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행은 레보나에 들어갈 참이다. 도시는 매우 중요하지도 않고 아름다워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대신 사람이 매우 많이 다니는 도시이다. 갈릴래아, 이두레아, 가울라니티다, 트라코니티다, 아우라니티다, 데카폴리스 둥지에서 과월절을 지내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여행자의 무리들이 벌써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레보나는 대상 통로에 있는 것 같다. 아니 그보다도 이 위에 말한 지방들과 지중해에서 팔레스티나 동쪽 산맥으로 가는 길과 또 북쪽에서 오는 길들이 이곳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큰 길과 만나는 대상 도로의 요소인 것 같다. 사람들이 이리로 지나가기를 좋아하는 것은 이 길이 로마 병사들에 의하여 매우 엄중히 경계되어 있고 따라서 도둑들과의 달갑지 않은 만남의 위험을 피할 수 있다고 느끼는 사실에서 오는 것 같다. 내 생각은 이렇지만, 이 선택이 혹 다른 원인이나 역사적 또는 신성한 추억에서 오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다.
  시간이 알맞기 때문에 -나는 해를 보고 아침 여덟시쯤이라고 생각하였다. – 여행자의 무리들은 목소리와 외치는 소리와 나귀 울음소리와 방울 소리, 수레의 바퀴 소리들이 몹시 소란스러운 가운데 움직이기 시작한다. 여자들은 아이들을 부르고, 남자들은 짐승들을 재촉하고,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그들의 상품을 사라고 하고, 사마리아장사꾼들과 덜 히브리인다운 … 사람들 사이에, 즉 이교적인 성분과 더 많이 섞여 있기 때문에 별로 비타협적이 아닌 데카폴리스와 다른 지방들의 히브리인들 사이에 흥정이 벌어지고, 어떤 불행한 사마리아민인 장사꾼이 어떤 유태교 옹호자에게 그의 상품을 권하면 거만하고 거의 모욕적인 거절을 당하곤 한다. 그들은 마귀 자신을 가까이한 것처럼 하도 저주를 외치는 바람에… 모욕을 당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매우 격렬한 반발을 일으킨다. 그래서 로마 병사들이 거기 있어 제대로 경계를 하지 않으면, 그 결과로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혼란한 가운데를 걸어가신다. 예수 둘레에는 사도들이 있고, 뒤에는 여자 제자들이 있고, 그 뒤로는 실로 사람들로 인하여 숫자가 많이 불어난 에프라임 사람들이 따라온다.
  선생님보다 앞서 가는 사람들 사이에 속삭임이 있다. 그 속삭임은 선생님을 보는 사람들에게서 더 멀리 있어 선생님을 아직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로 퍼진다. 더 큰 속삭임이 예수를 뒤따라온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기 위하여 그들의 출발을 연기한다.
  그들은 서로 묻는다.
  “뭐라구요? 선생님이 점점 더 유다에서 멀어진다구요? 뭐라구요? 이제는 사마리아에서 전도를 한다구요?”
  갈릴래아의 억양이 있는 어떤 목소리가 말한다. “거룩한 분들이 선생님을 쫓아냈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거룩하지 않은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려고 그 사람들을 상대해서 유다인들을 부끄럽게 하는 거랍니다.”
  신 독액보다도 더 신랄한 대답이 나온다.
  “그 사람은 제 소굴과 그의 마귀와 같은 말을 듣는 사람들을 찾아낸 거지요.”
  다른 목소리가 말한다.
  “의인을 죽이는 사람들, 입닥치시오! 그 박해는 두고두고 가장 추악한 이름을 당신들에게 낙인처럼 새겨놓을 것입니다. 당신들은 데카폴리스의 우리들보다 세 배는 더 타락했소.”
  어떤 날카로운 늙은이의 목소리가 말한다.
  “하도 의로워서 명절 중의 명절을 지내려고 성전을 피하는 거요. 아! 아! 아!”
  어떤 에프라임 사람이 화가 나서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늙은 배반자, 당신은 거짓말을 하는 겁니다! 선생님은 지금 과월절을 지내러 가시는 겁니다.”
  수염이 난 율법학자가 업신여기는 투로 말한다.
