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을 해체하는 소비사회

“①성 ②쾌락 ③사랑 ④생명 ⑤임신 ⑥출산 ⑦양육 ⑧부모됨 ⑨가족제도 ⑩사회제도”의 ①부터 ⑩까지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연속체다. 이는 자연법이기 때문에 인간이 아무리 애를 써도 이 연속체를 분리할 수 없다. 그런데 자본이 지배하는 소비사회는 성을 쾌락과만 결부시키고, 성에 자연법적으로 결합되는 요소는 삭제한다.

왜 그럴까? 소비사회는 인간의 성까지도 상품화해서 수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데, 상품화된 성이 생명, 임신, 출산, 부모됨 등의 무거운 주제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면 잘 팔릴까? 안 팔린다. 그렇기 때문에 성을 판매하는 기업은 성을 쾌락과 결합된 이미지로만 보여주고, 성의 통합체를 해체하여 성을 오직 쾌락의 도구로만 각인시키는 것이다.

성적 결합이 필연적으로 생명과 연결되기 때문에 성관계에는 당연히 책임이 따라야 하며, 성관계를 하는 남녀는 그 행위가 임신 출산 양육 부모됨 가족됨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도덕률을 소비사회는 철저하게 감춘다. 진실은 은폐되고 욕망을 자극하는 거짓말만 널리 유포되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기업이 지배하는 침투력 강한 영상매체가 영화 드라마 뮤비 광고 등으로 쉬지 않고 일하기 때문이다.

성의 분리ㆍ해체를 통한 수익 창출

소비사회는 우선 성을 사랑과 분리한다. 인격적 존중과 책임이 수반되는 진실된 사랑이 없어도 얼마든지 성관계는 재미로 혹은 시험 삼아 해볼 수 있는 놀이라고 설득한다. 이것이 문화산업과 방송산업이 하는 일이다. 그리고 임신 걱정은 하지 말라고, 성과 임신은 손쉽게 분리할 수 있다고 설득하는데 그것이 피임이다. 콘돔ㆍ피임약 장사는 피임이 원치 않는 임신을 막으니 생명 수호라고 선한 포장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엄청난 윤리적 악이 숨어 있다. ‘성관계는 얼마든지 자유롭게 해도 되고, 임신만 안 하면 된다’라는 피임 마인드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기 때문이다. 콘돔과 피임약을 믿고 성관계를 했는데 피임에 실패하면 이번에는 임신과 출산을 분리하라고 또 설득한다. 그것이 낙태다. 이 분리와 설득의 과정에서 소비사회의 각 산업 단위인 대중문화산업, 방송산업, 포르노산업, 모텔산업, 피임산업, 성교육산업, 의료산업 등은 큰돈을 벌어들인다.

해체된 성이 야기하는 문제들

낙태를 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책임 의식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의 출산은 영아 유기, 영아 살해로 이어진다. 화장실 등에서 발견된 신생아나 출산 직후 엄마가 살해한 아기들의 뉴스가 더 이상 낯설지 않고, 이것이 일부 청소년에만 한정된 문제도 아니다. 유기나 살해를 하지 않고 엄마가 직접 키우는 경우도 있지만, 남자친구는 90% 이상 도망쳐버린다. 여자 혼자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아이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망가져 버렸다’라는 분노가 치밀어오를 때마다 아이에게 폭언을 퍼붓고 폭력을 행사한다면 이것이 아동 학대다. 무책임한 남자친구에 대한 분노를 아이에게 투사하는 것인데, 엄마에게 생존을 의존하고 있는 아이는 그 학대를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다.

아이는 잘못이 없다. 무책임한 성관계를 한 부모의 죄가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돼 아이가 큰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학대당하며 성장한 아이는 그 부모가 살았던 무책임한 성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또 미혼모가 되거나 임신만 시켜놓고 도망치는 미혼부가 되어 자신의 자녀에게 악의 굴레를 씌울 가능성이 높다. 무책임하고 문란한 성관계가 악이 전달되는 세대 간 통로가 되는 것이다. 이렇기에 성관계를 재미나 장난으로 여기고 쉽게 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 교육되어야 하는데, 이런 주제를 정확하게 인식시키는 성교육은 매우 드물다. 엄마와 아이만으로 구성된 가족은 시작부터 해체된 공동체다. 이런 가족이 많아지면 사회가 불안정해진다.

피임보다 책임이 훨씬 더 중요한 성(性)

바로 이것이 성을 쾌락의 도구로만 인식하고, 성관계를 게임처럼 여기는 사회가 떠안아야 하는 부담이며, 사회를 병들게 하는 구조 악이다. 이 큰 그림을 보고 확실히 깨달아야만 하는 사실은 무엇일까. 성에서는 피임보다 책임이 훨씬 더 중요하며 따라서 성적 자유가 인정되는 사회에는 성에 내재된 책임을 다하게 하는 법적 제도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상식이다. 우리나라는 성이 개방만 되어 있을 뿐, 책임의 제도와 문화는 전혀 없다. 이것이 우리와 서구사회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미국과 유럽은 개인의 성적 자유를 폭넓게 인정해주되, 개인에게 그 책임을 철저하게 묻는 제도가 확립되어 있다.

미국의 보건복지부는 양육비 회피를 사기와 같은 중요 범죄로 보고, 홈페이지에 전용 신고센터를 운영한다. 양육비를 회피하고 잠적하면 지명수배하고 상세 정보를 공개하여 시민들의 신고를 받는다. “양육비 회피는 중대 범죄입니다. 우리는 범죄자를 끝까지 추적해 법이 허락하는 최대한의 처분을 받도록 할 것입니다.” 미국 보건복지부 책임자의 말이다. 경품 당첨 통보를 해서 잠적한 부모들을 불러모으고 신분이 확인되면 현장에서 체포하기도 한다. ‘양육비 책임법’으로 불리는 이 제도는 미성년자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KBS 시사기획 창, ‘이혼보다 깊은 상처 양육비’ 참조)

선진국의 청소년 성교육, 책임 강조

청소년의 경우 복지제도가 연계되어 아빠되는 기술을 알려주고 아르바이트를 알선해서 양육비를 부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양육비 부담이 어려우면 국가가 우선 지급하고, 성인이 되어 취직하면 월급의 일정액을 국가가 구상권을 발동해서 차압한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 차원에서 시행되는 책임의 성교육이다. 책임 교육은 학교로 이어져서 남학생들은 실제 아기처럼 반응하는 장치가 내장된 인형을 24시간 돌보면서 아빠 되기 교육을 받는다.

이런 나라에도 10대 임신은 존재한다. 청소년 엄마는 학교 탁아소에 아이를 맡긴다. 이 모습을 친구들이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나도 빨리 남자친구 사귀어서 성관계를 해야겠구나’일까? 아니면 ‘성관계는 자유지만 큰 책임이 따르는구나!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야겠다’일까? 책임의 제도가 타산지석(他山之石)의 학습까지 완벽하게 시키는 것이다. 이런 국가에서는 청소년 첫경험 연령이 올라가고, 낙태가 합법화되어 있다 해도 여성이 낙태를 쉽게 선택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한국에는 없고, 거의 모든 OECD 선진국에 있는 미혼부 책임법과 책임의 성교육이다. 책임의 제도와 교육이 전무한 우리 상황에서 서울시가 공공기관(학교, 보건소)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콘돔을 무상지급하는 정책이 청소년 인권의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다. 교육과 국가가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 재고(再考), 삼고(三考)가 필요하다.

–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fid=1455&cat=9004&gotoPage=4&cid=708524&path=201801
– 가톨릭 평화신문 기획특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