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밤 동안 마당의 한기 때문에 단단한 반죽처럼 굳어버린 기름들을 다루는 일을 다시 시작한다. 요한과 베드로는 식기를 씻어서 최후의 만찬실을 정돈할 생각을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시 최후의 만찬이 끝났을 때에 있었던 상태대로 놓아둔다.
“이렇게 두라고 말씀하셨어.” 요한이 말한다.
“이렇게도 말씀하셨어. ‘자지들 말아라’ 하고. ‘베드로야 뽐내지 말아라. 시련의 시간이 오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하고 말씀하셨어. 그리고…이렇게 말씀하셨어. ‘너는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
베드로는 다시 울면서 암담한 괴로움으로 말한다.
“그런데 나는 그분을 모른다고 했어!”
“베드로, 그만해! 이젠 자네가 돌아왔으니, 그렇게 괴로워하는 건 그만둬.”
“절대로, 절대로 그만 둘 수 없어! 내가 최초의 조상들처럼 늙고, 아담과 그의 첫 번째 후손들처럼 7백년, 9백년을 산다 해도 계속 이렇게 고민해야 할거야.”
“자넨 그분의 자비에 희망을 걸지 않는단 말이야?”
“왜 희망을 걸지 않겠어? 내가 그분의 자비를 믿지 않는다면 가리옷 사람처럼 자살을 했을 걸세. 하지만 그분이 지금 돌아가 계신 아버지의 품에서 나를 용서해 주신다 해도, 나는 나 자신을 용서 못해 나는! 나는! ‘나는 저 사람을 모르오’ 하고 말했단 말이야. 그때는 그분을 안다는 것이 위험했기 때문에, 그분의 제자라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에, 고문이 무서웠기 때문에 그랬단 말이야.… 그분은 죽으러 가시는데, 나는,…나는 목숨을 건지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리고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그분을 배척했어. 마치 죄지은 여자가 아이를 낳고 나서, 그 아이를 자기 곁에 두는 것이 위험하니까, 알지 못하고 있는 남편이 돌아오기 전에 제 뱃속에서 나온 자식을 밀어내는 것처럼 말이야. 난 간음한 여자보다도 더 나빠…더 나쁘고말고….”
그가 크게 부르짖는 소리에 끌려 막달라 마리아가 들어온다.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지 마세요. 어머님이 들으세요. 어머님은 지금 몹시 피로하십니다! 기운이 하나도 없고, 무슨 일이든지 다 그분께 고통을 드려요. 베드로님의 쓸데 없고 도를 지나친 부르짖음을 들으시면, 여러분이 어떻게 했는지를 생각하시고 다시 고민하시게 될 거예요….”
“자 봐! 자 보라구, 요한! 한 여자가 내 입을 다물게 할 수 있단 말이야. 그런데 여자의 말이 옳아. 주님께 몸바친 우리 남자들은 그저 거짓말을 하거나 떠날 줄이나 알았는데, 여자들은 용감했거든. 자네는 하도 젊고 순결해서 여자보다도 좀 더하지, 그래서 남아 있을 수 있었지. 그런데 우리는, 우리 강한 남자들은 도망쳤단 말이야. 오! 세상 사람이 나를 얼마나 업신여기게 되겠어! 마리아, 말 좀 해봐요, 말 좀 해보라구요! 마리아 말이 맞아요! 거짓말을 한 이 입을 마리아의 발로 짓밟아요. 마리아의 샌들 바닥에 어쩌면 그분의 피가 조금 묻어 있을지 몰라요. 길의 진흙에 섞인 그 피만이 그분을 모른다고 한 이놈에게 용서를 좀, 평화를 좀 줄 수 있어요. 그렇지만 나는 세상 사람들이 업신여기는 것에 습관이 돼야 해요! 내가 뭣입니까? 뭣이냐구요? 말 좀 해줘요!”
“베드로님은 대단히 교만한 사람이세요”
막달라 마리아가 침착하게 대답한다.
