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찍질하던 사람들과 같은 부류의 튼튼한 남자 넷이 한 오솔길에서 형장으로 뛰어 내린다. 외양으로 보아 유다인들 같고, 사형수들보다도 더 십자가형을 받아 마땅하게 생겼다. 그들은 짧고 소매없는 속옷을 입고 손에는 못들과 망치와 밧줄을 들고 있는데, 그것을 사형수들에게 보이며 조롱한다. 군중은 잔인한 열망으로 웅성거린다.
백부장은 몰약의 향내가 나는 포도주의 마취시키는 약물를 드시라고 단지를 예수께 드린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것을 거절하신다. 반대로 두 도둑은 그것을 많이 마신다. 아가리가 넓은 그 단지는 거의 산꼭대기 위쪽에 있는 큰 돌 옆에 놓인다.
사형수들에게 옷을 벗으라는 명령이 내린다. 두 도둑은 아무 수치심 없이 옷을 벗는다. 그들은 군중을 향하여, 특히 아마로 지은 하얀 옷을 입은 사제들의 집단을 향하여 외설한 행위를 하며 재미있어하기까지 한다. 그 사제의 집단은 살그머니 더 낮은 작은 광장에 돌아왔는데, 그들의 자격을 이용하여 그곳까지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두세 명의 바리사이파 사람과 다른 몇몇 권력자들이 사제들과 합류하였는데, 그들은 증오로 인하여 한마음이 된 것이다. 바리사이파 사람 죠까나와 이스마엘, 율법학자 사독, 가파르나움의 엘리 ‥‥같은 알려진 인물들이 보인다.
사형집행인들은 허리 아래에 매라고 넝마 조각 셋을 사형수들에게 주었는데, 도둑들은 가장 소름끼치는 모독의 말을 하면서 그것을 받는다. 상처로 인한 고통 때문에 천천히 옷을 벗으시는 예수께서는 그것을 받지 않으신다. 예수께서는 아마 채찍질을 당하실 때에도 입고 계셨던 짧은 바지는 그대로 입고 계실 것으로 생각하신 것 같다. 그러나 그것마저 벗으라고하자 손을 내밀어 당신의 나체를 가리기 위한 넝마 조각을 사형 집행인들에게 구걸하신다. 살인자들에게 넝마 조각을 구걸해야 되기까지 정말 더없이 당신을 낮추신 분이시다.
마리아가 보시고 짙은색 겉옷 속에서 머리를 싸맨 길고 고운 흰 베일을, 벌써 거기에 많은 눈물을 흘리신 그 베일을 벗으신다. 마리아는 겉옷을 흘러내리지 않게 하시고 베일을 벗어서 당신 아들을 위하여 론지노에게 가져가라고 요한에게 주신다. 백부장은 베일을 순순히 받는다. 예수께서 군중 쪽으로가 아니라 아무도 없는 쪽으로 돌아서시어 멍과 터진 상처로 피를 흘리는 물집이나 거무스름한 딱지로 온통 뒤덮인 등을 보이시며 옷을 완전히 벗으려 하실 때에 론지노가 어머니의 베일을 예수께 내민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알아보시고, 그것으로 골반을 여러 번 둘러서 몸을 가리시고 떨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시키신다. 그 때까지는 눈물에만 젖었던 아마포 위에 핏방울들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수많은 상처에 겨우 피가 엉겨있다가 예수께서 샌들을 벗고 옷을 내려놓으시려고 몸을 숙이시자 다시 피가 터져서 흐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예수께서 군중을 향하여 돌아서시니, 사람들은 가슴과 팔다리도 온통 채찍질을 당하셨다는 것을 보게 된다. 간이 있는 위치에 엄청나게 큰 멍이 하나 있고 갈비뼈 왼쪽 아래에는 보라빛 도는 원 안에 있는 피흐르는 작은 찢어진 상처 일곱 개가 끝에 달린 두드러진 일곱개의 자국이 있다‥‥횡격막의 그렇게도 민감한 그 부위에 맞은 무자비한 채찍질의 흔적이다. 붙잡히신 직후부터 시작하여 골고타까지 되풀이된 넘어지심으로 타박상을 입은 무릎들은 혈종(血腫)으로 검게 되었고, 종지 뼈 위가 넓게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는데. 특히 오른쪽 무릎이 그렇다.
군중은 예수를 업신여기며 입을 모은다. “오! 아름다워라! 사람의 아들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 예루살렘의 딸들이 너를 몹시 좋아한다‥.”
또 시편의 음조로 시처럼 읊기 시작한다. “내 사랑하는 이는 순진하고 얼굴이 새빨갛고 천명 만명 중에서 뛰어나네. 그의 머리는 순금이고 그의 머리털은 까마귀 깃처럼 부드러운 종려나무 다발일세. 그의 눈은 물이 흐르지 않고 우유가 흐르는 개울에서 목욕하는, 그의 눈구멍의 우유 속에서 목욕하는 두마리 비둘기 같네. 그의 뺨은 향료 화단이고, 그의 붉은 입술은 귀중한 몰약이 흘러 나오는 백합일세. 그의 손은 금은세공사의 작품 같고 끝에는 분홍빛 풍신자석(風信子石)이 달렸네. 그의 몸통은 청옥 무늬가 있는 상아이고, 그의 다리는 황금 기초 위에 횐 대리석으로 된 완전한 기둥일세. 그의 위엄은 레바논의 위엄 같고, 높은 소나무보다 더 위엄이 있네. 그의 혀에 단 맛이 배어 있고, 그는 오직 환희를 주는 사람뿐일세.” 그러면서 웃고 또 이렇게 외친다.
“문둥아! 문둥아! 하느님께서 그렇게 치신 것을 보면 너는 우상과 간음을 했느냐? 네가 그렇게 벌받은 것을 보니 네가 모세의 마리아처럼 이스라엘의 성인들에게 불평을 했느냐? 오! 오! 완전한 자!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냐? 천만에! 너는 사탄의 팔삭동이다! 맘몬인 그는 적어도 능력이 있고 힘이 있다. 그런데 너는‥‥ 힘없고 혐오감을 주는 넝마조각이다.”
도둑들은 십자가에 비끄러 매어져서 예수께 쓰이기로 된 십자가에 대해 하나는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이렇게 제 자리로 들려 온다. 그들은 고함을 지르고 저주와 악담을 퍼붓고, 특히 십자가들이 구멍 곁으로 옳겨지면서 그들의 몸을 흔들어 그들의 손목이 밧줄에 쓸리자 하느님과 율법과 로마인들과 유다인들에 대한 그들의 모욕적인 말은 끔찍하다.
예수의 차례가 되었다. 예수께서는 온순하게 십자가에 누우신다. 두 도둑은 어떻게나 다루기가 어려웠던지 사형집행인 네 사람이 할 수가 없어서, 도둑들이 손목을 비끄러매는 간수들을 발길질로 밀어젖히지 못하게 하려고 병사들에게 부를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예수의 경우에는 도움이 필요없다. 예수께서는 누우셔서 머리를 놓으라고 하는 자리에 놓으신다. 예수께서는 베일을 바로잡는 데에만 전념하신다.
이제는 그분의 날씬하고 희고 긴 육체가 우중충한 나무와 누르스름한 땅바닥 위에 부각된다. 두 사형 집행인이 가슴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느라고 몸 위에 타고 앉는다. 나는 예수께서 그 무게 밑에서 느끼셨을 압박감과 고통을 생각한다. 셋째 사형집행인이 예수의 오른팔을 붙잡는데, 한손으로는 팔꿈치 부분을, 또 한손으로는 손가락 끝을 잡는다. 넷째 사형집행인은 벌써 네모난 대가 한 끝은 뾰족하게 되어 있고 한끝은 동전만큼 넓고 판판하고 둥근 판대기로 되어 있는 긴 못을 들고 있는데, 이미 나무에 뚫어놓은 구멍이 손목의 척골(자뼈)관절과 맞는지 살펴본다. 잘 맞는다. 사형집행인은 못 끝을 손목에 갖다 대고 망치를 들어 첫번째 타격을 가한다.
눈을 감고 계시던 예수께서 비명을 지르시고 고통에 따른 수축을 일으키시며 눈을 뜨시는데 눈물이 흥건한 눈을 뜨신다. 무서운 고통을 느끼실 것이 틀림없다‥‥ 못은 근육과 핏줄과 신경을 끊고 뼈를 부수면서 뚫고 들어간다.
마리아는 큰고통을 당하는 아들의 비명 소리에 목을 따는 어린 양의 하소연과 같은 신음소리로 응답하신다. 그리고 몸이 부서진 것처럼 머리를 양손에 파묻고 몸을 구부리신다. 예수께서는 어머니께 고통을 드리지 않기 위하여 다시는 비명을 지르지 않으신다. 그러나 쇠와 쇠가 맞부딪히는 조직적이고 거칠은 타격 소리가 나면서‥‥ 그 밑에는 그 타격을 받는 살아있는 육체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오른손은 못박혔다. 이제는 왼손 차례다. 구멍이 손목 관절과 맞지 않는다. 그러자 그들은 밧줄을 갖다가 왼쪽손목을 묶어 잡아당겨 관절을 빠지게 하고 힘줄과 근육을 뽑아내면서, 잡히실 때부터 결박된 밧줄로 쓸린 피부를 찢어놓는다. 그 여파로 오른손이 당겨지고 못 둘레로 구멍이 넓어지기 때문에 오른손도 고통을 당할 것이 틀림없다. 이제야 겨우 손목 근처 손바닥뼈들이 시작되는 곳에 이르게 되었다. 그들은 단념하고 못을 박을 수 있는 곳에, 즉 엄지손가락과 다른 손가락들 사이, 정확히 말해서 손바닥뼈 한가운데에 못을 박는다. 거기는 못이 더 쉽게 들어간다. 그러나 더 큰 고통을 수반한다. 왜냐하면 중요한 신경을 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른손의 손가락들은 수축을 하고 떨어 생명력이 있음을 보이는데, 왼손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제는 비명을 지르지 않으시고 다만 굳게 다문 입술 뒤로 목쉰 신음소리만을 내시며, 고통의 눈물이 나무에 떨어졌다가 땅으로 떨어진다.
