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디어와 어린이의 성장 환경

  미디어라고 하면, TV나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영상매체만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미디어에는 의사소통 도구로서 책이나 인간의 구어(口語)까지도 광범위하게 포함된다. 언어로 의사소통을 시작한 이래 인간은 미디어 없이 생활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 미디어는 내용(지식과 정보)을 실어나르는 빈 그릇이 아니라, 그 자체에 내용적 편향성(bias)이 있고, 이 편향성이 인간의 의식과 사고 그리고 사회 구조에까지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것이 미디어의 본질이며, 전설적인 미디어 학자 마샬 맥루언이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경구 안에 담아 놓은 미디어의 매우 중요한 속성이다. 그러므로 미디어는 쓰기 나름의 중립적인 도구가 결코 아니며1), 특정 미디어는 그 안에 최적화되어서 담길 수 있는 내용이 상당 부분 정해져 있다. 예를 들어, 책이라는 문자 미디어에는 논증과 진지한 성찰이 담기기에 최적이라면, TV.인터넷.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영상 미디어에는 즉흥적 오락물이 최적이라는 뜻이다. 미디어의 이런 특성으로 인해서 주류 미디어가 바뀔 경우, 이전 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인간 유형이 생겨나고 사회 구조 또한 심대하게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2)

  구술 전통이 살아 있던 시대인 불과 30여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삶을 배우고 세상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가정과 마을 공동체에서 조부모와 부모 그리고 동네 어른들이 어린 아이들의 사회화 과정을 담당했고, 어린이들은 건전한 가치를 우선적으로 내면화하면서 세상에 존재하는 악으로부터 격리되어, 보호받으며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이후, 기술과 자본이 급격하게 결합하고 TV로 대표되는 침투력 강한 영상매스미디어가 출현하면서 어린이들의 성장 환경에 급격한 변화가 초래되었다. 현대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거대 자본이 고도로 발달시킨 영상 매체가 가정과 부모를 제치고, 아기들과 어린이들에게 1차적이며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어린이들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부모나 조부모 주변에 모여들지 않고, 거대자본이 상업적 목적으로 제작한 자극적인 TV와 인터넷 영상물 앞에 모여들게 된 것이다.

  공동체에서 어른들이 들려주는 동화를 듣고 그것을 반복하면서 성장했던 세대는 정서적으로 상처받지 않으면서 악의 존재를 서서히 인식하고 깨달아갈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이 동화의 내용을 통제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아이들을 안심시켜주는 환경에서 악에 대한 이야기를 조절해서 들려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대 방송 자본이 만드는 상업적 영상물이 보여주는 자극과 폭력은, 어머니의 목소리로 조정되는 것도 아니고, 어린이의 수준에 맞게 조절되는 것도 아니며, 어린이 발달 이론에 맞게 정밀하게 규제되는 것도 아니다. 그 결과, 영상 매스미디어 시대의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세계와 전면적인 폭력에 여과 없이 노출된 채 성장하게 되었다. 순수하게 보호되어야 할 어린 시절이 상실된 것이다.3)

  집집마다 거실 한 가운데 TV가 놓여 있고, 가정 생활의 상당 부분이 TV 앞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린이들의 1차적 교육과 사회화가 사실상 드라마, 쇼, 광고 등의 상업적 영상물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4)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 영상물들에 부모들이 감히 상상조차하지 못하는 거대자본의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전파되는 이미지에는 다양한 상업적 메시지들이 정교하게 포함되어 있다. 이미지 밑에 깔려 있는 제작자의 의도, 목적, 가치관이라는 텍스트를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심리적 무방비로 상업적 영상물에 노출될 경우에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영상물이 보여주는 거짓과 환상을 실재라고 믿게 된다.

  우리 한국의 경우, 1990년대 중반 이후 인쇄문화에서 영상문화로의 매체 변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거시적 차원에서 문화 변동이 발생했고,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 변화의 결과들이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문화 변동이 어떤 세대를 새롭게 탄생시켰고, 또 우리 가톨릭 교회의 성소(聖召)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2. 매스미디어와 윤리관 형성 그리고 성소(聖召)

  윤리관은 아동청소년기에 일상적으로 접하는 내용에 이끌려서 무의식적으로 형성된다. 조선 시대의 경우라면, 어려서부터 읽는 천자문과 소학 그리고 청소년기에 접하는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이 그 사회 윤리관의 토대가 된다. 중세 유럽 사회에서는 당연히 성경이 당대인의 윤리관을 형성하는 가장 핵심적 요소였을 것이다. 즉, 한 시대의 지배적 텍스트가 그 시대 사람들의 집단적 윤리관을 암묵적으로 형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 영상 매스미디어 사회의 지배적 텍스트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것을 통해서 현대인 특히 현시대를 사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어떤 윤리관을 자연스럽게 형성하고 있을까? 또한 이 윤리관은 가톨릭 교회의 성소와 어떤 연관을 맺고 있을까? 이 장에서는 이 물음에 구체적인 답을 찾도록 한다.

2.1. 지배적 텍스트로서의 대중문화

  TV, 인터넷,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영상 매스미디어 사회에서의 지배적 텍스트는 대중문화와 포르노그래피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 둘은 매우 밀접한 상호 관련을 맺으면서 발달하고 있다.

  ① 대중문화와 포르노그래피

  대한민국 대중문화상품 중 특히 뮤직비디오는 포르노그래피의 영상문법을 그대로 차용해서 만든 것들이 많다. 이 글에서는 대표적인 상품 하나만 소개한다. 위 사진은 티아라 ‘보핍보핍’의 뮤직 비디오 중 일부 장면이다. 뮤직 비디오에 삽입된 영상은 소위 하룻밤 섹스인 원나잇 스탠드를 주도적으로 반복하는 여성이 클럽에서 야하게 춤추면서 한 남성을 유혹하고, 호텔에 가서 성관계를 맺은 후 클럽에 다시 와서 또 다른 남자를 또 유혹한다는 내용이다.

  이 뮤비는 여성이 주도하는 원나잇 스탠드를 너무나도 멋지고 화려하게 표현해 놓았을 뿐 아니라, 여성이 성행위 도중에 카메라를 직접 쳐다보는 두 개의 장면(위 사진 중 세 번째)을 삽입해 놓았다. 이는 포르노 영화에서 여자 배우가 스크린 너머의 남성에게 직접적인 유혹의 시선을 보내기 위해 사용하는 시선 처리 방식으로 일반적인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는 표현 기법이다. 인기를 얻고 돈을 벌기 위해서 기획사는 포르노 영화의 전형적인 영상 문법을 그대로 차용해서 문화 상품을 제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포르노라는 원초적 자극에 익숙한 대중, 특히 청소년들의 이목을 끌어모으기 위해서 포르노에서 사용하는 자극의 기법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다.

