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쥬고리예 발현 목격자 비츠카와의 인터뷰)

우리가 비츠카를 만난 날은 비츠카의 생일이었다. 그녀는 명랑하게 웃으면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녀는 특별한 날이라고 해서 하느님의 어머니와의 만남에 대해 들으려고 찾아오는 순례자들을 거절하진 않았다.

Q. 비츠카,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벌써 23년째 이 땅을 방문하시어 우리에게 많은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많은 순례자들은 ‘청하는’ 데 그칩니다. 그들은 “그러면 너는 나에게 무엇을 주겠느냐?” 라고 하신 마리아의 질문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A.. 사람들은 언제나 무엇인가를 찾고 있습니다. 우리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에게 순수하고 성실한 사랑을 청할 때, 그분은 그러한 사랑을 주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분도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가 큰 은총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사람들이 초대받은 것은 그저 청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감사와 또 무엇인가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얼마나 많은 기쁨이 주는 데 있는지를 우리는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어머니께 나 자신을 봉헌하면서(그분이 그것을 바라셨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 청할 때, 나는 마음 속에서 특별한 기쁨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마리아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당신이 무엇인가를 드리거나 무엇인가를 받을 때, 마리아는 기뻐하십니다.
사람은 기도해야 하고, 그 기도를 통해 자신을 봉헌해야 합니다. 나머지 모든 것은 적절한 때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Q. 그렇지만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은 해결책과 치료법을 구합니다.

A.. 하느님의 어머니는 하느님께서 질병이나 가난이나 고난 등등의 십자가를 주실 때, 그것을 큰 선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그것을 주시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또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걷어갈 때를 아십니다. 하느님은 오로지 우리가 인내하기만을 원하십니다. 성모님은 이 문제에 대해, “십자가의 선물이 너희에게 내릴 때, 너희는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너희는 언제나 ‘다른 사람이 아니라 왜 하필 나한테?’ 라고 묻는다. 그러나 너희가 감사를 드리고, ‘주님 이 선물을 달게 받겠나이다. 당신께서 제게 무엇을 주시더라도 저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나이다. 하오나 청하오니 인내와 사랑으로 제 십자가를 질 수 있도록 힘을 주소서.’ 라고 기도하기 시작할 때, 너희안에 평화가 찾아들 것이다. 너희의 수난이 하느님 보시기에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너희는 상상할 수도 없으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는 모든 이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들에게 우리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삶과 모범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할 수 있습니다.

Q. 사람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도덕적, 정신적 고통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서 올해 당신이 성모님께 배운 것은 무엇입니까?

A.. 나는 내가 개인적으로 몹시 행복하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면 내 안에서 기쁨과 아주 깊은 평화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그것은 내게 달려 있습니다. 왜냐면 내가 행복하길 원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나를 그렇게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 하느님의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마리아는 우리에게 단순함과 겸손과 순종을 원하십니다. … 가능한 한 나는 온 마음을 다해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내게 주시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려고 노력합니다.

Q. 당신은 성모님께서 당신에게 천국을 보여주었다는 증거의 말을 전할 때 당신과 함께 ‘거닐듯’ 다녔다고 자주 말합니다. 나는 그러한 ‘통과’가 우리 영혼 안에서도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봉헌하고 고통 속에 머물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A.. 물론입니다! 사람들은 이 지상에서 이미 하늘나라를 겪는다고, 또 나중에 그것이 그저 계속될 뿐이라고 성모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통과’는 아주 중요합니다.
내가 여기서 이미 하늘나라를 겪고 이것을 내 마음 속에서 느끼면,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실 때 언제라도 조건 없이 죽을 수 있는 준비가 갖춰집니다. 그 순간이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매일 준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통과’란 우리가 하느님 뜻에 무조건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고 거기에 대항해 싸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하느님은 고난을 통해 기회를 주십니다. 하느님은 그들이 내적 싸움에서 이기도록 그들에게 시간과 은총을 주십니다.

