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고 맑은 겨울날들이다. 노베 마을이 서 있는 작은 산의 꼭대기에는 말하자면 바람이 불지 않는 때가 없다. 그러나 바람은 해로 인하여 완화된다. 해는 새벽부터 넘어갈 때까지 집들과 겨울 채소가 푸르러지는 텃밭들을 햇살로 어루만진다. 집으로 바람이 막아져서 푸른채소가 나 있는 작은 화단같은 것으로 되어 있는 작은 텃밭들과 채소 씨앗을 뿌리려고 벌써 준비를 해놓은 아무 것도 없고, 거름을 잘 주었을 때의 흙빛깔을 띤 다른 텃밭들이다.
눈을 들어 빙 둘러 보면, 단조로운 올리브나무들과 잎이 떨어진 꾸불꾸불하고 앙상한 포도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지 않은 곳에는 벌써 곡식 종자를 뿌린 경작된 작은 밭들이 보인다. 그 씨앗들은 햇볕으로 따스워진 철 이른 팔레스티나의 봄의 처음 온화한 날씨에 싹이 틀 참이다. 내가 보고 있는 것과 같이 맑은 날씨에는 벌써 봄의 온화함, 싹을 트게 하는 온화함이 느껴져서, 집들의 담에 기대 심은 편도나무들에는 며칠 전까지도 아주 메말랐던 가지에 눈들이 부풀어 오른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우중충한 가지에서 겨우 나오기 시작한 아직은 가지와 마찬가지로 우중충하지만, 생명이 올라온다는 것을, 튼튼한 줄기가 깨어날 날이 가까웠다는 것을 벌써 증명하는 눈들이다.
집 뒤에 있는 요한의 작은 정원에는 가꾸어진 띠모양의 작은 땅이 있는데, 한쪽에는 호두나무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작은 띠 모양으로 된 땅에 아마 주인보다도 더 늙은 큰 편도나무가 서 있는데, 집에 하도 바싹 기대 있어서, 한편은 작은 집의 벽으로 방해가 되기 때문에 줄기의 상당한 부분에서는 가지가 세 방향으로만 뻗어 나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더 올라가면, 나무는 가지들이 얼기설기 어지럽게 엉키어 있다. 그 가지들은 꽃이 만발할 때에는 초라한 옥상에 가벼운 꽃구름을 드리우고, 왕의 닫집보다 더 아름다운 값진 천막을 만들어 놓을 것이다.
한가로이 있지 않기 위하여 예수와 사도들은 흥겹게 하고 따뜻하게 하는 햇볕을 받으며 일을 한다. 짧은 옷을 입고, 목수일 이나 철물다루는 일에 정통한 사람들은 연장을 고치거나 새 연장과 액자를 만들거나 한다. 어떤 사람들은 땅을 다시 갈고, 모종낸 채소를 북돋우고, 작은 정원 양쪽에 울타리를 만들고 있는 마른 갈대와 푸른 산사나무 울타리를 보강한다. 또는 편도나무와 호두나무의 가지를 치고, 겨울바람에 풀어진 포도나무 덩굴들을 맨다. 나는 예수께서 계신 곳에서는 절대로 한가하게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눈여겨보았다. 복음전파의 일이 중단되었을 때에는 예수께서 제일 먼저 육체노동의 아름다움을 가르치신다. 오늘도 예수께서는 밑부분이 썩고 자물쇠가 반쯤 떨어진 문을 고치시느라고 사도들과 같이 일하신다. 한편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는 전지가위와 낫을 가지고 늙은 파일나무를 다듬고 어부들은 밧줄과 헌 담요들을 가지고 이것저것 들어 맞추는데, 더러는 매우… 남성적인 수리를 하고 더러는 아마 여름에 유익한 차일을 옥상에 만들려는 생각으로 고리와 도르레들을 만들어 놓는다.