  이 노래와 뮤직 비디오는 청소년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있었고, 특히 남자 중학생들이 열광했는데, 그 이유는 자신들이 매일 보는 포르노에서 경험했던 자극을 뮤비에서도 동일하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필자가 남중생들을 상대로 강의하면서 어떤 영화에서 등장 인물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쳐다보냐고 질문하면, 전교생 3-400명이 동시에 ‘야동이요. 포르노요’하고 즉답하는 경우를 여러 번 경험했다. 남중생 전교생은 왜 이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을 할 수 있는 걸까?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중독적 시청이라는 자신들의 일상적 체험을 질문했기 때문에, 대답에 막힘이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대중문화 상품은 그 안에 낚시 바늘을 품고 있으며, 청소년들이 포르노그래피 경험을 통해 얻은 심리적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들을 조준사격 하고 있다. 이는 보장 받아야 할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지성 사회에 의해서 당연히 경고 받고, 당국에 의해서 규제되어야 할 부도덕한 영업활동이다. 사회적 견제가 필요한 기업의 과도한 영업활동이 일부 재벌 기업에만 한정되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상업적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기획사로 대표되는 문화 기업 또한 감시의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 청소년들이 심리적 무방비 상태에서 이러한 영상물에 일상적으로 노출된다면, 바른 인성을 가진 성인으로 자라기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다.

  위 사진은 이 뮤직 비디오 ‘보핍보핍’의 마지막 장면으로, 처음 만난 남자와의 하룻밤을 보낸 여자가 다시 클럽에 와서 두 번째 남자를 유혹하는 데 성공한 후, 그 남자의 품에 안겨서 카메라를 다시 또 쳐다보는 것을 표현했다. 이 깊은 여운을 남기는 엔딩에서 표현된 눈빛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질문을 남녀 중고등학생들에게 하면, 그 자리에서 정답이 막힘없이 나온다.

“다음에는 네 차례야!”

  20세기 초에 발터 벤야민은 ‘21세기가 되면 더 이상 글을 못 읽는 사람이 문맹자가 아니라, 영상 이미지를 해독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 문맹자다.’라는 말을 했다. 영상 매체에 노출된 채 성장하여 영상 문법에 익숙한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이처럼 배운다는 의식조차 없이 영상물을 통해서 쾌락중심적으로 왜곡된 성의식과 가치관을 내면화하고 있다. 사태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그 연구 기관의 학자들은 새로운 세대가 무엇을 일용할 양식으로 섭취하면서 어떤 뒤틀린 윤리관을 무의식에 형성해놓고 있는지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무척 가슴 아픈 일이다.

  우리 대중문화는 이런 방식으로 하위 문화로서의 포르노를 모방하고, 우리 청소년들은 이런 문화 상품을 섭취하면서 자연스럽게 포르노그래피에 표현된 왜곡된 성의식을 자기도 모르게 내면화하고 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대중문화와 포르노가 기이하게 결합되는 모습이 우리 나라 문화상품 안에서 상당히 광범위하게 확인된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미디어 문화론적인 성교육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문화상품이 포르노 서브 컬처 코드(porno subculture code)를 정교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그동안은 기호학적 방법으로 그 증거를 찾고 세상에 그 유해성을 알리는 데 필자의 온 역량을 집중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기획사에서 우리가 포르노 모방해서 뮤직비디오 만들었다고 스스로 자랑스럽게 공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공중파 TV 토크쇼에 출연한 아이돌 연예인이 뮤직 비디오 제작할 때 포르노그래피 안에 표현되어 있는 내용을 깊이 숙지하고, 그 내용과 정서를 모방하여 만들었다고 말한 바 있다. 반성과 고발의 의도가 아니라 재미와 흥미를 위한 발언이어서 더 충
격을 준다. (2012년 11월 2일 고현정 쇼)

  2012년 11월 2일 고현정 쇼에 출연한 인기 아이돌 여가수는 음란물을 여러 편 보고 그것을 모방하여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고 스스로 이야기했다. 이 노래 ‘아브라카다브라’는 몇 년 전 어린이와 청소년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노래였고, 이 아이돌 여가수는 여전히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영향력이 매우 큰 연예인이다.

  이 여가수의 말에 의하면, 각국의 포르노그래피를 다운받아서 보았는데, 처음에는 보기 민망했지만 어느 순간 선을 넘으니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고, 나중에는 같은 걸그룹의 다른 멤버들과 함께 자주 즐기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 수준에까지 도달하려면 포르노그래피를 아주 많이 봐야 한다는 말과 함께, 포르노그래피를 통해서 아주 재미있는 신세계를 발견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전형적인 음란물 중독의 과정이다. 기획사와 방송사가 젊은 여자 가수에게 포르노그래피가 재미있고 신난다는 식으로 토크쇼 나와서 말하라고 대본을 써주는 것도 납득할 수 없지만, 이런 방송을 그대로 용인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는 더욱더 납득하기 어렵다.

  우리 방송이 왜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제작자들도 감히 처음에는 자신들이 포르노 모방해서 뮤비를 만들었다는 말을 하지는 못했다.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그런데 음란물을 모방하여 만든 뮤직비디오가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기를 끌고 또 돈을 가져다주고, 외화벌이 해오는 한류라고 국가까지 나서서 칭송을 하는 상황이 되니 갈수록 대범해지고 당당해진 것이다.

  이런 저속한 문화상품을 만드는 제작자도 문제이지만, 아무 의식 없이 천박한 방송에 길들여져만가는 일반 국민과 도덕적 기반을 붕괴시키는 문화상품을 준엄하게 경고하지 않는 지성 사회가 더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지성 사회의 호의 혹은 무관심이 계속되면, 문화상품 제작자들은 이것을 자신들의 권리라고 착각하게 된다. 지성 사회조차 침묵하고 방관하고 있다면, 가톨릭 교회와 그 연구 기관이 사회의 윤리적 최후 보루를 지켜야만 한다. 화려하고 재미있게 포장된 문화상품 안에 감추어진 윤리적인 악을 식별하고 지적하는 일은 교회가 이 시대에 담당해야 하는 신성한 임무이다.

  위 인물은 지드래곤(Gdragon)이다. 10대 청소년, 특히 여중생에게 절대적인 인기와 영향력을 가진 연예인이다.5) 공연에서 ‘I love sex’, ‘fuck you too’, ‘69’라고 쓴 이름표를 붙이고 나왔다. 69는 아무 의미 없는 그냥 숫자가 아니다. 포르노에 자주 등장하는 변태적인 성행위 체위를 뜻하는데, 실제 남·여 중학교를 두루 다니며 성교육을 해보면, 69의 의미를 모르는 청소년들이 별로 없다. 포르노그래피 서브 컬처 코드 중 하나인 69를 손수 이름표로 만들어 몸에 부착하고 무대에 섰다는 것은, 지드래곤이나 그 소속 기획사가 포르노그래피와 모종의 깊은 상호관계에 있음을 뜻한다.