“괴로워하는 사람? 그렇지요, 괴로워하는 사람이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베드로님의 괴로움이 열 개라면, 다섯은 -여섯이라고 하면 기분이 상하게 할까 봐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다섯은 적어도 업신여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고통에서 옵니다. 그렇지만 베드로님이 한탄만 하고, 완전히 어리석고 가냘픈 여자처럼 그러시고만 있다면 나는 정말 베드로님을 업신여겨야 할 겁니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입니다. 그렇게 과도하게 부르짖는다고 그것이 보상되고 취소되지는 않아요. 그 부르짖음은 사람들의 주의를 끌 뿐이고, 받을 자격이 없는 동정을 구걸하는 일밖에 되지 않아요.
뉘우치는 것을 사나이답게 하세요. 울부짖지 마세요. 행동하세요. 저는… 제가 어떤 여자였는지 아시지요.… 그렇지만 내가 토한 것보다도 더 비열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심한 발작에 몸을 내맡기지 않았어요. 저는 행동했어요. 공공연하게 제게 대해 관대하지 않고, 관용을 청하지도 않구요. 세상 사람들이 저를 업신여겼습니까? 잘하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업신여김을 받아 마땅했으니까요. 세상 사람들은 ‘창녀의 새로운 변덕’이라고 말했습니까? 그리고 제가 예수님께 호소하는 것을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이라고 불렀습니까? 그 사람들의 말이 옳았어요. 세상 사람들은 제 지난 날의 행실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 행실이 그 모든 지적을 정당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됐어요? 세상 사람들이 이제는 죄녀 마리아는 없어졌다고 확신하게 됐어요. 제 행위로 세상 사람들을 설득한 거예요. 베드로님도 그렇게 하세요. 그리고 입을 다무세요.”
“마리아는 너무 가혹하군요”하고 요한이 반대한다.
“다른 사람들보다는 나 자신에 대해서 더 가혹해요. 그렇지만 그렇다는 것은 인정해요. 나는 어머님의 손과 같이 가벼운 손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요. 어머님은 사랑이시지요. 그런데 나는… 오! 나는! 나는 내 관능을 내 의지의 채찍으로 꺾었어요. 그리고 더 그렇게 하겠어요. 요한은 내가 음란 그 자체였던 것을 나 자신에게 용서한 줄 알아요? 그렇지 않아요. 그러나 그것을 나 자신에게만 말해요. 그리고 언제까지나 그 말을 나 자신에게 하겠어요. 나는 나 자신을 더럽혀서 짓밟힌 마음밖에는 그분께 드리지 못한 데 대한 위로할 길 없는 고통 속에서, 나 자신을 타락시킨 여자였다는 이 은밀한 회한으로 소멸해서 죽을 거예요.… 봐요.… 나는 향유 만드는데 다른 모든 여자들보다 애를 더 많이 썼어요.… 그리고 다른 여자들보다 더 용감하게 그분의 수의를 벗기겠어요.… 오! 하느님! 그분이 지금은 어떻게 되셨을까? (막달라 마리아는 그 생각만 해도 얼굴이 창백해진다.) 그리고 그분의 수없이 많은 상처 위에서 틀림없이 완전히 썩어버렸을 향유를 떼어내고 새 향유를 발라 드릴 거예요.… 다른 여자들은 소나기 맞은 메꽃 같을 테니까 내가 그렇게 할 거예요.…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도 음탕한 애무를 한 손으로 그 일을 하고, 더렵혀진 내 육체로 그 거룩하신 분을 가까이하는 것이 한스러워요. … 나는… 나는 동정녀이신 어머님의 손과 같은 손으로 이 마지막 향유 바르는 일을 하기가 소원이예요….”
마리아가 이제는 흐느끼지 않고 조용히 운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늘 보여주는 과장된 막달라 마리아와는 얼마나 다른 막달라 마리아인가! 그것은 마리아가 바리사이파 사람의 집에서 용서를 받던 날 흘린 것과 같은 조용한 눈물이었다.
“마리아는 여자들이… 겁을 낼 거라고 말하는 거요?” 하고 베드로가 묻는다.
“겁을 내는 게 아니라… 틀림없이 벌써 썩고… 붓고… 꺼멓게 된 그분의 시신을 보고는 틀림없이 정신이 혼란해질 거예요. 그리고 분명히 경비병들을 무서워할 겁니다.”
“내가 같이 갈까요? 요한도 나하고 같이?”
