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는 현재 이슬람 국가다. 그러나 그곳을 여행하다 보면, 회교국을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놀랍게도 성서의 땅을 여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창세기에 나온 노아의 방주 잔해도, 아브라함이 야훼의 지시대로 갔던 하란도 그곳에 있다. 초기 기독교 유적도 있고 선교 활동을 한 바오로의 집도 그곳에 있지만, 그 무엇보다도 성모님이 승천할 때까지 사셨다는 성 마리아의 집이 에페소에 있다.
  성모 마리아의 집으로 가는 길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에게해를 끼고 있었다. “앗! 저어기!” 하는 소리가 나올 뻔하게 드높이 선 성모님 동상이 우리를 반겼다. 성모님의 집은 그 동상에서부터 더 멀리에 있었다. 예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했고, 요한은 이곳 에페소까지 성모를 모시고 와서 돌보며 살았다고 한다. 박해를 피한 피신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전해져 오는 말만 있었지, 확실한 유적지를 찾지는 못했다.
  그런데 18세기 말, 안나 카타리나 수녀님이 꿈에서 에페소의 부르부르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석조로 된 성모님의 집을 보았다. 그녀는 한 번도 에페소를 가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그 계시를 따라 유적 찾기에 나선 사람들이 드디어 그 집을 찾아내었을 때, 그녀가 꿈에 본 모습 그대로였다는 것이다. 그 발굴로, 1967년에 교황 바오로 2세가 이곳에서 미사를 집전하셨다. 그 후, 옛 모습대로 복원되었을 뿐 아니라 마리아의 집 위치에 대한 논란은 종식되고 성지로 선포되었다고 하니 ‘신비’였다.

  성모님의 집에 당도했을 때, 입구부터 한여름의 꽃들이 양편으로 피어 있었고, 주변은 너무나 깨끗하게 정돈돼 있어서 그 때까지 보아온 유적지와는 전혀 달랐다. 성모님의 집은 둥근 돔 모양의 낮은 석조 동굴이었다. 초 한대를 사서 안으로 들어서니, 그 안에 수사 신부님이 서 계셨다. 초를 들고 신부님께 강복을 받은 후 성모님 앞으로 갔다. 초를 바치고 성호를 그으며 잠시 고개를 숙였다. 이곳에 와서 성모님에 대한 감회가 새삼스러웠다. 앞길만 바쁘지 않으면 머물고 싶도록 평화와 사랑이 넘치는 분위기였다. 지금은 많은 참배객들과 꽃으로 장식되어 있지만, 성모님 생존시는 얼마나 고난의 시기였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성모님 집에서 나와 한 계단 내려오니,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성수’였다. 가이드가 “이 성수를 마시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하자, 몇몇 여자들이 내 뒤를 따랐다.
  참배가 끝나 버스에 오르니, 일행 중의 한 젊은 여성이 내게 와서 옆에 앉아도 좋으냐고 물었다. 일행이지만 나와 별로 말을 나누지는 않았다. 내가 성수를 마실 때 옆에서 그녀도 물을 뜨고 있었다.
  “천주교 믿으시나 보죠? 한 가지 여쭈어 보아도 괜찮겠어요? 성모 마리아는 어떤 사람인가요?”
  “뭘 알고 싶어요?”
  “개신교는 예수를 믿고 천주교는 마리아를 믿는다면서요?”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가톨릭이나 개신교나 다 예수님을 믿지요. 단, 가톨릭은 성모님도 공경하지요. 성모님은 예수님을 낳으신 어머니이시니까요.”
  “마리아는 처녀였다지요?”
  “아무 죄 없으신 분이셨지요.”
  “무슨 뜻이죠?”

  나는 그녀를 잠깐 쳐다보고 어떻게 설명해야 그녀가 이해할 수 있을까 잠시 생각했다. 나 자신도 성모님을 충분히 알기까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결혼했는지 어떤지 모르지만 남자를 알아야 잉태하잖아요. 성모님은 남자를 모르는 분인데 잉태하신 겁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잉태하셨다고 말하는 것이고, 죄 없으신 분이라고 말하는 것이에요. 어떤 두려움도, 세간의 여러 고통도 감수하시고 성령으로 하느님께 순종하신 것이죠. 생명의 중요성을 깨달은 분이죠. 만일 마리아가 잉태를 거부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예수님은 탄생 못 하셨겠지요.”
  나는 되도록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가톨릭에서는 그래서 낙태를 반대하는 겁니다. 모든 생명은 하느님이 주신 자녀예요. 훗날 그 아이가 큰 인물이 될지도 모르잖아요? 여인의 임신은 하느님의 축복이에요.”
  “아까 성모님 앞에 고개 숙이시는 모습이 무척 경건해 보였어요.”
  “갈수록 성모님의 은총이 크심을 느끼니까요. 성수를 마셨어요?”
  “신자 아니면 안 되나요?”
  “기적은 원하는 사람에겐 누구나 다가오죠. 신자이건 아니건.”
하며 내가 웃자 그녀도 미소 지었다.