“엘리사 아주머니, 아주머니는 여기서 아주 편하시겠어요” 하고 베드로가 늙은 여자 제자에게 말하기 위하여 옥상의 낮은 담 위로 몸을 구부리면서 약속한다. 엘리사는 해가 잘 드는 벽에 기대앉아서 양털로 실을 만들고 있다.
“그래. 포도나무를 붙잡아 매놓고 편도나무를 정리하고 나면, 여기는 여름에 정말 좋은 곳이 될 거야” 하고 필립보가 포도 덩굴을 지주(支柱)에 매는 골풀들을 입에 물고 있기 때문에 입 안에서 어물어물 말한다.
예수께서 머리를 들고 쳐다보시는데, 엘리사가 선생님을 쳐다보려고 고개를 들고 말한다. “우리가 여름에 여기 있게 될지 누가 알겠어요?….”
“왜 여기 있지 못할 겁니까? 아주머니?” 하고 안드레아가 묻는다.
“그래도… 나는 모르겠어요…. 나는 얼마 전부터는… 계획을 하지 않게 됐어요. 내 예측이 모두 무덤으로 끝나는 것을 본 다음부터요”
“오! 그렇지만 선생님이 돌아가셔야만 우리가 여기 오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선생님이 이곳을 거처로 택하셨거든요. 그렇지요, 선생님?” 하고 토마가 묻는다.
“그렇다. 그러나 엘리사 아주머니가 말하는 것도 사실이다…”하고 예수께서 고치시는 문의 옆구리를 대패로 손질하시면서 대답하신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젊으시고 건강이 좋으신데요!”
“사람이 병으로만 죽는 것이 아니다”하고 예수께서 또 말씀하신다.
“누가 죽음 이야기를 합니까?” 하고 바르톨로메오가 말한다. “선생님이? 선생님에 대해서요?…. 정말이지 얼마 전부터 원한이 가라앉은 것 같습니다. 보십시오. 이제는 아무도 저희를 방해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은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을 압니다. 바로 어제도 물건들을 사가지고 시내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들을 만났는데, 저희를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예, 저희들도 선생님이 여기 계시다는 것을 알리려고 이웃 마을 여러 군데로 다니는데 그랬습니다. 아무 난처한 일도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저희들은 엘키아와 시몬을 만났고 다음에는 사독과 사무엘을, 그리고 바로 도라와 나홈도 만났습니다. 그 사람들이 저희들에게 인사까지 했습니다. 형, 그렇지?” 하고 요한이 야고보를 보고 말한다.
“그래. 우리 마음속으로 가리옷의 유다를 비난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일을 잘 했다는 것을 인정해야겠어. 이리 돌아오고 나서도 아무런 난처한 일도 없었어! 유다의 말이 사실로 확인됐어. ‘고운 내’의좋은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그 시절이 시작되던 때로 말이야…. 오! 그것이 참말이었으면!” 하고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말한다.
“그게 사실일 수 있었으면!” 하고 베드로가 한숨지으며 말한다. “천둥이 우르릉거리지 않는다고 날씨가 늘 맑은 건 아니예요” 하고 엘리사가 물레가락(실을 자아 감는 토리 구실을 하는 막대기)을 돌리면서 격언조로 말한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하고 베드로가 묻는다.
“돌풍이 불 위험이 있는 곳에서는 아주 고요한 것이 때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위험한 폭풍의 전조란 말이예요. 어부인 당신도 그걸 알고 있을 거예요.”
“어! 알고말고요. 아주머니! 호수가 때로는 파란 기름이 가득 찬 엄청나게 큰 대야 같습니다. 그러나 돛이 늘어져 있고, 물이 이렇게 움직이지 않고 있을 때는 거의 언제나 돌풍이, 그것도 가장 못된 것 중의 하나가 가까이 와 있습니다. 잔잔한 바람은 뱃사람들에게는 무덤의 바람입니다.”
“흠!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당신들이라면 이렇게 많은 평화를 경계할 겁니다. 너무 평화로워요!”