Q. 그렇지만 많은 경우에 불안이 더욱 커지지요.

A.. 그렇지요. 그러나 불안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성모님은 언젠가, “너희가 마음속에 기쁨과 사랑과 만족을 느낀다면 그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너희가 불안과 불만족과 미움과 초조를 느낀다면, 다른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정확하게 구별해야하고, 정신과 마음과 영혼 속에 불안이 자리를 잡으려고 할 때 곧 그것을 몰아내야 합니다. 불안을 몰아내는 가장 좋은 무기는 묵주기도와 사랑으로 바치는 기도입니다.

Q. 묵주기도를 말씀하시는군요. 하지만 다른 기도도 많잖아요.

A.. 물론이지요. 그러나 성모님이 원하신 것이 바로 거룩한 묵주기도입니다. 성모님이 그것을 원하셨다는 것은 그것이 그분께 기쁨이 된다는 것이지요! 물론 진심으로 바치는 기도라면 다 좋습니다.

Q. 고요함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십시오.

A.. 그것은 내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는 거의 조용히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러고 싶지 않아서도 아니고, 그것이 아주 좋다는 것도 압니다. 고요함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의 양심을 곰곰히 생각할 수 있고, 정신을 집중하여 하느님께 귀를 기울일 수 있지요. 하지만 내 소명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내 말을 기다립니다.
증거의 말을 하기 위해 사람들을 초대하면 그들은 아주 조용해집니다. 그러면 나는 그들의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것은 대략 15-20분쯤 계속됩니다. 30분이 될 때도 많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잠시 일을 멈추고 고요하게 기도할 시간을 더 이상 갖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그러면 잠시동안 모두가 자기 자신 속에 침잠하여 자신의 내부로 들어갑니다. 사람들은 그런 것을 아주 기뻐합니다. 그 순간 자신이 하늘나라에 있다는 느낌을 갖기 때문입니다.

Q. 그러나 사람들은 ‘영원’의 순간이 끝나면, 다시금 큰 소리로 떠들고 뿔뿔이 흩어져 기도 중에 받았던 은총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A.. 유감스럽게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모님이 내게 말씀하셨지요. “때로 사람들은 내 메시지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을 귀가 아니라 마음 입니다.
변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여기서 많은 가능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의 행복만을 찾는다면 그에게 하느님의 어머니의 말씀은 아무 소용이 없게 되지요.

Q. 마리아의 침묵에 대해 말해주십시오. 당신과 마리아의 오늘 만남은 어땠는지요? 당신은 마리아께 기도합니까? 서로 대화합니까?

A.. 우리의 만남은 대부분 기도 중에 일어납니다. 하느님의 어머니는 사도신경, 주님의 기도, 영광송을 즐겨 바칩니다. … 우리는 또 같이 찬미의 노래를 부릅니다. 그렇게 오래 침묵하지는 않습니다. 처음에 마리아는 말씀을 많이 하셨지만 지금은 기도하는 것을 더 좋아하십니다.

Q. 나는 맨 먼저 기쁨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현대인에게는 기쁨이 아주 많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자주 슬퍼하고 만족을 못 느낍니다. 당신은 어떤 것을 제안하겠습니까?