이제는 발 차례이다. 십자가 끝에서 2미터 남짓 되는 곳에 작은 받침 토막이 하나 있는데, 겨우 발 하나 올려놓는 데나 넉넉할까말까 하다. 치수가 제대로 되었는지 보려고 발들을 거기에 갖다대본다. 그런데 받침 토막이 조금 아래쪽에 있어서 발이 거기까지 오기가 어려우므로, 가엾은 박해받는 이의 발목을 잡아당겨 늘인다. 그렇게 하니까 십자가의 까칠까칠한 나무가 상처를 비비고, 가시관이 움직이면서 머리카락을 또 뽑고 떨어지려고 한다. 사형집행인 하나가 손으로 쳐서 가시관을 제자리에 돌려보낸다….
이제는 예수의 가슴 위에 앉았던 자들이 무릎을 타고 앉으려고 일어난다. 길이와 너비가 손에 쓴 못들의 곱절이나 되는 대단한 못이 햇빛에 번쩍이는 것을 보시고 예수께서 다리를 오그리려는 본의 아닌 움직임을 하시기 때문이다. 그들은 벗겨진 무릎 위에 체중을 싣고 타박상 투성이인 가엾은 다리를 누른다. 그동안 다른 두 사람은 일을 마저 하는데, 발목뼈들의 두 관절을 함께 맞추느라고 애쓰며 한발을 다른 발 위에 못박기 때문에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비록 그들이 발목과 발가락을 붙잡고 발들을 받침 토막에 움직이지 않게 대고 있는데 골몰하지만 밑에 있는 발은 못의 진통 때문에 움직인다. 그래서 그들은 못을 거의 뽑아야 한다. 왜냐하면 오른발을 뚫고 지나왔기 때문에 벌써 끝이 무디어진 못이 물렁물렁한 부분에 들어갔던 것을 좀더 중앙 쪽으로 가져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내리치고, 치고, 또 친다‥‥. 온 골고타에는 모든 움직임과 소리가 멈추고 그것을 즐기기 위하여 부릅뜬 눈과 기울인 귀만 있는 듯이, 오직 못대가리를 내리치는 망치의 무서운 소리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거친 쇠소리 너머로 은은한 비둘기의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치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망치가 박해당하는 어머니에게 상처를 입히는 듯이 점점 더 몸을 구부리는 마리아의 목 쉰 탄식 소리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지극한 고통으로 마리아가 거의 부수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십자가에 못박음은 몹시 무섭고 채찍질과 같은 고통을 주고, 생살 속으로 못이 사라지는 것을 보기 때문에 더 끔찍하다. 그 대신 시간은 더 짧아진다. 그러나 채찍질은 오래 계속되기 때문에 지치게 한다.
내게는 게쎄마니 동산의 고뇌와 채찍질과 십자가에 못박음이 가장 무서운 순간이다. 그것들은 내게 그리스도의 고통 전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죽음은 오히려 나를 편하게 해 준다. “이제 끝났다”고 내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고통들을 위한 시작이다.
이제는 십자가가 구덩이 근처로 끌려가는데, 십자가가 고르지 못한 땅 위를 지나며 튀어올라 십자가에 못박히신 가엾은 분을 흔든다. 십자가를 세우는데 두 번이나 사람들의 손에서 빠져 나와 한번은 갑자기 떨어지고, 또 한 번은 십자가의 오른팔 쪽으로 떨어져 예수께 무서운 고통을 준다. 흔들리는 바람에 상처를 입은 지체들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구멍에 떨어뜨리자 돌과 흙으로 움직이지 않게 하기 전에는 사방으로 흔들거리면서 세 개의 못에 매달려 있는 가엾은 육체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니, 고통이 혹독할 것이 틀림없다.
몸의 무게 전부가 앞으로, 그리고 아래쪽으로 움직이면서 구멍들이 넓어지는데, 특히 왼손의 구멍이 넓어지며, 발의 구멍도 넓어지면서 피가 더 세차게 흘러내린다. 발의 피는 발가락으로 해서 땅과 십자가 나무에 떨어진다. 그러나 손의 피는 팔의 위치 상으로 손목 쪽이 겨드랑이 쪽보다 높기때문에 아래팔을 따라 흘러내리고, 또 겨드랑이에서 허리 쪽으로 양 옆구리를 따라서도 흘러내린다. 가시관은 십자가가 고정되기 전에 흔들릴 때에 머리가 뒤로 젖혀지기 때문에 움직이면서 찌르는 큰 가시 매듭을 목덜미에 박는다. 그리고는 다시 이마로 돌아와서 자리를 잡으며 할퀴고, 사정없이 또 할퀸다.
마침내 십자가가 제자리에 잘 세워졌고, 이제는 매달려 있는 고통이다. 도둑들을 일으켜 세우는데, 그들은 수직으로 세워지자마자 손목을 쓸고 손을 시꺼멓게 하고 밧줄에서 오는 고통 때문에 핏줄이 밧줄 모양으로 굵게 되어 산채로 가죽을 벗기는 것처럼 비명을 지른다. 예수께서는 말씀이 없다. 반대로 군중은 이제는 입을 다물지 않고 요란스러운 야단법석을 다시 시작한다.
이제는 골고타 야산 꼭대기에 전리품과 파수병이 있다. 가장 높은 경계에 예수의 십자가가 서 있고, 그 양옆에 다른 두 개의 십자가가 서 있는 것이다. 100인대의 반수가 꼭대기를 빙 둘러싸고 무기를 발 앞에 내려놓고 있고, 그 안쪽에는 이제는 말에서 내려 사형수들의 옷을 놓고 주사위를 던져 노름을 하는 기병 열 사람이 있다. 예수의 십자가와 오른쪽 십자가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은 론지노이다. 그는 박해받는 왕의 친위대처럼 보인다. 100인대의 나머지 반은 왼쪽에 있는 오솔길과 아래쪽에 있는 광장에서 쉬며 론지노의 부관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병사들 편에는 거의 전적인 무관심이 있을 뿐이다. 한 사람 정도만이 어쩌다가 얼굴을 십자가에 달린 사람들 쪽으로 든다.
이와는 반대로 론지노는 모든 것을 호기심과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고 마음속으로 대조하고 판단한다. 그는 십자가에 달린 사람들을 대조하고, 특히 그리스도를 구경꾼들과 대조한다. 그의 날카로운 눈은 세밀한 점 하나도 놓치지 않으며, 더 잘보려고 손으로 눈을 보호하는 것을 보면 햇빛이 방해가 되는 모양이다.
사실 그것은 불이 난 것과 같은 붉은 빛이 도는 노란색의 이상한 태양이다. 그러다가 유다의 산맥 뒤에서 갑자기 솟아서 하늘을 빨리 건너질러 다른 산들 뒤로 사라지는 새까만 구름 때문에 별안간 불이 꺼지는 것 같다. 그리고 해가 다시 나타나면 그 빛이 너무 강렬해서 눈이 그것을 견디어내기가 몹시 어려울 지경이다.
론지노는 둘러보다가 비탈 바로 밑에서 고민하는 얼굴로 아들을 올려다보고 있는 마리아를 본다. 그는 주사위놀이를 하는 병사 한 사람을 불러서 말한다. “어머니가 같이 모시고 있는 아들과 같이 올라오고 싶으면 오라고 해라. 그들을 데려오고 도와주어라.”
그래서 마리아는 그분의 “아들”로 생각하는 요한과 같이, 아마 백토(白土)를 파서 만든 것 같은 작은 층계를 통해서 올라와, 군대의 경계선을 넘어서 십자가 아래에 가신다. 그러나 당신의 예수님에게 보이게 하고 예수를 잘 보기도 하려고 조금 떨어져 계시다. 군중은 즉시 어머니를 그분의 아들에게 하는 모독적인 말과 겹쳐서 가장 무례한 욕설을 퍼붓는다. 그러나 어머니는 하얗게 된 떨리는 입술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미소를 지으시며 아들의 기운을 돋구어 주려고만 애쓰시는데, 의지의 힘으로는 억제하지 못하는 눈물이 그 미소 위에 떨어진다.
사제들과 율법학자,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사두가이파 사람들, 헤로데 당원들 및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위시한 사람들은 깎아지른 길로 해서 올라와 마지막 언덕을 끼고 돌아 다른 길로 해서 내려가던가 그 반대로 하여 일종의 회전목마놀이를 하는 것으로 기분전환을 얻는다. 그리고 꼭대기 아래 둘째 작은 광장에서는 죽어가는 이에게 경의를 표하느라고 그들의 모독적인 말을 바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인간이 혀를 가지고 할 수 있는 모든 음담패설, 잔인함, 모든 증오와 미친 짓이 그 악마같은 입에서 쏟아져 나온다. 가장 악착스러운 자들은 성전의 사제들과 그들을 돕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다.
“그래? 인류의 구세주인 네가 왜 너 자신은 구하지 못하느냐? 네 왕 베엘제불이 너를 버렸느냐? 너를 모른다고 했느냐?” 하고 세 사제가 외친다.
또 유다인의 한 떼는 이렇게 말한다. “닷새 전만 해도 마귀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에게 너를 영광스럽게 하겠다고 말하게 하던 네가‥‥ 하! 하! 하! 어떻게 아버지에게 약속을 지키라고 일깨우지 못하느냐?”
또 바리사이파 사람 셋은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을 모독하는 자! 저자는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다른 사람들을 구원했다고 말했지! 그런데 저 자신은 구원하게 되지 못한단 말이야! 우리가 너를 믿었으면 좋겠지? 그럼 기적을 행해라. 할 수 없다구, 응? 지금은 손이 못박히고 벌거숭이가 돼서?”
그리고 사두가이파 사람들과 헤로데 당원들은 병사들에게 말한다. “그자의 옷을 가진 자네들 저주를 조심하라구! 저자는 그 안에 지옥의 표를 가지고 있단 말이야!”
