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서 개울가로 가자. 조국을 떠나서 회당이 없는 곳에 있는 히브리인들처럼, 우리끼리 안식일을 지내자. 다들 가자….” 하고 예수께서 집의 정원에서 한가로이 있는 사도들에게 말씀하신다. 그리고 한구석에 모여 있는 가엾은 세 아이에게 손을 내미신다.
어린 아이들은 큰 사건들을 경험한 조숙한 어린이들처럼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작은 얼굴에 수줍은 기쁨의 빛을 나타내며 달려온다. 그리고 큰 아이 둘은 그들의 작은 손을 예수의 큰 손 안에 놓는다. 그러나 제일 작은 아이는 안기기를 원한다. 그래서 예수께서 작은 아이를 안아주시자 만족해한다. 예수께서는 제일 큰 아이에게 말씀하신다.
“너는 내 곁에 있으면서 어제처럼 내 옷을 붙잡아라. 그러나 이사악은 너무 지치고 너무 작아서 혼자서 갈 수가 없단다….” 그 아이는 예수의 미소를 받아들여 수락하고 작은 어른처럼 예수 곁에서 걸어가는 것으로 만족한다.
“선생님, 아이를 제게 주십시오. 선생님은 어제 일로 아직 피로하실 테고, 루벤은 선생님의 손을 잡지 못해 괴로워합니다….” 하고 바르톨로메오가 말한다. 그리고 예수께로부터 아이를 빼앗아 가려하니, 아이는 예수의 목에 꼭 달라붙는다.
“녀석도 제 모든 족속과 같이 고집이 세구먼!” 하고 가리옷의 유다가 외친다.
“아닐세. 이 애는 불안해서 그러네. 자네는 어린 아이들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구먼. 어린 아이들이 슬프거나 겁이 날 때는 그들에게 미소를 보내고 그들을 위로한 첫 번째 사람에게서 피난처를 찾는 걸세.” 하고 바르톨로메오가 대꾸한다. 그리고 제일 작은 아이를 안을 수 없으므로 제일 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자애로운 미소를 보낸 다음 그의 손을 잡는다.
일행은 여인만이 남아 있는 집에서 나와 개울을 따라 마을 저쪽으로 간다. 새로 돋아나는 풀로 덮이고 풀밭에 피는 꽃이 점점이 박힌 개울가는 아름답다. 물은 맑고, 바위 사이로 흘러가며 졸졸 소리를 내며, 비록 물은 별로 많지 않지만, 모래 바닥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더 굵은 조약돌에 부딪혀 하프 뜯는 소리를 내고 졸졸 흘러가거나 갈대가 덮인 어떤 작은 섬의 굽이들 사이로 스며들거나 한다. 개울가에 있는 나무들에서는 새들이 즐거운 트레몰로로 노래를 부르며 날아가기도 하고, 햇볕을 잘 받는 가지에 앉아 그들의 첫 번째 봄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우아하고 날쌔게 내려와 땅에서 곤충과 벌레들을 찾거나 개울가에서 물을 먹거나 한다. 멧비둘기 두 마리가 물가의 굽이진 곳에서 미역을 감고 구구거리면서 부리로 서로 쪼아 준다. 그런 다음 꼭대기에 꽃이 핀 한 산사나무 가지에 어떤 양이 남기고 간 양털 뭉치를 부리에 물고 날아간다.
“멧비둘기들은 둥지를 지으려고 저러는 거예요.” 하고 아이들 중에 제일 큰 아이가 말한다. “저 멧비둘기들은 분명히 새끼들이 있어요….” 그는 처음 말을 할 때에 가벼운 미소를 약간 짓고 나서 고개를 푹 숙인다. 그리고 소리 없이 울면서 손으로 눈물을 닦는다.
바르톨로메오가 멧비둘기 두 마리가 둥지 짓는 일을 하는 것으로 그에게 준 상처를 이해하고 그를 안는다. 그리고 가장의 그 착한 마음씨로 한숨을 쉰다. 아이는 바르톨로메오의 어깨에서 울고, 둘째 아이는 그 눈물을 보고 저도 울기 시작하고, 셋째 아이도 따라서 울며 말을 하기 시작하는 그 작은 어린 아이 목소리로 아버지를 부른다.
“오늘은 이게 우리 안식일 기도가 되겠구먼! 선생님은 아이들을 집에 두고 오실 수도 있었을 텐데요! 이런 경우에는 여자가 우리들보다 적합합니다. 그리고….” 하고 가리옷 사람이 비평한다.
“그렇지만 할머니도 울면 어쩔 거야! 하긴 나도 눈물이 나오려고 하네…. 이런 것은 눈물을 흘리게 하는… 일이거든….” 하고 베드로가 둘째 아이를 안으면서 대답한다.
“그래 이런 것은 눈물이 나오게 하는 일이야, 맞아, 그리고 몹시 슬퍼하는 가엾은 노파인 야곱의 마리아는 위로할 능력이 썩 많지 않아.” 하고 열성당원이 확인한다.