“아니 그렇다면! 전쟁이 있는 동안에는 전쟁이 있기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평화가 있을 매에는 한층 더 잔인한 전쟁이 올지도 모르니까 고통을 당한다면, 언제 기쁨을 누리게 됩니까?”하고 토마가 묻는다.
“저 세상에서요. 여기에는 고통이 늘 준비되어 있어요….”
“아이고! 아주머니는 정말 음울하십니다! 제 기쁨의 때는 매우 멀리 떨어져 있군요. 저는 제일 나이 적은 축에 드니까요! 바르톨로메오, 자네는 기뻐하게. 자네 기쁨을 누릴 때가 더 가까우니까 말이야. 자네와 열성당원하고” 제베대오의 야고보는 이렇게 농담을 한다.
“아주머니는 음울하고 꾀바르십니다! 아! 나이 많은 여자들! 그렇지만 그 여자들이 가끔 알아맞힙니다. 제 어머니도 너희 중의 한 사람에게 ‘조심해라! 너는 이러저러한 동기로 어리석은 짓을 하려는 참이다’하고 말씀하시면 언제나 맞히시거든요’하고 토마가 말하고, 땅을 긁으려고 몸을 구부린다.
“여자들은 여우들보다도 더 약삭빠르고 음흉해. 여자들이 이해하지 못하기를 우리가 바라는 어떤 일들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여자들에 비해서 아무 것도 아니야”하고 베드로가 점잔을 빼며 말한다.
“형은 잠자코 있어. 형은 레바논 산맥이 버터로 되어 있다고 말해도 정의 말을 믿을 여자를 만났단 말이야. 형이 말하는 것은 형수님에게는 율법과 같단 말이야. 형의 말을 듣고 믿고 잠자코 있거든” 하고 안드레아가 형에게 말한다.
“그래… 하지만 내 처의 어머니는 당신 몫에다가 다른 여자 백 명몫은 한단 말이야. 얼마나 흉악한지!”
엘리사와 젊은이들이 땅을 두번째 가는 것을 도와주는 늙은이까지도 포함해서 모두가 웃는다.
열성당원과 마태오와 가리옷의 유다가 돌아온다.
“선생님, 다 했습니다. 저희들은 지쳤습니다! 굉장히 멀리 돌아다녔습니다. 그렇지만 내일은 내가 쉴 걸세. 내일은 자네들 차례야”하고 가리옷 사람이 땅을 파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삽을 들고 일을 하려고 그들에게로 간다.
“그런데 피곤하다면서 왜 일을 하나?” 하고 토마가 그에게 묻는다.
“어린 묘목들을 심을 게 있어서 그래. 이곳은 늙은이의 머리처럼 벗어져서 안 됐단 말이야”하고 점잔을 빼고 말하면서 힘찬 발질로 삽을 땅에 박는다.
“옛날 좋던 시절에는 이렇지 않았어요! 그러나 그 뒤로… 너무나 많은 것이 죽었지요, 그런데 나로서는 그것들을 다시 만들 필요가 없었지요 나는 늙었고, 늙은 것보다 더하게 비탄에 잠겨 있었거든요’하고 늙은이가 대답한다.
“아니 자넨 무슨 구멍을 파는 건가? 그건 큰 나무를 심기에 알맞지. 자네가 말하는 것처럼 어린 묘목을 심는 데는 적당치 않네” 하고 포도나무들을 매고 나서 내려오는 필립보가 지적한다.
“나무가 어릴 때는 언제나 어린 나무지. 내 묘목들이 그런 것들이야. 날씨가 유리해. 이 나무들을 내게 준 사람이 내게 그걸 보장했어. 누군지 아십니까, 선생님? 농삿군인 엘키아의 친척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 농사를 잘 짓습니다. 과수원 하나에, 올리브밭이 여럿입니다! 그 사람이 올리브밭의 일부분을 갈아 심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 사람에게 ‘이 묘목들을 주시오’하고 말했더니 ‘누구에게 주려고?’하고 물었습니다. ‘우리에게 숙소를 제공해 주는 노베의 한 작은 노인을 위해서입니다. 이 묘목들은 내가 그분에게 일으키게 한 모든 분노를 용서받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아니오, 젊은이. 묘목으로가 아니라, 착한 행실로 그렇게 될 수 있는 거요 그리고 하느님과 더불어. 나는… 나는 바라보고 기도하고용서해요 그러나 내 용서는… 그래도 묘목들에 대해서 당신에게 감사합니다…. 비록… 이 묘목들의 열매를 내가 먹을 수 있겠어요?”
