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여는 말
‘전례헌장’의 6장 ‘성음악’부분은 성교회의 음악전통을 요약하면서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헌장이 반포된 지 40년. 어쩌면 한국 교회는 아직 헌장에서 말하는 성음악의 정신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혼돈 상태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예를 들면 ‘굿 뉴스’ 홈페이지의 성가게시판에는 전통 교회음악 옹호론자들과 소위 생활성가 옹호론자들의 열띤 공방이 자주 일어난다. 전자는 오늘의 한국교회음악은 전례 성가와 비전례 성가의 혼동, 세속음악과 다를 바 없는 생활성가의 범람 등으로 무질서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에 반하여 후자는 전통성가로는 젊은이들에게 찬송의 기쁨을 줄 수도, 적극적인 미사참여도 유도해 낼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이 좋아하는 음악과 리듬으로 주님을 찬송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이글에서 우리는 교회전통이 말하는 전례음악의 의미와 역할 그리고 찬미가의 올바른 이해를 통하여 한국교회의 전례음악이 진정으로 신자들의 신익을 위하여 봉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II. 전례음악의 이해
우리가 ‘주님의 날’에 교회에 오는 것은 함께 모인 그리스도교 신자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우리의 믿음을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신앙의 표현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신앙을 새롭게 하고 그 신앙을 더욱 심화시키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나러 교회에 오는 것은 우리 생활의 다른 부분에는 그리스도께서 계시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전 생활의 매 순간마다 함께 하시는 성령의 활동을 더욱 더 깊이 깨닫고 감사와 찬미를 드리기 위함이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사랑의 표시를 하며 살아가듯 그리스도께 대한 신자들의 사랑 역시 어떤 표시나 상징으로 반드시 표현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 대한 같은 사랑, 같은 신앙을 표현하는 다른 사람과 함께 우리 자신이 하나가 되어 찬미 공동체를 이룬다.
이렇게 주님을 믿는 백성들의 공적인 임무, 예배를 전례라 하며, 교회의 믿음을 표현하기 위하여 교회가 사용하는 여러 가지 많은 표지와 상징들 중에서 음악은 탁월한 중요성을 지닌다. ‘특별히 말과 결부된 거룩한 노래는 장엄한 전례의 필요하고도 불가결한 요소를 이룬다’고 헌장은 가르치고 있다 (112항 참조). 이와 같이 공의회가 추구하는 성음악에 관한 개혁의 가장 큰 특징은 음악과 전례문과의 관계에 큰 강조점을 주었다는 것이다.
전례음악의 기능은 봉사적인 것이다. 전례음악은 전례의 행위와 의식과 결합하면 할수록 거룩해 진다고 볼 때, 음악은 전례에 봉사해야 하는 것이지 절대로 전례를 지배하지 못한다. 전례음악은 모인 신자들 자신 안에 있는 신앙의 선물을 표현하고 나눌 수 있도록 도와야 하며, 그들 자신의 신앙의 내적 수행을 양육하고 보강시키도록 도와야할 임무를 가진다. 아울러 음악은 기도문들을 강조하여 그 메시지가 완전하고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Music in Catholic Worship, 1972). 음악이 전례공동체에 더하는 기쁨과 감격의 질은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아울러 음악은 회중에게 일치의 의식을 가지게 해 주며 특별한 의식을 위해 알맞은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이런 관점에서 가톨릭교회의 전례는 음악적이다. 회중들은 하느님 말씀을 노래하고 전례예식의 기도문을 노래한다. 전례 안에서 신자들은 전례기도문을 노래함으로써 자신들의 신앙을 표현하는 예식에로 연결시킬 수 있다. 이렇게 음악전례를 장려하려는 교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미사전례를 노래하기보다는, 미사 중에 노래하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지나 않은지 늘 반성하여야 하겠다. 실지로 많은 신자들은 전례를 노래한다는 것을 바로 찬미가(hymn)나 노래들(songs)을 노래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미사 전례음악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종종 전례기도문을 노래하는 것은 소홀히 하고, 찬미가 등 부수적인 음악을 선택하는 것에 우선권을 주는 경우가 많다. 