“아! 그건 안돼요! 우리가 모두 나가는 것은, 우리가 모두 저위에 있었으니까 그분의 시신을 모신 곳 둘레에 우리가 모두 있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예요. 베드로님과 요한은 여기 남아 계세요. 어머님이 혼자 계실 수는 없어요!…”
“어머님은 안 가세요?”
“우리가 어머님은 오시지 못하게 할 거예요!”
“어머님은 그분이 부활하시리라고 확신하고 계시지요. …그럼 마리아는요?”
“저는 어머님 다음으로 제일 많이 믿는 여자예요. 저는 그렇게 될 수도 있다고 항상 믿었어요.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그분은 절대로 거짓말을 안하시거든요. …그분은!… 오! 전에는 제가 그분을 예수님, 선생님, 구세주, 주님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그분이 너무나 위대하시다고 느껴서 어떻게 부를지 모르겠고, 감히 어떤 이름을 붙여드리지 못하겠어요. …그분을 뵈면 무슨 말씀을 드릴는지요?…”
“아니, 마리아는 그분이 부활하시리라고 정말 믿고 있어요?…”
“또 그 소리! 오! 제가 믿는다는 말을 베드로님에게 너무 많이 하고, 또 베드로님이 믿지 않는다고 하는 말을 하도 들어서 저까지 믿지 않게 되고 말겠어요! 저는 믿었고, 지금도 믿고 있어요. 저는 믿었어요. 그래서 오래 전부터 그분의 옷을 마련했어요. 그것도 내일 입으시라고, 내일이 셋째날이니까, 다 된 옷을 이리 가져올 거예요….”
“하지만 그분이 썩어서 꺼멓고 보기 추하게 되셨을 거라고 말하면서?”
“추하게는 절대로 안 되십니다. 추한 건 죄악 뿐이예요, 그렇지만… 그렇고 말고요! 그분은 꺼멓게 되셨을 거예요. 그렇지만! 라자로 오빠는 벌써 썩지 않았었어요? 그런데도 오빠는 부활했고, 그 살이 나았어요. 정말이라니까요! … 믿지 않는 분들은 입을 다무세요! 제 안에서도 인간의 이성은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그분은 돌아가셨고 부활하시지 못할 것이다’ 하고 말이예요. 그렇지만 제 정신은, 아니 제가 그분에게서 새 정신을 받았으니까 그분의 정신이지요, 그 정신은 외칩니다. 그리고 은나팔이 울리는 것 같아요. ‘그분은 부활하신다! 그분은 부활하신다! 그분은 부활하신다!’하고.
왜 작은 배가 암초에 부딪치는 것처럼 베드로의 의심으로 저를 치시는 겁니까? 저는 믿어요! 주님, 저는 믿습니다! 라자로 오빠는 가슴이 터지는 듯한 괴로움을 겪으면서도 선생님께 순종해서 베다니아에 남아 있었어요.… 데오필로의 라자로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겁많은 어린 들토끼 같은 사람이 아니라 용맹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저는 선생님 곁에 있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 남아 있다는 오빠의 희생이 얼마나 큰 지를 헤아릴 수 있어요. 그렇지만 오빠는 순종했어요. 오빠는 무기를 들고 무장한 사람들에게서 그분을 빼앗는 것보다도 이렇게 순종하신 것이 더 영웅적이었어요. 저는 믿었어요, 그리고 지금도 믿어요. 그래서 여기 남아서 어머님과 같이 그분을 기다리고 있어요. 그렇지만 저를 가게 해주세요. 날이 밝아오는데, 발밑이 넉넉히 보이기만 하면 우리는 곧 무덤으로 갈 거예요….”
그러면서 막달라 마리아는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그러나 여전히 꿋꿋하게 나간다. 막달라 마리아는 마리아가 계신 방으로 돌아온다.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어?”
“신경의 발작을 일으켰었어요. 그렇지만 이젠 끝났습니다.”
“마리아, 무자비하게 굴지 말아요. 그 사람은 괴로워하고 있어요.”
