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 2일 미리야나를 통한 메세지
"사랑하는 아이들아!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이 충만한 이 거룩한 시기에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으로 너희에게 보내시니, 나는 너희가 돌같은 마음을 가지지 말아 주기를 애원한다. 단식과 기도가 내 아들 예수께 더욱 가까이 가고 그분을 더욱 잘 알게 되는 무기가 되게하여라. 나를, 그리고 세상을 비추는 나의 본보기를 따라 다오. 내가 너희를 도와 줄 것이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다. 고맙다." [...]
[교회는 성사이며 그리스도의 신비체] 일곱 가지 성사는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 그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은총을 펼치시는 표지이며 도구들이다. 교회는 가시적이며 동시에 영적이고, 교계적 사회이며, 그리스도의 신비체이다. 교회는 ‘하나’이지만 인간적, 신적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졌다. 이것은 신앙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는 신비이다. 교회는 이 세상에서 구원의 성사이고, 하느님과 인간이 이루는 친교의 표지이자 도구이다. 거룩하시며 또 거룩하게 [...]
과달루페 성모 발현과 성 후안 디에고 1531년 12월 9일, 성모님은 멕시코의 테페약(Tepeyac) 산에서 발현하셨다. 1492년 콜럼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후 유럽의 열강들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화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당시 아메리카 대륙은 지금과 같은 국경이 없었으며 지금의 멕시코는 당시에 아즈텍(Aztec) 제국으로 불리고 있었다. 1521년 스페인이 멕시코를 정복하면서 이주민들과 함께 신대륙에 건너갔던 스페인 선교사들은 원주민들에게 [...]
404 거대한 붉은 용 1989년 5월 14일 9. 그래서 주님께서는 당신의 ‘빛’으로, 성령께서는 당신의 신적 권능으로 나를 다시 옷 입혀 주시어, 나로 하여금 하늘의 큰 표징, 곧 ‘태양을 입은 여인’(묵시 12,1)으로 나타나게 하셨다. 거대한 ‘붉은 용’의 지배로부터 인류를 되찾아 지존하신 성삼께서 완전한 영광을 받으시도록 모두를 도로 데려오는 것이 나의 사명인 까닭이다. 10. 이런 이유로 나는 [...]
향심기도의 위험성 Rev. John D. Dreher 70년대 중반,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아빠스 토마스 키팅은 수도자들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그리스도교의 전통적인 방법을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바꿀 수 있을까요? 동양적인 (명상 등의) 기술을 수련한 사람들이 어떤 유사성을 보고 그들의 그리스도교적 뿌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말입니다." 윌리엄 멘니거 신부와 베이실 페닝턴 신부는 이러한 도전에 착수하였고, 그 결과가 [...]
대림절과 성탄 낮이 점점 짧아지고 정상적인 겨울 날씨로 첫눈이 내릴 때문 성탄에 대한 생각들이 수줍은 듯이 살며시 일어난다. 그리고 단지 성탄이라는 그 말로부터 거의 예외없이 모든 사람을 이끄는 신비한 힘이 나온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기에 대한 오랜 이야기가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하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조차 축제를 준비하고 어떻게 여기저기에 기쁨의 빛이 반짝이도록 [...]
그리스도교 명상 (Orationis Formas: 기도의 형태) 그리스도교 명상의 일부 측면에 관하여 가톨릭 주교들에게 보내는 서한 1989. 10. 15. 신앙교리성 서 론 1. 기도 형태(Orationis Formas)에 관하여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더 참되고 완벽한 방법을 배우려는 강렬한 욕구에 불타고 있다. 물론 그들은 침묵과 묵상과 명상을 추구하면서, 현대 문명이 상당한 어려움들을 일으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최근 수년 [...]
우리는 교회의 박사인 대 데레사에게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분은 그리스도와 아주 깊이 일치했고 모든 사람을 다 같은 사랑으로 대했습니다. 이러한 사랑에서 데레사가 깨달은 것은 '비교하는 것은 미움을 생기게 한다' 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비교하며 살고 있고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지도 않습니다. 그러면서 데레사의 말이 이 세상과는 맞지 않는다고 하며 이 말을 그냥 내버립니다. 그러나 좀더 [...]
I. 여는 말 ‘전례헌장’의 6장 ‘성음악’부분은 성교회의 음악전통을 요약하면서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헌장이 반포된 지 40년. 어쩌면 한국 교회는 아직 헌장에서 말하는 성음악의 정신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혼돈 상태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예를 들면 ‘굿 뉴스’ 홈페이지의 성가게시판에는 전통 교회음악 옹호론자들과 소위 생활성가 옹호론자들의 열띤 공방이 자주 일어난다. 전자는 오늘의 한국교회음악은 전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