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마리아께서 말씀하신다.
  “기쁨 가운데서 -하느님께서 내게 주시려고 나를 부르시는 사명을 깨달았을 때, 나는 기쁨이 가득 찼었으니까- 내 심장은 마치 오므라져 있던 백합꽃이 활짝 벌어져서 피가 흘러나와서 그것이 주님의 씨를 위한 땅이 되었다.
  어머니가 된 기쁨.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를 하느님께 바쳤었다. 그것은 지극히 높으신 이의 빛이 내게 세상의 악의 원인을 아주 명백히 보여 주셨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내게서 사탄의 흔적을 지우기를 원하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티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을 알지 못했었다. 내가 그렇다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이 특은을 생각하기만 해도 자만이고 교오였을 것이다. 과연 나는 인간에게서 났기 때문에 내가 티 없는 사람이 되라고 선택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내게는 허락되지 않았었다. 천해지기를 원했던 하와, 은총의 피조물에서 하등 피조물의 수준으로 내려가기를 원했던 하와의 타락을 보신 아버지의 고통을 하느님의 성령께서 내게 가르쳐 주셨다. 나는 내 생각과 내 소원과 내 인간관계에서 나를 더럽혀지지 않게 지키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내 육체를 천사와 같은 순결에까지 들어올림으로써 그 고통을 덜어드리겠다는 소원을 품고 있었다. 오직 하느님을 위하여 내 심장이 뛰고, 오직 하느님을 위하여 내 존재 전체를 바치겠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내게 육체의 강렬한 흥분은 없었지만 그래도 어머니가 될 수 없다는 희생은 내게 아직 있었다.
  비천하게 만드는 모든 것이 면제된 상태로 어머니가 됨을 조물주이신 아버지께서 하와에게도 주셨었다. 관능의 부담감이 없이 즐겁고 깨끗한 어머니됨을! 나는 그것을 체험하였다. 이 부(富)를 포기함으로 하와는 얼마나 가난해졌느냐! 불멸보다도 더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너희들에게 과장인 것처럼 보이지 말아야 한다. 내 예수와 그의 어머니인 나는 죽음의 우울감을 경험했다. 나는 기운이 다해서 잠이 든 다정스러운 무기력을, 내 예수는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의 무서운 무기력을 체험하였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도 죽음은 왔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침해도 없는 어머니됨은 새로운 하와인 나에게만 왔다. 그래서 나는 육체에 고통을 당하지 않고 어머니가 되기로 되어 있던 여인의 운명이 얼마나 즐거운 것이었을까 하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깨끗한 어머니됨의 소원이 온전히 하느님의 것인 동정녀에게 있을 수 있었고, 또 실제로 있었다. 이 어머니됨은 여인의 영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 사회에서는 어머니가 된 여자가 얼마나 존경을 받았는지를 생각하면, 너희들은 내 서원으로써 이 스스로 끊어버림을 수락하면서 바치기로 동의한 희생을 한층 더 높게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제는 당신 여종에게 영원히 인자하신 분이 나를 당신 옥좌에 꽃이 되게 하시려고 내 몸을 꾸몄던 순진함을 빼앗지 않으신 채 그 은혜를 내게 주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것으로 사람의 어머니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는 이중의 기쁨을 누리는 그윽한 환희를 맛보았다.
  그를 통하여 평화가 하늘과 땅을 다시 함께 결합시키는 여인이 되는 기쁨.
  아아!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위하여 이 평화를 갈망했는데, 능하신 분의 불쌍한 종인 나를 통하여 이 평화가 세상에 온다는 것을 아는 기쁨! ‘사람들아, 이제는 울음을 그쳐라. 너희들을 행복하게 할 비밀을 내 안에 간직하고 있다. 그 비밀은 마치 나의 침범되지 않은 내 태 안에 하느님의 아들이 들어 있는 것처럼 내 안에, 내 마음 속에 들어 있고 그 위에 봉인이 되어 있기 때문에 너희에게 말해 둘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벌써 그것을 너희들 가운데로 가져왔고, 흘러가는 시간마다 너희가 그것을 보고 그 거룩한 이름을 알게 될 순간을 다가 놓는다’고 말하는 기쁨!
  하느님께 기쁨을 드린 기쁨, 행복하게 되신 그의 하느님을 믿는 여인의 기쁨 !
  아아! 하느님의 마음에서 하와의 불복종과 하와의 교만과 그의 의심 많음에서 오는 쓴 고통을 치워드렸다는 기쁨! 내 예수는 최초의 부부가 어떤 죄로 더러워졌는지를 이해시켰다. 나는 그 죄를 그것이 내려온 길을 반대로 다시 감으로써 없애버렸다.