  터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석 달이 지났을 무렵, 전화가 걸려왔다.
  “저 기억하실지 모르겠어요. 터키 여행을 같이 했던, 그리고 선생님에게 성모님에 대해 물었던 서인순인데요.”
  “아, 기억하고말고요. 그런데?”
  “내일쯤 찾아가 뵈어도 좋겠습니까?”
  다음날, 그녀는 나를 찾아왔다. 여행 때보다 약간 여위어 있었다. 무엇인가 무척 어려운 말을 하려 하는 것 같았다.
  “저 임신했거든요.”
  “결혼했군요. 축하해요.”
  “아니에요.”
  그녀의 말은, 오래 사귀었던 남자가 어느 날 헤어지자고 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그저 잠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울고 매달리고 싶었지만 자존심도 상하고 해서 좋다고 하며 돌아섰다. 그러나 마음은 쉽게 잊을 수 없었고 고통스러웠다. 터키 여행은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임신은 알고 있었어요?”
  “아뇨. 생리가 한 달쯤 없었지만 설마 했어요. 돌아와서 병원엘 가 보았더니 임신 삼 개월이라고 하더군요. 앞이 캄캄했어요.”
  그녀는 망설이고 고민하고 죽고 싶은 심정까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랬지만 그 남자를 찾아가 이야기를 하기란 죽기보다도 싫었다고 했다.
  “한번 마음 변한 사람인데 구차스럽게 말하기 싫었어요. 차라리 낙태를 결심했죠.”
  그런데 자꾸 내 말과 성모님의 모습이 떠올랐다고 했다. 생명의 존엄성을 의식해본 일도, 그 중요성을 느껴본 일도 처음이라고 했다.
  “저는 하느님이 누군지 모르지만 생명의 존엄성을 느꼈어요. 임신한 것이 죄인가? 아니면 낙태하는 것이 죄인가? 그런데 여인의 임신은 축복이라고 하신 말씀이 떠나지 않더군요.”
하며 그녀는 좀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나는 무의식중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러나 속으로는 내가 말을 잘해준 것인지 잘 못해준 것인지, 갑자기 겁도 나고 판단이 서지 않았다.
  “망설이는 동안 벌써 다섯 달이 되어 버렸어요. 그러나 후회는 안 하겠어요.”
  나는 그녀를 데리고 내가 나가는 성당으로 갔다. 주일이 아니어서 마냥 조용하기만 한 성전으로 들어가 빈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중앙 제단에 있는 예수님의 승천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기도를 올렸다.
  ‘주님 이 여성을 도와주시옵소서.’
  헤어질 때, “어려울 때 전화하세요.” 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자신이 그녀인 양, 계속 무엇인가 감당할 수 없는 힘겨움이 느껴졌다.

  그런 몇 달 후였다. 그 동안 그녀를 잊지는 않았지만, 잊는 날이 더 많을 만큼 바빴던 어떤 날, 서인순 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순간, 출산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아직 그 날짜는 아니었다.
  “선생님, 여기 혜화동 로터리 T 커피숍인데요. 잠깐 뵙고 싶어요.”
  약속을 한 것이어서 아무리 바빠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지정한 다방으로 나가니, 배가 제법 부른 그녀 옆에 한 젊은 남성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나를 보자 미소를 지었다. 서인순 씨에게 요셉 같은 멋진 남자가 나타났나 보다 생각하면서 앉았다.
  “선생님 이 사람, 아기 아빠 될 사람이에요.”
  남자는 쑥스러운 듯이 뒷머리를 긁었다.
  “한 달 전에 우연히 거리에서 만났어요. 놀라며 결혼했느냐고 묻더군요. 아니라고, 당신의 아이라고 말하자 깜짝 놀라더군요. 무슨 배짱으로 아이를 낳았느냐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말했죠. 한 생명을 내 손으로 죽일 권리는 없다고요. 며칠 후, 이 사람이 전화를 했어요. 많이 생각했다면서 우리 결혼하자고 그러더군요.”
  이야기는 간단했으나, 그 동안 두 사람은 많은 말을 했을 것이다. 후회도 하고 용서를 거듭했을 것이다.
  나는 지난 몇 달간 무엇인가 나를 짓누르던 가슴을 쓰다듬으며, ‘하느님, 성모님, 감사합니다. 당신께서 기적을 주셨군요.’ 했다. 몇 달 전, 서인순 씨를 데리고 무거운 마음으로 기도 드렸던 성당에 두 사람을 데리고 갔다. 성전에 들어가기 전에 정원의 성모상 앞으로 먼저 갔다. 누가 갖다 놓았을까, 장미 몇 송이가 있었다. 성호를 긋고 잠시 서 있었다. 그런 후, 두 사람의 손을 양쪽으로 잡고 성전으로 들어갔다. 예수님 승천 조각상이 오늘따라 지긋이 미소 짓고 계셨다.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신자인 듯 경건히 제대를 향해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혼자 조용히 일어서서 밖으로 나왔다. 갑자기 내 앞에 눈이 떨어지고 있었다. 하늘을 보니 눈이 날리고 있었다. 축복의 첫눈이었다.

송원희 마리아 아가페 / 성모 기사회 회지 2003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