  실제로 지드래곤은 올림픽 체조 경기장 공연에서, 여성을 침대에 묶고 성행위를 하는 퍼포먼스를 펼친 바 있다. 포르노물 중에서도 여성을 극도로 학대하는 변태물을 공연에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그런데 이 장소는 역설적이게도 서울대교구가 해마다 사제 부제 서품을 하는 바로 그 장소이기도 하다.

  관객 1만 2000명씩 2회 공연을 했고, 12세 관람가 공연이었다. 당연히 관객의 상당수는 여중생들이었다. 공연 자체도 충격적이었지만, 더 충격적인 것은 여중생들이 그 공연을 보고 열광하고 환호했다는 것이다.

  여중생들이 열광하고 환호하는 이유는 뭘까? 성교육을 나가보면, 지드래곤의 공연에 참여했던 여중생 여고생을 만나는 것이 별로 어렵지 않다.6) 왜 저 장면에서 열광하고 환호했느냐고 물어보면, 대답이 모두 똑같다.

“질투가 나서요.”

‘침대에 묶이는 저 여자가 나였으면!’하는 군중심리가 공연장 전체를 지배했던 것이다. 여성을 학대하고 모욕하는 내용이 환호와 열광 속에서 여자 청소년들 무의식에 스며들어 버리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사랑이라는 정서적 욕구가 필요할 때, 자신을 학대하는 남성에게 끌리게 되는 피학적·병리적 심리가 각인될 수 있다. 이런 문화조류는 우리 사회 안에 이미 ‘나쁜 남자 신드롬’이라는 이름으로 정착되어 있다. 아이돌(idol)이 아이들(children)을 망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나쁜 남자’를 멋지게 포장한 문화상품을 지속적으로 소비한 여자 청소년들은 사랑과 폭력을 혼동하게 되고, 결국에는 자기 인생을 스스로 불행하게 만들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이것이 문화 상품 안에 숨겨진 보이지 않는 위험이다. 그런데 이런 위험성을 청소년들이 스스로 식별해내기는 상당히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이 중요하다. 화려하게 포장되어 있더라도 그것이 결국 죽음의 문화임을 알려주는 교육을 교회가 반드시 제공해야 한다.

논어를 보면, 제자 안연이 공자님께 인(仁)이 무엇인가를 묻는데 공자님은 ‘극기복례위인(克己復禮爲仁)’ ‘자신의 이기심과 욕망을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다.’고 말씀하신다. 다시 제자가 그 구체적인 방법을 묻자, 공자님은 ‘비례물시, 비례물청, 비례물언, 비례물동(非禮勿視 非禮勿廳 非禮勿言 非禮勿動)’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행동하지도 마라’라고 대답하신다. 그런데 지금 우리 아이들이 크는 문화적 환경을 보면, 이 시대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예가 아닌 것들만 보고 크게끔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환경을 조성한 것처럼 보인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우리 나라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음란물도 많이 보고, 음란물을 모방한 노래를 무의식적으로 따라 부르고 또 그 춤을 따라추며 성장하고 있다.

‘소리 내서 읽으면 몸에 새겨지고 몸에 새겨지면 행동으로 나온다.’

  조선 시대 서당교육의 방법론이자 철학이다. 미디어 시대에는 역설적이게도 상업방송과 기획사가 이 교육철학을 사용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왜곡된 성교육을 시키고 있다. 배운다는 의식 없이 배운 것은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나온다. 이것이 모두 문화상품 안에 내재된 보이지 않는 위험인데, 이것을 드러내 주기 위해서는 문화상품의 X-ray나 MRI 사진을 찍어야 한다. 이 시대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문화상품의 심층과 본질을 연구하고 공개해서 이런 위험을 정확하게 인식시켜 주는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연구가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교회 안팎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성직자 수도자들이 먼저 깨어나야 할 필요가 있다. 가톨릭 계열 대학 등의 교회 연구 기관도 신학과 철학, 생명 윤리만이 아니라,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확산되는 죽음의 문화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시대적 사명으로 인식해야 한다. 교회의 각성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② 한국의 주류 대중문화는 왜 포르노그래피를 모방하나?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세계 1위 국가가 대한민국이다. 가정집 안방까지 초고속 인터넷이 깊숙하게 들어와 있는 나라는 우리 나라밖에 없다고 한다. 이 말은 포르노그래피가 초고속으로 유포될 최적의 조건을 대한민국이 갖추었음을 의미한다. 우리 나라는 전세계에서 만들어진 포르노그래피가 한 나라에 모여서 컴퓨터 파일 형태로 변환되어서, 빛의 속도로 유통되는 전세계 유일 국가다. 그 결과, 일인당 포르노 소비량 세계 1위 국가가 우리 대한민국이다.

  또한 우리 나라는 해외 음란물 제작 업자가 저작권 침해당했다며, 네티즌을 고발하는 전세계 유일 국가이기도 하다(2009년).7) 우리 나라 일반 대중들은 물론이고, 어린이와 청소년들까지 포르노그래피를 너무도 쉽게 접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대중의 잠재적 욕망이 포르노그래피를 통해서 무의식 차원에서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문화상품 제작자들은 대중의 욕망을 기민하게 읽고, 포르노그래피 서브 컬처 코드를 사용해서 상업적 이익을 취하고 있다. 특히 대중가요 시장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노래와 그 뮤직비디오의 상당수는 이런 포르노적 자극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세상의 문화 현상이 우리 가톨릭 교회 안에도 깊숙하게 들어와 있는 것이 현실이다.

2.2. 대중문화와 본당 청소년 사목

  성탄이나 여름 캠프 때 성당 주일학교 행사에 가보면, 주일학교에서 ‘다윗과 골리앗’, ‘아기 예수 님과 동방박사’가 나오는 성극이 사라진지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가 경연대회도 주일학교에서 거의 사라졌는데, 이 또한 전국적인 현상이다.

  그렇다면 그 빈자리를 무엇이 채웠을까? 인기 연예인들의 선정적인 춤과 노래가 하느님이 계셔야 할 그 자리를 고스란히 꿰찼다. 지난 여름부터 성탄까지 전국의 성당에서는 세계적으로 대유행했던 춤과 노래를 집단적으로 따라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인기 있는 것을 교회 안에서 활용하는 것이 뭐가 문제가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도 그 내용과 가치를 먼저 잘 살펴야 한다.

  논어 위령공 편에서 공자님은 ‘중오지필찰언, 중호지필찰언(衆惡之必察焉, 衆好之必察焉) 많은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해도 그것을 반드시 잘 살펴야 하고, 많은 사람이 좋아한다고 해도 그것을 반드시 잘 살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노래에서는 낮에는 얌전하고 점잖지만, 밤이 오면 완전히 180도 달라지는 남녀가 나온다. 강남의 밤이라는 욕망의 시간이 오면, 여자는 심장이 뜨거워지고, 남자는 심장이 터져버린다고 한다. 여자는 ‘정숙해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여자, 이때다 싶으면 묶었던 머리 푸는 여자, 가렸지만 웬만한 노출보다 야한 여자, 그런 감각적인 여자’이고, 남자는 ‘점잖아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사나이, 때가 되면 완전 미쳐버리는 사나이,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이다. 그리고 이 두 남녀는 뮤직 비디오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만난다. 아래가 그 만남의 장면이다.