전례노래는 단순히 선율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사, 기도문, 생각, 시와 음악이 가지고 있는 감정까지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미사전례에서 사용하는 노래의 가사는 우선적으로 미사의 전례문이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이런 의미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미사를 노래하는 것이지, 단순히 미사 중에 노래 부르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고 할 수 있다. (Notitiae 5 [1969] 406)
필자는 ‘성가’라는 용어를 대단히 절제하며 사용한다. 한국 교회에서는 미사 전례나 기도모임, 기타 교회모임에 사용하는 모든 노래를 성가라고 부르지만,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성가란 엄밀한 의미에서 전례기도문을 노래로 작곡한 것만을 ‘성가’ 혹은 전례음악이라 부를 수 있다. 여기에는 1903년 비오 10세의 ‘목자의 역할을 다함에 있어’ (Tra le sollecitudini)에서부터 성가 (chant)라고 지칭되어온 그레고리오 성가와 다성음악이 포함되는 것은 물론이다. 필자가 이런 협의적인 정의를 내리는 이유는 한국교회가 미사 전례를 노래하기보다, 미사 중에 노래하는 것에만 열중하여, 찬미가(hymn)풍의 노래를 성가라고 지칭하고 있으며, 이런 잘못된 용어의 사용이 결국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대중가요인지 무엇인지도 모를 노래들을 ‘성가’라 하면서 전례에 사용하도록 만들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부수적인 음악이란 미사 전례서 (구 미사경본)에 기도문이 아예 없거나, 해당되는 미사의 부분을 반드시 노래로 불러야 하거나, 읽어야 한다는 지시가 없는 경우에 사용하는 음악을 말한다. 이런 음악의 출현은 1958년 선포된 비오 12세의 ‘성음악의 지침’ (Instruction on Sacred Music)에서 소개된 ‘네 개의 찬미가’ 형태와 특별한 관계가 있다. 1963년 이전 미사 전례에서는 라틴어로 미사가 거행되었는데, 지침은 미사 전례의 특별한 부분, 주로 입당, 봉헌, 영성체, 퇴장 때에 자국어로 된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허가하였다. 이런 노래들은 전례자체를 노래한다기 보다 큰 예식들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등 기악으로 대치하거나 침묵할 수 있는 노래들이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의 새 미사 전례에서는 네 개의 찬미가를 노래하는 이 “규칙은 바뀌어졌다. 미사 전례 중에 반드시 노래로 불러야할 것들은 미사의 통상문과 고유문이다.” (Notitiae 5 [1969] 406)라고 하여 전례기도문의 찬송이 본질적인 것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전례음악은 전례기도문에 가락을 붙인 노래이다. 전례기도문이나 예식자체가 노래를 요구할 때에는 반드시 노래로 불러야 하고, 그 노래는 경문이나 예식의 성격이 요구하는 음악형식이나 성가의 유형을 따라야 한다 (성음악 훈령 6항). 노래를 요구하는 전례의 요소로는 대부분의 환호송, 대영광송, 마침영광송, 화답송 등이 있다.
이렇게 보면 한국교회는 아직도 우리는 전례음악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볼 수 있겠다. 미사 고유문, 성삼일 전례, 성수 예절, 그리고 성체성사(미사전례)를 제외한 성사들을 위한 노래들의 작곡이 시급히 요구된다. 그러나 비전례적인 의식을 위한 음악, 즉 신심을 노래하는 성모노래, 성체흠숭노래, 행렬(입당, 봉헌, 퇴장)노래들은 수적으로 다소 풍부하다고 볼 수 있겠다.
백성들은 전례예식의 기도문을 ‘한 마음’으로 노래한다. 그래서 사목자나 교회음악 지도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는 회중들로 하여금 완전하고 능동적이며, 의식을 가지고 전례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전례헌장이 ‘신자들이 완전하고 능동적인 참여‘ (14항)에 대해 말하는 것은 바로 예배의 참된 본질을 말하는 것이다. 전례는 연기자에 의해 공연되어지는 무대극이 아니라 오히려 신자 공동체의 증언이며, 의식이며, 잔치이고 무엇보다도 기도이다. 이런 것들은 본인 이외의 대리인을 인정하지 않는 인격적 행위로서 모든 이에게 능동적인 참여자가 되기를 요구한다. 따라서 신자들은 주일미사, 혼인미사, 장례미사, 세례나 견진성사 때에 마땅히 전례를 노래해야 한다.
전례음악은 전례기도문과 전례예식을 강화시키고 회중들을 하나로 일치시킨다. 이를 위해 사목자나 음악을 담당하는 책임자는 신자 공동체가 일치 안에서 자신들의 신앙을 노래할 수 있는 음악을 준비하고 또 찬미하는 공동체가 신앙으로 나가기 위하여 사용할 음악을 생각해야 한다.
