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성유 축성 미사 강론 “예수님 위한 자리를 마련하십시오”
Andrea De Angelis / 번역 이재협 신부
프란치스코 교황이 4월 14일 성목요일 성유 축성 미사 강론에서 사제들을 향해 “주님께 감사하고 우리 안의 유혹을 식별하며 우상을 거부하기 위해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하라”고 당부했다. “가난하게 오신 예수님과 함께 가난한 사람이 되십시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가난을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날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는 추기경들과 주교들을 비롯해 로마교구의 많은 사제들이 교황과 함께 미사를 주례했다. 로마교구 사제들은 자신들의 교구장 주교(교황) 곁에 모여 교회의 일치와 결합을 드러냈다. 1500여 명의 사제들과 2500여 명의 신자들이 모인 이날 미사에는 사제들이 서품을 받던 날 맹세했던 서약을 갱신하는 예식과 성유를 축성하는 예식이 거행됐다. 축성성유, 예비자 성유, 병자성유를 이룰 기름이 손잡이 달린 항아리에 담겨 차례로 교황 앞에 전달됐다. 교황 앞으로 축성성유를 이룰 기름이 담긴 항아리가 전달되자, 부제는 그 항아리에 향유를 부었다. 이어 교황은 그 항아리에 숨을 불어넣고 축성 기도를 바쳤다. 교황이 축성 기도를 바치는 동안 공동 집전자들은 모두 말없이 축성성유를 향해 오른손을 펴 들었다. 올리브 오일과 향유로 이뤄진 축성성유는 올 한 해 동안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품성사, 성당이나 제대의 축성 등에 사용될 것이다.
사제로 살아가는 은총
교황은 강론에서 사제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은총인지 강조했다. 교황은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가 들려준 “우리를 어루만지는 희망 가득한 약속”에 주목하며 제1독서의 일부를 다시 낭독했다. “너희는 ‘주님의 사제들’이라 불리고 ‘우리 하느님의 시종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나는 그들에게 성실히 보상해 주고 그들과 영원한 계약을 맺어 주리라”(이사 61,6-8). 교황은 이날 함께한 사제들을 향해 사제로 살아가는 은총이 무엇보다 백성을 위한 은총이자 백성을 위한 하느님의 크나큰 선물이라고 말했다.
“사랑하는 형제 사제 여러분, 사제로 살아간다는 것은 은총입니다. 크나큰 은총입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을 위한 은총이라기보다 무엇보다도 백성을 위한 은총입니다. 주님께서 아버지나 목동처럼 자신의 양떼를 돌보는 일에만 전념하는 사람들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은 우리 하느님 백성에게 크나큰 선물입니다. 그리고 이사야 예언자가 ‘나는 그들에게 성실히 보상해 주고’(이사 61,8)라고 말한 바와 같이, 사제들에게 보상을 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아시다시피 주님께서는 착한 주인이십니다. 주님께서는 가장 먼저 온 이에게나 가장 늦게 온 이에게나 같은 일당을 주시는 당신의 고유한 방식에 따라 보상을 베푸십니다.”
주님의 시선
교황은 다음과 같이 강론을 이어갔다. “오늘 루카 복음은 예수님께서 사람들 앞에서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를 읽으시고 자리에 앉으시자,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했다고 우리에게 전합니다. 오늘 제2독서인 요한 묵시록 또한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또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저항할 수 없는 매력에 대해 말합니다. 그 매력이 주님을 인식하고 흠숭하도록 이끕니다.” 교황은 이처럼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또한 관상하라고 초대했다.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하는 일’은 은총입니다. 사제인 우리는 반드시 예수님을 바라보도록 힘써야 합니다. 하루를 마치는 시간은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께서 우리 마음과 우리가 하루 동안 만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바라보시도록 하기 좋은 시간입니다. 이 시간은 우리의 죄를 셈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랑 가득한 관상의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 우리는 예수님의 시선으로 오늘 하루를 돌아봅니다. 오늘 하루 받은 은총과 우리를 위해 베푸신 모든 선물을 바라보며 감사드리는 시간입니다. 또한 유혹을 식별하고 거부할 수 있도록 우리 안의 유혹을 주님 앞에 내어 놓는 시간입니다. 이처럼 이 시간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지금 이 순간 그분께서 우리의 현재 삶 속에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살피는 시간입니다.”
우리를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우상들
교황은 주님의 시선을 관상하는 가운데 우리가 “예수님께 우리의 우상을 꺼내 보여드릴 수 있다”며 “주님의 시선은 나 스스로를 영광스럽게 하려는 숨겨진 우상을 바라보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가 독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자리에 악마가 슬며시 침투해 온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내 마음에 주님을 위한 자리가 전혀 없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악마는 어떤 성취감을 통해 혹은 다른 어떤 일에 대한 열정을 키워나감으로써 우리를 자기만족감에 취하게 할 뿐 아니라, 삼위일체의 현존, 곧 우리 안에 계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현존을 교묘하게 열정의 모습을 한 우상으로 대체하도록 유혹합니다. 이는 실제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비록 우리가 하느님과 우상의 차이를 완벽하게 구분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할지라도, 실제로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위한 자리를 악마에게 내어주는 경우가 생깁니다. 마치 사이비에 빠진 사람처럼 말이죠. 그는 그 사실을 숨기려 하지만, 계속해서 악마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산물을 소비합니다. 결국 그의 마음엔 하느님을 위한 작은 자리조차 남아 있지 않게 됩니다. 악마는 이러합니다. 악마는 서서히 침투합니다. 저는 지난 번 ‘학습한 마귀’에 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를 두고 예수님께서는 한 번 쫓겨난 마귀가 다시 돌아왔을 때 더 위험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마귀들은 ‘예의바릅니다.’ 그들은 초인종을 누르고, 집안으로 들어오고, 한 발짝 한 발짝 집을 차지합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이들이 바로 우리의 우상입니다.”
