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자의 권리
우리는 죽은 이를 천국에 보낼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다. 즉 기도를 하고 하느님께 그들의 구원을 청하면 그들은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이면 아버지께서 무엇이든지 주실 것이다”(요한 16,23).
트리엔트 공의회는 선언하였다.
“연옥은 존재한다. 이 연옥에 있는 영혼들은 생존자의 기도와 특히 미사 성제로써 도움을 받는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권리는 위대한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명령에 의한 소방수이다. 이승 불에는 도저히 비길 것이 못 되는 연옥 불을 어떤 영혼을 위하여 아주 꺼 주거나 혹은 누그러뜨릴 수 있는 소방수이다.
국왕이 대사(大赦)를 베풀어 죄인을 사해 줌은 감탄할 권력이다. 그러나 우리도 우리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연옥의 감옥으로부터 몇 사람이건 영혼을 자유롭게 해 주고 천국에 들여 줄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
연옥 영혼은 구세주의 성혈로 속량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스런 자녀가 된 자이다. 한시라도 빨리 천국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하느님께서는 기뻐하신다.
적의 포로가 된 왕자가 충성스런 신하 때문에 구출되고 중병의 아내가 완치되었을 때의 왕과 남편의 기쁨은 크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연옥 영혼이 천국에 들여지는 것을 기뻐하시는 데에는 도저히 비길 수 없다. 하느님께서는 이를 구해 준 사람에게 큰 은혜를 내리신다.
복자 피에르 드 브누아는 말했다.
“연옥 영혼에 대한 신심은 하느님의 영광에서 보아 이교(異敎) 나라들에 선교하는 사업에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면에서 본다면 이보다 더 낫다. 왜냐하면 하느님 대전에서 연옥 영혼은 미신자의 영혼에 비할 수 없을 만큼 품격이 높은 것이니까.”
우리의 기도와 선업으로 조금이라도 빨리 영혼을 천국에 들여 보낼 수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께 대한 최상의 사랑의 증좌이다. 연옥 영혼에 대한 신심은 하느님께 대한 우리 신앙의 바로미터이다. 이에 열심한 사람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도 깊고 이에 미지근한 사람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도 미지근하다. 만일 전혀 관심이 없다면 그것은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죽은 이에 대한 사랑
예수께서는 사흘 전부터 끼니조차 잊고 가르치심을 듣기 위하여 뒤따라온 사람들을 보시고 “측은히 여기시어” 빵을 많아지게 하시어 5천 명이 넘는 사람을 배부르게 하셨다.
연옥에는 수천, 수만 명이 고생하고 있다. 또 그 괴로움은 세상 마칠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이들을 불쌍히 여겨 그들을 구해 주기 위해 분발한다면 크나큰 사랑의 사업을 하는 셈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전혀 잊혀지고 아무도 기도해 주지 않는 영혼을 위하여 또 가장 가까운 시일 내에 천국에 들어갈 영혼을 위하여, 그 밖에 모든 영혼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의(義)
우리가 약속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연옥에 있는 영혼도 있을 것이다. 그들을 구해 주는 일은 양심의 중요한 책임이다. 상속인이 망자의 재산만 빼앗고 그 유언을 이행하지 않음은 몹쓸 짓이다.

우박 피해
이탈리아 밀라노 근처의 어떤 이의 토지는 우박 피해가 매우 심했는데 다른 땅은 조금도 해를 입지 않았었다. 사람들은 어찌 된 영문인가 하고 이상히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연옥 영혼이 어떤 사람에게 나타나서 이렇게 말했다.
“은혜를 모르는 자식들이 ‘자선 사업을 위하여 쓰라’ 하고 죽은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이 벌을 받은 것이다.”

