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주인공은 현재 메주고리예에 살고 있는 실재 인물입니다. 기사의 내용에 나오는 공동체 책임자의 이름이나 공동체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은 것은 이 자매가 사탄교회의 추종자들의 살해 대상의 주요 인물로서 아직도 많은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이 자매는 교황청 신앙교리성의 보호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이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독자들의 양해를 구합니다. 역주. 남기옥)

  나의 어린 시절은 태어나면서부터 살아 남기 위한 투쟁의 연속이었다. 엄마는 내가 병원에서 태어나자마자 나를 버리고 사라졌기 때문에 나는 엄마를 만난 적이 없었고, 아버지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환경에서 자랐다. 내가 태어난 병원에서는 가족이나 연락처 조차도 없는 나를 즉시 고아원에 보냈는데 불행하게도 그곳은 사랑이라는 단어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6년 동안 살다가 드디어 어느 한 가정에 입양되었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그 고아원은 어린이 학대로 파문을 일으키면서 폐쇄되었다.

  유아기의 어린 아이에게는 부모의 사랑이 필요한 것이 당연하지만 나는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알지도 못하고 자랐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폐쇄적이고 사랑을 믿지 못하고 정서가 불안한 아이로 사회성이 결여된 채 자랐다. 나는 18살이 되자 양부모의 집을 나와 아무의 간섭도 받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방탕한 생활을 시작하였다.

  어느 날 우연히 좋으신 하느님 – 그때는 좋으신 하느님인 줄 전혀 몰랐지만… – 께서 내게 요리의 예술세계에 대한 탁월한 감각과 능력을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리사들의 세계에서 나는 빠르게 승승장구하였고, 얼마 되지 않아 요리사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정도의 위치까지 승진하게 되었다.  부모의 얼굴도 모르는 외톨이로 외롭게 자란 나이지만 드디어 나도 세상에 내놓을 만한 것이 있다고 으스댈 수 있었다! 이런 사치스런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과중한 업무와 책임을 지어야 할 일들이 많아서 코카인이나 커피, 흡연, 술에 의존하면서 살 수 밖에 없었다.

  그 당시 나는 혼자서 다 쓸 수 없을 정도의 – 한 달에 한화 5백만 원 가량의.. – 수입으로 사치와 쾌락을 위해서 돈에 구애 받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다했다. 이탈리아 전역과 유럽 전역을 다니면서 일을 하기 때문에 항상 최고급 호텔에서만 머물렀다. 요리사라는 직업은 특히 계절에 많은 영향을 받고 이곳 저곳으로 옮겨 다니기 때문에 나는 각 지역마다 남자들을 정해 두고 육체의 쾌락만을 추구하면서 살았다. 그들과의 사랑도 마음으로 만나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내 마음에 드는 남자가 나타나면 나는 즉시 새로운 남자와 오직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하루 밤을 보냈다. 그때의 나는 남녀관계는 서로 필요에 의한 육체적인 만남이 있을 뿐, 순수한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혀 믿지 않았다. 나에게는 돈과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나의 필요에 의하여 언제든지 상대방을 버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 살았다. 상대방에게 진실한 마음이나 순수한 사랑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는 불신으로 상대방에게 절대 마음을 주지 않았으며 감성이나 느낌 등은 의식적으로 무심해지려고 마음을 굳게 닫고 살았다.

  그렇게 지내던 중, 정말 내 마음에 드는 한 남자를 알게 되었다. 나는 그 동안 만나 왔던 수많은 남자들처럼 그 남자와도 내가 원하는 하루 밤을 보내기를 원했지만 그 남자는 달랐다. 그는 나를 사랑하지만 자신은 가톨릭 신자라서 혼인성사를 받기 전에는 함께 잘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그 사람을 참 이상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 조건 없이, 변함없이 오직 나만을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그를, 만날수록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구속 받는 것을 싫어 하던 내가 항상 그와 같이 있고 싶고, 헤어지기 싫어서 처음으로 결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사람은 처음으로 나에게 하느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지를 말해주었다. 그 전에는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비웃었지만 이 사람과 같이 있을 수 있다면 나도 하느님을 믿고 싶었다.