  “가리짐산(사마리아의 신전이 있는 산)에 가는 길로 해서 간단 말이지요.”
  “아니오. 모리아산(예루살렘의 성전이 있는 산)으로 가는 길로 해서 가시오, 선생님은 사랑할 줄 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강복하러 오셨다가, 당신들의 증오를 향해서 가시는 거요. 저주받은 사람들!”
  “사마리아인, 입닥치시오.”
  “당신이야말로 입을 다물어야 하오. 악마!”
  “반란을 일으키는 사람은 징역 갈 거요. 본시오 빌라도의 명령이오. 그걸 기억하고 해산하시오”하고 로마 장교 한 사람이 명하며, 벌써 완력에 호소하고 있는 사람들을 갈라놓기 위하여 자기에게 딸린 병사들을 움직이게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 시대의 팔래스티나에서 걸핏하면 일어나는 저 수많은 지방적이거나 종교적인 싸움 중의 하나였다.
  사람들은 흩어진다. 그러나 아무도 가지는 않는다. 그들은 나귀들을 마구간으로 끌고 가거나, 예수께서 가신 곳으로 끌고 간다. 여자와 아이들은 안장에서 내려 남편이나 아버지를 따라 가거나, 남편이나 아버지의 기분으로 “마귀가 말하는 것을 듣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지면 끼리끼리 모여서 떠든다. 그러나 호의적 이거나 적대적이거나 그저 호기심만 가진 남자들은 예수께서 가신 곳으로 뛰어 간다. 그리고 뛰어 가면서, 호의적인 사람들이 적의를 품은 사람들과 같이 가거나 호의적인 사람들끼리 가거나 그저 구경꾼들끼리 가거나 하는데 따라서 서로 좋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거나 이 뜻하지 않은 기쁨으로 서로 격려하거나 말을 물어보거나 한다.
예수께서는 광장에서, 으레 있는 나무 그늘이 진 샘 곁에서 걸음을 멈추시고 샘의 축축한 담 앞에 자리를 잡으신다. 여기는 샘이 작은 회랑으로 덮여 있고 회랑은 한쪽만 열려 있다. 그것은 샘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우물이다. 엔 로젤의 우물과 비슷하다.
  예수께서는 안고 있는 어린 사내아이를 당신께 내보이는 어떤 여자와 말씀 하시는 중이다. 예수께서 동의하시고, 어린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으시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곧 이어서 어머니가 그의 아이를 쳐들며 외치는 것이 보인다.
  “말라키아, 말라키아, 어디 있어요? 우리 아들이 이젠 불구가 아니예요.” 그러면서 여자가 기쁨의 함성을 지르니, 군중의 호산나 소리도 거기에 합쳐지는데, 어떤 남자가 사람들을 헤치고 와서 주님 앞에 몸을 구부린다.
  사람들은 이러쿵저러쿵 말을 한다. 대부분이 어머니들인 여자들은 이 특별한 배려를 받은 여자와 같이 기뻐한다. 제일 멀리 있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사람들과 합치기 위하여 호산나 소리를 지르고 나서 “아니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난 거요?”하고 묻는다.
  “어린 꼽추였소. 어떻게나 심한 중춘지 서 있기가 어려울 정도였소. 어떻게 몸이 구부러졌던지 키가 이만 했었소. 꼭 이만 했었소. 사실은 일곱살인데 세살 먹은 것같이 보였었소. 이제는 보시오! 키가 다른 아이들 모두와 같고, 종려나무처럼 꼿꼿하오. 저 아이가 사람들이 보라고 또 저도 보려고 샘의 낮은 담이 얼마나 잘 기어 올라가는지 보시오, 그리고 얼마나 기쁘게 웃는지!”
  어떤 갈릴래아 사람이 허리띠에 넓은 매듭 여러 개가 있는 어떤 사람을 -그 사람을 라삐라고 불러도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돌아보며 말한다.
  “여보시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이것도 마귀의 짓이오? 정말이지 마귀가 이렇게 해서 많은 불행을 없애고 사람들을 행복하게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게 하면, 가장 훌륭한 하느님의 봉사자라고 말해야 할 거요!”
  “하느님을 모독하는 자, 입닥치시오!”