한 떼가 목소리를 맞추어 말한다. “십자가에서 내려오너라. 그러면 너를 믿겠다. 네가 성전을 허문다지‥‥ 미치광이!‥‥ 저기 저 영광스럽고 거룩한 이스라엘의 성전을 봐라. 성전은 건드릴 수 없다. 하느님을 모독하는 자야! 그런데 너는 죽어간다.”
다른 사제들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자야!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구? 그럼 거기서 내려와봐라. 네가 하느님이면 우리를 벼락으로 쳐라. 우리는 너를 무서워하지 않고, 너한테 침을 뱉는다.” 하고 말한다.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은 머리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말한다. “저자는 울줄밖에 몰라. 네가 선택된 자라는 것이 사실이면, 너 스스로를 구해라!”
병사들은 이렇게 말한다. “너 자신을 구하란 말이다! 그래서 이 빈민굴, 이같은 빈민굴을 잿더미로 만들어라! 그렇다! 제국의 빈민굴이다. 천민인 유다인들, 너희가 바로 그런 자들이다. 그렇게 해! 그러면 로마가 너를 쥬피터의 신전에 모시고 신처럼 경배할 것이다!”
사제들은 그들의 한패거리들과 같이 “십자가의 팔보다 여자들의 팔이 더 부드러웠지? 자 보라구, 그 팔들이 네… (그들은 상스러운 말을 한다)를 받으려고 벌써 채비를 하고 있다. 예루살렘 전체가 네 신랑 신부 들러리 노릇을 할 것이다.” 하고 말하며 마차꾼들처럼 휘파람을 분다.
다른 사람들은 돌을 던지며 말한다. “너는 빵을 많아지게 하니 이 돌들을 빵으로 변하게 해라.”
다른 사람들은 성지주일의 호산나를 흉내내서 나뭇가지들을 던지면서 외친다. “마귀의 이름으로 오는 자, 저주받으라! 그의 나라가 저주받으라! 저 자를 산 사람들과 떼어놓는 시온에게 영광 있으라!”
바리사이파 사람 하나는 십자가 앞에 서서 주먹을 내밀고 집게 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으로 뿔모양을 해 보이면서 말한다. “너는 ‘시온의 하느님께 너를 맡긴다’고 말했지? 이제는 시온의 하느님이 너를 영원한 뿔에 넣을 준비를 하신다. 왜 요나를 불러서 도와달라고 하지 않느냐?”
또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머리로 받아서 십자가를 망그러뜨리지 말아라. 그 십자가는 네 신자들에게 쓰여야 한다. 많은 무리가 네 십자가 위에서 죽을 것이다. 나는 야훼를 걸고 맹세한다. 그리고 우선 라자로부터 여기에 못박겠다. 이제 네가 그를 죽음에서 구해내는지 우리가 지켜보겠다.”
“그래! 그래! 라자로의 집으로 가자! 그자는 십자가 뒤쪽에 못박자.”
그러면서 예수의 느린 말씀을 앵무새처럼 흉내내며 말한다. “내 친구 라자로야, 밖으로 나오너라! 라자로를 풀어서 가게 내버려두시오.”
“아니야! 저 자는 제 정부들인 마르타와 마리아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하고 말했어. 아! 아! 아! 부활이 죽음을 물리치지를 못하고 생명이 죽는단 말이야!”
“저기 마리아와 마르타가 있다. 저들에게 라자로가 어디 있는지 물어서 찾아 가자.” 그러면서 그들은 여자들 쪽으로 가서 거만하게 묻는다. “라자로는 어디 있어? 궁궐에?”
그러자 다른 여자들은 무서워서 벌벌떨며 목동들 뒤로 피해 가는데, 마리아 막달레나는 앞으로 나아오며 고통 가운데에서 옛날 죄의 생활을 할 때의 대담성을 되찾아 말한다. “가라. 너희는 벌써 궁귈에서 로마의 병사들과 내 소유지의 무장한 500명을 만날 것이다. 그들이 너희를, 맷돌질하는 노예들에게 먹일 늙은 염소 모양으로 거세할 것이다.”
“뻔뻔스러운 년! 네가 사제들에게 그렇게 말하느냐?”
“신성 모독자들! 파렴치한들! 저주받은 자들! 돌아서라! 너희들 뒤에는 지옥의 불꽃혀들이 있는 것이 내게 보인다!”
비겁자들은 정말 공포에 질려 돌아선다. 그만큼 마리아의 단언은 자신만만하다. 그러나 그들 뒤에 불꽃은 없다 하여도 그들의 허리에는 끝이 날카로운 로마 군인들의 창이 있다. 과연 론지노가 명령을 내리니 휴식을 취하고 있던 100인대의 반이 보초를 서며 제일 먼저 만나는 자들의 엉덩이를 찌른다. 유다인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고 100인대 반수는 두 길에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작은 광장을 차단하기 위하여 남아 있다. 유다인들은 저주를 퍼붓는다. 그러나 로마가 더 강하다.
막달레나는 베일을 다시 쓰고 – 그에게 욕하는 자들에게 말하려고 베일을 젖혔었다 – 제 자리로 돌아간다. 다른 여자들도 마리아와 합류한다.
그러나 왼쪽의 도둑은 그의 십자가 위에서 욕설을 계속한다. 그는 남의 모독적인 말을 모두모아 가지기를 원한 것 같아서 그것들을 모두 내놓으면서 마지막에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너를 믿기를 원하면 너 자신을 구하고 우리도 구해라. 네가 그리스도라구? 넌 미치광이다! 세상은 교활한 자들의 것이고 하느님은 없다. 나는 있지. 이건 참말이다. 난 뭣이든지 할 수 있다. 하느님? 웃기지 말라! 우리들더러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소리야. 우리의 자아 만세! 나만이 왕이고 하느님이다!”
다른 도둑, 오른편에 있는 도둑은 거의 발 아래 마리아가 있어 그리스도를 쳐다보는 것보다는 거의 마리아를 더 많이 내려다본다. 얼마 전부터 그는 “어머니”하고 중얼거리며 울고 있다. 그는 말한다. “입 닥쳐, 너는 이 벌을 받는 지금도 하느님을 무서워하지 않냐? 왜 착한 양반에게 욕을 해? 그리고 그분의 형벌은 우리 형벌보다 훨씬 더 크다. 그런데 저 양반 나쁜 짓은 아무것도 안하셨단 말이다.”
그러나 다른 도둑은 그의 저주를 계속한다.
예수께서는 말씀이 없다. 그분의 자세가 그분에게 강요하는 노력 때문에, 그다지도 난폭한 형태로 당하신 채찍질과 피땀을 흘리시게 하였던 심각한 번민의 결과인 열과 심장과 호흡의 상태 때문에 숨을 헐떡이시며, 발을 짓누르는 무게를 덜고 팔힘으로 손에 매달림으로써 고통의 정도를 줄이시려고 애쓰신다. 어쩌면 벌써 발을 괴롭히고 근육의 떨림으로 나타나는 경련을 좀 이기시려고 그렇게 하시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자세로 인하여 노력이 강요되는 팔의 섬유도 마찬가지로 떨린다. 팔의 끝부분은 높이 위치하였고 피가 손목까지는 이르기가 어렵고 게다가 못구멍으로 흘러서 손가락에는 통하지 않기 때문에 싸늘하게 식어 있을 것이 틀림없다. 특히 왼손 손가락들은 벌써 송장같이 움직이지 않고 손바닥 쪽으로 구부러져 있다. 발가락까지도 고통을 나타낸다. 특히 엄지발가락들이 그렇다. 아마 그 신경이 덜 상했기 때문에 일어서고 내려지고 벌어지고 하는가보다.
그리고 몸체는… 빠르지만 깊이는 없고 그분의 고통은 덜지 못하면서 피로하게 하는 움직임으로 그 모든 고통을 나타낸다. 매우 넓은 갈비뼈, 이 육체의 구조는 완전하기 때문에 저절로 올라간 갈비뼈들이 이제는 육체가 취한 자세와 틀림없이 안에 생겼을 폐수종으로 인하여 필요 이상으로 팽창해 있다. 그런데도 갈비뼈들이 호흡하는 노력을 가볍게 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배 전체가 그 움직임으로 점점 더 마비되어 가는 횡격막을 돕고 있기 때문에 더 그러하다. 충혈과 질식이 시시각각으로 더해가는 것은 열로 인하여 불타는 듯한 분홍색을 띤 입술을 두드러지게 하는 청색과 목의 정맥을 따라 자주빛을 띤 붉은 빛깔이 늘어나서 귀와 관자놀이를 향하여 뺨에까지 퍼지는 것이 보여 주는 것과 같다. 코는 날이 서고 핏기가 없으며, 눈은 원을 이루며 쑥 들어갔는데, 그 원은 가시관으로 인하여 피가 흘러나간 곳에는 납빛깔이다.
갈비뼈가 궁형을 이룬 부위의 왼쪽 아래에는 심장 끝에서부터 시작하여 불규칙적이지만 맹렬하게 퍼져 나가는 맥박을 볼 수 있고, 또 가끔 안에서 일어나는 경련의 결과로 횡격막이 심하게 떨리는데, 이것은 상처입고 죽어가는 저 가엾은 육체 위에 퍼질 수 있는 한도내에서 피부의 전적인 이완으로 나타난다.
얼굴은 코가 비뚤어지고 한편이 부어오른 모습을 띠고 있는데, 그 쪽에 있는 부기 때문에 오른쪽 눈을 거의 감고 계시다. 반대로 입은 벌어져 있고, 윗입술에는 상처가 있는데 지금은 딱지가 앉았다.
