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쓸쓸한 길을 걸어가시는 중이다. 예수 앞에는 아이들의 친척들이 가고, 예수 옆에는 세겜 사람들이 간다. 일행이 있는 곳은 인적이 없는 곳이며 도시가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나귀들을 타고 가는데, 친척 한 사람이 고삐를 잡고 가며 아이를 지켜본다. 세겜 사람들은 예수 곁에 있으려고 걸어서 가는 편을 택하였기 때문에 사람을 태우지 않은 나귀들은 사람들의 집단보다 앞서 떼를 지어 가며, 새 풀이 돋아 있는 비탈 사이로 아주 좋은 날씨에 짐도 싣지 않은 채 마구간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아서 이따금씩 아응아응 하고 운다. 그리고 가끔 새로 나는 풀 속으로 주둥이를 디밀고 한 입 맛보고는 재미있는 껑충걸음으로 사람들을 태운 동무들을 쫓아 달려간다. 그것을 보고 아이들은 웃는다.
  예수께서는 세겜 사람들과 말씀하시거나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거나 하신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선생님을 모신 것이 자랑스러워서 적합한 것 이상으로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북쪽으로 가는 여행자들의 왼편에 있는 높은 산들을 가리켜 예수께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드릴 지경이다.
  “보십시오. 에발산과 가리짐 산은 평판이 나쁩니다. 그러나 적어도 선생님께는 저 산들이 시온산보다 훨씬 낫습니다. 그리고 저 산을 선택하셔서 그곳에 머무르고자 하시면, 그러니까 선생님께서 원하시기만 하면, 전적으로 좋아질 것입니다. 시온은 언제나 예부세파들의 소굴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사람들은 옛날 사람들이 다윗에 대해서 그랬던 것보다 한층 더 적의를 품고 있습니다. 다윗은 폭력을 써서 성채를 점령했습니다만, 선생님은 폭력을 쓰지 않으시니 그곳에서는 결코 지배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절대로 주님, 저희들 가운데 계십시오. 그러면 저희들이 주님을 공경하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말해 보시오. 만일 내가 당신들을 폭력으로 정복하고자 했다면, 당신들이 나를 사랑했겠소?”
  “정말…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희들이 선생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선생님이 온전히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내가 당신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이것, 즉 사랑 때문이오?”
  “그렇습니다, 선생님. 그러나 저희들이 선생님의 사랑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저들, 예루살렘 사람들은 선생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실이오. 그들은 나를 사랑하지 않소. 그러나 모두 솜씨 좋은 상인들인 당신들, 말해 보시오. 당신들이 물건을 팔거나 사거나 이익을 얻고자 할 때에 어떤 곳에서 사람들이 당신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혹 용기를 잃으시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당신들의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나 또는 당신들에게 물건을 파는 사람들에게서 사랑이 있는지 없는지 상관치 않으며 그저 잘 사고 잘 파는 데만 정신을 쏟으면서 흥정을 하시오?”
  “저희가 마음을 쓰는 것은 상거래뿐입니다. 저희들과 교섭을 하는 사람들의 사랑이 거기 들어있지 않느냐 하는 것은 저희에게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흥정이 끝나면 접촉도 끝납니다. 이득은 남아 있습니다…. 다른 것은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면 나도, 내 아버지의 이익을 위해 일하러 온 나도 그런 것에는 마음을 쓰지 말아야합니다. 아버지의 이익을 위하여 일하는 곳에서 내가 사랑을 만나건 업신여김을 만나건 냉혹을 만나건 그런 것에는 마음을 쓰지 않소. 어떤 상업도시에서도 모든 사람에게서 이익을 얻으며 물건을 사고팔지 않소. 그러나 다만 한 사람한고만 흥정을 하여 이익을 많이 남기면, 이번 길은 무익하지는 않았다고 말하면서 그리고 다시 가고 또 다시 갈 것이오. 첫 번에 한 사람에게서 밖에 얻지 못한 것을 두 번째에는 세 사람에게서, 네 번째에는 일곱 사람에게서, 다른 때에는 수십 명에서 얻기 때문이오. 그렇지 않소? 나도 하늘을 얻는 일에 있어서 당신들의 거래를 위해서 하는 것과 같이 하고 계속 꾸준히 해나가고, 수 적으로 얼마 안 되는 것도 크게 충분한 것으로 생각하오. 구원 받은 영혼, 다만 하나도 큰 것이고, 내 피로에 대해서 큰 이득이 되기 때문이오. 그리로 가서 사람의 반발일 수도 있는 모든 것을 극복할 때마다 정신의 왕으로서 다만 국민 한 사람만이라도 얻어야 할 때에는, 내 발걸음, 내 고통, 내 피로들을 무익한 것이었다고 말하지 않고, 업신여김과 모욕과 비난을 거룩하고 사랑스럽고 바람직한 것이라고 부르오. 만일 내가 화강암으로 된 요새라는 걸림돌 앞에서 멈추면, 나는 훌륭한 정복자가 되지 못할 거요.”
