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건초가 햇볕에 마르고 있는 니까의 풀밭에 모여 있다. 육중하고 포장을 씌운 마차 두 대가 이 풀밭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다. 나는 여자 제자들을 모두 데려와서 선생님이 떠나보내고 강복하시는 것을 보고 마차들이 왜 기다리는지를 알았다. 성모님도 다른 제자들과 에논의 소년과 같이 가신다. 그리고 많은 제자들이 마차 양쪽에 와서 마차들이 소들의 느린 걸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때에 그들도 출발한다. 풀밭에는 사도들과 자캐오와 그의 친구들과, 얼굴이 알려지기를 원치 않는 것처럼 겉옷으로 폭 감싸고 있는 사람들의 작은 집단이 있다.
  예수께서는 천천히 풀밭 가운데로 되돌아오셔서, 벌써 반쯤 말라 오래지 않아 건초 창고로 가져갈 건초 더미에 앉으신다. 예수께서는 생각에 잠겨 계시고, 모든 사람들이 이 정신 집중을 존중하여 예수에게서 좀 떨어져서 서로 구별되는 세 집단을 이루고 있다.
  예수의 묵상은 계속되고 기다림도 계속된다. 햇볕은 점점 더 세어져서 풀밭을 내리쬐고, 풀밭에서는 건초 마르는 냄새가 몹시 풍긴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풀밭 가장자리, 과수원의 마지막 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는 곳으로 피해 간다.
  예수께서는 벌써 뜨거운 햇볕 아래 혼자 계신데, 흰 아마포 옷을 입으시고, 가벼운 비단으로 만든 흰 두건을 쓰셔서 아주 하얗게 보이신다. 두건은 산들바람이 지나갈 때에 가볍게 움직인다. 그것은 아마 신디카가 짠 두건인 것 같다. 이웃 외양간에서는 느리고 애처로운 소우는 소리가 들려오고, 과수원의 나뭇가지들과 타작마당에서는 새 새끼들의 짹짹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깃이 없는 새들과 버릇없는 병아리들이다. 그것은 봄마다 새로워지면서 계속되는 생명이다. 비둘기들은 공중에서 자신있게 조용히 날아 돌아다니다가 처마 밑에 있는 둥지로 돌아온다. 니까의 집과 이웃한 집에서인지 어떤 밭에서인지 모르겠는데, 자장가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처음에는 날카롭고 양 새끼가 매애매애하는 것처럼 떨리던 어린 아이의 작은 목소리가 작아지다가 잠잠해진다….
  예수께서 곰곰 생각하신다. 여전히 햇볕은 개의치 않으신 채 아직도 생각에 잠겨 계신다. 나는 혹독한 추위와 더위에 대한 복되신 예수님의 뛰어난 저항력을 여러 번 눈여겨 보았다. 나는 예수께서 더위와 추위를 몹시 느끼시면서도 극기의 정신으로 불평없이 참아 견디시는지, 또는 맹위를 떨치는 자연의 힘을 제어하시는 것과 같이 지나친 추위나 더위도 억누르시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은 소나기를 맞아 옷이 흠뻑 젖었거나 삼복더위에 땀을 줄줄 흘리시면서도, 추위나 더위 때문에 귀찮아하는 몸을 하시는 것을 한번 알아차리지 못하였고, 사람이 보통 심한 더위나 추위에 대하여 취하는 예방 조치를 취하시는 것을 한번도 보지 못하였다.

  (나는 어느 날 팔레스티나에서는 사람들이 맨머리로 있는 일이 없고, 따라서 예수의 금발 머리가 햇빛에 반짝인다고 말할 때 내가 잘못 표현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팔레스티나에서는 맨머리로 다닐 수 없는 것이 사실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팔레스티나에 가 본 적이 없어서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것은 예수께서는 보통, 머리에 아무 것도 쓰지 않고 다니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혹 걷기 시작하실 때에 두건을 쓰고 계셔도, 그것을 견디어내지 못하는 것처럼 이내 벗어서 손에 드시고, 주로 얼굴에서 먼지와 땀을 씻는 데 쓰셨다. 비가 오면 당신의 겉옷자락 하나를 머리 위에 올리신다. 해가 있으면, 특히 길을 가시는 때에는 햇빛을 막기 위하여 단속적인 것이라도 그늘을 찾으신다. 그러나 오늘과 같이 가벼운 베일을 머리에 쓰고 계신 것은 드문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지적을 쓸데없는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도 내가 보는 것의 일부를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생각하시는 동안 이 말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이렇게 오랫동안 여기 머무르는 것은 선생님께 해가 될 것입니다!”하고 사도의 무리에도 자캐오의 집단에도 속하지 않은 어떤 사람이 외친다.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가서 그 말을 합시다…. 또 그리고… 나는… 너무 지체하고 싶지는 않아요” 하고 어떤 사람이 대답한다.