“우리도 이 일에 별로 성공할 것 같지 않아. 이 애들을 위로하실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선생님뿐이었는데, 선생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단 말이야.”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구? 그래 그 이상 뭘 하실 수 있었나? 선생님은 도둑들을 설득하셨고, 아이들을 안고 여러 마일을 걸어오셨고, 아이들의 친척에게 알리는 일을 하셨네….”
“그건 모두 중요하지 않은 일이야. 죽음에까지도 명령하는 분이신 선생님은 양의 우리에 내려가서 목자를 다시 살려내실 수 있었어, 아니 오히려 살려내셔야 했어. 아무에게도 유익하지 않은 라자로를 위해서는 그렇게 하셨는데! 여기는 홀로 남은 아이들의 아버지, 그것도 홀아비인 아버지였는데… 그 부활은 필요 불가결한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까지 불손한 자네를 이해하지 못하겠네….”
“조용해라, 조용해! 유다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하느님의 이유와 죄의 결과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유다 한 사람만이 아니다. 요나의 시몬, 너도 죄 없는 어린 아이들이 왜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왜 부활하지 않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시몬의 유다를 판단하지 말아라. 내가 혼자서 멀리 가는 것을 항상 비난하는 유다가 만일 곰곰이 생각했다면, 내가 그렇게까지 멀리 갈 수 없었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과연 양의 우리는 예리고의 평야에 있었지만, 시내 저쪽을 강을 걸어서 건너는 곳 근처에 있었다. 내가 적어도 사흘 동안이나 멀리 가 있었다면, 너희들은 뭐라고 말했겠느냐?”
“선생님은 정신으로 죽은 사람에게 다시 살아나라고 명령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너는 내가 실제로 죽은 사람들을 다시 살려낸다고 말할 수 있게 되는 데에 있어서 이미 부패한 송장의 증거를 원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보다 더 까다로우냐?”
“그러나 그들은 선생님을 미워하기 때문에 그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선생님을 사랑하고 또 선생님이 모든 원수를 압도하시는 것을 보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렇게 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네 묵은 감정과 네 도를 지나친 사랑이다. 너는 네 마음에서 오래된 나무들을 뽑아내고, 그 대신 어린 나무들을 심을 줄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네게 가까이 온 빛으로 발육한 묵은 나무들은 더 한층 튼튼해졌다. 네 오류는 현재와 미래의 많은 사람이 가지는 오류이다. 즉 하느님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도움에 영웅적인 의지로 응하지 않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사람들의 오류 말이다.”
“저와 같이 선생님의 제자인 저 사람들은 혹 묵은 나무들을 부수었습니까?”
“그들은 적어도 많이 잘라내고 접을 많이 붙였다. 그런데 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너는 그 나무들이 접을 붙일 만한지 잘라낼 만한지 또는 뽑아버려야 할지 주의 깊게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유다야, 너는 사려 없는 정원사이다.”
“그렇지만 제 영혼에 대해서만 그렇습니다. 정원 일이라면 솜씨 있게 할 줄 아니까요.”
“너는 솜씨 있게 할 줄 안다. 너는 세상일은 무엇이든지 할 줄 안다. 나는 네가 하늘의 일에 있어서도 그와 마찬가지로 능력 있게 하는 것을 보았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선생님의 빛이 스스로 저희 안에서 가지가지 놀라운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 빛이 혹 좋지 않은가요? 만일 그 빛이 악을 풍부하게 하고 힘을 주면, 그 때에는 그것이 좋은 빛이 아니고, 저희가 착하게 되지 못하는 것은 그 빛의 탓입니다.”
“이 사람아, 자네 이야기나 하게. 나는 선생님이 내 나쁜 경향을 더 강하게 하셨다고 생각하지 않네.” 하고 토마가 말한다.
“나도 그래.” “나도” 하고 안드레아와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말한다.
“그리고 내 경우에는 선생님의 능력이 나를 악에서 구해 주었고, 나를 새 사람을 만들었네. 왜 그렇게 말하나? 자네 말하는 걸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있나?” 하고 마태오가 묻는다.
베드로가 말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곳을 떠나는 쪽을 택하여, 목에 어린 아이를 태우고 그를 웃게 하려고 배가 흔들리는 시늉을 하며 빨리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지나가면서 타대오의 팔을 잡고 외친다.
“저기 저 섬으로 가세. 섬에는 꽃바구니처럼 꽃이 가득하네. 나타나엘, 필립보, 시몬, 요한 가세…. 한번 펄쩍 뛰기만 하면 섬에 갈 수 있어. 이렇게 갈라져 있는 개울은 섬 양쪽에 실개천 둘에 지나지 않네….” 그러면서 제일 먼저 뛰어서 목장처럼 풀이 덮이고 첫 번째 핀 꽃들이 양탄자 모양을 만들어놓은 모래가 드러나 몇 미터 넓이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 한가운데에는 꼭대기가 가벼운 바람에 흔들리는 크고 날씬한 포플라 나무 한그루만이 있다. 베드로가 부른 사람들은 천천히 그가 있는 곳으로 가고, 곧 이어서 예수 더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이 따라 간다. 예수께서는 가리옷 사람에게 말씀을 하시느라고 뒤에 처져 계신다.