  죄의 시작은 불복종에 있다. ‘이 나무 열매는 먹지 말고 이 나무를 건드리지 말아라’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었다. 하느님께서 천사들만이 그들보다 높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그 나무만 빼놓고는 모든 것을 만지고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던 피조물의 왕인 남자와 여자, 그들은 하느님의 금지를 무시하였다.
  나무, 그것은 당신 자녀들의 복종을 시험하는 방법이었다. 하느님의 계명에 복종한다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선이다. 하느님께서는 선밖에 명령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불복종은 무엇이냐? 그것은 악이다, 불복종은 사탄의 활동에 유리한 터전인 반항의 감정을 영혼 안에 넣어주기 때문이다.
  하와는 거기에서 선을 받기 위하여 피했어야 할 그 나무에 가까이 갔다. 그러나 나무에 가까이 한 것이 반대로 그에게 악을 주었다. 하와는 특별한 것이 있는 것을 보고 싶어하는 어린 아이같은 호기심에 끌리고, 자기는 강하고 순수하며, 모든 것이 자기에게 복종하고 아무 것도 자기에게 해를 끼치지 못할 에덴의 여왕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계명은 쓸데 없는 것이라고 판단하게 하는 무분별에 끌려서 그리로 다가간다. 하와의 자만이, 벌써 교오의 누룩인 자만심이 그의 파멸의 원인이 된 것이다.
  나무 근처에서 하와는 유혹자를 만난다. 하와의 무경험에, 그의 처녀로서의 순진한 무경험에, 그의 무경험의 약함에 대고 유혹자는 거짓말의 노래를 부른다. ‘너는 악이 있다고 생각하지? 그렇지 않다. 하느님이 네게 그렇게 말한 것은 너희들을 그의 권력의 노예로 붙들어두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왕들이라고 믿지? 너희는 야수와 같이 자유롭지도 못하다. 야수에게는 하느님이 진짜 사랑으로 사랑하기를 허락했다. 야수는 새끼를 낳고 그의 가족이 바라는 만큼 크는 것을 본다. 너희들은 그렇지 못해 너희에게는 이 기쁨이 주어지지 않았다. 너희들이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너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든 것이 무슨 소용이냐? 신들이 되어라. 너희는 둘이 한 몸이 되고 그렇게 해서 세 째 몸과 그 이상을 만들어내는 기쁨을 모르고 있다. 너희 자식들이 새 가정을 만들고 아버지 어머니가 되기 위해 너희를 떠나는 것을 보면서 너희 후손을 누리리라는 하느님의 약속을 믿지 말아라. 하느님은 너희에게 인생 비슷한 것을 주었다. 실제적인 인생은 인생의 법칙을 아는 것이다. 그 때에야 너희는 신들과 같이 되어서 하느님에게 <우리는 동등하오>하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와가 유혹을 물리칠 의지를 가지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좇아서 사람에게 속하지 않은 것을 알고자 하는 의지를 가졌었기 때문에 유혹은 계속되었다. 금지된 나무는 이제 그 가지에 사탄에게서 오는 쓰라린 앎의 열매가 매달려 있기 때문에 인류에게 죽음을 가져오는 나무가 된다. 그리고 여자는 암컷이 되어 가슴에 마귀에게서 오는 앎의 누룩을 가지고 아담을 타락시키러 간다. 육체가 이렇게 품격이 떨어지고, 품행이 타락하고, 정신의 품위가 떨어져서 그들은 은총을 잃은 정신과 불사불멸을 잃은 육체의 고통과 죽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하와의 상처는 고통을 낳았고, 그 고통은 이 세상에서 마지막 부부가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두 죄인이 걸은 길을 반대로 걸었다. 나는 순종하였다. 어떤 경우에도 순종하였다. 하느님께서 내게 동정녀가 되라고 요구하셨다. 나는 순종하였다. 나를 첫째 여인이 사탄을 알기 전에 그랬던 것과 같이 순결하게 하던 동정을 사랑하게 하신 다음, 하느님께서는 내게 아내가 되라고 명령하셨다. 나는 순종하여 결혼을 하느님께서 두 첫째 조상을 창조하셨을 때에 당신 생각으로 그러했던 순결의 정도로 끌어올렸다. 결혼 생활에서 고독해야 하고 내 거룩한 불임(不姙)으로 인하여 이웃의 멸시를 받게 되었음을 확신하는 내게 이번에는 하느님께서 어머니가 되기를 요구하셨다. 나는 순종하였다. 나는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었고, 또 그 말을 들으면서 내게 평화가 넘쳐흘렀기 때문에 그 말이 하느님에게서 온다고 믿었다.