  20대 초반 아이돌 여가수가 지하철에서 봉춤을 추는데, 그 머리 바로 옆에 69라는 숫자가 보인다. 69는 포르노그래피 서브컬처 코드 중의 하나로, 우리나라 중학생들도 다 아는 기호이며, 특정 기획사에서는 이 기호를 대중에게 자주 노출시키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 뮤직 비디오 등 영상물의 카메라 앵글 안에 들어오는 물건이나 배경 중에는 우연히 그 놓이는 것은 없다. 뮤직 비디오 한 편에도 수억 원이 투자되기 때문에 상업적 영상물들은 전문가들이 상당히 정교하게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다. 화면 안에 잡히는 것들은 모두 특정 목적이 있는 소품으로 보는 것이 상식이다.8)

  이 69라는 기호 아래에서 여가수는 스트립 댄서가 추는 봉춤을 추고, 곧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지하철 플랫폼에서 남자 가수와 무언가에 홀린 듯한 표정으로 만나는 장면이 연출된다. 이 때 신나고 흥겹게 나오는 가사가 ‘지금부터 갈 데까지 가볼까?’이다. 위와 같은 맥락이라면 ‘지금부터 갈 데까지 가볼까?’는 무슨 의미일까? 지하철 플랫폼에서 만났으니까 지하철 타고 종점까지 가보자는 의미일까?

  의미는 맥락에 의해서 결정되어 무의식에 각인된다. 성경에서 ‘기름을 바른다’는 의미는 거룩하게 성별하여 왕으로 세운다는 뜻이다. 다른 부가적인 설명 없이도 성경의 맥락에서는 이 의미로 통용된다. 우리나라 문화권에서 ‘된장 바른다’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의미의 맥락 결정성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강남스타일은 섹스를 가볍고 장난스럽게 대하고 싶어하는 대중의 무의식적 욕망을 B급 정서로 재미있게 표현해 놓았고, 이런 내용적 요소가 강남스타일 대유행에 일조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 원나잇 스탠드가 이루어지는 클럽에서 강남스타일이 얼마나 많이 열창되었는지 그리고 강남스타일 코드에 맞춰서 싸이가 출연한 화장품 광고(작업편, 클럽편, 모텔편)를 본다면, 강남스타일의 심층 주제가 쾌락적 일회적 섹스에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9)

  그런데 이 뮤직비디오는 우리 사회에서 수없이 모방되었고, 모방 동영상 ‘성당스타일’이 나온 이후에 전국 성당에서 2차적 모방 동영상이 제작되었다. 모방자들 역시 원판 뮤비의 클라이막스 부분을 가장 정성을 들여서 모방했다. 뮤비의 주제 의식이 어디에서 가장 강하게 집약되어 표출되어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처럼 포르노와 결합되어 있는 쾌락주의적 가치관은 문화상품을 통해서 재미있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스며들어왔고, 심지어 이것이 교회 공동체 안에까지 너무도 깊숙하게 들어와 있다. 은근슬쩍 들어와 있는 수준이 아니라,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포르노에 대한 공식 입장을 가톨릭 교회 교리서 2354항에 명확하게 표현해 놓았다.

  포르노는 일부러 제삼자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사생활의 성행위를 실제로 또는 모방하여 옮겨 놓은 것이다. 상대방에게 은밀하게 자기를 선물로 내어주는 부부 행위를 왜곡하므로, 포르노는 정결을 모독하는 것이다. 또한 포르노는 이와 관계된 모든 사람들(배우, 상인, 대중)의 품위를 크게 해친다. 이들 각자가 다른 사람에게 원초적 쾌락과 불의한 이익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포르노는 이에 관련되는 모든 사람을 가상적인 환상의 세계에 빠지게 한다. 이것은 중죄다. 당국은 포르노물의 제작과 배포를 막아야 한다.

  포르노는 정결을 모독할 뿐 아니라, 성관계와 강간까지도 오락이나 게임처럼 표현해 놓았기 때문에 여성의 존엄을 무시하고, 그것을 즐기는 사람으로 하여금 궁극적으로는 생명을 공격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포르노를 중죄로 규정한 것이고, 그 제작과 배포를 당국이 막아야 한다고 교리서에 명확히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포르노그래피와 결합되어 있는 위와 같은 문화상품을 면밀한 식별의 과정 없이 재미있다는 이유와 청소년들이 좋아해서 그들을 많이 모을 수 있다는 이유로 교회 안에서 활용하는 것은 가톨릭 교회의 가치와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선택이다. 이런 문화상품을 교회가 적극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이것은 마치 원나잇 스탠드로 대표되는 쾌락과 욕망의 삶을 교회가 승인한 것과 같은 무의식적 오해를 청소년들에게 심어줄 수도 있다.

  오히려 가톨릭 교회의 사목은 세상의 이런 문화상품의 내용과 본질을 청소년들에게 정확하게 짚어주는 교육 활동이 되어야 한다. 욕의 내용을 알려 준 이후에 청소년들의 심각한 욕설 사용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보고가 있는 것처럼, 문화상품 속에 담긴 내용이 이러하다는 것만 알려줘도 상당수의 청소년들이 덮어놓고 그 문화상품을 따라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상품 제작자들은 늘상 ‘청소년들은 바보가 아니다. 청소년이 스스로 보고 판단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청소년들의 주체적 발달을 존중하고 옹호하는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성적 자극으로 충만한 문화상품을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일방적으로 접하며 성장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스스로 식별력을 가지기는 사실상 어렵다.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로마서 10:14)

사도 바울로의 이 말씀을 미디어 시대에 교회는 더 깊게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다. 교회는 선으로 포장되어 있는 악의 껍질을 벗기고, 문화상품이 인도하는 길로 가면 궁극적으로 어디에 도달하게 되는지를 분명히 청소년들에게 알려 줘야 한다. 이것은 매스미디어 시대에 교회가 어린이와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해야 할 최소한의 역할이다.

2.3. 미디어 변화와 가톨릭 교회의 충격

  ① 영상 세대의 특성과 성소의 급감

  영상 세대는 지금까지 살펴본 문화적 환경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과연 어떤 삶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을까?

