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아킴과 안나가 즈카르야와 엘리사벳과 함께 예루살렘의 어느 집, 아마도 친구나 친척의 집일 곳에서 나와, 정결 예식을 위해 성전으로 향하는 모습을 본다.
안나는 아기를 품에 안고 있다. 아기는 포대기에 곱게 싸여 있을 뿐 아니라, 가볍지만 부드럽고 따뜻한 양모 천으로 된 넓은 포에 온몸이 감싸여 있다. 그리고 안나가 얼마나 세심한 사랑으로 자기 작은 아이를 안고 돌보는지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녀는 이따금 고운 따뜻한 천의 한쪽 자락을 살며시 들어 올려 마리아가 숨을 잘 쉬고 있는지 살펴보고, 다시 천을 잘 여며, 맑지만 한겨울의 차가운 공기로부터 아기를 보호해 준다.
엘리사벳은 여러 꾸러미를 손에 들고 있다. 요아킴은 줄에 매인 아주 희고 큼직한 어린양 두 마리를 끌고 간다. 이제는 어린양이라기보다 숫양에 가까울 만큼 자란 양들이다. 즈카르야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다. 그는 흰 아마포 옷을 입고 있는데, 역시 흰색의 두꺼운 양모 겉옷이 그 옷자락을 은은히 드러내고 있어 전체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 세례자 요한이 태어날 때 보았던 그 즈카르야보다 훨씬 젊어, 한창 장년의 기품을 지니고 있다.
엘리사벳 역시 성숙한 여인이지만 아직도 젊고 생기 있는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안나가 아기를 바라볼 때마다, 엘리사벳도 잠든 그 작은 얼굴 위로 황홀한 듯 몸을 굽혀 들여다본다. 그녀 역시 짙은 자주빛이 감도는 푸른 옷을 입고 있으며, 머리를 덮은 베일은 어깨를 지나 겉옷 위까지 드리워져 있는데, 그 빛깔은 옷보다도 한층 더 짙다. 요아킴과 안나는 축제 의복을 입고 한층 장엄한 모습을 하고 있다. 평소와는 달리 요아킴은 짙은 갈색 튜니카를 입지 않았다. 대신 오늘날로 말하면 ‘성 요셉의 붉은색’이라 할 만큼 아주 짙은 붉은빛의 긴 옷을 입었고, 그의 겉옷 가장자리에 달린 술도 모두 새것처럼 아름답다. 머리에는 그 역시 직사각형 모양의 베일 같은 것을 쓰고 있는데, 가죽 띠를 둘러 고정하고 있다. 모두 새것이고 하나같이 품위 있는 것들이다.
안나도, 아, 오늘만은 어두운 옷을 입지 않았다! 거의 오래된 상아빛에 가까운 아주 옅은 노란색 옷을 입었는데, 허리와 목, 그리고 소맷부리는 은과 금으로 만든 듯한 띠로 단정히 여며져 있다. 머리에는 매우 가볍고 다마스크 무늬가 놓인 듯한 베일을 쓰고 있으며, 그것은 가늘지만 귀한 이마 장식으로 고정되어 있다. 목에는 섬세한 세공 목걸이를 걸고, 손목에는 팔찌를 차고 있다. 그녀는 마치 여왕 같다. 옷을 입은 품위도 그러하지만, 무엇보다 연노란색 바탕에 같은 색실로 아름다운 그리스식 무늬를 수놓은 가장자리가 둘린 망토를 걸친 모습은 더욱 그러하다.
“결혼하시던 날의 당신을 다시 보는 것 같아요. 그때 저는 이제 막 소녀 티를 벗을 무렵이었지만, 당신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했는지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하고 엘리사벳이 말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더 행복해요. … 그래서 이 예식을 위해 그때 입었던 바로 이 옷을 다시 꺼내 입고 싶었어요. 늘 이 날을 위해 간직해 두었지요. 하지만 이제는 이 예식을 위해 이 옷을 다시 입게 되리라고는 더 이상 기대하지 않았어요.”
“주님께서 당신을 참으로 많이 사랑하셨군요….” 하고 엘리사벳이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그래서 저는 주님께 제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바쳐 드리는 거예요. 이, 제 꽃을요.”
“그때가 오면 그 아이를 품에서 떼어 놓을 수 있겠어요?”
“원래는 내게 없었던 아이였고, 하느님께서 내게 주셨다는 것을 기억할 거예요. 저는 앞으로도 언제나, ‘그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 아이가 성전에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저는 이렇게 말하겠지요. ‘성막 곁에서 기도하여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네 어머니를 위해서도 기도하여라.’ 그러면 제 마음은 평화를 얻게 될 거예요.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할 때 저는 더욱 큰 평화를 얻게 될 거예요. ‘저 아이는 온전히 하느님의 것이다. 하늘에서 저 아이를 선물로 받아 행복을 누렸던 이 두 늙은이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영원하신 그분께서 저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주실 것이다.’ 믿어 주세요. 저는 이것을 굳게 확신하고 있어요. 이 작은 아이는 우리 아이가 아니에요. 저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 그런데 그분께서 제 태 안에 이 아이를 넣어 주셨어요. 제 눈물을 닦아 주시고, 우리의 희망과 우리의 기도를 위로해 주시려고 내리신 하느님의 선물로 말이에요. 그러니 이 아이는 그분의 것이에요. 우리는 다만 그 아이를 맡아 돌보는 행복한 관리자일 뿐이에요. … 이 모든 일로 그분께서는 찬미받으시기를!”