“아니, 저 사람 아직 끝내지 않았니?” 하고 베드로가 동생에게 묻는다.
“선생님은 그 사람의 마음에 작용하시는 중이야.” 하고 안드레아가 대답한다.
“어이구! 유다의 마음에 정의를 나게 하기보다는 이 나무에 무화가 열리게 하는 것이 더 쉬울 거다.”
“또 그의 지능에.” 하고 마태오가 한 술 더 뜬다.
“저 사람은 어리석기를 원하기 때문에, 또 어리석기를 원하는 것에 대해서 어리석어.” 하고 타대오가 말한다.
“저 사람이 괴로워하는 것은 복음을 전하라고 선택되지 않았기 때문이야. 난 그걸 알아.” 하고 요한이 설명한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내 대신 가고 싶다면… 난 정말이지 꼭 가고 싶지는 않아!” 하고 베드로가 외친다.
“우리 중의 아무도 꼭 가고 싶어 하지 않아. 그러나 그 사람은 원한단 말이야. 게다가 내 사촌은 그 사람을 보내기를 원치 않네. 나는 유다의 기분나빠하는 것과 그것이 머리에서 오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선생님께 그 말씀을 드렸었네. 그러나 예수님은 ‘바로 그가 병든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내 곁에 붙들어두는 거다. 고통을 당하고 약한 사람들이야말로 의사가 필요하고 그들의 힘을 돋우어 줄 사람이 필요한 거다.’ 하고 말씀하셨어.”
“그래!…맞아! … 얘들아, 오너라. 이제는 이 아름다운 갈대들을 꺾어서 작은 배들을 만들자. 봐라 얼마나 예쁘냐! 그리고 안에는 어부들 대신에 이 작은 꽃들을 넣자. 이 꽃들이 희고 붉은 두건을 쓴 머리와 같지 않나 보아라…. 여기는 항구를 만들자. 그리고 여기는 어부들의 작은 집들이다.…. 이제는 배를 이 가는 풀로 매고, 너희들은 배들을 물에 띄워라…. 그리고 고기잡이를 한 다음에는 개울가로 끌어올려라…. 너희는 섬을 한 바퀴 돌 수도 있다… 암초들을 조심해라 응!….”
베드로는 놀랄 만큼 참을성이 잇다. 그는 주머니칼로 갈대 조각들을 가공하여, 두 마디 사이를 깎고 한 쪽의 속을 드러나게 하고, 아직 봉오리로 있는 마거리트를 넣어서 어부 노릇을 하게하고, 모래를 파서 소인국의 항구를 만들고, 젖은 모래로 작은 집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즐겁게 하는 그의 목적을 달성하고는 만족하여 앉으면서 중얼거린다. “불쌍한 어린 것들!….”
예수께서는 마침 두 아이가 놀이를 시작할 때에 섬에 발을 들여놓으신다. 그리고 제일 어린 아이를 땅에 내려놓으면서 두 아이를 쓰다듬어 주신다. 제일 작은 아이도 형들의 놀이에 어울린다.
“내가 너희들 차지다. 이제는 하느님에 대해서 말하라. 하느님에 대해서 말하고 하느님께 말씀을 드리는 것이 사명에 대한 준비를 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기도를 드린 다음, 즉 하느님께 말씀을 드린 다음, 좋은 것에 대해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모든 것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에 대해서 말하자. 자, 일어들 나서 기도하자.” 그러면서 히브리말로 시편을 노래하기 시작하시니 사도들도 같이 노래한다.
작은 배를 가지고 멀어져 갔던 어린 아이들은 이 어른들이 노래하는 것을 듣고 그들의 목소리의 종알거림과 그들의 놀이를 중단하고 가까이 온다. 그들은 그들 생각에 모든 것이 예수께로 눈을 고정시키고 주의 깊게 듣는다. 그런 다음 어린이들의 모방 정신으로 기도하는 사람들과 같은 자세를 취하고, 시편의 말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곡조를 흥얼거리면서 노래를 따라 하려고 해본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내려다보시고, 죄 없는 작은 목소리들의 노래를 격려하는 미소로 그들을 바라보신다. 자기들이 인정을 받는다는 것을 느끼고 어린 아이들은 다시 용기를 낸다….
시편의 노래가 끝난다. 예수께서는 풀에 앉으셔서 말씀하기 시작하신다.