피를 흘린 것과 열과 햇볕으로 인한 목마름은 심한 모양이어서 예수께서는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땀방울과 눈물과 이마에서 콧수염까지 내려오는 핏방울도 마시고 그것으로 혀를 축이실 정도이다‥‥ 가시관 때문에 몸체를 십자가에 붙여 팔의 매달림을 돕고 발의 부담을 덜으실 수가 없게 된다. 허리와 척추 전체는 그분의 육체와 같이 매달린 육체를 앞으로 기울게 하는 관성의 힘 때문에 골반에서 시작하여 위쪽으로 십자가의 줄기에서 떨어져 있어서 바깥 쪽으로 구부러진다.
작은 광장 저쪽으로 밀려난 유다인들은 욕설을 멈추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도둑은 그들과 호응한다. 지금은 어머니를 점점 더 커지는 동정으로 바라보며 울고 있는 다른 도둑은 욕설에 어머니까지 포함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회개하지 않는 도둑에게 호되게 대꾸한다.
“입 닥쳐라. 너도 한 여인에게서 났다는걸 기억해라. 그리고 우리 어머니들도 아들들 때문에 울었고, 우리는 죄인들이기 때문에‥‥ 그것은 부끄러움의 눈물이었다는 걸 생각해라. 우리 어머니들은 세상을 떠났다.. 나는 어머니에게 용서를 청하고 싶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가 있을까? 어머니는 성녀같은 분이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준 고통으로 어머니를 죽인거다. 나는 죄인이다‥‥ 누가 나를 용서할까? 어머니, 돌아가시는 당신 아들의 이름으로 나를 위해 빌어 주세요..”
어머니는 잠시 괴로워하는 당신 얼굴을 쳐들어, 자기 어머니에 대한 추억과 어머니를 보는 것을 통하여 뉘우침으로 향해 가는 그 불행한 사람을 쳐다보시며, 비둘기 같은 당신 눈으로 그를 어루만지시는 것 같다.
디스마는 더 크게 운다. 이것이 군중과 그의 동료의 조롱을 한층 더 폭발시킨다. 군중은 소리친다. “잘됐다. 저 여자를 네 어미로 삼아라. 그러면 죄인 아들 둘을 두게 된다!” 또 다른 도둑은 한술 더 뜬다. “저 여자는 네가 그의 제일 사랑하는 아들의 작은 판박이기 때문에 사랑한다.”
예수께서 처음으로 말씀하신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 기도로 디스마에게서 일체의 두려움이 없어졌다. 그는 감히 그리스도를 쳐다보며 말한다. “주님, 당신 나라에 들어가시거든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저는 여기서 고통을 당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저 세상에서는 제게 자비와 평화를 주십시오. 저도 한번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생각으로 주님의 말씀을 물리쳤습니다. 이제는 뉘우칩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신 주님 앞에서 제 죄를 뉘우칩니다. 저는 주님이 하느님에게서 오신 것을 믿습니다. 저는 주님의 권능을 믿습니다. 주님의 자비를 믿습니다. 그리스도여, 당신 어머니와 지극히 거룩하신 당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예수께서는 그에게로 얼굴을 돌리시고 깊은 연민으로 바라보시며 고통을 당한 가엾은 입에 아직도 매우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신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뉘우치는 도둑은 침착해진다. 그리고 어릴 때 배운 기도문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화살기도를 하듯이 이렇게 되풀이한다. “유다인들의 왕이신 나자렛의 예수님, 저를 불쌍히 여기십시오. 유다인들의 왕이신 나자렛의 예수님, 예수님께 바랍니다. 유다인들의 왕이신 나자렛의 예수님, 예수님이 하느님으로부터 오신 것을 믿습니다.”
다른 도둑은 계속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한다.
하늘은 점점 더 어두워진다. 이제는 구름들이 가까스로 갈라지며 햇살을 통과시킨다. 구름들은 오히려 찬 바람의 갑작스런 변화에 따라 어둡고 희고 푸르스름한 층을 이루며 몰리기도 하고 쌓이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한다.
그 찬 바람은 때때로 하늘을 돌아다니다가 땅으로 내려오고, 그런 다음에는 다시 잠잠해지곤 한다. 그런데 바람이 획획 소리를 내며 날카롭고 빠르게 불 때보다 바람이 잘 때에 오히려 공기가 더 음산하고 숨이 막히고 침체해 있다.
빛은 처음에는 지나치게 강렬하다가 지금은 푸르스름해지기 시작한다.
얼굴들이 이상한 모습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번쩍번쩍하다가 지금은 푸르스름한 빛에 둘러싸인 것 같이 된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고 잿빛 하늘 아래 서있는 병사들은 조각을 해 놓은 것처럼 딱딱한 옆모습을 보이고 있다. 피부와 머리카락과 수염이 대부분 갈색인 유다인들은 물에 빠져 죽은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여자들은 빛이 더 두드러지게 하는 핏기없는 그들의 창백함으로 인하여 푸른기가 도는 눈으로 만든 상같이 보인다.
예수께서는 부패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보이고, 돌아가신 것같이 처참한 납빛이 되시는 것 같다. 머리가 가슴으로 숙여지기 시작한다. 힘이 빨리 빠진다. 타는 듯한 열이 있는데도 몸을 떠신다. 그리고 약해지시는 가운데 처음에는 마음 속으로만 부르시던 이름을 중얼거리신다. “어머니! ….. 어머니!” 하고. 예수께서는 그 이름을 한숨 쉬시듯이, 당신의 의지가 억제하려 해도 이미 할 수 없는 듯이 정신착란을 벌써 느끼시는 것처럼 조용히 중얼거리신다. 그리고 그때마다 마리아는 예수를 구하려는 것처럼 그분께로 팔을 내밀지 않으실 수가 없다.
잔인한 자들은 죽어가는 이의 그 경련과 그것을 같이하는 어머니의 경련을 비웃는다. 목동들이 그대로 작은 광장에 있는데도, 그들은 다시 목동들 뒤로 올라온다. 사제들과 율법교사들이다. 병사들이 그들을 밀어내려하자 그들은 반항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 갈릴래아 사람들도 여기 있지 않소? 우리도 처형이 완전히 행하여졌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이 이상한 빛 때문에 멀리서는 볼 수가 없단 말이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세상을 뒤덮기 시작하는 빛에 놀라기 시작하고 어떤 사람들은 무서워한다. 병사들도 하늘을 쳐다보고 또 어두운 빛의 모래로 된 것 같은 일종의 뿔 모양의 것이 어떤 산 꼭대기 뒤에서 올라오는 것을 바라본다. 그것은 바다 물기둥같이 보인다. 그 원뿔모양의 것이 계속 올라와서 마치 연기와 용암을 토하는 화산인 듯 점점 더 검은 구름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이 어스름하고 소름끼치는 빛 속에서 예수께서 요한을 마리아에게 주시고 마리아를 요한에게 맡기신다. 어머니가 더 잘보시려고 십자가 밑에 더 가까이 와 계시므로 예수께서는 고개를 숙이시고 어머니께 말씀하신다.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아들아,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
마리아의 얼굴은 당신의 예수의 이 말씀을 듣고 훨씬 더 참혹하게 되었다.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인하여 어머니에게서 난 사람이신 하느님을 빼앗아가시는 예수께서 당신 어머니께 드릴 것이라고는 사람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가엾은 그 어머니는 조용히 울고만 계실 뿐이다. 정말 울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눈물을 참으려고 애쓰시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입은 아들을 위하여, 아들에게 위안을 주기 위하여‥‥ 입술에 미소를 띠고 있지만,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신다.
고통은 점점 더해지고, 빛은 점점 더 약해진다.
바다밑 같은 이 빛을 받으며 유다인들 뒤에서 니고데모와 요셉이 나오며 “비키시오.” 하고 말한다.
“안돼오! 무슨 일이요?” 하고 병사들이 말한다.
“통과하려는 것이오. 우리는 그리스도의 친구들이요.”
사제장들이 돌아다보며 “누가 감히 반역자의 친구라고 공언하는 것이냐?” 하고 분개하여 말한다.
그러자 요셉이 결연히 말한다. “나, 최고회의의 귀족의원, 원로 아리마태아의 요셉이오. 그리고 유다인의 지도자 니고데모가 나와 같이 왔소.”
“반역자와 타협하는 사람은 반역자요.”
“그러면 살인자들과 타협하는 사람은 살인자요, 안나의 엘르아잘. 나는 의인으로 살았소. 그리고 이제는 나이들어 죽을 때가 가까왔소. 벌써 하늘이 내 위에 내려오고 그와 더불어 영원하신 심판자가 내려오시려는 지금 옳지 못한사람이 되기는 싫소.”
“그리고 당신, 니고데모! 나는 놀랐소!”
“나도 놀랐소, 꼭 한 가지 일에 대해서만 놀랐소. 이스라엘이 이제는 하느님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타락했다는 사실 말이요.”
“당신이 지긋지긋하오.”
“그러면 지나가게 비키시오. 내가 요구하는 것은 그것뿐이오.”
“더 부정해지려고?”
“당신들 곁에서도 부정해지지 않았으니, 나를 부정하게 할 것이 아무것도 없소. 병사, 당신 몫으로 돈주머니와 통행증이 여기 있소.”
그러면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10인대장에게 돈주머니와 밀랍 판자를 건네준다.
10인대장은 그것을 읽어보고 병사들에게 말한다. “그 두 사람을 통과시켜라.”
요셉과 니고데모는 목동들에게 가까이간다. 점점 더 짙어가는 안개 속에서 벌써 임종의 고통속에 흐려져 가는 눈으로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는지조차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보고 사제들의 저주가 그들에게 악착스럽게 퍼부어지는데도 체면도 차리지 않고 운다.