그들은 마침내 성전의 성벽에 이르렀다.
“당신들은 니카노르 문으로 먼저 가십시오. 저는 사제에게 미리 알려 드리고 곧 따라가겠습니다.” 하고 즈카르야가 말한다. 그러고는 회랑으로 둘러싸인 넓은 뜰로 이어지는 아치문 뒤로 사라진다. 일행은 차례차례 이어지는 층계를 따라 계속 안으로 들어간다. 내가 전에 말한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성전 경내는 평지가 아니라 여러 단으로 이루어져 점점 더 높이 올라가도록 되어 있다. 각 단에는 계단을 통해 오르게 되어 있고, 층마다 뜰과 회랑, 그리고 대리석과 청동과 금으로 정교하게 장식된 문들이 있다.
정해진 곳에 이르기 전에 그들은 잠시 멈춰, 싸 가지고 온 것들을 꾸러미에서 꺼낸다. 넓적하고 납작하며 기름이 듬뿍 발린 빵들인 것 같고, 흰 밀가루와 버들가지로 엮은 작은 새장에 든 비둘기 두 마리, 그리고 큼직한 은화들도 있다. 얼마나 무거운 은화들인지, 다행히도 그 시대에는 주머니가 없었다. 주머니가 있었다면 틀림없이 다 찢어졌을 것이다.
드디어 아름다운 니카노르 문이 보인다. 은을 입힌 두꺼운 청동 위에 정교한 부조를 새겨 넣은, 참으로 아름다운 문이다. 그곳에는 이미 즈카르야가 흰 아마포 예복을 화려하게 차려입은 한 사제 곁에 서 있다. 안나는 먼저, 아마도 정결례에 쓰이는 물인 듯한 물을 뿌리는 예식을 받고, 이어 제단으로 나아가라는 지시를 받는다. 이제 아기는 더 이상 안나의 품에 안겨 있지 않다. 문 이쪽에 머물러 있는 엘리사벳이 아기를 받아 안고 있다. 한편 요아킴은 애처롭게 울어 대는 어린양 한 마리를 끌고 아내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나는… 마리아의 정결 예식 때 그랬던 것처럼 눈을 감는다. 어떤 희생 제물의 도살 장면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안나는 정결 예식을 마쳤다.
즈카르야는 옆에 있는 사제에게 조용히 몇 마디를 건넨다. 그 사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는 다시 모인 일행에게 다가와, 부모의 기쁨과 하느님께 드린 서약에 대한 그들의 충실함을 축하하며, 두 번째 어린양과 밀가루와 빵을 받아 든다.
“그러면 이 딸은 주님께 봉헌된 아이로군요? 주님의 강복이 이 아이와 여러분 위에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마침 안나가 오는군요. 이 아이를 가르칠 스승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파누엘의 안나입니다. 이리 오십시오, 부인. 이 작은 아이는 찬미의 제물로 성전에 봉헌되었습니다. 당신은 이 아이의 스승이 되어 주십시오. 이 아이는 당신의 보살핌 아래 거룩하게 자라게 될 것입니다.”
이미 머리카락이 온통 백발이 된 파누엘의 안나는 잠에서 깨어난 아기를 다정하게 어른거린다. 아기는 순진하고 놀라움에 찬 눈으로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흰빛과 황금빛을 두리번거리며 바라본다.
이제 예식은 끝나야 한다. 나는 마리아를 봉헌하는 특별한 의식은 보지 못했다. 아마 사제에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거룩한 곳에서 하느님께 그 뜻을 말씀드리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것 같다.
“성전에 봉헌 예물을 드리고, 지난해 제가 빛을 보았던 그곳에도 다녀오고 싶습니다.”
그들은 파누엘의 안나의 안내를 받으며 걸어간다. 성전 본관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여자들이고 또 어린아이를 데리고 있기 때문인지, 훗날 마리아가 아드님을 봉헌하러 들어갔던 그곳으로도 가지 않는다. 그러나 활짝 열린 문 가까이에서 성전 안의 어스름한 내부를 바라본다. 그 안에서는 어린 소녀들의 고운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고, 귀한 등불들이 황금빛을 비추며 흰 베일을 쓴 작은 머리들이 모여 있는 두 화단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마치 백합이 가득 핀 두 화단과도 같다.
“내 백합아, 이제 삼 년만 지나면 너도 저 안에 있게 될 거란다.” 하고 안나가 마리아에게 약속한다. 마리아는 넋을 빼앗긴 듯 성전 안을 바라보며, 느릿하게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에 미소를 짓는다.