  “라삐, 나는 하느님을 모독하지 않소. 내가 보는 것을 설명하는 거요. 나자렛의 라삐의 하시는 일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고 하느님께서 인자하시다는 확신을 주는데, 왜 당신들의 거룩함은 우리에게 무거운 짐과 불행들만을 가져다주고, 우리 입술에 지극히 높으신 분에 대한 비난과 불신의 말을 담아주는 거요?”
  라삐는 대답을 하지 않고 그곳을 떠나가서 그의 다른 친구들과 떠든다. 그들 중의 한 사람이 일행에서 떨어져 사람들을 헤치고 예수 앞으로 가서, 먼저 인사도 하지 않고 이렇게 질문한다. “당신은 무엇을 할 생각이오?”
  “내 말을 청하는 사람들에게 말을 할 생각이오”하고 예수께서 그를 똑바로 들여다보시면서 업신여기지 않고, 그러나 겁도 내지 않으시며 대답하신다.
  “당신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되오. 최고회의가 그렇게 하는 것을 승락하지 않소.”
  “이것은 지극히 높으신 분의 뜻이오. 최고회의는 그분의 종이어야 할 거요.”
  “당신은 선고를 받았소. 당신도 그걸 알고 있소, 잠자코 있으시오. 그렇지 않으면….”
  “내 이름은 말씀이오. 그러니까 말씀은 말을 하오.”
  “사마리아인들에게… 만일 정말로 당신이 주장하는 그 사람이면, 사마리아인들에게 당신의 말을 주지는 않을 거요.”
  “나는 유다인들과 사마리아 사람들에게와 같이 갈릴래아 사람들에게도 내 말을 주었고 또 주겠소. 예수의 눈으로 볼 때에는 차이가 없기 때문이오.”
  “당신이 감히 하겠으면, 어디 유다에서 당신 말을 주도록 해 보시오!….”
  “정말이지, 내 말을 주겠소. 나를 기다리시오. 당신은 엘르아잘 벤파르타가 아니요? 그렇지요? 그러면 당신은 분명히 나보다 먼저 가믈리엘을 보겠지요. 그분이 기다리는 대답을 내가 21년 후에 그분에게도 주겠다고 내 이름으로 말해 주시오. 알아들었소? 잘 기억하시오. 그분에게도 그분이 기다리는 대답을 21년 후에 내가 주겠다고 말이오. 안녕히 가시오.”
  “어디서? 어디서 말하겠다는 거요? 어디에서 위대한 가믈리엘 선생에게 대답하겠다는 거요? 그분은 틀림없이 유다의 가말라를 따라서 예루살렘에 들어갔을 거요. 그러나 아직 가말라에 있다 해도 당신은 그분에게 말하지 못할 거요.”
  “어디에서 말하겠느냐구요? 그래 율법학자들과 이스라엘의 라삐들이 어디에 모이오?”
  “성전에서? 당신이 성전에서? 그래 당신이 감히? 아니, 당신은 알지 못하는구려….”
  “당신들이 나를 미워한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소. 내 아버지께 미움을 받지 않기만 하면 되오. 얼마 안 있어 성전은 내 말 때문에 전율할 거요.” 그리고 당신의 말 상대자는 상관하지 않으시고, 서로 대립하는 흐름으로 나뉘어 흥분하며 교란자들에 대하여 시위를 하는 사람들에게 침묵을 명하려고 팔을 벌리신다. 갑자기 잠잠해 지고, 예수께서는 이렇게 잠잠해진 가운데에서 말씀하신다.
  “실로에서 나는 나쁜 조언자들과 어떤 권고를 가지고 실제로나 악을 행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이제 레보나의 주민들만이 아니라 팔레스티나의 여러 군데에서 온 여러분에게 이 비유를 말하겠습니다. 이 비유를 ‘나쁜 권고를 받은 사람들의 비유’라고 부릅시다.