“저도 괴롭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제가 어머니께 어루만져 주십사고 청하지도 않은 것을 아십니다. 그분은 벌써 어머니께 보살핌을 받으셨습니다. …이와 반대로 저는 어머님만이 위로를 받으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룩하신 어머님, 사랑하는 어머님! 그렇지만 용기를 내세요.… 내일은 셋째날입니다. 사랑에 빠진 우리 두사람은 여기 이 안에 틀어박혀 있어요. 어머님은 사랑에 빠진 거룩하신 분이고, 저는 사랑에 빠진 보잘 것 없는 여자이구요. 그렇지만 저는 제 능력을 다해서, 제 자신을 전부 바쳐서 사랑합니다. 그리고 기다립시다. …저 사람들, 믿지 않는 저 사람들은 그들의 의심과 같이 옆방에 가둡시다.
그리고 여기에는 장미꽃을 듬뿍 갖다 놓겠어요. … 오늘 큰 궤를 가져오라고 하겠습니다. …저는 궁궐에 들러서 레위에게 명령을 하겠습니다. 이 소름끼치는 물건들은 멀리 집어치우구요! 부활하신 우리 그분은 이런 것들을 보셔서는 안돼요. …장미꽃을 듬뿍… 그리고 어머님도 새 옷을 입으시구요. … 그분이 어머니의 이런 모습을 보시면 안 됩니다. 제가 어머니의 머리를 빗겨 드리겠어요, 그리고 눈물로 흉하게 된 이 가엾은 얼굴을 씻어 드리겠어요. 영원한 어린이 같은 어머니께 제가 어머니 노릇을 해드리겠습니다. … 저는 마침내 갓난 아기보다도 더 죄가 없는 어린아이를 어머니로서 보살펴 드리는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받는 어린이!”
그러면서 막달라 마리아는 넘쳐흐르는 애정으로 앉아 계신 마리아의 머리를 끌어다가 가슴에 꼭 껴안고, 입을 맞추고, 쓰다듬고, 가볍게 굽슬굽슬한 흐트러진 머리칼을 귀 뒤로 가다듬고, 자꾸자꾸 새로 내려오는 눈물을 자기의 옷자락으로 닦아 드린다.…
여자들이 등잔들과 항아리들과 부리가 넓은 그릇들을 가지고 들어온다. 알패오의 마리아는 무거운 약연을 들고 있다.
“밖에 그대로 있을 수가 없어요. 바람이 좀 있어서 등불이 꺼져요.”하고 알패오의 마리아가 설명한다.
그 여자들은 한쪽에 자리잡는다. 그들은 가져온 모든 용구(用具)를 좁지만 긴 탁자에 얹어놓은 다음, 벌써 향유가 많이 들어 있는 반죽을 약연 속에 넣고, 작은 주머니에서 한줌씩 꺼내는 흰 가루를 섞어서 그들의 향유에 마지막 손질한다. 그들은 힘차게 반죽해서 섞고, 부리가 넓은 그릇에 가득 채운다. 그 그릇을 방바닥에 내려놓고, 다른 그릇을 가지고 같은 일을 되풀이 한다. 향료와 눈물이 나무기름에 떨어진다.
막달라 마리아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제가 당신께 마련해 드릴 수 있기를 바라던 기름바르기는 아니었습니다.”
사실 모든 여인들보다 더 능란한 막달라 마리아가 줄곧 향유의 배합을 조절하고 지도하였다. 그 향유가 어떻게나 독한지 여자들은 마침내 때마침 밝아오기 시작하는 정원으로 향한 문과 창문을 열기로 결정한다.
막달라 마리아가 작은 목소리로 그 말을 한 다음에는 여자들이 모두 더 크게 운다.
그들은 일을 끝냈다. 그릇들이 모두 가득 찼다.
여자들은 빈 항아리들과 이제는 쓸데 없는 것이 된 약연과 등불 여러 개를 가지고 나간다. 작은 방에는 등잔이 둘만 남아 있는데, 흔들리기 때문에 그 등불들도 펄럭이는 불빛으로 흐느끼는 것 같다.…
여자들은 다시 들어와서, 새벽 공기가 좀 쌀쌀하기 때문에 창문을 다시 닫는다. 그들은 겉옷을 입고, 큰 자루들을 가져다가 그 속에 향유 그릇들을 넣는다.
마리아는 일어나서 당신 겉옷을 찾으신다. 그러나 모든 여자들이 그 둘레로 바짝 다가와서 오시지 말라고 권한다.
“마리아는 몸을 가누지 못해요. 음식을 전폐하고 물만 드는 것이 이틀째나 돼요.”
“그래요, 어머니. 저희들이 빨리 잘 하겠습니다. 그리고 곧 돌아오겠어요.”
