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리아 발또르따의 사적 계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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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아래의 환시와 이어지는 주석은 이탈리아의 현대 신비가 마리아 발또르따 [1897 – 1961] 의 I Quaderni del 1944 [1944년 노트] 에서 수집하여, 지시받은 환시의 날짜에 따라 I Quaderni del 1944의 이탈리아 비평판, 보다 정확히 말하면 Notebook No. 21로부터 번역한 것이다.
발또르따 자신의 나레이션식 구술과 환시에서 얻은 예수님의 말씀을 분명히 구분하기 위하여 예수님의 말씀은 굵은 체로 표시하였다. – 영문 역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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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대로 한데 엮어 묶은 나뭇가지들로 만든 거친 틀 위에 나뭇잎을 쌓아 만든 침대가 놓여있는 바위투성이의 동굴을 본다. 침대는 고문 기구라 해도 맞을 것이다. 동굴에는 또한 테이블로 사용되는 커다란 바위와 의자로 사용되는 작은 바위도 있다. 측면을 따라서 더 뒤쪽에는, 깨끗하게 관리되어 온 커다란 융기가 바위로부터 돌출되어 있다 – 원래부터 그런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끈기 있게 힘겨운 노동을 해온 덕분인지는 모르겠으나 – 표면은 대단히 매끄럽다. 제단으로 사용되어 온 것처럼 보이는 이 돌출부에는, 작은 가지로 함께 고정된 두 개의 나뭇가지로 만든 십자가가 놓여 있다. 점토 표면의 틈 사이로, 이 동굴의 거주자가 심어놓은 담쟁이 덩굴이 틀 쪽으로 가지를 뻗어 십자가를 감싸고 있으며, 미숙한 솜씨로 진흙 주형에서 만든 것처럼 보이는 두 개의 투박한 꽃병에는 근처에서 꺾은 야생화 두 송이가 꽂혀 있다. 십자가의 받침부에 있는 커다란 고둥에는, 순결한 작은 잎과 금새라도 꽃을 피우려 하는 두 개의 꽃봉오리가 있는 야생 시클라멘이 있다. 제단의 발치에는 가시 돋친 나뭇가지 한 다발과 매듭으로 마디가 있는 밧줄로 된 채찍이 놓여있다. 동굴에는 작고 투박한 물항아리도 보인다. 그 밖에는 없다.
폭이 좁고 낮은 틈새로 산이 배경으로 보이며 아득히 멀리서 희미하게 보이는 움직이는 광체를 따라 이 지점으로부터 바다가 보인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나, 확실하지는 않다. 이 틈새 위로 고산지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담쟁이 덩굴, 인동덩굴, 야생 장미가 늘어져 있는데, 이들은 동굴의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는 일종의 움직이는 베일 역할을 한다.
거칠고 어두운 색의 웃옷 위에 염소가죽으로 만든 망토를 입은 야윈 여자가 늘어진 나뭇가지들을 따라 동굴로 들어온다. 여자는 지쳐 보이고, 나이는 가늠할 수 없다. 여자의 시든 얼굴로 보아서는 예순 이상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아름답고 숱이 많은 금발 머리로 보아서는 마흔을 넘기지 않았다. 머리는 둘로 땋아 여자의 여위고 구부러진 양 어깨 위로 내려오는데, 퇴색함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빛난다. 젊었을 때 틀림없이 아름다웠을 이마는 여전히 높고 매끄러우며, 코는 잘 생겼고, 갸름한 얼굴은 쇠약하여 대단히 야위었음에도 불구하고 균형이 잘 잡혀 있다. 그러나 두 눈은 더 이상 빛을 발하지 않고 눈구멍 깊숙이 들어갔으며 푸른빛이 도는 어두운 갈색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여자의 두 눈은 많은 눈물을 흘렸음을 말해주고 있다. 두 개의 주름은, 거의 흉터라고 할 수 있는데, 무수히 많은 고통을 겪은 사람이 갖는 주름의 특징으로 눈가로부터 시작되어 코를 따라 내려오면서 점점 희미해지고 콧구멍에서부터 입가로 이어져 내려온다. 관자놀이도 움푹 꺼져 있으며 푸른빛의 정맥이 그녀의 창백함으로 인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입술은 지친듯한 커브를 그리며 매우 창백한 장미빛을 띈다. 한 때는 눈부시게 뛰어났을, 그러나 지금은 빛 바랜 아름다움이다. 입술의 곡선은 부러진 채 달려있는 두 날개의 그것과 같다. 슬픔에 젖은 입술이다.