  “암! 그렇구 말구요. 아도민산은 밤에는 별로 안전하지 않거든요….” 그들은 사도들 가까이에 가서 그들과 말을 한다.
  “좋습니다. 내가 가서 당신들이 떠나고 싶어한다고 그들에게 말하지요.”
  “아니, 그게 아닙니다. 우리는 저녁 전에 적어도 엔세매스에 갔으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유다는 빈정거리는 웃음을 지으면서 간다. 그는 선생님께로 몸을 구부리고 말한다.
  “저 사람들은 햇볕이 선생님께 해를 끼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만-그러나 사실은 그들이 사람들의 눈에 너무 띄는 것이 그들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유다인들은 돌려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가마…. 내가 생각한 것은… 그들의 말이 옳다.” 그러면서 예수께서 일어나신다.
  “저만 빼놓고는 모두가…” 하고 가리옷 사람이 투덜거린다.
  “나는 당신들 모두에게 떠나가라고 벌써 말했습니다. 어제 내가 당신들에게 그 말을 했어요. 나는 예루살렘에 가서나 말하겠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희가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싶어서 그러는 것입니다. 저희가… 선생님께 개별적으로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
  “이 사람들을 만족시켜 주십시오. 이 사람들은 우리를 특히 저를 무서워합니다.” 하고 가리옷의 유다가 또 교활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한다.
  “우리는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원하면,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 것입니다. 그러나 팔레스티나에서 아직 모든 사람이 비겁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들은 다윗의 용사들의 후손들이니까, 당신이 만일 노예가 아니고 아직 업신여김을 받는 사람이 아니면, 우리 선조에 대해 경의를 표해야 할 것입니다. 그분들은 제일 먼저 거룩한 왕의 편을 들었고, 제일 먼저 마카베오 형제들의 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다윗의 후손께 경의를 표하고 조언을 드리는 데에 제일 앞장을 섭니다. 선생님께서는 위대하시지만,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인생의 결정적인 시간에는 친구가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요”하고 겉옷과 두건을 포함한 옷이 온통 아마포로 되어 있고 그의 준엄한 얼굴을 별로 드러내지 않은 어떤 사람이 격렬하게 대답한다.
  “선생님은 우리를 친구로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는 3년 전부터 선생님의 벗입니다. 당신들이….”
  “우리는 선생님을 알지 못했었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여러 번 거짓 메시아들에게 속아서 자기가 메시아라고 단언하는 사람을 쉽게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있었던 일로 진상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하시는 일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생님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당신들은 선생님께 당신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느님의 아들로서는 필요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으로는 필요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사람이 되려고 오셨는데, 사람에게는 항상 그의 형제인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왜 겁을 냅니까? 왜 우리가 선생님께 말씀드리는 것을 원치 않습니까? 대답해 보시오.”
  “내가요? 말하시오! 말해요! 죄인들의 말은 의인들의 말보다 더 잘 들으십니다.”
  “유다야! 나는 그런 말들이 네 입술에는 불같은 것이리라고 생각했었는데! 네 선생이 비판하지 않는 곳에서 어떻게 네가 감히 비판을 하느냐? ‘만일 너희들의 죄가 진홍색 같으면 눈같이 희어질 것이고, 너희들의 죄가 연지벌레같이 새빨가면 양털처럼 희어질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선생님은 모르시지만, 이들 중에는….”
  “입 다물어라! 당신들, 말하시오.”