“염려 마세요. 저희들은 그분의 시신에 왕의 시신을 방부처리하듯 향유를 발라 드릴 것입니다. 보세요, 저희가 얼마나 값진 향유를 만들었는지요! 그리고 얼마나 많이 준비했는지요!…”
“저희는 지체와 상처를 조심하고, 저희 손으로 그분을 도로 제자리에 놓아드리겠습니다. 저희는 힘이 세고 또 어머니들입니다. 저희는 그분을 어린아이를 요람에 누이듯 모실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그 곳을 닫기만 하면 될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고집하신다.
“그것은 내 의무요”하고 말씀하신다.
“내가 항상 그를 돌보았어요. 그가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이 그를 돌보게 양보한 것은 그가 세상의 것이 된 지난 3년뿐이었어요. 지금은 세상이 그를 배척하고 버렸으니, 다시 내 것이 되었고, 나는 다시 그의 종이 되었어요.”
여자들의 눈에 띄지 않게 요한과 같이 문에 가까이 왔던 베드로는 이 말을 듣고 도망한다. 그는 자기의 죄를 한탄하기 위하여 눈에 안 띄는 어떤 구석으로 피해 간다. 요한은 문지방 근처에 그대로 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요한도 가고 싶기는 하지만, 어머니 곁에 남아 있는 희생을 한다.
막달라 마리아는 마리아를 당신 자리로 다시 모셔 간다. 그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무릎을 껴안고 사랑 가득한 비통한 얼굴을 마리아에게로 쳐들고 그분께 약속한다.
“그분은 당신의 영으로 모든 것을 아시고 보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그분의 시신에는 제가 입맞춤을 하면서 어머니의 사랑과 어머니의 소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압니다.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심한 자극이고 얼마나 큰 갈망인지를 알고, 우리에게 사랑인 사람과 같이 있고 싶어하는 것이 얼마나 간절한 향수(鄕愁)인지를 알아요. 그리고 이것은 황금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진흙인 치사스러운 사랑에도 있어요. 그런 다음, 사람들이 사랑할 줄을 모른 살아 계신 자비에 대한 거룩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죄녀가 알 수 있게 되면, 그 때에는 어머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기 우리 잔잔한 호숫가에서 제가 참으로 태어나던 날 저녁, 그분이 마리아는 많이 사랑할 줄 안다고 말씀하신 것을 어머니도 아시지요. 그런데 이 넘쳐흐를 듯한 사랑인 제 사랑은, 마치 기울어진 대야에서 넘쳐흐르는 물과 같이, 담위로 넘어가는 꽃핀 장미나무와 같이, 땔감을 만나 불이 붙어 더 높게 올라가는 불꽃과 같이, 그분께 완전히 흘러 들어가서, 사랑이신 그분에게서 새로운 힘을 얻었습니다. …
오! 왜 제 사랑하는 힘이 그분 대신 십자가에 못박히지 못했을까요! … 그렇지만 그분을 위해서 하지 못한 것을 – 즉 그분대신 고통당하는 것을 기뻐하고, 기뻐하고, 또 기뻐하면서 모든 사람의 멸시를 받으며 그분 대신 고통을 당하고 피를 흘리고 죽는 것, 제 생명의 흐름은 불명예스러운 십자가보다는 오히려 열광적인 사랑으로 인해 멎었을 것이고, 그 잿속에서는 하느님이 아닌 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새롭고 깨끗하고 더렵혀지지 않은 생명의 새롭고 순박한 꽃이 나왔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이렇게 그분을 위해서 하지 못한 모든 것을 어머님을 위해서는 아직 할 수 있습니다. … 제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어머님을 위해서. 저를 믿으셔요.
바리사이파 시몬의 집에서 그분의 거룩하신 발을 그렇게도 부드럽게 어루만질 줄을 알았던 제가 이제는 점점 더 은총을 받아들이는 제 영혼으로 한층 더 부드럽게 그분의 거룩하신 지체를 어루만지고, 그분의 상처를 다루고, 향유보다는 오히려 사랑과 고통의 힘으로 제 마음에서 끌어내는 향유를 더 발라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죽음은 그렇게도 많은 사랑을 주시고 그렇게도 많은 사랑을 받으신 그 육체를 상하게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사랑이 죽음보다 더 강하니까 죽음이 도망칠 것입니다. 사랑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그래서 저는 어머니의 완전한 사랑과 제 온전한 사랑을 가지고 제 사랑의 왕께 사랑으로 향유를 발라 드리겠습니다.”