  ‘현대세계에서 커뮤니케이션 매체는 젊은이들과 어린이들에게 가정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것은 특히 성교육 분야에도 개입하여 그들에게 지속적인 지식과 훈련을 제공하고 있다. 세계는 매체에 매료되어 무방비 상태에 있기 때문에 어른과 어린이들도 자연히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들에게 제공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받아들이게 된 상태이다. 그들은 작은 화면에 도취되어 거기에서 나오는 모든 몸동작을 모방하게 되고, 거기에서 나오는 감정과 느낌들을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앞서서 더 잘 감지하게 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제 13차 세계홍보주일 담화 1979. 5.23.)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지적처럼, 현대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영상매체를 통해서 암묵적인 성교육을 받고, 또 거기서 나오는 몸동작을 모방하고 또 거기서 나오는 감정과 느낌을 기성 세대보다 훨씬 더 잘 감지하면서 성장하고 있다.

  이런 문화적 세례를 받은 세대는 이전 세대와는 전혀 다른 특성을 보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단순한 세대차가 아니라, 거시적 차원의 문화 변동이 촉발시킨 구조적 변화이다. 상업적 영상물에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에서 성장한 세대는 성관계를 게임처럼 여기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성관계라는 문턱을 상당히 쉽게 넘는다. 따라서 이들이 만들어내는 문제도 거시적 차원의 사회 혼동을 초래하고있고, 다양한 차원에서의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대한민국에는 청춘남녀들이 집단으로 모텔에 몰려가는 특정 날이 존재한다.(크리스마스, 발렌타인데이, 화이트 데이, 성년의 날 등등) 성관계를 환상적으로 포장한 문화상품이 그저 노래와 드라마 수준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매체가 만들어낸 환상이 현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남녀가 집단으로 성관계를 가지는 날이 있다면, 산부인과에 임신 확인을 위해서 젊은 여성들이 집단으로 몰려가는 날이 있을까 없을까? 당연히 있다. 누가 대자연의 순리를 벗어나서 살 수 있겠는가?

  이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명백한 죽음의 문화다. 화려하고 재미있게 포장되어 있다고해서 내용과 본질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모텔을 이용하기 어려운 청소년들은 비디오방과 노래방에이어 멀티방을 성관계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멀티방은 침대, 샤워시설, 컴퓨터 등이 다 갖추어진 그 방으로, 법적 규제가 없기 때문에 청소년들의 출입을 막을 방법이 없다. 성관계를 시작한 청소년들의 섹스 수요를 수익모델화한 기형적 산업으로 생각된다.

  성관계를 게임처럼 여기고 그 문턱을 이렇게 쉽게 넘는 이 세대는 자기들의 성관계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하여 인터넷에 올리고 있고, ‘셀프 포르노’라 불리는 영상물이 대량으로 유통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남녀가 서로 합의하에 동영상을 촬영하지만, 연애가 깨지고 나면 대체로 남자가 인터넷에 유포한다. 이별 통보에 대한 앙갚음으로 여자의 실명과 주소 전화번호까지 공개되는 경우가 많다.

  전문 포르노 배우가 아닌 자기 나이 또래의 청소년과 청년들이 찍은 성관계 동영상을 보게 되면, 특히 남자의 경우는 무의식 차원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까? ‘내 또래의 다른 남자들은 여자 친구 사귀어서 성관계까지 하는데 나는 뭔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연애를 시작하면 여자 친구에게 성관계를 강요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 청소년과 청년들의 연애를 성관계 중심으로 만들어 놓은 수면 밑의 강력한 하위 문화인데, 아직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셀프 포르노가 잘못된 것이며 이런 악영향 하에 젊은이들의 사랑과 연애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성교육이 거의 없다.10) 주류 성교육은 대체로 거대 제약회사의 후원을 받는 콘돔교육과 피임약 교육일 뿐이다. 세상에서 진리와 생명을 수호해야 하는 가톨릭 교회의 역할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부분이다.

  이런 문화적 환경으로 인해서, 청소년들의 첫 성관계 경험 연령도 급격하게 낮아졌다. 2006년 성행태 조사에서는 14.2세로 조사되었고, 2010년에는 13.6세로 조사되었다. 또한 청소년들의 임신과 출산 건수도 최근 10년 들어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여대생 열 명 중 두 명이나 임신 경험이 있다는 통계조사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10대 남자 청소년들이 저지르고 있는 집단성폭행 사건 뉴스를 접하는 것도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이런 병리적 현상은 다양한 사회경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지만, 문화적 측면만을 검토해 보면 상업적 미디어가 인간의 성이 가지는 본래적 의미를 왜곡시켜서 청소년들에게 직접 주입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확인한 것처럼, 대중문화와 포르노그래피 등으로 대표되는 상업적 영상물이 보여주는 세계는 매우 화려하고 매혹적이지만, 결국에는 구성원 모두를 파멸로 가게 하는 죽음의 문화이다. 이런 문화적 환경에서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인 성소(聖召)는 어떤 변화를 겪고 있을까?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지속적이면서도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90년부터 2012년까지 수녀 지원자 수가 대략 1/4 수준으로 급감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천주교 신자는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조사되었다.(2008년 한국 천주교회 통계-주교회의)

  그리고 2005년에 인구주택센서스 결과를 토대로 국가에서 조사한 천주교 신자수는 가톨릭 교회가 조사한 것보다 더 많다. 신자수는 증가하는데 오히려 성소자수는 급감하고 있다는 기현상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한국 가톨릭 교회의 양적 성장이 결코 건강한 성장이 아닐 수 있다는 방증이다. 특히, 90년도를 전후하여 태어난 세대가 스무살이 되는 시점부터 급격하게 수녀 성소가 감소하는데, 이는 대한민국에서 영상매체가 폭발적으로 발달하는 시점과 대체로 일치한다.

  한국 사회에서 영상매체가 폭발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어려서부터 대중문화와 포르노그래피에 일상적으로 노출되면서, 지속적으로 왜곡된 가치관을 무의식에 내면화해왔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섹스=게임’이라는 가치관을 무의식에 깊게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이전 세대에 비해서 성관계라는 문턱을 상당히 쉽게 넘는다. 미디어 변화로 인해서 이전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세대가 출현한 것이다.

  이런 세대적 특성을 가진 개인들이 화려한 영상문화 속에서만 살게 되면, 하느님의 부르심이 마음 속에 있다 해도 그것을 감지해 내기가 쉽지 않다. 마음 속의 거룩한 지향도 외부에서 들어오는 선한 자극이 있어야 비로소 인식되고 계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세대에서는 성소자가 급감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실제로도 그러한 경향성이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미래와 그 사회에서의 정신 생활의 안정은 주로 각종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힘과 그것에 대한 개인의 대응능력이 어떻게 균형을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교황 비오 12세께서 1950년에, 나치 독일이 매스미디어를 이용한 대대적인 선전 활동을 통해 독일 국민을 휘어잡고 유럽 전역에 저지는 만행을 경험하시고 나서 하신 말씀이다. 60여년이 지난 현시대에 미디어는 훨씬 더 막강해지고 훨씬 더 정교해졌다. 인간이 미디어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수동적 존재는 결코 아니지만, 미디어를 절대 과소평가해서도 안 된다.