페라라 시의 유령
이탈리아 페라라 시의 제일 훌륭한 저택에 밤이 되면 큰 소음이 들렸다. 집주인은 여러 가지로 손을 써 봤으나 아무리 해도 그치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도 살려는 이가 없었다.
법률을 연구하는 한 학생은 이 이야기를 듣고 웃었다.
“그것은 사람들의 상상이다. 10년 동안 그 집의 방 한 칸을 거저 빌려 준다면 들어가 살겠다.”
그 청년이 그 집에 거처하게 되었다. 짐을 나르고 그 날 밤은 내일의 논제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이 청년은 열심한 신앙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축성한 초를 켜 놓고 있었다. 만일 마귀가 그를 해치려고 나와도 이것으로써 보호를 받는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밤중이 되자 안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왔다. 마룻바닥 위에 무거운 쇠사슬을 질질 끄는 듯한 소리였다. 소리는 점점 청년의 방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더니 갑자기 문이 열리고 무서운 유령이 손과 발이 쇠사슬에 묶인 채 나타났다. 청년의 물음에 대답도 하지 않고 말 한마디 없이 책상 옆에 앉아서 무서운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청년은 점점 무서워졌지만 마음속으로 기도하면서 모르는 체 하고 공부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랬더니 유령이 물었다.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찾고 있습니까?”
“내일 논문을 위하여 꼭 필요한 법률의 명문을 찾고 있습니다.”
“그 책에는 없습니다. 책상 위에 있는 바르톨로의 저서 이러이러한 곳에 있습니다.”
청년이 찾아보니 과연 그대로였다. 잠시 후 유령은 일어나 쇠사슬 소리는 내면서 돌아갔다. 청년도 성초를 손에 들고 유령의 뒤를 밟고 지하실까지 따라갔다. 가 보니 땅바닥이 절로 열리고 유령은 그 속으로 사라졌다. 청년은 거기에다 성초를 두고 자기 방에 돌아왔다. 날이 새자 친구들을 불러 거기를 파 보았더니 이름 모를 해골이 있었다. 사제가 와서 장례를 치르고 성대한 미사가 봉헌되었다.
연옥에서 잊혀지고 있던 영혼이 사람들의 기도를 청하기 위해 하느님의 특별한 허락으로 나타났다고 모든 이들은 믿고 있었다.

보은(報恩)
성 비안네는 말한다.
“자녀가 자기 부모에게 어찌 감사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으랴.”
부모가 우리를 양육하기 위해서 겪은 노고와 근심 걱정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실제로 부모의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애쓰는 자녀는 적다. 부모 다음으로는 은인과 벗들이 빨리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성녀 안나 마리아 타이지는 말한다.
“연옥 영혼에 대하여 깊은 신심을 가지십시오. 이 신심은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크나큰 재앙을 면케 하는 피뢰침입니다.”

우리의 이익
하느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연옥 영혼을 도와 줌은 아주 좋은 일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영적 이익을 생각하는 것도 결코 나쁘지 않다. 연옥 영혼을 도와 주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합당한 사람이다.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 5. 7).
“남을 판단하는 대로 너희도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마태 7, 2).
성 암브로시오는 위의 복음 말씀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우리가 애덕으로 연옥 영혼에게 베푸는 모든 것은 모두 은총으로 변하여 우리는 후세에 그 백 배의 갚음을 받는다.”
제노바의 카타리나는 말한다.
“나는 다음 말로써 이승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 위해 사방에 메아리 치는 우렁찬 목소리를 가지고 싶다. 즉 가련한 자여, 왜 너희는 덧없는 이 현세에 속는가 ? 임종의 어려운 고비에 너희의 보호자가 될 자를 만드는 선업을 왜 살아 있을 동안에 하려고 하지 않는가 ?”

완덕의 학교
연옥 영혼에 대한 신심은 무서운 대죄를 미워하도록 가르칠 뿐만 아니라 이 때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많은 소죄를 범하던 악한 습관을 고치게 된다.
왜냐하면 연옥에서 고생하는 영혼은 다음과 같이 부르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오. 또 우리처럼 비방, 조소, 멸시, 질투, 교만, 허영 따위에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선행을 하도록 힘쓰시오. 선종을 위하여 모든 계명을 충실히 지키시오. 죽음은 도둑처럼 갑자기 오니 대죄를 지닌 채 살지 않도록 주의하시오.”
페늘롱 주교는 말한다.
“현세에서 고통은 하나의 연옥이다. 병원을 세우듯 우리는 고통으로써 이승에 연옥을 세우자. 연옥 영혼처럼 우리는 이승에서 하느님 손 안에서 순종하여야 한다. 이승에서 자기의 연옥 고통을 치른다… 아 주여, 이는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옵니까…”

