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어젯밤, 금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내 마음이 환히 열리며 이 광경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본 것은 아주 어린 마리아뿐이었다. 많아야 열두 살쯤 되었을 마리아. 그 작은 얼굴에는 이제 어린아이 특유의 통통한 둥근 모습이 사라지고, 길어지는 타원형 윤곽 속에서 장차 여인이 될 모습이 벌써 드러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머리카락도 더 이상 목덜미 위에 가볍게 흩날리는 곱슬머리가 아니었다. 너무도 옅은 금빛이라 은빛이 섞인 듯 보일 만큼 밝은 머리칼은 두 갈래의 굵은 땋은 머리로 단정히 묶여 어깨를 따라 늘어져 허리까지 내려와 있었다.
얼굴에는 더욱 깊은 사색이 어려 있었고, 한층 성숙한 기색이 감돌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소녀의 얼굴이었다. 아름답고 티 없이 순결한 소녀의 얼굴. 온통 흰옷을 입은 그 소녀는 아주 작고 새하얀 방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활짝 열린 창밖으로는 성전의 웅장한 중심 건물이 바라다보였고, 그 아래로 길게 이어지는 계단과 여러 뜰과 회랑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성전의 둘레 성벽 너머로는 거리와 집들과 정원이 펼쳐진 예루살렘 시가지가 보였고, 그 너머 멀리에는 올리브 산의 둥글고 푸른 봉우리가 시야를 채우고 있다. 그분은 바느질을 하시며 나직이 노래를 부르고 계셨다. 성가인지는 모르겠다. 이렇게 노래하셨다.
맑은 물속에 비친 별처럼
한 줄기 빛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빛나네.
어린 시절부터 나를 떠난 적 없고
사랑으로 나를 부드럽게 이끌어 주네.
내 마음 깊은 곳에는 한 노래가 있네.
그것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사람아, 너는 알지 못하리.
거룩하신 분께서 머무르시는 곳에서 오는 것이네.
나는 나의 밝은 별을 바라보며
이 빛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네.
비록 그것이 가장 달콤하고 가장 소중한 것이라 해도,
온전히 나의 것인 이 달콤한 빛만은 못하네.
오, 별이여, 당신은 나를
높은 하늘에서 한 어머니의 태 안으로 데려오셨네.
이제 당신은 내 안에 살아 계시고,
휘장 너머에서 저는 당신을 뵈옵니다. 오,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얼굴이여.
언제 당신의 종에게
구세주의 겸손한 여종이 되는 영예를 허락하시렵니까?
하늘에서 우리에게 메시아를 보내 주소서.
거룩하신 아버지, 마리아의 봉헌을 기꺼이 받아 주소서.
마리아께서는 노래를 마치시고는 미소를 지으시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셨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기도드리셨다. 그 작은 얼굴은 온통 빛으로 가득하였다. 맑게 개인 여름 하늘의 푸른빛을 향하여 얼굴을 들어 올리고 계신 그 모습은, 마치 그 모든 빛을 들이마신 뒤 그 빛을 다시 사방으로 내뿜고 있는 듯하였다. 아니, 차라리 그분의 내면에 감추어진 하나의 태양이 그 빛을 발하여, 마리아의 희고도 엷게 장밋빛이 감도는 살결을 환히 밝혀 주고, 다시 그 빛은 만물과 이 땅을 비추는 태양을 향해 퍼져 나가, 모든 것을 축복하며 수많은 복을 약속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랑이 가득한 기도를 마치시고 마리아께서 막 몸을 일으키려 하실 때에도, 황홀경의 광채는 여전히 그분의 얼굴 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때 프누엘의 한나가 들어왔다. 그녀는 놀란 듯, 아니 적어도 마리아의 모습과 기도하는 태도에 깊은 감탄을 금치 못한 채 걸음을 멈추었다. 잠시 후 그녀가 불렀다.
“마리아.”
그러자 소녀는 몸을 돌려 미소를 지으셨다. 조금 전의 미소와는 달랐지만, 여전히 더없이 아름다운 미소였다. 그리고 인사하셨다.
“한나, 평화를 빕니다.”