  “그렇지만 그들을 이기시려면 선생님께는 여러 세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선생님은… 사람이시니 여러 세기를 살지는 못하실 것입니다. 선생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곳에서 왜 시간을 허비하십니까?”
  “나는 훨씬 덜 오래 살 거요. 그리고 머지않아 당신들 가운데 있지도 못하게 될 거요. 나는 시작되는 날들과 끝나는 날들의 마일 표석들처럼 새벽과 해 넘어가는 것을 보지 못할 것이고, 다만 그 것들을 우주의 아름다움으로만 지켜보면서 그것들을 위해 그것들을 만드신 창조주이시며 내 아버지이신 분을 찬미할 거요. 나는 나무들에 꽃이 피는 것과 곡식이 여무는 것을 보지 못할 것이고, 내 나라에 돌아가서는 사랑을 먹고 살겠기 때문에 내 목숨을 보존하기 위하여 땅의 열매가 필요 없을 거요. 그런데도 나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굳게 잠긴 수많은 요새를 무너뜨릴 것이오.
  산비탈의 샘 아래 있는 저 돌을 살펴보시오. 샘을 매우 약해서, 흐르지 않고, 물을 한 방울씩 한 방울씩 내주오. 산비탈에 쑥 내민 저돌 위에 여러 세기 째 떨어지고 있는 물방울이오. 그리고 돌은 매우 단단하오. 부서지기 쉬운 석회암도 아니고, 부드러운 설화석고도 아니고, 매우 단단한 현무암이오. 그런데도 볼록한 덩어리 한가운데에, 그런 형태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조그마한 물거울이 이루어졌는지 보시오. 저 거울은 수련의 꽃받침보다 더 넓지도 않지만, 파란 하늘을 반사하고 새들의 목을 축이는 데에는 넉넉하오. 볼록한 덩어리에 있는 저 오목한 모양은 혹 사람이 우중충한 돌에 파란 보석을 박아놓고 새들이 먹을 신선한 물 한 컵을 마련하려고 만들어 놓았소? 아니오, 사람은 그것을 상관하지도 않았소. 오랜 세월을 두고 물방울이 끊임없이 규칙적인 일로 파놓은 저 바위 앞으로 사람들이 지나다닌 수많은 세월이 지나는 동안, 어쩌면 한가운데에 터키옥 빛깔의 액체를 가진 저 검은 빛깔의 현무암을 살펴본 것이 우리가 처음인지도 모르겠소. 우리는 저것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하고 이 근처에 둥지를 트는 새들의 목을 축이게 하기 위하여 그것을 원하신 것에 대하여 영원하신 분을 찬미하오.
  그러나 말해 보시오. 혹 저 바위 위에 선반 모양으로 내민 현무암 밑으로 흘러서 그 높이에서 바위로 떨어진 첫 번째 물방울이 하늘과 해와 구름과 별들을 반사하는 저 컵을 파 놓았겠소? 아니오. 저 위에서 눈물처럼 솟아 나온 수백 수 천 만개의 물방울이 하나 씩 하나씩, 차례로 반짝 하며 떨어져 하프 소리를 내면서 죽어가고, 단단한 물질을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할 정도로 미미하게 파 놓았소.