  그 동안 수 많은 남자들을 만나왔지만 나에게 첫사랑을 가르쳐준 그와 결혼을 약속하고 행복한 가정을 꿈꾸면서 결혼식 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고아로 자라서  얼굴도 모르는 가족을 그리면서 외롭게 살아 온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미고 나의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다는 미래는 상상만해도 너무나 행복해서 세상이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다.  그러나 나의 행복은 너무나 짧았다. 지금도 꿈이기를 바라며 기억조차하기 싫은 불행한 일이 생겼다. 내가 처음으로 목숨을 바쳐 사랑했던 그가 수혈로 인해 옮아온 저주 받은 병으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건강을 되 찾을 수 있는 것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지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하느님께 무룹 끓고 두손 모아 기도했다. 그를 살려달라고… 살려만 주면 무엇이든지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그러나 그는 그토록 기다리던 나와의 결혼식을 사흘 앞두고 죽었다. 나는 청천벽력을 맞은 듯이,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이 그 사람이 내 곁을 떠났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가 죽었다는 현실을 저주하면서 숨이 멈추어서 차갑게 식어 가는 그의 몸을 붙들고 놓을 수가 없었지만 그러나 모든 것이 엄연한 현실이었다…

  내게 처음으로 사랑이 무엇이지 가르쳐 준 사람, 목숨보다 소중했던 그 사람을 영원히 떠나 보내는 장례식 날 저녁, 나는 미친듯이 고함을 지르면서 하느님을 저주하였다. “만약 당신이 정말 존재하는 신이라면 나는 당신을 찾아 내어 때려 눕히고 말거야! 하지만 있지도 않는 당신이었다면 나는 평생을 바쳐서 신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세상을 향해 외치겠어!!”

  시간은 흘러갔지만 그 사람이 내 곁을 떠났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내 곁에 있지만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그 사람을 그리워하다 허무맹랑한 사상과 점괘술에 매달리며 그를 잊어 보려고도 했지만 결국은 심한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처음에 일주일에 한 번 시작한 치료에 중독이 되어서 네 번씩이나 받던 나는 결국은 마약중독이나 다름없는 정신과 진료 중독자가 되어 버렸다. 그때 내 곁에 누군가가 있어서 나를 위해서 단 한마디라도 해줄 사람이 있었다면 그렇게 비참하게 되지는 않았으리라… 이제는 정신과 의사 없이 혼자서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정신적으로 황폐하고 무능한 지경까지 됐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고 진짜 불행은 그때부터였다. 내가 그렇게 믿고 의지하면서 열심히 찾아 다녔던 정신과 의사는 후에 알고 보니 그 무서운 사탄교회의 교주였던 것이다! 그 의사는 내 마음속에 있는 버림 받은 상처와 증오심을 끄집어내어 끝없이 세상을 저주 하고 악을 자행하도록 나를 부추겼다.  나는 그가 원하는 일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지 했다. 그는 이미 정신적으로 나를 지배하고 있어서 그를 떠날 생각 조차 할 수가 없었다.

  특히 그들은 가톨릭 교회에서 축성된 성체를 훔쳐오도록 시켰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들은 미사를 통해 사제에게 축성 된 성체 안에 예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굳게 믿는다. 그래서 그 성체를 훔쳐다가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께 갖은 모욕적인 말과 행위를 하면서 자신들만의 검은 예식을 행한다. 그런 사탄교회의 추종자로 미친 듯이 살 아 온 지난 2년 동안 나는 여성으로서의 고귀함까지도 모두 잃어 버리고 몸과 마음은 서서히 죽어 갔다….

  10년 전 성탄 대 축일 밤, 그들은 내가 정말 자신들의 사탄교회의 추종자에 속해 있는 사람인지 알고 싶다고 하면서 그 증거로 어떤 한 자매를 살해하도록 지시하였다. (나를 사탄교회 최고 간부로 세우기 위한 조처였음). 그 자매는 열심한 가톨릭 신자로서 몇 년 전 젊은이들을 위한 공동체를 세우고 특히 바티칸으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자매였다. 사람 하나 죽이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당연히 나는 이 제의를 수락하였다.