여자는 테이블로 사용되는 둥근 돌을 향해 몸을 이끌고 가서 그 위에 검은 딸기와 야생딸기를 올려 놓는다. 그런 다음 제단으로 가서 무릎을 꿇는다. 그러나 너무도 지쳤으므로 그렇게 하는 동안 거의 쓰러지려 하고, 따라서 돌에 몸을 의지해야 한다.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기도를 드리는데, 깊은 주름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이 그녀의 입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런 다음 염소가죽 망토를 벗어 내려놓고 거친 튜닉만을 걸치고는, 채찍과 가시 나무를 든다. 그 가시 나무를 자신의 머리 그리고 허리에 둘러서 조이고, 채찍으로 편태를 시작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에 여자는 너무도 약해졌다. 채찍을 떨어뜨리고, 양 손과 이마로 몸을 제단에 기대어 지탱한다. ‘라뽀니! 저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습니다. 당신의 고난을 기억하며 더 이상 고통을 견딜 수 없습니다!’
여자의 음성이 나로 하여금 그녀를 알아보게 하였다. 그녀는 마리아 막달레나였던 것이다! 나는 지금 그녀의 참회의 동굴에 있다.
마리아는 흐느끼며, 사랑을 담아 예수님을 부른다. 그녀는 더 이상 고통을 견딜 수 없으나 여전히 예수님을 사랑한다. 참회로 지쳐 쇠약해진 마리아의 육체는 자신을 편태함에서 오는 탈진을 더 이상 견디어 낼 수 없다. 그러나 그녀의 심장은 예수님께 대한 사랑으로 자신의 마지막 힘까지 소모하려는 열정적인 맥박으로 여전히 고동치고 있으며, 이마에는 가시로 엮은 관을 쓰고 허리에는 가시를 두른 채로 있음으로써 예수님을 사랑한다. 마리아는 끝없는 사랑의 고백과 반복적인 비탄의 행동으로 그녀의 주님께 말하면서 사랑한다.
마리아는 이마를 땅으로 향하며 미끄러지듯 쓰러진다. 갈바리아에서 성모님의 무릎에 놓인 예수님 앞에서, 베로니카가 그녀의 베일을 풀어준 예루살렘의 집에서, 그리고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부르시고 그녀가 예수님을 알아보았던 아리마테아의 요셉의 정원에서 그녀는 같은 행동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예수님께서 여기 계시지 않으므로 마리아는 흐느낀다.
‘주님, 저의 삶은 스러져가고 있습니다. 당신을 다시 뵙지 못하고 죽어야 하나요? 저는 언제쯤 당신을 뵘으로써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저의 죄가 제 앞에 있고 저를 꾸짖고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저를 용서해주셨고, 저는 제가 지옥에 가지 않을 것임을 믿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함께 살기까지 얼마나 더 오랫동안 속죄해야 할까요! 오! 선하신 주님! 당신께서 제게 주신 사랑으로 저의 영혼을 위로해 주소서! 죽음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당신의 십자가에서의 적막한 죽음으로 당신의 창조물을 위로해 주소서! 당신께서는 저를 창조하신 유일한 분. 저의 어머니가 아닌,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은 저의 오빠 라자로를 부활시켜 주신 이상으로 저를 부활시켜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라자로는 이미 선한 사람이었고 그의 죽음은 당신의 림보에서 기다리는 것에 지나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영혼이 죽어 있었고, 그것은 영원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신의 손에 제 영혼을 맡깁니다! 당신께서 구속하여 주셨으니 제 영혼은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의 버림받은 죽음의 쓴맛을 느끼기 위해 마지막 속죄를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저의 삶을 통해 제 죄가 속죄되었다는 표를 하나 주세요.’
‘마리아!’
