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엄청나게 큰 호두나무 그늘로 데려가셔서 또 가르치신다. 그 호두나무는 서 있는 자리에서 가지를 뻗어 마리아의 집 정원을 굽어 보고 정원 전체를 끼고 퍼졌다. 날씨는 어둡고 소나기가 곧 쏟아질 것 같다. 아마 그래서 예수께서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가지 않으시는 모양이다. 마리아는 집에서 정원으로 왔다갔다 하시는데, 매번 머리를 들어 나무 줄기 곁의 풀에 앉아 제자들에 둘러싸여 계신 아들 예수를 바라보고 미소를 보내신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어제 무모한 말 한마디가 불러 일으켰던 일이 오늘 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가르침은 이러하다.
확고하게 생각하여라. 그러고 이것이 너희 행동방식이 되어야 한다. 즉 감추어진 것이 영원히 감추어진 채로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기적적인 표로 당신의 아들들 중 한 사람의 업적을 알리도록 배려하시거나, 형제의 공로를 인정하는 의인들을 통하여 알리실 수도 있고, 또 사탄이 그렇게 할 수도 있다. 사탄은 조심성 없는 사람의-그 이상의 심한 말은 하고 싶지 않다-입을 통하여 선인들은 애덕을 어기는 데까지 가지 않으려고 말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들추어내서, 사람들의 생각에 혼란을 일으키도록 진실을 왜곡한다. 이렇게 해서 감추어져 있는 일이 알려지는 때가 언제나 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항상 명심하여라. 즉 이러한 사정을 생각하고 악의 비탈로 너희가 미끄러져 내려가지 않게 되어야 하며, 한편으로는 너희가 행하는 선행을 발표하라는 자극을 받지 말아야 한다. 착한 마음을 가지고, 참으로 착한 마음을 가지고 행동하되, 온전히 인간적인 착한 마음을 가지고 행동하는 때가 얼마나 많으냐! 그런데 그 행동이 오직 인간적인 행동일 뿐이고 완전히 순수하지 않은 의향에서 나오기 때문에, 그 행동을 한 사람은 그 행동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라고, 그것이 알려지지 않은 채로 있는 것을 노발대발하고 신경질을 내며 그 선행이 알려지도록 할 방법들을 연구한다.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 선행을 하고 그것을 영원하신 주께 맡겨드려라. 오! 주께서는 만일 그렇게 하는 것이 너희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면 그것을 사람들에게도 알게 하실 것이다. 이와 반대로 만일 그것을 알게 하는 것이 교만한 자기 만족이 다시 나타나게 하는 결과를 만들어 올바른 목적으로 시작한 너희 행동에서 모든 가치를 없애게 될 가능성이 있을 때에는, 하느님께서 그것을 비밀로 해 두셨다가 이 다음 하늘나라에서 천사와 성인이 모두 모인 앞에서 그것에 대한 영광을 너희에게 돌려주시기로 하신다.
어떤 행동을 보게 되는 사람은 절대로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가지고 판단하지 말것이다. 사람의 행동이 어떤 때 기분 나쁘게 보이지만 칭찬할 만한 동기가 숨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결코 비난하지 말아라. 예를 들어 어떤 아버지가 게으르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아들에게 ‘나가라’ 하고 말할 수 있는데, 이것이 냉혹과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회피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그의 ‘나가라’ 하는 말 속에는 아들 편에서 보다도 오히려 아버지 편에서 나오는 쓴 눈물이 들어 있고, 또 ‘네 게으름을 뉘우친 후에는 돌아오너라’ 하는 말과 그 말이 실증되기를 원하는 소원이 곁들여져 있다. 이것은 다른 아들들에 대한 공평이기도 하다. 이 행동은 방탕한 아들이 그의 것 이외에 다른 아들들의 것까지도 방탕으로 써버리는 것을 막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만일 이 말이 하느님과 자기 자녀들에 대하여 과오를 범하고 있으면서 그의 이기주의로 인하여 자기를 하느님보다 높다고 생각하고 아들의 정신에 대해서까지도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버지에게서 오는 것이라면 나쁜 말이 될 것이다. 정신에 대하여는 권리를 가질 수가 없다. 정신은 하느님께 속하여 있는데, 하느님께서는 정신이 굴복하거나 말거나 그 자유를 강제하지 않으신다. 세상 사람들체 대하여 행위는 같다. 그러나 그 행위들이 서로 얼마나 다르냐! 하나는 정의의 영역에 속해 있는가 하면, 또 하나는 죄가 되는 독단의 영역에 속해 있다. 그러므로 절대로 아무도 판단하지 말아라.