  “주님, 저희들은 이것을 압니다. 선생님에 대한 고발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율법과 안식일을 어기시고, 사마리아인들을 우리들보다 더 사랑하시고, 세리들과 창녀들을 변호하시고, 베엘제불과 다른 어두움의 세력과 진짜 마술의 힘을 빌고 성전을 미워하고 성전의 파괴를 원하신다고 비난합니다.”
  “그만 하시오. 누구나 비난을 할 수 있습니다. 비난을 증명하기는 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 가운데 그 비난을 뒷받침하는 사람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혹 그들 가운데 의인들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수형자(受形者)의 표상인 욥의 말로 당신들에게 대답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수형자는 나입니다. ‘내가 당신들을 의인으로 생각하다니 그것은 당치도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내 무죄를 주장하겠고, 내가 시작한 변호를 단념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내 일생 동안 내 마음이 아무 것도 내게 비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 보시오, 나는 거짓말쟁이도 할 수 있는 거짓말로 나 자신을 변호하지 않기 때문에 온 이스라엘이 증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항상 율법을 존중하라고, 더 존중하라고까지도 가르쳤고, 율법에 대한 순종을 완전하게 하였고, 내가 안식일을 어기지 않았다는 것을 온 이스라엘이 증언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무슨 말을 하려고 하십니까? 말하시오! 당신은 어떤 몸짓을 하다가 멈추었습니다. 말하시오!”
  수수께끼 같은 작은 집단에서 어떤 사람이 말한다.
  “주님, 최고회의의 마지막 회의에서 주님께 대한 고발장을 읽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계시던 사마리아의 에프라임에서 온 것이었는데, 그 고발장은 주님이 여러번 안식일을 어기셨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또 욥과 함께 당신에게 대답하겠습니다. ‘그런데 위선자가 인색으로 가로채더라도 하느님께서 그의 영혼을 구해내지 않으시면 그의 희망은 어떤 것입니까?’ 어떤 얼굴을 꾸미고, 그 외양 속에 다른 마음을 가지고, 내 이익을 원치 않기 때문에 약탈을 저지르기를 원하는 사람은 벌써 지옥의 길을 걸어가고 있으며, 그에게는 돈이 있는 것과 명예를 바라는 것과, 거룩한 명령을 배반하지 않기 위하여 내가 원하지 않은 곳에 올라가기를 꿈꾸는 것이 쓸데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혹 우리가 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 아닌 다른 일로 그에 대해 관심을 가지겠습니까?”
  “그러나 최고회의는 ‘보시오, 이것이 그에 대한 사마리아인들의 사랑이오! 그들은 우리의 애호를 얻기 위해서 그를 고발합니다’ 하고 말하면서 선생님을 웃음거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그 글을 쓴 것이 사마리아 사람의 손이라고 확신합니까?”
  “아닙니다. 그러나 사마리아가 요즈음에는 선생님을 냉혹하게 대했습니다….”
  “최고회의가 보낸 사람들이 사마리아를 뒤흔들었고 터무니없는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거짓 충고로 선동했기 때문입니다. 하기는 그 터무니없는 바람을 내가 부수어야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에프라임과 유다에 대하여 이런 말이 있습니다.-하기는 은혜를 잊고 위협 앞에 굴복하는 사람의 마음은 항상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곳에 대하여도 이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너희들의 친절은 아침 구름과 같고, 아침에 증발되는 이슬과 같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죄 없는 사람을 고발하는 사람들이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것이 증명되지는 않습니다. 그릇된 사랑이 그들을 내게로 내몰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신착란을 일으킨 사랑입니다. 다른 어떤 증거가 내가 사마리아 사람들을 더 사랑한다는 비난을 증명합니까?”
  “선생님께서 사마리아 사람들을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유다야, 들어라’ 하고 말씀하시는 대신에 항상 ‘이스라엘아, 들어라’하고 말씀 하신다고 비난합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유다를 비난하실 수 없다고….”