예수님께서 나타나신다. 예수님은 거친 십자가에서 내려오신 것 같다. 그러나 더이상 상처를 입으시지도, 숨을 거두고 계시지도 않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그날의 아침처럼 아름다우시다. 예수님은 제단으로부터 내려오셔서 지쳐 기진맥진한 마리아에게 다가가시어 그녀를 향해 몸을 구부리신다. 예수님은 마리아를 다시 부르신다. 왜냐하면 마리아가 예수님의 음성을 자신의 영적 감각에서 울려오는 것이라 믿으며 얼굴을 땅으로 향하고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내뿜으시는 빛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베다니아에서 하셨던 것처럼, 당신의 손을 마리아의 머리에 얹으시고 마리아의 팔꿈치를 부축하여 그녀를 일으키신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손이 닿음을 느끼고 그분의 손의 길이를 알아채자, 그녀는 큰 소리를 외치고 기쁨으로 변모된 얼굴을 든다. 그런 다음 마리아는 자신의 구세주의 발에 입맞추기 위해 엎드린다.
‘일어나거라, 마리아야. 나다. 너의 삶은 스러져가고 있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너를 맞으러 기다리고 있음을 알려주러 왔다. 왜냐하면 마리아, 더이상의 기다림은 없기 때문이다. 너의 모든 것은 용서받았다. 첫 순간부터 용서받았다. 그런데 이제는 용서받은 그 이상이다. 너의 자리는 나의 왕국에 이미 마련되어 있다. 마리아야, 나는 이것을 말해주러 왔다. 나는 천사를 시켜 너에게 이 말을 전하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너로부터 받은 것의 백배를 돌려주기 위해서이다. 나는 네게서 받은 것을 기억하고 있다.
마리아야, 함께 과거의 시간을 상기해 보자. 베다니아를 회상해 보아라. 그날은 안식일 다음날 저녁이었고, 나의 죽음까지는 단 6일만이 남았던 때였다. 너의 집을 회상하느냐? 그곳은 과수원의 흐드러지게 피어난 온갖 꽃으로 화려하게 에워싸여 있었다. 연못의 물은 노래하고 있었고 첫 장미의 향기가 담벽을 따라 가득했다. 라자로는 저녁 만찬에 나를 초대하였고, 너는 너의 주인이 음식을 들게 될 식탁을 꾸미기 위해 정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들을 무수히도 꺾어왔다. 마르타는 저녁 준비로 왔다 갔다 하면서, 내가 한 말 [루가 10:38~42] 을 기억하고 있었으므로 너를 감히 나무라지 못하고 사랑으로 빛나는 너를 즐거운 부러움으로 바라보았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나는 설명된 장면을 보았다: 온갖 꽃으로 가득하고 활기찬 베다니아의 집이다. 연회실은 화려하게 차려져 있다. 마르타는 집안 일로, 마리아는 꽃들로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내가 도착하였다. 너는 하인들을 앞질러 영양보다도 더 빠르게, 네 특유의 외침과 함께 대문으로 달려왔다. 그 외침은 언제나, 감옥에서 풀려난 죄수의 외침과도 같았다. 사실, 나 자신이 너의 자유이며, 너는 풀려나 자유를 만끽하는 죄수였다. 사도들은 모두 나와 함께 있었다. 비록 그 중에 하나는 사도의 몸을 한, 그러나 이제는 타락한 영혼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네가 그의 자리를 대신하였다. 그리고 내 발에 입맞추기 위해 숙인 너의 머리와, 사랑으로 가득찬 진실한 너의 눈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의 영혼을 바라보면서, 내가 내 곁에 배반자를 두고 있음에서 오는 혐오감을 잊었음을 너는 알지 못했다. 나는 갈바리아에서, 그리고 아리마테아의 요셉의 정원에서 너에게 이것을 바랐다. 왜냐하면 너를 바라봄으로써 나의 죽음이 헛된 것이 아님을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너에게 드러낸 것은 너의 신뢰깊은 사랑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축복받은 마리아, 너는 결코 나를 배반한 적이 없었고, 구세주로서의 내 희망을 나에게 확인시켜 주었으며, 나의 죽음으로 구원된 모든 이들 가운데 있다! 모두가 먹고 마시는 동안 너는 나를 경배하였다.’
그런 다음 나는 예수님과 열 두 사도가 도착하고 마리아가 예수님을 집으로 안내하면서 연회를 위한 방으로 가는 것을 본다. 마리아는 수반에 물을 담아와서 예수님의 발을 직접 씻겨드리기를 원한다. 그런 다음 그녀는 신선한 물로 수반을 다시 채우고 예수님께서 손을 깨끗이 하실 때까지 붙들고 있는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수건을 돌려주시자, 수건을 받아서 입맞춤 한다. 그런 다음 포석으로 덮힌 카페트 위에 예수님의 발 아래에 앉아서, 예수님께서 라자로와 이야기를 나누시는 것을 듣는다. 라자로는 예수님께, 최근에 예루살렘에서 만들어져 새로 입수된 몇 개의 두루마리 도서들을 보여드린다.