“알아듣는 것 같군요.” 하고 파누엘의 안나가 말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아기예요! 제 친자식처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어머니, 그렇게 약속드려요. 제 나이가 허락하기만 한다면 말이지요.”
“그렇게 될 것입니다, 부인.” 하고 즈카르야가 말한다. “당신은 이 아이를 거룩한 소녀들 가운데서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저도 그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그날 저는 꼭 와서, 이 아이에게 첫 순간부터 우리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는 아내를 바라본다. 엘리사벳은 그 뜻을 알아듣고 조용히 한숨을 내쉰다. 예식이 끝나자 파누엘의 안나는 물러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성전을 나선다. 나는 요아킴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는다.
“두 마리, 그것도 가장 좋은 어린양만이 아니라, 이 기쁨과 하느님을 찬미하기 위해서라면 내 어린양을 모두 바쳤을 것이오!”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잠언에서 솔로몬은 지혜로 하여금 이렇게 말하게 한다(잠언 9,4 참고). ‘어린아이인 사람은 누구든지 내게 오너라.’ 참으로 영원한 지혜께서는 당신 도성의 높은 곳에서, 그 성벽 위에서, 영원한 소녀에게 ‘내게 오너라.’ 하고 말씀하고 계셨다. 그분은 그 소녀를 당신께 모시기를 애타게 바라셨다. 훗날 그 지극히 순결한 소녀의 아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378장).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하늘 나라는 이런 이들의 것이다. 누구든지 이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 내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이 두 음성은 서로 메아리친다.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이 어린 마리아에게 ‘내게 오너라.’ 하고 외칠 때, 사람으로서의 내 음성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이 말을 하면서 나는 내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다. ‘어린아이가 될 줄 안다면, 내게 오너라.’
그 본보기를 나는 내 어머니 안에서 너희에게 보여 준다. 보아라. 비둘기처럼 단순하고 순결한 마음을 지닌 완전한 소녀가 여기 있다. 세월도, 세상과의 접촉도, 이분을 타락하고, 뒤틀리고, 거짓된 정신의 야만성으로 변하게 하지 못하였다. 그분께서 그것을 원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마리아를 바라보며 내게 오너라. 너는 그분을 보고 있으니 내게 말하여라. 갓난아기인 이분의 눈빛이 십자가 아래에서 보았던 그 눈빛과 크게 다르더냐? 또는 오순절의 환희 속에서 보았던 그 눈빛과? 아니면 마지막 잠을 앞두고 영양의 눈과도 같던 그 눈꺼풀이 감기던 그 순간의 눈빛과 크게 다르더냐? 아니다.
여기에서는 갓난아기의 망설임과 놀라움이 담긴 눈빛이다. 이어서는 수태고지를 받은 동정녀의 놀라움과 수줍음에 찬 눈빛이 될 것이다. 그리고 베들레헴의 어머니가 된 복된 눈빛이 될 것이며, 이어 내 첫 번째이자 가장 숭고한 제자의 흠숭하는 눈빛이 될 것이다. 그다음에는 골고타의 고통받는 여인의 찢어질 듯한 눈빛이 될 것이고, 이어 부활과 오순절의 찬란한 눈빛이 될 것이다. 마지막에는 마지막 환시를 바라보다 황홀경 속에서 잠든 눈빛으로 가려질 것이다. 그러나 처음 사물을 바라보며 눈을 뜰 때나, 기쁨과 공포를 그토록 많이 본 뒤 마지막 빛을 바라보다 지쳐 눈을 감을 때나, 마리아의 이마 아래 빛나는 그 눈은 언제나 한결같이 맑고, 순수하며, 평화로운 하늘의 한 조각이다. 분노도, 거짓도, 교만도, 음욕도, 미움도, 쓸데없는 호기심도, 결코 그 눈을 자기들의 검은 구름으로 더럽히지 못한다.
그 눈은 사랑으로 하느님을 바라보는 눈이다. 울 때에도 웃을 때에도 그러하다. 그리고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어루만지고, 용서하며, 모든 것을 견디어 낸다. 또한 하느님을 향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악이 수없이 눈을 통하여 마음속으로 파고들려 해도 그 어떤 공격도 받지 않는 눈이 된다. 이것이 순결한 이들, 성인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이 지닌, 순결하고 평안을 주며 축복을 전하는 눈이다. 내가 이미 말하지 않았느냐(마태 6,22-23; 174장, 루카 11,34-35; 413장). ‘네 눈은 네 몸의 등불이다. 네 눈이 맑을 때에는 온몸도 환하고, 성하지 못할 때에는 몸도 어둡다.’ 성인들은 바로 이러한 눈을 지녔다. 이 눈은 영혼에는 빛이 되고 육신에는 구원이 된다. 그들은 마리아처럼 평생 하느님만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 더 나아가 그들은 언제나 하느님을 기억하며 살았다.
작은 목소리야, 내가 방금 한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너에게 설명해 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