  “정말입니까? 라삐들의 지혜가 여기서 빗나가는 것입니까? 그래 나는 예레미야가 말하는 것처럼 그 때문에 유다가 구원을 받을 다윗에게서 나온 싹이 아닙니까? 그 때에 예언자는 유다가, 특히 유다가 구원을 받을 필요가 있으리라는 것을 예견합니다. 그리고 그 싹은 주님이라 우리의 의인이라 불릴 것이다. 그것은 ‘다윗에게는 이스라엘의 가문의 옥좌에 앉는 후손이 절대로 없지 않을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라고 역시 예언자가 말합니다. 그럼 뭡니까? 예언자가 잘못 생각했단 말입니까? 그가 혹 취해 있었단 말입니까? 무엇에 취해 있었겠습니까? 속죄로 취해 있었지, 다른 것으로 취해있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나를 비난하기 위하여 예레미야가 놀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고 주장할 수는 없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다윗의 싹이 유다를 구원하고 이스라엘의 왕좌에 앉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의 빛 때문에 예언자는 유다보다는 오히려 이스라엘이 선택될 것이고, 왕이 이스라엘 쪽으로 갈 것이며, 유다는 구원을 얻기만 하는 것도 은총일 것임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나라가 이스라엘 왕국이라 불릴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왕국일 것입니다. 다른 예언자의 말대로 한 달 동안에 – 아니 한달 동안에라니요?- 하루도 안 걸려서 세명의 거짓 목자들을 심판하고 단죄하고, 또 그들의 영혼의 문을 닫고, 표상(表象)으로서의 나는 갈망하면서 실제의 나는 사랑할 줄 몰랐기 때문에 그들에게 내 영혼의 문을 닫은 다음, 갈라진 부분을 다시 모아 주님 안에서 재건하는 그리스도의 왕국일 것입니다.
  그런데 나를 보내시고 내게 두개의 회초리를 주신 분이, 잔인한 자들에게는 은총이 잃어지고, 재앙이 하늘에서 오지 않고 세상에서 오도록 하기 위하여 회초리를 둘 다 부러뜨리셨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주는 재앙보다 더 혹독한 재앙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될 것입니다. 오! 이렇게 되고 말고요! 내가 매를 맞을 것이고, 양들은 3분의 2가 흩어질 것입니다. 3분의 1만이, 언제나 3분의 1만이 구원을 받고 끝까지 항구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3분의 1은 내가 제일 먼저 지나가는 불로 지나가서 은과 금같이 정화되고 단련될 것이고, ‘너희들은 내 백성이다’ 하는 말을 들을 것이며, 그들은 내게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소름끼치는 행위의 값이고 파렴치한 품삯인 30 데나리우스를 받았을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화들은 나온 곳으로 다시 들어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죄 없는 사람의 피와 가장 견딜 수 없는 실망에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의 땀으로 더럽혀진 그 돈을 보고 돌들이 무서워서 소리를 치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돈은 옛말에 있는 것과 같이 바빌론의 노예들에게서 외국인들을 위한 밭을 사는 데 쓰일 것입니다. 오! 외국인들을 위한 밭! 그 외국인들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유다와 이스라엘 사람들, 머지 않아, 그리고 오랜 세월 두고두고 조국이 없을 그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땅이었던 땅까지도 그들을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생명을 물리치고자 했기 때문에 그들이 죽은 다음에도 땅이 스스로 그들을 토해낼 것입니다. 무한히 소름 끼치는 일!….“
  예수께서는 지치신 듯이 입을 다무시고 머리를 기울이신다. 그런 다음 고개를 드시고 눈길을 휘 둘러 거기있는 사람들, 사도들과 은밀한 제자들과 친구들과 같이 있는 자캐오를 보신다. 그리고 악몽에서 깨어나신 것처럼 한숨을 쉬신다.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당신들이 무슨 다른 말을 또 하셨지요? 아! 내가 세리들과 창녀들을 사랑한다고 사람들이 비난한다는 말을 했지요.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들은 병자들이고 죽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생명인 나는 나를 생명으로 그들에게 줍니다. 자유를 되찾아 내 양떼에 들어온 당신들, 이리 오시오” 하고 자캐오와 그의 친구들에게 명령하신다.
  “와서 내 명령을 들으시오. 나는 당신들보다 더 결백한 많은 사람에게 ‘예루살렘에 오지 마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당신들에게는 ‘오시오’ 하고 말합니다. 이것이 불공평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불공평합니다.” 하고 가리옷 사람이 말을 막는다.