어제 베드로는 유다에게 ‘자네 어떤 선생에게서 배웠나?” 하고 말하였다. 이제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람에게서나 자기 자신에게서 보는 것을 가지고 아무도 다른 사람들을 비난해서는 안된다. 선생은 그의 제자들에 대하여 한 가지 말 밖에 쓰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열 사람은 의인이 되고 열사람은 악인이 되느냐? 그것은 각자가 마음 속에 가진 자기의 것을 선생의 말에 보태는데. 이것이 선 쪽으로 기울기도 하고 악 쪽으로 기울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선생이 주입시키려고 애쓰는 선이 어떤 제자의 마음을 지배하는 지나친 악 때문에 없어진다고 해서 어떻게 선생이 잘못 가르쳤다고 비난할 수 있겠느냐? 성공의 첫째 요인은 너희들에게 있다. 선생은 너희들의 자아(自我)를 다듬는다. 그러나 만일 너희가 개선할 가능성이 없으면 선생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나는 무엇이냐? 잘 들어 두어라. 너희는 나보다 더 지혜롭고 더 참을성 있고 더 완전한 선생을 만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내 제자 중의 어떤 제자에 대하여도 사람들은 ‘아니 저 사람이 어떤 선생에게서 배웠나?’ 하고 말할 것이다.
너희들은 판단할 때에 결코 개인적인 동기에 좌우되지 말아라. 어제 유다는 자기 지방에 대한 지나친 사랑으로 내가 그의 지방에 대해 불공평하게 보는 줄로 생각하였었다. 사람은 조국애나 어떤 사상에 대한 사랑 같은 저 헤아릴 수 없는 요소들의 영향을 받아서 방향을 잃은 물총새처럼 그의 목표에서 빗나가는 일이 자주 있다. 목적은 하느님이시다. 분명히 보려면 하느님을 통해서 보아야한다. 자기 자신이나 어떤 다른 것을 하느님 위에 두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혹 어떤 사람이 실수를 하게 되면‥‥ 베드로야! 또 너희 모두들! 융통성 없는 사람이 되지 말아라. 너희들 중의 어떤 사람이 저질러서 너희들의 감정을 몹시 상하게 하는 잘못을 너희는 한번도 그런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었다는 것이 확실하냐? 너희들이 그러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느냐 말이다. 또 너희가 그런 잘못을 저지른 일이 없다고 가정하고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너희들은 하느님께 감사를 해야 한다. 그것뿐이다. 그리고 주의해야 한다. 너희가 이 날까지 피한 것에 내일 빠지는 일이 없도록 매우 그리고 계속적으로 주의해야 한다. 보아라. 오늘은 우박이 당장 쏟아질 것 같기 때문에 하늘이 어둡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을 살펴보고 ‘집에서 멀리 나가지 말자’고 하였다. 그렇다면 아무리 위험하더라도 죄로 인하여 하느님의 우정을 잃는 것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은 우리가 이렇게 판단할 줄 알면서 영혼에 대한 위험이 어디에 있는 지는 왜 모른단 말이냐?
보아라. 저기 내 어머니가 계시다. 너희들은 내 어머니 안에 악에 대한 경향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느냐? 그렇다면, 사랑이 어머니로 하여금 나를 따라오시도록 충동을 일으키기 때문에, 어머니는 내게 대한 사랑이 그것을 요구할 때에는 집을 떠나실 것이다. 오늘 아침에도 내게 그것을 부탁하셨다. 내 선생님이신 어머니가 내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얘야, 네 제자들 가운데에 네 어미도 있게 해 다오. 나도 네 가르침을 배우고 싶다’고. 이 가르침을 당신 태중에 차지 하셨고, 또 그 전에 장차 사람이 될 하느님 말씀의 어머니가 되실 분에게 주신 하느님의 선물로 당신 정신에 그 가르침을 차지하고 계셨던 내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지만‥‥내가 하느님과의 일치를 잃을 가능성이 없게, 또 그 고약한 냄새가 사방에 스며든다고 말한 그 세상이 내 마음을 타락시킬 가능성이 없이 네게로 갈 수 있는지는 내가 판단할 일이다. 하느님의 것이었고, 지금도 하느님의 것이고, 또 하느님의 것이기만을 원하는 내 마음을 말이다. 나 자신을 살펴보는데, 내가 아는 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그리고 여기에서 내 어머니는 그럴 생각은 없었지마는 당신 자신에게 가장 고귀한 찬사를 주셨다) 사실 나는 내가 성전의 꽃이었던 시절의 순박한 평화와 30년이 넘게 주부노룻을 하는 지금 내 안에 가지고 있는 평화 사이에 차이를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 영의 일을 잘 알지 못하고 잘 판단하지 못하는 자격없는 여종이다. 너는 말씀이고 지혜이고 빛이니, 네 가엾은 어미에게 빛이 되어 줄 수 있다. 주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 존재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너를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네 어미에게 말이다’ 하고. 그래서 나는 감탄으로 떨리는 마음으로 이렇게 말씀드려야 했다. ‘어머니께 말씀드리지만, 어머니를 타락시킬 수 있는 것이 세상이 아니라, 세상이 오히려 어머니로 인하여 향기롭게 될 것입니다’ 하고.