“이스라엘의 왕들과 요람의 왕과 유다의 왕이 모압의 왕을 공격하려고 모여서 엘리사 예언자에게 의견을 청하려고 문의했을 때, 엘리사는 왕의 사자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만일 내가 유다의 왕 여호사밧을 존경하지 않으면, 당신을 바라보지도 않았을 거요. 그러나 이제는 칠현금 타는 사람을 데려오시오.’ 그리고 거문고 타는 사람이 연주를 하는 동안 하느님께서는 당신 예언자에게 말씀하시어 사람들과 가축들이 마실 물이 가득 채워지도록 마른 개울에 여러 구덩이를 파라고 명령하게 하였다. 그런데 아침 제사 시간에 바람이나 비가 없었는데도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것과 같이 개울에 물이 가득 찼다. 너희들 생각에는 이 삽화의 교훈은 무엇이냐? 말해보아라”
사도들은 서로 의논을 한다. 그리고 어떤 사도들은 이렇게 말한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에는 하느님께서 말씀을 하지 않으십니다. 엘리사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 위해, 자기가 이스라엘의 왕 앞에 있는 것을 보는 데에서 오는 그의 분개를 가라앉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더러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정의의 교훈입니다. 엘리사는 죄 없는 유다의 왕을 벌하지 않기 위해 죄 있는 사람까지 구원합니다.” 또 더러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순종과 믿음의 교훈입니다.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상식 밖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구덩이들을 팠습니다. 그리고 하늘은 맑고 바람이 없는데도 물을 기다렸습니다.”
“잘들 대답했다. 그러나 완전히 잘 대답하지는 못했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에는 하느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신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하프는 필요치 않다. 영적인 하프이고 천당의 곡조를 주는 사랑만 있으면 넉넉하다. 어떤 영혼이 사랑 속에서 살면, 평온한 마음을 가지고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이해한다.”
“그러면 엘리사는 마음이 흔들렸으니까 사랑을 가지고 있지 않았군요.”
“엘리사는 정의의 시대 사람이었다. 옛날 삽화들을 사랑의 시대로 옮겨올 줄 알아야 하고, 그것들을 벼락의 빛으로 보지 말고 별빛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 너희들은 새 시대의 사람들이다. 그런데 왜 옛날 사람들보다 더 성을 잘 내고 더 마음이 어지러운 때가 그렇게도 많으냐? 과거를 벗어버려라. 설령 되풀이 되는 이 말을 듣는 것이 유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이 말을 되풀이 한다. 뽑고, 자르고, 접붙이고, 새 나무들을 심어라. 새로워지고, 겸손과 순종과 믿음의 구덩이들을 파라.
저 왕들은 그렇게 할 줄을 알았다. 그리고 그들은 한 사람에 대해서 두 사람이 유다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예언자가 지극히 높으신 분의 뜻을 전하는 것을 들었었다. 그들이 순종할 줄을 몰랐더라면 물이 없어서 목이 말라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순종했고, 그들이 판 구덩이들에 물이 가득히 찼을 뿐 아니라, 적들을 이기기도 하였다. 나는 생명의 물이다. 나를 받기 위하여 너희 마음속에 구덩이를 파라.
그리고 이제는 들어라. 긴 강연을 하지 않고, 너희들이 묵상하라고 몇 가지 생각을 주겠다. 너희들은 항상 이 어린 아이들과 같을 것이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죄가 없는데 너희들은 그렇지 못하니 이 아이들보다도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너희가 묵상하는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너희 안에 잇는 영적인 빛이 더 흐릴 것이다. 너희들이 항상 듣기는 하지만, 너희 지능이 활동을 하지 않고 자고 있기 때문에 도무지 기억하지를 못한다. 그러므로 들어라. 수넴 여자가 아들을 잃었을 때, 비록 남편이 그 달 초하루가 아니고 안식일이 아니라고 말했지마는, 예언자를 만나러 가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 여자는 어떤 일을 지체할 수가 없기 때문에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여자가 사정을 영적으로 이해할 줄 알았기 때문에, 그들의 부활을 얻게 되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것이 안식일 문제에 대하여 제게 대한 비난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가리옷 사람이 말한다.
“유다야, 그러니까 네가 원할 때에는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겠구나? 그러니 네 정신을 저의를 향해 열어라.”
“예… 그러나 선생님은 사람을 다시 살려내시기 위해 안식을 어기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그보다 더한 일을 했다. 나는 이 아이들의 파멸과 죽음을 진짜 죽음을 막았다. 그리고 도둑들에게 상기시켜서….”
“오! 무슨 일을 하셨다고 하시며 스스로 마음을 달래시려면 기다리십시오! 저는 그들이 선생님께 복종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엘리사 자신도 수넴 여인의 이야기에 이런 말을 했어. ‘주님께서 그것을 비밀로 해 두셨다’고. 그러니까 예언자들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어.” 하고 가리옷 사람이 대꾸한다.
“우리 사촌은 예언자보다 더하신 분일세.” 하고 타대오가 지적한다.
“나도 아네. 하느님의 아들이시지. 그러나 또 사람이기도 하셔. 사람으로서는 회개와 반성 같은 부차적인 일들은 알지 못하는 것을 면치 못하실 수도 있단 말이야…. 선생님, 정말 언제나 모든 것을 항상 아십니까? 저는 자주 그걸 의아스럽게 생각합니다….” 하고 가리옷 사람이 끈질긴 욕망을 가지고 고집한다.