예수님은 그 도서의 내용을 라자로와 함께 의논하시면서, 거기에 포함된 교의상의 오류, 또는 이방인의 교의와의 차이점, 그리고 진실한 교의에 대해서 설명하시는 것 같다. 그것들은 분명히 부유하고 교양있는 라자로가 알고 싶어하는 문학 작품일 것이다. 마리아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듣고, 사랑할 뿐이다.
그런 다음 사람들은 저녁 식사를 하러 간다. 두 자매가 식탁 시중을 든다. 두 자매는 식사를 하지 않고 오직 남자들만 식사를 한다. 하인들 역시 오가면서 화려하고 아름다운 큰 쟁반을 나른다. 그러나 두 자매는 몸소 시중을 들면서, 찬장으로부터 하인들이 정리해 둔 큰 쟁반과, 하인들이 혼합해 둔 와인이 가득 담긴 항아리를 나른다. 예수님께서는 물을 드시고, 마지막에야 와인을 조금 맛보신다.
‘마리아야, 너는 나의 지친 발을 위해 향내나는 물을 주었다. 그리고 내 손에 순결하고 강렬한 입맞춤을 주었고, 그것으로도 여전히 부족했던 너는 너의 가장 소중한 항아리를 깨어 내 머리에 향유를 붓고 마치 엄마처럼 나의 머리를 정돈해 주길 원했다. 그리고 나의 손과 발에도 향유를 부음으로써 너의 주인의 모든 것이 축성된 왕의 그것처럼 향기로와 지기를 원했다…’
연회의 종반부로 가면서 저녁 식사는 이미 그 리듬이 느슨해졌고, 과일과 단 음식들이 오고 가면서 무엇보다도 대화가 많아졌다. 몇 분 간 보이지 않던 마리아는 설화 석고로 만든 항아리를 들고 돌아와서, 보다 쉽게 흐르도록 하려고 가구의 모퉁이에 대고 항아리의 목을 깨뜨린다. 그리고 양 손으로 항아리를 움켜 잡고 예수님의 뒤에 서서 예수님의 머리 위에 향유를 붓고, 손가락으로 예수님의 머리 끝부분의 컬을 하나 하나 감아 말면서 정돈한다. 마리아는 마치 자식의 머리를 빗겨주는 엄마같다. 정돈을 모두 마친 다음, 마리아는 예수님의 머리에 살짝 입맞춤을 하고, 예수님의 손을 잡고 향유를 붓고 입맞추고, 예수님의 발에도 같은 동작을 한다.
‘그리고, 네가 이제 정직하고 너의 정직으로 남성들의 탐욕을 고발하였기 때문에 너를 미워한 유다는 너를 비난했다… 그러나 너는 사랑을 위한 모든 것을 이루었고, 그 사랑은 너무도 커서 그에 대한 기억이 성목요일 저녁부터 9시간 동안 극심한 고통 속에 있던 나와 함께 할 정도였기에 나는 너를 보호했다… 이제, 나의 죽음의 문턱에서 네가 나에게 주었던 그 사랑의 행위 때문에, 너의 죽음의 문턱에 내가 왔고, 너에게 사랑으로 답한다.’
사도들이 보인다. 요한은 마리아에게 용기를 주려는 듯 미소 짓는다. 베드로는 머리를 흔든다, 그러나… 이제는 그 역시 수염 사이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나머지 사도들도 더 많게 혹은 적게 미소를 짓는다. 토마스와 또다른 키작은 노인은 나지막하게 투덜거린다. 그러나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분명히 추한 외모의 유다는 그의 나쁜 성미를 폭발시킨다.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바보가 되려면 여자가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왜 그리 낭비가 심한가? 주님은 저런 유약함이 필요한 과거의 세리나 매춘부가 아니다. 또한 저런 행위는 주님을 욕보이는 것이다. 유다인들이 주님에게서 여자같은 젊은이의 향내를 맡고 뭐라고 말하겠는가?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여자에게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허락하셨다는 것에 아연실색 했습니다. 이 여자가 저렇게 돈을 탕진할 정도로 부유하다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도록 그 돈을 저에게 주라고 하십시오. 그것이 더 현명할 것입니다. 여자여, 당신에게 말하는데 그만 두시오. 당신이 나를 메스껍게 하고 있소.’