  예수께서는 듣지 못하신 것 같이 하시며 자캐오와 그의 친구들에게 계속 말씀하신다.
  “그러나 당신들에게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이야말로 당신들의 착한 뜻이 능하신 분의 도움을 받고 이제부터는 은총 안에서 자유로이 자라기 위하여 다른 나무들보다 이슬이 더 필요한 나무들이기 때문에 오시오. 다른 일들에 대하여는… 혼동할 수 없을 표로 하늘 자체가 대답할 것입니다. 정말로 살아 있는 성전은 무너뜨려졌다가 사흘만에 다시 세워져서 영원히 남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흔들리기만 해서 이겼다고 믿을 죽은 성전은 죽어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가시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시오. 속죄를 하면서 내 날을 기다리시오. 그러면 내 날의 여명이 당신들을 결정적으로 빛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하고 겉옷으로 감싸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 그런 다음 자캐오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리고 당신들도 가시오. 그러나 지금은 가지 마시오. 안식일 다음 날 새벽에 예루살렘에 있도록 하시오. 의인들 곁에 나는 다시 일으켜진 사람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왕국에는 착한 뜻을 가진 사람의 수효만큼 자리가 수없이 많으니까요.” 그리고는 잎이 우거지고 그늘이 진 과수원을 거쳐 니까의 집을 향하여 가신다.
  작은 오솔길이 땅이 푸르른 가운데 누르스름한 리본을 던져 놓은 것 같은데 암탉 한마리가 꼬꼬댁거리며 그 길을 건너가고 금 빛깔의 병아리들이 따라 간다. 어미닭은 그렇게도 많은 사람을 보고 떨면서 더 크게 꼬꼬댁거리고, 새끼들에게 함정이 있을까봐 염려하여 몸을 웅크리고, 새끼들을 보호하려고 날개를 편다. 그러니까 병아리들은 짹짹거리면서 뛰어 와 어미의 깃 속으로 들어가 숨고, 안전하게 되었을 때에야 짹짹거리는 것을 그쳐서 이제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 암탉을 보시는데…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선생님이 우신다! 왜 우실까? 선생님이 우셔!” 하고 사도, 제자, 구원을 받은 죄인들, 이렇게 모두가 속삭인다. 그리고 베드로는 요한에게 “왜 우시는지 선생님께 여쭈어보게.” 하고 말한다.
  그러니까 요한은 늘 하는 태도로 존경심으로 몸을 약간 구부리고 밑에서 예수를 올려다보며 묻는다.
  “주님, 왜 우십니까? 혹 사람들이 주님께 말씀드린 것이나 주님이 그전에 말씀하신 것 때문입니까?”
  예수께서는 몸을 흔드신다. 그리고 서글픈 미소를 지으시고 계속 다정하게 병아리들을 보호하는 암탉을 가리키시면서 말씀하신다.
  “아버지와 하나인 나도 에제키엘이 말한 것과 같이 헐벗고 부끄러운 예루살렘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보고 그 곁으로 지나갔는데, 때가, 즉 내 사랑의 때가 오자 나는 예루살렘 위에 내 겉옷을 펴서 그 헐벗은 몸을 가려주었다. 나는 예루살렘의 아버지 노릇을 한 다음 여왕을 삼으려고 했고, 어미닭이 새끼들에게 하는 것 모양으로 보호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암탉의 새끼들은 어미가 그들을 돌보는 것을 고맙게 여기고 그 날개 밑으로 피해 들어가는데, 예루살렘은 내 겉옷을 밀어낸다…. 그러나 나는 내 사랑의 의도를 그래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다음에는 내 아버지께서 당신 뜻대로 행하실 것이다.” 그러면서 예수께서는 암탉을 불안에 빠뜨리지 않기 위하여 풀밭으로 내려가 지나가시는데, 눈물은 아직도 슬퍼하는 창백한 얼굴로 흘러 내린다.
  모든 사람이 예수께서 하시는 대로 하며 따라 가고, 니까의 집 어귀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를 한다. 거기서 예수께서 사도들만을 데리고 들어가시고, 다른 사람들은 볼 일을 보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