“그런데 어떤 정신으로 그러는 것이냐? 네가 평화를 얻으려고 그러느냐? 너 자신에게 어떤 충고를 주기 위해서냐? 너 자신을 괴롭히기 위해서냐?” 하고 예수께서 물으신다.
“아니… 그건 모르겠습니다. 저는 의아하게 생각하고 또….”
“그런데 자네는 그걸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불안한 것 같구먼” 하고 토마가 말한다.
“내가? 어쩔 줄 모르면 확실히 언제나 마음이 불안해지는 거지….”
“번쇄한 이론이 많기도 하군! 나는 나 스스로에게 그렇게 많은 질문은 하지 않네. 나는 그렇게까지 알려고 애쓰지 않고 믿네. 그리고 조금도 고민에 빠지지도 않고 불안하지도 않네. 그러나 선생님이 말씀하시게 가만히 있세. 이 강의는 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선생님, 아름다운 비유를 하나 말씀해 주십시오. 비유는 아이들도 좋아할 것입니다.” 하고 베드로가 말한다.
“또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다. 이것이다. 예언자들의 아들들의 수프에서 쓴 맛을 없애는 밀가루가 너희들 생각에는 무엇을 뜻 하느냐?”
깊은 침묵이 이 질문에 대답한다.
“아니? 대답할 줄을 모른단 말이냐?”
“아마 밀가루가 쓴 맛을 흡수하는 것이겠지요….” 하고 마태오가 별로 자신 없이 말한다.
“모든 것이, 밀가루까지도 썼던 모양인데.”
“하인을 괴롭히기를 원치 않는 예언자의 기적으로요.” 하고 필립보가 암시한다.
“그것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주님께서는 물질적인 일에 대해서 까지도 예언자의 능력을 빛나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하고 열성당원이 말한다.
“그렇다. 그러나 그것도 아직 올바른 의미가 아니다. 예언자들의 생애는 때가 꽉 찼을 때에, 즉 내 때에 어떠하리라는 것을 예견한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의 내 생활을 상징과 표상으로 보여준다. 그러므로….”
침묵이 흐른다. 그들은 서로 바라본다. 그러다가 요한이 고개를 숙이고, 얼굴이 빨개지며 미소를 짓는다.
“너는 왜 네 생각을 말하지 않느냐, 요한아?” 하고 예수께서 물으신다. “네가 어떤 사람을 괴롭히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니, 말하는 것은 사랑을 어기는 것이 아니다.”
“제 생각은 그것이 이러한 뜻인 것 같습니다. 진리에 굶주리고 지혜의 기근이 들었던 시절, 즉 선생님이 오신 시절에, 모든 나무가 야생상태로 돌아가서, 사람의 아들로서는 먹을 수가 없고 독이 든 것 같은 쓴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아들들은 그 열매들을 따야 소용이 없었고, 먹으려고 조리를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자하신 영원한 분께서는 아주 고운 특선 밀가루이신 선생님을 보내셨고, 선생님은 선생님의 완전으로 모든 음식에 원래 가졌던 좋은 맛을 돌려주시고, 여러 세기 동안 변질 되었던 성경의 나무들과 사용으로 타락했던 사람들의 미각을 다시 좋게 만드심으로 모든 양식에서 돌을 없애십니다. 이 경우에는 밀가루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셔서 그것을 쓴 수프에 부으시는 분은 선생님의 아버지이시고, 선생님은 사람들의 양식이 되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밀가루이십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다 이루어지신 다음에는, 하느님과의 우정을 다시 맺어놓으실 터이니까 세상에는 쓴 것이 아무 것도 없게 될 것입니다. 제가 잘못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다, 잘못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이 상징이다.”
“오! 자넨 어떻게 해서 그런 생각을 했나?” 하고 베드로가 묻는다.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네가 조금 전에 한 말을 가지고 네가 말하겠다. 한번 펄쩍 뛰기만 하면 고요한 영성의 섬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한번 뛰어 올라서 개울가를, 세상을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뛰는 것이 서투르다고 웃거나, 쓸쓸한 섬을 세상보다 낫게 여기는 우리의 지나친 순진성을 비웃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생각해보지 않고 뛰어야한단 말이다. 상처를 입거나 물에 젖거나 실망할 것을 겁내지 말고 뛰어야한다.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느님께로 피해 들어가야 한다. 세상에서 떨어진 섬에 자리 잡고, 개울가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밖에 없는 나무, 즉 지혜의 나무만이 있는 영의 섬에서 딴 꽃과 같은 물을 나누어주기 위해서만 거기서 나와야 한다. 세상의 요란한 소음에서 멀리 떨어져 지혜의 나무 곁에 있으면, 그 나무의 모든 말을 듣고 제자일 줄 알면서 선생이 된다. 이것도 하나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제는 아이들을 위해 아름다운 비유를 하나 이야기 하자. 이리 아주 가까이들 오너라.”