너희들이 보다시피, 내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인생의 위험을 볼 줄 아셨다. 당신에 대하여도, 당신에 대해서까지도 위험이 있다고 볼 줄 아셨다. 그런데 너희 남자들이 그 위험들을 못본단 말이냐? 오! 정말이지 사탄이 망을 보고 있다고 너희들에게 말해야 하겠다.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는 사람들만이 승리를 거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느냐고 묻느냐? 다른 사람들에게는 씌어진 대로 될 것이다.”
“선생님, 어떻게 씌어 있습니까?”
“‘그러나 카인은 달려들어 아벨을 죽였다. 그리고 야훼께서 카인에게 물으셨다.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 아벨을 어찌 하였느냐? 네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 그러므로 너는 제 아우의 혈맥을 끊은 형의 손으로 흘린 사람의 피를 맛본 온 땅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며, 사람의 피를 갈망하는 땅의 그 소름끼치는 허기증은 끝나는 날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피로 독을 먹은 땅이 네게 대하여는 나이들어 수태할 능력을 잃은 여인보다도 더 불모의 땅이 될 것이다. 너는 평화와 빵을 찾아 도망쳐 다닐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얻어 만나지 못할 것이다. 너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어떤 꽃에서도, 어떤 초목에서도, 어떤 물에서도, 어떤 음식에서도, 피를 보게 될 것이다. 하늘이 네게는 피로 보일 것이고, 바다도 피로 보일 것이며, 하늘과 땅과 바다에서는 하느님의 목소리와 죄없는 네 아우의 목소리와 마귀의 목소리, 이렇게 세 가지 목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그래서 그 목소리들을 듣지 않으려고 너는 네 목숨을 스스로 끊을 것이다>‘”
“창세기에는 그렇게 쓰여 있지 않습니다.” 하고 베드로가 지적한다.
“창세기에 그런 말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잘못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아벨들의 새로운 카인들을 위하여 이 말을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들과 원수를 감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수와 하나가 될 사람들을 위하여 말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선생님, 저희들 가운데에는 그럴 사람이 없겠지요?”
“요한아, 성전의 장막이 찢어질 때 굉장한 진리가 온 시온 위에 빛날 것이다.”
“주님, 어떤 진리입니까?”
“어둠의 자식들이 빛과 접촉을 하였지만 헛된 일이었다는 진리이다. 요한아, 이것을 잘 기억해 두어라.”
“제가 어둠의 아들이 되겠습니까?”
“아니다, 너는 아니다. 그러나 이 죄를 세상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위하여 이 말을 기억하여라.”
“주님, 어떤 죄입니까? 카인의 죄입니까?”
“아니다. 그것은 사탄의 찬가의 첫번째 화음이었다. 나는 완전한 죄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다. 생각도 할 수 없는 죄, 그것을 이해하기 위하여는 하느님의 사랑과 사탄의 정신을 통하여 바라보아야 하는 죄이다. 그것은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증오만이, 무한한 선과 무한한 악만이 이러한 제물과 이러한 죄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너희들 알아듣겠느냐? 사탄이 이 말을 듣고 그 죄를 완수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부르짖고 있는 것 같다. 구름이 갈라지며 번개질을 하고 우박이 쏟아지기 전에 가자.”
그리고 그들은 뛰고, 뛰어오르고, 건너뛰고 하면서 마리아의 정원으로 내려온다. 그러는 동안 폭풍우가 세차게 몰아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