  잘 들으시오. 옛날에 한 부족을 이룰 정도로 자손이 많은 가족이 있었습니다. 많은 자식들이 결혼해서 처음에 있던 가정 둘레에 많은 자녀를 둔 다른 가정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이 손자들이 결혼해서 다른 많은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늙은 아버지는 말하자면 작은 왕국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그 나라의 왕이 되었습니다. 가정에는 으레 그런 것과 같이 많은 자식들과 손자들 가운데에는 여러 가지 다른 성격이 있었습니다. 착하고 의로운 사람들도 있고, 교만하고 옳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자기들의 처지에 만족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기들의 몫이 형제나 친척의 몫보다 더 작아 보이기 때문에 새암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나쁜 사람 곁에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착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연 제일 착한 사람이 그 큰 가족 전체 중에서 아버지에게 가장 다정스럽게 사랑받았습니다.
  그래서 으레 그렇게 되는 것처럼, 나쁜 사람과 그와 많이 비슷한 사람들은 자기들도 가장 착한 사람 같이 되었으면 사랑을 받을 수 있었으리라는 것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가 가장 사랑을 많이 받기 때문에 그를 미워했습니다. 그리고 착한 아들에게는 아버지가 그의 생각을 털어놓아 모두에게 말하게 했는데, 착한 다른 사람들은 그의 말을 따랐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 큰 가족이 세 부분으로 나놨었습니다. 착한 사람들의 부분과 악한 사람들의 부분, 그리고 그 두 부분사이에는 착한 아들 쪽으로 마음이 끌리는 것을 느끼지마는, 악한 아들과 그의 추종자들을 무서워하는 우유부단한 사람들의 셋째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 셋째 부분의 사람들은 처음 두 부분의 사람들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이 편이나 저 편을 따르기로 결단을 내릴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자 늙은 아버지는 이 우유부단을 보고, 가장 사랑하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너는 특히 네 말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네 말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 네 말을 썼다. 전자들은 나를 점점 더 올바르게 사랑하기 위해 그 말을 청했기 때문에 그랬고, 후자들은 정의 쪽으로 다시 데려와야 할 어리석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랬다. 그러나 지금 너도 보다시피 저 어리석은 자들은 네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행실을 고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내 소원을 그들에게 전하는 네게 첫 번째 불의에 좋은 길을 택하기를 힘차게 원할 줄을 모르는 자들을 나쁜 권고로 타락시키는 불의를 덧붙인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가서, 나와 네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말하고, 나와 너와 더불어 같이 있기 위하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해 주어라.’
  항상 순종하는 아들은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가서, 날마다 어떤 마음을 끌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버지는 누가 진짜 반역하는 아들들인지를 알게 되었고, 그들을 엄한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리고 참을성과 사랑과 착한 아들들의 본보기로 그들을 자기에게로 끌어당기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들을 나무라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쁜 아들들은 자기들끼리만 있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반역자라는 것이 너무나 분명히 드러났다. 전에는 저들이 우리를 착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은 자들과 혼동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너희들이 보다시피 모두가 사랑받는 아들 뒤에 따라간다. 행동하고, 그의 업적을 부수어야 한다. 생각을 고친 체하면서, 가장 착한 자들 중에서 가장 우둔한 자들과 겨우 회개한 자들에게로 가자. 그리고 사랑받는 아들이 아버지를 섬기는 체하지만, 사실은 나중에 아버지에게 반항하기 위해서 같은 편을 만드는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리자. 또는 아들과 그의 지지자들이 너무나 성공을 거두어 부왕으로서의 자기의 영광을 가리기 때문에 아버지가 아들과 그 지지자들을 제거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따라서 사랑받았으면서도 배반을 당한 아들을 옹호하기 위하여, 그를 우리들 가운데 붙잡아 두어 배반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의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게 해야 한다고 말하자’하고
  그래서 그들이 갔는데, 어떻게나 교묘하고 교활하게 그들의 의견과 충고를 퍼뜨렸던지 많은 사람이 계략에 걸려들었는데, 특히 회개한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그러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권고자들이 이런 나쁜 권고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이 너희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생각해 보아라. 그는 아버지 곁이나 적어도 그의 착한 형제들 가운데 그대로 있는 것보다 너희들 가운데로 오는 것을 더 낫게 생각했다. 그는 너희들을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 그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조소거리가 되는 사람이라는 너희들의 비천함에서 다시 일으켜 세울 만큼 많은 일을 했다. 너희들에 대한 이 특별한 사랑 때문에 너희들은 그를 옹호할 의무가 있고, 너희들이 설득하는 말이 충분하지 못하면 억지로라도 너희들의 진영에 붙잡아 두기까지 할 의무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반란을 일으켜 그를 너희들의 지도자와 왕으로 선포하고 부당한 아버지와 같이 부당한 그의 아들들을 공격하라’하고.