“기도하고 있었느냐? 너는 기도를 아무리 해도 모자라냐?”
“기도만으로도 저는 충분합니다. 하지만 저는 하느님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나, 제가 하느님을 얼마나 가까이 느끼는지 모르실 거예요. 가까이 계신 정도가 아니라, 제 마음 안에 계십니다. 하느님께서 이런 말을 하는 저를 교만하다고 여기지 않으시기를 빕니다. 그러나 저는 결코 혼자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보세요. 저기 황금과 눈처럼 흰 성전, 두 겹의 휘장 뒤에는 지성소가 있습니다. 대사장 외에는 어느 누구도, 주님의 영광이 머무르시는 속죄판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동정녀들과 레위인들의 노랫결에 따라 흔들리고, 귀한 향의 향기로 가득한 그 수놓인 두 겹의 휘장을, 마치 그 결을 뚫고 계약궤의 빛이 비쳐 나오려는 듯 바라볼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저는 그것을 바라봅니다. 제가 이스라엘의 어느 자손보다도 경건한 마음으로 그 휘장을 바라보지 않는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또 제가 지금 하는 말을 하게 된 것이 교만 때문이라고도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그것을 바라봅니다. 하느님의 백성 가운데 어느 누구도 저보다 더 깊은 경외심으로 자기 주님의 집을 바라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제 자신을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존재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휘장입니다. 휘장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감실입니다. 그 안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그런데 제 마음 안을 들여다보면, 저는 사랑의 영광 속에서 빛나시는 하느님을 뵙습니다. 그분께서 저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러면 저도 말씀드립니다.
‘저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하여 이 서로 주고받는 입맞춤 안에서 제 마음이 한 번 고동칠 때마다 저는 녹아 없어지고, 또 새롭게 태어납니다. 사랑하는 스승님들과 벗들, 저는 여러분 가운데 함께 있습니다. 그러나 불의 원이 저를 여러분과 갈라놓고 있습니다. 그 원 안에는 하느님과 저만이 있습니다. 저는 하느님의 불길 너머로 여러분을 바라보며, 그렇게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육적인 사랑으로는 여러분을 사랑할 수 없으며, 또 앞으로도 누구도 그런 사랑으로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오직 저를 사랑하시는 그분만을, 영 안에서 사랑할 뿐입니다.
저는 제 운명을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오랜 율법은 모든 처녀가 아내가 되고, 모든 아내가 어머니가 되기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저는 율법에 순종하면서도, ‘나는 너를 원한다.’ 하고 말씀하시는 그 음성에 순종합니다. 그래서 저는 동정녀이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저와 함께 계시는 이 달콤하고 보이지 않는 현존께서 저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바로 그것을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이제는 부모님도 더 이상 제 곁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녔던 인간적인 모든 것이 그 슬픔 속에서 어떻게 타 버렸는지는 영원하신 분만이 아십니다. 참으로 그것은 참혹한 고통 속에서 모두 타 버렸습니다. 이제 제게는 하느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직 그분께 맹목적으로 순종합니다. 부모님께 거슬러야 하는 일이었더라도 저는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분의 음성께서 제게, 당신을 따르려는 사람은 부모를 넘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마음을 둘러싼 성벽 주위를 사랑으로 지키는 파수꾼들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아는 길을 따라 자녀를 행복으로 이끌고자 합니다. 그러나 무한한 기쁨의 또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오너라, 나의 사랑하는 이여, 나의 신부여!’ 하고 저를 부르시는 그 음성을 따를 수만 있다면, 저는 부모님께 제 옷도 겉옷도 모두 남겨 드렸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남겨 드렸을 것입니다.