고통은 여전히 점점 더 심해진다. 강하게 떨리던 몸체는 활처럼 휘고, 군중의 아우성은 그것을 한층 더하게 한다. 섬유와 신경의 죽음이 고통을 당하는 수족에서 몸체로 퍼지면서, 호흡운동은 점점 더 어렵게 되고, 횡격막의 수축을 더 약하게 하며, 심장 고동이 더 무질서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얼굴은 번갈아가며 짙은 붉은 빛깔이 되었다가 출혈로 죽는 사람과 같은 푸르스름한 창백한 빛깔이 되었다 한다. 입은 더 힘들게 움직인다. 여남은 번이나 몸전체를 휘게하여 머리와 목이 지렛대 역할을 해서 지나치게 피로하게된 신경이 턱뼈까지 경련을 퍼뜨렸기 때문이다. 충혈이 된 목의 핏줄 때문에 부은 목구멍은 아플 것이 틀림없고 그 수종을 혀에까지 퍼뜨릴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혀가 부푼 것 같고 움직임이 대단히 느리다. 몸은 완전히 활 모양으로 휘는 경련을 일으키지 않을 때에도 점점 더 앞으로 구부러진다. 사지가 죽은 살의 무게로 끊임없이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잘 보지도 못한다. 빛이 이제는 어두운 잿빛이 되었기 때문에 십자가 바로 밑에 있는 사람들만이 잘 볼 수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어느 순간 벌써 돌아가신 것처럼 앞쪽과 아래쪽으로 축늘어지시고, 이제는 헐떡이지도 않으시고, 머리는 힘없이 앞으로 숙였다. 몸은 허리에서 위쪽으로 십자가의 팔과 각을 이루며 완전히 떨어졌다.
마리아는 “죽었다!” 하고 외치신다. 어두워진 공기 속으로 퍼져 나가는 비극적인 외침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정말 돌아가신 것 같다.
다른 여자의 외침이 이에 응답을 하고, 여자들의 집단에서는 웅성거림이 보인다. 그런 다음 열 명쯤 되는 사람이 무엇인지 받쳐들고 떠나는데, 나는 누가 그렇게 떠나는지 볼 수가 없다. 안개가 낀 빛은 너무 약하다. 사람들이 화산재의 두꺼운 구름 속에 잠겨 있는 것 같다.
“그럴 수가 없다.” 하고 사제들과 유다인들이 외친다. “이것은 우리를 멀리 가게 하려는 눈속임이다. 병사, 당신 창으로 그자를 찌르오. 그것이 그자의 목소리를 들려 주는 좋은 약이 될 것이오.” 그리고 병사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니까 돌들과 흙덩이들이 십자가를 향하여 날아와서 박해받는 이를 때리고 로마 군인들의 갑옷에 떨어진다.
유다인들이 기적을 행한다. 그들이 위쪽을 겨냥하였기 때문에 아마 솜씨좋게 손의 상처나 머리를 맞힌 모양이다. 예수께서는 불쌍한 신음소리를 내시고 다시 의식을 회복하신다. 흉곽은 매우 힘들게 다시 호흡하기 시작하고 머리는 고통을 덜 느끼려고 놓일 자리를 찾아서 좌우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더 큰 고통 밖에는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한다.
당신의 의지에서, 오직 의지에서만 힘을 얻어 고통을 겪는 당신 발에 다시 한번 의지하면서 몹시 힘들여 십자가 위에서 몸을 세우시고 마치 기운이 펄펄한 건강한 사람처럼 몸을 일으키시며, 얼굴을 드시고 눈을 크게 뜨셔서 당신 발 아래 펼쳐지는 세상과 안개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시내와 일체의 빛이 사라진 시꺼먼 하늘을 바라보신다. 그리고는 당신 의지의 힘으로, 당신 영혼의 필요로, 뻣뻣해진 턱뼈와 부풀은 혀와 부은 목구멍의 장애를 이기시고, 콱 막혀 보이고 내려앉아 엄청나게 큰 컴컴한 판대기 같은 하늘을 향하여 커다란 소리를 지르신다.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내게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들린다).
아버지께서 버리심을 이러한 절규로 인정하시는 것을 보면, 예수께서 죽어 간다는 것을, 그것도 하늘의 완전한 버림을 받으신 채 죽어 간다는 것을 느끼시는 것이 분명하다.
사람들은 웃으며 조롱한다. 그들은 이렇게 욕한다. “하느님은 네게 관심이 없다! 마귀들은 하느님의 저주를 받는거다!”
다른 사람들은 “저자가 부르는 엘리야가 구하러 오는지 보자” 하고 외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자가 목소리를 가다듬게 초를 줘라. 초는 목소리에 좋다! 저 미치광이가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엘리야나 하느님은 먼 곳에 계시다‥‥ 들리게 하려면 목소리가 있어야 해!” 그러면서 잔인한 사람들같이 또는 마귀들같이 웃는다.
그러나 아무 병사도 초를 드리지 않고 하늘에서도 내려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것은 위대한 희생의 외롭고 완전히 잔인하며, 초자연적인 최후이다.
게쎄마니 동산에서 예수를 벌써 괴롭혔던 슬픈 고통이 다시 눈사태처럼 쏟아져 온다. 무죄한 희생양을 쳐서 그 쓴맛 속에 삼켜버리려고 온 세상의 죄의 밀물이 다시 밀려온다. 특히 하느님께서 당신을 버리셨고, 당신의 기도가 이제는 하느님께로 올라가지 않는다는, 십자가보다도 더 큰 고통이며 어떤 고문보다도 더 절망적인 느낌이 다시 온다…
그리고 이것이 최후의 고통이다. 그 고통은 털구멍의 마지막 핏방울들을 짜내기 때문에, 심장의 마지막 섬유를 으스러뜨리기 때문에, 그 버림받음을 첫 번째로 알기 시작한 것, 즉 죽음을 끝마치기 때문에 죽음을 재촉하는 고통이다. 왜냐하면, 오 우리들 때문에 그분을 희생시키신 하느님. 제 예수께서 그것을 첫째 원인으로 해서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버리신 후에는, 당신이 버리신 결과로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미치거나 죽습니다. 예수의 지능은 하느님의 것이고 또 지능이 그런 것과 같이 정신적인 것이어서 하느님께서 치시는 그분의 심한 충격을 이기셨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미치실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죽으셨습니다. 죽은 사람, 지극히 거룩하신 죽은 이, 절대적으로 무죄하신 죽은 사람이 되셨습니다. 생명이신 그분이 당신의 버리심과 우리들의 죄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신 죽은 이가 되셨습니다.
어둠은 한층 더 짙어졌다. 예루살렘이 완전히 사라진다. 골고타 자체의 언덕들도 없어지는 것 같다. 암흑이 남아있는 유일한 마지막 빛을 거두어들여 제물을 바치기 위한 것처럼 보석이 달린 상보 위에 놓여서.. 사랑도, 증오도 그것을 볼 수 있게 하려는 듯이 그 하느님의 희생양과 산꼭대기 부분만이 보인다.
그리고 빛이 아닌 그 빛 속에서 예수의 “목마르다!” 하시는 애처로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과연 건강한 사람들의 목도 마르게 하는 바람이 불고 있다. 지금은 계속적이고 세차고 먼지가 섞이고 차고 무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나는 그 바람이 그 세찬 기운으로 예수의 허파와 내장과 목구멍과 마비가 된 그분의 수족에 주었을 고통을 생각한다. 아니 정말이지 모든 것이 박해받는 분을 괴롭히기 시작하였다.
한 병사가 초와 쓸개를 담아 둔 그릇으로 간다. 쓸개는 그 쓴맛으로 처형당하는 사람들의 침 분비를 증가하기 때문에 준비한 것이다. 그는 액체에 담근 해면을 집어, 이미 바로 곁에 준비해 놓은 가늘면서도 뻣뻣한 갈대 끝에 꿰어서 죽어가는 이에게 들이댄다. 예수께서는 가까워지는 해면을 향하여 열심히 입을 내미신다. 엄마의 젖을 찾는 배고픈 어린아이와 같다.
그것을 보고 틀림없이 그 생각을 하시는 마리아는 요한에게 의지하시며 한탄하신다. “오! 나는 그에게 내 눈물 한 방울도 줄 수가 없구나… 오! 내 가슴아, 어째서 이제는 젖이 안나오느냐? 오! 하느님, 왜, 왜 우리를 이렇게 버리십니까? 제 아들을 위해 기적을 하나 주십시오! 내가 젖이 없으니 내 피로 그의 목을 축여주게 누가 나를 들어올려 주겠는가?..”
떫고 쓴 음료를 빨아들이신 예수께서는 머리를 돌리신다. 그 음료는 상처입고 갈라진 입술을 쓰라리게 할 것이 분명하다. 예수께서는 머리를 끌어당기고 힘이 빠진 것처럼 척 늘어지신다.
몸무게 전부가 발 위로 앞으로 걸린다. 상처를 입은 손발이 축 늘어지는 몸의 무게를 받아 터지는 무거운 고통을 겪는다. 이제는 이 고통을 덜려고 하는 동작도 없다. 골반부터 위쪽으로 모든 것이 나무에서 떨어져서 그대로 있다.
머리가 굉장히 무겁게 앞으로 늘어졌다. 호흡이 점점 더 헐떡거리고 가끔 끊어진다. 호흡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벌써 숨이 끊어지는 헐떡임이다. 가끔 힘든 기침의 발작이 일어나서 약간 불그레한 거품을 입술에까지 가져온다. 내쉬는 숨 사이의 간격은 점점 더 길어진다. 복부는 벌써 움직이지 않는다. 흉곽만이 아직 쳐들린다. 그러나 매우 어렵고 힘들게 그렇게 된다‥‥ 폐의 마비가 점점 더 심해진다.
그리고 점점 더 약해져서 어린아이의 신음소리로 변한 “어머니..” 하는 부름이 있다. 그러면 불행한 어머니는 “얘야, 나 여기 있다.” 하고 중얼거리신다. 그리고 눈이 흐려져서 “어머니, 어디 계세요. 이제는 어머니가 안보입니다. 어머니도 저를 버리십니까?” 하고 말씀하시게 될 때에는, 죽어가는 이의 한숨을 마음으로 거두어들이는 사람에게나 겨우 들릴 수 있는 중얼거림이다.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아니다, 아니야, 아들아! 나는 너를 버리지 않는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 말을 들어라‥‥ 어미가 여기 있다. 여기 있어… 그리고 네 어미의 오직 한 가지 고통은 너 있는 데에 가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가슴이 찢어지는 비통이다‥‥ 그래서 요한은 엉엉 운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그의 흐느낌을 들으시겠지만 아무 말씀도 안하신다. 나는 예수께서 죽음이 임박함으로 인하여 정신착란을 일으키시는 것처럼 말씀하시게 되고,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조차 모르시며, 불행히도 어머니의 위로와 사랑하는 제자의 사랑도 이해 못하시는 것으로 생각한다.