세 어린이는 어떻게 가까이 오는지 숫제 예수의 다리 위에 앉는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팔로 감싸고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하루는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는 사람을 만들겠다. 그리고 사람은 지상 낙원에서 살 것이다. 그곳에서는 큰 강이 있는데 , 그 강이 그 후 피손, 게혼,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이렇게 네 강으로 나누어져서 세상에 두루 흐를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만물 중에 있는 모든 아름다움과 모든 좋은 것, 그리고 그의 영의 기쁨을 위해 내 사랑을 차지할 것이기 때문에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셨다. 그것은 마치 사람이 큰 섬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섬보다도 훨씬 꽃이 더 많이 피고 가지가지 나무와 모든 짐승이 있는 섬이었다. 그리고 저 위에는 하느님의 사랑이 있어 영혼에 해 노릇을 하고, 바람 속에는 새 노래보다도 더 듣기 좋은 하느님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꽃이 만발한 이 아름다움 섬에, 모든 짐승과 모든 초목 가운데로, 하느님이 만드신 독 있는 이빨이 없고, 나긋나긋한 몸의 구부러지는 부분에 사나운 기운 없이 착한 짐승과는 다른 뱀이 기어서 들어왔다. 그 뱀도 다른 짐승들의 가죽처럼 보석 빛깔 같은 가죽이 덮여 있었다. 뱀은 저를 다른 짐승들보다도 더 아름답게 꾸며서 낙원의 찬란한 나무들 가운데로 미끄러져 앞으로 나아오는 커다란 왕의 목걸이처럼 보이게까지 되었다. 뱀은 낙원 가운데 서 있는 나무에 가서 칭칭 감겼다. 그 나무는 외따로 떨어져 있는 나무였는데, 다른 나무보다도 훨씬 더 크고, 훌륭한 잎이 덮여 있고 훌륭한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그런데 뱀은 아름다운 나무 둘레에 매달린 보석과 같이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고 모든 짐승들이 바라보고 있었다. 왜냐하면 아무도 뱀이 창조되는 것을 본 기억이 없고, 그 시간 전에 그 놈을 본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뱀에게 가까이 가지는 않았다. 오히려 뱀이 줄기에 감겨 있는 지금은 모든 짐승이 그 나무에서 멀리 떨어져 갔다.
남자와 여자만이 뱀에게 가까이 갔다. 여자는 햇빛에 반짝이고, 반쯤 벌어진 꽃과 같은 대가리를 움직이고 있는 그 빛나는 물건에 홀렸기 때문에 남자보다 먼저 가까이 갔다. 여자는 뱀이 말하는 것을 듣고 주님께 복종하지 않았고, 아담도 복종하지 않게 하였다. 그들은 복종하지 않은 다음에야 뱀의 정체를 보았고, 그들의 죄를 깨달았다. 이제는 그들이 마음에 죄 없는 생태를 잃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을 찾으시는 하느님을 피하려고 숨었고, 물어보시는 하느님께 거짓말을 했다.
그 때에 하느님께서는 낙원의 경계에 천사들을 가져다 두시고 사람들을 내쫓으셨다. 마치 사람들이 에덴동산의 조용한 강가에서 봄에 물이 불었을 때처럼 물이 가득히 찬 강에 던져진 것과 같았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쫓겨난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들의 영원한 운명의 기억을, 즉 하느님의 사랑 넘치는 목소리를 듣던 아름다운 동산을 나온 기억, 그들이 하느님을 완전히 누렸을 낙원을 지나온 기억을 남겨 주셨다. 그리고 이 기억과 더불어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올바를 생활을 함으로써 잃어버린 곳으로 거슬러 올라가고자 하는 거룩한 자극도 남겨 주셨다.
그러나 얘들아, 배가 물 흐름을 따라 내려갈 때에는 쉽게 가지만, 물을 거슬러 올라올 때에는 물 위에 떠 있고, 물에 떠밀리지 않고, 흐르는 물 속에 있는 풀과 모래 또는 돌에 부딪혀 가라앉지 않기가 어렵다 것을 방금 경험했다. 만일 시몬 베드로가 너희 작은 배들을 개울가의 골풀로 붙잡아매지 않았더라면, 골풀을 놓쳤기 때문에 이사악이 당한 것처럼, 너희도 배를 모두 잃었을 것이다.