마리아는 무안해져서 얼굴이 빨개진 채로 유다를 보고는 그의 말에 따르려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여전히 숙이고 있는 마리아의 머리 위에 당신의 손을 올리시고, 그 손을 마리아의 어깨로 옮기신 다음, 마치 마리아를 방어하시려는 듯 당신 쪽으로 살짝 당기신다.
‘마리아가 하는 대로 놔두어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왜 마리아를 비난하느냐? 누구도 착한 일을 비난하거나, 오직 악의만이 가르치는 숨겨진 의미를 거기에 부여해서는 안된다. 마리아는 나를 향하여 착한 행위를 하였다.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들과 같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너희들과 같이 있겠으나 나는 머지않아 너희들 곁에 있지 않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너희들은 계속 착한 일을 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곧 너희들을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너희들 모두를 위하여 희생 제물이 될 내 육체에 경의를 표하기를 간절히 바라왔다. 그리고 그녀는 이미 나의 장례를 생각하고 향유를 부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에 가서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 향유를 붓지 않았던 것이 그녀에게는 매우 큰 고통이 되었을 것이다. 분명히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그리고 이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마리아가 지금 한 행동이 알려져 사람들이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리아의 이 행동으로부터 영혼들은 나에게 사랑을 주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위한 소중한 향유가 된다는 교훈을 얻을 것이고, 모든 희생은, 사랑으로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내 머리에 부어진 이 나드향처럼, 나와 내게 속한 영혼들, 그리고 그 영혼들과 나 사이를 오가는 사랑의 끊임없는 흐름 가운데 사랑이 솟아오르는 자들에게 은총을 내리는 자, 왕 중의 왕인 그리스도에게 향유를 붓는 것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며 용기있기 희생을 행할 것이다.
유다야, 할 수 있다면 마리아를 본받아라. 네가 아직 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리고 마리아와, 그녀와 함께 있는 나에게 경의를 표하여라. 또한 네 자신도 존중하여라. 순수한 사랑으로 순수한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은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감각을 자극함으로써 악의를 조장하고 교묘하게 환심을 사는 것이 수치스러운 것이다. 유다야, 내가 너를 가르쳐 온지가 3년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너를 변화시키지 못하였구나. 그리고 그 시간은 가까와 왔다. 유다, 유다야… 마리아야, 고맙다. 너의 사랑을 끝내 간직하거라.’
[베다니아의 두번째 환시가 여기서 끝난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동굴에서 마리아에게 말씀을 계속 하신다. – 역자 주]
‘마리아, 너의 주인은 너를 사랑한다. 나는 이 말을 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 또다른 죽음에 대해 아무런 두려움도 걱정도 하지 말아라. 너의 죽음은 나를 위해 피를 쏟은 사람의 것과 같다. 순교자가 남긴 것은 무엇이냐 ? 그의 삶은 하느님의 사랑을 위한 것이었다. 통회자가 남긴 것은 무엇이냐 ? 그의 삶도 하느님의 사랑을 위한 것이었다. 사랑하는 자가 남긴 것은 무엇이냐 ? 그의 삶 역시 하느님의 사랑을 위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음을 너는 알고 있다. 순교, 통회, 사랑은 결국, 모두 같은 목적을 위하여 같은 희생을 완성시킨다. 그러면 통회자이며 사랑하는 자인 너에게는 원형 경기장에서의 순교자와 같은 순교가 있는 것이다. 마리아야, 나는 너를 영광으로 인도하겠다. 내 손에 입맞추고 평화 속에 누워 쉬어라. 이제는 네가 쉴 시간이다. 내게 너의 가시를 다오. 이제는 장미꽃의 시간이다. 쉬면서 기다려라. 축복받은 마리아, 너를 축복한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를 그녀의 침대에 눕히신다. 그러자 환희의 눈물을 흘리면서 성녀는 그녀의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자신의 몸을 쭉 편다. 눈물은 계속 흐르지만 입가에는 웃음을 띈 채, 이제는 가슴 위에 팔을 접고 잠이 든 것처럼 보인다.