론지노는 감동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도 눈치채지 못한 채, 황제의 옥좌 앞에 있는 것처럼 왼손은 검에 얹고 오른손은 옆구리에 늘어뜨린 채 차렷 자세로 몸을 꼿꼿이하고 있다. 그의 얼굴은 그가 감동을 억제하려고 하는 노력으로 인하여 변하고 그의 눈에는 눈물이 빛나는데, 다만 강철 같은 의지로 그것을 억제하고 있다.
주사위를 가지고 노름을 하던 병사들도 놀음을 그만두고 일어나 주사위를 흔드는 데 사용하였던 투구를 다시 쓰고 백토를 파서 만든 작은 층계 곁에 모여 서서 말이 없이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다른 병사들은 명령 때문에 위치를 바꿀 수가 없다. 동상들 같다. 그러나 가장 가까이 있는 병사들 중의 하나가 마리아의 말을 듣고 입속으로 무엇이라고 투덜대며 머리를 설레설레 흔든다.
잠잠하다. 그러다가 완전한 어둠 속에서 “이제 다 이루었다.” 하는 말이 분명히 들려온다. 그런 다음 점점 더 쉰 헐떡임이 들리고 그 간격이 점점 더 길어진다.
시간은 이 가슴 아픈 리듬에 따라 흐른다. 죽어가는 이의 거칠은 헐떡임으로 공기가 흔들리면 생명이 돌아오고‥ 그 고통스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면 생명도 꺼져간다.
그 소리를 듣는 것이 괴롭다‥‥ 그 소리를 듣지 못해도 괴롭다‥‥ “그만큼 고통을 당하셨으면 됐는데!” 하고 말하다가는 “오 하느님! 저것이 그분의 마지막 숨이 아니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한다.
모든 마리아들이 비탈에 머리를 대고 운다. 그리고 지금은 군중 전체가 죽는이의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들으려고 조용하기 때문에 그들의 흐느낌 소리가 들린다.
또 잠시 동안의 정적, 그런 다음 열렬한 기도 속에 무한히 부드럽게 말한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하는 탄원이 들려온다. 그르렁거리는 소리도 약해진다. 그것은 이미 입술과 목에서 나오는 숨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예수의 마지막 경련이다. 못 세 개로 십자가에 고정된 육체를 거기에서 빼내고자 하는 것같이 발에서 머리까지 세 번 올라가며, 고통을 당한 가엾은 모든 신경을 거쳐 가는 끔찍한 경련이다. 그 경련이 복부를 비정상으로 세 번 쳐들어서 내장을 뒤흔들어 팽창시켰다가 내버려두니, 복부가 다시 내려지면서 속이 빈 것처럼 움푹 들어간다. 경련이 일어나서 부풀어 오르며 흉곽을 어떻게나 세게 죄는지 갈비뼈 사이의 가죽이 움푹 들어가 피부 밑으로 나타나면서 팽팽해져서 채찍질로 생긴 상처를 다시 터뜨린다. 머리가 두세번 세차게 젖혀지며 나무에 세게 부딪힌다. 얼굴의 모든 근육이 한꺼번에 수축하며 입을 오른쪽으로 더 돌아가게 하고 눈꺼풀이 벌어지며 넓어지게 해서 그 밑에서 눈알이 돌아가고 흰자가 나타나는 것이 보인다. 몸 전체가 팽팽하게 되고, 세 번 수축하는데 마지막 번에는 당겨진 활처럼 되어 떨려 보기에 무시무시하다. 그런 다음 그 기진맥진한 육체에서는 그런 소리가 나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 없는 힘찬 부름짖음이 공기를 가른다. 복음서에서 말하는 “큰 소리” 인데 그것은 “어머니”라는 말의 첫부분이다‥‥ 그런 다음에는 아무것도 없다‥‥
머리가 가슴으로 다시 늘어지고 몸이 앞으로 쏠리며, 떨림도 그치고 호흡도 그친다. 숨을 거두신 것이다.
사람들이 죽인 그분의 부르짖음에 땅도 무서운 노호로 응답한다. 거대한 수많은 물기둥이 하나의 소리를 내는 것 같고, 그 무시무시한 화음과는 별도로 하늘을 사방으로 가르며 떨어지는 번개와 천둥같은 소리들이 들려온다. 벼락이 군중을 직접 내려쳤기 때문에 벼락맞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번개가 칠 때만 불규칙적으로 밝아진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직 벼락이 계속되는 동안에 돌연 회오리 바람 속에 땅이 흔들린다. 지진과 회오리바람이 하느님을 모독하는 자들에게 묵시록에 있는 것과 같은 벌을 주려고 내리덮친다. 골고타의 꼭대기가 물결처럼 일렁거리고 광대가 잡고 있는 접시 모양으로 춤추며, 물결치는 것 같은 진동으로 어떻게나 세게 세 십자가를 흔드는지 십자가가 쓰러질 것만 같다.
론지노와 요한과 병사들은 넘어지지 않기 위하여 매달릴 수 있는 대로 매달린다. 그러나 요한은 한 팔로는 십자가에 달라붙는동안 한 팔로는 마리아를 부축하는데, 마리아는 고통과 진동 때문에 요한의 가슴에 쓰러지신다. 다른 병사들, 특히 비탈 쪽에 있는 병사들은 비탈 아래로 굴러떨어지지 않으려고 한가운데로 피신해야 했다. 도둑들은 무서워서 비명을 지르고, 군중은 더 세게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고 하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사람 위에 넘어지고 서로 짓밟으며 땅 갈라진 틈으로 곤두박질해서 상처를 입고 비탈로 굴러 내려가고 미치광이같이 된다.
지진과 회오리바람이 세 번 되풀이되고 나서 죽은 세상처럼 절대적인 정적 상태이다. 다만 천둥소리가 없는 번개만이 아직 하늘을 가르고, 손으로 머리털을 움켜쥐거나 앞으로 내밀거나, 또는 여지껏 업신여기다가 지금은 무서워하는 하늘로 손을 들고 사방으로 도망치는 유다인들의 광경을 비춘다. 어둠이 희미한 빛으로 완화되는데, 그 희미한 빛은 소리 없고 자기를 띤 번개의 빛의 도움을 받아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까무러쳤는지 모르지만, 땅바닥에 그대로 있는 것을 볼 수 있게 한다. 성안에서는 집 한 채가 타고 있어, 불꽃이 회색을 곁들인 초록색 대기에 선명한 붉은 빛의 뉘앙스를 붙인다.
마리아는 요한의 가슴에서 머리를 쳐들고 당신의 예수를 쳐다보신다. 마리아는 약한 빛과 눈에 눈물이 가득 괴어 있어 예수님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예수를 부르신다. 세 번을 “예수야.. 예수야! 예수야!” 하고 부르신다. 예수께서 골고타에 올라오신 뒤로 예수의 이름을 부르시기는 처음이다. 마침내, 골고타의 꼭대기를 비추는 번갯불로 마리아는 예수께서 앞으로 잔뜩 숙여서 움직이지 않으시고 머리를 오른쪽 앞으로 숙여서 뺨과 어깨가 닿고 턱과 갈비뼈가 닿을 정도가 된 것을 보시고 알아차리신다. 어두워진 하늘로 떨리는 손을 내밀며 외치신다.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그리고는 귀를 기울이신다‥‥ 마리아는 입을 벌리고 계시다. 보고 또보려고 눈을 크게 뜨고 계신 것처럼 입으로도 들으려고 하시는 것 같다‥‥ 마리아는 당신의 예수가 이제는 없다는 것을 믿으실 수가 없다‥‥
요한도 쳐다보고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팔로 마리아를 안고 십자가에서 멀어지게 하려고 애쓰면서 말한다. “이제는 ..고통을 당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사도가 말을 끝내기 전에 알아차리신 마리아는 빠져나가 돌아서서 땅으로 몸을 구부리고 두 손을 눈으로 가져가며 부르짖으신다. “이제 내겐 아들이 없어요!”
그리고 나서 비틀거리신다. 그래서 요한이 마리아의 몸 전체를 가슴에 받아들이지 않으면 넘어지실 것이다. 그리고 나서 마리아들이 대신 어머니를 볼 때까지 요한은 어머니를 가슴에 더 잘 받쳐들기 위하여 땅에 앉는다. 과연 마리아들이 이제는 위쪽에 있는 병사들에게 제지를 당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유다인들이 도망친 지금은 병사들이 밑에 있는 작은 광장에 모여서 사건에 대하여 얘기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막달레나가 요한이 있던 자리에 앉아서 마리아를 거의 무릎에 누이고 팔과 가슴으로 떠받치며 그의 동정하는 어깨에 젖혀져 있는 핏기없는 얼굴에 입맞춘다. 마르타와 수산나는 초에 적신 해면과 아마포로 마리아의 관자놀이와 콧구멍을 씻어 주는데 그동안 알패오의 마리아는 가슴을 찢는 듯한 목소리로 마리아를 부르면서 그의 손에 입맞춘다. 그리고 마리아가 다시 눈을 뜨고 고통으로 인하여 얼이 빠진 시선을 그에게로 돌리시자 이렇게 말한다. “딸아, 사랑하는 딸아, 내 말을 들어요‥‥ 내가 보인다고 말해줘.. 나는 네 마리아야‥‥ 그런 눈으로 나를 쳐다보지 말아!..” 그리고 첫번째 흐느낌이 마리아의 목구멍을 열고 첫번째 눈물이 떨어진 다음에 그 착한 알패오의 마리아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 그래, 울어 ‥‥여기서 나하고 같이 엄마 곁에서처럼, 내 가엾은 거룩한 딸아.” 그리고 “오! 마리아! 마리아! 여기있구나..” 하는소리를 듣고는 “그래! 그래‥‥ 그렇지만‥‥그렇지만‥‥ 딸아‥‥오! 딸아!..” 하고 슬퍼하며 말한다. 알패오의 마리아는 다른 말을 찾아내지 못하고 나이든 마리아와 슬퍼하며 운다. 다른 모든 여자들, 즉 마르타와 마리아와 요한의 어머니(마리아 살로메)와 수산나가 따라 우는 슬픈 울음이다.