유력한 보호자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말한다.
“천국의 성인과 연옥 영혼은 공로를 세울 수는 없으나 생전에 쌓은 공로를 우리를 위해 쓸 수는 있다. 이 성인들이 신앙을 위하여 자기네 몸에 받은 갖가지 상처, 행한 고업, 선행, 대제 등은 하느님 대전에 유력할 것이다. 이는 군인이 싸움터에서 받은 상처를 국왕에게 보이는 것과 같다.”
성 아우구스티노, 성 예로니모도 같은 것을 가르치고 있다.
페늘롱 주교는 슬픔에 겨워하는 이에게 말한다.
“죽은 이와 마음으로 일치하라. 그들은 우리 육안으로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를 보고 우리를 사랑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깨닫고 또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볼로냐의 성녀 카타리나는 말한다.
“우리가 오래도록 성인들의 전구로 기도해도 은혜를 못 얻었을 때에 연옥 영혼의 전구로 즉시 은혜를 받은 일이 가끔 있다.”
성 비안네는 말한다.
“우리가 만일 연옥 영혼이 가지고 있는 힘을 안다면, 그리고 또 그들의 전달로 받을 수 있는 커다란 은혜를 안다면 그들을 그리 쉽사리 잊어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라. 그들도 우리를 위해 열심히 기도할 것이다.”
60세가 되는 어떤 부인이 중병에 걸려 나을 가망이 없는데도 항시 사제가 곁에 가는 것을 거절하였다. 그래서 사제는 연옥 영혼에게 부탁하여 만일 이 병자가 회개한다면 천국에 제일 가까이 가 있는 영혼을 위하여 미사 한 대를 드리고 또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한 번 하고, 이 일을 연옥 영혼을 위로하는 회의 잡지에 발표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리고서 사제는 한 번 더 이 때까지 항상 거절만 당하던 집에 갔더니 곧 병자가 그를 불렀다. 그녀는 고해성사를 보고 병자 성사를 받고 성체를 영하고서 십자가와 성모패에 입맞춘 채 세상을 떠났다.
다음에 어느 장교의 편지 한 구절을 소개한다.
“1919년 1월 1일, 나는 바아즈의 라스타드 거리를 산보하다가 결혼 반지를 떨어뜨렸다. 그걸 알고 나는 지나온 길을 여기저기 찾아보기도 하고 성당에 들어가서 사방을 두루 찾아보았으나 헛일이었다. 그래서 연옥 영혼에게 만일 반지가 다시 내 손에 들어온다면 연옥 영혼을 위하여 미사 몇 대를 바치겠으며 그 감사로 이 은혜를 발표하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1일 밤부터 2일 아침까지 근무하였다. 그 동안에 문득 ‘진흙투성이가 된 신발을 자세히 살펴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솔로 한 번 문지르니 결혼 반지가 조금도 상하지 않은 채 전날부터 끼여 있던 구두굽 속에서 떨어졌다. 그런 상태로 전날은 십리 남짓한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의심없이 이는 연옥 영혼의 덕택이었다.”
성녀 안나 마리아의 기도와 선업의 덕택으로 구원된 연옥 영혼이 가끔 그녀에게 나타났다. 어느 날 성녀는 한 망자를 위하여 성체를 영하였다. 그랬더니 곧 그는 영광 속에 은인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사랑하는 자매여, 당신의 사랑에 감사합니다. 당신의 기도 은혜로 빨리 영복을 받으러 갈 수 있습니다. 천국에 가서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성녀는 말했다.
“여러분은 연옥 영혼에 대하여 큰 신심을 가지십시오. 될 수 있는 대로 그들을 위하여 미사를 바치십시오. ‘주여, 망자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 라는 기도를 매일 백 번 외우십시오. 미사 때에 그들을 위하여 이 거룩한 희생을 봉헌하십시오. 그것은 여러분과 여러분 가족의 행복이 될 것입니다.”
포르토 마우리지오의 성 레오나르도는 44년간의 설교 가운데 가끔 다음 말을 되풀이했다.
“형제 여러분, 잘 들으시오. 만일 단 하나의 영혼을 연옥에서 구할 수 있다면 천국은 그대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영혼은 은인인 당신이 영복을 얻기 전에는 당신을 위한 분발을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연옥 고통을 면케 해줄 수는 없다 할지라도 짧은 시간 또는 가벼운 보속을 다하면 영복을 얻을 수 있도록 해줄 것입니다.”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는 말했다.
“죽은 이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라. 그들을 위하여 자비를 베풀어라. 한마디로 해서, 손쉬운 모든 방법으로 도와 주어라. 이 영혼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고 하느님께로부터 통회와 죄사함의 은혜를 얻게 해 줄 것이다.”
우리도 연옥 영혼을 도와 주기 위하여 분발하자.

-「연옥 실화」(막심 퓌상 지음/한국 순교 복자 수녀원 옮김) 中 / 제8장 연옥 영혼을 위로하는 이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