성배를 든 천사가 동굴로 와서 제단 위에 성배를 놓고 경배하면서 눈부신 광채로 빛나자 마리아는 일어나 똑바로 앉는다. 그리고 작은 침대 곁에 무릎을 꿇고는 경배를 드린다. 마리아는 더이상 움직일 수 없다. 그녀의 힘은 모두 소진되었다. 그러나 더없이 행복한 마리아이다. 천사는 성배를 들고 마리아에게 성체를 준다. 그런 다음 천사는 다시 천상으로 올라간다.
마리아는, 강렬한 태양에 타들어간 꽃과 같이, 양팔을 가슴 위에 접은 채로 몸이 구부러지면서 침대 위의 나뭇잎 한복판으로 얼굴을 떨군다. 마리아는 숨을 거두었다. 영성체의 황홀경 속에 마지막 숨이 끊어진 것이다.
– 환시에 대한 주석 –
예수님:
“창조물이 자신을 사랑하는 자에 대한 보답으로 자신의 사랑의 관대함에서 무조건적일 수 있는 정도는 언제나 상대적이다. 그러나 너의 예수는 막대한 인간의 욕망과 모든 만족의 한계를 초월한다. 왜냐하면 나는, 너의 예수는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그럽고 사랑하는 영혼인 너에게 – 왜냐하면 이 부분은, 계율을 따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충고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나에 대한 사랑을 거룩한 영웅적 행위로 승화시키는 영혼인 너에게 특별히 진술하는 부분이므로 – 아낌없는 하느님, 선한 하느님을 준다.
너를 위해 나는 기적을 창조함으로써 네가 나에게 주는 모든 기쁨에 대한 새로운 기쁨을 준다. 나는 너에게 부족한 부분을 나 자신으로 채워주거나 또는 너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 준다. 그러나 너를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하거나, 이미 너의 주님인 나에게 가해졌던 오래전의 모욕들 (마태 12:24) 을 반복하고 “미친자”라 외치며 너의 참회와 빛을 악마의 표시라고 오해하는 세상 속에서 물질적 또는 도덕적 고독 속에 살지언정, 나의 사랑을 위해 자신을 모두 내어던지는 너에게 나는 아무것도 부족한 채로 남겨두지 않는다. 사탄에게 정복된 세상은, 세상을 자신의 발 밑에 두고 나를 향해 높이 올라 나의 빛 속에 스스로를 던지기 위하여 세상을 자신의 발판으로 놓는 성인을 사탄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심지어는 너를 “미친자, 악마”라 부르도록 하라. 나는 네가 참된 지혜, 올바른 지성에 홀린 자임을 알고 있으며, 인간의 육체 속에 천사의 영혼을 소유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나는 네가 내게 주었던 단 한 번의 사랑의 한숨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너를 이 세상으로부터 방어한 것과 마찬가지로 – 나의 눈에 비친 너의 모습을 세상의 태반에게 내가 드러내므로 – 그 시간이 올 때 나는 너를 보상하고 너의 잔에 감미로움을 부어줄 시간임을 판단한다.
고통의 잔의 쓴 맛을 꿀로 경감시키지 않고 바닥까지 마신 것은 오직 나 예수이다. 나의 성혈을 흘림으로써 구원할 사람을 저주하는 극한까지 가지 않으면서, 따라서 하느님에게 버림받은 자와 같이 나 자신을 절망의 상태로 포기함을 인식하면서 – 혹은 그 이상으로 – 고통의 잔을 끝까지 마시기 위해, 나는 미래에 나를 사랑할 이들의 생각에 매달려야만 했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받은 고통을 너희 중 그 누구도 겪기를 원치 않는다. 내가 겪은 고통은 너희가 지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고통을 감당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너희의 힘을 벗어나는 것이다. 하느님은 결코 무모하신 분이 아니다. 하느님은 너희를 구원하시기를 원하며 너희를 잃고 싶어하지 않으신다. 그 고통을 몇 시간이라도 너희에게 지우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며, 과중한 무게가 실린 가지처럼 구부러지고 결국 부러져, 천국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 다음 진흙을 알게 되는 것처럼 너희의 영혼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나에게 희망을 두는 이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다. 말하라, 말하라, 모두에게 말하라.”
– 번역 : 평화의 오아시스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