② 미디어와 가톨릭 교회 그리고 성소(聖召)

  미디어를 통해서 확산되는 쾌락중심적 대중문화가 지난 10년 동안 가톨릭 교회에 미친 영향 중 대표적인 것이 성소 급감이다. 필자는 미디어와 성교육 연구를 하면서, 쾌락주의적 가치관을 문화상품에 녹여서 당의정처럼 만들어서 퍼뜨리는 영상 미디어의 직격탄을 가장 심하게 맞은 곳이 가톨릭 교회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성소자 급감이다. 올해 2013년 서울교구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필자의 동생이 7년 동안 예비 신학교를 담당하면서 체험했던 성소자 변화를 간략하게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신학생 3-4학년 때까지는 우리는 접수대에서 가만히 앉아서 성소 문의하는 젊은이들을 면담하고 선별하는 일이 주업무였는데, 6학년과 부제반 때 우리가 뭐하나 생각해 봤더니, 우리가 신학교 학교 설명회를 하고 있더라. 이전에는 성소 문의하는 친구들을 돌려보냈다면 이제는 우리가 찾아다니는 상황이 되었다.’

  초등학생 70%의 장래 희망이 연예인이다. 어린 아이들이 더 이상 책을 읽지 않고, TV가 보여주는 화려한 쇼비지니스 세계에 빠져서 살고 있다는 뜻이다. 세상에는 책을 읽어야만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거룩한 세계가 있는데, 이 시대의 상업적 오락물은 그 거룩함으로 통하는 길을 원천봉쇄해놓은 것이다. 예수님은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시대에는 어린이들이 예수님께로 가는 길이 심각하게 막혀 있다.

  침투력 강한 매스미디어가 아이들에게 쾌락과 욕망을 먼저 주입한다. 접근성과 침투력이 뛰어난 미디어가 아이들에 밀착되어 있다. 부모, 사제, 수도자보다 속도위반하고 결혼한다고 장난스럽게 이야기하는 연예인이 아이들과 더 가깝게 있다는 뜻이다. 선악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 전에, 악이 먼저 재미있게 마음에 들어와 자리를 잡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교회는 무슨 일을 제일 먼저 해야 할까?

3. 회복의 대안

3.1. 교회 내적 대처 방안

① 식별력 교육

  왜곡된 것을 진실인 양 주입하는 시스템이 있고 그것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우선은 진실처럼 포장되어 있는 거짓을 거짓이라고 인식시켜 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는 컴퓨터가 주입해주는 환상을 실제라고 착각하고 살다가, 어느날 모피어스를 만나면서 평생을 속아서 살아왔음을 깨닫고, 진실의 세계로 들어가기로 결정한다. 그날 이후 네오는 환상을 주입하여 사람들을 통제하는 시스템인 매트릭스에 저항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그 삶에 필요한 훈련을 모피어스로부터 받는다. 필자는 가톨릭 교회가 모피어스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교회는 거대 상업 자본이 움직이는 미디어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말해서 대중문화와 포르노그래피가 보여주는 성과 사랑과 연애는 새빨간 거짓말임을 청소년들에게 분명히 알려 주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성적 자극이 넘쳐나는 대중문화, 세계 1위로 소비하는 포르노그래피, 통상적 연애 관계 안에 포함되는 성관계, 그리고 그 결과 이어지는 임신과 낙태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죽음의 문화라 불리는 하나의 실체임을 교회가 명확하게 선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교회는 이 넷 중 어느 것 하나에도 우리 청소년들이 발을 들여놓지 않게끔 하는 예방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미디어 학자들은 이런 교육을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교육이라고 명명했다. 미디어가 보여주는 세계는 실제 세계가 아니라, 제작자나 투자자의 의도 목적 가치관에 의해서 재구성된 가상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걸러서 보거나 세계의 실제 모습을 정확히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야함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서는 강조한다.11) 필자가 연구하여 개발한 교육 내용을 강의를 통해 전달받은 대학생들에게서 아래와 같은 보고서를 적지 않게 받았다.

<교육후 받은 보고서>

  사실 교수님 강의는 성교육이라기보다 인생에 대해, 내 미래에 대해 현명하게 행동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운 것 같다. 성적인 문화에 대해 머리로는 안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허용하고 있지는 않았나 생각한 계기가 되었다. 좀 더 신중하게 들을 수 있던 건 아마 지금 우리 또래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내 나름대로 이러한 부분에서는 보수적이며, 현명한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는데, 참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단짝 친구가 미국에 가서 첫 경험한 얘기를 들었을 때는 솔직히 너무 충격이었고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멀지않은 내 얘기구나.. 그런 느낌이 들었는데 아마 남자 친구가 있어서라고 생각한다..난 그렇게 쉽게 하지 말아야지.하고 생각했지만, 확고한 신념이나 그런 것은 아니어서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다. 며칠을 후회하고 불안해했는데, 그것도 한 번이지 나중엔 그런 느낌마저 없었다. 다들 이런 식으로 만나고, 사귀니깐 나만 혼자 이렇게 사는 것은 아니구나 생각이 들었고, 결정적으로 정말 친한 친구 몇 명이 같은 상황이어서 그런지 차라리 맘이 놓였다.
  그런데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졌다. 한 달에 한 번씩 불안해하고, 혹시나 생리가 늦는 경우에는 그 며칠을 죄책감에 시달리고 불안해하며 지내고…. 그렇게 1년을 넘게 지낸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하다고 느껴졌다. 또한 내가 남자 친구와의 미래에 대한 계획이 없기 때문에 더 죄책감을 느꼈다.
  그런 찰나에 교수님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정말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아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했었다. 지금 내 상태 같은 여자들은 공감하겠지만 항상 생리 때문에 불안해하고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진짜 임신되면 어떡하지, 낙태해야하는데 부모님이 모를 수 있을까, 수술비는 어떻게 마련하며 후에 몸 관리를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에 부담됐다. 또 부모님이 워낙 보수적이고, 유난히 나에게 기대가 크고 보호하면서 키우셨기 때문에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길지 아찔했다.
  그런데 내가 이런 상태까지 온 것이, 관계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게 된 것이 문화의 영향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소녀시대나 G드래곤을 보면서 선정적이다, 너무 노골적이다, 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들의 손짓하나 눈빛 하나에도 제작자의 계산이 숨어 있고 그것이 우리의 의식에 파고들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라 소름이 끼쳤다. 또 이런 문화의 영향 때문에 사람들의 사랑 방식이 모두
같은 것이라고는….
  그렇기 때문에 이런 외부의 영향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선한 가치를 내면화해야 한다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문화를 바꾸기가 어렵다면 먼저 자신이 문화를 걸러 볼 줄 아는 눈을 가져야 한다. 가장 근본적인 예방책이라고 생각한다. 선한 가치는 자신의 몸을 좀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 될 수도 있겠고, 선과 악을 구분해 낼 수 있는 분별력이며, 아니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환경으로부터 휘둘리지 않는 마음일 수도 있겠다.