A.. 우리가 기쁨을 달라고 솔직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청하면 틀립없이 얻을 것입니다. 1994년, 나는 작은 사고를 당했습니다. 불길 속에서 할머니와 어린 조카와 나는 누군가 우리를 구해주기만을 바랐습니다. 정말로 심각한 상황이었지요. 불길은 내 팔과 상반신, 얼굴, 머리를 태웠습니다. 병원에서는 외과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지요. 구급차에 실려가는 동안 내가 어머니와 언니에게 “아무 노래라도 불러줘!” 라고 말하자 그들은 당황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노래를 부르르 수 있니? 네가 지금 어떤지 보렴!” 나는 그들에게 대답했지요. “그래도 기뻐해야지요. 하느님께 감사하자구요!”
병원에 도착하자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는 말이 들렸습니다. … 한 친구는 나를 보고 “정말 지독한 화상이구나. 이런 상태로 있을 수는 없어!”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쾌활하게 대답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이런 상태로 두시겠다면 편안하게 받아들일 거야. 하지만 완전하게 치유해주신다면, 이 사건은 내게 할머니와 어린 조카를 구원할 수 있는 하나의 선물로서 주어졌다는 것을 뜻해. 그것은 또 내 소명이 시작되었다는 것과 하느님만을 섬겨야 한다는 것을 뜻해.” 정말이지 한 달 후에는 작은 흉터 외에는 그 어떤 흔적도 없었어요! 나는 정말 몹시 행복했지요. 모두가 말했어요. “거울을 봤겠지?” “아니,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래요. … 나 자신을 들여다보면 거기에 내 거울이 있지요. 난 알아요!”
진심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기도할 때, 기쁨은 반드시 찾아듭니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점점 더 중요하지 않은 일들로 바쁘고, 기쁨과 행복을 주는 일 앞에서 달아납니다. 가정이 물질적인 일에 중요한 자리를 내주면, 결코 ‘참된’ 기쁨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물질은 그들에게서 이 기쁨을 빼앗아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그들의 빛, 그들의 중심, 그들 가정의 왕이 되시기를 원한다면,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쁨이 그들 곁에 있을 테니까요. 애석하게도 마리아는 예수님이 오늘날 가정에서 말석을 차지하시는 것을, 아니 전혀 아무런 자리도 차지하지 못하시는 것을 슬퍼하십니다.

Q. 아마도 우리는 많은 경우에 예수님을 이용하거나 우리 취향에 맞는 예수님을 원하는 것 같은데요?

A.. 그것은 이용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주도권 싸움이겠지요.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나 혼자서 할 수도 있는데! 왜 내가 하느님을 찾아야하지? 내가 맨 윗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는데?” 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착각이지요. 하느님을 앞서는 일은 가당치도 않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너무나 선하시고 꾸밈이 없으셔서 우리에게 그런 것을 허용하십니다. 우리가 어린 아이들이 조만간 알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그냥 두는 것처럼. 하느님은 인간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분은 인간이 마음을 열고 회심하기를 언제나 기다리고 계십니다.
얼마나 많은 순례자들이 매일같이 여기에 오는지 아시지요? 개인적으로 나는 누구에게도 이렇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당신은 이러저러한 것을 해야 합니다. 당신은 믿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어머니를 알아야 합니다.”
대신 내게 물으면 나는 “당신은 자유롭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주의하십시오. 당신은 우연히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모님이 당신을 불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소명입니다. 하느님의 어머니가 당신을 이리로 부르셨을 때에는 당신에게 바라시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신은 성모님이 당신에게 원하시는 것을 마음속에서 당신 홀로 찾아야합니다.

Q. 젊은이들에 관해 말해주십시오. 당신의 증언 속에 자주 그들이 언급됩니다.

A.. 그래요. 젊은이들이 아주, 아주 힘든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어머니는 우리의 사랑과 기도만이 그들을 도울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그들에게, “사랑하는 어린 자녀들아, 세상이 오늘 너희에게 베푸는 모든 것은 사라진단다. 주의하여라. 사탄이 분명 너희의 자유로운 모든 시선을 이용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시대의 원수는 특별히 젊은이들과 가정 안에서 활약합니다. 사탄은 언제나 가정을 파괴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Q. 원수는 가정 안에서 어떻게 활동합니까?

A.. 가정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더 이상 대화가 없기 때문에 더 이상 기도가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그런 이유로 하느님의 어머니는 가정 기도가 쇄신되기를 원하십니다. 부모들이 자녀들과, 자녀들이 부모들과 함께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사탄은 패배할 것입니다. 가정의 기초는 기도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시간을 가진다면 더 이상 아무 문제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오늘날 부모들은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쓸데없는 일들을 더 많이 하려고 자녀들에게 너무나 많은 자유를 허용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자녀가 벼랑 끝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Q.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은 없습니까?

A.. 여러분 모두를 위해 기도합니다. 나는 여러분을 성모님께 데려가겠습니다. 평화의 모후께서 당신 평화와 사랑으로 여러분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 스위스 Maria heute 에서
– 마리아 13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