  이와 같이 시간을 나타내기 위한 모래시계의 모래와 같은 규칙적인 움직임으로, 한 시간에 몇 방울, 1경 동안에 몇 방울, 새벽과 해넘이 사이에 몇 방울, 밤과 새벽 사이에 몇 방울, 하루에 몇 방울이 안식일에서 다음 안식일까지에 몇 방울, 새달에서 새달까지 몇 방울, 한 니산달에서 다음 니산달까지, 한 세기에서 다음 세기까지 몇 방울, 이렇게 많은 세월을 계속했소. 바위는 저항했고, 물방울은 꾸준히 해 나갔소. 교만하고 따라서 참을성이 없는, 그리고 노력을 별로 지지하지 않는 사람은 처음 몇 번 때리고 나서는 큰 망치와 둥근 정을 내동댕이치면서 ‘이건 팔 수 없는 물건이다’ 하고 말했을 거요. 물방울은 팠소. 이것이 물방울이 할 일이었고, 그것 때문에 창조된 것이오. 그래서 물방울은 한 방울씩 한 방울씩 오랜 세월을 두고 흘러서 바위에 구멍을 내기에 이르렀소. 그러고 나서 물방울은 ‘이제는 내가 파놓은 컵에 물을 채우는 것은 하늘이 생각해서 이슬과 비, 서리와 눈으로 물을 대 줄 것 이다’ 하고 말하면서 중단하지를 않았소.
  그러나 물방울은 계속 떨어져서 저 혼자서 여름의 더위 때에, 겨울에 추울 때에 이 컵에 물을 채워 놓소. 그러는 동안 심하거나 가는 비가 이 거울을 주름잡히게 하지마는, 이 거울이 이미 가득 차고 유익하고 아름다우니 저것을 더 아름답게 할 수도 없고, 더 넓게 할 수도 더 깊게 할 수도 없소. 샘은 딸들인 물방울들이 떠나가서 작은 수반에서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소. 그러나 그것들을 붙잡아두지 않소. 오히려 물방울들을 희생을 하도록 부추기고, 그렇게 슬픔 속으로 떨어지면서 외롭지 말라고 새로운 자매들을 보내어, 죽어가는 물방울이 외롭지 않고, 다른 물방울들을 통해서 영속된다는 것을 보게 하오.
  나도 단단한 마음의 요새를 수백 수천 번 치고, 내가 세상 마칠 때까지 보낼 내 후계자들을 통해 영속되면서 그 마음들 안에 통로를 만들 것이고, 인간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햇빛처럼 들어갈 것이오. 그런 다음 인간들이 빛을 받아들이지 않고, 한없는 노력으로 뚫어 놓은 통로를 막아버리면, 내 후계자들과 나는 우리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잘못이 없을 거요. 만일 그 샘이 바위가 단단한 것을 보고 다른 길을 내서 풀이 난 땅이 있는 더 멀리에 가서 방울방울 떨어졌더라면, 우리가 저 반짝이는 보석을 보았겠는지, 새들이 저 맑은 물의 위안을 얻었겠는지, 당신들 말해보시오.”
   “우리는 저걸 보지도 못했을 겁니다, 선생님.”
   “기껏해야… 여름에는 좀 더 우거진 풀이 샘물이 방울져 떨어지는 곳을 알려주는 정도였을 것입니다.”
  “혹은… 계속 습기가 차 있으면 뿌리가 썩으니까, 다른 곳보다 풀이 덜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진흙이 있구요. 그 이상은 아무 것도 없을 것입니다. 쓸데없는 물방울들이지요.”
  “당신들이 바로 말했소. 무익하게 또는 적어도 공연히 방울져 떨어지는 것이오. 나도 나를 정의로나 동정으로 받아들일 생각을 가진 마음들이 있는 곳에만 집착하면, 나는 불완전한 일을 할 것이오. 과연 나는 일은 할 것이오. 그것은 맞소. 그러나 피로를 느끼지 않고, 의무와 쾌락 사이의 기분 좋은 타협으로 내 자아에게 큰 만족까지 주어가면서 일을 할 것이오. 사랑이 우리를 에워싸고, 우리가 다루어야 할 영혼들이 사랑으로 인해서 온순하게 되는 곳에서 일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오. 그러나 피로가 없으면 공로도 없고, 쟁취도 별로 하지 못하고 또 벌써 의덕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로 만족하기 때문에 이득이 많지 않소. 만일 내가 모든 사람들에게 우선 진리를, 그 다음에는 은총을 되찾게 하려고 힘쓰지 않으면 내가 아닐 거요.”
  “그런데 선생님은 그 일을 성공하시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선생님의 반대자들로 하여금 선생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이미 하신 것 이외 또 무엇을 더 하실 수 있겠습니까? 아니, 베다니아 사람의 부활까지도 유다인들로 하여금 선생님이 하느님의 메시아라고 말하게 하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나는 내가 이미 한 것보다 더 위대한 것, 훨씬 더 위대한 것을 해야 할 것이 있소.”