  우리의 청소년과 청년들이 성관계라는 문턱을 쉽게 넘고, 인간 초기 생명을 죽이기 일보직전까지 갔지만, 선한 가치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면 곧바로 그 길을 돌이켜서 생명의 길로 돌아서는 모습을 필자는 강의와 면담을 통해서 수없이 확인했다. 지적 수준이 높은 대학생들만 이런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살레시오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특수 대안학교에 위탁되어 있는, 수많은 성범죄를 저질렀던 남자 고등학생은 필자의 강의를 듣고 아래와 같은 한 줄의 소감을 써냈다고 한다.

  다시는 그 짓을 하지 말아야겠다.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 이전에 선처럼 포장된 악이 문화를 통해서 들어오는데, 그것이 악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는 가르침이 학교에도 교회에도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들을 수 없다.’(로마서 10:14)는 바울로 사도의 말씀을 교회가 잘 되새겨서, 이제부터라도 식별력 중심의 성교육과 가치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미디어 시대의 성교육은 가톨릭 교회와 그 연구 기관이 현 시대에 제공해야 할 새로운 구원의 사도직이며, 하느님과 세상을 화해시키고 어린이와 청소년을 보호할 수 있는 길이다. 세상을 현실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거대 자본과의 마찰과 불화를 피할 수 없는 길이기 때문에 그 여정이 십자가 지는 길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그래도 교회가 선포하면 그 십자가의 길에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걸어들어올 많은 부르심 받은 이들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② 가톨릭 교회의 미디어 대응

  역사적으로 보면 가톨릭 교회는 미디어 변화에 매우 큰 영향을 받아왔다. 중세 말기 활판인쇄술이라는 당시의 뉴미디어는 가톨릭 교회가 세상에 대해서 가지고 있었던 외적 권위를 크게 무너뜨렸다. 활판인쇄술 이전에 이미 교회의 부패라는 문제가 있었지만, 종교혁명과 과학혁명의 견인차 역할을 하면서 그때까지 가톨릭 교회가 가지고 있던 권력을 약화시키는 데 활판인쇄술이 큰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이러한 미디어 변화와 사회 변화에 교회가 대응하기 시작한 것은 수백 년이 지난 후 2차 공의회에 와서의 일이다.

  현대 21세기에도 미디어에는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중세에는 활판인쇄술이 교회의 외적 권위를 무너뜨렸다면, 거대자본이 움직이는 현대의 영상미디어는 교회의 가르침이라는 교회의 내적 권위와 사회의 도덕적 기반을 심각한 수준으로 붕괴시키고 있다. 교회 젊은이들의 상당수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아름다운 성이나 정결 등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그 말을 귓등으로도 들으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교회가 너무 보수적이니 교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가요, 뮤직비디오, 영화, 드라마 등의 문화상품을 일용할 양식으로 섭취하면서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쾌락중심적 가치관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관절과 골수에 박아넣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젊은이들을 많이 모을 수 있다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쾌락주의적 대중문화를 사목의 한 방법으로 수용하게 되면, 결국에는 교회가 스스로 무덤을 파는 형국이 된다. 침투력 강한 영상 미디어의 새로운 도전에 적절하고도 유효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교회는 성소자 급감을 경험하고 있는 지금보다 더 많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잃게 될 가능성이 있다. 60-70년대 쾌락주의와 자유주의 물결이 휩쓸고 간 유럽의 교회처럼 노령화될 가능성도 높다.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변화를 빠르게 진행시키는 사회다. 유럽이 200-300년 걸렸던 근대화를 수많은 부작용과 함께 30년 만에 해치우는 나라가 대한민국임을 생각하면, 한국 교회는 유럽 교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노령화의 길을 갈 수도 있다. 미디어 변화에 대한 교회의 능동적 대응이 절실하게 요청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연구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③ 교회의 교육 투자

  그러므로 교회는 지금 이 시점에서 침투력 강한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는 죽음의 문화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 각 교구마다 진행 중 혹은 진행 예정인 생명학교는 대체로 50-60대 성인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고, 한 분야에 대한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강의를 듣고 양성 받는 과정이 아니라, 생명 윤리부터 미디어 성교육과 호스피스까지 개괄식으로만 훑고 지나가기 때문에 생명학교를 통해서는 교회 청소년들에게 성교육과 생명교육을 시킬 수 있는 전문 교사를 양성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선 시급한 것은 미디어 문화론적 성교육이다. 상업적 영상물이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성의식과 윤리관을 왜곡시켜 놓기 때문에, 가치관 왜곡이 시작되는 그 지점에 우선적으로 교육 역량을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자유주의와 쾌락주의로 인해 일단 가치관이 왜곡된 상태에서는 젊은이들이 교회가 전통적으로 가르치는 내용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상업적 미디어에 의해서 배운다는 의식 없이 왜곡된 성을 배워왔다는 사실을 젊은이들에게 깨닫게 해주면, 기존의 사고에 균열이 생기면서 교회의 가르침이 들어갈 여지가 생긴다. 정결이나 혼인의 중요성과 같은 교회의 가르침은 그때 가르쳐야 저항감 없이 깊은 의미를 깨달으며 젊은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팔자의 연구 내용을 교리교사 양성이나 사제 수도자 양성에 체계적으로 결합시켜서, 필자처럼 강론하고 강의할 수 있는 사제 수도자 평신도 교리교사를 많이 양성해야 한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는 필자의 연구 내용이 어린이 청소년 교리교육으로 흘러들어가야 한다. 교회의 과감한 투자와 교육 재조정이 필요한 부분이다.

  지금까지 필자는 개인 자격으로 활동하면서 필자를 초대해주는 곳에 가서 1회 특강을 해왔다. 이런 행사성 강의만으로는 필자처럼 연구하고 강의할 수 있는 제자를 양성할 수 없다. 앞으로는 전국 교구의 청소년국 연구원이나 대표 교리 교사 등이 필자에게 와서 최소 10주 정도의 교육을 받고, 각 교구로 흩어져서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교회가 공식적인 연구와 교육의 터전을 마련해준다면, 그 과정이 체계화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연구가 상당 부분 진척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알을 낳고 새끼를 칠 수 있게 해주는 둥지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주님 당신 제단 곁에 참새도 집을 짓고, 제비도 둥지를 틀어 거기에서 새끼를 치나이다.”(시편84:4)

  ‘한 줄일까 두 줄일까 수능보다 더 떨렸다. 임신일까 조마조마했던 기억은 잊어라.’