“왜 아니예요? 항상 바람을 가져야 합니다. 또 성공을 거둘 마음도 가져야 하구요…. 그러면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늙음은 이기지 못합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바라지도 않아요,”
“우리가 이기지 못하는 다른 것도 많이 있어요. 가지기를 원하는 것이 소용이 된다면! 나는 내 아들들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하고 엘리사가 한숨을 쉰다.
“선생님”하고 마태오가 말한다. “엘리사 아주머니의 말을 들으니 오늘 길에서 어떤 사람들이 저희들에게 한 질문이 생각납니다. 그 사람들은 어떤 마을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에, 기적은 언제나 성덕의 증거가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사마리아 경계에 있는 그 마을에서 놀랄 만한 일을 한 사람은 분명히 의인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람은 항상 잘못 판단하며, 그들이 의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그 사람이 어쩌면 그들보다도 더 의인일지도 모른다고 말하면서 그들에게 입을 다물게 했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너희들 모두가 각기 제 나름대로 옳은 면이 있다고 말하겠다. 너는 기적이 언제나 성덕의 증거라고 말하는 것으로 옳은 말을 했다. 일반적으로는 그러니까. 또 잘못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판단하지 말아야한다고 말하는 것으로도 옳은 말을 했다. 그러나 그 사람들도 그 사람이 놀랄 만한 일을 한 것에 대해 다른 근원을 의심하는 것도 옳은 생각이었다.”
“무슨 근원입니까?” 하고 가리옷 사람이 묻는다.
“어두운 근원 말이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인정을 받기 위하여 사탄을 친구로 두려고 그에게 자기 자신을 팔아넘기는, 사탄 숭배자들이 벌써 있다. 그런 인간들은 교만을 숭상(崇尙)하기 때문이다”하고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그러나 그것이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사람이 마귀나 지옥의 악신들과 계약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이교국들의 전설이 아닙니까?”하고 요한이 깜짝 놀라서 묻는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교도들의 전설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이 아니고, 돈이나 물질적인 계약으로가 아니라, 악에 찬동하고, 악을 선택하고, 어떤 일시적인 대성공을 얻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악에 넘겨줌으로써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그들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하여 자기를 악마에게 팔아넘기는 사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다.”
“그런데 그들이 성공합니까? 그들이 청하는 것을 정말 얻습니까?”하고 안드레아가 묻는다.
“항상 얻는 것도 아니고 다 얻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무엇인가 얻는 것이 있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마귀가 하느님의 흉내를 낼 수 있을 만큼 그렇게 능력이 있습니까?”
“대단히 많다…. 그런데 사람이 거룩하면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다. 그러나 흔히는 사람 자신이 마귀이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는 명백하고 떠들썩하고 야단스러운 마귀들림과는 싸운다. 이런 마귀들림은 누구나 다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가족이나 그 도시사람들에게 기분좋은 것이 아니고 특히 물질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사람은 언제나 무거운 느낌주는 것, 관능에 거슬리는 것에 충격을 받는다. 비물질적이고 비물질적인 것에만 지각되는 것, 즉 이성과 정신은 알아보지를 못하고, 또 알아본다 하더라도 거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특히 그것이 자기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때에는 더 그렇다. 그러므로 이러한 감추어진 마귀 들림은 구마(자驅魔者)로서의 우리 능력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이 가장 손해를 끼치는 것들이다. 그것들은 가장 선택된 부분에 작용하고, 가장 선택된 부분과 더불어 다른 선택된 부분들, 즉 이성에서 이성으로 정신에서 정신으로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것은 열이 나서 그것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는 알아차리지 못하는 부패시키는 만져서 느껴지지 않는 장기(?氣)와 같은 것이다.”