이 세상의 흐르는 물에 던져진 사람들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골풀과 같은 그들의 뜻을 하느님께 맡겨 드리고, 하늘에 계신 착한 아버지시며, 모든 사람, 그 중에서도 특히 죄 없는 어린이들의 아버지의 손에 맡겨 드리면서 항상 하느님의 손 안에 남아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하느님께 결합해 있게 하는 의지의 끈을 잡아채서 그들의 영혼의 배를 붙들거나 놓거나 깨뜨리거나 집어삼킬 수 있을 풀과 골풀, 돌, 소용돌이, 진흙 따위를 피하기 위해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는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제는 낙원에 있지 않고 이 세상에 있는 뱀이 바로 영혼들을 파선하게 하려고 애쓰고,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와 게혼과 피논강을 거슬러 올라가서, 영원한 낙원에서 흐르면서 생명과 구원의 나무에 물을 주는 큰 강에 이르지 못하도록 방해하려고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과 구원의 나무들에는 영원한 열매가 열려, 하느님과 그분의 천사들과 결합하기 위하여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올라갈 줄 안 모든 사람이 더 이상 아무 고통도 당할 필요가 없이 즐길 것이다.”
“엄마도 그런 말을 했어요.” 하고 아이들 중의 제일 큰 아이가 말한다.
“그래. 엄마가 그렇게 말했어.” 하고 제일 어린 아이가 종알거린다.
“너는 그걸 몰라. 나는 크니까 알 수 있어. 그렇지만 네가 정말 아닌 걸 말하면 천당에 들어가지 못해.”
“그렇지만 아버지는 참말인거 하나도 없다고 말했어.” 하고 둘째가 반박했다.
“그건 아버지가 엄마의 주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야.”
“네 아버지는 사마리아 사람이 아니었었니?” 하고 알패오의 야고보가 묻는다.
“네, 아버지는 딴 데서 왔었어요. 그렇지만 엄마는 사마리아 사람이었고, 우리도 사마리아 사람이예요. 엄마가 우리도 엄마 같기를 바랐거든요. 그리고 엄마도 우리한테 천당과 낙원 이야기를 해줬어요. 그렇지만 선생님만큼 잘은 못했어요. 나는 뱀과 죽음이 무서웠어요. 엄마는 뱀을 마귀라고 말하고. 아버지는 죽으면 모두 다 끝난다고 말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혼자 있게 돼서 아주 불행했어요. 그리고 이제는 착한 것이 쓸데없다고 말했었어요. 그리고 아버지와 엄마가 있을 때는 우리가 착하면 아버지 엄마가 행복하게 되었지만, 이제는 우리가 착해도 기쁘게 해 줄 사람이 없게 됐으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반대로 나는 알아요…. 나는 착하게 될 거예요. 나는 세상의 물에 떠내려 갈까봐 겁이 나기 때문에 하느님의 손에 내 줄을 도무지 없애지 않을거예요.”
“그렇지만 엄마는 저 위로 갔어. 저 아래로 갔어?” 하고 둘째 아이가 당황해서 묻는다.
“애야, 너 무슨 말을 하는 거냐?” 하고 마태오가 묻는다.
“엄마가 어디 갔나? 하고 말하는 거야. 엄마는 영원한 낙원의 강에 간 거야?”
“얘야, 그렇기를 바라자. 엄마가 착하게 살았으면….”
“그 여자는 사마리아 여자였는데….” 하고 가리옷 사람이 경멸하는 어조로 말한다.
“그럼 우리는 사마리아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에겐 천당이 없는 거야? 그럼 우린 하느님도 없는거야? 선생님은 ‘모든 사람의 아버지’ 라고 불렀는데. 고아인 나는 아직도 아버지를 한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게 좋았는데… 그렇지만 우리한테는 아버지가 없어….”
그러면서 슬퍼서 고개를 떨어뜨린다.
“얘야, 하느님은 모든 사람의 아버지이시다. 네가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해서 혹 내가 너를 덜 사랑했니? 나는 너를 도둑들에게서 구해주었다. 그리고 만일 예루살렘의 성전의 대사제가 구세주가 그의 아이를 구해 주는 것을 치욕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그의 손자를 마귀에게서 구해 줄 것처럼 너를 마귀에게서도 구해 주겠다. 그리고 너는 외톨이고 불행하니, 너를 한층 더 구해 주기까지 하겠다. 내게는 유다인의 영과 사마리아 사람의 영 사이에 구별이 없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사마리아와 유다 사이에 구별이 없어질 것이다. 그것은 메시아가 그의 이름을 가질 오직 하나의 백성만을 가질 것이고 그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그의 백성 안에 들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 나는 주님을 사랑해요. 그렇지만 주님은 나를 엄마한테 데려다 주시겠어요?” 하고 세 아이 중의 제일 큰 아이가 묻는다.
“형은 엄마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면서, 이 사람은 바랄 수만 있다고 말했어….” 하고 둘째가 말한다.
“나는 알지 못해. 그렇지만 주님은 안다. 주님은 우리가 어디 있는지 알았어. 우리는 반대로 우리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어.”
“도둑들하고 있었어…. 도둑들이 우릴 죽이려고 했어….” 둘째의 작은 얼굴에 공포의 빛이 다시 나타난다.
“도둑들은 마귀와 같았어. 그렇지만 주님은 우리 천사들이 불렀기 때문에 우릴 구해 주셨어.”
“엄마도 천사들이 구해줬어. 난 늘 엄마 꿈을 꾸니까 그걸 알아.”