다른 경건한 여자들은 이제는 거기에 없다. 나는 그 여자들이 저 여인의 비명을 듣고는 떠났고, 목동들도 그 여자들과 같이 떠난 것으로 생각한다‥‥
병사들은 저희들끼리 말한다.
“유다인들을 봤나? 나중엔 그자들이 무서워하던걸”
“그리고 가슴을 치던데.”
“제일 무서워서 떠는건 사제들이었어!”
“얼마나 무서웠는지! 난 다른 지진을 여러 번 겪었지만 이번 것과 같은 건 한번도 없었어. 보라구, 땅에는 갈라진 데가 사방에 그대로 있어.”
“그리고 긴 도로의 한 부분 전부가 가라앉았어.”
“…그 아래에는 시체들이 있고.”
“내버려둬! 그만큼 뱀같은 놈들이 없어진거야.”
“오! 또 불이 한군데 났어! 마을에..”
“그런데 저 사람이 정말 죽었나?”
“그래 자넨 보이지 않나? 그걸 의심해?”
바위 뒤에서 요셉과 니고데모가 나타난다. 그들은 벼락을 피해서 이 뒤로 피신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론지노에게 가서 “우리는 시신을 원하오.” 하고 말한다.
“총독만이 그 허가를 주오. 가시오, 빨리. 유다인들이 총독관저에 가서 다리를 자르는 허가를 얻기를 원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그러오. 나는 저들이 이분을 모욕하는 것을 원치 않소.”
“당신이 그것을 어떻게 아시오?”
“기수(旗手)의 보고요. 가시오. 당신들을 기다리겠소.”
두 사람은 가파른 내리막길로 달려가서 사라진다.
그 때에 론지노가 요한에게 다가가서 내가 알아듣지 못한 한마디를 한다. 그런 다음 한 병사에게서 창을 달래서 가진다. 그는 여자들을 바라다보는데, 여자들은 모두 마리아한테 골몰해 있고 마리아는 천천히 기운을 다시 차리신다. 여자들은 모두 십자가를 등지고 있다.
론지노는 못박히신 분의 앞에 가 서서 잘 겨냥하여 찌른다. 넓은 창이 아래에서 위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깊숙이 뚫고 들어간다.
보고싶은 욕망과 보는 것의 끔찍함 사이에서 갈등하는 요한은 잠시 머리를 돌린다.
“다 됐소, 친구.” 하고 론지노가 말하고 “이렇게 하는 것이 낫소. 신사에게와 같이, 뼈를 부러뜨리지 않고.. 이 분은 참으로 의인이었소.”
상처에서는 물이 많이 스며나오고 피는 겨우 한줄기 스며나와서 벌써 엉겨서 덩이가 된다. 나는 스며나온다고 말했다. 피는 분명한 찔린 상처로해서 새어 나오고 상처는 움직이지 않는 채로 있다. 예수께서 아직 숨을 쉬고 계셨으면 흉곽과 복부의 운동으로 벌어졌다 아물었다 하였을 것이다…
‥골고타에서는 모두가 이 비극적인 광경을 지키고 있는 동안, 나는 지름길로 해서 내려가는 요셉과 니고데모를 따라간다.
그들이 거의 산 아래에 내려갔을 때 가믈리엘을 만난다. 머리를 흐트리고 모자도 안쓰고 겉옷도 입지 않고 그 찬란한 옷이 흙으로 더러워지고 가시덤불에 찢어지고 한 가믈리엘이다. 손으로는 반백이 된 설핀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숨을 헐떡이며 뛰어 올라온다. 그들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서로 말을 주고 받는다.
“가믈리엘, 당신이?”
“당신, 요셉? 그분에게서 떠나는 거요?”
“나는 아니요. 하지만 왜 당신이 여기에 오는 거요? 그런 꼴로?…”
“무시무시한 일이요. 나는 성전에 있었소! 그런데 표징이 있었소. 성전이 활짝 열렸소. 진홍색과 히야신스색 휘장이 찢어져서 늘어져 있소. 지성소가 드러났소! 우리에게 저주가 내렸소!” 그는 증표로 미치다시피 하여 산꼭대기로 계속 뛰어 올라가면서 말하였다.
두 사람은 그가 멀어져가는 것을 보고‥‥ 서로 쳐다보며‥‥ 말한다.
“‘이 돌들이 내 마지막 말을 듣고 떨릴 것이요.’ 하고 선생님이 저 사람에게 약속하셨지요!”
그들은 시내를 향하여 걸음을 재촉한다.
산 과 성벽 사이 들판으로, 또 그 너머로 아직 어두운 공기 속에서 얼빠진 모습을 한 사람들이 헤매고 있다. 부르짖음, 울음, 탄식이 들려온다…
더러는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의 피가 우리에게 불을 내렸다!” … “번개 사이에 야훼께서 성전을 저주하시려고 나타나셨다!” 또 어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른다. “무덤들이! 무덤들이!”
요셉은 성벽에 머리를 부딪는 어떤 사람을 붙잡고 그의 이름을 부르며, 성안으로 들어가려고 막 끌고 간다.
“시몬, 당신 무슨 말을 하는 거요?”
“나를 가만 놔둬요! 당신도 죽은 사람인가! 죽은 사람 모두가! 모두가 밖으로 나왔소! 그리고 나를 저주하오.”
“이 사람 미쳤구먼” 하고 니고데모가 말한다.
그들은 그 사람을 그대로 두고 총독관저를 향하여 빨리 간다.
시내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사람들은 가슴을 치며 떠돌아다닌다. 뒤에서 목소리나 발소리만 들려도 뒤로 펄쩍 뛰거나 깜짝 놀라서 돌아다본다.
그 수많은 컴컴한 장식 창틀 중 하나에서 흰 모직옷을 입은 니고데모가 -더 빨리 가기 위하여 골고타에서 그의 짙은 색 겉옷을 벗었기 때문이다- 나타나는 것을 보고 바리사이파 사람 하나가 겁에 질린 소리를 지르고 도망친다. 그러다가 그것이 니고데모인 것을 알아차리고는 그의 목에 매달리며 이상하게 감정을 드러내며 외친다. “나를 저주하지 마시오! 내 어머니가 나타나서 내게 이렇게 말했어요. ‘영원히 저주받아라!’하고.” 그런 다음 땅에 주저앉으며 말한다. “난 무서워요! 무서워!”
“아니 이 사람들이 전부 미쳤구나!” 하고 두 사람이 말한다.
그들은 총독 관저에 도착한다. 거기서 총독이 만나 주기를 기다리는 동안에야 비로소 요셉과 니고데모가 그러한 공포의 이유를 알게 된다. 지진으로 인하여 많은 무덤이 열렸었는데, 그 무덤들에서 해골들이 나와서 얼마 동안 사람의 모습을 지니고 가면서 하느님을 죽이는 죄를 지은 사람들을 비난하고 그들을 저주하는 것을 보았다고 맹세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총독 관저에 들어간 예수의 두 친구를 그 곳에 놓아 두고, 나는 다시 골고타로 돌아와 이제는 기진맥진해서 마지막 남은 몇 미터를 올라가는 가믈리엘에게로 다시 간다. 그는 가슴을 치면서 나아가다가 첫번째 작은 광장에 이르러서는 엎드려 탄식한다. “표가! 표가! 나를 용서한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내 말을 듣고 나를 용서한다는 것을 말하는 신음 한 마디, 다만 한 마디를 주십시오.”
그가 예수를 아직 살아 계신 줄로 믿고 있다는 것을 알겠다. 그는 한 병사가 창으로 건드리며 “일어나시오. 그리고 입을 다무시오. 쓸데없는 일이요! 미리 그 생각을 해야 옳았을 거요. 저 사람은 죽었소. 그리고 이교도인 내가 말하지만, 당신들이 십자가에 못박은 저 사람은 실제로 하느님의 아들이었소!” 하고 말할 때에야 비로소 잘못 생각하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죽었다고? 선생님 돌아가셨습니까? 오!….” 가믈리엘은 겁에 질린 얼굴을 들어 황혼과 같은 빛 속에서 꼭대기까지 보려고 애쓴다. 그는 잘 보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만큼은 넉넉히 보인다. 그는 마리아를 위로하는 경건한 여인들의 무리와 십자가 왼편에 서서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요한을 보고, 십자가 오른편에 엄숙하고 공손한 자세로 서 있는 론지노를 본다.
그는 무릎을 꿇고 팔을 내밀며 운다. “선생님이셨습니다! 선생님이셨어요! 우리는 이제 용서받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선생님의 피가 우리에게 내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그 피가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으니, 하늘은 우리를 저주합니다‥‥ 오! 그러나 선생님은 자비로우셨습니다! ‥‥ 유다와 보잘 것 없이 된 선생인 제가 선생님께 말씀드립니다. ‘불쌍히 여기셔서 선생님의 피를 우리에게’하고. 그 피를 우리에게 뿌려 주십시오! 그 피만이 우리에게 용서를 얻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운다. 그런 다음 더 조용히 그의 숨은 고통을 인정한다.