  “언제입니까, 주님?”
  “니산달이 만월이 될 때요. 그 때는 조심하시오.”
  “하늘에 표가 있겠습니까? 선생님이 나셨을 때에는 빛과 노래와 이상한 별들로 하늘의 소리가 들려 왔다고들 말하는데요.”
  “사실이오. 빛이 세상에 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였소. 그 때 니산달에는 하늘과 땅에 표가 있을 것이고, 어두움과 하늘이 흔들리고 벼락이 우르릉거리고 땅이 갈라지며 지진이 나기 때문에 세상이 끝나는 것 같을 거요.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닐 것이고, 오히려 반대로 시작일 것이오. 처음 내가 왔을 때에는 하늘이 사람들을 위해 구세주를 낳았소. 그런데 그것은 하느님의 행동이었기 때문에, 그 사건에는 평화가 따랐소. 그런데 니산달에는 땅이 제 의지로 저 자신을 위하여 구속자를 낳을 것인데, 그것은 사람들의 행동일 것이므로 그 행동에는 평화가 따르지 않을 것이오. 오히려 소름끼치는 경련이 있을 것이오.
  그리고 세기와 지옥의 시간의 공포 중에 땅은 하느님의 분노의 불붙은 화살을 맞아 갈라지며, 그의 뜻을 부르짖을 것인데, 너무 취해서 그 결과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너무도 사탄에게 꽉 붙잡혀서 그것을 막지도 못할 것이오. 아기를 낳는 미친 여자 모양으로 땅은 저주받았다고 생각하는 열매를 파괴하는 것으로 믿을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오히려 고통과 계략이 그 열매에 더 이상 절대로 미치지 못할 것으로 들어올리게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것이오. 나무, 새 나무가 그 순간부터 모든 세월에 걸쳐 온 땅 위에 가지를 뻗을 것이고, 당신들에게 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은 사랑으로나 증오로 참 하느님의 아들과 주님의 메시아로 인정받을 것이오. 그리고 그렇다고 고백을 하기를 원치 않고, 내게로 회개하지 않고 그것을 인정할 사람들은 화를 입을 것이오.”
  “그런 일이 어디서 일어나겠습니까, 주님?”
  “예루살렘에서요. 예루살렘이 참으로 하느님의 도성이오.”
  “그러면 저희들은 그곳에 가 있지 못할 것입니다. 니산달에는 과월절 때문에 저희들이 여기 붙잡혀 있으니까요. 저희들은 저희 성전에 충실합니다.”
  “당신들은 모리아산에도 있지 않고 가리짐 산에도 있지 않고,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살아 있는 성전에 충실한 것이 더 나을 거요. 그러나 나는 당신들의 시간을, 즉 당신들이 하느님과 그분의 메시아를 정신과 진리로 사랑할 시간을 기다릴 줄 아오.”
  “저희들은 선생님이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과거를 버리고 내 현재에 들어오는 것이오. 당신들은 아직 나를 완전히 사랑하지 못하고 있소.”
사마리아 사람들은 조용히 서로 몰래 바라본다. 그러더니 그 중 한 사람이 말한다.
  “선생님을 위해서는 선생님께 가기 위해 저희들은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그렇게 하고 싶어도 유다인들이 있는 곳에 들어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그들은 저희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들도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소. 그러나 안심하시오. 머지않아 두 지방, 두 성전, 반대되는 두 가지 생각이 없어지고, 오직 한 백성, 오직 한 성적, 진리를 원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오직 하나의 믿음이 있을 것이오. 그러나 이제는 당신들을 떠나야겠소. 아이들이 이제는 위로를 받았고, 기분전환이 되었소. 그리고 나로서는 밤이 되기 전에 도착하기에는 에프라임에 돌아가는 길이 멀어졌소. 동요하지 마시오. 그렇게 하면 어린 아이들의 주의를 끌지도 모르기 때문에, 아이들이 내가 떠나는 것을 눈치를 채게 해서는 안 되오. 계속 가시오. 나는 여기서 걸음을 멈추겠소. 주님이 세상의 오솔길과 당신 섭리의 오솔길에서 당신들을 인도하시기를 바라오. 가시오.”
  예수께서는 산으로 가까이 가셔서 그들이 멀어져가게 하신다. 세겜으로 돌아가는 무리의 것 맨 마지막으로 알아보게 되는 것은 산골길의 적막 속에 퍼지는 어린 아이의 명랑한 웃음소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