  나는 ‘내가 그것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가졌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는 내가 하느님의 육체를 만들어 드림으로 하느님과 비슷하게 되었기 때문에 세상이 나를 우러러볼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겸손으로 나를 낮추었다. 기쁨이 내 마음에 마치 꽃이 핀 장미 줄기같이 솟아났다. 그러나 그 장미 줄기에는 이내 날카로운 가시들이 돋았고, 나는 메의 줄기가 감긴 나뭇가지들처럼 고통에 죄어지고 싸였다. 남편의 괴로움에 대한 고통, 이것은 기쁨 가운데 있는 압찰기와 같은 것이다. 내 아들의 고통으로 인한 고통, 이것은 내 기쁨 가운데 있는 가시들이다. 하와는 향락과 승리와 자유를 원하였다. 나는 고통과 쇠약과 예속을 수락하였다. 나는 내 조용한 생활과 남편으로부터의 존경과 나 자신의 자유를 단념하였다. 나는 나를 위해 아무 것도 남겨두지 않았다.
  나는 내 육체로, 내 행실로, 내 정신으로 주님의 종이 되었고, 동정녀로서의 잉태에 대해서 뿐 아니라, 내 명예의 옹호와 내 남편을 위로하는데 대하여, 내 남편을 결혼의 승화로 이끌어 가서 우리가 남자와 여자에게 잃어버린 그들의 존엄성을 회복시켜 주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주님을 믿었다. 나는 나와 내 남편과 내 태중의 아이를 위해 주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사람들이 죄가 있다고 판단하는 아내의 고통, 아들을 낳아 고통에 넘겨주리라는 것을 보는 어머니의 고통에서 나를 구제해 주겠다고 하신 약속을 하느님께서 어기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우리 세 사람을 위하여 ‘예’라고 말씀드렸다.
  ‘예’라고 나는 말씀드렸다. 그렇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이 ‘예’라는 대답이 하느님의 명령에 대한 하와의 ‘아니오’를 없애버렸다. ‘예’ 주님 뜻대로 하십시오. 당신이 알라고 하시는 것을 알고, 당신이 살라고 하시는 대로 살고, 당신이 원하시면 즐기겠고, 당신이 당하라고 하시는 고통을 당하겠습니다. 주님, ‘예’, 언제나 ‘예’였습니다. 당신의 빛살이 저를 어머니로 만드신 순간부터 저를 당신께로 다시 불러 가신 순간까지. 예, 언제나 예입니다. 육체의 모든 속삭임, 제 감수성의 모든 경향이 제 것인 이 끊임없는 ‘예’의 무게에 눌려 있습니다. 그리고 날개가 없어 당신께로 날아가지는 못하지만, 기쁨 가운데에서 당신을 섬기고 고통 가운데에서 당신을 섬기기 위하여 억제되고 굴복한 제 자아 전체를 지배하는 제 정신은 마치 금강석으로 만든 대 위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웃으시고, 기뻐하십시오. 죄가 졌습니다. 죄는 없어지고 부수어졌습니다. 죄는 제 발뒤꿈치 아래 넘어져 있습니다. 죄는 제 눈물로 씻어졌고, 제 순종으로 부수어졌습니다. 제 태중에서 새 나무가 날 것입니다. 그 나무는 모든 악을 자신의 안에서 겪었기 때문에 알고, 모든 선을 줄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 나무에는 사람들이 올 수 있을 것이고, 그 나무가 제게서 났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면서라도 그것을 꺾으면 저는 기쁘겠습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고 하느님께서 사랑을 받으시도록 당신 종을 가지고 사람들이 나무가 우뚝 서 있는 땅을 가지고 하듯이 하기를, 즉 올라가는 단을 만들기를 바랍니다.”

  “마리아(마리아 발또르따)야, 항상 다른 사람들이 하느님께로 올라가는 계단 하나가 되어야 함을 알아야 한다. 그 사람들이 우리를 짓밟아도 아무 상관없다. 그들이 십자가 쪽으로 가는데 성공하기만 하면. 그것은 선과 악을 아는 열매를 맺는 새로운 나무이다. – 과연 그 나무는 사람에게 그가 선택하고 살 줄을 알도록 무엇이 악이고 무엇이 선인지를 말해 준다. 그리고 그 나무는 동시에 그들이 맛보기를 원했던 악에 중독된 사람들을 고치기 위하여 액체가 될 줄도 안다. 구속된 사람의 수가 늘어나고 내 예수의 피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헛되이 흐르지 않기 위해서 우리의 심장이 사람들의 발에 짓밟히는 것, 이것이 하느님의 여종들의 운명이다. 그러나 그후 우리는 거룩한 희생 제물을 우리 품에 모실 자격을 얻게 되고, 그분의 피와 우리의 눈물로 반죽이 된 십자가 밑에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가 있다. ‘아버지.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저희가 아버지께 드리는 희생제물이 여기 있습니다. 아버지, 이 희생제물 속에 섞인 저희들을 지켜 주시고 그 희생 제물의 무한한 공로로 저희에게 당신의 강복을 주십시오.’
  그리고 나는 너를 쓰다듬어 준다. 내 딸아 쉬어라, 주님이 너와 함께 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