람도 이미 한 번 제 아들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예수가 여기 있어서 그를 지켜 주지 않게 되면 그 사람이 믿음을 그대로 가지고 있겠습니까?
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제 아들의 것이 조금 제게 남아 있고, 제 사랑이 제게 부족한 것을 메워 주고 없애 줍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당신 아들의 입장과 결코 평화를 얻지 못할 그의 교회에 유익한 무엇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바람에 뽑히지 않기 위해서 뿌리를 깊게 뻗을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교회를 돌보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저는 부지런한 정원사같이 교회가 그 시작에 곧고 강하게 크고 자라게 돌보겠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죽는 것을 걱정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예수없이 더 오래 이대로 있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오!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아들을 버리셨다가 나중에는 그가 죽은 다음 분명히 당신 품안에 받아들이심으로 그를 위로해 주신 아버지, 저를 더 오래 버려두지 마십시오. 저는 그 버림받음을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여 참아받고 바칩니다. 그러나 아버지, 이제는 저를 위로해 주십시오. 아버지,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아들아, 불쌍히 여겨다오, 성령이여, 불쌍히 여겨 주시고, 당신의 동정녀를 기억하십시오!”
그런 다음 방바닥에 꿇어엎드려, 마리아는 마음으로 하시는 것 이외에 몸짓으로도 기도를 드리시는 것 같다. 그분은 정말 축 늘어진 보잘 것 없는 물건과 같으시다. 그분이 조금 전에 말씀한 목이 말라 죽은 그 꽃과 같으시다. 마리아는 짧기는 하지만 세찬 지진의 진동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하신다. 그 지진으로 인하여 집주인 남자와 여자는 부르짖으며 도망하고, 그동안 베드로와 요한은 죽은 사람같이 창백해져서 방의 문지방까지 간신히 온다. 그러나 마리아가 하느님이 아닌 모든 것에서 멀리 떨어져 이렇게 기도에 열중해 계신 것을 보고는 문을 닫고 물러나며 질겁을 해서 최후의 만찬실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