부모님께 불순종해야 했기에 흘렸을 진주 같은 눈물도, 그분의 음성을 따르기 위해 죽음마저 마다하지 않았을 루비 같은 핏방울도. 부모님께 이렇게 말해 주었을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크고, 더 달콤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음성이라고. 그러나 이제는 그분의 뜻께서 저를 부모에 대한 애정이라는 이 끈에서마저 풀어 주셨습니다. 사실 그것은 저를 얽매는 끈이 되었을 리 없습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의인이셨고, 하느님께서는 제게 말씀하시듯 부모님께도 분명히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부모님께서는 정의와 진리를 따르셨을 것입니다. 제가 부모님을 생각할 때면, 저는 그분들이 성조들 가운데에서 평화롭게 기다리고 계시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저는 제 희생으로 메시아의 오심을 앞당겨, 그분들에게 하늘의 문이 열리기를 재촉합니다. 이 땅에서는 저 혼자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상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가련한 종을 붙드시고 당신의 명령을 들려주시며 이끌어 주십니다. 그리고 저는 그 명령을 실행합니다. 그것을 실행하는 것이 바로 저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때가 오면 저는 제 비밀을 남편에게도 말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그것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하지만 마리아, 무슨 말로 그를 설득하려 하느냐? 너는 한 남자의 사랑과 율법, 그리고 세상 삶 자체를 모두 거슬러야 할 텐데.”
“하느님께서 함께 계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제 남편의 마음을 밝히 열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삶은 감각의 가시를 벗어 버리고, 사랑의 향기를 품은 순결한 꽃이 될 것입니다. 율법 말입니까…. 한나, 제가 하느님을 모독한다고는 생각하지 말아 주십시오. 저는 율법이 곧 바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율법이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라면, 누가 그것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오직 그것을 바꾸실 수 있는 분, 곧 하느님뿐이십니다. 그때는 모두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다니엘서를 읽다가 제 마음 깊은 곳에서 큰 빛이 비추어 왔고, 제 정신이 그 신비로운 말씀의 뜻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의인들의 기도로 말미암아 ‘일흔 주간’은 단축될 것입니다. 그러면 햇수 자체가 달라진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예언은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언의 시간을 재는 기준은 태양의 운행이 아니라 달의 운행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말씀드립니다.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실 아기의 첫 울음소리가 들릴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아, 저를 사랑하시는 이 빛께서, 제게 많은 것을 알려 주시듯, 하느님의 아들을 낳아 하느님께 바치고, 자기 백성에게 메시아를 낳아 줄 그 복된 여인이 어디 있는지만 알려 주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는 맨발로 온 세상을 걸어갈 것입니다. 추위도 얼음도, 먼지도 타는 듯한 뙤약볕도, 들짐승도 굶주림도, 그분께 이르는 제 길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께 이렇게 말씀드릴 것입니다. ‘당신의 종, 그리고 그리스도의 종들의 종인 저에게 당신의 집 아래에서 살게 해 주십시오. 맷돌도 돌리고, 포도즙 틀도 돌리겠습니다. 맷돌 곁의 여종으로 삼으셔도 좋고, 양 떼를 돌보는 목동으로 삼으셔도 좋습니다. 당신의 아기를 위해 강보를 빨게 하셔도 좋고, 부엌에 두셔도 좋고, 화덕 곁에 두셔도 좋습니다. 어디에든 원하시는 곳에 두십시오. 다만 저를 받아만 주십시오. 그분을 뵙게 해 주십시오! 그분의 음성을 듣게 해 주십시오! 그분의 시선을 한 번만이라도 받게 해 주십시오!
설령 그분께서 저를 받아들이지 않으신다 해도, 저는 그분의 집 문 앞에서 거지가 되어 살겠습니다. 구걸한 음식과 이삭을 주워 연명하며, 추위와 뙤약볕을 견디면서라도, 어린 메시아의 음성과 그 웃음소리의 메아리를 듣고, 그분께서 지나가시는 모습을 바라보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분의 손에서 빵 한 조각의 자선을 받을 수도 있겠지요. 아, 굶주림으로 창자가 뒤틀리고, 오랜 단식 끝에 기력이 다하여 쓰러질 지경이 된다 해도, 저는 그 빵을 먹지 않을 것입니다. 진주를 담은 주머니처럼 가슴에 품고, 그리스도의 손에서 배어 나온 향기를 맡기 위해 그 빵에 입 맞출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더 이상 배고프지도 춥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 빵에 닿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황홀경과 따뜻함이 되고, 황홀경과 양식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까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너야말로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서 동정으로 남으려는 것이냐?”