  1월 5일 저녁 8시 나는 옷 속에 날카로운 칼을 숨기고 그들이 가르쳐준 주소로 그 자매의 공동체를 찾아가서 초인종을 눌렀다.  그 공동체의 책임자인 C 자매가 지금도 내게 하는 말이 있다. 그녀가 내가 누르는 초인종소리를 들은 순간 성모님께서 “내 딸이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구나! 네 도움을 기다리면서 문 밖에 서있으니 어서 문을 열어 주어라.” 라고 마음속에서 강력하게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날 C 자매는 나에게 문을 열어 주면서 “나의 자매여!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구나!” 라고 말하면서 나를 꼭 껴안았다. 예상치 못한 일로 내가 갑자기 그 C자매의 품 속에 안겼을 때 나도 모르게 그 순간이 오래 전에 살았던 집에 돌아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치 집을 나간 아들이 집으로 돌아 왔을 때 아무 말 없이 아들을 껴안아 주는 엄마의 품에 돌아온 것처럼 그 자매의 품에서 사랑과 따뜻함을 느꼈다.

  그 짧은 순간 나는 사랑하는 그 남자가 죽기 전까지도 늘 말해주던 하느님의 사랑을 느꼈다. 아, 그 사람이 말하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그녀를 죽이려고 칼을 품고 찾아간 나는 그 한 번의 포옹으로 사악한 마음이 완전히 무너졌다. 그 포옹은 나에게는 집을 나가 방탕하게 살던 아들을 기다리던 아버지의 포옹이었다. 성경에 나오는 방탕한 아들을 기다리던 아버지의 포옹, 그랬다! 내가 죽이려고 찾아간 그 C 자매는 몸은 살아 있지만 죽은 내 영혼에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에게는 모든 것이 다시 새롭게 시작되었다.

  그 한 번의 포옹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게 된 나는 모든 것을 의탁하고 C 자매와 함께 지낸 지 약 7년이라는 세월 동안 나의 삶은 정말 많은 것이 변했다. 공동체에서는 나에게 미혼모들과 출소 재소자들, 낙태를 경험한 여성들을 도와주기 위한 센터를 세우고자 책임자로 파견했다. 내가 감당하기에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일을 시작하면서 어린아이들을 돌보며 몇 개월이 지났을 때 내 마음 안에 변화가 일기 시작하였다. 늦은 감은 있었지만 어린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듯이 나도 그 센터 책임자로 봉사하면서 나의 출생에 대해 스스로 많은 의문을 갖게 되었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생겨나게 된 걸까? 그래, 하느님께서 원하셨기 때문에 태어났겠지…. 그러면 누구를 통해서 태어나게 된 거지? 나를 낳은 엄마라고 불려져야 하는 그 여인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병원에서 갓 태어난 핏덩어리인 나를 버리고 도망쳐 버린 그 여인이 도대체 누구인지 궁금해서 견딜 수 없도록 나를 괴롭혔다. 이제 와서 나를 낳은 엄마를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나를 버리고 도망쳐버렸던 죄값을 물으려는 것이 아니라 만나게 되면 나를 낳아 주어서 이렇게 세상의 빛을 보게 해준 것에 대해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낙태 시켜 버리지 않은데 대한 고마움을 생각하며 오히려 행복했다. 정말 엄마를 만나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모자원센터의 책임자로 있으면서 자신의 아기를 낙태한 뒤 고통을 당하는 여성들을 보면서 더욱 나의 엄마를 만나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내 삶과 생명을 허락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느낄 수 있도록 나를 낳아 준 엄마가 보고 싶어서 집념을 갖고 생모를 찾는데 거의 2 년의 세월이 걸렸다. 이탈리아의 생모를 찾을 수 있는 법률기관의 도움으로 드디어 엄마와 통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전화기를 통해서지만 처음으로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목소리를 들은 것 만으로도 기뻤으나 엄마가 먼저 나를 만나자고 했다. 엄마를 만나러 가는 그 날 나의 심장은 멈추는 것 같았고, 다리가 후들거려서 서 있기 조차 힘들었다. 감성의 모세 혈관들이 모두 곤두서는 것 같았다. 세상에 온갖 험한 일은 다 경험해봐서 두려운 것이 없는 내가 왜 이럴까…  마음을 진정하려고 숨을 몰아 쉬면서 안간힘을 다해 정신을 가다듬고 차분하려고 애썼지만 불가능했다….