모두가 묻는다. “그럼 사탄이 도와줍니까? 정말입니까? 왜요?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가 하게 내버려두십니까? 하느님께서는 사탄이하는 것을 항상 그대로 놔두실 것입니까? 선생님이 군림하신 뒤에 두요?”
“사탄은 마저 굴복시키기 위해서 돕는다. 하느님께서 사탄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시는 것은 높은 것과 낮은 것, 선과 악 사이의 이 싸움에서 인간의 가치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가치는 의지이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높이 올려진 후에도 사탄이 하는 대로 항상 내버려 두실 것이다. 그러나 그 때에는 사탄이 그에게 대항하는 매우 큰 적을 가지게 될 것이고, 사람은 매우 힘있는 친구를 가지게 될 것이다.”
“누굽니까? 누굽니까?”
“은총이다.”
“오! 그렇군요! 그러면 은총이 없는 우리 시대의 사람들로서는 굴복하기가 더 쉽겠지만, 죄도 덜 중하겠군요”하고 가리옷 사람이 여전히 삽질을 하면서 말한다.
“아니다. 유다야, 심판은 같을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불공평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도움을 덜 받게 되면, 따라서 단죄도 덜 받아야 할 테니까요.”
“자네 생각이 전부 틀리지는 않네”하고 토마가 말한다.
“그렇기는커녕 유다의 생각은 틀렸다, 토마야. 왜 그런고 하니, 우리 이스라엘 사람들은 벌써 너무나 많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가지고 있고, 너무나 많은 지혜의 빛을 가지고 있어서 알지 못한다는 핑계를 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희들, 거의 3년 전부터 벌써 은총을 선생으로 모시고 있는 너희들은 벌써 새 시대의 사람들과 같이 심판을 받을 것이다”하고 이 말에 힘을 주시고 또 머리를 쳐든 유다를 바라보시면서 말씀하신다. 유다는 생각에 잠긴 채 허공을 바라본다.
그러다가 가리옷의 유다는 마치 속으로 하던 추리를 끝맺는 것처럼, 그리고 다시 삽을 땅 속으로 밟아 넣으면서 묻는다. “그러면 이렇게 자기를 마귀에게 넘겨주는 사람은 무엇이 됩니까?”
“마귀가 된다.”
“마귀가 된다! 그러면 가령 제가 선생님의 접촉이 초자연적인 능력을 준다는 것을 단언하기 위해서 선생님이 비난하시는… 일을 하면, 저는 마귀가 된단 말씀입니까?”
“네가 바로 말했다.”
“그렇지만 자네가 그런 일은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네” 하고 안드레아가 거의 공포에 사로잡혀서 말한다.
“내가? 아! 아! 나는 우리 노인을 위해서 어린 나무들을 심고 있네.” 그러면서 정원 저쪽으로 뛰어 가서 묘목 다섯 그루를 가지고 돌아온다. 그 나무들은 뿌리를 둘러싼 흙 때문에 확실히 무거울 것이다.
“아니, 자넨 베테론에서 이 무거운 짐을 메고 왔나?” 하고 베드로가 묻는다.