  어떤 사람들은 망설이며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우리더러 자기와 같이 아버지를 공경하러 가자고 말했고, 우리에게 강복과 용서를 얻어 주었는데’하고.
  이 사람들에게 나쁜 권고자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믿지 말아라. 그는 너희들에게 모든 진리를 말하지 않았고, 아버지도 너희들에게 모든 진리를 보여주지 않았다. 아들이 그렇게 한 것은 아버지가 그를 배반하리라는 것을 느끼고, 보호와 피신처를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지 알기 위해 너희들의 마음을 시험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면… 아들은 매우 착하니까! 어쩌면 곧 이어서 아버지를 의심한 것을 뉘우치고,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가 그렇게 하게 놔두지 말아라’하고. 그러니까 많은 사람이 약속했습니다. ‘그렇게 하게 놔두지 않겠어요.’ 그리고는 사랑받는 아들을 붙잡아둘 수 있는 계획들을 하면서 열을 올렸습니다.
  나쁜 권고자들이 ‘우리가 너희들을 도와 복된 아들을 구하게 하겠다’고 말하는 동안, 그들의 눈에는 거짓과 잔인한 빛이 가득한 것을 이들은 눈치 채지 못했고, 어떤 사람이 그들의 교활한 말에 찬동할 때마다 눈을 끔벅하고 만족을 나타내면서 ‘저들은 함정에 빠졌다! 우리는 성공할 것이다’하고 속삭이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나쁜 권고자들이 갔습니다. 그들은 다른 여러 군데로 돌아다니면서, 아버지를 미워하거나 적어도 아버지에게 확실한 사랑을 주지 않던 사람들과 함께 아버지와 대립하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 아버지의 땅에서 나온 사랑받던 아들의 배반을 보게 될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그리고 나쁜 권고의 암시를 받은 사람들은 그 동안 어떻게 해야 사랑받는 아들을 세상 사람들의 눈살 찌푸리게 할 반란의 죄로 끌어들일까 하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들 중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들만이, 즉 땅에 떨어졌기 때문에 그 말이 깊숙이 뚫고 들어가 그 속에 뿌리가 내려졌던 의인의 말을 받아들이기를 갈망하는 사람들만이 깊이 생각한 다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과 우리에게 대해서 까지도 악의의 행위이다.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의 정의와 지혜를 안다. 비록 우리가 불행하게 그것을 항상 따르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알기는 한다. 항상 공공연하게 아버지와 정의를 반대하고,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아들도 반대한 사람들의 권고가 복된 아들이 우리에게 준 권고들보다 더 올바를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그리고 그들은 악한 권고자들의 권고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사랑과 고통으로 아들이 가야 하는 곳으로 가게 내버려두고, 다만 사랑의 표를 보이며 그들의 밭의 경계에까지 그를 배웅하고, 그에게 이렇게 약속하는데 그쳤습니다.
‘당신은 가고, 우리는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말은 우리 안에 남아 있고, 이제부터 우리는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겠습니다. 안심하고 떠나세요. 당신은 우리를 발견했던 상태에서 우리를 영원히 꺼내 주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올바른 길에 놓였으니, 아버지의 집에 가서 아버지의 축복을 받게 될 때까지 그 길로 전진할 줄을 알겠습니다.’