“아, 아닙니다. 저는 비천한 먼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감히 영광을 향해 눈을 들어 바라볼 엄두조차 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의 보이지 않는 현존이 계시다는 것을 아는 두 겹의 휘장 너머를 바라보는 것보다, 제 마음속을 바라보기를 더 좋아합니다.
저기에는 시나이의 두려우신 하느님께서 계십니다. 그러나 여기, 제 안에서는 우리 아버지를 뵙습니다. 사랑이 가득한 얼굴로 제게 미소 지으시고 축복해 주시는 아버지. 그분께는 제가 바람이 가볍게 떠받치는 작은 새처럼 작고, 들에 피는 은방울꽃 줄기처럼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그 꽃은 피어나고 향기를 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바람을 거슬러 맞서는 힘이라고는 향기롭고 순결한 그 부드러움밖에는 없습니다.
하느님, 당신은 제 사랑의 바람이십니다! 제가 동정으로 남으려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하느님과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실 분, 지성소 중의 지성소이신 거룩하신 분께서는, 하늘에서 당신의 어머니로 선택하신 바로 그것, 그리고 이 땅에서 하늘 아버지를 드러내는 것, 곧 순결만을 기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율법이 이 사실을 깊이 묵상하였다면, 또 랍비들이 자신들의 가르침으로 율법을 온갖 세세한 규정으로 늘려 놓는 대신, 더 높은 지평으로 마음을 들어 초자연의 세계에 잠기고, 최고의 목적을 잊은 채 좇고 있는 인간적인 것과 이익을 버렸더라면, 무엇보다도 순결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래야 이스라엘의 임금께서 오실 때 그것을 발견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를 가져오시는 분의 올리브 가지와 승리자의 종려가지와 함께, 백합을 뿌리십시오. 백합을, 또 백합을…. 구세주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셔야 하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피를! 이사야가 고난의 사람에게서 보았던 수많은 상처에서, 마치 구멍이 많은 그릇에서 이슬방울이 떨어지듯, 피의 비가 쏟아집니다. 이 거룩한 피가 모독과 불경이 있는 곳에 떨어지지 말고, 향기로운 순결의 성배들 안에 떨어지게 하십시오. 그 성배들이 피를 받아 모아 두었다가, 영혼이 병든 이들과 영혼의 나병 환자들, 하느님께 죽은 이들에게 다시 나누어 주게 하십시오.
백합을 드리십시오. 순결한 꽃잎의 흰 옷으로 그리스도의 땀과 눈물을 닦아 드릴 백합을 드리십시오! 백합을 드리십시오. 순교자의 열병으로 타오르시는 그분을 식혀 드릴 백합을 드리십시오! 오, 당신을 품게 될 그 백합은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의 갈증을 풀어 드릴 그 백합은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의 피로 붉게 물들어, 당신께서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며 슬픔으로 죽게 될 그 백합은 어디에 있습니까? 피를 모두 쏟으신 당신의 몸 곁에서 눈물을 흘릴 그 백합은 어디에 있습니까?
오, 그리스도! 그리스도! 제 그리움이시여!…”
마리아께서는 더 이상 말씀하지 못하셨다. 눈물을 흘리시며 깊은 감정에 압도되어 계셨다. 프누엘의 한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감동으로 떨리는 늙은이의 희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마리아, 나에게 더 가르쳐 줄 것이 있느냐?”
마리아께서는 흠칫 놀라셨다. 겸손하신 그분은 스승이 자신을 꾸짖는다고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아, 용서해 주세요! 당신은 스승님이시고, 저는 아무것도 아닌 보잘것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음성은 제 마음속에서부터 솟아오릅니다. 저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그것을 애써 붙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밀려오는 물결에 둑이 무너지며 강물이 넘쳐흐르듯, 그 음성이 저를 사로잡아 이렇게 넘쳐 나오고 말았습니다. 제 말을 마음에 두지 마시고, 제 교만을 꺾어 주십시오. 이 신비로운 말씀들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선하심으로 마련하신 마음의 비밀스러운 궤 안에 간직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보이지 않는 현존은 너무나도 달콤하여 저는 그분께 취해 있습니다…. 한나, 당신의 작은 종을 용서해 주십시오!”