“제가 청한 표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수백 수천년의 정신적인 맹목이 제 마음의 눈에 남아 있고, 지금의 제 의지에 어제의 오만한 생각의 목소리가 반항합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세상의 빛이여, 선생님을 이해하지 못한 암흑에 선생님의 빛살을 하나 내려보내 주십시오! 저는 정의라고 믿었었으나 사실은 오류였던 것에 충실한 늙은 유다인입니다. 지금 저는 옛날 믿음의 늙은 나무가 한 그루도 남지 않고, 새 믿음의 씨앗도 줄기도 도무지 없는 불탄 황야입니다. 저는 바싹마른 사막입니다. 완고한 늙은 이스라엘 사람의 이 마음 속에 선생님의 이름을 가진 꽃이 한 송이 우뚝 서있게 하는 기적을 행하십시오. 구원자이신 선생님, 형식에 사로잡혀 있는 제 가엾은 생각속에 깊숙이 들어오십시오. 이사야가 이렇게 말했었지요. ‘…그는 죄인들을 위하여 값을 치렀고 많은 무리의 죄를 짊어졌다’고. 오! 나자렛의 예수님, 제 죄까지도 짊어지십시오‥‥.”
가믈리엘은 일어난다. 환해지는 빛으로 점점 더 분명해지는 십자가를 쳐다보고 나서는 몸을 구부리고 더 늙어지고 겸손해져서 떠나간다.
골고타에는 정적이 돌아왔다. 겨우 마리아의 울음이 있을 뿐이다.
두 도둑은 두려움으로 기진맥진하여 이제는 말이 없다.
니고데모와 요셉은 빨리 돌아오면서 빌라도의 허락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을 과히 믿지 않는 론지노는 두 도둑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아 오라고 기병 한 사람을 총독에게 보낸다. 병사는 말을 타고 달려갔다가 예수를 내주고 다른 사형수들은 유다인들의 뜻에 따라 다리를 부러뜨리라는 명령을 가지고 돌아온다.
론지노는 바위 아래 웅크리고 앉아서 공포에 질려 있는 네 명의 사형 집행인을 불러서 두 도둑은 매로 쳐서 아주 죽게 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디스마는 이 일이 반항 없이 진행되어, 쇠를 대지 않은 매가 두 무릎을 친 다음 심장을 쳐서 그르렁거리는 가운데 입술에 올리던 예수의 이름을 반쯤에서 끊어지게 한다. 또 한 도둑은 소름끼치는 암담 속에 일이 이루어진다. 그들의 그르렁거림은 비통하다.
네 사형 집행인은 예수를 십자가에서 떼어내는 일도 자기들이 하려고 한다. 그러나 요셉과 니고데모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요셉도 겉옷을 벗고 요한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말하며 그들이 지렛대와 집게를 가지고 올라가는 동안 사다리를 붙들라고 이른다.
마리아는 여인들의 부축을 받으며 떨면서 일어나서 십자가 가까이로 가신다.
그동안 병사들은 그들의 일이 끝나서 떠나가고, 론지노는 아래쪽 광장 저쪽으로 내려가기 전에 말을 탄 채 몸을 돌려 마리아와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을 바라다본다. 그런 다음 돌에 부딪치는 말굽 소리와 갑옷에 부딪치는 무기 소리를 내며 점점 더 멀어져 간다.
왼편 손바닥의 못이 뽑혔다. 팔은 반쯤 떨어져서 몸을 따라 늘어진다. 그들은 요한에게 사다리는 여자들에게 맡기고 올라오라고 말한다.
요한은 사다리 위, 처음에 니고데모가 있던 자리로 올라가 예수의 팔을 자기 목에 걸고 온전히 그의 어깨에 내맡겨진 예수의 몸을 팔로 껴안으며 붙잡고, 거의 벌어지다시피한 왼손의 소름끼치는 상처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손가락 끝을 잡는다. 발의 못이 뽑히자 요한은 스승의 몸을 붙잡고 십자가와 자신의 몸 사이에 받쳐들고 있기가 무척 힘이 들어 보인다.
마리아는 벌써 십자가 아래 자리잡으시고 무릎 위에 당신의 예수를 받을 차비를 하시고 십자가를 등지고 앉아 계시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것은 오른팔의 못을 쁩는 일이다. 요한이 아무리 애를 써도 시체가 완전히 앞으로 늘어져서 못대가리가 살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박혔고, 두 사람은 상처를 더 입히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애를 많이 쓴다. 마침내 그들은 집게로 못을 집어서 아주 천천히 뽑는다.
요한은 여전히 그의 어깨에 머리가 젖혀져 얹혀 있는 예수의 시체를 안고 있고, 그동안 니고데모와 요셉은, 한 사람은 넓적다리를, 또 한 사람은 무릎을 잡고, 조심해서 사다리로 해서 시체를 내린다.
땅에 내려와서 그들은 그들의 겉옷 위에 펴놓은 홑이불 위에 내려 누이려고 한다. 그러나 마리아가 시체를 달라고 하신다. 마리아는 겉옷을 벌려 한 쪽으로 늘어뜨리시고 당신의 예수에게 요람을 만들어 주시려고 무릎을 벌리신다.
제자들이 마리아에게 아들의 시체를 드리기 위해 한번 도는 동안 가시관을 쓴 머리가 뒤로 젖혀지고 팔들이 땅으로 늘어져, 만일 동정하는 경건한 여인들이 붙잡지 않으면 손이 땅에 끌릴 뻔했다.
이제는 시체가 어머니의 무릎에 놓여 있다‥‥ 어머니의 무릎 위에서 몸을 움츠리고 자는 큰 어린아이 같다. 마리아는 아들의 어깨 뒤로 돌린 오른팔과 엉덩이를 떠받치느라고 복부 위쪽으로 돌린 왼팔로 아들을 붙들고 계시다. 머리는 어머니의 어깨에 놓여 있다. 마리아는 아들을 부르신다. 가슴을 찢는 듯한 목소리로 아들을 부르신다. 그리고 당신의 어깨에서 떼어서 왼손으로 어루만지시고, 손들을 잡아 펴시고, 엇갈리게 하기 전에 입을 맞추시고 상처를 보고 우신다. 그런 다음 뺨을 어루만지시는데, 특히 멍든 곳과 부어오른 곳을 어루만지시며, 쑥 들어간 눈과 약간 오른쪽으로 뒤틀리고 벌어진 입에 입맞추신다.
마리아는 피로 더러워진 수염을 가다듬으신 것과 같이 머리카락도 정돈하려고 하신다. 그러나 그렇게 하다가 가시를 만나신다. 마리아는 그 가시관을 벗기느라고 손을 찔리지만 당신이 자유로운 한 손으로 직접 그것을 하기를 원하셔서 모두를 물리치며 말씀하신다. “아니야! 아니야! 내가 해야 해! 내가!” 그리고 어떻게나 신중하게 하시는지 꼭 갓난 아기의 연한 머리를 들고 계신 것 같다. 그리고 그 고통의 관을 벗긴 후에는 가시에 긁힌 모든 상처를 입맞춤으로 치료하려고 몸을 굽히신다. 떨리는 손으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가르고 다시 가다듬으시며 조용히 울고 또 말씀을 하신다. 마리아는 얼음장같이 차고 피투성이가 된 가엾은 살에 떨어지는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으시면서 당신의 눈물과 예수의 허리에 아직 둘러쳐져 있는 당신의 베일로 예수의 살을 닦을 생각을 하신다. 베일의 한 끝을 잡아당겨서 거룩한 지체를 닦고 훔치기 시작하신다. 끊임없이 얼굴을 어루만지시고, 그 다음에는 손을, 또 그 다음에는 타박상 투성이가 된 무릎을 쓰다듬으시고는, 다시 올라오며 당신의 많은 눈물이 떨어지는 시체를 닦으신다.
그렇게 하시는 중에 그분의 손이 옆구리에 뚫린 구멍을 만난다. 고운 린네르 천으로 덮인 작은 손이 상처의 넓은 구멍으로 거의 다 들어간다. 마리아는 희미하게 보이게 된 빛으로 보기 위하여 몸을 구부리고 보신다. 마리아는 벌어진 옆구리와 아들의 심장을 보신다. 그 때에는 비명을 지르신다. 창검이 그분의 심장도 찔러 상처를 입힌 것 같다. 마리아는 비명을 지르시고 그런 다음 아들의 시체 위에 쓰러지셔서, 당신도 돌아가신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이 마리아를 돕고 위로하고 그에게서 돌아가신 분의 시체를 빼앗으려고 한다. 마리아는 부르짖으신다. “어디에다 어디에다 너를 묻으랴? 안전하게 너를 묻을 만한 어떤 곳에다 너를 묻으랴?” 요셉이 공손하게 몸을 깊이 숙이고 한 손을 펴서 가슴에 대고 말한다. “기운을 내십시오. 어머니! 제 무덤은 새 것이고 위대한 분을 모실 만합니다. 그리고 제 친구 니고데모는 그가 개인적으로 드리기를 원하는 향료를 벌써 무덤에 가져갔습니다. 하지만 제발, 저녁때가 가까와 오니, 저희에게 맡겨 주십시오‥ 오늘은 안식일 전날 입니다. 오 거룩하신 어머니, 자비를 베푸십시오!”
요한과 여자들도 같은 뜻으로 청하니 마리아는 당신 아들을 무릎에서 떼어 가게 내버려두고, 사람들이 예수의 시체를 홑이불에 싸는 동안 가슴 아파하며 일어나셔서 “오! 가만히 하세요!” 하고 그들에게 부탁하신다.
니고데모와 요한은 어깨를, 요셉은 발을 붙잡고 시체를 들어올리는데, 시체는 홑이불로 둘러쌌을 뿐 아니라 들것 노릇을 하는 겉옷들 위에 뉘어졌다. 그렇게 하고서 그들은 길로 해서 내려간다.
마리아는 알패오의 마리아와 막달레나의 부축을 받으면서 무덤 있는 쪽으로 내려오신다. 그 뒤에는 못들과 집게와 가시관과 해면과 갈대를 주워서 가지고 오는 마르타와 제베대오의 마리아와 수산나가 따라간다.
골고타 위에는 십자가 셋이 남아 있다. 가운데 십자가에는 아무것도 없고, 다른 두 십자가에는 죽어가는 산 전리품이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