마리아는 그다지도 많은 열정을 받을 만한 분을 마침내 찾아낼 수 있었던 이 정열적인 여자를 껴안으면서 그의 간청을 들어주신다.
여인들은 등불 하나를 가지고 나간다. 방안에는 등불이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다. 막달라 마리아는 남아 계시는 마리아께 입맞춤을 하고 맨 마지막으로 나간다.
집은 아주 깜깜하고 조용하다. 길은 아직 어둡고 쓸쓸하다.
요한이 묻는다.
“정말 제가 필요없습니까?”
“아니, 요한은 여기서 할 일이 있을지도 몰라. 갔다 올께.”
요한은 마리아가 계신 곳으로 돌아온다. “저는 오지 말라고 했어요…”하고 조용히 말한다.
“원통해 하지 말아라. 그 여자들은 예수의 사람들이지 네 사람들이 아니다. 요한아, 기도를 좀 하자. 베드로는 어디 있느냐?”
“모르겠습니다. 집 안에 있기는 한데, 보이지 않아요. 그 사람… 저는 그 사람이 더 강한 줄로 생각했었습니다. … 저도 괴로워요, 그렇지만 그 사람은 ….”
“그 사람은 두 가지 괴로움을 가지고 있다. 너는 한 가지뿐이고. 오너라, 그를 위해서도 기도하자.”
그리고 마리아는 천천히 “주기도문”을 외신다. 그런 다음 요한을 어루만지시면서 말씀하신다.
“가서 베드로를 찾아 오너라. 혼자 내버려두지 말고. 요 몇 시간동안 베드로는 너무 어둠 속에 있었기 때문에 세상의 희미한 빛도 감당하지 못한다. 길 잃은 네 형제의 사도가 되어라. 네 전도를 그에게부터 시작해라. 네가 갈 길은 멀 터인데, 그 길에서 베드로와 비슷한 사람들을 항상 만나게 될 것이다. 네 일을 동료에게 우선 시작해라….”
“그렇지만 뭐라고 말해야 합니까… 저는 모르겠습니다. … 걸핏하면 울거든요….”
“예수의 사랑의 계명을 그에게 말해라. 두려워만 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아직 넉넉히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라고 말해 주어라. 그리고 만일 그가 ‘나는 죄를 지었어’ 하고 말하면, 하느님께서는 죄인들을 너무 사랑하신 나머지 죄인들을 위해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기까지 하셨다고 대답해라. 이렇게 많은 사랑에는 사랑으로 보답해야 한다고 말해라. 사랑은 지극히 인자하신 주님께 대한 신뢰를 준다. 이 신뢰로 인해서 우리는 하느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이 신뢰를 가지고 우리는 하느님의 지혜와 인자를 알아보고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나는 보잘 것 없는 인간이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아시고, 그리스도를 용서의 보증과 지주(支柱)로 주신다. 내 비참은 그리스도와의 일치로 극복된다’고. 예수의 이름으로 모든 것이 용서를 받는 것이다.… 요한아, 가서 이 말을 해주어라. 나는 내 예수와 같이 여기 그대로 있겠다….”
그러면서 마리아는 거룩한 성면(聖面)수건을 쓰다듬으신다.
요한은 나가면서 문을 닫는다.
마리아는 전날 저녁과 같이 무릎을 꿇고 베로니카의 수건에 박힌 얼굴에 얼굴을 갖다 대고 기도를 하시며 아들과 말씀을 하신다. 다른 사람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는 강하시지만, 혼자 계실 때는 몹시 힘든 당신 십자가에 찍어눌리신다. 그러나 이따금씩, 이제는 말을 씌워 꺼지지 않게 된 불꽃과 같이 마리아의 영혼은 당신 안에서는 이제 죽을 수가 없게 되고 오히려 시간이 흐르는 데 따라 점점 커지는 바람(소망)을 향하여 올라간다. 그래서 마리아는 아버지께 당신의 바람을 말씀하시기로 한다. 당신의 바람과 청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