프누엘의 한나는 마리아를 품에 꼭 안았다. 주름진 얼굴은 온통 떨리고 있었고, 눈물로 반짝였다. 그 눈물은 울퉁불퉁한 땅을 흐르다가 작은 웅덩이를 이루는 물처럼 얼굴의 주름 사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나 늙은 스승의 모습은 조금도 초라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눈물은 깊은 공경심을 불러일으켰다. 마리아께서는 그 품 안에 안긴 채 작은 얼굴을 늙은 스승의 가슴에 기대고 계셨다.
그렇게 환시는 끝났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리아는 하느님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느님을 꿈꾸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다만, 당신의 영혼이 이 세상에서 잉태된 육신과 결합하기 위하여 창조되던 그 순간,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하늘에서 보았던 것을 다시 보고 있었을 뿐이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속성 가운데 하나를, 비록 정의가 허락하는 만큼 훨씬 작은 정도였지만, 하느님과 함께 나누고 계셨다. 그것은 바로, 죄로 인해 손상되지 않은 강하고 완전한 지성의 속성, 곧 기억하고, 보고, 미리 내다보는 능력이었다.
사람은 하느님의 모습과 닮은 모양으로 창조되었다. 그 닮음 가운데 하나는, 영혼이 기억하고, 보고, 미리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이다. 이것이 미래를 읽는 능력을 설명해 준다. 이 능력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때로는 직접 주어지고, 때로는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기억이 되살아나, 하느님의 품 안에서 이미 보았던 여러 시대의 지평 가운데 한 부분을 환히 비추어 줍니다. 이것은 너희가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높은 신비이다.
그러나 깊이 생각하여 보아라. 모든 것을 아시는 그 지성, 모든 것을 아시는 그 생각, 모든 것을 보시는 그 시야께서, 당신 뜻의 한 번의 움직임과 무한한 사랑의 한 숨결로 너희를 창조하시어, 너희의 시작에서도 당신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너희의 목적에서도 당신의 자녀가 되게 하셨는데, 과연 당신 자신과 다른 어떤 것을 너희에게 주실 수 있겠느냐?
물론 그것은 무한히 작은 한 부분으로만 주어진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온전히 담아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무한히 작은 부분도, 그 작음 안에서 완전하고도 충만하다. 하느님께서는 사람, 곧 아담에게 얼마나 놀라운 지성의 보화를 주셨던가! 죄는 그것을 훼손하였다. 그러나 나의 희생은 그것을 다시 회복시키고, 너희에게 지성의 찬란한 빛과 그 풍성한 흐름과 그 지식을 열어 준다. 오! 은총으로 하느님과 하나 되어, 하느님의 아시는 능력에 참여하는 인간 정신의 숭고함이여! 은총으로 하느님과 하나 된 인간 정신의 숭고함. 다른 길은 없다.
인간을 초월한 비밀을 캐내고자 하는 호기심 많은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명심하여라. 은총의 상태에 있는 영혼에게서 오지 않는 모든 지식은, 오직 사탄에게서 오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율법을 거스르는 사람은 은총의 상태에 있지 않다. 하느님의 명령은 이미 매우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지식은 인간적인 문제에 관한 것이라 해도 진실과 일치하는 경우가 드물며, 초자연적인 것에 관해서는 결코 진실과 일치하지 않는다. 악마는 거짓의 아비이며, 사람을 거짓의 길로 끌고 가기 때문이다.
진리를 아는 다른 방법은 없다. 오직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방법뿐이다.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시고, 가르쳐 주시며, 기억을 되살려 주신다. 마치 아버지가 자녀에게 고향집을 떠올리게 하며 말하는 것과 같다.
“너는 나와 함께 이것을 하고, 저것을 보고, 또 다른 것을 듣던 때를 기억하느냐? 내가 너에게 작별의 입맞춤을 해 주던 때를 기억하느냐? 내가 처음 네 앞에 나타났을 때, 막 창조되어 아직 티 하나 없이 깨끗한 네 영혼 위에 내 얼굴의 눈부신 태양이 비치던 그 순간을 기억하느냐? 그 영혼은 내게서 막 나왔기에, 훗날 너를 손상시킨 부패에 아직 물들지 않았었다. 사랑의 한 번의 고동 속에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던 때를 기억하느냐? 우리의 ‘존재’와 ‘발출’의 신비가 무엇인지를 깨달았던 때를 기억하느냐?”