  이와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나쁜 권고에 동의해서 사랑받는 아들을 유혹하고, 그가 자기 의무를 다하겠다고 고집했기 때문에 그를 바보라고 웃음거리를 만들어서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왜 같은 권고가 다르게 작용했습니까?’ 여러분은 대답을 안 하십니까? 그러면 실로에서 말한 것처럼 내가 말해 주겠습니다. 그것은 권고가 받아들여지거나 받아들여지지 않는데 따라서 가치를 얻거나 무효가 되거나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나쁜 권고로 유혹을 당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입니다. 그 사람이 죄짓기를 원치 않으면 죄를 짓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쁜 사람들의 암시를 들을 수 없었다고 해서 벌을 받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공정하시기 때문에 그 사람은 벌을 받지 않을 것이니, 하느님께서는 행해지지 않은 죄는 벌하지 않으십니다. 그가 그를 유혹하는 악의 말을 어쩔 수 없이 들은 다음, 그 권고의 성질과 출처를 깊이 생각하기 위하여 그의 지능을 쓰지 않고, 그 권고를 실천에 옮겨야만 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는 ‘그 권고를 좋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하고, 핑계를 댈 수가 없을 것입니다. 혹 하느님께서 불복종이나 불복종으로 이끌어가는 것에 찬성하시거나 동의하실 수가 있기라도 합니까? 당신의 율법에, 당신의 말씀에 반대되는 것에 하느님께서 강복하실 수가 있습니까? 나 분명히 말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또 분명히 말합니다만, 하느님의 율법을 어기기보다는 차라리 죽을 줄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권고를 실천에 옳기기를 원할 줄을 아느냐 혹은 원치 않을 줄을 아느냐 하는데 대해서 여러분을 올바른 사람이 되게 하기위하여 세겜에서 또 말하겠습니다. 가시오.”
  사람들은 이러쿵저러쿵 평들을 하면서 간다.
  “자네 들었나? 선생님은 저 사람들이 우리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알고 계시네! 그래서 우리에게 올바른 의지를 가지라고 강조하신 거야”하고 한 사마리아 사람이 말한다.
  “맞아. 거기 있던 유다인들과 율법학자들이 얼마나 낭패하는지 보았나?”
  “그래, 그들은 끝나는 것도 기다리지 않고 가버렸어.”
  “고약한 험구가들! 그렇지만… 선생님은 당신이 어떻게 할 생각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데, 그건 잘못이야. 난처한 일들을 장만하시는 거야. 에발산 사람들과 가리짐산 사람들은 몹시 흥분했었네!….”
  “나는… 환상을 품은 일이 절대로 없었네. 라삐는 라삐시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다 말하는 걸세. 라삐가 예루살렘의 성전으로 올라가지 않아서 죄를 지으실 수 있나?”
  “선생님은 돌아가시게 될 거야. 두고 보게!… 그러면 끝장일 거야!….”
  “누구의 끝장이란 말인가? 선생님의? 우리의? 또는… 유다인들의?”
  “선생님 말이지. 선생님이 돌아가시면!”
  “여보시오, 당신은 어리석기도 하오. 나는 에프라임 사람이오, 나는 선생님을 잘 아오. 나는 선생님 곁에서 옹근 두 달을, 두 달도 더 살았소. 선생님은 늘 우리와 말씀을 하셨소. 그것은 고통이기는 하겠지만… 그 분에게도 우리에게도 끝장은 아닐 겁니다. 성인 중의 성인은 죽어서 끝장이 날 수 없소. 우리도 이렇게 끝장이 날 수 없소. 나는… 무식쟁이오. 그렇지만 유다인들이 나라가 끝났다고 믿을 때 그 나라가 오리라는 것을 느끼고 있소…. 그리고 끝장이 날 것은 유다인들이오….”
  “당신은 제자들이 선생님의 원수를 갚을 거라고 생각하오? 반란? 학살? 그럼 로마인들은?….”
  “오! 제자들도 인간적인 복수도 학살도 필요 없소.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그들을 이기실 겁니다. 그분은 그보다 훨씬 덜한 일 때문에 여러 세기 동안 우리를 벌하셨소! 당신의 그리스도를 괴롭힌 죄 때문에 그들을 벌하지 않으시리라고 생각하시오?”
  “그들이 지는 걸 보았으면! 아!”
  “당신의 마음은 선생님이 원하시는 것과 같지 않소. 선생님은 당신의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시오….”
  “나는… 내일 선생님을 따라 가겠소. 선생님이 세겜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싶소.”
  “나도 역시.”
  “나도….”
  많은 레보나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에프라임과 실로 사람들과 형제같이 친하게 되면서, 다음 날 출발을 위하여 준비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