영적 세속성
교황은 “목자로서의 우리 소명을 약화시키려고 각자의 마음 안에 있는 우상이 활동하도록 악마가 교묘하게 숨겨놓은 우상숭배의 세 자리”를 조심하라고 강조했다. 첫 번째 자리는 “하루살이 문화, 보여주기식 문화”를 대변하는 “영적 세속성”이다. 이는 “십자가 없는 승리주의”로 이끈다.
“십자가 없는 영광에 대한 유혹은 인간이 되신 주님을 역행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몸으로 당신 자신을 낮추시는 모순의 표징이시면서 모든 우상을 물리치시는 우리의 유일한 약이신 예수님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가난하게 오신 예수님과 함께 가난한 사람이 되십시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가난을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마음가짐입니다. 그 밖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세속적인 태도는 비천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비천하게 되신 예수님의 현존, 모든 이의 곁에 계시는 주님의 현존, 고통받는 모든 이와 함께 고통받으시는 예수님의 현존, 우리의 진정한 친구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하느님 백성이 흠숭하는 주님의 현존을 우리에게서 앗아갑니다. 세속적인 사제는 성직지상주의에 물든 이교도와 다를 바 없습니다. 다시 한번 말합니다. 세속적인 사제는 성직지상주의에 물든 이교도와 다를 바 없습니다.”
숫자에 의존하는 실용주의와 기능주의
교황은 교묘하게 숨어든 우상숭배의 두 번째 자리를 가리켜 ‘숫자에 의존하는 실용주의’라고 지적했다. 이어 숫자의 우상에 빠진 사람이 “드러내지 않으시는 성령의 측량할 수 없는 은총을 추상적인 방법이나 한낱 수치로 드러내려 한다”고 말했다. 사랑은 숫자가 아니라 각자의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다.
“사람은 ‘숫자’가 될 수 없으며, 하느님께서는 성령의 은총을 ‘계량’하여 베푸시지 않습니다. 숫자에 대한 이러한 유혹 안에서 우리는 실제로 우리 자신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각자의 얼굴이나 사랑의 논리에는 관심 없고 숫자의 논리에 따른 자기 만족에 취하게 됩니다. 위대한 성인의 특성 중 하나는 온전히 하느님께 자리를 내어 드리기 위해 물러설 줄 안다는 점입니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경계해야 할 교묘한 우상숭배의 자리는 ‘기능주의’다. 교황은 기능주의를 가리켜 “많은 이들로 하여금 여정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여정을 계획하는 탁상공론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도록 이끄는 유혹”이라고 설명했다. 첫 번째 교묘한 우상숭배의 자리가 성자에게서 우리를 멀어지게 하고, 두 번째 자리가 성령에게서 우리를 멀어지게 한다면, 세 번째 자리는 성부의 따뜻한 사랑에게서 우리를 멀어지게 한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창조주이십니다. 하지만 만물이 그저 ‘기능적으로 잘 돌아가도록 만드신’ 창조주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로서 따뜻한 사랑으로 우리를 ‘창조’하셨으며, 당신의 피조물을 돌보시고, 인간을 더욱 자유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기능주의에 빠진 사람은 자신이 맡은 백성 위로 내려오는 성령의 은총을 보고도 기뻐할 줄 모릅니다. 하지만 하느님 백성은 매달 임금을 받는 노동자처럼 이 성령의 은총을 ‘자양분’으로 삼습니다. 기능주의적 사고방식에 빠진 사제는 자기 자신을 자양분으로 삼습니다. 기능주의 안에서 우리는 우리 삶의 크고 작은 문제를 마주할 때마다 하느님을 흠숭하는 일을 제쳐두고, 우리의 계획에 따른 효율성에서 자기 만족에 취합니다.”
성 요셉께 바치는 기도
교황은 이러한 우상들이 자라는 비옥한 토양인 소유에 대한 모든 갈망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 달라고 요셉 성인께 청하며 강론을 마무리했다.
“저는 가장 소박하시며 숨겨진 우상이 없는 요셉 성인께 기도하며 강론을 마치고자 합니다. 요셉 성인이시여, 우상이 자라는 비옥한 토양인 소유에 대한 모든 갈망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소서. 우리가 너무 자주 숨기거나 교묘하게 우리 안에 숨어있는 이러한 우상들을 가려내는 인내의 작업을 포기하지 않도록 은총을 내려주소서.”
사제들을 위한 책 선물
교황은 미사를 마치며 『기능주의자가 아닌 증거자,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제』라는 제목의 책을 미사에 함께한 사제들에게 선물했다. 프랑스 코르시카섬의 아작시오교구장 프랑수아 자비에 뷔스티요(François-Xavier Bustillo) 주교가 쓰고 바티칸출판사(LEV)가 펴낸 이 책은 성경과 철학자들의 구절을 인용하고 오늘날 상황과 교회 가르침을 성찰하며 매일을 살아가는 사제들이 주의해야 할 위험들, 특히 기능주의의 위험을 경고한다. 항상 1인칭 복수(우리)로 말하는 저자는 이 책이 좋은 사제로 이끄는 안내서가 아니라 사목 서한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모든 하느님의 시종들이 변화하는 시대 안에서 언제나 예수님과 복음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도록 부름받았다고 강조한다.
https://www.vaticannews.va/ko/pope/news/2022-04/messa-crisma-pasqua-2022-papa-francesco-omelia-vaticano-giovedi.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