  몇 년전 서울시의 버스 외벽을 도배했던 피임약 광고 카피다. 왜 피임약 광고가 이런 문구로 이루어진 것일까? 피임약 업계의 철저한 시장 조사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 수능 마치고 성관계를 시작하는 청소년과 대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자, 이들을 겨냥해서 만든 광고인 것이다.12) 필자는 여대생들에게 이 카피를 보여주고 자유토의를 시켰는데, 자신들의 속마음을 잘 후벼파낸 광고라고 말하며, 다음부터 약국 가서 ‘피임약 주세요.’가 아니라, ‘0000주세요.’ 할 것 같다는 솔직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죽음의 문화는 거대 미디어 자본만이 아니라, 거대 제약 자본도 그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피임 시장은 한 해 400억 정도의 규모로 알려져 있는데, 쾌락중심적 성문화 때문에 갈수록 그 규모가 커지고 있다고 한다. 광고비 3억에서 5억 투자해서 특정 피임약이 시장 점유율을 높이면, 투자금 이상의 수익이 보장되는 것이다.

  필자는 서울 시내를 달리는 수많은 피임약 광고 버스를 보면서, 자본의 섬세한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제약 회사에서는 직접 성교육 강사를 양성파견하거나, 학교 성교육이 피임 교육 위주로 편성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광대한 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다.13) 저출산으로 총인구가 줄어들고 있고, 가임기 여성의 수도 적어지고 있기 때문에 제약 업계는 여중생 때부터 피임약을 먹이겠다는 시장 확대 전략을 가지고, 결코 적지 않는 돈을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가톨릭 교회의 성교육 생명 교육 투자는 0에 가까울 정도로 미미하다. 생명의 문화는 결코 구호만으로 건설될 수 없다. 청소년과 그들의 문화에 대해서 치밀하게 연구하면서 그들을 노리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보다 수백보 앞서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연구 기관을 통해서 하느님의 섬세한 사랑의 손길이 우리 청소년들에게 미치게 하려면, 교회의 과감하고도 실질적인 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코린토1 3:6)

④ 사제 수도자 성교육의 필요성

  공식적인 학교 성교육의 경우는 대부분 콘돔과 피임약으로 대표되는 피임교육이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학교 성교육을 통해서 ‘성-생명-사랑’이 온전히 하나라는 의식을 가지는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일선 본당에서 청소년 사목을 실질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사제와 수도자들이 필자가 연구하는 미디어 문화론적 성교육과 몸의 신학 등의 핵심 내용을 숙지하여, 청소년들에게 가르쳐야만한다. 실제로 본당에서 주일학교 교사와 중고등부 학생들 사이의 성관계 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몇몇 경우에는 임신의 문제까지 드러난 바 있다. 일선 실무자들끼리만 알고 있는 비밀로 더 이상 쉬쉬 할 일이 아니다. 예방 교육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사제와 수도자들에게 미디어 문화론적 성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단지 위와 같은 성문제 때문만이 아니다. 통상적인 연애 관계 안에 성관계가 빠르면 중학생 때부터 대체로 포함되어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연애를 하다가 큰 상처를 입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 큰 아픔 때문에 큰 위로가 필요한 젊은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성소자가 되어 특히 수녀회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크게 회개를 하여 수도 성소를 확신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들 중 적지 않은 수는 위로가 필요하여 수녀회 성소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소 담당 소임을 맡은 수도자일수록 이런 아픔을 겪은 젊은이들을 만나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청소년과 청년들의 미디어 문화와 그들의 심리적 특성을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다. 그들이 수도회의 성소자가 아닐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도 상처 입은 이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미디어 시대의 성교육은 사제와 수도자들의 거룩한 봉헌 생활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상업적 자본주의가 상품 판매를 위해서 침투력 강한 미디어를 통해서 매우 강한 성적 자극을 전국민에게 주입하고 있는 시대이다. 따라서 지금은 전국민이 미디어의 영향 때문에 성적으로 과도하게 흥분된 상태에서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결 서원을 하는 사제와 수도자의 생활이 거시적 관점에서 상당히 위협받고 있다는 뜻이다. 100년 전과 비교해서 지금은 정결 서원을 하고 사제 생활과 수도 생활을 하기가 무척 어려워진 시대이다.14)

  유럽이나 미국의 가톨릭 교회가 최근에 스캔들로 인해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 사실이 현지 교구장 주교님과 교황님께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이런 문제는 근본적으로 예방 교육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 가톨릭 교회는 유럽과 미국 교회의 어려움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서 선제적 예방 교육에 힘을 써야 할 필요가 있다.

⑤ 서울교구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과 한류대학원의 역할

  가톨릭 대학교 생명대학원은 2004-2005년 즈음에 대한민국을 들끓게 했던 황우석 사태에 대한 교회의 깊은 반성과 고민의 열매로 시작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교과 과정이라든가 연구 영역에서 생명윤리 분야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생명 문화학 전공이 있기는 하지만,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확산되는 죽음의 문화에 대해서는 아직 깊은 연구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죽음의 문화가 줄기 세포와 안락사 등으로 대표되는 의료의 영역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매스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는 죽음의 문화에 대해서 이제는 가톨릭 교회와 생명대학원이 황우석 사태 때에 경험했던 충격의 깊이만큼 절실하게 고민하고 반성해야만 한다. 생명대학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미디어를 통해서 사람들의 무의식에 각인되는 죽음의 문화를 연구하고 대안을 제시하여, 주일학교 교리교육이라든가 사제 양성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실제적인 연구 결과물을 산출해낼 수 있어야 한다. 생명대학원으로 대표되는 교회 연구 기관의 연구 주제가 신학 철학과 생명윤리만이 아니라, 문화 전반으로 확장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시대적 요청이다.

  가톨릭대학교에는 2012년 가을에 한류대학원이 신설되었다. 가톨릭 교회는 한류 대학원이 교회 기관 안에 들어와서 구체적으로 무슨 연구를 하는지 살피고, 교회 정신과 부합하는 보편적 가치를 세상에 널리 펴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대장금’과 ‘허준’으로 시작된 초기 한류는 드라마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한국적의 전통 요소들과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진실과 신의 등을 결합시킨 작품성 있는 문화상품이고,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이 두 드라마는 해외에서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한류는 SM, YG, JYP 등으로 대표되는 기획사가 주도하는 K-pop 문화상품이다. 드라마 중심의 초기 한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망각된 선한 가치를 발굴하여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내용이었지만, 현재의 K-pop 중심의 한류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성적 자극으로 충만해 있다. 현재의 한국 드라마도 막장 드라마라고 불릴 정도로 그 내용 상의 문제가 많다.

  한류대학원이 문화상품에 내재되어 있는 내용과 가치를 식별하지 않고, 당초 발표한 계획대로 K-pop과 K-drama의 비즈니스 모델만을 개발하려고 한다면, 교회 기관이 교회 정신에 어긋나는 일을 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가톨릭 대학교 한류 대학원은 한류가 가치 중심적인 한류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교회 기관이 되어야 한다.

3.2. 교회의 대사회적 대처 방안

① 예언자적 경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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