III. 찬미가의 이해
전례음악 내지는 성가의 그릇된 이해는 현재 한국교회 음악을 혼돈상태로 이끄는 가장 큰 요인이라 생각한다고 하였다. 소위 생활성가를 전례에 사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적어도 전례 안에는 생활성가라는 음악형식은 없고 오직 전례음악과 찬미가가 있을 뿐이다.
교회는 한번도 어떤 형식의 음악만을 전례에 사용할 수 있다고 한 적이 없다. 음악형식은 작곡자 자신의 내적 충동을 효과적으로 또 감동적으로 담아내는 그릇이라 할 수 있다. 전례음악의 경우 기도문을 묵상하고 이를 고전적인 혹은 현대적인 형식으로 작곡하는 것은 전적으로 작곡자의 취향과 철학에 달려있다고 본다. 작품의 예술성은 차치하고 곡을 느리게 혹은 빠르게 작곡하건 문제가 되지 않으며, 전통적인 성가풍의 곡이건 현대풍의 곡이건 전례기도문을 이용해 작곡되었으면 그것들은 이미 전례음악이다. 이것을 전례에 사용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는 별도의 것으로 교회당국이 전례 음악가들의 도움을 받아 유권적 해석을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교회에서 이 찬미가가 문제가 되는 것은 전례헌장 118항의 잘못된 번역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례헌장 한국어판에서는 118항의 Cantus popularis religious를 ‘종교적 대중가곡’이라고 번역하여 많은 사람들, 특별히 생활성가 관계자들로 하여금 이를 대중가요란 말과 혼동하게 만드는 것 같다. 영어권에서는 이를 ‘vernacular hymnody’라고 번역하여 자국어로 된 찬미가임을 확실히 밝히고 있다. 이런 음악은 본문에서도 나타나듯이 먼저 신심행사 (예를 들면 신앙대회, 성체거동, 성체강복, 성지순례, 피정, 기도모임 등 즉 비전례적인 의식)에 사용하고, 그 다음으로 전례에서 기도문이나 예식자체가 노래를 요구하지 않는 부분, 주로 입당, 봉헌, 영성체, 퇴장노래로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비오 12세는 이런 찬미가들은 어른들뿐 아니라 민감한 청소년들이 신앙을 알게 되고, 이해하고, 기억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 하면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위험으로 이끄는 성질을 가진 선율이나 종종 관능적이고 외설적인 가사들과 함께 하는 선율은 사라져야 한다. 특별히 젊은이들의 신앙과 신심을 길러주는 품위 있고 순수한 기쁨을 주는 노래[찬미가]를 이런 종류 [세속풍]의 것으로 교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성음악의 원리 62-66항 참조)고 하셨다.
이런 면에서 생활성가 작곡가들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생활성가들 거의 대부분이 현대의 대중음악이 사용하고 있는 풍의 음악형식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다. 빠른 템포, 순수 예술음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리듬의 변화, 불협화음의 잦은 사용, 변화화음의 사용, 반음계의 잦은 사용 등이 그 예라고 하겠다. 가사에 있어서도 노래말과 맞는 리듬으로 조화를 느끼게 하며, 가톨릭 교의와 어긋나지 않으면서 서정성 있는 것을 사용하여 지역주교회의나 교구장 주교의 인준을 받아야만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찬미가는 세속음악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에 그 사용에 있어서 조심스러워야 하며 경건하고 종교적인 특성을 가질 경우에만 전례에 사용하도록 권하고 있다 (1958년 지침 7항). 아무튼 교회는 찬미가의 많은 이점들을 알고 있으며, 그 효력을 잘 살리기 위해서는 찬미가의 형식이 품위 있고 경건하고 순수한 기쁨을 주는 종교적인 특성을 가질 경우에만 사용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IV. 닫는 말
전례헌장은 어떤 한 가지 형태만의 음악을 교회음악의 전형으로 제시하지는 않지만, 어떤 형태의 음악에서든 그 안에서 전례음악의 순수성을 간직하려는 노력 또한 계속하고 있다. 이런 노력을 통해 교회음악은 음악의 미학적인 것만을 추구하려 하지 않고, 전례와 관련된 음악으로서의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전례음악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하느님의 식전에서 올바른 찬송으로 우리의 신앙심을 감동적으로 표현하게 하며, 이런 표현을 통해 찬미공동체가 더욱 더 하느님의 영광을 높이고 성화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단순히 미사 때에 노래함으로써 아니라, 미사를 노래하고, 전례를 노래하며 살 때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 ‘사목’ 2005년 1월호 : 전례음악과 찬미가 ; 김종헌(발다살)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