“이사악, 너는 거짓말쟁이야. 넌 엄마 꿈을 꿀 수 없어. 넌 엄마를 기억하지도 못한단 말이야.”
꼬마는 울면서 말한다. “아니야, 아니야. 난 엄마 꿈을 꿔. 난 엄마 꿈을 꾼단 말이야….”
“루벤아, 네 동생을 거짓말쟁이로 취급하지 말아라. 네 동생의 영혼은 엄마를 볼 수 있다. 하늘에 계신 착한 아버지께서는 당신 자신을 알도록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것처럼 고아에게 엄마 꿈을 꾸고 엄마를 부분적으로 아는 것을 허락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제한된 지식에서 하느님을 완전히 알겠다는 착한 뜻이 오는 것인데, 이것은 항상 아주 착하게 살면 얻는 것이다. 그럼 이제는 가자. 우리가 하느님에 대한 말을 했으니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냈다.” 예수께서는 일어나셔서 다른 시편들을 노래하기 시작하신다.
에프라임 사람들이 합창소리를 들으면서 가까이 온다. 그리고 공손하게 시편이 끝나기를 기다려서 인사를 하고 예수께 말한다. “선생님은 저희들과 같이 계시는 것보다 이리로 오시는 길을 택하셨군요. 그러면 저희를 사랑하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당신들 중의 아무도 나를 초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 사도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이리로 왔습니다.”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선생님의 제자가 저희의 소원을 선생님께 말씀 드렸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요한과 유다를 바라보신다. 그러니까 유다가 대답한다.
“어제는 그것을 말씀드리는 것을 잊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이 아이들 때문에 그걸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 동안 예수께서는 작은 섬을 떠나셔서 작은 실개천을 지나 에프라임 사람들 곁으로 가신다. 사도들도 예수를 따라 가는데, 아이들은 남아 있는 갈대배 두개를 끄르느라고 지체한다. 그리고 물어보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설명한다. “교훈을 기억하기 위해서 이 배들을 간직하려고 그래요.”
“그럼 나는? 난 그걸 잃어버렸어. 그러니까 생각을 못할 거구 천당에도 못 갈 거야.” 이렇게 말하면서 제일 작은 아이는 운다.
“울지 말고 기다려라! 작은 배 하나를 이내 만들어 주마. 물론, 너도 교훈을 기억해야지. 어! 우리 모두가 이 물에 달려 있는 이 애의 골풀로 작은 배를 하나씩 만들어서 기억해야 할 거다. 너희 어린이들보다도 어른들인 우리에게 그것이 더 필요할 것이다! 아아!” 그러면서 베드로는 그의 골풀을 깎아서 작은 배 하나를 만든다. 그리고 한꺼번에 세 아이를 안고 실개천을 껑충 뛰어 건너 예수의 곁으로 간다.
“이 아이들입니까?” 하고 에프라임의 말라키아가 묻는다.
“이 아이들입니다.”
“그런데 이 애들이 세겜의 아이들입니까?”
“목동의 말로는 그렇습니다. 그 애 친척들이 그 시골에 있다고 했습니다.”
“가엾은 어린 것들! 그러나 만일 친척들이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가 데리고 있겠습니다. 그러나 친척들이 올 것입니다.”
“그 도둑들… 그들도 오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시오. 혹 그들이 온다 하더라도… 내가 그들의 것을 훔치지, 그들이 당신들의 것을 훔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그들에게서 벌써 희생자 넷을 빼앗았고, 또 그들의 영혼을 죄에서 조금 끌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그 중 한 사람의 경우에는.”
“저희들이 이 아이들을 위해서 선생님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이 이것은 저희들에게 허락하십시오.”
“그러겠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당신네 지방 아이들이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라, 죄가 없는 아이들이기 때문이고, 또 죄 없는 어린이들에 대한 사랑은 하느님께로 빨리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죄한 어린이들 사이에 구별을 두지 않는 것은 선생님뿐이십니다. 유다인이라면 이 어린 사마리아 아이들을 거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갈릴래아 사람도 그랬을 것이구요. 저희들은 사랑을 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저희들을 사랑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것이 무엇이고 유다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직 알지도 못하는 어린이들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가혹한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내 율법을 따를 때에는 그런 일이 없어질 것 입니다. 말라키아, 보시오. 아이들은 지금 시몬 베드로와 내 사촌과 열성당원에게 안겨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의 아무도 사마리아인이 아니고, 아버지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내 제자들이 사마리아의 고아들에 대해서 하는 만큼 많은 사랑을 가지고 당신 자신의 아이들을 껴안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메시아의 사상입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 안에 모으는 것입니다. 이것이 메시아 사상의 진리 입니다. 세상에서는 메시아의 왕권 아래 오직 한 백성. 하늘에서는 오직 한 분 뿐이신 하느님의 눈길 아래 오직 한 백성.”
그들은 말을 하면서 야곱의 마리아의 집을 향하여 떠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