“가바온 저쪽에서라고 말해야 할 걸세! 다니엘의 과수원이 일부분은 그곳에 있네. 참 훌륭한 땅이야. 보게들!….” 그러면서 유다는 뿌리를 둘러싼 흙을 손가락으로 잘게 부수고, 그런 다음 벌써 팔뚝만큼 굵은 줄기 다섯을 묶은 끈을 끄른다. 두 줄기만 끝에 잎이 조금 있는데, 그것은 올리브의 잎이다. “자, 이것은 예수님의 것이고, 이것은 마리아 어머니의 것, 두 분은 세상의 평화이시지. 내가 이 나무들을 제일 먼저 심는 것은 평화의 사람이기 때문이야. 여기하고 …여기.” 그러면서 그는 그 나무들을 띠모양의 작은 땅의 양쪽 끝에 갖다놓는다. “그리고 여기에는 어리고 에덴동산의 사과나무 같이 맛있는 사과가 열릴 사과나무를 심네. 그것은 요한 자네에게 자네도 아담에게서 왔다는 것과, 내가 죄인이 될 수 있다 하더라도… 놀라서는 안된다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서 일세. 자네, 뱀을 조심하게… 그리고 여기에는… 아니야, 여긴 좋지 않아. 저기 앞쪽 벽 옆에 이 어린 무화과나무를 심어야지. 여기에 무화과나무들이 개밀속(屬)처럼 잘 나는데, 정원에 무화과나무가 한 그루도 없다니, 어떻게 된 일이지? 그리고 가운데 구덩이에는 이 어린 편도나무를 심을 거야. 이 편도나무는 백살 난 노인에게 생산의 힘을 가르쳐 줄 거야. 자 이제 다 됐다! 영감님의 작은 정원은 장차 아름다울 겁니다…. 그러면 이걸 바라보면서 저를 기억하세요.”
“당신이 선생님과 함께 여기 있었으니까 그렇지 않아도 당신을 기억할 거요. 모든 것이 이 시기에 대해서 말해 줄 겁니다. 그리고 물건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이렇게 말할 거예요. ‘선생님은 아들처럼 내집을 정리하고자 하셨다!’고 그렇지만… 아마 벌써 하늘에 쓰여 있을 의지와 다른 의지를 가질 수 있으면, 내게 있어서 아주 아름다운이 시기를 기억할 필요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늙은 이 나무들이 어렸을 때, 그리고 나도 젊고, 내 아내도 젊고. 내 어린 딸이 여기서 놀고 있을 때… 그리고 내 딸의 고사리 같은 손이 욕심이 많았고, 또 내 아내가 나무들의 푸른 그늘에 앉아서 피륙을 짜거나 실을 잣는 것을 보는 것이 아름다웠기 때문에 사과나무와 석류나무,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를 손질하는 것이 즐거웠던 시절보다도 더 아름다운 이 시절을 말입니다…. 그후… 내 딸은 떠나가서… 나를 온전히 잊었고!… 내 아내는 병이 들었다가 죽었지요… 옛날에 그렇게 아름답던 것을 누구를 위해 뭣 때문에 돌보겠소? 그리고는 내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늙은 것 둘만 빼놓고는 모두가 죽었어요 나는 기억할 필요가 있기 전에, 그리고 리아가 그랬던 것처럼 의로운 여인이 여기 있을 때 죽었으면 좋겠소. 당신에게는 묘목들과 일해 준 것과 모든 것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하오. 그리고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하오. 그러나 늙은 요한에게 이 평화의 시간이 넘어가기 전에 이 늙은이를 이 땅에서 뽑아 주시기를 주님께 청합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로 가까이 가셔서 어깨에 손을 얹으시고 부드러우면서도 동시에 엄하게 말씀하신다. “할아버지는 긴 일생 동안에 많은 일을 할 줄 아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부족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죽음이 일분도 앞당겨지거나 늦추어지기를 청하지 않고 하느님에게서 죽음의 시간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할아버지는 아주 많은 일에 운명을 감수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할아버지를 사랑하십니다. 가장 어려운 일, 즉 그저 죽기만 바라는데 살아야 하는 일에도 체념을 할 줄 아십시오. 그리고 이제는 들어가십시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추위가 이내 더해집니다. 단식일이 시작됩니다. 나중에 일을 끝내기로 합시다….” 그러시면서 톱과 삽과 망치를 주워가지고 집 안으로 들어가신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은 자른 나뭇가지들을 묶고 옮겨 심은 어린 나무들에 물을 주고, 새 것처럼 고쳐 놓은 문을 돌쩌귀에 맞추어 단다.