은총 상태에 있는 인간의 능력에도 한계가 있어 미칠 수 없는 곳에서는, 지식의 성령께서 말씀하시고 가르쳐 주신다. 그러나 성령을 모시기 위해서는 은총이 필요하다. 진리와 지식을 소유하기 위해서도 은총이 필요하다. 성부를 모시기 위해서도 은총이 필요하다. 은총은 삼위께서 거처를 마련하시는 장막이며, 영원하신 분께서 머무르시며 말씀하시는 속죄판이다. 그분께서는 더 이상 구름 속에 숨어 말씀하지 않으시고, 충실한 자녀에게 당신 얼굴을 드러내 보이시며 말씀하신다.
성인들은 하느님을 기억한다. 창조하시는 하느님의 지성 안에서 들었던 말씀들을 기억한다. 선하신 분께서는 그 말씀들을 다시 그들의 마음속에 되살려 주시어, 그들을 독수리처럼 높이 들어 올려 진리를 관상하게 하시고, 시대를 깨닫게 하신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리아는 은총이 가득하신 분이었다. 한 분이시며 삼위이신 모든 은총이 그분 안에 있었다. 한 분이시며 삼위이신 그 모든 은총은 그분을 신랑을 맞이할 신부로, 생명을 품을 신방으로, 당신의 모성과 사명을 위하여 하느님을 닮은 분으로 준비시키고 있었다. 그분은 구약의 여성 예언자들의 계보를 끝맺으시고, 신약의 ‘하느님의 대변자들’의 시대를 여시는 분이시다.
하느님 말씀이 참으로 머무르시는 계약궤이신 그분은, 영원히 침해되지 않은 당신의 태 안을 들여다보시며,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당신의 티 없는 마음에 새겨진 영원한 지혜의 말씀을 발견하셨다. 그리고 모든 성인들처럼, 당신의 불멸하는 영혼이 모든 생명의 창조주이신 성부 하느님에게서 창조될 때 이미 그 말씀을 들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계셨다.
그러나 당신의 장차 이루실 사명에 관한 모든 것을 기억하고 계시지는 않았다. 이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가장 완전한 모습 안에도, 당신의 신적 지혜의 법에 따라 얼마간의 빈자리를 남겨 두시기 때문이다. 그 신적 지혜는 선이기도 하고, 피조물을 위한 공로가 되게 하는 배려이기도 하다.
둘째 하와인 마리아께서는 충실하고 선한 의지로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는 공로를 스스로 쌓으셔야 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그리스도도 구속주가 되도록 바로 그와 같은 충실하고 선한 의지를 바라셨기 때문이다.
마리아의 영은 하늘에 있었다. 그러나 그분의 정신과 육신은 이 땅에 있었으며, 그 영에 이르고 성령과 열매 맺는 포옹 안에서 하나 되기 위하여, 땅과 육신을 짓밟고 나아가야 했다.”
나의 메모.
어제 하루 종일 나는 부모님의 죽음을 알리는 장면이 나오리라고 생각했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 소식을 즈카르야가 전해 줄 것이라고 여겼다. 또한 성인들이 하느님을 기억한다는 문제를 예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설명하실지도 나름대로 상상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 환시가 시작되자 나는 속으로 말했다. ‘이제 마리아에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하겠구나.’
그러자 며칠 동안 내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바로 그 슬픔을 다시 느끼고 보게 되리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것과 보고 들으리라 예상했던 것은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심지어 우연히라도 맞아떨어진 말 한마디조차 없었다. 오히려 그것이 나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그것은 이 모든 것 가운데 내 생각에서 나온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어떤 주제에 대한 정직한 암시조차 내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참으로 다른 근원에서 오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괴롭히던 두려움은 사라진다… 그러나 다음번까지만이다. 나를 속이고 또 다른 이들까지 속이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은 언제나 나를 따라다닐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