  엄마가 사는 도시에 도착했다. 마치 날아 갔다고나 할까…. 드디어 나도 그렇게 그리워하던 엄마를 껴안아 볼 수 있었다!  그 자리에는 공동체에서 정말 나를 아껴주고 몇 년째 용기를 북돋아 주는 이들이 내 생애에 가장 중요한 이 만남에 동참해 주었다. 그러나… 그러나… 그렇게 보고 싶었던 엄마는 만난 지 몇 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마치 어떤 것이라도 잡아먹을 듯한 눈초리기 되더니 오…  아무도 그런 눈초리를 보지 않았으면 싶을 정도로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훑어보면 말했다. “네가 나에게서 태어났어도  너는 나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존재였어! 지금도 마찬가지야. 변한 것은 하나도 없어! 그러니까 더 이상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내 인생에서 확! 꺼져버려 당장!” 그토록 그리워하던 엄마에게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눈 앞이 캄캄해졌다. 내 귀에 들리는 엄마의 말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내 가슴을 후비고 찔렀다. 이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 같았다, 차라리 만나지 말고 그냥 옛날처럼 그리워하면서 살 것을… 이제 나에게는 그리워 할 사람 조차도 없었다…

  공동체 창설자 C자매는 또 다시 엄마에게 버림받아 감당할 수 없는 아픔과 상처를 받고 절망의 깊은 늪으로 빠져 고통에 젖어 있는 나를 메주고리예에 있는 공동체로 파견하였다. C자매는 나의 상처는 아무도 치유해 줄 수 없고 오로지 성모님만이 너를 치유해주실 수 있다고 말했다.  그곳에서 11 일 정도 머물고 있던 어느 날, 6명의 발현목격증인 중의 한 사람인 마리아 파블로비치 루넷띠가 성모님의 발현 시간에 나를 초대해 주었다. 나는 성모님의 발현 장소에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어떤 강력한 뜨거운 힘을 내 온몸으로 느끼며 마치 내 심장을 도려내는 아픔을 느꼈다. 마치 더 이상 쓰지 못할 상처투성이 심장을 도려내고 새로운 심장이 심어지는 것 같은 수술을 받는 느낌이었다. 나를 낳은 엄마에게 두 번이나 버림받은 아픔과 상처들, 그토록 사랑하던 사람을 떠나 보낼 때의 절망감과 지내온 삶 속에 있던 모든 고통과 분노가 치유되면서 흔적조차 없이 아물어지는 순간이었다.

  성모님의 발현이 끝난 뒤 목격 증인 마리아가 그날 성모님이 주신 메시지를 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의 모든 지향과 기도를 성모님께 말씀 드렸고, 성모님은 여러분 모두를 위해 기도하셨어요.” 그러면서 마리아의 눈이 내 얼굴과 눈빛을 바라보더니 모든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덧붙여 설명했다. “성모님께서는 이 자매님이 감당하지 못하고 있던 모든 고통을 당신 것으로 받으셨어요. 자매님의 마음 깊이에 있던 견딜 수 없는 상처와 아픔까지도 가져가셨어요. 그리고 오늘부터 성모님께서 자매님의 진정한 엄마가 되어 주신대요!” 나는 성모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마리아와 함께 성당 밖에 있는 수도원의 오솔길을 걸어 나오면서 물어보았다. “마리아, 소성당에 있을 때 내게 다른 말도 할 것이 있었나요?” 그녀가 대답했다. “자매님, 그 말은 내가 한 것이 아니고 성모님이 하시는 말씀이었어요!”

  그때부터 내 손에는 언제 어디서나 묵주가 들려있었다. 묵주기도를 통해 내 손을 잡으신 성모님께 나의 모든 것을 맡겼으며 그 분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이끌어 주고 계시다.  나는 이제 말할 수 있다. 묵주기도는 성모님의 손이라고! 정말로 내가 거룩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성모님의 그 손을 놓지 말고 기도해야 하고 더욱 힘을 주어 꼭 잡아야 한다고!

  나는 오늘도 거룩함의 모범이신 성모님의 침묵과 겸손의 생활, 순명과 정결함과 인내의 생활을 닮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 생애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건 중의 하나는 내 온 생애를 주님께 봉헌한 날이었다. 이제 나에게는 내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나의 모든 것을 공동의 삶을 위해 내놓았다. 초대 그리스도교인들처럼…. 그러면서도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발견했기 때문에 나는 부족한 것이 없는 부자이다. 세상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하느님과 성모님의 사랑만은 영원하리라. 아멘!

참고: 현재 이 자매는 평신도로 모든 삶을 성모님께 봉헌한 채, 전 이탈리아 중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사탄주의의 위험에 대해 청소년들에게 강의하고 있으며 전세계를 다니며 사탄주의와 사탄음악에 대한 실체를 증언하고 있으며 그에 대책과 청소년 보호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 번역: 남기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